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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신의 글 쓰는 터

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웹소설 > 일반연재 > 라이트노벨, 로맨스

김태신
작품등록일 :
2014.01.09 05:53
최근연재일 :
2021.11.25 17:14
연재수 :
366 회
조회수 :
553,132
추천수 :
12,224
글자수 :
2,992,898

작성
14.01.10 07:07
조회
6,746
추천
162
글자
20쪽

01화 - 3

DUMMY

“선생님!”

“어? 으응! 정웅도! 웅도 맞지?”

“네, 저.”

“헤헤헷☆ 선생님 이름 잘 못 외우는데. 웅도는 하루 만에 외웠네!”

“아뇨, 이름이 중요한 게 아니라……”

선생님은 나이답지 않게 굉장히 귀엽게 반응하며 말한다. 이 사람도 참, 태평한 분이네. 괜히 엄마가 생각난다. 묘하게 천연덕스러우면서 덜렁거릴 것 같은 느낌이 꼭 우리 엄마가 젊다면 이런 느낌일 것 같다. 기분 탓이겠지. 선생님께 여쭤볼 건 기숙사에 관한 것.

그래, 알고 있다. 나도 그런 변태 쓰레기는 아니다. 남자가 돼서 여자 기숙사에 들어가려는, 파렴치한은 아니다. 그래도, 물어는 봐야할 게 아닌가. 원칙적으로 이 학교는 통학 불가능한 거리에 사는 학생은 기숙사에서 살게 돼 있다. 여자 기숙사에서 같이 사는 건 말이 안 되지만, 그래도. 나도 엄연히 이 학교 학생인데, 그럴 권리가 있는 거잖아.

짐짓 강한 척 하고 있지만 사실 나란 녀석은 세상 물정은 하나 모르는 보통의 평범한 고등학생이고, 이 부족한 점을 처리해 줘야 할 엄마는…… 자유부인이시다. 대책 안 서는. 애초에 이 학교에 오게 된 계기가 엄마가 원서를 제때 안 넣어서 그런 것이니, 그 쪽은 말 다했다.

“기숙사 관련해서 여쭤보고 싶은 게 있는데.”

“기숙사?”

“네, 제가 지금 몸만 학교 왔는데 어떻게 살 데가 없어서요…….”

“음─ 글쎄?! 그거는 그럼, 같이 교무실에 가자. 나도 그 쪽은 잘 모르거든. 사감 선생님이 계시니까, 물어보면 될 꺼야.”

“네.”

선생님은 방긋 웃으며 말한다. 그래도 다행이다, 담임선생님은 이런 귀엽고 착한 분이어서. 보면 볼수록 마음이 편해지는 분이다. 몸매가 별로인 건 안타깝지만. 뭐, 이렇게 친절하신데 그 정돈 커버할 수 있지.

「1학년 교무실」이라 써있는 곳을 지나쳐서 다른 곳으로 가는 선생님. 아, 우리 학년이 아닌가? 그보다 학년마다 교무실이 달리 있는 거야?! 오, 처음 봤어. 하하, 촌놈 티 팍팍 내는구먼. 선생님은 한 층 올라가서 「2학년 교무실」라고 쓰인 교실로 들어가신다. 나도 뒤따라 들어갔다.

“응, 영어 선생님하고, 사감 선생님을 겸임하고 계신 정혜라 선생님이야. 덧붙이면 노처녀야.”

‘퍽!’

“아악! 언니 왜 때려요오─”

“……선배라고 부르라니까.”

“안녕하세요…….”

교무실에 들어서자마자 선생님은 성큼성큼 맨 안쪽 구석자리로 날 안내한다. 그리고 매우 밝게 활기차게 인사하곤 그 여선생님한테 옆구리를 발로 차인다. 빠, 빨라?! 분명 이쪽은 쳐다도 안 보고 업무를 보고 있었는데?! 무시못할 스피드에 완력…… 괴물인가, 이 선생?!

