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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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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6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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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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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01.16 2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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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
글자
19쪽

04화 - 4

DUMMY

아침. 나도 모르게 눈이 팍 떠진다. 알람이 울린 것도 아닌데. 방은 작고 좁은데다 채광 상태도 좋지 않아 몹시도 깜깜하다. 아침인데도 이렇게 어둡다니. 작은 창문이 하나 있긴 하지만 그리 빛이 들지 않는 편이라 방은 캄캄하다. 아직 이른 아침이라 그런 것 같다. 천천히 일어나 학교 갈 준비를 한다.

몹시 이른 아침이라, 아직 기숙사는 다들 잠들어 있다. 거울도 없어 휴대폰으로 얼굴을 비쳐 보니 붕 떠서 아주 개판이다. 원래 머리가 잘 뜨는 체질이라 그리 놀랄만한 것도 아닌데 문제는 씻을 수가 없다는 거. 선생님은 위층 세면장을 써도 된다, 안 된다 말은 확실하게 안 해주셨는데, 정황 상 쓸 수 없는 것임에 틀림이 없다. 만약에라도 올라갔다 모르는 여자애랑 마주친다면…… 하하, 변태 소문에 더욱 박차를 가하고 나의 왕따 정도는 더욱 심해지겠지. 개운치 못한 몸으로 가방을 챙겼다. 학교 가서 씻어야지. 처음 자는 거라 그런가 뭔가 잠을 잤는데도 제대로 못 잔 듯 피곤하다.

뭐, 아침 점호 같은 게 있거나 하진 않겠지. 하긴, 지금은 엄청 이른 시간이다. 씻고서 잠깐 다시 들러보면 되겠지. 무엇보다 이런 몰골인 상태로 여자애를 마주치는 건 남자로써 창피하잖아. 정말 기름이란 게 나온 듯 머리는 번들거리는데다 떡져서 여기저기 뻗쳐 있고, 얼굴은 개기름 덕에 반질반질 윤이 난다. 거기에 약간 부은 듯한 얼굴은 그 찌질스러움을 더욱 더한다. 얼른 학교 가서 씻어야지.

“저, 저기!”

“……!”

기숙사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는데 뒤에서 누군가 부른다. 흠칫 놀라 멈춰섰다. 서, 설마 당연하게 선생님인 건 아니겠지. 몽둥이를 들고서, 난간에 기댄 체 건들건들한 표정으로 여유롭게 날 보고 있겠지. 아, 아니야! 선생님이라면 틀림없이 ‘어이어이. 꼬꼬마 어디가’ 이런 식으로 얘기 했겠지! 약간 두려운 설렘과 함께 몸을 돌려 나를 부른 애는…… 성빈이.

성빈이 역시 일어난 지 얼마 안 됐는지 잠옷으로 추정되는 베이지색 털 같아 보이는 소재로 된 세트 옷을 입고 있다. 묘하게 동물 옷 같아서 예쁘네. 나와는 전혀 다르게, 성빈이는 머리가 떡져 있다거나 얼굴이 기름져 있다거나 하지 않다. 햐, 천사 같은 애들은 자고 일어나서도 저렇게 멀쩡한 건가.

반면 내 몰골은…… 으악! 그러고 보니까 지금 아까 언급한 상황이잖아! 이 몰골로 여자애랑 마주치는 거. 그것도, 호감을 가지고 있는 성빈이한테! 성빈이는 막 나왔는지 슬리퍼를 신은 상태로 내 쪽으로 다가온다. 추울 텐데, 저런 옷으론. 나 역시 천천히 성빈이 쪽으로 걸어갔다.

“왜?”

“……우선 미안하다고 말하고 싶어. 말할 게 좀 많은데…….”

“아, 그래. 어…….”

