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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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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6.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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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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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95,318

작성
23.10.27 23: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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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마왕의 길 (4)

DUMMY

102화


듣도 보도 못한 기이한 이적을 선보이고도 하지운은 결코 만족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이곳에 와서 겪은 거의 모든 고난에, 대마법사 영감의 지분이 못해도 절반은 된다고 생각하고 있던 하지운이다.


그가 이곳 브리갠트로 넘어와 잡아 죽인 대다수의 생명체들은, 사적으론, 아무런 원한도 없는 존재들이었다.


다른 부활자들을 죽인 행위야 같은 대회에 참가한 경쟁자를 제거한 것이니, 대회 참가자 중 일인으로서,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이다.


괴물들을 죽인 것은 아예 언급할 가치도 없다.

사람이 때 돼서 밥 먹고 똥 싸는데 별 이유 없듯이, 괴물들 따위를 죽이는데 무슨 명분이 따로 있을 리가 없었던 것이다.


임무 목록에 있는 로저의 원수들을 죽인 것도 전적으로 불가항력적인 일이었다.

아무리 로저의 기억을 전부 흡수했다 해도, 하지운 자신이 완벽히 로저처럼 사고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말하자면 로저의 원수들에게 딱히 증오의 감정 따위는 없었다는 것이다.

그냥 목록에 죽이라고 쓰여 있기에, 별생각 없이 때려죽인 것뿐이다.


양질의 몸뚱어리를 제공하고 요절한 젊은 백작님에 대한 심적 부담감은 좁쌀만큼도 없다.

하지운은 근본적으로 마음속에 그딴 거 키우는 인간이 아니다.

로저에 대한 애틋한 마음이 쥐똥만큼이라도 존재했다면, 로저의 가문에, 생존자가 남아 있지 않다는 말에 그렇게 홀가분한 표정을 지을 수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운이 그나마 사람 구실을 할 때는 승아를 떠올릴 때뿐이다.

그 외 대부분의 시간은 사람 같지도 않은 인면수심의 인생 여정에 충실할 뿐이었다.


그런 인간적인 감정이 극도로 부족한 개또라이 하지운 군이 처음으로 순수한 증오심을 드러냈다.

진심으로 괴롭혀 주고 싶은 대상을 만난 것이다.

그동안의 장난 같은 협박과 고문들은 정말 말 그대로 장난이었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 거버스를 향한 하지운의 마음은 장난이 아니었다.

미칠 듯이 용솟음치는 감정에 하지운 자신조차 당혹스러울 지경이었다.


아흔여덟 먹은 상노인네를 품에 안고 어떤 방식으로 거칠게 귀여워해 줄까 하는 생각에, 벅찬 감정을 주체 못 하는 하가 놈이었다.


그 순간 하지운의 눈깔이 요사스럽게 번들거렸다.

잠시 후 그의 양쪽 눈알에서 눈부신 광채가 뿜어져 나왔다.


좀 더 강렬한 퍼포먼스를 통해, 노인네의 심장 속에 나이아가라 폭포수 같은 절망의 물 폭탄을 쏟아 내 주고 싶은 욕구가 치민 것이다.


폴댄스를 추고 있던 불꽃의 거버스가 과감하게 옷을 벗어 던졌다.

그 옆에 난데없이 불꽃의 험프리가 실물 사이즈로 짜잔하고 등장했다.

놈 또한 태초의 모습 그대로였다.


잠시 후 두 불꽃의 남정네가, 차마 눈 뜨고 볼 수 없는, 메스꺼운 사랑을 펼쳐 보이기 시작했다.

둘의 격렬한 요분질에 십 년 전에 먹은 아침밥이 올라올 지경이었다.


그것으로도 부족했다.

곧이어 물로 만들어진 다섯의 큐피드들이, 두 화끈한 남정네들의 주위를 맴돌며, 소리 없는 나팔을 불어 댔다.


마법이 진정한 대가의 경지에 이른 태대마법사만이 선보일 수 있는 경천동지할 기예였다.

