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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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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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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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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9.20 0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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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인연 (11)

DUMMY

83화


“각하, 윗선에서 이미 예전에 검토 지시가 내려온 사항이옵니다. 그리고 이건... 오로지 제 좁은 사견이오나, 왕성에서 각하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기획한, 기만술일 수도 있사옵니다.”

“험프리 그놈이? 퍽이나 그랬겠다. 놈이 나를 제거하려 한 이유가 무엇인지 모르나? 놈은 제 머리통 위에 무언가를 올려 두는 걸, 잠시도 견딜 수가 없는 종자다. 일을 꾸밀 때도 마찬가지다. 자네 생각대로라면 험프리 옆에, 그놈과 다른 방식을 선호하는, 책사가 붙었다는 것 아닌가? 제 놈 스스로가 가장 영민하다 철석같이 믿고 있는 그놈이 아랫것들의 조언을 들을 성싶은가?”

“......”

“하지만... 자네의 추측이 옳을 수도 있지. 그놈이 갑자기 철이 들었을 수도 있으니. 그런데 이런 질문하는 게 징그럽긴 하지만, 자네, 내가 마음에 드나? 왜 친절하게 사견을 덧붙이지?”

“또다시 목을 걸고 외람된 말씀을 올립니다. 대장간에서 보여 주신 각하의 언행과 틸다에게 베푸신 하해와 같은 은혜를 토대로, 이 천한 놈이 각하에 대한 인물평을 하였사옵니다. 죽여주시옵소서.”

“뭐라고 평가를 내렸기에 죽여 달라는 것인가?”

“악명에 비해, 굉장히 경우가 바른 보기 드문 기특한 청년이라 평하였나이다.”

“크흐흐흑... 칭찬... 감사하오, 노인장.”

“당장 제 목을 베시고 새로운 접선책을 요구하셔도, 조직에선 크게 개의치 않을 것이옵니다.”

“흐흑... 됐어. 기특한 내가 굳이 왜?”

“각하의 자비로우심에 탄복했나이다. 기왕 무례를 범한 김에 한번 더 목숨을 걸겠나이다. 각하, 거버스 공과의 일전은 조금 더 미루시는 것이 어떠실는지요?”

“왜? 너희가 분석하기에, 내가 밀리느냐?”

“물론이옵니다. 사실 탤머스까지 염두에 두고, 이미 토론을 해 보았나이다.”


‘이놈들 봐라.’


“결론이 어떻게 나오던가?”

“각하께서 불리하신 것으로 만장일치를 보았나이다.”


‘이 새끼들... 베팅 업체냐?’


“그런데... 내가 부리던 종놈들을 잡아다가, 나에 대해서 그렇게 열심히들 파악해 놓은 놈들이 말이다. 도대체, 저 총책 두 놈이 나를 칠 거라는 보고를, 언제 받은 것이냐? 일찍일찍 기어 나와서, 너희 아이들을 빼돌렸어야지! 시작부터 불편하게, 이게 뭔가? 네놈들이 정말 유능하긴 한 것이냐?”

“그 두 놈과 저희 아이들이 저지른 무례에 대해서는 정말 뭐라 드릴 말씀이 없사옵니다. 일단 백배사죄의 뜻으로, 정성을 다한 예물을 준비해 올리겠나이다. 그리고 사실 그 두 놈의 추태에 대해서는 이미 파악하고 있었나이다.”

“그런데?”

“루지먼트 가문과의 관계가 틀어지는 것이 두려워, 최대한 조심스럽게 일을 풀어 보려... 저희 나름 고심 중이었사온데...”

“아그네스와 총책 두 놈이 난데없이 일을 저질렀다?”

“사실이 그러하옵니다. 그나마 틸다가 목숨을 걸고 지부를 빠져나와, 뒤늦게라도 기별을 넣어서 망정이지. 하마터면 각하와 오해가 생긴 채로 길이 어긋날 뻔했사옵니다. 저희도 보고를 처음 접하고 귀를 의심했나이다. 다 늙은 놈들이 단체로 기함을 하고 세상을 뜰 뻔했나이다.”

