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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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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10 22: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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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4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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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5
글자
18쪽

01화 - 4

DUMMY

선생님은 나를 차로 안내한다. 오, 역시 어른인가. 하긴, 학생들하곤 급이 다르지. 그래도 젊은 여성답게 경차다. 부담 없이 차를 타고 선생님은 시내로 내달린다.


“선생님들은 급식 안 드시고 밖에 나와 사먹나요.”

“응?”


적당한 국밥집에서 국밥을 시켜 먹는다. 선생님은 의외로 내장탕을 시켜 먹는다. 여선생님이라 뭔가 달달하거나 양 적고 맛 없는 그런 거 먹을 줄 알았는데. 의외로 이런 소탈한 음식을 먹는구나. 나는 좋아하는 순대국밥을 시켜 먹었다. 밥을 우적우적 씹으며, 선생님을 힐끔 보고 말했다. 선생님 역시 TV를 보고 있다 내 질문에 힐끔 나를 본다.


“아, 모르는구나. 우리 학교 급식 아니야.”

“에에?”

“도시락을 싸 오던지, 알아서 사 먹던지. 보통 애들은 도시락 싸오는데. 몰랐구나.”

“아… 네.”

“데려오길 잘 했네. 평소엔 정자랑 같이 먹는데, 오늘은 정자가 일이 있다네. 남자친군지 뭔지 만나러 왔다나. 빌어먹을 년, 누구는 남자친구 없어서 애기랑 밥 먹고 있는데… 아후, 짜증나네…!”

“죄, 죄송합니다.”

“네가 죄송할 건 아니지.”


선생님은 이어 말하다 아까 아침에 봤던 살인자의 눈을 하며 혼잣말한다. 으으, 무서워! 괜히 담임선생님이 노처녀라고 하는 게 아니구나. 저런 반응을 보이니까 노처녀라고 놀리는 거겠지. 그래도 너무 심해, 바로 앞에서 노처녀라고 하는 건. 무슨 악취미야.


“힘든 거 있으면 선생님 품에 안겨서 울어도 좋아. 뭐, 전담 선생님까진 아니어도 사감으로서 그 정도는 할 수 있으니까.”

“안 울어요! 애초에 그 정도로 울 일은 아니잖아요, 여고 다닌다고.”

“흐흥, 혼자 밥 먹고 혼자 다니는 게 얼마나 쓸쓸한 건지 잘 모르는구나. 겪어보면 알겠지. 내가 왜 그 답답이랑 같이 밥을 먹고 다니는데.”

“……그야.”


선생님은 어른의 미소를 지으며 말한다. 저거, 좀 싫은데. 모든 걸 먼저 겪어보고 ‘너도 이 나이 돼 봐라.’ 하는 표정. 사실 약간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도 사실이기에 더욱 선생님의 저 미소를 보기 싫은 것이다. 정말 막막한 기분밖에 안 드니까. 밥도 혼자 먹어야 하고, 다니는 것도 혼자 다녀야겠네. 단지 남자애란 이유로. 여자애들이 나에게 다가오는 게 서먹서먹하기도 하지만 그건 나도 마찬가지다. 당당하게 대한민국 남자 중학교를 졸업한 건아인 나다. 이제 당연하게 남고로 가서 남중─남고─공대─군대─복학 테크를 타려 했는데… 잠깐, 그러면 안 되잖아?! 아니, 원래 스텟은 몰아서 찍어야지, 안 그러면 어중간한 마검사 밖에 더 돼? 나를 누구라고 생각하는 거냐! 병신이 된다면 하늘까지 뚫으리! 나는 찌질이가 아니야. 최강아다 정웅도다!!

…혼자 뭐하고 노는 걸까. 밥을 다 먹고 선생님께 꾸벅 잘 먹었다고 인사하고 차를 타고 돌아왔다. 선생님은 ‘귀여워’ 하며 머리를 쓰다듬는다. …기분이 나쁘진 않네. 교실로 돌아오니 여전히 시끌시끌 떠들던 여자애들이 조용해지는 기적을 보게 된다. 그냥 나 같은 건 신경 안 써도 되는데.


“밥 먹었어? 웅진아?”

“응, 웅도야.”

“아아! 미안, 미안… 이름을 잘 못 외워서.”

