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5.22 00:53
연재수 :
203 회
조회수 :
21,263
추천수 :
499
글자수 :
865,661

작성
23.11.12 23:58
조회
44
추천
2
글자
10쪽

마왕의 길 (11)

DUMMY

109화


십일월 이십이 일, 초겨울의 음울하고 싸늘한 바람이 연신 낯짝을 할퀴어 대는 노상에서, 기적의 치료술사 하지운 님이 기절초풍할 선진 의술을 펼치고 있었다.


현재 이곳의 위치는, 클리퍼드주 최남단에 자리 잡은 한촌, 레인 엔드에서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시골길 한복판이다.

물론 괴물 피를 처먹지 않은 평범한 성인 남성의 걸음으로 말이다.


이곳에서 한 십 분 정도만 더 걸어가면, 클리퍼드주의 여섯 상위 영주 중 한 명인, 세어 힐더슬리의 거성이 나온다.

힐더슬리 성에 당도하기 전에, 공연자들을 말끔하게 단장하고 있는 악덕 프로듀서 하 사장이다.


의외로 하지운은 미친놈답지 않게 상도덕에 민감한 편이다.

기브 앤 테이크에 철저한 편이며, 특히 자신의 공연에 시간을 할애해 준 관람객들의 만족 여부에 굉장히 예민하게 반응했다.


아무래도 전직이 전직인지라, 자신의 콘텐츠가 대중에게 먹히는지 아닌지에 대한 집착이 매우 강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채찍 쇼의 기획 단계에서부터 이미 하지운에겐 심각한 고민거리가 있었다.

관객들이 이 쇼에 금세 싫증을 낼 것 같다는 염려였다.

이곳의 관객들은 이십일 세기의 지구인이 아니다.

이들은, 인권이라는 개념 자체를 접해 본 적도 없는, 극도의 폭력 속에서 평생을 살아온 변경의 잡초들이다.


간단히 말해서 귀하신 분들을 벗겨 놓고 매질 좀 했다고, 이들을 장시간 동안 붙잡아 놓고 있을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것이다.


그래서 당연하게도 볼거리의 다양화를 추구해 보았다.

하지만 한 시간 분량의 공연을 만든다는 게, 어느 정도 예상은 했지만, 정말 쉬운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머리통 두 개를 열심히 쥐어짜서, 물고문 쇼와 염동력을 이용한 줄 없는 번지 점프 쇼도 추가로 구성해 보았다.


황무지 한복판에서 승아와 문자로 열띤 아이디어 회의를 거친 후, 두 백작을 이용해 리허설을 해 보았다.

아무리 생각해도 고작 삼십 분이 한계였다.

하지운이 보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저승에서 친한 언니들까지 강제로 끌고 와, 다 함께 관람한 승아도 비슷한 감상 평을 보내왔다.


신체가 강화된 놈들이라 고문 자체는 어떻게 꾸역꾸역 버텨 내고 있었다.

하지만 진짜 문제는 각 퍼포먼스 자체가, 일정 시간 이상 지속되면, 너무 늘어진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드는 것이었다.


결국 관객들을 한 시간 가까이 잡아 두려면, 화끈한 메인 스테이지가 따로 마련되어야 한다는 결론에 이를 수밖에 없었다.


첫 공연은, 탤머스주 동남부의 패자, 혹스버리 영주 리처드 엘모어의 성에서 거행되었다.

이곳에서의 호응에 따라 앞으로의 스케줄과 동선이 결정되는, 하지운에게 있어, 굉장히 중요한 공연이었다.


하지운의 예상은 틀리지 않았다.

사형 집행을 주말 연속극 보듯이 보는 이곳 주민들에게 단조로운 레퍼토리의 고문 쇼는 그리 오래 먹히지 않았다.

하지운의 계획이 순항하려면 무조건 오십 분 이상은 버텨야만 했다.


결국 하지운은 금단의 문을 열어 버리고 말았다.

한참을 주저하고 망설여 온 하지운이지만, 자신의 목적을 위해서라면 못 할 짓이 없는, 타고난 본바탕을 이겨 낼 수는 없었던 것이다.


쇼를 진행 중이던 소머리 좀비 일이삼사에게 더러운 의지를 전달했다.


“해 버려.”


막상 일을 지시한 하지운은 고개를 숙인 채 손톱을 다듬었다.

그새 손톱 주변에 큐티클이 지저분하게 자라나 있어, 섬세한 관리가 필요해 보였기 때문이다.