기적의 내용이 너무 구역질 난다는 것만 감수하면, 삼대가 덕을 쌓아도 겨우 볼까 말까 한, 진귀한 광경이 아닐 수 없었다.


틸리얼의 정예들은 죽기 전에, 천 년에 한 번 볼까 말까 한, 기적을 목도하고 죽는 어마무시한 홍복을 누리고 있는 것이다.

물론 본인들은 절대 원했던 적이 없는 복이지만 말이다.


느긋하게 이적을 펼치고 있던 하지운이 순간 낯짝이 하얗게 질린 채 대경실색해 버렸다.

딱히 마력 소모가 심한 마법을 펼치지 않았음에도, 갑자기 몸이 허해지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고작 이 정도 마법에 마력이 소모되는 것을 실시간으로 느껴 버린 하지운이 당황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내 하지운은 침착함을 되찾을 수 있었다.

아니, 허무함마저 느끼고 있었다.


‘아, 씨발... 배고픈 거였잖아. 그러고 보니, 저녁 먹을 시간이 한참 지났네. 노느라 정신이 빠져서... 등신 같은 실수가 멈추지를 않는구나. 귀여운 승아한테 또 한 소리 듣겠네... 잔챙이들 어서 치워 버리고, 밥 먹으면서, 좀 차분한 마음가짐으로 노인네를 고문해야겠다.’


검을 양손에 꽉 쥐고 덜덜 떨고 있던 용사들이 난데없이 하나둘 바닥에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흑발의 마왕 놈을 향해 일제히 질질 끌려가기 시작했다.


용사들이 다급히 검을 흙바닥에 꽂아 넣고, 있는 힘껏 검 손잡이를 움켜쥐었다.

물론 소용없는 짓이었다.

용사들의 검이 흙바닥을 두부 가르듯 가르며, 하지운을 향해 쭉 미끄러져 갔다.


용사들은 자신들의 검이 이 정도로 대단한 보검인지는 꿈에도 몰랐던지라, 다들 기겁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말할 것도 없이 당연하게도, 그들의 검은 전설의 보검이 아니었다.

단지 하지운이 흙 마법으로 바닥에 장난질을 친 것뿐이었다.


다급한 비명을 지르며 검을 놔 버린 전사들이 번개 같은 속도로 양손을 바닥에 쑤셔 박았다.

어떻게 해서든 마왕 놈 곁으로 가지 않겠다는 그들의 애달픈 마음을 온몸으로 표현한 것이다.

하지만 용사들의 비통한 절규는 결국 하늘에 닿지 못했다.


하늘도 무심하시게 무려 구십여 명의 젊은이들이 어느새 하지운을 중심으로, 머리통으로 구성된, 두 겹의 거대한 원을 형성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의 나머지 몸뚱어리는 이미 땅속에 파묻혀 버려, 옴짝달싹도 하지 못하는 지랄 같은 상황에 처해 버린 것이다.


결국 어린 청년들의 입에서 울음 섞인 비명이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으아아악! 고조부님! 저희 좀 빨리 구해 줘요! 죽겠어요! 빨리요!”

“흐으윽! 뭐 하세요? 빨리 이놈 좀 죽이세요! 저희 다 죽겠다고요!”

“아아악! 난 죽으면 안 돼! 나 다음 주에 결혼해야 돼! 으아아악! 시블!”


욕한 거 아니다.

그의 약혼녀의 이름이 ‘시블’이다.


“그만해라, 용사들아. 너희 집구석의 늙은 수괴는 내 발톱의 때만큼도 되지 못한다. 저 가련한 늙다리에게 너무 큰 짐을 지우려 하는구나. 저놈도 곧 있으면 무릎을 꿇고, 나에게 살려 달라고 비느라 정신이 없을 것이다. 하늘 같은 가주의 비참한 모습을 굳이 구경하려 하지들 말고, 먼저 곱게들 가라. 어린 네놈들이 무슨 죄가 있겠느냐? 다들 고통 없이 보내 줄 테니, 감사하는 마음으로 조용히 뒈져라.”


