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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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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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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11.28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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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왕의 길 (18)

DUMMY

116화


안 그래도 과다 출혈이 걱정될 정도로 코피를 발사하고 있던 로버트 피츠드로고 호소인이다.

그런데 설상가상으로 뺨따귀에 하지운의 손바닥까지 왔다가 갔다.

염동력을 이용한 원거리 손찌검이 아닌, 살과 살이 맞닿는 손찌검다운 손찌검이었다.


물론 하지운의 섬세한 힘 조절이 당연히 작용했다.

단매에 요절을 내고 싶은 열망이 대기권 밖까지 뻗히고 있었지만, 원대한 포부를 실현하기 위해, 성질을 억누르는 건 하지운 같은 큰 인물의 으뜸 되는 덕목이었다.


“야, 이 공룡보다 눈치 없는 새끼야. 너, 도대체 전생에 뭐 하던 놈이야? 왜 남의 몸뚱어리를 더듬고 지랄이야? 너 지하철에서 사내새끼 엉덩이만 골라서 부비는 치한이었지? 관상은 과학이라더니, 생긴 것부터가 명확하네. 아니면, 업소에서 돈 받고 떳떳하게 일하던 프로 게이였냐? 너, 뭐 하고 다니던 놈이냐고? 이 숟가락으로 쳐 죽일 새끼야!”


질문을 한다는 건 대답을 듣고 싶다는 의지의 발현이다.

그 의지를 전했다면 응당 대답할 시간적 여유를 주는 것이, 가정 교육을 받는 시늉이라도 해 본, 인간의 싸가지 있는 태도라 할 수 있다.


하지운은 인간에 대한 애정이 희박한 것이지, 교양이 부족한 것은 결코 아니다.

그럼에도 지금 본데없는 짓거리를 쉬지 않고 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쌓아 놓은 분노가 지대하다는 걸 의미한다.


오해를 풀 일말의 시간적 여유도 주지 않고 날려 대는 쌍싸다구에, 스위스 출생의 미셸 군은 하늘이 무너지는 듯한 절망감을 느꼈다.


양 볼이 아픈 건 아무것도 아니었다.

진정으로 아픈 건 마음이었다.

죽기 전 제네바 시계 학교에 재학 중이던 미셸 군은 교수들로부터, 캐비노티에가 될 충분한 자질을 지녔다는, 찬사를 받아 오던 엘리트였다.

참고로 캐비노티에는 스위스의 인간문화재급 시계 제작자를 뜻하는 단어라고 한다.


자신이 고른 권능 때문에, 미친 마귀에게, 이따위 괴상한 오해를 받고 있다는 건 어렵지 않게 추측할 수 있었다.

그래도 다시 죽기 전, 이곳의 모든 이들에게, 자신이 게이 성향의 성추행범이 아니라는 사실만은 반드시 밝혀 두고 싶었다.


그가 생각하기에 미셸 군 자신은, 듣도 보도 못한 이곳 브리갠트에서, 이딴 오명을 뒤집어쓰고 객사할 만큼 인생을 개떡같이 살아오진 않았다.


미셸 군이 골라 온 능력은 ‘그림자 조종’이다.

어둠의 마력을 이용해 상대의 그림자를 제압하여, 자신보다 더 강한 자들도, 무력한 꼭두각시로 만들어 버리는 무시무시한 능력이다.


분명히 자신보다 더 강한 놈들도 제압이 가능하다고, 지금도 ‘상태창’에 독어, 불어, 이태리어로 적시돼 있다.

심지어 옆에 깨알 같은 로만치어 설명도 부가되어 있다.


물론 미셸 군 같은 명석한 청년이 지금 같은 예외적인 상황을 예측 못했을 리가 없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괴수 놈의 그림자를, 단 한 순간도, 잡아 보는 것조차 못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것이다.

하가 놈의 그림자를 틀어잡으려 정신력을 있는 대로 집중해도, 놈은 전혀 버퍼링 없이 부드럽게 스쳐 지나가 버렸다.


결국 미셸 군이 괴수 놈을 제압하기 위해서 했던 모든 행위가, 하지운의 입장에선, 일방적으로 온몸을 더듬는 강제 추행이 돼 버리고 만 것이다.


