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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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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3 0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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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03화. 창고 정리!

DUMMY

토요일. 입학하고 처음 맞는 휴일이다. 중학교 때였으면 평범하게 컴퓨터를 하거나, 느긋하게 늦잠을 자거나 하겠지. 머리도 안 감고, 설령 밖에 나간다 해도 모자 하나 걸치고 설렁설렁 애들하고 돌아다녔겠지. 하지만! 지금은 다르다. 난 고등학생이니까! 그런 나태하고 게으른 모습은 보일 수 없지!

……차라리 그런 긍정적인 내용이었으면 좋겠다, 나도.


집 없는 학생의 하루는 오늘 아침에도 서럽습니다.


아침은 대충 찜질방에서 파는 라면으로 떼웠다. 아침부터 라면이라니, 이 얼마나 훌륭한가! ……개뿔. 며칠 째 라면만 먹어서 질리려고 한다. 그나마 다른 종류 라면을 먹어서 다행이지. 목욕재계까지는 아니지만 아침부터 뜨거운 탕에 몸을 담그고 잠시 휴식을 취한 뒤 나왔다. 찜질방에서 숙식을 해결하니 이 점 하나는 좋다. 몸에 피로가 쌓일 일이 없네. 맘껏 찜질방의 혜택을 누리고 옷을 차려 입고는 드디어 지긋지긋한 찜질방을 나섰다. 오늘은 그 날이다. 바로, 나의 터전을 내 손으로 만들기 위한 그 날. 굳이 일찍 안 일어나도 되는 토요일에 아침부터 이렇게 부산을 떠는 건 그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 걱정되는 점이 있다. 리유. 도와준다고, 오겠다고 했지만 어제 그런 일이 있어서. 점심시간 뒤로 학교에 가서도, 저녁시간에도, 야자 때에도 리유는 줄곧 풀죽은 모습 그대로였다. 단단히 무언가 마음에 상처가 되는 일을 건드린 것 같은데. 도통 뭔 지 모르겠단 말이지. 자기는 애들이랑 잘 못 어울리는데, 나는 여자애들하고 얘기하고 그러니까? 그럴 리가, 그 정도로 속 좁은 애는 아니라구. 천진난만한 아이 같아 보여도, 아무 생각도 없어 보여도 조금 얘기해보면 나름 다른 애들 배려도 해 주는 착한 아이인걸. 그럼…… 헉, 설마. 질투?! 그, 그러니까 리유가 날 좋아하는데, 다른 여자애들이랑 히히덕 대니까─

─가장 낮은 확률의 가설인 것 같다. 아니, 가설로서의 가치조차 없어. 애초에 말이 안 되잖아. 내가 무슨 잘난 게 있다고 만난 지 며칠도 안 됐는데 여자애가 나한테 반하겠어. 여자 한 명 제대로 만나본 적 없는 나입니다. 그런 게 가능할 리가 없지.


“어, 뭐, 뭐야.”

“……엄청 많이 기다렸잖아. 바보.”

어쨌든 내 망상의 종착점은 그거다. 리유가 오냐 안 오냐. 사실 리유의 노동력 자체는 별로 기대할 게 못 된다. 덩치도 쬐그맣고, 팔도 엄청 가느다란 여자애에게 무슨 노동력을 기대하겠어. 그래도 도와주겠다는 그 마음이 기특하고 고마워서, 같이 말동무라도 해 준다면 참 좋을 것 같았다. 적어도 혼자 모든 걸 한다는 고독감에선 벗어날 수 있을 테니까. 하지만 어제 그 반응을 생각하면 역시, 안 오겠지 라고 생각하며 찜질방을 나오는데─ 높은 톤의 볼멘소리가 들린다. 그리고 놀란 표정이 된 나. 리유다. 찜질방 앞 돌담장에 기대서 바닥을 보다 나오는 나를 보고 아니꼬운 표정으로 말한다. 뭐야, 뭐? 여긴 어떻게 알고?! 혹시 도청장치라도? 아니, 위치 추적 장치?

“어떻게 알고 왔어?”

“저번에 얘기할 때 알려줬잖아. 이 찜질방에서 자고 있다구.”

“그, 그래도…… 흐헿, 용케 나와 줬네. 고마워.”

“왜, 안 나올 줄 알았어? 흥, 리유는 약속한 건 꼭 지키네요!”

