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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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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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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78

작성
23.11.16 22: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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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마왕의 길 (13)

DUMMY

111화


사람의 대갈통에 정화 마법을 시전한 최초의 인물이 하지운일 리는 없다.

사람이 생각하는 게 다 거기서 거길진대, 비슷한 생각을 한 놈이 단 하나도 없었을 리는 만무했던 것이다.


실제로 정신이 오락가락하는 노인네들을 위해, 정화 마법으로, 치료를 시도해 본 이들이 몇 있었다.

단지 죄다 실패했을 뿐이다.

그래서 정화 마법은 머릿속 문제에는 효과가 없다는 것이 마법사들 사이의 상식이었다.


옛 성현들의 가르침 중에 이런 말씀이 있다.

‘돈으로 안 되는 것이 있다면, 그건 사실 돈이 부족했던 것이니라.’라는 금과옥조와 같은 말씀이다.


그 말씀이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하지운이 또다시 증명했다.

다른 놈들이 실패했던 건 단지 놈들의 마력이 미미했기 때문이었다.


압도적인 양의 마력이 쏟아져 들어오자, 무려 치매조차 완치되어 버린 것이다.

하지만 치매의 원인까지 소멸되었을 리는 없다.

두 사내가 정신이 돌아오자마자 비명을 지르며, 눈물을 뿌리기 시작했다.


물론 개망나니 하지운은 즉시 그들의 아가리에 쇠막대기를 쑤셔 박았다.

시끄러운 건 딱 질색이었다.


중간중간 놈들의 손상된 배설 기관과 대갈통을 고쳐 가며, 서부 변경 순회공연을 절찬리에 이끌어 갔다.

이제 클리퍼드주의 여섯 성만 방문하면 이 다사다난했던 여정도 끝맺게 되는 것이다.


힐더슬리 성을 향해 출발을 명하려던 하지운은, 등 뒤 오십 보 거리에, 갑자기 등장한 마커스 터싱엄의 낯짝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터싱엄 가문의 젊은 용사 마커스도 멍때리고 있기는 마찬가지였다.


일 초도 지나지 않아, 젊은 용사는 번개 같은 속도로 백 스텝을 밟으며 멀어져 갔다.

이백 보 밖으로 물러서고 나서야 멈춰 선 마커스 경은 거친 숨을 몰아쉬며, 경악스러운 표정을 감추지 못했다.


현재 마커스 경이 사용 중인 권능 ‘은신’의 레벨은 백이다.

시장 한복판에서 웨딩드레스를 입고 제로투를 쳐도, 아무도 인식 못하고 지나가 버리는 지고한 경지에 이르렀다는 얘기다.


그런데 하지운을 상대로 권능을 발동하고, 단 0.6초 만에 들켰다.

신나게 달려들던 도중에, 하가 놈과 눈이 딱 마주쳐 버린 것이다.

하마터면 그 자리에 주저앉아 비명을 지를 뻔했다.


하지만 놀란 것으로 따지면 하지운이 더했다.

자신의 지척까지 영장류가 접근을 했는데, 감지조차 못하고 있었다.

어이가 없어서 말이 안 나왔다.

오죽했으면 마커스 경이 굼벵이 같은 속도로 줄행랑을 치는데도, 반응조차 하지 못했던 것이다.


‘씨발... 남의 대가리에다 장난질을 치는 능력이 또 등장했네... 이 새끼는 뭔 능력을 골라 온 거지? 순간적으로 내 감지 능력이 먹통이 됐었는데... 아니! 지금 내 대갈통 역량이 저런 좆밥 같은 새끼한테 털릴 정도로 허접하다는 건가? 씨발! 환골탈태인가 나발인가를 두 번이나 했는데!’


이상하게 낯이 익은 놈을 위아래로 훑어보며, 하지운은 꿈속에서 승아와 나누었던 대화를 떠올렸다.


“자기야, 나 환골탈태까지 했잖아. 근데 ‘매혹’ 같은 허접한 기술에 걸려드는 게 말이 안 되지 않아?”