하지만 미셸 군의 우려와는 달리, 차분하고 관대한 괴수 하가 놈은 십 분 정도의 가벼운 폭행 후, 피투성이가 된 청년을 동료들 옆에 꽂아 주었다.

어느새 청년의 주위에는 기절해 있는 두 사나이와 아직도 혼잣말을 읊어 대는 동물 애호가 한 명이 도착해 있었다.


고작 삼십 분도 안 걸렸다.

육 인의 히어로 군단과 무소속 이 인, 총 팔 인의 부활자들을 폐인으로 만들어 생매장하는데 밥 한 끼 때울 시간도 안 걸린 것이다.

심지어 삼십 분 중 십 분은 미셸 군의 따귀를 후리는 데 전념했던 시간이다.


위풍당당한 히어로 군단을 내려다보며 킥킥거리던 하지운이 갑자기 호통을 내질렀다.


“당장 일 킬로 밖으로 물러났다가, 두 시간 후에 접근한다! 그사이에 기어 들어오면, 소속 불문하고 죽여 버리겠다! 뭐 해? 빨리 안 움직여!”


다들 모래시계 정도는 가지고 있을 것이다.

없으면, 눈치껏 남들 움직이는 걸 보고, 따라 움직이면 될 것이고 말이다.


정보 길드 소속의 전사 십 인이 미친 듯이 달리기 시작했다.

진심으로 살고 싶다는 욕구를 온몸으로 표출하며, 뜀박질에 정성을 다 바쳤다.

남들보다 하나라도 더 많이 알고 있기에, 디디는 걸음걸음마다 혼신의 힘을 다하는 그들이었다.

심지어 그들 중 한 명은, 똥을 닦을 겨를도 없이 기절한, 마부까지 어깨에 짊어지고 있어 그 고달픔이 이루 말로 다할 수가 없을 지경이었다.


그나마 눈치가 있는 놈들이 뒤따라 뛰기 시작했다.

며칠째 서로를 관찰하면서, 대충 소속을 짐작하고 있던 중이었다.

개중에서도 특히 눈빛이 예사롭지 않아 보이던 놈들이, 갑자기 놀란 토끼 새끼마냥, 줄행랑치는 작태를 보이자마자 살려면 똑같이 해야 한다는 걸 바로 깨달았던 것이다.


지능이 부족한 놈들이 남아서, 어쩔 줄 몰라 하며, 사방을 두리번거리고 있었다.


“와... 세상엔 용감무쌍한 강심장들이 이렇게나 많이 있구나. 한 달을 넘게 저 두 병신을 가지고 공포 분위기 조성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전혀 달라진 게 없네. 나 따위가 지껄이는 헛소리는 들어 줄 가치가 없다는 거겠지... 내가 이렇게 무시당하고 있어! 난 너무 슬퍼! 난 결코 행복해질 수가 없는 거야!!”


이럴 때 하지운은 노래를 부른다.

서글픈 마음을 가득 담아 한 자 한 자 뱉어 내는 하가 놈의 노래에는, 뭇 사람의 탄식을 자아내는, 깊은 울림이 담겨 있었다.


“짤랑! 짤랑! 짤랑! 짤랑! 으쓱! 으쓱!”


훈련소에서 부르던 군가도 이보다 절도 있진 않았다.

‘짤랑’ 부분에서 허공에 떠 있던 두 용사가, 천 리를 내달리는 명마의 부랄처럼, 격렬하게 휘날렸다.

‘으쓱’ 부분에서는 이곳의 인간으로서는 최초로 삼백 미터 상공까지 비행하는 보배로운 경험을 해 보았다.


‘쭈욱’ 부분에서 이 둘의 사지를 잡아 뽑으려 했는데, 봐 줄 이들이 모두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어리바리하게 굴고 있던 뭇 병신들이, 그제야 똥오줌을 가리고는, 헐레벌떡거리며 달아나 버린 것이다.


용사들이 썰물처럼 빠져나가 버린 자리에는, 본보기로 선택된 두 가련한 산송장들만이 이자액까지 토해 내며 자신들의 올해 운세를 한탄하고 있었다.

무려 구십여 명의 첩자들 중에서 무작위로 선택된 두 왕실 근위대 용사였다.

하지운은 미처 모르고 있었지만, 오늘 그의 뽑기 운은 그야말로 미쳤다.