성빈이는 시선을 피하며 말한다. 나는 그런 성빈이의 반응에 아무렇지도 않은 척 대답했지만 속으로는 뛸 듯이 기쁘다. 성빈이가, 다시 말을 걸어줬어! 역시 내가 세운 가설이 맞았던 거야! 아이들에게 나를 무시하도록 강요받은 거! 하지만 막상 말을 하자니 성빈이의 옷차림이 걱정된다. 날이 풀리는 듯 하다가도 이번 주부터 갑작스레 들이닥친 꽃샘추위로 겨울 못지않게 추워졌다. 나야 교복에 마이까지 입고 있어 괜찮지만 성빈이는 아담한 몸을 덜덜 떨고 있다. 떨고 있는 게 눈에 보인다. 나는 ‘추우니까 들어가서 얘기하자.’ 하고 말했다. 성빈이도 내 호의에 고개를 끄덕이고 고맙다고 말한다.

“…….”

“…….”

─근데 그런 호의가 어째서 내 방으로 성빈이를 들이게 된 걸까! 아니, 생각해보면 안에 들어가서 얘기하자 라고 해도 기숙사인걸, 내가 여자애들 방에 들어가서 얘기할 수는 없는 노릇이잖아! 거기에, 난 애초에 2층 이상으로 올라가지도 못한다. 그래서 차라리 성빈이를 내 방으로 들어오게 하는 게 낫겠다 싶어서 그리 한 것이다.

하지만 생각보다 굉장히 창피한 상황이다. 아무것도 없는 방이지만, 그래도 그 심리적인 압박이란 게, 내 방에 성빈이가 들어왔다는 게, 별다른 저항 없이 들어왔다는 게……. 아, 뭐라 말로 형용할 수 없는 묘한 기분이 든다. 성빈이도 그런 내 기분을 눈치 챘는지 살짝 얼굴에 홍조가 떠올라 있다. 안 돼, 안 돼! 혼자 이상한 생각 하니까 더 이상해지는 거야. 성빈이 얘기나 듣자.

“근데, 어떤 것 때문에……?”

“아. 응. 어제 일 말이야…….”

“……응.”

성빈이는 조심스럽게 말한다. 아무렇지도 않은 척 담담하게 있으려 했지만 표정이 돌처럼 굳어지는 건 어쩔 도리가 없다. 성빈이는 그런 나를 보더니 돌연 서글픈 표정이 돼서 애처로운 목소리로 말한다.

“……미안, 미안해! 어제 나…… 너한테 너무 못되게 군 것 같아서……!”

“어어, 어어. 아아, 아니야, 우, 울지 마.”

“……흑!”

“어어, 괜찮아, 난 진짜 괜찮아. 정말, 정말 정말. 그러니까 울지 마.”

성빈이는 왈칵 눈물을 쏟아내며 말한다. 갑작스런 눈물에 나는 깜짝 놀라 손을 허공에 휘저으며 말했다. 이렇게 징조도 없이 갑자기 울어 버리다니. 게다가 여자애가 눈앞에서 울어 버리면 뭔가 다 내 탓 같아서 마음이 찢어지게 아프잖아. 그것도 성빈이 같이 예쁜 애가 그러면. 뭐, 내 탓으로 울고 있는 건 맞긴 한데. 성빈이는 훌쩍거리며 말을 잇는다. 격정적인 울음은 아닌지라 금세 그쳤다.

“그런 상황이어도, 너한테 말했어야 하는데…… 흑! 나, 나……!”

“아니야, 괜찮다니까! 난 정말 괜찮아, 나도 그렇게 생각하고 있었어, 너가 정말 그러는 게 아니라 애들 눈치 때문에 그럴 거라고! 왜, 분위기 보면 다 알 수 있잖아! 눈빛이라던가, 네 반응이라던가.”

“……정말?”