“괜찮아. 밥은 먹었어.”


자리에 앉자 유일하게 나에게 친절하게 대해주는 성빈이가 친절하게 물어본다. 그리곤 이름을 잘못 말해 부끄러워하며 미안하다 사과한다. 뭐, 흔한 이름은 아니니 납득은 한다. 이제 지루한 오후 수업의 시작인가. 지루한 수업을 들으며, 나는 생각했다.


그래, 긍정적으로 생각하자. 상황이 너무 극적으로 돌아가니까 내 생각도 부정적인 방향으로만 돌아갔구나. 그래, 여고를 다니니까! 여자애들 마음껏 볼 수 있잖아. 어쩌면 팬티 같은 것도 마음껏 볼 수 있을 수도 있고. …무슨 악취미냐, 그건! 어찌됐든 남중 3년간 절간에 사는 것처럼 전혀 보지 못하던 여자애들 마음껏 볼 수 있잖아. 지금이야 어색하지만 몇 주 정도 지나면 얼마 정도는 친한 애들이 생길 수도 있겠지. 그럼 그게 어디냐! 어딘가의 누구처럼 ‘나는 친구가 적’지만 여자친구는 많이 있는! 그런 상태가 될 수도 있는 거잖아. 좋다, 딱 좋다. 이대로 장밋빛 고교생활을 여는 거야. 사나이 정웅도! 못할 것도 없잖아! 그래, 처음엔 조금 과묵한 캐릭터로 가다가, 여자애들이 못 하는 일, 예를 들면 힘 쓰는 일이라든지, 그런 걸 해서 매력을 발산하면… ‘우홋! 멋진 남자!’ 하면서 여자애들이 반할 수도! 아니, 그건 좀 아닌 듯하다. 무슨 70년대 영화도 아니고. 기숙사 문제도, 그리 심각하게 생각하지 말자. 뭐 어떻게든 되겠지. 짐은 학교 끝나고 3시간이 걸리든 4시간이 걸리든 열심히 정리해서 다른 데에 쑤셔 박으면 내 방이 생기는 거잖아. 혼자 쓸 수 있는 내 방! 자위도 열심히 할 수 있는 개인 방! 아, 아니, 그건 아니고. 그래, 열심히 살아보자. 이런데서 침몰할 내가 아니다. 더욱 열심히 노력하고 노력하면…!


“우, 웅도야!”

“……어?”

“정웅도!”

“네, 네!”


그렇게 생각의 나래를 펴고 있는데 옆에서 다급하게 부르는 성빈이의 목소리. 응? 하고 고개를 돌리니 날카로운 소리가 내 귓전에 박힌다. 아침에 봤던 무서운 교무주임 선생님. 아차, 그 선생님 수업시간이었구나.


“학교 첫날부터 무슨 딴 생각을 하고 있었을까? 우리 웅도 군은? 웅도 군은 남학생이니까, 다른 애들보다 월등히 눈에 띄는 거 알고 있지?”

“……넵.”

“왜, 꽃 같은 여고생들이 주위에 있으니까 마음이 진정이 안 돼? 막 야한 생각이 불끈불끈 들어?

“아하하하하하.”


교무주임 선생님은 팔짱을 끼고 나를 내려다보며 말한다. 선생님의 농담에 여자애들이 또 까르르 웃는다. 어이어이, 농담으로라도 그런 말 하지 말라구. 가뜩이나 난 아무 짓도 안 했는데 왜 다 그런 사람으로 몰아가는 거냐구. 뭐, 야한 생각을 안 하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지금은 안 했다구요. 수업시간에 딴 생각 한 건 내가 잘못이긴 하지만. 결국 난 조리돌림 당하듯 교실 앞으로 나와 10분 동안 팔을 들고 서 있었다. 초등학생도 아니고, 이게 뭐야. 여고라 그런가. 남고였다면 화끈하게 엎드리고 6대 정도 맞고 끝났을 텐데.


“…….”