“알았어, 고마워. 오늘 옷 귀엽네?”

“히히힛.”

그러고 보니 점심때였나, 얘기한 적이 있는 것도 같다. 리유는 노란색 티셔츠에 갈색 짧은 면바지를 입고 왔다. 핫팬츠? 꼭 어린애가 핫팬츠 입은 것 같아서 보기 굉장히 멋쩍지만 귀엽긴 귀엽다. 아, 참고로 난 무슨 단벌 신사도 아니고, 불편하게 교복을 입고 있다. 휴일인데도! 사실 지금 가지고 있는 옷이 교복 두 벌 뿐이기에, 어쩔 수 없다. 리유는 생각한대로, 귀엽다고 칭찬해주니 배시시 웃으며 좋아한다. 참, 알기 쉬워서 좋다니까. 기분 내키는 대로 머리까지 쓰다듬어주니 더욱 좋아한다. 그래도 그걸 기억해줘서 기다려주다니. 거듭 고맙다고 하니 리유는 ‘얼마나 기다린 줄 알아~ 추웠다구~’ 하면서 특유의 땍땍거리는 높은 톤의 목소리로 말한다. 하지만 기분 좋게 웃는 모습을 보면 기다린 걸 자랑하고 싶은 어린아이 같다. 같이 학교까지 걸어간다.

“그것은 운명의 데스티니. 서쪽에서 불어오는 바람의 윈드를 맞으며……”

“응? 무슨 말 하는거야?”

“아아, 아니야. 그냥 다짐 같은 거지. 후흡! 이제 시작하는구나.”

“웅. 뭔가 두근두근 한데.”

기숙사 앞. 나는 기묘한 주문을 읊으며 혼잣말했다. 뭔가 비장한 기분마저 든다. 저 기숙사 안, 내 방이 될 마굴. 이제 퇴치해주마! 정화시켜주마! 나와 리유가 순식간에 해체해주마! 호기롭게 기숙사 문을 열고 들어갔다.

‘철컥철컥.’

“뭐, 뭐야.”

“에에. 잠겨 있는데?”

“그, 그러게.”

첫 항해부터 폭풍이 몰아쳐 철수해야 할 것 같은 느낌. 호기롭게 기숙사로 들어갔지만 방문은 굳게 잠겨 있다. 학교까지 걸어오며 오늘 치울 것들과 할 일을 당당하게 리유에게 말했던 나는 굉장히 당황하게 됐다. 어, 어쩌지. 열쇠라면 당연히 사감 선생님이 가지고 계실 텐데. 휴대폰 번호도 모르고, 어디 계신지도… 아니, 어디 계신 지는 확실히 알고 어디보다 가깝다. 이 창고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입구 쪽에 있는 ‘사감실’ 에 계실 테니까. 하지만 문을 두드리기엔… 조금 망설여진다.

“아무래도 선생님한테 가 봐야 할 것 같은데.”

“선생님? 누구?”

“사감 선생님. 2학년 선생님이라 아마 모를 거야.”

“……나 그 선생님 무서워.”

“응? 알아?”

“안경 쓰고 키 큰 여자 선생님 아니야? 언니들 혼내는 거 봤는데 무서워.”

“그래.”

쿨한 성격의 사감 선생님이 혼내기도 하는구나. 상상해보니 무섭다. 그 냉소적인 말투로 어떻게 학생들을 구워삶아 혼낼까. 아니, 정공법으로 빡 소리치며 그 학생이 잘못한 걸 말해버려도 굉장한 효과일 것 같다. 어찌됐든 굉장히 위압감 넘치는 선생님이시니까. 나는 괜히 열리지도 않는 문을 철컥거리며 망설였다. 어찌됐든 선생님을 불러야할 것 같은데. 이거 덜그럭거리고 있으면 문 오래된 거라 부서져서 열리지 않을까? 아, 그러면 그것도 그것대로 문제일 것 같은데.

“아응…… 뭐야 아침부터 시끄럽게. 꼬꼬마네.”

“아, 선생ㄴ─ 으아아아악!”

졸린 듯 낮고 잠긴 목소리의 사감 선생님 목소리가 들린다. 문이 열리고, 말한 것보다 조금 늦게 등장하는 선생님. 나는 마침 잘 됐다는 투로 말하다 나도 모르게 비명을 지르고 말았다. 그게 그럴만한 게! 복장이 너무 파격적이라!!