나는 어떻게든 성빈이 울음을 멈춰보기 위해 내 머릿속에 있던 가설까지 털어놓으며 허둥댔다. 성빈이는 눈물을 닦으며 대답한다. ‘응, 그럼!’ 하고 너스레를 떨며 대답했다. 불안해서 그렇다. 혹시라도 누가 이 꼴을 보기라도 하면, 정말 전교에 쓰레기로 소문이 날 거야. 변태에, 여자애 울리기까지 하는. 아니 그거 말고도 아마 성빈이가 내 방에 있는 건 자연스럽게 내가 강제로 끌고 온 게 되겠지. 어떻게든 해코지(?) 해보려고. 아니, 이 사람들이 진짜! 내가 무슨 성욕에 굶주린 색마인 줄 아나! 참, 생각하는 것 하곤! 불건전해!!

“……어, 소, 손 좀…….”

“아. 아, 미안…….”

“아, 아니야…….”

문득 성빈이가 얼굴을 붉히며 하는 말에 퍼뜩 정신이 들었다. 성빈이를 진정시킨다고 허공에서 허우적대던 내 손이 언제 그랬는지 성빈이 손을 잡고 있었다. 그것도 양 손 다. 깜짝 놀라 얼른 손을 땠다. 어색한 분위기가 방 안을 잠식한다.

“……”

“……그, 어제 일 말해주려고 얘기 꺼낸 거였어.”

“……응, 고마워.”

성빈이는 어색해 하면서 말한다. 그건, 지금 이럴려고 온 게 아니라는 선을 긋는 말? 괜히 신경 쓰니까 더 어색하다. 어색한 침묵은 더욱 방 안을 잠식한다.

“애들 말로는, 웅도 네가 변태래.”

“그건 익히 들어 알고 있어. 내가 궁금한 건 어째서 그런 소문이 갑자기 퍼졌냐는 건데.”

“그……게. 좀 어이없긴 한데.”

“어? 알고 있는 거 있어?! 좀 알려 줘! 나 너무 답답해서!”

잠시 동안 서로 쳐다보지 않고 한 마디 말도 안 하던 우리. 성빈이의 말에 그 침묵이 깨졌다. 나는 성빈이의 말에 답답하다는 듯 대답했다가 성빈이가 무언가 알고 있는 투로 말하자 거의 달려들 듯 성빈이에게 들이대며 말했다. 그만큼 절박해서 그런거다. 성빈이는 살짝 당황한 눈치로 말한다.

“그 때 있잖아, 나랑 리유랑 같이 너 도와준 날.”

“어! 네 명이서 창고 정리하던 날?”

“응, 그 날. 그 때, 네가 리유 덮쳤었다고…… 그렇게 소문이 났어.”

“……에엑─?!”

덮치긴 누가 누굴 덮쳐! 리유는 그런 성적 대상이 아니라구! 아니, 성적 대상이라고 덮쳐도 된단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인식하는 바가 다르잖아! 관점이 다르다구, 리유는! 리유를 그런 눈(?)으로 보는 건 거의 신성모독이야! 범죄라고! 아동 청소년 보호법에 의해 3년 이하의 징역 혹은… 아니 어쨌든! 나는 결코 그런 짓을 하지 않았다구!! 너무 어이가 없어서 3초 정도 얼이 빠졌다가 소리치듯 괴상한 소리를 내버렸다. 성빈이는 어이없어 하는 나를 보고 이어 말한다.

“그러니까, 그게, 책장 무너질 때 있잖아.”

“……엑! 설마 그거 보고 내가 리유 덮쳤다고 하는 거야?! 그건 구해준 거잖아!”

“응, 그게 확실한데. 몰라, 어쩌다 그렇게 됐는지. 애들은 아마, 네가 덮친 그 구간만 봐서 그런가봐. 무엇보다 소문이 악질인 건, 네가 가, 가슴 만졌다고, 그런 소문이라…….”

“……히이이익! 너무하잖아, 그건!!”

성빈이는 ‘가슴’ 이란 단어를 본인 입으로 말하기 부끄러운지 머뭇거리며 말한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어 뭐라 답할 말을 못 찾다가 도저히 억울해서 소리를 질렀다. 미칠 노릇이네. 이건 정말 오해잖아! 난 엄연히 리유를 구해준 거라구! 거기서 그럼 내가 가만히 있어?! 책장이 리유 덮치고 있는데! 못해도 크게 다쳤을 거라구, 머리에라도 부딪혔어봐! 생명의 은인인데!