나는 앉아서 유심히 여자애들이 하는 짓을 살펴보고 있다. 야자 시작하기 전 저녁시간, 어차피 같이 먹을 사람이 없기에, 난 적당히 학교 앞 가게에서 빵조가리나 사다 때웠다. 앉아서 가만히 애들이 하는 짓이나 구경하고 있다. 여자애들은 아침까지만 해도 나를 경계하는 태도였지만, 지금은 그럭저럭 있는 둥 마는 둥 하는 취급이다. 그래야 나도 편하니 서로 좋은 태도지만. 엄청 시끄럽게 떠드는 애, 과자 먹으면서 다리 덜덜 떠는 애, 조용히 책 읽고 있는 애. 성별만 여자로 바뀌었지 그다지 남자애들이 하는 짓하고 차이가 없구나. 아, 소소한 차이가 있다면 그런 건 있겠네. 야한 얘기를 안 한다는 거하고, 육체적 활동을 잘 안 한다 정도.


“말뚝박기 할 사람!”

“나, 나!”

“……!”


옷, 하나 깨졌구먼. 덩치도 크고 어깨가 떡 벌어진 장군감 같은 여자애의 선창에 다른 여러 여자애들이 좋다고 손을 든다. 순식간에 8명 정도 모여서 저들끼리 시끄럽게 신나게 말뚝박기를 한다. 저게 무슨 촌극이람. 천진난만한 모습이 좋긴 한데 여자애들이 치마 입고 저러고 있으니까 썩 보기 좋진 않다.


“그래서, 오빠가 갑자기 키스를 하면서 손을…!”

“꺄아──! 저질저질! 그래서, 그래서??!!”

“아아~ 몰라!!! 그래서…”


아아, 두 번째 역시 깨져버리다니. 거기다 ‘몰라~’ 하면서 자기 친구한테 앙탈 부리듯 말하면서 뒤이어 말하는 건 뭔데. 게다가 나 듣고 있다고. 너희끼리 너희 첫경험 얘기하는 건 좋은데 남자애인 나까지 듣게 되잖아. 뭐, 상관 없으려나.


아직은 반 애들 얼굴과 이름을 다 외우지 못했다. 여자애들이 나에게 조심스럽고 경계하는 태도인 것처럼 나 또한 마찬가지이다. 이래 보여도 섬세한 남고생이다. 어느 날 덜컥 여자애들하고 친해질 순 없는 노릇이지 않은가. 이름을 외운 여자애는 세 명. 성빈이, 희세, 리유. 각각 특징적인 애들이라 금방 외웠지. 그러니까, 성빈이는 성천사, 희세는 거유, 리유는 로리. ……뭔가 이름 외운 연상법이 되게 불순하다?! 아니아니, 대표되는 이미지가 그렇다는 거지. 딱히 불순한 의도가 있었던 건 아니다. 저녁시간은 아직 꽤나 넉넉하게 남아 있어서, 반에 애들이 다 있진 않다. 어디보자. 성빈이는 아까 애들이랑 교문 밖을 나가는 걸 보니 밖으로 저녁이라도 먹으러 갔나보다. 희세도 혼자지만 도도하고 청순하게 머리를 흩날리며 나가는 걸 봤다. 역시 밥 먹으러 갔겠지. 그리고 나머지는…

리유…였던가? 자그맣고 활달한 꼬마애 같은 느낌. 하지만 그 리유란 애는 맨 앞자리 구석, 그러니까 내 자리에서 쭉 앞으로 다섯 칸 앞자리에 앉아 있다. 그것도 심각하게 풀이 죽은 모습으로. 뭐랄까, 주인에게 혼쭐이 나서 풀이 죽어 있는 강아지 같은 느낌이랄까. 리유에게 강아지귀가 달려 있다면 기가 죽어서 귀가 쫑긋 하지 못하고 가라앉은 형태겠지, 지금 기분이라면. 음, 이상하네. 어제 만나서 처음 얘기해 봤을 때나, 오늘 자기소개 때의 태도나, 굉장히 활달하고 귀여운 애라 생각했는데. 왜 애들하고 잘 어울리질 못하고 있지. 의외로 어울리지 못하는 소심한 성격? 그런 건 아닌 것 같은게, 저들끼리 재밌게 놀고 있는 여자애들을 리유는 굉장히 부러운 눈으로 쳐다보고 있다. 눈빛만 봐도, ‘애들하고 같이 놀고 싶어!’ 하고 말하는 것 같다. 근데 왜, 저러고 있냐는 거지. 여자애들도 무심하지, 저런 눈초리로 계속 무언의 압박을 가하는데 리유 쪽은 쳐다도 보지 않는다. 무슨 알력 같은 거라도 있는 걸까. 뭐, 내가 나서서 말을 꺼낼 처지는 못 되지. 지금 내 코가 석 자인 상태인데. 그래도 풀죽어 있는 모습은 안쓰러워 보인다. 저 애라면, 아이처럼 활달하게 있는 게 맞는 것 같은 느낌이다. 나중에 말이라도 걸 수 있게 되면 조금은 웃게 해 주고 싶네. 어이어이, 팔자 좋은 말 하고 있네. 나부터 살아야지 뭘 남을 돕든지 하지. 지금 네 꼴을 보라고, 혼자 앉아서 애들 구경이나 하고 있는 네 신세를. 마음의 소리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는 나다.