사감 선생님은 아주 얇은데다 꽉꽉 째는 검은 티셔츠를 입고 있다. 가뜩이나 가슴 사이즈가 특대인데 몸에 안 맞는 작은 옷까지 입으니 가슴이 더욱 도드라져 보인다. 거기다 그렇게나 꽉꽉 조이는 옷인데 어떤 속옷의 자국이나 느낌도 하나 없는 걸 보니, 게다가 특정 부위가 묘하게 도드라진 걸 보니…… 노브라! 으아아! 거기다 바지도 거의 팬티나 다름없을 정도로 짧은, 짧다기보다 거의 허벅지 위까지밖에 가리지 않는, 거기다 마찬가지로 정말 꽉꽉 조여 주는 핫팬츠를 입고 계신다. 아무리 요새 핫팬츠가 유행이라지만 ─요새랄 것도 없고 몇 년 전부터 계속 그런 상태지만 우리나라는─ 저건 너무하다 싶을 정도로 짧고 조인다. 무슨 코르셋도 아니고.

어쨌든 정말 어디 하나 눈 둘 데 없는 파격적인 차림이다. 특히 상체 쪽은…… 눈을 둘 곳이 없네. 옷이 사이즈가 작아서 째고 그런 건 둘째 치고, V넥도 아닌 평범한 옷인 것에 비해 너무 가슴 쪽이 많이 파였다. 쇄골은 물론 가슴골까지 적나라하게 보일 것 같다. 가슴을 엄청 강조한 옷이다. 서양이라면 저런 패션이 가능할까. 서양도 조금 간당간당할 것 같은데. 아니, 지금 동양 무시하세요?! 동양이 어때서! 저렇게 훌륭한 인재가 내 눈앞에 있는데! 다시는 동양을 무시하지 마라. ……뭐라는 거야! 저런 거(?) 함부로 보면 안 돼!

“헤에. 오늘도 에로 꼬꼬마네. 그렇게 좋아, 이거?”

“으아아아! 어딜 가리키는 거에요~!!”

“하하. 너 나름 순정파구나. 그럼 이렇게 하는 건.”

“으아아! 전 아무것도 못 봤어요!! 아무것도~!!”

“후후, 귀여워.”

선생님은 부스스한 머리에 게슴츠레한 눈을 하곤 나를 쳐다본다. 괜히 그윽하게 쳐다보는 게 더욱 야시시하게 느껴진다. 선생님은 희미하게 웃더니 더욱 나를 난감하게 할 모양으로 살짝 몸을 숙인다. 으아아! 나는 얼른 고개를 돌렸지만 2초 정도 늦은 걸 나도 알고 선생님도 안다. 저, 정말 코피 쏟아질 뻔 했다. 코가 먹먹한 느낌이 정말 난다. 휴우, 다행이다. 여기서 진짜 코피 나왔으면 선생님한테 무슨 놀림을 받았겠어.

고개를 돌리니 보이는 건 리유다. 리유는 나와 선생님을 동시에 보며 약간 서글픈 표정을 짓고 있다. 그러더니 시선을 내려 자기 가슴을 본다. 절벽 그 자체. 잘못을 지어 울상인 강아지처럼 나를 올려다보며 리유는 말한다.

“나로는 역시 역부족인거야?! 난 아직 성장기니까!”

“뭐가 역부족이야!! 그리고 넌 저만큼 될 리가 없잖아!!”

“에엑!! 왜 내 무한한 가능성을 무시해! 벼룩은 30cm까지 뛸 수 있었는데!”

“떡잎이 다르잖아, 떡잎이! 성장 한계치라는 게 있잖아!”

“네가 봤어! 봤냐구!! 우아아아앙!”

“어머, 이 꼬마애는 또 누구래. 꼬꼬마보다 더 꼬마인데.”

“으아앙!”

“어멋…… 후후, 얘는 진짜 귀엽네.”

무슨 개드립을 치는 거야, 이 여자애는! 게다가 나는 나도 모르게 진심으로 답변하고 말았다.