아니, 그리고, 정작 리유 본인은 아무렇지도 않고 도리어 고마워하는데! 왜 자기들이 성화야! 가, 가슴이야! 가슴이야 만지긴 했지만 아무 느낌도 없었어! 아무 느낌도 없었다고 죄가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니 그게 아니라! 그건 정당방위였잖아! 피치 못할 사정이었다구! 게다가 또, 또 반복해서 말하는 것 같지만 리유 본인이 아무렇지도 않아 했잖아! 정작 내가 구해줘서 한 2시간은 내내 미안하다고 미안하다고 얘기했던 리유인데!

하, 참. 나는 그것도 모르고, 지나가던 여자애 세 명 정도가 그것 보고 자기들끼리 수군대던 걸 보고 ‘훗 리유를 구한 멋진 모습을 봤으니 좀 긍정적인 이미지가 심어 졌으려나’ 하는 거지 같이 낙천적인 생각이나 하고 있었구나. 지금 보니 그 세 명의 여자애들이 소문을 낸 원흉들이구나. 이 지지배들이……! 나는 너희가 누군지 모른다. 하지만 나는 너흴 찾을 것이다. 찾아내서, 죽여ㅂ…… 아니, 그건 좀 심하고. 할 수도 없는 일이고.

“오해라고, 그건 내가 봐서 알잖아. 상처도 리유는 하나도 없고 네 다리만 다쳤는데. 정말 오해라고, 그런 애 아니라고 말하려고 했는데…… 이미 소문은 퍼질대로 퍼져서 내가 어떻게 할 수가 없었어.”

“응. 충분히 무슨 말인지 알겠어.”

“……그래도! 난, 비겁하게 피했어! 어떻게 해서든 제대로 말했어야 하는데, 네 잘못이 아니라고! 그치만, 그치만 난…….”

“아니야, 아니야. 그게 맞는 거야. 너까지 도매금으로 까이는 건 나도 원하는 게 아니니까. 그보다, 왜 여자애들은 다 본인이 괜찮다는데 자기들이 난리야. 난 진짜 괜찮아. 그러니까 그런 말 하지 마! 울상도 짓지 말구!”

“……응. 알았어. 고마워.”

성빈이는 굉장히 과민하게 반응하며 말한다. 발작이라도 하듯 아담한 몸을 파르르 떠는 게 절로 가엾다. 자기 자신에 대한 결벽증 같은 걸까, 성빈이의 이 반응은. 자기가 정한 깨끗한 기준이 있는데, 현실에 굴복해서 그 기준을 지키지 못해 이렇게 슬퍼하는 거구나, 그런 생각이 들어.

하지만 그대로 두면 또 감정이 과잉돼서 울어버릴 까봐, 나는 짐짓 꼭 리유에게 하듯이 일방적으로 훈계를 하며 명령조로 말했다. 또 그걸 그대로 듣는 성빈이는 꽤나 귀엽다. 성빈이는 ‘그거 말해주고 싶어서 왔어.’ 하고 자리에서 일어난다. 나도 일어나서 ‘고마워.’ 하고 짧게 대답했다. 성빈이는 모처럼만에 나를 보고 방긋 천사 같은 미소를 지어 보이곤 ‘그럼 갈게, 힘 내. 이따 학교에서 봐.’ 하곤 말한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고 다시금 고맙다고 하곤 성빈이와 같이 방에서 나왔다. 2층으로 올라가는 성빈이, 다시 기숙사를 나서는 나.

“어딜 가시나.”

“엑…… 아, 안녕하세요, 선생님.”