“야─ 기분 좋다! 으아아아아!!”


나는 소리를 질렀다. 정말 기분이 좋아서 그런 건 아니고, 반어법 같은 거지. 지나가던 여자애들이 이상한 눈으로 쳐다본다. 어차피 아무 짓도 안하고 가만히 있어도 쳐다보는 거, 이상한 눈으로 쳐다봐도 더 이상할 건 없다. 될 대로 되라지.

등교─수업─보충수업─야자─하교. 대한민국 학생 표준 일과표대로 충실하게 모든 일과를 끝내고 집으로 돌아가는 발걸음은 가볍다. 처음 해 본 야자도 그리 나쁘진 않은 것 같다. 지겹도록 지겨운 게 흠이긴 하지만. 그래도 오늘 일과는 모두 마쳤으니까, 집으로 돌아가자. 집으로 돌아가 피곤한 몸을 눕히고 쉬자꾸나.

……집이 없잖아!! 으아아아!! 이렇게 늦게 끝나면 방을 정리할 수도 없잖아!! 정말, 야자가 있는 건 함정이었다. 생각지도 못했는데. 나는 당연히, 여고니까 야자가 없을 줄 알았다. 우리 지역 여고는 야자가 없다. 위험하다나, 어쩐다나. 반면 남고는 있지만, 그래서 남자애들이 엄청 반발하지만 별 소용은 없다. 하지만 이 성빈여고는 어째, 여고라는 건 관계없이 야자를 한다. 다들 귀한 딸들이라 그런가 학교 바깥에는 딸들을 데려가려는 아버지들이 잔뜩잔뜩 자동차 안에서 기다리고 있다. 엄한 세상이니 그 정도는 어쩌면 당연한걸까. 나라도 딸이 야자 끝나면 데리러 오겠지만. 딸내미바보 아버지의 심정을 조금은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지금 시각은 10시. 아무리 봐도 짐을 정리할만한 건 안 될 듯 싶은데. 그래도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기숙사 쪽으로 향했다.

낮에 봤던 기숙사는 4층까지 전부 환히 불이 켜 있다. 기숙사로 향하는 여학생들이 나를 보고 기겁을 한다. 남자애라는 요인에 밤이라는 환경적 요인까지 합쳐지니 더욱 괴물처럼 보이는 걸까. 아니, 내가 무슨 성에 굶주린 색마도 아니고, 보는 족족 잡아먹고 그런 거 아니에요! 해치지 않아요! 뭐, 말이 그렇다는 거지 여자애들의 남자에 대한 근원적인 두려움은 이해한다. 충분히 무섭잖아, 얼마나 흉흉한 세상인데. …그래도 난 좀 봐달라고. 내부 사람인데. 이 학교 다니는 사람인데. ─성폭행은 주로 전혀 모르는 사람보다는 면식범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한다. 주로 이웃 오빠, 가족, 친구 등… 아, 아니라구!! 난 아니야!!


“저… 안 될까요.”

“응. 안 되지.”