이제 막 성년이 된 젊은이들이 곧 뒈지게 생겼는데, 감사하는 마음 따위가 솟아날 리가 없었다.

당연히 쌍욕이 대신 튀어나왔다.


인간 말종 하가 놈이 그 소리를 참고 들어줄 리도 없었다.

아흔두 가닥의 길쭉한 꼬챙이가 젊은이들의 벌어진 입을 뚫고 들어갔다.

그리고 어김없이 서늘한 침묵이 그 자리에 내려앉았다.


저녁 식사 대신 젊은 전사 구십여 명의 생체 에너지로 허기를 채운 하지운이 남은 열한 마리의 가엾은 짐승들을 돌아봤다.


거버스의 면상을 훑어보니, 도망칠 의욕조차 상실한 것 같아 보였다.

힘차게 오줌을 뿌리며 여우들에게서 달아나던 지난날의 호쾌한 기백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린 모양이었다.


오히려 남은 십 인의 방패수들이 침착하게 뒷걸음질 치며, 늙은 가주에게 정신 차리시라고 격하게 다그치고 있었다.


식자우환이라고 했다.

아는 만큼 더 무서운 법이다.

다른 놈들은 몰라도 마법사 흉내라도 내고 있던 거버스는, 하지운이 한 짓들이 어떤 경지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인지를, 어렴풋이 눈치 채고 있었다.

그래서 마음이 완전히 꺾여 버린 것이다.


“틀렸어... 모든 게 다... 끝나 버렸어... 완전히 다 끝났어... 이젠 돌이킬 수 없어... 용서해 줄 놈이 아니야... 우리 가문은 이제... 끝났어...”


구구절절이 옳은 말이다.

하지운이 박수를 쳐 줬다.

그리고 한 마디 거들었다.


“정답입니다.”


하지운은 깜찍한 칭찬을 건네며, 대마법사를 향해 힘차게 몸을 날렸다.


아까부터 눈에 어른거리는 것들이 있었다.

너무도 탐스러운 보물단지 같은 것들이었다.

거버스가 하지운을 상대하기 위해 준비해 온 사람 키만 한 강철 방패들이 바로 그것이었다.


두 번에 걸친 환골탈태를 통해 하지운의 신체 능력은 개세적인 지경에 이르렀다.

간단한 준비 운동만으로도, 일정 지역에 재해와 같은 악영향을 끼칠 수 있는 정신 나간 경지에 이르게 된 것이다.


뭔가 화끈하게 때려 부술 것이 필요했다.

생각 같아서는 당장 콘체스터 성으로 달려가, 새로 입주한 거주민들이 지켜보는 앞에서, 성벽을 맨주먹으로 다 때려 부수고 싶은 심경이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두 발 달린 강철 펀칭 백이 열 개씩이나 등장한 것이다.

하지운이 얼마나 기뻤을지는 인간의 언어로 설명이 불가능할 지경이었다.


“딱 대!”


단숨에 방패수들의 앞에 도착한 하지운의 왼발이 땅바닥을 뚫고 들어갔다.

도움닫기 후 급하게 땅을 좀 디뎠다고, 바닥에 크레이터를 만드는 대괴수 하지운이었다.


왼발이 바닥을 뚫기가 무섭게 오른발은, 두께가 한 뼘이 넘는, 통짜 철판때기를 뚫고 있었다.

하지운의 진정한 괴력이 세상에 공개되는 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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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4 마왕의 길 (5) 23.10.31 50 2 10쪽
» 마왕의 길 (4) 23.10.27 50 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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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정진 (12) 23.10.19 49 2 10쪽
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97 정진 (10) 23.10.15 56 3 10쪽
96 정진 (9) 23.10.12 53 3 9쪽
95 정진 (8) 23.10.10 5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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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정진 (6) 23.10.06 5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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