막 기숙사 정문을 나서서 몇 발자국 걷기도 전에 특유의 약간 낮은 저음이 들린다. 여자 기준으로 저음인 목소리는 틀림없이 선생님. 뻣뻣하게 고개를 돌리니 편안한 복장에 머리가 산발로 퍼져 있는 사감 선생님이 보인다. 아아, 선생님은 여신은 아니고 사람 맞군요. 저랑 비슷한 머리네요.

“기숙사에 아침 점호 있는 거 말 안 해줬나? 누가 기상시간 전에 일어나서 맘대로 돌아다니지?”

“아…… 그게, 씻으려고…… 씻고 돌아올게요!”

“씻고 돌아온다는 놈이 가방까지 싸들고 가는 걸 믿으라고? 규율 위반으로 퇴사당할래?”

“아아…… 아뇨. 그럼 위에 올라가서 씻을까요.”

“절대 안 되지. 그보다 그렇게 하면 너 더 왕따 당할 걸.”

“알면서 왜 그래요!! 저 놀리는 거죠!”

“후훗♡ 알고 있네.”

“아 진짜! 지금 심각하다구요!”

선생님은 당연하다는 듯 말하며 눈웃음 치신다. 이런 누나 있으면 정말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선생님은 하품을 한차례 하시더니 늘어지는 목소리로 말하신다.

“가, 오늘은 특별히 봐줄게.”

“어, 정말요?”

“어─ 워낙에 너 정신없으니까. 특별규율이고 뭐고 적용할 틈이 없네. 가서 잘 하고나 와.”

“가, 감사합니다!”

“건투를 빈다, 잘 하고 와.”

“응? 선생님 출근 안하세요?”

“아니. 나도 이제 씻어야지.”

“근데 꼭 안 보는 사람처럼 그래요! 학교에서 보잖아요!!”

“후훗. 그럴 땐 그냥 인사하고 가는 게 좋은 거지. 그래그래, 까다로운 녀석.”

“……어휴. 네네, 알겠습니다.”

선생님과의 짤막한 대화를 마치고 다시금 학교로 향한다. 다행이 허락을 해 주셨다.


학교로 걸어가며, 나는 곰곰이 생각해봤다. 이제 원인도 알았다. 급속도로 소문이 퍼진 건 아마도, 여자애들의 수다 떠는 본성 덕분이겠지. 거기다 기숙사에 살고 있는 여자애들 위주로 먼저 한 번 소문이 퍼진 뒤에 학교 애들에게 전파됐을 테니까 소문이 퍼지는 속도는 더욱 빨랐을 테고. 이제 오해를 풀기만 하면 된다. 하지만─ 어떻게.

내 말을 믿어줄 애들은 없다. 애초에 죄인에게 발언권을 리가 없지만, 죄인인 것도 아니지만 어쨌든 불합리한 상태에서 나는 내 상황을 변호해야 한다. 그것도 그들 입장에선 씨알도 안 먹힐 변명 같은 말을. 가장 좋은 건, 리유와 성빈이의 증언인데.

리유는 본인이 직접 말하는 것인만큼 가장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다. 다만 리유 자체가, 여자애들 사이에서 친화력이 0에 가깝기에, 여자애들이 오히려 ‘쟨 저 더러운 애랑 같이 노는 애잖아. 틀림없이 한통속일거야’ 하는 말을 들을수도 있다. 자칫 잘못하면 리유가 ‘노는 애’ 가 돼서 어린 나이임에도 남자애에게 몸을 함부로 굴리는(!) 그런 이미지가 돼 버릴 수도 있다. 아니 그건 무슨 상상인데. 몸을 함부로 굴리다니, 이 무슨 적절치 못한 어휘력이냐.

성빈이의 정직한 발언이 그나마 지금 현실에선 가장 영향력이 크다. 다만 그것도 한계점은 있는 게, 성빈이 혼자만의 발언으론 대세를 뒤집기가 힘들다는 것이다. 제길, 성미나 지선이하고도 미리미리 친해져서 내 이미지를 안심할 수 있는 남자로 만들었다면 그렇게 싸늘한 표정을 짓는 일도 없었을 텐데! 여러모로 난관이 많다. 오해인 걸 알았는데도 일을 해결하기가 이렇게 힘들다니. 아니, 생각만 해서는 안 된다. 직접 부딪혀 봐야지. 여기선 또 어젯밤 선생님 해 주신 말이 떠오른다. 주변을 보지 말고 중심을 보라고. 여기서 중심이라면……?