여자애들의 무한한 눈총을 받으며, 난 사감실의 문을 두드렸다. 충격적 패션의 사감 선생님이 등장했다. 머리는 감고 말리기 귀찮은 지 마치 우리 엄마처럼 수건으로 싸고 있고, 옷은 편한 면 티와 짧은 면 핫팬츠를 입고 있는데, 각각 상의는 너무 헐렁해서, 하의는 너무 꽉 달라붙어서 눈을 어디에 두어야 될까 민망하다. 선생님이라면 야자를 안 하니까, 아마 빨리 퇴근해서 씻은 거겠지. 은은한 샴푸냄새와 바디워시 냄새가 물씬 퍼져 코를 자극한다. 냄새 좋은데. 향기로워서 가까이 다가가서 더욱 깊게 들이쉬고 싶은 느낌. 아, 이거 엄청 변태 같잖아. 그러나 눈 둘 데도 없어 참 난감하다. 선생님은 내 질문에 당연하다는 듯 대답한다.


“지금 시간이 몇 시인데. 소등은 11시까지야. 그 때까지 다 정리할 수 있겠어?”

“…아뇨.”

“그래. 그럼 잔뜩 벌려만 놓고 못 한다는 거잖아. 그러니까 안 되지.”

“…그럼 전 어디서 자라고… 기숙사에서 살라고 해 놓고.”

“그건 그렇기도 하네. 이 학교, 참 무책임하지? 사립이라 그래.”


어이어이, 본인이 그 사립학교 다니는 선생이라고. 무책임한 건 당신이야! 우리나라 모든 사립학교를 매도하는 말을 하고 있네. 나는 한숨을 푹 쉬고 결론부터 말했다.


“후우. 어쩔 수 없죠, 찜질방이라도 가야지. 정리는 주말에 해야겠네요.”

“뭣 하면 여기서 잘래? 자리 남는데.”

“…읏.”


선생님은 배려하기 위한 말인지 방 안을 가리키며 말한다. 나는 순간 망설였다. 솔직히 찜질방까지 가기 귀찮기도 하다. 거기다 솔직히 말이 좋아 찜질방에서 잔다지, 원래 용도가 찜질방인 게 아니잖아. 생각보다 시끄럽고 코 고는 아저씨도 많아서 잠자기도 불편하고. 그에 비하면 선생님 방에서 자는 게 더 편하고, 또 찜질방 돈도 굳을 수 있으니까 나을 수도 있다. 그러나… 아, 안 되지, 안 돼! 아무리 13살 차이가 나도 과년한 성인 여성하고 같이 잘 수는 없잖아! 아, 아니 딱히 무언가 기대하고 말하는 건 아니고! 지금 내 눈에 자꾸 거대한 가슴만 보이는 게 그 탓은 아니지만! 으아아! 건강한 남학생이라면 누구라도 그런 생각 하잖아?! 그러니까 안 자겠다고 말하고 있잖아!!


“후후, 또 무슨 생각해서 얼굴이 빨개질까?”

“…아, 안 했어요! 저 그냥 나갈게요.”

“우후훗. 부끄럼쟁이는 상상력이 뛰어나다던데. 넌 남자애가 되게 귀엽게구네?”

“으아아! 어딜 만지는 거에요!”

“누가 보면 꼬추라도 만진 줄 알겠다야. 볼 만졌잖아, 볼.”

“아아아악! 여자가 그런 말 쓰지 마요! 이상하잖아요!”


선생님은 능글능글하게 말하며 내 볼을 쓰다듬는다. 우왁, 뭐야 이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는다. 부끄럽기도 부끄럽지만 이상한 기분이 들어서 세 발자국 정도 뒤로 몸을 빼곤 말했다. 선생님은 여전히 위에 있는 사람처럼 나를 내려다보며 성숙한 미소를 짓는다. 으으, 마음에 안 들어, 저 미소… 뭔가 농락당하는 기분이잖아. 애완견이 주인한테 농락당하는 기분. 도망치듯 대충 ‘안녕히 계세요!’ 하곤 나섰다. 뒤로 선생님의 큰 목소리로 ‘언제든지 와~ 선생님이 재워줄게~’ 하는 소리가 들린다. 절! 대! 안 가니까!! 누가 쫓아오는 것도 아닌데 전력으로 달렸다.


“하아… 하아… 에이 X팔.”