“그래도 예물을 준비하겠다니, 경우가 바른 건 오히려 네놈들이구나. 그렇지! 먼저 습격을 해 놓고 말이야. 우리 아이들을 다 죽여서 너무하다느니, 도의적 책임을 져 달라느니, 하면서 징징거렸으면 얼마나 꼴 보기 싫었겠느냐? 너희들이 상식이 통하는 놈들이라 참으로 다행이다.”

“고작 예물 따위로 저희의 허물을 덮어 주시려는 각하야말로 불세출의 영걸이시옵니다.”

“그런 소리 마라, 이 여우 같은 놈아. 아까 죽인 그 아이들이 네놈들에게 어떤 의미인지, 네놈과의 대화를 통해 깨달아 버렸으니.”

“각하, 무슨 말씀이시온지... 저는 도통...”

“아까까지만 해도 말이다. 네놈들이 살수를 키워서, 용병 놈들의 사업까지 잠식하려나 싶었다. 그런데 내 착각이었구나. 네놈들... 자립하려는 것이지? 이번에 왕조가 바뀔 정도의 혼란스러운 상황을 만들어 놓고, 그 틈에 네놈들 뒤에 있는 놈을 제거하려는 것 아니냐? 그때 쓰려고 만든 칼을, 뽑기도 전에, 내가 부숴 버린 것 맞지?”

“하하, 무슨 그런 참담한 말씀을 하시옵니까? 저희는 그 정도로 간 큰 놈들이 아니옵니다. 그저 장사나 하면서 들은 풍월을 가지고, 푼돈이나 만지는 상것들에 불과하옵니다.”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경고 하나 하지. 나와 일을 하고 싶으면, 주둥이를 간단명료하게 놀려라. 분명히 말했다, 난 이곳에서 세력을 형성할 마음이 없다고. 그 말인즉슨 누가 죽든 살든 내 알 바 아니며, 누가 무슨 일을 도모하든 전혀 관심 없다는 것이다. 내 행보에 방해만 되지 않는다면 말이지.”

“......”

“나는 우리 가문의 몰락에 관여한 이천오백여 마리의 축생들을, 단 한 마리도 남기지 않고, 모조리 도축할 것이다. 물론 그것들의 가산도 남김없이 털어 버릴 작정이다. 네놈들이 그 명단 안에 있다면, 일족의 씨가 마를 것을 각오해야 할 것이다.”

“각하, 저희는 드레이시 가문의 참극에 맹세코 손톱만큼도 관여한 것이 없사옵니다.”

“네놈들같이 눈에 거슬리는 것들과 일을 하려는데, 내가 아무 사전 작업도 없이 덥석 손을 잡을 성싶으냐? 방금 네놈이 말한, 이번에 세상을 뜰 뻔했다는, 늙은이들의 본명을 읊어 보아라. 물론 네놈도 포함해서 말이다.”

“각하, 이 천한 놈의 이름은 콜린이라 하옵고.”

“그만! 말귀가 갑자기 어두워졌구나. 발밑에서 엿듣고 있는 아이들을 모조리 찢어 죽이고, 대화를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자꾸나. 잠시만 앉아서 기다리거라. 네놈의 손주 년은 팔다리만 잘라서 끌고 오마. 앞으로 같이 일할 예비 동업자인데, 손녀와 작별 인사 정도는 나누게 해 줘야지.”


하지운과 불충하기 짝이 없는 위험천만한 역적모의를 하면서도, 전혀 평정심을 잃지 않고 있던 대장장이 노인이었다.

내내 여유가 넘치던 그가 처음으로 다급한 기색을 내비치고 말았다.


노쇠한 몸을 급히 일으킨 대장장이가 테이블을 돌아, 하지운 쪽으로 다가왔다.

그러더니 두어 걸음 앞에서 무릎을 꿇고는, 고개를 바닥에 내리꽂았다.


“저것들에게 도망치지 말라 하여라. 외성에 죽치고 있는 형제들인지 나발인지 하는 것들을 모조리 죽여서, 그 시체로 성벽을 알록달록하게 수놓는 수가 있다.”

