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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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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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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11 04:07
조회
5,6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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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2
글자
19쪽

02화. 왕따인가, 나.

DUMMY

정웅도, 올해로 열일곱 살. 수컷 웅에 도리 도. 캬, 얼마나 멋진 뜻인가. 「사나이의 도리」라니. 좀 다르지만 ‘도’ 자를 ‘길 도’로 해석하면 「사나이의 길」이란 꽤나 멋진 뜻도 나온다. 그래, 이름처럼 나 정웅도, 올해로 열일곱인 열혈 사나이다. 이제 막 고등학교를 입학한! 그야말로 한창 청춘!

“깔깔 까르르”

“우헤헤헤헤~”

“어우 야~ 너무하잖아~”

“…….”

……하지만 그런 한창 청춘 사나이 정웅도는 왠지 왕따를 당하고 있는 것 같다. 저 재미나게 떠들고 있는 무리의 모든 애들이 나와는 아무 상관도 없이 놀고 있다고 생각하니 좀 서글프구만. 내 자리는 영영 이 구석자리 확정인건가. 나오느니 한숨이다. 옆자리 성빈이는 앞자리 여자애 둘과 재미나게 떠들고 있다. 나에게도 말을 걸어주면 좋겠지만─ 성빈이를 곤란하게 할 순 없으니까, 참고 있다. 괜히 말 꺼냈다가 다른 여자애들까지 성빈이를 멀리할 수도 있잖아. 휴우. 모르겠다. 어디서부터 뭐가 잘못된 건지.


아침이 되어, 난 찜질방을 나왔다. 찜질방에서 자면서 좋은 점은 한 가지 있다. 찜질하고, 뜨거운 물에 몸 담그고, 때도 벗기고, 이틀 연속 그 짓을 반복하니 깨끗해지긴 엄청 깨끗해진 것 같다. 피로가 쌓일 것도 없지만 뜨거운 찜질을 이틀 연속 해서 컨디션이 날아갈 듯 최상인 상태이다. 아니, 꼭 할 필요는 없었지만 돈 아깝잖아. 기껏 찜질방에서 자는데, 찜질 정도는 해야지. 해서 나는 날아갈 듯 기분이 좋다. 집 없이 찜질방에서 등교하는 건 좀 기분이 좋지 않지만, 그것도 이 주까지만이니까! 어엿하게 거처도 정해졌고, 주말에 열심히 짐짝 나르고 정리하면 뭐 다음 주 부터는 기숙사에서 살 수 있겠지. 그럼 만사가 해결인거다─ 학교생활은… 음, 그게 가장 큰 문제네.

잠깐. 기숙사에 산다고 해도, 아는 애가 한 명도 없다면 난 어떻게 되는 걸까. 우리 학교는 급식 제도가 아니다. 그 말인 즉 주말에 학교에 기숙사생만 있을 때에도 딱히 급식을 주지 않는다는 말. 그러니까, 주말엔 기숙사생들끼리 알아서 챙겨 먹어야 한다는 말.

친구 한 명 없는 독신 남성, 사나이 정웅도 씨는 오늘도 홀로 방에서 밥을 먹습니다. 혼자 밥을 먹지만 괜찮아요, 여자애들 목소리를 반찬 삼아 할(?) 수 있거든요. 친구가 한 명도 없지만 괜찮아요, 정식으로 여자애들을 힐끔힐끔 볼 수 있거든요.


……이런 건 너무 비참하잖아! 으아아악! 최악의 학교 생활이다!!

그것만은 피하고 싶다. 한창 밝게 빛나야 할 학창시절이, 단순히 남자애인데 여고로 잘못 왔다는 이유만으로 깊고 어두운 타락으로 빠질 순 없는 거잖아. 어색해서 그래, 아직! 어색해서 그런 거니까, 그 어색함만 없애면……. 근데 왜 날 어색해하는 거지. 남자애니까? 그런 단순한 이유로?

학교까지 걸어가며, 곰곰이 생각해봤다. 음. 초등학교 때는 잘 기억도 안 날뿐더러, 그 때는 꼬꼬마 애기들이었으니까, 그저 여자애들한테 장난 치고 팬티 보고 브라 끈 잡아당기면서 놀리고 그랬을 때니까─ 우왓, 부럽잖아. 초등학생. 돌이켜 생각해보니 초등학교 때 우리, 막장이었구나. 그걸 잠자코 넘어가 준 여자애들도 생불일세. 하긴, 여자애들이 정신적으로 남자애들보다 몇 살은 더 성숙하다니까, 초등학생 여자애라도 걔네가 보기에 우린 완전 애기였겠지. 지금이야 이제 고등학생이니 비슷한 수준이겠지만.

