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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님의 서재입니다.

죽은 줄 알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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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고길동
작품등록일 :
2023.06.10 19: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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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06.04 1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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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895,318

작성
23.10.15 17: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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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
10쪽

정진 (10)

DUMMY

96화


너무 놀라서 간덩이가 콩알만 해진 하지운이 또다시 정성을 다해 버렸다.

기함을 할 정도로 놀라 버린 나머지, 차분한 사고를 하는 것이 귀찮아져 버린 것이다.


잘 보이던 하지운이 갑자기 흐릿해지고 울렁거리기 시작했다.

또다시 뭔 개같은 짓을 하려는 하지운을 보며, 다들 무기를 꽉 쥐고 달려들려는 순간이었다.


하지운과 용사들 사이의 공간을 수만 개의 물방울들이 순식간에 채워 버렸다.

투명하게 빛나는 알갱이들을 보고 크게 놀란 용사들이, 검을 비스듬하게 세워 자신들의 상체를 가린 채, 물방울들을 뚫어지게 노려보았다.


“어, 저거 돌고 있는 거 아냐?”


맞다.

돌고 있다.

자신의 노력을 알아주는 용사들에게 하지운의 정성이 가득 담긴 선물이 뿌려졌다.

사람이 뭔가 애를 쓰고 있어도 알아주는 이가 없으면, 그것만큼 허무한 일도 없다.

그들의 눈썰미가 기특해서라도 하지운은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으려 최선을 다했다.


고속으로 회전하던 수만 개의 물방울들이 동시에 튀어 나갔다.

용사들에게 용건이 많았던 하지운은 그들의 하반신만 조지기 위해, 물방울을 낮게 깔아서 뿌렸다.

용사들이 눈 한 번 깜빡이는 동안, 허공에 투명한 수만 개의 좁은 통로가 만들어졌다가 사라졌다.


탁월한 전사들이 무슨 반응조차 하기 힘들 정도의 속도와 물량이었다.

콩알만 한 투명한 방울들이 공기가 찢겨 나가는 듯한 소음을 내며 눈에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지나가 버렸다.

피하고, 막고 어쩌고 하는 시도 자체를 할 수가 없었다.


물론 잽싸게 허공으로 뛰어 올랐다면, 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문제는 생각이라는 것을 하기도 전에, 이미 지나가 버렸다는 것이다.


또다시 하지운만이 홀로 고독하게 두 다리를 꼿꼿이 펴고 서 있는 중이다.

하지운을 제외하고, 이 숲속에서 사람의 형상을 한 이들 중에 온전히 땅을 딛고 있는 자는 단 한 명도 없는 상태다.


한 순간에 왕실 근위대 전력의 절반 가까이가 지워졌다.

나머지 절반은 왕성을 지키고 있으니, 사실 여유 되는 놈은 거의 다 이곳에 와 있는 셈이다.

방금 전 하지운이 성의 있게 펼친 마법질 한 방에, 험프리의 운신의 폭이 압착기에 눌리듯 좁혀져 버린 것이다.


천지를 진동케 하는 비명의 홍수 속에서도, 강철 같은 신념과 의기로 무장한, 하지운은 일절 괘념치 않은 표정으로 자기 할 일만 묵묵히 하였다.

당장 죽으면 안 될 놈 순으로 응급 수술이 시작되었다.


네 명의 참가자들이 대성통곡을 하며 반만 남은 자신들의 몸뚱어리를 망연자실하게 내려다보는 중이었다.

감상 중인 그들에게 양해도 없이 절단면을 봉합해 버렸다.

출혈만 막아 버린 하지운이 사 인의 환자를, 머리통만 남기고 김장독 묻듯이, 땅속에 묻은 후 즉시 다음 환자에게로 향했다.


죽음을 코앞에 둔 환자를 살려 냈지만, 돌아오는 건 발광에 가까운 저주의 악다구니뿐이었다.

충분히 상처받을 수 있는 상황이었지만, 하지운은 어떠한 동요도 보이지 않고 오로지 사람을 살리는 일에만 전심전력을 다했다.


로저의 매제에게로 향한 하지운은 놈의 상처를 치료하기 전에, 우선 놈의 양팔을 밟아 버렸다.