저 가슴은! 서구화된 미래 한국 사회! 이상향! 산업화! 그런 거고! 너는! 너 리유는! 산업화 된 지 60년이 지났는데도 그대로! 1차 산업! 농업사회 그 자체잖아! 이, 이런. 나도 모르게 농촌 비하 발언을 해 버렸네. 어쨌든! 가뜩이나 육류 섭취도 일본보다 30년 늦어서 작은(?) 우리나란데, 저 사감 선생님처럼 훌륭한 발전을 이룬 사람도 있는데 넌 뭐야! 자라나는 새 나라의 고등학생이! 아무리 자라도 저건 무리야! 라는 진심을 말해버리고 말았다.

여린 여고생의 가슴을 가진 리유는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서 슬피 울음을 터트리며 사감 선생님 품으로 달려가 포옥 안긴다. 어이어이, 방금 전에 그 선생님 무섭다며. 귀여운 걸 좋아하는 선생님으로썬 마다할 일이 아니다. 선생님 말대로 리유는 정말 귀여우니까. 가슴에 얼굴을 푸욱 파묻고 징징대는 리유가 살짝 부러운 건 왜일까. 리유가 머리가 작은 건지, 그렇게 하고 있으니까 리유 머리보다 선생님 가슴이 더 커 보인다. 아, 아니야! 보면 안 돼! 불건전!

“응, 열쇠라면 내가 가지고 있지.”

“열쇠 주세요! 정리하려고 아침부터 왔단 말예요.”

“응, 잠깐만. 여기에 있어.”

“푸흡!”

“후후, 농담인데 잘도 넘어가네. 그 반응이 귀여워.”

“아 정말! 옷 좀 단정하게 입으시면 안 돼요!”

불문곡직 방 열쇠를 달라고, 열쇠 주세요! 현기증 날 것 같단 말에요! 하고 징징대자 선생님은 고개를 끄덕이며 열쇠를 꺼내준다. 그러면서 아주 자연스럽게 오른손을 가슴골에 넣어 속(?)을 뒤적이신다. 나는 다시 한 번 코피를 쏟을 뻔 하고 고개를 돌렸다. 보는 내가 다 창피해서 마구 소리치자 선생님은 낮고 시크한 목소리로 답하신다.

“싫은데. 빌어먹을 교장이 와, 교감이 와? 적어도 주말엔 내가 여기서 왕이야. 여기 여고 기숙사라구? 내가 이렇게 입든 아예 안 입고 브라만 입고 다니든 아무도 뭐라 안 그래.”

“그치만 저 있잖아요 저!! 엄연히 달릴 거 달린 남자애!!”

“어멋…… 달려♂ 있었구나. 조금 기대되는데♡”

“무슨, 무슨 기대요!! 으아아아! 너무해요, 그 대사! 취소해요!!”

“후후훗. 나쁜애네. 그래도 귀여우니까.”

“으아아아아!!”

정말 악질이다. 이것도 엄연히 언어적 성폭력인데. 왜 남자는 성추행 법이 적용이 안 되나요! 세계에는 엄연히 역강간 피해자들도 많이 있는데! 껍데기 성 보호법은 OUT!! 껍데기는 가라! 하지만 그건 내 마음속 공허한 외침일 뿐이다. 뭐, 실제로도 아침부터 좋은 구경(?) 한 건 사실이니까. 선생님의 말에 난 답변할 말이 없다. 구구절절 옳은 말이기에. 하지만 그렇다 해도 이젠 바뀌어야 하지 않는가. 아무리 어려도 난 남자애인데.

울상을 지으며 ‘그래도 좀 봐주세요’ 하고 말하니 선생님은 ‘그래, 우리 꼬꼬마 귀여우니까 말 들어 줘야지’ 하며 방으로 들어간다. 하아. 그나저나 저 ‘꼬꼬마’ 라는 칭호는 어째 고정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선생님 입장에서야 꼬꼬마가 맞겠지만, 리유까지 있는데 꼬꼬마는 좀.

리유는 선생님이 방으로 들어가서 남겨졌는데, 나를 힐끔 보더니 ‘흥!’ 하고 고개를 돌린다. 아아, 아무래도 역시 가슴을 놀리는 건 너무했나. 난감한데. 어떻게 해도 변명처럼 들리지만 일단은 ‘리유는 대신 누구보다 귀엽잖아!’ 하며 말하니 여전히 고개는 돌리고 있지만 뭔가 솔깃한 느낌이다. 아아, 정말 알기 쉬워서 편한 아이구먼. 기회를 노려 계속 해서 칭찬하니 곧 회복돼선 ‘흥! 내가 제일 귀여우니까!’ 하며 자기만족을 한다. 그래도 다행이네, 금방 풀려서.