“고작 삼 초 만에 풀었잖아.”

“자기야! 미오와 ‘사랑들’ 그 밥통 같은 혼성 삼인조가 개뻘짓을 해서 그렇지, 삼 초면 사람 목 하나 따는 건 땅 짚고 헤엄치기야.”

“근데... 자기야, 그게 어쩔 수가 없어. 원래 정신 능력 쪽은 만들 때부터 어드밴티지를 설정해 놓고 제작에 들어가.”

“내 능력에 다섯 배 페널티가 기본으로 주어지는 것처럼?”

“응...”

“왜?”

“야, 생각을 해 봐! 정신 교란 능력을 골라 올 애들이 어떤 애들이겠냐?”

“음... 아가리만 산 놈들? 치고받는 거에 자신 없는 놈들?”

“정답입니당!”


갑작스런 애교에 주체를 못 한 하지운이, 오리 부리처럼 쭉 내민, 입술로 여친을 사정없이 두들겨 팼다.

폭력적인 남친의 무차별적인 구타에, 무기력하게 얻어맞은 승아가 한참 동안이나 정신을 차리질 못했다.

겨우 몸을 추스르고 상체를 일으킨 승아가 아예 하지운의 가슴팍에 드러누운 채 대화를 이어 갔다.


“자기야, 그런 애들한테 권능은 유일한 목숨 줄이야. 권능이 안 먹히는 순간, 걔들은 그 즉시 아무것도 못해 보고 그 자리에서 뒈지는 거야. 자기처럼 쓸 수 있는 능력이 너무 많아서, 무슨 능력으로 죽일지 매번 고민하는 사람은 흔치 않아. 그런 고민은 개멋있는 우리 자기나 하는 거야.”


마커스 터싱엄의 몸을 차지한, 이스라엘 방첩 요원 출신의, 오메르가 땅이 꺼지도록 긴 한숨을 내쉬었다.

클리퍼드주를 지나면 바로 나오는 것이 콘체스터주 남부에 있는 터싱엄 가문 소유의 장원들이다.


하지운이 거버스를 먼저 팔아먹으러, 동북 방향에 있는, 앨커스터주로 방향을 꺾을 거라는 걸 콘체스터주에 있는 적들이 알 리가 없었다.

지금 콘체스터주 전체가 상갓집이나 다름없다.


드레이시를 배신한 터싱엄이나 웨이버튼, 콘체스터주에 새로 기어 들어온 험프리의 졸개들 등등은 현재 빵 한 조각도 제대로 넘기지 못하고 있는 상태다.

스프 몇 숟가락 먹고는 구석에서 토하는 놈이 태반이었다.


그들도 귓구녕이 뚫렸으니, 대니얼 세비니와 거버스 틸리얼이 공동 주연을 맡고 있는, 지옥의 순회공연에 대한 기별을 주워듣지 못했을 리가 없다.

해탈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한낱 중생들이 그 소식을 듣고도, 평소처럼 식사를 하고 잠이 드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현재 오메르의 상황은 진퇴양난이나 다름없었다.

지금 도망쳐 봤자, 며칠 후면 눈앞의 괴수 놈과 터싱엄 성에서 재회할 게 뻔할 뻔 자다.

그렇다고 죽자 사자 싸우자니 손톱만큼의 승산도 안 보였다.

콘체스터주에 한가득 있는 전의를 상실한 산송장들을 주렁주렁 달고 온다 해도, 달라질 건 아무것도 없어 보였다.


안 그래도 오메르의 오장육부가 문드러져 가고 있던 와중에, 갑자기 괴수 놈이 지랄 발광을 하기 시작했다.

재수 없게 오메르 자신을 위아래로 훑어보고 있던 놈이, 난데없이 분통을 터뜨리며, 육두문자를 쏟아 내기 시작한 것이다.


“아니, 씨발! 병신 새끼한테서 강탈했다고, 이 지랄인 거야? 어떻게 된 능력이 대뜸 처음부터 작동을 안 하고 지랄이야! 왜 아무것도 안 보여? 쓰던 놈이 병신이면, 능력도 병신같이 변질되는 거야? 그런 거냐고!”