너무 과묵하게 컨셉 잡고 있어서 그런 걸까. 음,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을 그려보자. 여자애들이 있다. 남자애가 무뚝뚝하게 지나간다. 무슨 일이 있어도 무뚝뚝하게 지나가는 남자애. 그 애가 엄청 잘생기거나 한다면 ‘어멋 멋진 남자’ 하고 호감을 느끼겠지만, 난 결코 그 정도로 잘생기지 않았다. 아니, 설령 잘생겼어도 그렇게 목석같은 남자에겐 별다른 매력을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뭐야, 과묵한 컨셉이 잘못 했네.

그럼 다른 시뮬레이션. 여자애들이 있고, 남자애가 지나간다. ‘안녕─’ 먼저 웃는 낯으로 밝게 인사하는데 마다할 사람이 누가 있을까. 여자애들도 밝게 안녕 하고 인사한다. 그 뒤로 조금씩 친해져서, 간혹 예를 들면 ‘아, 웅도야. 이 책 좀 들어주라. 너무 무거워.’ 하면서 도와달라고 하고, ‘그럼! 이런 건 내가 들어야지.’ 하며 번쩍 들어다주는, 조금은 상냥하고 훈훈한 그런 남자. 우홋! 멋진 남자! 음, 그래 이거구나.

밝고 긍정적으로…… 우선은 환한 인사가 중요하겠구나. ‘안녕─’ 이 정도면 되려나. 혼자 표정만 지어봤는데 굉장히 어색하다. 그래도, 연습 해보는 게 안 하는 것보단 낫겠지. 사나이 정웅도, 정책 변경! 이제는 미소가 아름다운 훈남으로 가는 거다!

말은 그렇게 했지만 여자애들 앞에 서면 긴장되는 건 뭇 남중 출신 남학생의 비극이자 본능 중 하나일 것이다. 학교가 가까워지고 같은 교복을 입은 여고생들이 많아질 때 즈음 조금씩 마음이 긴장된다. 어제와 마찬가지로, 다들 나를 괴물 보듯 동물원 맹수 구경하듯 힐끔힐끔 보며 나와 눈이 마주치면 얼른 시선을 돌린다. 으아─ 이틀밖에 안 됐는데 이 시선, 너무 싫다. 얼른 훈남으로 이미지를 바꿔서, 다시는 저런 표정으로 나를 보지 않도록, 노력해야지! 흐하하! 상큼발랄한 여고에서의 학창시절 개시인 것이다!!


“안녕!!”

“…….”

학교에 꽤 일찍 와 버렸다. 어수선한 찜질방 덕에 잠을 설친 탓이다. 교실 앞문을 당당하게 열고, 활기참을 극상으로 담아 얼굴엔 미소를 한 가득 담고 크게 인사했다. 딱히 누군가에게 지정해서 하는 인사가 아닌, 불특정 다수 모두에게 보내는 인사. 그리고 사나이 정웅도의 출사표. 이 인사로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는 거야!

“…….”

“…….”

교실 안은 정적이 가득하다. 반에는 10여 명 정도 여자애들이 있다. 몇몇 애들은 자기들끼리 모여서 떠들고 있던 모양인지 자리에 모여 앉아 있다. 어떤 애는 혼자 떨어져 책을 읽고 있고, 그런 자유로운 아침 시간이었나 보다. 하지만 그 자유로운 아침시간을 압도적 존재감으로 깨 버린 한 남자, 사나이 정웅도. 여자애들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본다. 무표정인 애도 있다. 나 역시 최대한 지어 보인 미소 가득한 표정 그대로 굳었다.

시간이 멈춘 걸까. 아니, 아니란 걸 내 자신이 더욱 잘 안다. 이 어색한 기분. 그런 거겠지, 물이 어는점을 넘었음에도 얼지 못한 상태. 하지만 조금만 건드리면 사악─ 하고 순식간에 얼어버리는, 그 상태의 물. 지금 우리 반이 그런 상태이다. 그리고 그 사태의 원인 제공자인 나는…… 등에서 식은땀이 한 줄기 흐르는 것 같다. 아직 충분히 쌀쌀한 초봄임에도.

