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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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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14 19: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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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16,37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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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15 0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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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길 (12)

DUMMY

110 화


한 달 동안의 아름다운 여정을 통해 하지운은 기어코 ‘투시’ 능력을 백 레벨까지 끌어올렸다.

하지만 ‘신체 변형’ 능력은 아직도 구십삼 레벨에 머물고 있다.


이게 어쩔 수 없는 것이, 투시 능력은 굳이 공연장이 아니라도 어디에서든 레벨을 올리는 것이 가능했기 때문이다.

노상에서도 투시 능력의 레벨 업은 멈추질 않았다.


길을 지나가던 행인들이 난데없이 등장한 고문 마차를 보고, 무심한 듯 시크하게 지나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었다.


대경실색한 그들 앞에, 하지운에게서 철저한 교육을 받은, 중년의 마부가 뛰쳐나가 근엄한 호통을 내지르곤 하였다.


“그대들은 두려워하지 말라! 고귀하신 콘체스터와 웨스털랜드의 백작 로저 드레이시 공의 자비의 체험 마차니라! 마음껏 관람하라! 두 죄수는 며칠 후 닭 모이가 될 것이니, 후환을 염려치 말라! 손상만 입히지 않는다면, 원 없이 만져 봐도 좋다!”


근처 촌락에 있던 아낙들이 그 소리를 듣고 다 튀어나와 낄낄대며 구경을 했고, 아이들까지 다 따라 나와서 두 백작의 중요 부위에 짱돌을 던지며 놀았다.

물론 마부의 다급한 호통이 뒤따랐다.


“돌은 안 된다, 이놈들아! 아무리 이분들이라도 알까지 튼튼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당장 멈추지 못하겠느냐! 로저 공께서 언짢아하시지 않느냐!”


놀란 아낙들이 다급히 아이들의 팔을 잡아채며 하지운을 향해 연신 고개를 조아렸다.

뒷짐을 진 채 느긋하게 딴청을 피우고 있던 하가 놈이 근엄하게 한마디 하였다.


“그만들 하라. 아이들이 모르고 한 짓인데, 그렇게 두려워할 필요 없느니라. 죄수들이 다치지 않을 정도로만 장난을 치게 하여라. 아이들이 정 무언가를 던지려 하거든, 돌 대신 진흙 덩어리를 던지게 하여라. 그러면 아이들도 즐거울 것이고, 죄수들도 크게 다칠 일은 없을 것이다.”


아낙들이 무릎을 꿇고 고귀하신 백작님의 관대함을 칭송했다.

시골 아낙들의 찬양을 즐기던 하지운이 기꺼운 마음으로 한마디를 더했다.


“고대 제국의 기록에 따르면, 지체 높은 죄수의 생식기를 만진 후 소원을 빌었을 때 기도발이 대단했었다고 전해진다. 너희의 행색을 보아하니 가엾고 딱하기 그지없구나. 내 마음이 참으로 서글프다. 마을에 뛰어난 놈이 나와 출세라도 해야, 너희의 팔자도 근본적으로 필 것 같아 보이는데...”


악귀 놈의 말이 다 끝나기도 전에, 나이 좀 들어 보이는 아낙들이 부리나케 마을로 뛰기 시작했다.

잠시 후 그들의 손에 질질 끌려 나오는 젊은 아낙들이 보였다.

보나 마나 며느리들일 것이다.


마차를 둘러싼 마을 사람들의 엄숙한 기도회가 한참 동안 지속되었다.

근엄하게 돌아서 있던 하지운의 얼굴이 극심한 고통에 일그러졌다.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느라,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수치심에 정신 줄을 반쯤 놓은 두 백작이 눈물을 철철 흘리며 악다구니를 쏟아 내고 있었다.


후손들의 입신양명을 위해 치성을 드리고 있는 부락민들이, 그딴 소음에, 일일이 반응할 여유 따위가 있을 리 없었다.

이런 진귀한 경험은, 그들 같은 변경의 촌민들에겐, 천 년이 지나가도 다시 겪기 힘든 기적 같은 일이기 때문이다.