물론 이건 하지운의 뇌가 쏟아 내고 있는 비겁한 개소리였다.

그냥 비위가 상해서 차마 못 보고 있는 것뿐이었다.


얼음물이라도 뒤집어쓴 것처럼 육중한 침묵에 눌려 있던 관객들이 일제히 광기 어린 굉음을 토해 내기 시작했다.


소머리 좀비 두 마리가 두 백작의 입을 강제로 벌리더니 미리 준비한 굵은 쇠막대를 욱여넣었다.

중간에 혀 깨물고 자살하지 못 하도록, 주둥이에 재갈 대신 쑤셔 박아 놓은 것이다.

요즘은 아예 쓰지도 않는 철창의 창대를 미리 잘라서 준비해 놓았다.

참으로 준비성이 철저한 하가 놈이었다.


갑자기 주둥아리에 쇳덩이가 물린 두 백작이 소름 끼치도록 불길한 예감에 자지러져 버렸다.

쇠사슬에 묶인 몸뚱어리를 격렬하게 흔들어 대는 두 귀인의 허리를 소머리 좀비들이 꼭 끌어안아 주었다.

안타깝게도 공포에 질린 두 사내에게 진정하라는 뜻으로 해 준 포옹은 결코 아니었다.

잠시 후 좀비들이 기어코 허리를 움직이기 시작했다.


두 가련한 포로의 눈깔이 순정 만화의 주인공처럼 거대해졌다.

그와 동시에 쇠막대를 물고 있는 두 주둥이에선 억눌린 비명이 뚫고 나왔다.


하지만 그 소리는 금세 묻혀 버리고 말았다.

삼천오백여 명의 주민들이 쏟아 내는 광란의 함성 소리가 광장 전체에 진동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소머리 좀비는 말 그대로 좀비다.

뒈진 시체가 조루일 수는 없다.

시체 주제에 그 정도로 감각 기관이 예민하기도 힘들고, 생전에 암컷에게 조롱당한 기억 등등의, 심리적인 문제가 남아 있을 리도 없다.

무엇보다 세로토닌이 부족할 이유는 더더욱 없다.


하지운이 멈추라는 지시를 내리지 않으면, 내후년까지도 이 상황이 지속될 수 있다는 얘기다.

아마 그때쯤 되면 하지운의 마력도 고갈될 것이기 때문이다.


인간과 괴물 시체의 밥맛 떨어지는 사랑이 펼쳐진 지 십여 분 정도가 지났을 무렵, 하지운의 양어깨가 들썩거리기 시작했다.

어느새 하지운의 양쪽 귓불에도 무언가가 걸려들었다.

그것은, 좌우로 벌어진, 간악스러운 하가 놈의 입꼬리였다.


고개를 숙인 채 손톱 주위를 뜯으며 히죽거리는 하가 놈의 꼬라지가 뭇 사람의 공포심과 혐오감을 조장했다.

물론 그딴 거 전혀 신경 안 쓰는 하가 놈의 머릿속엔, 이 광장에서 벌어지고 있는 광기의 축제를 뛰어 넘는, 기괴한 잔치가 열리고 있었다.


단 한 시간 만에 ‘투시’와 ‘신체 변형’의 레벨을 각각 하나씩 올렸다.

‘도대체 이 능력들을 어느 천년에 백 레벨까지 처올리나.’ 하고 한탄했던 것이 무색해지는 미친 속도의 레벨 업이었다.


‘투시’ 능력의 경우 마력을 사용해서 상대방의 옷 속을, 일정 시간 이상, 들여다보기만 하면 레벨 업이 된다.

굳이 중요 부위를 꼭 볼 필요는 없다.

그냥 옷으로 덮여 있는 부위면 팔다리든 어디든 아무 상관 없는 것이다.

강간왕 놈 때문에 지레 겁먹고 흡수를 안 하려다가, 설명을 읽어 보고 허탈해졌던 하지운이다.


처음 이 능력을 얼핏 봤을 때는,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아름다운, 승아에게 풀 만족 중인 하지운이었던지라 딱히 흡수할 가치 자체를 못 느꼈었다.

그런데 설명을 거듭해서 읽어 볼수록, 괜히 저승에서 유용하다고 따로 언급을 했던 것이 아니었다.


다른 참가자의 상태창을 훔쳐볼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타인의 옷 속만 볼 수 있는 게 아니라, 옷으로 덮이지 않은 곳이면, 신체 내부도 들여다볼 수 있었던 것이다.

한 마디로 눈깔에 총천연색 MRI 장비를 장착하는 것이다.