“자, 됐지.”

“뭐…… 아슬아슬 합니다만 합격선입니다.”

선생님이 다시 나왔다. 부스스한 머리는 한데 정리하고 나머지 잡머리는 핀으로 정리해 한결 깨끗하다. 상의는 지퍼로 닫히는 트레이닝복을 입었고 바지 역시 마찬가지로 한 세트인 트레이닝 바지를 입었다. 노출 하나 없이 말끔한 복장. 그렇게 입으니 학교에서 보던 정장 입은 근엄한 모습과는 또 달라서, 평소보다 약간 어려 보인다. 화장기 하나 없이 약간 부은 얼굴에 틀어 올린 머리에 츄리닝 한 세트. 대학교 4학년 누나 정도 되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는 팔짱을 끼고 평가라도 하듯 대답했다. 문득 의문이 들어 선생님에게 질문했다.

:“근데 선생님, 복장이 너무 본격적인 거 아니에요?”

“응? 뭐가. 짐 옮기려면 이 정도는 입어야지.”

“짐이요? 헉, 선생님 설마 저를 위해서……!”

“……뭐, 오해는 맘대로 해도 되지만. 이래 보여도 이 기숙사 사감, 분명히 나라고? 행여 너희 다치기라도 하면 어쩌려고.”

“아. 네, 괜한 오해였네요. 역시. 선생님이 저를 따뜻하게 생각할 리가.”

“후훗…… 다른 의미로 따뜻하게 생각하곤 있는데♡”

“하지 마세요!”

선생님의 짓궂은 농담에 나는 최대한 동요하지 않고 냉정하게 대답했다. 이젠 농담이란 걸 알기에 그렇게 민감하게 반응할 필요는 없다. 선생님은 여전히 미소 지으며 나를 보다 주머니에서 열쇠를 빼서 창고 문을 열었다. 여전히 뽀얗게 이는 먼지─ 작은 창문으로 햇살이 들지만 어두컴컴하긴 마찬가지다. 선생님이 벽 옆의 스위치를 눌러 불을 켠다. 허나 전등이 오래 돼서 그런가, 불을 켰음에도 그리 환하지가 않다.


방의 상태는 심각했다. 저번에는 햇살만 비친 약간 어두운 상태로 봐서 물건들의 세세한 모양을 잘 못 봤는데 미약하지만 전등 불빛으로 방 곳곳을 볼 수 있게 되니 사태의 심각성을 알 수 있게 됐다. 종류별로 다양하게 있는 물건들도 문제지만 무엇보다 빽빽하게, 빼곡하게 쑤셔 박아놓은 여러 물건들. 이 정도면 이렇게 넣은 것도 하나의 어떤 예술 같기도 하다. 공간 활용의 극치랄까. 왜, 그런 거 있잖아? 상자에 먼저 큰 돌들을 넣고, 그 사이에 자갈을 넣고, 그 사이에 모래를 넣고, 그 사이에 물을 넣어서 꽉꽉 들어 채우는, 그런 거. TV 광고에서 나오는 실한 간장게장의 알과 내장처럼 꽉꽉 들어차있는 짐들을 보니 너무 어이가 없어 한숨이 절로 나온다. 책상 밑에 빼곡히 있는 신문과 잡지들, 그 사이로 엄청 낡아 보이는 축구공과 농구공, 그 사이로는 축구할 때 쓰는, 팀 구별할 때 입는 파란색과 노란색 옷. 이것저것 정말 없는 게 없다.

“……이 짐 넣어놓은 게 누구라고 했죠, 선생님?”

“음. 빌어먹을 체육선생이라고 말 안 했었나.”

“참, 거의 예술의 경지인 것 같은데. 어떻게 이렇게나 많이 넣을 수 있죠.”

“그 양반도 한 번에 이렇게 넣은 건 아닐 거야. 나 왔을 때에도 이미 조금씩 점거돼 있었으니까. 수업시간에 애들 동원해서 넣더라고. 평소엔 나 있으니까 눈치 보이나보지. 비겁한 영감탱이.”

“에엣, 여자애들을요?! 무슨 그런 파렴치한 사람이 있데!”