적당히 뛰어가다 쌍욕을 하며 걷기 시작한다. 심장이 쿵쾅거린다. 어째 저 사감 선생님하고는 많은 연이 있을 것 같은 불길한 예감이 드는데. 모르겠다. 아아─

찜질방까지 걸어가며, 이런저런 생각을 하게 된다. 무인도에 표류한다면 이런 기분일까. 동독 가운데에 덩그러니 있는 서베를린이면 이런 기분일까. 나라고, 애들하고 친해지고 싶지 않은 건 아니다. 다만 영 쑥맥이라 말을 못 붙이는 것일 뿐. 아니아니, 오늘 겨우 하루 지났잖아! 오늘은 그럴 수 있어, 한 명 알게 됐잖아. 성빈이. 예쁘고 천사 같은 애였지, 좋은 애야. 그리고… 알게 된 건 아니지만 리유인가, 걔도 날 보면 아는 체 하고. 희세인가 하는 애는 날 보면 ‘흥!’ 하면서 왠지 싫어하는 눈치이지만. 그 외에는… 딱히 없네. 그래도 하루 등교한 것 치곤 괜찮은 수확인 것 같다. 찜질방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겁다. 평일에는 절대 짐정리를 할 수 없으니, 주말밖에 없나. 그럼 앞으로 4일간은 이런 생활을 유지해야 한다는 건데… 아─ 미치겠네. 돈도 돈대로 깨지겠고. 끼니도 다 바깥에서 때우게 생겼으니. 참 난감하다. 어떻게든 되겠지 하고 학교를 온 게 실책이었다. 어떻게든 안 되잖아! 엄마한테 전화로 징징댈 수도 없고. 걱정스런 미래를 살피며, 오늘 하루를 끝낸다. 찜질방에서.


작가의말

크흑... 9000자를 채우지 못 하다니... 치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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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4

  • 작성자
    Lv.11 후르뎅
    작성일
    14.01.18 17:52
    No. 1

    앗, 댓글이 없다! 재밌으니 달아주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8 18:25
    No. 2

    후훗,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56 liecryin..
    작성일
    14.01.19 00:55
    No. 3

    이쯤되면 불쌍하네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9 01:17
    No. 4

    아무래도 그렇지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4.01.20 02:28
    No. 5

    조금 뜬금없는 드립이 나오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전개가 부드러운 화였습니다, 주인공의 주변에 어느 가족이 없나 의문이 들기는 하지만 계속 진행되다 보면 이유가 나오겠지요. 수능 때 받을 스트레스를 당겨서 받는 주인공으로 보여 안쓰럽기도 하네요. 여고 모습을 보고 환상이 깨졌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20 03:41
    No. 6

    아무래도 1화다 보니까 쓰면서 뭔가 막히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화였습니다. 그래도 재밌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1 정체무실
    작성일
    14.02.05 06:25
    No. 7

    이야... 굉장한 필력이시네요. 여타 라노벨처럼 억지가 아니라, 제대로 심리묘사 하시면서 풀어나가는데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05 12:14
    No. 8

    에에, 그럴리가요... 칭찬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신수하
    작성일
    14.02.24 12:22
    No. 9

    휴...건필하세요 제취향은 아니여서 하차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21:49
    No. 10

    네, 뭐 어쩔 수 없지요.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5:28
    No. 11

    좋군요 ㅋㅋㅋ
    방금 읽다가 예쁜 여손님 들어오셔서 심장이 두근두근..ㅠㅠ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8.23 21:38
    No. 12

    오 아르바이트 하시나요. 근데 전 아르바이트 할 때 예쁜 여손님 와도 그러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더라고요. 아, 뭐 그냥 보는 것만으로 행복하긴 하지만...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4 12:05
    No. 13

    독서실 총무하는데 눈은 호강하는군요...부페일할때보단 아니지만... 뭐 관심 있는 분 있고 지금 상황이 좀 괜찮다면
    연락처를 낼름!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8.24 23:17
    No. 14

    우왕ㅋ굳ㅋ 연락처까지?! 대단하네요!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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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02화. 왕따인가, 나. +10 14.01.11 5,615 102 19쪽
» 01화 - 4 +14 14.01.10 6,432 155 18쪽
3 01화 - 3 +12 14.01.10 6,746 162 20쪽
2 01화 - 2 +14 14.01.09 8,311 183 19쪽
1 01화. 혼자 서는 이야기 - 1 +21 14.01.09 12,583 28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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