여자애들 중에, 책을 읽고 있던 한 여자애의 시선이 느껴진다. 희세. 문 앞에 굳은 채 서 있는 나를 보고 피식 웃는다. 아. 뭘까, 저 웃음은. 비웃음……? 부끄러움과 수치심이 솟구친다.

“응? 웅도 안녕─ 문 앞에서 뭐해?”

“……어, 안녕.”

맛보기 싫은 죽음 같은 정적을 잔뜩 맛보고 이 상황을 어떻게 수습해야할까 고민하는 찰나, 누군가 인사하는 덕에 이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인사한 애는 성빈이. 하긴, 나한테 인사할 만한 애가 성빈이 밖에 없구나. 어색하게 대답하고 자세를 고쳐 바로 섰다. 그리고 잠시 뒤, 엄청난 속도로 창피함이 엄습한다.

으아아아─!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창피해~!!! 귀까지 빨개지는 걸 느끼며, 나는 가방도 내려놓지 못한 체 교실을 나섰다. 잠시 열은 식혀야 할 것 같기에. 그러나 여기서 도망가면 어떡해, 안 돼! 하면서도 발걸음은 복도 구석 쪽으로 향한다.


“무슨 일 있었어?”

“어, 인사 했는데…… 다들 하나 같이 반응이 없어서.”

아아. 틀렸어. 이제 꿈도 희망도 없어. 여자애들이 보여준 그 경멸과 멸시의 표정. 으아악! 다시 떠올리기도 싫다. 난 그저 밝게 인사한 것일 뿐인데. 뭐가 잘못된 거지. 방법? 충분히 밝게 인사 했잖아! 그럼 뭐! 얼굴? 그렇게 지탄받을만한 얼굴은 아니라고 생각했는데! 남자가 보는 얼굴과 여자애들이 평하는 얼굴은 다른 건가! 크흑…… 얼굴 때문이라면 그건 정말 어쩔 수 없는 노릇이지.

아니, 그럴 리 없어! 나 정웅도, 어디 가서 잘 생겼단 소리는 들어도 못 생겼단 말은 열일곱 평생 들어본 적이 없단 말이다! 추석 때 큰아버지랑 삼촌들도, 지나가는 할머니들도, 엄마 친구 아주머니들도! ……음, 칭찬 받은 집단이 좀 터무니없긴 하군. 그 분들은 그냥 팔다리 다 달리고 번듯하게 생기면 잘 생겼다고 하는 분들이니까. 그래도! 여자애들에게 그런 멸시와 경멸의 시선을 받을 정도는 아니라고, 스스로 자부한다고!! 그럼 뭐해, 이미 그런 시선 받았는걸.

“웅도는, 어제 뭐했어?”

“응? 어……”

한참 얘기하고 있던 성빈이가 나에게 말을 건다. 나는 살짝 밝은 표정이 돼서 고마운 마음으로 성빈이를 바라봤다. 이런 나에게도 말을 걸어주는 애가 있구나! 인생은 아직 살아볼만 한 것이었어! 하지만 난 곧 말하려는 걸 그만두었다. 성빈이와 같이 얘기하고 있던, 앞자리 두 여자애가 살짝 경직된 표정이 됐다. 아무래도 내가 끼어드는 게 어색한 모양이겠지. 이러다 성빈이마저 나처럼 고립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든다.

아닌 게 아니라 나 중학교 때, 실제로 멀쩡히 학교 잘 다니던 애가 왕따 당하던 애랑 어울린다는 이유로 매도 돼서 같이 따돌림 당한 전례가 있으니까. 그걸 직접 목격했던 소시민이 바로 나고. 아, 아니! 그렇다고 내가 왕따인 건 아니지만!

“어…… 난 그냥 잤어. 나 잠깐 화장실 좀.”

“어, 어.”

말을 끊기 위해 별로 가고 싶지도 않은 화장실에 간다고 거짓말을 했다. 자리에서 일어나는데 정말 눈물이라도 다 나올 것 같다. 사나이 정웅도, 이런 짓까지 해가며 살아야 하다니. 단순하게 남고에 갔으면 비록 땀 내 나고 여자 한 명 못 만나겠지만 재미만은 보장되는 그런 학교생활을 만끽했을 텐데……! 이거 너무 싫어! 이렇게 어색한 거는! 차라리 남고가 나아!

뒷문으로 나가는 나의 표정은 사뭇 비장하기까지 하다. 왠지 눈물이 날 것 같네. 난 눈물이 없는 사람인데. 사나이 눈물─ 약하다 욕 하지마─ 어리석게들 비웃음 쳐도 나는 죽지 않아! 그런 비장한 마음을 간직한 체 화장실로 향한다.