“엇 차거. 아오…… 추워 죽겠네.”

학교는 아직 아무도 오지 않았다. 교실은 겨울 못지않은 추위에 냉기가 다 느껴질 정도다. 화장실을 더욱 춥다. 다행인 건 따듯한 물이 나온다는 점. 추위에 떨며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으며 생각한다.

중심에 있는 애가 누굴까. 아직 난 우리 반 애들 다 파악도 못 했고, 서열 같은 것도 전혀 모르겠는데. 설령 우리 반 여자애들 이름이랑 얼굴이랑 다 외울 정도로 많이 본다 해도, 여자애들의 서열은 전혀 모르겠는데. 애초에 여자애들이 서열 같은 게 있어? 남고라면 틀림없이 엄격히 구분된 신분(?) 같은 게 있지만 여자애들은 딱히 그런 건 없어 보이는데. 확실한 건 하나 있다. 반 전체에 영향력을 끼칠 만한 애가 주동자라는 것. 머리를 손 건조기에 대고 말린다.

교실로 돌아왔다. 여전히 아무도 없는 교실. 누가 학교에 올 만한 시간은 아니다. 샴푸와 수건 등을 정리하고 가방도 정리하고 책상 위에 적힌 낙서들을 어떻게든 지워보려 노력했다.

‘드르륵.’

“……!”

한참 그렇게 혼자 교실에 있는데 문 열리는 소리가 들린다. 누가 이렇게 학교에 일찍 등교하는 거야 하고 앞문 쪽을 쳐다보니 의외라는 듯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내 쪽을 쳐다보는 여자애는, 희세. 곧 내게서 시선을 돌리고 교실로 들어와 문을 닫고 자기 자리에 앉는다. 아아, 이거 또 어색해졌는걸.

희세는 앉자마자 책을 꺼내 말없이 보기 시작한다. 익숙한 끈적끈적한 어색한 적막이 교실 안을 감싼다. 아아, 정말 이 시간, 이 공간, 겪기 싫은데. 왜 여자애랑 둘만 있으면 이런 공기가 되는 거지. 어떻게든 어색한 걸 해결해야지. 희세랑은 전혀 안 친하지만, 조금은 아는 척을 해볼까. 아니, 역효과지 않을까? 지금 가뜩이나 왕따 건 때문에 안 좋은데.

“책 읽는 거야?”

“히익!”

나는 희세의 뒤쪽으로 가 힐끔 책을 봤다. 전교 1등인 희세이니 교양도서나 순수문학 책일 줄 알았는데 의외로 그냥 흥미 위주의 소설. 그것도, 독서량이 바닥을 찍는 내가 읽은 적이 있는 책. 그래서 마침 좋은 기회구나, 하고 말을 걸었는데 희세는 소스라치게 놀란다.

“저, 저리 가! 엄청 기분 나쁘거든?! 말 걸지 마!”

“아, 알았어…… 미안.”

희세는 굉장히 히스테릭하게 말하곤 고개를 홱 돌린다. 하지만 왜일까, 그 모습을 보니 어제 나에게 해코지를 하던 희세의 모습이 겹쳐 보이는 건. 어제의 희세는 몹시 당당하고 도도하고 마치 여왕님이 미천한 것들을 내려다보는듯한, 그런 눈빛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굉장히 당황해선, 마치 항거할 수 없는 맹수에게 저항하는 동물의 겁난 눈과 같은 반응을 보인다. 아니, 내가 뭐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남성 공포증이라도 있나.


