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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웹소설 > 일반연재 > 퓨전

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최근연재일 :
2024.05.22 00:53
연재수 :
20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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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9
글자수 :
865,661

작성
23.11.08 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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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마왕의 길 (9)

DUMMY

107화


“네놈 말이 맞구나. 우리 뒤에 있는 놈이 험프리는 아닌 것 같다. 그러면 셋이 남는데...”

“셋은 뭔 셋이야! 조건에 맞는 놈이 한 놈밖에 안 남잖아! 그 사생아 새끼 말고 또 누가 있어! 노인네들 더럽게 조심스럽네.”

“그렇기는 한데... 그래도 확실하게 조사를 좀 더 해 보고...”

“아오, 됐어! 내가 직접 방문해서 손가락 몇 개 뒤로 꺾어 버릴 거야. 제까짓 게 독해 봤자 발가락까지 가기 전에 끝나.”

“아니면 어쩌려고! 측실 소생이기는 해도, 왕가의 혈통을 이어받은 자다. 거기에다 세력도 만만치 않게 형성한 자인데, 사전에 확인도 없이 쳐들어갈 생각부터 하는 거냐? 다짜고짜 찾아가서 손발을 분지르겠다니, 너 정말 이럴 거냐!”

“아오, 영감탱이야. 마음에도 없는 소리 좀 하지 마라. 그 늙은 새끼가 누구 피를 이어받았는데? 당신들의 철천지원수 제프리가 싸지른 놈이잖아. 당장 달려가서 쳐 죽이길 바라고 있으면서, 아닌 척하기는. 그런데 제프리 그놈이 귀여운 구석이 있네. 제 놈이 싸지른 사생아에게 무려 정보 길드를 선물로 줬다는 거잖아. 그 사생아 놈을 엄청 예뻐했나 봐.”

“많이 아끼기는 했던 것 같다. 백작위도 수여하고, 앨버퍼드 백작의 외동딸과 혼인까지 시켰으니. 그 바람에 변경에 자리 잡은 가문들을 제외하면, 독보적인 대지주가 되기는 했지.”

“영감들... 화가 많이 났겠어. 뒤에 있는 놈이 왕인 줄 알았더니, 고작 사생아 따위라니. 왜 그렇게 면상들이 찌그러져 있나 했더니, 짜증 났던 거구나?”

“아니다... 이놈아...”

“맞네, 맞아. 아! 콜린 영감, 밥상 위에 보석함 보이지? 안에 영감 주려고 선물 넣어 놨어. 내가 이렇게 영감을 아껴.”

“뭔 선물... 네놈이 주는 선물이 멀쩡할 리가 있나... 자네가 열어 보게!”


멀찍이 떨어져 있던 전사 하나가 후다닥 뛰어와 보석함을 열었다.

그러고는 잠시 얼어붙어 버렸다.

잠깐의 시간이 지난 후, 깊은 한숨을 내쉰 중년의 용사가 선물을 조심스럽게 들어 올린 후 세 노인네에게 다가왔다.


“내 이럴 줄 알았다! 이게 뭐냐? 사람의 낯가죽 아니냐? 야, 이 미친놈아! 이게 무슨 선물이야!”

“내가 그걸 뜯어내느라고 얼마나 고생했는데! 나 비위 약한 거 몰라? 사람의 성의를 무시하다니! 그게 그냥 낯가죽인 줄 알아! 영감의 철천지원수 중 하나인 매니거드의 낯가죽이란 말야! 영감의 조부를 죽인 자일스 매니거드의 손주 놈 상판이라고! 내가 도대체 영감의 원수를 몇 번째 갚아 주고 있는 거야!”

“아...”

“생명력을 빨아 먹기 전에, 울면서 몸부림치는 놈의 면상을 생으로 잡아 뜯었다고! 낯가죽 벗기겠다고 먼저 죽여 버리면, 생명력을 뽑아 먹을 수가 없잖아. 그래서 턱뼈 옆으로 손가락을 집어넣고 조심조심 뜯어냈다고. 놈이 하도 울고불고 지랄을 해서 얼마나 힘들었는데. 가죽 안 찢어지게 조심한다고.”

“원수를 참으로 잔인하게 갚아 줘서 고맙다...”

“뭘! 그놈 할아비가 영감의 조부만 죽였나. 영감이 물려받을 작위까지 가로챘잖아. 비록 본인은 아니고, 손주 놈에게 대신 하긴 했지만. 어쨌든 난 동업자로서 해야 할 일을 한 거야. 너무 고마워할 필요 없어.”

“그... 고맙기는 한데... 이걸 가지고 뭐 하라고?”

“뭐 하기는! 영감네 조직에 솜씨 좋은 놈들 많을 거 아냐. 손질 잘해서 영감네 저택에 걸어 놔. 그러고는 후손들에게 큰소리치는 거야. ‘우리 가문을 건드리는 놈들은 죄다 이렇게 만들어라!’라고 말이야. 얼마나 위엄 있어 보이겠어.”

“내 말이 맞지? 정말 미친놈이지? 아직도 사위 삼고 싶어?”

“... 그럴 리가...”