“……?”

수업을 듣고 싶진 않지만 그래도 학생의 본분이니만큼 조금은 듣고 있다. 헌데 선생님을 보다 힐끔 교과서 쪽으로 시선을 내렸는데 마침 때 좋게 스윽 하고 작은 쪽지가 내 교과서 위로 올라온다. 뭐지 하고 그 끝을 보니 가녀린 손이 있다. 성빈이. 성빈이가 작고 가녀린 손으로 쪽지를 민다. 나와 눈이 마주치자 방긋 웃어 보이며 얼른 시선을 선생님 쪽으로 돌린다. 뭐, 뭐지. 쪽지?! 이 무슨 고전적인 방법이란 말인가! 게, 게다가, 분명 여자애가 나한테 먼저 쪽지를 보냈다구! ……아니다. 이렇게 흥분할 게 아니라 내용을 살펴보자.

「아침에 애들이 그랬던 거, 어색해서 그런 거니까 너무 마음에 두지 마. 다들 너랑 친해지고 싶으니까. 조금 더 힘 내 줘. 기운 빠져 보이는 건 안 좋으니까 ^^」

“……응.”

“…….”

여자애 특유의 동글납작하고 굴러갈 것 같은 예쁜 글씨체. 글씨를 어떻게 써야 이렇게 예쁘게 쓸까. 특히 마지막 ‘^^’ 부분은 정말 귀여워서, 직접 말을 듣는 것과는 또 다른 느낌이다. 글을 다 읽고 감동 받은 눈으로 성빈이를 보니 성빈이는 작게 히히 하고 웃는다. 정말 착한 아이구나. 나중에 꼭 밥 사줘야지. 어떻게든 고마운 마음을 표현하고 싶어서, 작게 ‘고마워’ 라고 적은 쪽지를 성빈이 교과서 위에 올렸다. 성빈이도 쪽지를 보고 작게 고개를 끄덕인다. 선생님이 이쪽으로 오기에 둘 다 얼른 멈칫 했다. 다행이 우리가 아니라 앞자리 두 여자애가 떠드는 걸 지적하러 온 것이었다. 휴우.


“하아암.”

“웅도야! 웅도야~”

“……넷? 저요?”

수업이 끝나고 쉬는 시간. 중학교 때였다면 친구들과 왁자하게 떠들거나, 매점을 가거나, 잠깐 공놀이를 하거나, 혹은 자거나. 할 게 몹시 많던 활달한 아이였는데 지금의 사나이 정웅도는 몹시 슬프게도 할 일이 하나도 없다. 잘 수조차 없는게, 여기서 모든 걸 포기하고 편안히 엎드려 잔다면, 내 평판은……. 얼마 잡혀 있지도 않은 이미지, 게으르고 나태한 남자애로 돼 버릴 것만 같아서. 그래서 잠도 못 잔다.

성빈이는 애들하고 떠들다가 금세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그래서 굉장히 심심하게, 다음 수업이 뭔가 보고 있는데 누군가 날 부른다. 고개를 돌려 뒷문을 보니 복도에서 나를 살며시 부르고 있는 담임선생님. 왠지 모르겠지만 크게 부르지 않고 작게 부른다. 나는 고개를 갸웃 거리다 일단 나왔다.

“선생님이 봤는데 웅도, 반에서 겉돌고 있는 것 같아서.”

“뭐, 아직 이틀밖에 안 됐는걸요.”

“음─ 그렇긴 해도. 아마 네가 남자애니까, 다들 어색해서 그런 걸 거야.”

“네, 알고 있어요.”

담임선생님은 복도를 걸으며 말한다. 음, 가만히 있는 내가 불쌍해서 상담 같은 거라도 해 주시려고 하는 건가. 하긴, 담임선생님이 보기에도 좀 정상은 아닌 것처럼 보이나보다. 수다스런 성격은 아닌 나지만 지금은 말할 대상이 없다보니 이렇게라도 말할 수 있는 담임선생님이 참 좋다. 나도 모르게 무심코, 아침에 있던 일을 얘기하고 있다.

“아침에, 용기 내서 모두에게 인사했는데, 결과가 처참해서. 조금 절망했다고 해야 할까요.”

“음─ 왜 그럴까. 웅도는 착한데. 험악하게 생겨서?”

“험악하게 생기진 않았어요!”

“혹시 음흉한 눈으로 애들을 쳐다본다거나?”