─생각이 거기까지 미치니, 갑자기 어제 있었던 일들이 머릿속에서 사진이 휙휙 지나가듯 떠오른다. 일부러 시비를 거는 듯한 희세의 말, 그리고 그 희세를 따르며 나에게 한 마디씩 비수를 던진 여자애들. 그건 마치, 희세가 선동하고 아이들은 따르는 그런 모양새. 그렇다면, 그렇다면 중심인물은……!


희세?!!


작가의말

어제는 컨디션이 안좋아 2편도 못 썼습니다. 분발해야겠네요...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0

  • 작성자
    Lv.42 지키미삼
    작성일
    14.01.16 22:07
    No. 1

    어서 써 주세요 기다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6 22:22
    No. 2

    하하... 평시(?)라면 쓴 것 전부 토해내고 다음 것을 쓰겠지만, 아무래도 연참 중이라... 흑흑. 조금만 참아주세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6 rosemary..
    작성일
    14.01.16 23:17
    No. 3

    어서써주세요...~~ 현기증난단말이예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6 23:18
    No. 4

    히잉... 가, 감사합니당 ㅎㅎ 최대한 쓸게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80 똑딱똑딱
    작성일
    14.01.16 23:41
    No. 5

    성실한 연재, 거기다 재미까지...감사합니다 작가님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6 23:46
    No. 6

    아하하, 감사합니다. 재밌게 봐주시고 댓글도 달아주셔서 정말정말 행복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0 역주행
    작성일
    14.01.16 23:43
    No. 7

    흠, 서열이니, 줄서기니 하는 건 여고가 남고보다 훨씬 셀걸요? 무서울 정도인데...
    저도 비슷하게 변태 취급을 받은 적이 있지요. 공학에서 터진 일이라 저를 잘 알고있던 사람들도 '진심으로' 절 피하더군요. 주로 남자애들이. 그때 제 대응은... 소문을 살짝 뒤틀어서 내는 거였습니다. 소문을 내는 아이에게 불리해지도록. 어차피 학생이라는 게 뭐 하나 터지면 지들 좋을대로 해석하잖아요? 그래서 제 소문에 딱 한문장을 더해서 소문 터뜨린 놈 사회적으로 매장시켜 버렸습니다. 학교 전체에 소문이 퍼졌지요. 이래저래 이용할 게 많은 놈이라 약점을 만들어 둔 거죠.

    그건 그렇고, 주인공은 어떤 대응을 할 지가 궁금해지네요. 빨리 다음편!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6 23:46
    No. 8

    아아, 그렇군요... 남고에서 나고 자란 저로써는 여자애들의 그런 미묘한 신경전을 묘사할만한 지식이 전무하지요. 다만 여고 기숙사까지 나온 한 여자 사람의 조언으로, '여자애들은 그렇게 서열 없고 끼리끼리 노는 성향이 강하다' 는 말을 한 마디 주워 듣고 그대로 적용했지요. 확실히, 여자애들이 더 은근한 무언가가 있을 것 같습니다. 집요할 것 같기도 하고...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 테미시아
    작성일
    14.05.23 15:23
    No. 9

    찾을것이다 찾아서 ㅈ...깨알같은 드립 좋아해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6.07 11:37
    No. 10

    너희를 찾을 것이다. 찾아서, 죽여버릴 것이다.
    깨알 드립일 찾다니! 감사합니다, ㅎㅎ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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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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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03화. 창고 정리! +7 14.01.13 4,308 97 20쪽
8 02화 - 4 +8 14.01.12 4,499 141 22쪽
7 02화 - 3 +12 14.01.12 4,578 95 18쪽
6 02화 - 2 +6 14.01.11 5,807 173 19쪽
5 02화. 왕따인가, 나. +10 14.01.11 5,614 102 19쪽
4 01화 - 4 +14 14.01.10 6,431 155 18쪽
3 01화 - 3 +12 14.01.10 6,746 162 20쪽
2 01화 - 2 +14 14.01.09 8,310 183 19쪽
1 01화. 혼자 서는 이야기 - 1 +21 14.01.09 12,582 28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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