“왜? 영감네 증손녀도 인물이 콜린 영감네 증손녀 정도 돼? 그래도 관둬. 내 옆에서 살면 맨정신으론 못 죽어."

“그럴 거 같구나...”

“경매는 애슈비 성에서 열까 생각 중이야. 클리퍼드까지 북상한 다음, 앨커스터를 통해서 베이퍼드로 넘어 갈 거야. 베이퍼드에서 북쪽으로 넘어 가면 바로 애슈비고 그 위에 있는 주들은 전부 북부 변경 주들이니까. 위치상 애슈비가 제일 적당할 거야. 애초에 북부 놈들에게 팔아먹으려고 떠올린 생각인데, 놈들이 편하게 올 수 있는 곳까지 가 줘야지.”

“그냥 거버스 공을 고통스럽게 만들고 싶어서는 아니고? 베이퍼드에 애슈비까지 박살 내는 것을 보여 준 후 죽이려는 것 아니냐? 하는 김에 몰번까지 다 부숴 버리지 그러느냐?”

“뭔 소리야? 애슈비 성은 왕실 소유잖아?”

“하아... 이놈이 우리가 기껏 고생해서 만들어 준 걸 읽어 보지도 않았구나.”

“읽었어. 뗏목 위에서 누워... 대충 읽다가 잤구나...”

“잘했다! 현재 애슈비 백작령과 성은 거버스 공의 소유다. 너희 가문을 토벌한 후 그 공으로 받은 것이지.”

“잠깐! 저 새끼가 가지고 있던 백작위가 두 개잖아? 거기에다 하나를 더 받았다고?”

“그렇다. 베이퍼드, 몰번 그리고 애슈비의 백작이 거버스 공의 현 직함이다.”

“역사상 브리갠트 왕국 내에서 백작위를 동시에 세 개 보유한 최초의 인물이 저 병신 새끼라고?”

“그렇다니까.”


갑자기 수납장에서 철퇴를 꺼낸 하지운이 물을 뚝뚝 흘리며 거버스에게 뛰어갔다.


“야, 이놈아! 뭐 하려고?”

“이 새끼 부랄이라도 으깨 놓으려고.”

“거, 거긴 또 왜?”

“브리즌의 생존자를 찾으면 왕국 역사상 백작위를 세 개나 거머쥔 최초의 인물로 만들어 주려고 했는데, 이 쓸모없는 돼지 새끼가 그새 그 타이틀을 가로챘잖아. 아오! 진짜 하나부터 열까지 마음에 드는 구석이라곤 쥐똥만큼도 없어! 이 늙은 돼지 새끼! 하아... 누굴 죽여 버리고, 백작령을 하나 더 쟁여 놓지? 현 앨커스터 백작이 험프리의 큰아들이지? 태자인지 뭔지 하는 애새끼.”

“그렇다...”

“어차피 험프리 죽여 버릴 때 싹 다 죽여 버릴 거니까, 앨커스터 백작위도 공석 확정이다. 영감들, 브리즌의 피붙이들 열심히 찾고 있는 거 맞지? 나 실망시키지 마! 재미없을 거야.”

“죽을힘을 다해 찾고 있다! 무서우니까 겁 좀 주지 마라!”

“이건 내 체면이 걸린 문제야. 은혜도 원수도 그 누구보다도 더 화려하게 갚아 주는 것! 그것이 내 신념이야. 시키지도 않았는데 의리를 지킨 놈들은 유사 이래 최고의 부자로 만들어 줄 거야. 대신 원수 놈들은 사서에 이름만 남기게 해 줄 거야. 많은 세월이 흐른 후, 후손들은 말하겠지. ‘옛날에 돼지 새끼란 놈이 살았는데, 어느 날 흔적도 없이 사라져 버렸지 뭐야. 시신의 살점 하나도 찾을 수가 없었어. 심지어 가족들까지 모두 한꺼번에 사라져 버렸지. 그냥 그런 일이 있었다고. 사실 몰라도 되는 내용이야, 시험에 안 나오니까.’라고 말이야.”

“무슨 소리인지 완벽하게 알아듣지는 못했지만, 일단 명단 속에 있는 자들은 전부 몰살시키겠다는 것 아니냐? 제발, 그들의 피붙이들은 좀 봐 가면서 죽여라. 다 죽이지 말고.”

“웃기고 있네. 우리 집안도 몰살당했는데, 걔네는 왜 골라서 죽여야 하는데? 헛소리하지 마. 싹 다 죽일 거야. 난 공평한 게 좋아.”

“하아... 네 마음대로 해라! 난 모르겠다.”

“경매에 관심 있는 놈들은 미리 애슈비주 근방에 졸개들 깔아 두라고 해. 그러다가 내가 애슈비 성으로 접근하거든, 다 몰려나오라고 전해 둬. 기다려 주면서 시간 낭비할 생각 없으니까, 빠릿빠릿하게 움직이라고 당부해 둬.”

“전리품을 가지고 경매했다는 기록은 본 적 있지만, 포로의 신체를 부위별로 잘라서 경매에 붙였다는 얘기는 듣도 보도 못했다. 정말 그런 쪽으로는 창의성이 대단하구나. 항상 머릿속에 그런 생각뿐이냐?”