“그런 적도 없어요! 왜 다 절 그 쪽으로 모는 건데요! 애초에 그런 생각 하지도 않았는데 여자들 쪽에서 그렇게 말하면 저도 이상하게 보게 되잖아요!”

“어멋, 선생님을 그런 눈으로 봤구나…… 선생님 변변찮게 가진 것도 없는데. 그러면 안 돼요, 웅도야. 선생님은 연상이 좋거든─☆”

“아아악! 안 그랬다구요, 안 그랬어요! 애초에 선생님 가슴도 작잖아요!”

“헉! 그걸 직접 말하다니! 너무해! 작은 건 나도 안다구~!!”

이 선생님은 이상한 쪽으로 몰아가는 데 특화돼 있는 것 같다. 게다가 왜 어제부터 자꾸 여선생과 남제자의 불순한 로맨스 쪽으로 몰고 가려는 건지. 어제는 사감 선생님에, 오늘은 본인인가. 너무 어이가 없어 나도 모르게 크게 가슴 흉을 봐 버렸다. 선생님은 울상이 돼선 고개를 도리도리 젓는다. 아아. 본인도 콤플렉스였나보다. 그래도 어른인지라 이 정도 언어희롱에 상처받거나 하는 건 없구나. 담임선생님은 자랑스럽게 검지를 내 쪽으로 내밀더니 묘하게 그 검지를 좌우로 흔든다.

“어·쨌·든. 한 번 노력해보도록 해 봐. 분명 여자애들도 너에게 엄청 관심이 많을 거야.”

“에이, 무슨 관심이…… 그 멸시와 경멸 가득 찬 눈들이요?”

“우훗. 남자애라 모르는구나. 이 나이 때 여자애들이 얼마나 남자애에 관심이 많은데. 딱히 남자애들만 불끈불끈한 건 아니니까~ 어멋, 무슨 말이래~ 헤헤헷☆”

“…….”

혼자 말하고 혼자 웃는 담임선생님을 보며 나는 할 말을 잃었다. 이 선생님, 분명 나 위로해주거나 조언 같은 거 해 주려고 부른 것 같은데. 대체 날 부른 목적이 뭐지. 귀엽게 말하는 걸 보면 귀엽긴 한데 좀 때리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한다. 아, 안 돼지. 어른인데. 선생님은 그 뒤로도 소녀처럼 재잘재잘 떠들다 수업 종이 치자 황급히 종종걸음으로 교무실로 뛰어가신다. 선생님이 수업에 늦다니, 드문 일이네. ‘그럼, 잘 해 봐~’ 하며 사라지는 선생님. 나도 교실로 돌아간다.

“고마워.”

“응?”

“아까 쪽지.”

“으응. 진짜야! 진짜니까, 너무 기죽어 있지 마.”

“응, 알았어. 고마워.”

자리에 앉고, 아직 수업이 시작되기 전 예고도 없이 뜬금없이 성빈이에게 말했다. 성빈이는 고개를 돌려 나를 보고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래, 성빈이가 응원해주니까. 담임선생님도 응원해주니까. 조금 더 노력해 볼까나. 고개를 털고 기지개를 쭉 켰다. 그래, 수업이구나! 좀 더 열심히 들어보자!


쉬는 시간. 며칠 되지 않았지만 언제나 그렇듯 나는 혼자 숨을 쉬고 있다. 여자애들은 깔깔대며 떠들고 있다. 진짜, 신기한 게 며칠 되지도 않았는데 벌써 친구들 사귀고 무리를 이루다니. 역시, 여자애들 ‘무리 만들기’는 알아 줘야 하나.

아, 하긴. 여기 애들이 나처럼 전혀 아무 인연도 없이 모르는 고등학교에 온 건 아닐 테니까. 중학교 동창들 있을 테고, 건너건너 소개하다보면 금세 친해질 수 있지. 나는 그런 연줄이나 친구가 단 한 명도 없는 맨바닥이고, 성별도 차이나고, 그래서 힘들 따름이고. 갑갑한 마음에 자리에서 일어난다. 물이라도 마셔서 타는 속을 축여야지.

“…….”

“아, 안녕.”

“…….”

복도에 걷다 문득 한 여자애와 딱 마주쳤다. 세 명이 지나가도 충분한, 좁지 않은 복도인데 우연하게. 이래서 바닥을 보면서 걸으면 안 되는구나. 괜히 또 부딪혔다가 이상한 소문이라도 났으면. 여자애들 스킨십에 민감하니까. 내가 연예인처럼 잘생겼으면 그런 말도 없었겠지만. 아니, 기분탓이겠지.