선생님이 소개해 준 사감 선생님은 곁눈질로 보기에도 미인이다. 허리까지 오는 검은 머리칼에, 안경 너머로 보이는 반쯤 풀린 듯 졸려 보이는 눈. 선생님은 노처녀라고 소개했지만 그래도 엄청 노처녀는 아닌 듯 20대 중후반 정도로 보인다. 확실히 우리 담임선생님보단 나이가 많아 보이긴 하지만. 무엇보다…… 남고생인 내 시선을 압도하는 건 바로 가슴. 다이나마이트라고 해야 할까, 다이나믹? 입고 있는 블라우스 단추가 떨어질 기세로 팽팽하게 크다. 우오…… 진정한 성인 여성의 매력을 농염하게 뿜고 있는 것 같다. 만나자마자 굉장한 실례지만 어째 시선이 가슴으로밖에 안 간다. 선생님의 소개에 꾸벅 인사를 하자 그 사감 선생님은 아니꼬운 눈초리로 힐끗 나를 본다.

“아, 넌가. 그 여고에 온다는 변태 남고생이.”

“아, 아닙니다! 그런 게!!”

“아니긴 뭐가 아니야. 나이도 어리고 쬐끄매도 결국 남자새끼들이 하는 짓거리는 똑같으니까. 너도 지금 내 가슴 보고 있었지?”

“……아뇨!”

“아니긴, 고개 돌리지 마.”

“아, 덧붙히면 올해로 30살.”

“……너, 진짜 죽어 볼래?!”

“으아아아! 왜 때려요! 아앙, 아파요 언니~~”

사감 선생님은 굉장히 적개심 가득한 태도로 나를 대하며 말한다. 으아, 아무 짓도 안 했는데. 단지 남자애란 이유만으로 ‘나쁜 애’로 낙인찍힌 건가. ……가슴을 보고 있던 건 사실이지만. 아니야, 이건 선생님이 나쁜 거야! 그렇게 훌륭한(?) 걸 드러내놓고 있는 게 잘못이라구!

분위기가 살짝 무거워지려 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려는 찰나, 옆에서 담임 선생님이 한 마디 했다가 와장창 깨진다. ……아, 착하고 좋은 선생님이라 생각했는데. 가만 보니까 눈치 없이 상냥한 그런 캐릭터인가. 그러니까 전문용어로 ‘천연’이라고 하던가.

“그래, 뭐 때문에.”

“아, 언니 얘가 살 데가 없다는데. 기숙사 알아보러 왔데요.”

“……기숙사?”

담임선생님을 친히 응징한 사감 선생님은 일어난 그대로 내 앞으로 와 말한다. 우와, 키 크네. 170은 훌쩍 넘을 것 같다. 그렇다 해도 내 쪽이 미세하게 크긴 하지만, 거의 시선이 동등할 정도로 키가 크다. 약간 위압감마저 느낄 것 같은데, 이 선생님. 머뭇거리며 말하지 못하니 옆에서 담임선생님이 친히 대답해주신다. 목적을 말하니 안 그래도 삐딱하게 보던 사감 선생님은 코웃음을 친다.

“여고에 온 것도 모자라서, 이젠 여고 기숙사까지 오시겠다? 환장할 노릇이구만. 이 구제불능 변태를 어찌해야 할까.”

“아뇨, 그러니까 여긴 깊은 사정이…… 그보다 왜 선생님까지 저를 몰아 세우는건데요! 저도 지금 멘탈붕괴될 것 같은데!”

“그래요! 제 학생이에요!”

“……넌 좀 가만히 있을래?”

“네, 네! 때리지 마세요, 일 할게요! 청소할게요! 때리지만 마세요…….”

계속되는 홀대와 천시에 나는 살짝 발끈해서 큰 소리로 말했다. 그렇다고 영화에서 나오는, 양아치들이 선생님한테 대드는 그런 정도는 아니고, ‘나 화났다!’ 그 정도. 결코 예의가 없게는 하지 않았다. 그럴만한 깡도 없고. 당당하게 내 심정을 말하니 옆에서 담임선생님이 끼어들며 말한다. 사감 선생님은 눈을 살짝 감더니 곧 살인자 같은 눈을 하고 담임선생님을 쳐다보며 말한다. 담임선생님은 깨갱, 주인한테 맞고 벽 뒤에 숨는 강아지처럼 내 뒤에 숨으며 말한다. ……우리 선생님, 개그우먼? 만담 콤비?

“하아. 그래, 뭐 변명 정도는 들어주지. 그 깊은 사정이 뭔데.”

“네, 그러니까 그것이─”

사감 선생님은 처음부터 삐딱했던 자신의 선입견을 인정하는 건지 고개를 가볍게 흔들며 자리에 털썩 앉고 팔짱을 끼곤 나를 올려다보며 말한다. 지금도 충분히 아니꼬운 표정이라 신뢰는 가지 않지만, 나는 열심히 내 사정을 말한다. 생존이 달린 일이다.