“여기 여고야, 쓸 수 있는 애들은 여자애들뿐이잖아. 내가 학교 다닐 때도 그랬는 걸 뭐.”

선생님은 그 체육선생이란 사람에게 엄청난 적개심을 가지고 있는지 저번부터 말씀하시는 게 굉장히 격하다. 뭐, 게슴츠레한 눈으로 선생님을 바라보기라도 했다던가. 충분히 있을 법한 일이다. 선생님 몸이라면. 근데 내가 쳐다보는 건 괜찮고, 중년 남성이 쳐다보는 건 기분 나쁜 건가. 하긴, 나는 완전히 꼬마로 보시니. 오히려 계속 쳐다보면 ‘귀여워♡’ 하면서 다가와서 껴안을지도 몰라. 헉, 솔깃한데. 한 번 해볼까. 아, 아니지! 무슨 생각을! 불건전하다!

“너 근데 이거 빼서 어디다 두려고?”

“네? 창고 같은 거 없나요?”

“그러니까 그 창고가 어디 있는데.”

“에, 그러게요.”

“……참 너도 대책 없는 애구나. 어디보자.”

선생님은 어이가 없다는 듯 나를 보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시더니 천천히 방으로 들어가 서랍을 열고 뒤적뒤적 한다. 그리곤 건네는 다른 열쇠. ‘뭐에요?’ 하고 물으니 ‘교무실 열쇠.’ 하고 짤막하게 대답하신다. 이어지는 명령. 뒤쪽 창고의 열쇠를 가져오라는 간단한 의뢰. 주말인지라 아무도 없지만 사감인 본인만이 열쇠를 가지고 있다나 뭐라나. 그러려니 하고 고개를 끄덕인 뒤 리유와 함께 열쇠를 가지러 간다.

“저 선생님, 착한 것 같아.”

“그렇지. 엄청 장난 걸고, 조금 무서운 기운이 풍기지만 본래는 착한 분인 것 같아. 안 챙겨주는 척 하면서 실은 다 챙겨주는, 그런 타입?”

“으음─ 그러니까 저 작은 방을 다 치우면 거기가 네 방인 거야?”

“응, 그렇지. 기왕이면 이번 주말 안에 다 했으면 좋겠는데. 선생님까지 도와주신다면 훨씬 수월하겠는걸.”

“히히. 뭔가 재미있을 것 같애. 나중에 네 방 놀러가도 되?”

“어이어이. 아무리 그래도 기숙사라구.”

“여자 기숙산데?”

“아…… 그런가?”

리유와 두런두런 얘기하며 교무실까지 걸어간다. 혼자 갔다면 약간 으스스할 정도로 학교는 을씨년스럽다. 늘 학생들이 있어 활기차던 학교가 텅 비니까 그 빈 공간이 더욱 크게 느껴지는겐가. 리유의 말에 대답할 말이 없어진다. 그러게, 굳이 말하자면 기숙사에 있어야 할 건 리유 쪽이지 내가 아니잖아. 남자앤데. 몰라, 원래 정치라는 게 그런 거지(?).

선생님이 시키신 대로, 공손하게 열쇠를 가지고 기숙사 앞으로 왔다. 선생님은 느긋하게 벽에 기대 휴대폰을 보고 있다 힐끔 나를 보곤 다시금 자세를 바로 한다.

“자, 그럼 시작해보자.”

“네!”

“우선 다 빼자. 하나하나 조심해서. 무너질 수도 있으니까 천천히, 하나하나 확실하게 제거해.”

“……말만 들으면 무슨 던젼 탐사하는 것 같네요.”

“뭐 얼추 느낌 비슷하지 않아? 동굴 탐사하는 것 같기도 하고.”

“우와! 나도 할래 나도!”

“으응, 서두르지 않아도 되. 어차피 한 명씩 밖에 못 들어가.”

열쇠를 가져오고, 본격적으로 일을 시작할 때가 됐다. 선생님도 나도 팔을 걷어붙이고 비장한 표정으로 창고를 쳐다본다. 아니, 이제 내 방이 될 방을!


작가의말

이런 나날들이 계속 됐으면 좋겠네요, 막히지 않고 공장에서 사제품 찍어내듯 글을 쓸 수 있는 나날 말이죠. 물론 퀄리티는 보장할 수 없지만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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