한 놈에게 치료 마법을 두 번 쓰기 귀찮아서 사전에 부숴 버린 것이다.


유서 깊은 백작 가문의 계승자인 대니얼 경은 이 자리에서 쉽게 죽일 인물이 아니다.

한참을 끌고 다니면서 고문의 오마카세를 맛 보여 줄 귀한 손님이시다.

그래서 끌고 다니기 편하도록 미리 적합한 형태로 만든 것이다.


그래 놓고 금세 대니얼 경의 모든 상처를 치료한 하지운은 사전에 묻어 둔 김칫독들 옆으로 그를 대충 집어던졌다.


대니얼 경이 흙바닥에 처박히려는 찰나, 갑자기 바닥이 푹 꺼지더니, 지체 높은 대귀족께서 파묻히기 딱 좋을 만큼의 아늑한 구덩이가 만들어졌다.

그러고는 고귀한 신사분께서 구덩이 속에 널브러지기가 무섭게, 주위의 흙덩이들이 그 위를 봉분처럼 뒤덮어 버렸다.


잠시 흙바닥이 물결처럼 울렁거린 후, 대니얼 경의 머리통만 바닥 위로 솟아올랐다.

고작 이삼 분 정도의 생매장이었음에도, 백작 각하의 몰골은 차마 말로 표현하기 힘들 정도였다.

흙 범벅이 된 얼굴로 숨을 몰아쉬기 위해 전력으로 발광을 하는데, 그 모습을 옆에서 지켜보는 사람들도 덩달아 미쳐 버리게 하는 모습이었다.


순간 대니얼 경의 면상에 물벼락이 끼얹어졌다.

잠시 세안의 시간을 가진 후, 젊은 백작은 기존의 인간으로서의 존엄을 버리고, 또 한 그루의 공포에 짓눌린 식물로 거듭나 버렸다.

대니얼 경께서는 기왕 새로 태어나시는 김에, 오만하고 위풍당당했던 태도 따위는 대부분 땅속에 고이 묻어 두고 오신 모양이었다.


대니얼 경에게 행해진 끔찍한 가혹 행위가 오직 이 젊은 대귀족에게만 심적인 영향을 끼친 것은 결코 아니었다.

코앞에서 이 살벌한 참사를 직관한 사 인의 참가자들도 눈알이 풀린 채 실어증 증상을 보이고 있는 것은 대니얼과 매한가지였다.


단숨에 환자들의 진정과 치료 행위를 완수한 하지운이 양 손등을 들어 올린 채 남은 전사들에게로 다가섰다.

나머지는 굳이 귀찮게 살려 둘 가치를 못 느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 있는 놈들 대부분이, 하지운이 이 세계로 넘어온 그날 밤, 드레이시 가문의 땅에서 깽판을 친 전적이 있긴 하다.

그렇다고는 해도 하지운 자신이 진짜 로저도 아닌데, 이놈들을 전부 고문까지 해 줄 정도로 의욕이 넘치는 건 아니었다.


백삼십이 넘는 인원을 전부 도매금으로 처분하기로 결정한 하지운이 마흔 명씩 기력 흡수를 시작했다.

한 번에 다 빨아 먹는 것이 불가능한 것도 아니지만, 하지운은 항상 체할 가능성도 염두에 두고 자중하려 애썼다.

아니, 그렇게 애쓰도록 어느새 훈련이 잘 되어 가고 있는 중이다.


지금 하지운에게 다짜고짜 기력을 빨리고 있는 이들 중에는, 왕실 무관장부터 시작해서 별의별 놈들이 다 섞여 있다.

당연히 정보 길드에서 이놈들의 신상 정보에 대한 자세한 보고서를 작성해서 보내 왔다.


물론 하지운은 귀찮아서, 대충 도덕책 읽듯이 훑어봤다.

대략 삼분의 일 정도는 가담 정도가 경미하니, 죽이진 말고 포로로 잡아서, 몸값을 받거나 회유를 시도해 보기를 적극 권장하고 있는 내용이었다.


전혀 흥미가 당기는 내용이 없어, 이들은 지금 죄다 급속도로 쪼그라들고 있는 중이다.