──그러니까, 이 일은 어머니의 실수부터 시작되어…… 소인은 집도 처자식도 없이…… 찜질방을 전전하고 있사오며…… 헌데 교장 전하께서 ‘집 없는 백성은 모두 기숙사에서 살거라’ 하는 어명을 내리셨사오니……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그 정도로 얘기를 끝냈다. 사감 선생님은 내 말을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신다.

“……그래, 그러니까 기숙사에 들어오고 싶다는 건 여자애들이 팬티만 입고 돌아다니거나 샤워실을 몰래 실수인 양 들어가서 여고생들 알몸을 본다거나, 혹은 화장실에 몰래 들어가서 여고생들이 오줌 싸는 소리를 들으며 변태처럼 하악거리거나 할려고 들어오려는 게 아니다, 그런 말이지?”

“어떻게 그렇게 해석할 수 있는 거에요!! 그런 사람 아니에요, 저! 초면에 너무 하시잖아요! 앞에서도 말했지만 이건 어머니의 실수로부터 시작된 비극이라구요!”

“아아. 알았어, 장난 장난.”

사감 선생님은 표정 하나 안 바뀌고 숨 한 번 안 쉬고 부끄러운 말들을 줄줄 내뱉는다. 뭐야, 랩이야?! 준비라도 한 거야, 나 물 먹이려고??! 잔뜩 격앙된 반응을 보이는 나를 보며 사감 선생님은 장난이라고 씨익 웃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뭐야 이거, 선생님들이 다 이상해. 사감 선생님은 나를 힐끗 보더니 잔뜩 쌓인 책과 서류더미 쪽을 뒤지며 무감각한 목소리로 말한다.

“네 말은 이해했어. 네 마음도 대충은 알겠어. 그리고 네가 그렇게까지 변태는 아니라는 것도. 하지만 안타깝게도 우리 학교에 숙직실은 없어. 남녀가 한 기숙사에서 혼숙하는 건 법으로나 교칙으로나 사회적으로나 금지인 건 너도 잘 알 테고.”

“네. 그럼 전 어떻게……?”

그래, 이런 경우의 수는 생각하고 있었다. 그럼 학교에서 어떻게든 해결을 해 줘야 할 거 아냐. 하다못해 엄마한테라도 압박을 넣어 줘! 우리 엄마는 어째 내가 말하면 하나도 안 듣는단 말야. 학교에서 ‘웅도 어머니 되시죠? 네, 저희 학교 측에서 웅도가 집이 없다고 들어서……’ 이런 식으로 한 마디만 해 줘도! 적어도 하숙집 정도는 얻을 수 있을 거라구! 하지만 선생님은 그런 대답 대신 나에게 종이 한 장을 내민다.

“「기숙사 신청서」……? 엣? 안 된다고 하시지 않았어요?”

“…뭐, 기숙사는 안 되지만 사감실은 괜찮겠지. 나도 너도 조금씩은 불편하겠지만, 어쩌겠어. 네 집이 없는 건데. 살아도 좋아.”

“에, 에엣??!!!?!”

사감 선생님은 부끄러운지 살짝 얼굴까지 붉히며 수줍게 말한다. 되려 놀란 건 나다. 이 선생님, 왜 그래?! 방금 전까지 우리 담임선생님을 호쾌하게 때리던 호전성을 다 어디로 가고, 갑자기 웬 순수한 소녀 연기??! 게다가, 말이 되냐구요! 아무리 나는 학생이고 선생님은 어른이라도, 성인 여성하고 같은 방을 쓰고 살라니! 그럼 자위는 어디서 ㅎ…… 아니, 그게 중요한 게 아니라. 아니, 중요해!

“뭐!? 빨래통에 있는 내 브라하고 팬티를 딸감으로 자위를 하겠다고?! 너, 잘도 그런 말을…… 선생님을 성희롱 하는 것도 아니고.”

“한 적 없어요!!!! 게다가 어떻게 같이 살아요! 차라리 찜질방을 전전하고 살 거에요!!”

“어머. 그거 되게 실례되는 말 같은데. 선생님이 그렇게 싫어?”

“그런 문제가 아니라!! 그…… 그렇잖아요! 아무리 그래도 선생님도 여잔데!”

“푸훗. 귀여워.”

“으아아아!!”