하지운의 전신에 경련이 일어나고, 눈에선 뜨거운 물이 흘러내렸다.

호흡 곤란에 딸꾹질까지 일어난, 이 미터 팔십의 붉은 머리, 초인이 온몸을 배배 꼬며 고통을 간신히 억눌렀다.


환골탈태를 두 번이나 거치고도, 이토록 큰 고통을 느끼게 될 줄은 미처 몰랐다.

웃음을 참는다는 게 이 정도로 힘겨운 일인지는 진정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다음 기회에 웃음 고문도 한번 시도해 봐야겠다고 생각하는 하지운이었다.


클리퍼드주에서의 첫 공연을 앞두고 지난 한 달 간의 유쾌한 추억을 떠올린 하지운이 급기야 빵 터져 버리고 말았다.

그러다 자신이 하고 있던 일이 무엇인지를 의식하고는 화들짝 놀라 버렸다.

지금 자신은 환자에게 인술을 펼치고 있는 중이었다.


‘이런... 이 무슨 경망스러운 짓이란 말인가... 환자를 치료하는 와중에 웃음이라니... 의원으로서 실격이다! 반성해야 해! 반성! 아직 어설프기 짝이 없는 돌팔이 주제에! 잡생각이나 하고 자빠졌어! 하지운, 이 등신아! 잘한다, 잘해!’


생각은 그리하고 있지만, 사실 현재 하지운의 치료 능력은 ‘입신의 경지에 이르렀다!’고 감히 외칠 수 있다.


하지운을 제외한 이 세상의 모든 치료 마법사들은, 마법을 발동할 때, 환자의 상처를 움켜쥔 채로 마력을 전달한다.

그렇게 해야 마력이, 엉뚱하게 허공으로 새지 않고, 온전히 환부에 전달되어 환자의 회복력을 극대화시켜 주기 때문이다.

이건 마법사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상식 같은 얘기다.


하지만 하지운은 결벽증 환자다.

타인의 멀쩡한 생살도 만질 때마다 속으로 질겁을 하는데, 피범벅이 된 상처를 만지는 게 가능할 리가 없었다.


그러다 보니 처음부터 허공을 격해서 치료 마법을 펼치는 기이한 짓을 벌이게 된 것이다.

할링튼 성에서 미오의 졸개녀를 상대로 마음껏 실습을 했었다.

어차피 남의 발모가지인데, 하지운의 마음에 거리낌이 있을 리가 없었다.


타인의 신체에서 자신의 신체를 분리시킨 채, 대기 중에서 마력을 온전히 전달시키는 일은 생각했던 것보다도 훨씬 고된 일이었다.

환골탈태를 통해 정신적 지배력이 대폭 상승한 하지운조차도,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시간이 점점 길어지자,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도 남의 피투성이 생살을 만지면서 느끼는 짜증스러움에 비하면, 새 발의 피 수준의 정신적 고통이었다.

그만큼 하지운의 결벽증이 지랄 맞은 차원에 이르러 있다는 반증이었다.


그런데 이번에는 그 결벽증이 전화위복이 된 듯했다.

억지로라도 남의 피부에 닿지 않으려는 하지운의 몸부림이 마법 능력 향상에 막대한 도움이 되어 버린 것이다.


매개체가 없는 상태에서 허공에 마력을 뿌리는 헛짓거리를 해 놓고, 어떻게든 상대의 체내로 유도하려고 대가리가 깨지도록 의지력을 쥐어짜 댔다.

만약 이곳의 치료술사 중 한국말을 할 줄 아는 이가 한 명 존재했고, 그 사람이 옆에서 이 모습을 보고 있었다면 반드시 한마디 했을 것이다.

“병신 같은 새끼! 허공에다가 좆질하고 자빠졌네!”라고 말이다.

정말 말 그대로 지금 하지운이 하고 있는 짓은, 치료 마법사들 입장에서 보면, 허공에 해 대는 좆질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었다.


그런데 어찌어찌하다 보니 치료가 돼 버렸다.

절단면을 보니 상처가 아물고 있던 것이다.

신명이 난 하지운이 낫고 있던 환부를 염동력으로 도로 터뜨려 버렸다.