김 첨지만큼이나 운수 좋은 두 용사를 영양가 없는 찌꺼기로 만들어 버린 하가 놈이 팔 인의 슈퍼히어로 군단을 찾아뵈었다.

용맹한 남녀 히어로들을 만나 볼 생각에, 허우대만 멀쩡한 날건달의 심장이 방정맞게 콩닥거렸다.


“너희는 공식 명칭이 어떻게 되니?”

“......”

“주둥이가 여덟 개나 되는데. 작동하는 게 하나도 없네. 일단 뚫린 주둥아리로 물 좀 먹자. 먹다 보면 사고방식들이 달라지겠지.”

“아직 명칰 아읍으어읍.”


체험 마차에 다가가 기절해 있던 두 고귀한 혈통의 대제후에게 물벼락을 끼얹었다.

세상 편하게 처자고 있던 두 돼지 새끼들을 깨울 겸, 목욕도 시키기 위해서였다.

아까 싸질러 놓은 똥오줌이 아직도 아랫도리에 칠갑인 상태이기 때문이다.


초겨울 날씨에 각자 드럼통 한 통 분량의 냉수를 뒤집어쓴 두 백작은, 잠이 덜 깬 아기처럼, 괴성을 지르며 몸부림쳤다.


“주둥아리 닫아라. 너희 서방들 부른다. 노상에서 한번 할래? 하루만 안 봤는데도, 그새 보고 싶어져서 미치겠어?”


금세 이빨 부딪히는 소리만 남기고 조용해졌다.

어느새, 온순하고 순종적인, 애완견으로 거듭난 두 열혈남아였다.


“인사들 해. 밑에 반가운 얼굴들이 있잖아. 너희 두 놈을 구하겠다고 와 주신 용사님들이야. 좋아 죽겠지? 저것들 중에 두 마리는 심지어 너희 피붙이야. 매제, 저 새끼 봐 봐. 어디서 많이 본 놈 같지 않아? 내가 곰곰이 생각해 보고 묻는 말인데, 쟤 네 친동생 맞지? 아니야? 그럼 별 볼 일 없는 놈 같은데, 그냥 바로 죽여 버려도 돼?”

“아아아악! 제발! 제발... 죽이지 마시오... 흐으윽... 제발, 내 동생은 살려 주시오! 제발, 처남! 이미 나한테... 충분히 분풀이를 하지 않으셨소? 제발! 흐흑... 피붙이들은 살려 주시오...”

“웃기고 있네, 이 병신. 동생은 무슨. 야, 너희 집구석 것들 싹 다 태워 버릴 거야. 좆만 한 네놈 성이랑 같이. 너희 가문은 멸족이야. 네놈 작위와 영지는 이미 넘겨 줄 놈 정해 뒀어. 나중에 상속 분쟁을 일으킬 만한, 쥐똥만큼의 가능성이라도 있는, 놈들은 전부 죽여 버릴 거야.”

“으아아악! 이 악마야! 이 억.”

“닥쳐, 이 돼지 새끼야.”


어디선가 튀어 나온 쇳덩어리가 영예로운 어네스퍼드 백작의 주둥이에 쑤셔 박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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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3 신념을 가진 미친놈 (6) 23.12.09 37 1 9쪽
122 신념을 가진 미친놈 (5) 23.12.07 36 1 9쪽
121 신념을 가진 미친놈 (4) 23.12.05 39 1 10쪽
120 신념을 가진 미친놈 (3) 23.12.03 40 1 9쪽
119 신념을 가진 미친놈 (2) 23.12.01 36 1 10쪽
118 신념을 가진 미친놈 (1) 23.11.30 46 2 11쪽
» 마왕의 길 (18) 23.11.28 4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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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5 [수정] 마왕의 길 (16) 23.11.23 42 2 10쪽
114 마왕의 길 (15) 23.11.21 39 1 10쪽
113 마왕의 길 (14) 23.11.19 44 2 10쪽
112 마왕의 길 (13) 23.11.16 45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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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0 마왕의 길 (11) 23.11.12 49 2 10쪽
109 마왕의 길 (10) 23.11.10 51 2 10쪽
108 마왕의 길 (9) 23.11.08 54 2 11쪽
107 마왕의 길 (8) 23.11.06 52 2 11쪽
106 마왕의 길 (7) 23.11.04 49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52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53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53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52 2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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