뭐가 안 보인다는 건지 알 도리는 없지만, 괴수 놈이 이성을 잃은, 지금 이 순간이 기습을 할 최적의 타이밍이긴 했다.


그런데 도저히 놈의 곁으로 다가갈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괴수 놈이 지랄을 시작하면서부터, 순식간에 놈의 주변이 킬링 필드가 되어 버린 듯했다.

미친놈이 초고순도의 살기를, 경비행기로 농약 뿌리듯, 사방에 살포 중이었던 것이다.


갑자기 전직 특수 요원 오메르의 콧구멍에서 콧물이 흘러나왔다.

아직은 초겨울이라 콧물까지 흘릴 만큼 매서운 한파가 들이닥친 것도 아닌데, 애도 아니고, 다 큰 어른이 긴장 좀 했다고 코흘리개처럼 굴고 있는 것이다.


스스로에게 한심함을 느낀 젊은이가 거칠게 코를 훔쳤다.

그러고는 대경실색하며 급하게 뒤로 몸을 날렸다.


그의 왼 손등이 피범벅이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그의 콧구멍에서 나왔던 건 콧물이 아니라 한 바가지 분량의 피였던 것이다.


마부는 다행히 죽지는 않고, 기절만 한 상태다.

조금 떨어진 풀숲에서 변을 보고 있던 중이라, 급살은 면할 수 있었던 것이다.

고귀하신 백작님께 천한 놈이 똥내를 풍길 수는 없다는 일념으로 최대한 멀찍이서 웅크리고 있었던 게 마부를 살렸다.


하지만 체험 마차에 걸려 있던 두 백작은, 극심한 공포와 고통을 못 이기고, 괴성을 질러 대며 맹렬한 기세로 똥오줌을 뿌려 댈 수밖에 없었다.

그 두 놈은 죽지 않고 버텨 낸 것만으로도, 칭찬받아 마땅할 정도였다.


이성을 잃고 지랄 발광 중이던 하지운은 평생 모르고 있던 자신의 비밀 하나를 깨달아 버렸다.

그건 자신의 지랄병 증세보다 결벽증 증세가 더 심각하다는 것이다.

개빡쳐서 지랄을 하던 와중에도, 두 대제후가 흩뿌리는, 혈변 덩어리에 혼비백산하는 스스로를 목도했던 것이다.


티끌만 한 찌꺼기조차 묻지 않았음에도, 강박 상태에 돌입한, 하지운이 자신의 온몸에 물대포를 쏘는 동시에 불덩이를 띄우고 정화 마법을 발동했다.


그 지랄을 하던 하가 놈 본인도 스스로에게 씁쓸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전장 한가운데서 유달시러운 것도 어느 정도껏 해야지.’ 하는 자괴감이 들면서, 깊디깊은 한숨이 끊이지 않고 새어 나왔다.


이성을 되찾은 하지운이 심호흡을 하면서, 마음을 정갈하게 가다듬었다.

이런 식으로 전투 중에 경망스럽게 굴어 버릇하면, 진짜 센 놈을 만났을 때, 개같이 밟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하지운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 버린 것이다.

철딱서니 없는 개망나니에게 뜬금없이 찾아온 돈 주고도 못 살 깨달음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오늘 처음으로 3.0버전의 하지운이 남발하는 마법질을 목격한 오메르는, 삶에 대한 애착이 단숨에 느슨해져 버리는 걸, 절감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시 부여받은 소중한 삶에 대한 의지가, 한낱 먼지처럼, 퇴색해 가는 과정이 너무나도 서글퍼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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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9 신념을 가진 미친놈 (2) 23.12.01 3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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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마왕의 길 (13) 23.11.16 44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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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마왕의 길 (7) 23.11.04 47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49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0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0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49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55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4 3 9쪽
99 정진 (12) 23.10.19 49 2 10쪽
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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