“각하... 부디 자비를... 저희가 큰 착각을 하였나이다.”

“사죄는 급한 것이 아니다. 일단 저 아이들부터 내 눈앞에 대령하라. 빠릿빠릿하게 움직여라! 내가 인내심이 대단하다고 소문이 났더냐?”

“잠시만 노여움을 거두어 주소서. 지체 없이 분부대로 거행하겠나이다, 각하.”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홀 안으로 전사 셋이 뛰어들었다.

그들은 잠시의 머뭇거림도 없이 종종걸음으로 다가와, 하지운의 발 앞으로 몸을 던졌다.


“너희가 이 애새끼들의 재주에 긍지가 상당했던 모양이구나. 감히 내 발밑으로 집어넣을 생각을 다 하고. 많이 당황했다. 난데없이 발밑이 소란스러워지는데,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 줘야 할지, 갈피를 잡을 수가 없더구나.”

“송구하옵니다. 변명도 떠오르지 않사옵니다. 그저 이 늙은이의 목 하나로 노여움을...”


그 순간 하지운의 발 앞에 고개를 처박고 있던 여인이 다급히 고개를 들어, 눈물의 열변을 토하였다.


“각하! 결단코 제 증조부가 명한 것이 아니옵니다! 저희가 노심초사하여 판단을 그르쳤사옵니다! 그래서 증조부의 명을 어기고... 지하로 기어든 것이옵니다! 이 천한 것들이... 하찮은 잔재주를 믿고, 감히 각하를 기만하는 만용을 부렸나이다! 제발... 이 미련한 것들에게 한 번만 자비를...”

“아아, 증손녀였어. 그렇게 증조부가 걱정이 되면, 더 신중하게 움직였어야지. 왜? 내가 다짜고짜 버럭버럭하면서 저 영감 목이라도 딸 줄 알았어?”

“......”


‘이 기집애가... 정말 그렇게 생각했구나... 로저 이 씨발새끼... 이미지가 아주...’


“잘되었다! 영감, 살날도 얼마 남지 않았는데, 증손녀가 영감보다 먼저 목이 잘리는 걸 보고 싶지는 않겠지? 네놈들 이름! 빠짐없이 다 읊어라. 지어낼 생각하지 마라. 차후에 거짓으로 드러나면, 내 수많은 별명들이 왜 죄다 그 모양 그 꼴인지, 몸소 실감하게 될 것이다.”


로저의 별명 중 가장 인기 있는 것 세 가지가 살육의 제왕, 연쇄 학살마 그리고 숲속의 마왕이다.

타인을 불안하고 초조하게 만듦에 있어, 결코 부족함이 없는 애칭들이다.


하지운이 자리에서 일어나, 홀 한 편에 있던 벽난로 앞으로 향했다.

한여름이라 해도 돌로 만든 성안이라, 새벽이 되니 살짝 썰렁한 기운이 돌았다.

그래서 바닥에 엎드려 있는 가여운 천것들에게 따뜻한 온기를 나누어 주기로 마음먹었다.


하지운의 손에서 자신의 몸뚱어리만 한 불덩어리가 솟아올랐다.

그 불덩어리로 단숨에 한 무더기의 장작들을 반쯤 태워 버렸다.

싹 다 타 버릴까 봐, 태연한 표정으로 다급하게 마력을 끊어 버렸다.


“네놈들이 착각하고 있는 것이 한두 가지가 아니다. 그 무엇보다, 나에게는 남는 것이 시간이라는 것이다. 급할 게 아무것도 없어. 그냥 이놈 저놈 찾아다니면서 다 죽여 버리면 그만이고, 그 와중에 돈 될 만한 것들은 죄다 쓸어 담으면 그만이지. 이 왕국을 거지 소굴로 몰락시켜 버리는 것도, 내 입장에선 그다지 고된 일이 아닐 것 같다는 얘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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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6 마왕의 길 (17) 23.11.25 39 1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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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97 정진 (10) 23.10.15 55 3 10쪽
96 정진 (9) 23.10.12 53 3 9쪽
95 정진 (8) 23.10.10 5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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