사람을 두들겨 패는 능력은 이미 충분히 갖춘 하지운에게 진실로 유용한 능력이 아닐 수 없다.

좀 더 섬세한 구타와 학대가 가능해지는 진정한 신세계가 열리는 것이다.


웬 변태 새끼가, 이런 미친 능력을 가지고, 여자 가랑이 사이를 들여다보는 데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던 것이다.


‘신체 변형’ 능력은 레벨 업 요건이 ‘투시’보다 좀 더 까다로운 편이다.

각 레벨마다 설정되어 있는 지속 시간의 팔십 퍼센트의 시간을, 타인이 존재하는 장소에서, 변신 상태로 버텨 내면 레벨이 오르는 방식이다.


물론 레벨 업이 완료되어도 타인에게 변신했었다는 사실이 들통나면, 도로 이전 레벨로 돌아가 버리게 된다.

실제로 하지운은 한 달 전, 틸리얼의 졸개들이 보는 앞에서 변신이 풀리는 바람에, 기껏 획득한 경험치를 다 날려 먹은 적이 있었다.


‘기력 흡수’와 ‘사령술’ 같은 경우 살상 능력이어서 그런지, 일 레벨 올리는데 천 개체만 죽이면 됐었다.

그런데 변신 능력과 투시 능력은 일 레벨 올리는데, 무려 이천오백 개체를 상대해야 한다.

사람이나 괴물을 죽일 필요가 없으니, 난이도를 맞추려 머릿수를 늘린 모양이었다.


승아의 말에 따르면 원래 ‘강탈’ 능력 자체에 다섯 배의 페널티가 붙는 설정이라고 했었다.

그런데 하지운 자신의 경우에는 제재까지 더해져 오십 배의 페널티가 붙어 버린 것이다.


그것 때문에, ‘페널티가 붙어 봤자 두세 배 정도 되겠지.’라고 생각했던, 승아가 눈알이 뒤집혔었다.

그리고 그 스트레스가 쌓여서, 결국 하지운의 ‘수납장’에 대전차 로켓과 분대 지원 화기를 집어넣는 기행을 벌였던 것이다.


하지만 하가 놈은 두 백작의 육보시를 통해 제재 따위 우습게 극복해 버렸다.

이 둘의 눈부신 퍼포먼스 덕에, 붙잡아 둔 수천의 관객들을 이용해서, 수월하게 레벨 업 조건을 달성한 것이다.


어차피 평생을 아랫것들을 죽이고 학대하며 살아온 두 축생들이다.

얼마 안 있으면 토막 나서 뒈질 팔자들인데, 죽기 전에 세상에 빅 웃음을 주고 가니 이 둘도 보람차기가 한량없을 것이다.


‘이제 오줌 싸러 가는 척하고 성 밖으로 나갔다가, 다시 변신해서 돌아오면 오늘 미션 완료다. 존나 고맙다, 이 돼지 새끼들아.’


하지운의 입가에 머문 미소가 구역질이 나도록 싱그러웠다.


작가의말


 다음 주는 ‘화 목 토’에 업로드 하겠습니다.

 앞으로 더욱 분골쇄신하여 업로드 횟수를 정상화시키도록 노력하겠습니다.

 항상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죽은 줄 알았지?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39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35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41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41 1 10쪽
111 마왕의 길 (12) 23.11.15 45 1 10쪽
» 마왕의 길 (11) 23.11.12 45 2 10쪽
109 마왕의 길 (10) 23.11.10 46 2 10쪽
108 마왕의 길 (9) 23.11.08 50 2 11쪽
107 마왕의 길 (8) 23.11.06 47 2 11쪽
106 마왕의 길 (7) 23.11.04 45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47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49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48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48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54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3 3 9쪽
99 정진 (12) 23.10.19 48 2 10쪽
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97 정진 (10) 23.10.15 55 3 10쪽
96 정진 (9) 23.10.12 53 3 9쪽
95 정진 (8) 23.10.10 58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62 3 9쪽
93 정진 (6) 23.10.06 57 4 9쪽
92 정진 (5) 23.10.04 57 3 9쪽
91 정진 (4) 23.10.02 57 4 10쪽
90 정진 (3) 23.10.01 62 3 9쪽
89 정진 (2) 23.09.29 62 3 9쪽
88 정진 (1) 23.09.27 70 3 9쪽
87 인연 (14) 23.09.25 69 3 10쪽
86 인연 (13) 23.09.23 73 3 10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