“늘 그러는 건 아니지만, 가끔 그러기는 해. 사실 정말 창의적인 생각들은 입 밖으로 꺼내 본 적도 없어. 들으면 영감도 깜짝 놀랄걸. 하나 들려줄까?”

“제발... 말하지 마라. 죽는 그 순간까지도 모르고 싶다.”


이튿날부터 고난의 행군이 시작되었다.

물론 그 고난은 온전히 대니얼과 거버스에게 집중되었다.


콘체스터종 명마 여덟 필이 끄는 괴이한 형태의 마차 한 대가 서부 변경 지대를 거침없이 북상하였다.

지위 고하,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마주치는 주민 모두에게 죽을 때까지 잊지 못할 진귀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한 달 전부터 이 마차를 제작해 온 정보 길드 소속의 장인들은, 도대체 이 괴상한 물건을 자신들이 왜 만들고 있는지, 갈피를 잡질 못했다.


마차의 가장 앞부분은 평범하게 마부석이 위치하고 있었다.

그런데 바로 그 뒷부분부터 이상했다.

원목으로 만든 거대한 의자가 설치되어 있는데, 그 위로 그늘막이 쳐져 있었다.

그런데 그 의자의 사이즈가 상식을 초월했다.


할링튼에서, 미오가 대령한 의자 때문에, 고생한 전적이 있던 하지운이 팔걸이가 없는 굉장한 사이즈의 의자를 주문했기 때문이다.

그래도 거기까지는 봐 줄 만했다.


그 뒷부분은 목불인견이었다.

통나무를 깎아서 만든, 성인 남성 다리통만 한 굵기의, 말뚝 두 개가 거꾸로 세워진 채 고정되어 있었다.

그 말뚝 바로 뒤에는 쇠기둥이 하나씩 설치되어 있는데, 거기에 사람이 각각 한 명씩 매달려 있었다.


대충 봐도 마차의 하중이 엄청 나가게 생겼다.

정보 길드에서도 제작 당시, 마차의 내구성에 극도로 집중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결국 바닥 프레임부터 마차 바퀴까지 전부 쇠로 만들어 버렸다.

무게가 감당이 안 되는 흉물이 나와 버린 것이다.

그러다 보니 값비싼 콘체스터종 말이 여덟 필이나 동원된 것이다.


물론 승차감은 개쓰레기였다.

아직 서스펜션이란 개념 자체가 잡히지 않은데다가 워낙 내구성에 집중하다 보니, 승차감 따위를 그다지 신경 쓸 수가 없었던 것이다.


애초에 이곳에 와서 말도 잘 타지 않던 하지운이다.

항상 걷거나 뛰었고, 그러던 도중에도, 수시로 섀도복싱을 하면서 격투가로서의 소양을 키워 왔다.

강해지고 싶은 욕구가 충만했던 하지운이 말 타고 편하게 움직이는 선택을 할 리가 없었던 것이다.


당연히 마차도 타지 않았다.

말을 쉬게 할 때만 자신의 전용 의자에 앉아 휴식을 취할 뿐이었다.


중년의 마부야 워낙 마차 모는데 이골이 난 베테랑이어서 그런지,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었다.

단지, 의자 대신 거꾸로 세워진 말뚝 위에 앉은 채로, 비포장도로 위를 달리는 두 백작만이 지옥의 문턱에서 방황하고 있을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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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1 마왕의 길 (12) 23.11.15 45 1 10쪽
110 마왕의 길 (11) 23.11.12 44 2 10쪽
109 마왕의 길 (10) 23.11.10 46 2 10쪽
» 마왕의 길 (9) 23.11.08 50 2 11쪽
107 마왕의 길 (8) 23.11.06 47 2 11쪽
106 마왕의 길 (7) 23.11.04 45 2 10쪽
105 마왕의 길 (6) 23.11.01 47 2 9쪽
104 마왕의 길 (5) 23.10.31 49 2 10쪽
103 마왕의 길 (4) 23.10.27 48 2 10쪽
102 마왕의 길 (3) 23.10.25 48 2 9쪽
101 마왕의 길 (2) 23.10.24 54 2 10쪽
100 마왕의 길 (1) 23.10.21 53 3 9쪽
99 정진 (12) 23.10.19 48 2 10쪽
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97 정진 (10) 23.10.15 55 3 10쪽
96 정진 (9) 23.10.12 53 3 9쪽
95 정진 (8) 23.10.10 58 3 10쪽
94 정진 (7) +3 23.10.08 62 3 9쪽
93 정진 (6) 23.10.06 57 4 9쪽
92 정진 (5) 23.10.04 57 3 9쪽
91 정진 (4) 23.10.02 57 4 10쪽
90 정진 (3) 23.10.01 62 3 9쪽
89 정진 (2) 23.09.29 62 3 9쪽
88 정진 (1) 23.09.27 70 3 9쪽
87 인연 (14) 23.09.25 69 3 10쪽
86 인연 (13) 23.09.23 73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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