마주친 애는 희세라는 애. 여전히 압도적으로 예쁜 얼굴이다. 가까이에서 보니까 훨씬 예쁘다. 괜히 나도 모르게 얼굴이 빨개질 것 같다. 그러면서도 인사는 얼른 한다. 적응 못하는 것 같아도 나름대로, 나 스스로도 살아남고자 노력하는구나. 희세는 아니꼬운 표정으로 나를 올려다본다. 키가 작은 편은 아닌 희세지만, 어쨌든 내가 남자라 키가 15cm 이상은 크니까.

“……비켜.”

“네.”

하지만 어째, 희세는 인사를 해도 별 반응이 없다. ‘흥’ 하는 느낌으로 홱, 고개를 돌리더니 굉장히 새침하게 한 마디 한다. 얼른 대답하고 자리를 비키는 나. 희세는 뚜벅뚜벅 그대로 앞으로 걸어간다. 안 그래도 저번에 본의 아니게 가슴을 만지……는 기묘한 일을 겪어서 되게 미안한데. 아, 그것도 제대로 사과도 못 했네. 말 꺼내기가 껄끄럽잖아. ‘저번에 가슴 만져서 미안해.’ 이렇게 말해?! 당당한 변태잖아, 그거! 괜히 기분만 더 갑갑해져서 더욱 목이 막힌다. 물 마시러 가자. ……딱히 저번에 만졌던 0.2초 정도의 황홀한 느낌을 되새김질 하려는 건 아니다. 그냥, 그렇다고.


작가의말

크윽, 오늘은 어째 잘 안 써지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 작성자
    Lv.16 단일
    작성일
    14.01.11 14:26
    No. 1

    잘보고갑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1 18:37
    No. 2

    감사합니다! 더 재미있게 쓸 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15 작은아씨
    작성일
    14.01.15 22:14
    No. 3

    여자들을 너무 그렇게 단정짓지 말아요!!!!ㅜㅜ 이 웅도야!!!!!!!!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5 22:42
    No. 4

    여... 여자 사람! 사실 제가 남중·남고라 여고의 생태계나 여자애들의 습성 같은 걸 전혀 모릅니다. 고로 이 작품에 나오는 여자애들은 환상종.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4.02.17 00:05
    No. 5

    근래에 방학이라 친구들 만나고 설 새고 책 보고 하니 벌써 2월입니다. 문피아에 오랜만에 접속해서 작가님의 작품을 보니 독자들이 엄청 늘었네요. 축하드립니다! 학교 라노벨류에 하렘과 러브코미디라는 조미료가 첨가되니 사람들이 몰려드는군요. 여러가지 작품을 거쳐오며 향상된 필력이 보태지니 그 조미료 맛에 원재료 맛이 추가되었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폭풍같은 연재 속도는 따라가기가 힘들겠지만 꾸준히 읽겠습니다.

    남자 주인공이 질풍노도의 시기인지라 오글거리고 감정기복도 빠르네요. 그래서인지 감정묘사가 더 재미있고 주변에 돌아가는 상황과 주인공이 마주친 갈등이 더 감칠맛이 나네요. 성장드라마의 요소가 들어가 있어서 그런가봐요. 두 편 올라온 제취미를 보고 싶지만 내일 개강이니 이만 가야겠네요. 건필하십시오. 개강이라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17 08:45
    No. 6

    오옷, 드디어 돌아오셨군요! 감사합니다! 헌데 개강이라뇨, 벌써 개강인가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5:51
    No. 7

    캬아....선생님까지 노리다니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8.23 21:38
    No. 8

    ...처음에 쓸 땐 되는대로 아무거나 막 먹어보자(?)는 심보여서... 헤헷.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8 하무린
    작성일
    15.10.04 09:46
    No. 9

    즐감하고 갑니다. 조은 하루 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5.10.04 21:56
    No. 10

    넵,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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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02화 - 3 +12 14.01.12 4,580 95 18쪽
6 02화 - 2 +6 14.01.11 5,807 173 19쪽
» 02화. 왕따인가, 나. +10 14.01.11 5,615 102 19쪽
4 01화 - 4 +14 14.01.10 6,431 155 18쪽
3 01화 - 3 +12 14.01.10 6,746 162 20쪽
2 01화 - 2 +14 14.01.09 8,311 183 19쪽
1 01화. 혼자 서는 이야기 - 1 +21 14.01.09 12,583 28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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