그 어떤 분노와 저주의 메시지도 하지운을 주춤거리게 할 수 없었고, 그 어떤 간절한 애원도 무자비한 소시오패스에게 감흥을 주지 못했다.


이 분도 안 지나서 또다시 숲은 적막의 늪 속으로 급격하게 빠져들었다.

어차피 바람 불면 다 흩어져 버릴 찌꺼기만 남기고, 무려 백삼십오 인의 전사들이 증발해 버렸다.


심드렁한 표정으로 돌아서는 하지운을 바라보며, 아직 죽지 않은 자들의 입에서 앓는 소리가 흘러 나왔다.


“로저 드레이시, 이 저주받을 악마야! 네놈이 기어코 마왕이 되었구나! 별명만으로는 만족할 수가 없었던 모양이구나! 정말 네놈에게 잘 어울리는 꼴이다!”


기껏 살려 놨더니, 그새 기운을 차리고, 주둥이를 함부로 놀리고 있는 젊은 백작이었다.


놈의 패기에 감탄한 하지운이 그의 머리통 앞에 쭈그리고 앉아, 바닥에서 한 움큼 집어 올린 흙을 그의 양 눈알에 뿌렸다.

그러고는 고통스럽게 눈을 껌뻑이는 젊은 용사에게 포악하기 이를 데 없는 협박을 늘어놓았다.


“대니얼, 이 하찮은 버러지야. 평소에는 눈도 제대로 못 마주치던 놈이 팔다리 좀 잘렸다고 뵈는 게 없어진 것이냐? 네가 뭔가 착각하고 있나 본데, 넌 아직 성기가 달려 있다. 내가 그걸 가지고 뭘 할 줄 알고, 이리 용맹을 과시하는 것이냐? 자꾸 함부로 까불면, 내년 이맘때까지 너를 들고 다닐 수도 있느니라. 어떠냐? 상상해 보니 짜릿하냐?”


과연 사람 죽이는 실력 못지않게 겁주는 실력도 일품인 손위 처남이다.

죽기 전에라도 한번 제대로 된 남자의 결기를 보이고 싶었던 한 젊은이의 염통이 순식간에 쪼그라들어 버렸다.


“매제, 예쁘장한 생식기에 화환을 걸고 왕국을 한 바퀴 돌고 싶지 않으면, 주둥이 함부로 놀리지 말고, 묻는 말에 대답이나 잘해. 내 여동생 어떻게 했냐고? 마지막으로 묻는 거야.”

“그래, 죽였다! 죽였어! 내가 그년을 죽였다! 크하하하하! 그래서 어쩔 거냐? 네가 날 가지고 화풀이를 한다고, 네 여동생이 살아 돌아오기라도 한다더냐? 속이 다 후련하다! 거만한 네놈 집구석 종자들이 다 죽어 버려서 얼마나 기쁘던지! 네놈까지 내 손으로 마저 죽였다면, 더 이상 바랄 것이 없었을 텐데!”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걔가 살아 돌아오면 절대로 안 되지! 무슨 그런 당황스런 소릴 하고 있어. 나도 쟤들처럼 되지도 않는 가족 연기를 하라고? 내가 그 짓 안 해서 얼마나 편하고 좋았는데, 무슨 그런 끔찍한 소리를 하고 있어. 아니지! 가족 코스프레면 양호한 건가? 생각해 보니까... 걔도 참가자 신분으로 부활했으면 더 끔찍할 뻔했네.”


작가의말

 몸살 증상은 여전해도 두통은 많이 좋아졌습니다.

 그래서 누운 채로 어떻게 꾸역꾸역 마무리 했습니다.

 제발 이 증상이 일주일은 안 넘겼으면 좋겠네요.

 아파서 누워있어도 마음이 편하지가 않으니까 가시방석이 따로 없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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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정진 (12) 23.10.19 49 2 10쪽
98 정진 (11) 23.10.18 49 2 9쪽
» 정진 (10) 23.10.15 56 3 10쪽
96 정진 (9) 23.10.12 53 3 9쪽
95 정진 (8) 23.10.10 58 3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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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3 정진 (6) 23.10.06 57 4 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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