괴물 피를 먹고 강화된 여인이 아니었다면, 쇼크사는 따 놓은 당상이었을 것이다.

사람을 고통의 도가니에 쑤셔 박은 하지운이 어깨춤을 추며 졸개녀의 양발을 찾아 왔다.

물론 염동력으로 들고 왔다.


그런 후 미오에게 졸개녀의 왼발을 환부에 고정시키게 한 후, 또다시 원거리 치료 마법을 가동했다.

방금 전까지 삼십 분을 낑낑거려도 안되던 치료가 십 분 만에 종결되었다.

역시 모든 일은 처음이 힘들다는 게 맞는 얘기였다.


입이 함지박만 하게 벌어진 하지운이 오른발도 붙여 보았다.

이번에는 고작 오 분도 안 걸렸다.

이 짓도 자꾸 하다 보니 점점 느는 모양이었다.


손도 안 대고 찝찝한 짓을 완수해 버린 그때, 순진무구한 하지운은 정말 해맑게 웃으며 꾸밈없는 참마음으로 행복해했다.

자신이 방금 한 짓의 의미조차 모르고 말이다.


사실 인류의 역사를 돌아보면 뜬금없이 튀어나온 발명품들이 종종 있다.

다른 목적으로 연구하던 중에, 실수로 혹은 우연히, 만들어진 것들이 대박 상품으로 둔갑해 버린 사례가 한두 가지가 아니다.

원래 두통약으로 개발되었던 콜라나, 고무 대체재로 이용하려다 껌 만드는 재료가 되어 버린 치클 같은 것들 말이다.


단지 결벽증을 극복하지 못해서, 시도한 고육지책이 하지운의 마법 능력을 단숨에 진일보시켰다.

한층 더 강력해진 지배력과 몰라보게 정교해진 마력 운용이, 하지운을 둘러싸고 있던, 마법 원소들에게 시공을 초월한 벅찬 감동을 선사했다.

정작 본인은 새까맣게 모르고 있는 상태에서 말이다.


마법 원소들이 줄을 잘 섰다고 광란의 자축 파티를 하는 동안, 하지운은 손 안 대고 코 풀었다고 콧노래를 불렀다.

두 번째 환골탈태의 토대도 이때 태반이 구축되었던 것이다.

흙의 원소를 꼬드긴 건 단지 방아쇠를 당긴 행위에 불과했다.


하지운의 위대한 업적은 외상 치료 분야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었다.


당연한 얘기지만, 좀비와의 금단의 사랑을 나눈 두 백작은 며칠 지나지 않아 정신적인 이상 증세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하지운이 두 사내놈의 멘탈을 너무 과대평가해 버렸던 것이다.


고작 세 번째 공연을 마치고 불량품이 되어 버린 두 원수 놈들을 목도하고선, 천하의 하가 놈도 깊은 절망감에 허우적거릴 수밖에 없었다.

당초의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선, 못해도 스물두어 번은 더 해야 할 공연이었다.


‘육십 레벨’로 흡수한 두 능력에 고작 사 레벨 얹어 주고 폐기물이 되어 버린 두 배우들을 꼬나보며, 하지운의 심장이 오랜만에 살심의 꽃으로 온통 뒤덮여 버렸다.


하지만 죽일 때 죽이더라도 이것저것 시도는 해 보고 죽여야 했다.

하지운의 눈에는 어차피 다 똑같은 벌레 새끼들이었지만, 그래도 이만한 양질의 프로파간다 소재들도 드문 게 사실이었다.


그래서 될 대로 되라는 심정으로 전신의 마력을 총동원해, 놈들의 대갈통에 정화 마법을 시전해 보았다.

유사 이래 최초로 치매를 완치시킨 거룩한 명의 ‘성(Saint) 로저’가 탄생하는 순간이었다.


작가의말


 죄송합니다. 조금 늦었네요.

 간만에 정말 안 써지는 이틀이었습니다.

 역대급으로 힘들게 썼네요.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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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6 마왕의 길 (7) 23.11.04 47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49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0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0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49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55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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