사감 선생님은 갑자기 의자를 뒤로 빼며 손으로 몸을 가리고 말한다. 뭐야, 생각을 읽혔다?! 아니, 난 ‘자위’ 밖에 생각 안 했는데! 그런 자세한 설정은 언제 붙은 건데??! 성폭행범을 앞에 두고 자신의 몸을 보호하려는 여성의 의지에 난 잔뜩 발악했다. 이 선생님, 재미 들린 것 같애! 아니나 다를까, 피식 웃으며 다시 원래의 평정심 가득한 표정으로 돌아온다. 으으, 이 선생님이 진짜……

“어머나! 언니 그런 거였어요?! 세, 세상에. 아무리 그래도 자기보다 13살이 어린 남자애를! 그거 진짜 대박 불륜이라구요! 하, 하긴, 젊은 애가 좋긴 하지만…… 언니면 아무리 남고생이라도 다 말려버릴 것 같지만…… 전 그래도…… 아니, 얘 완전 애기잖아요? 근데 어떻게─”

“정자야. 진짜 죽고 싶어서 그래?”

“으앙! 이름으로 말했어, 이제 정말 죽일 거야!”

“아, 놓으세요. 선생님이 너무 말을 막 하니까 그러잖아요.”

“으앙! 너까지 날 버리면 어떡해! 난 이제 어떡하라고!”

“저한테 물어보지 마세요!!”

담임선생님의 어이없는 억측에 사감 선생님은 진정 화가 난 듯 얼굴에 그늘이 지고 눈은 다시 살인자의 눈으로 바뀌었다. 정말 말로 형용키 힘든 오오라 같은 게 느껴질 정도다. 담임선생님은 또 내 등 뒤로 숨는다. 이 선생님들이 진짜! 말마따나 자기들보다 한참 어린 남학생 두고 뭘 하는 짓이야. 결국 담임선생님한테도 화가 난 나는 스윽 회피하곤 사감 선생님께 패스했다. 울상이 되는 담임선생님. 불쌍하긴 하지만 본인이 눈치 없이 도발한 게 잘못이잖아.

“그래. 어찌됐든─ 네 딱한 사정은 잘 이해했다. 내 방에서 살라고 한 건 장난이니까, 진지하게 받아들이지 말고.”

“진지하게 안 받아들였어요!!!”

“어라? 아까 얼굴 빨개졌던데. 생각한 거 아니었어? 브라.”

“아니에요, 정말!! 어휴.”

자위 정도는 생각했지만, 그런 건 상상도 안 했어! 역시, 나이 30 된 노처녀라 섹드립의 정도가 여타 여고생들과는 차원이 다르다. 이크, 혹시라도 이 말까지 선생님이 읽으면 완전 작살나겠는데. 다행이 선생님이 독심술이 있는 건 아닌지 다른 말로 넘어간다.

“이따 점심시간에 알려줄 테니까. 일단 기숙사에서 사는 거긴 하니까, 그 신청서 써서 점심시간에 여기로 와.”

“네……”

“그래, 볼 일 다 봤으면 가 봐.”

“네.”

“으흥, 죄송해요, 언니……”

“……언니라고 하지 말라니까 좀.”

잔뜩 응징당해 흐느적거리는 담임선생님을 두고, 난 교무실을 나왔다. 뭐, 선생님이니까 교무실에 내버려둬도 상관없겠지. 뭔가 사자우리에 토끼를 두고 나오는 기분이 들어 꺼림칙하다. 어째 선생님인데 학생이 챙겨줘야 할 것 같은 이 느낌은 뭘까. 복도로 나오니 2학년 층인지라 2학년 여자애들이 ‘꺄악!’ 하고 깜짝 놀란다. 기겁을 하는 여자애들도 있다. 처음 보겠지, 남자애가 갑자기 교무실에서 나오니까. 생각해보면 2학년이니까 누나인데. 그렇게 놀라는 걸 보니 도리어 선배라는 느낌보단 귀여운 느낌이 강하다. 허허, 정말 괴물이 된 기분이네. 이젠 그러려니 하고 계단을 타고 우리 학년 층으로 내려왔다.


“왔네.”

“네.”

“점심은. 안 먹었지?”

“네. 그렇죠.”

“같이 먹자. 선생님이 사 줄게.”

“네? 네…….”

2학년 교무실. 다른 선생님들은 일제히 밥을 먹으러 갔는지 한 명의 선생님도 안 계신다. 책과 서류더미에 파묻혀 잘 보이지 않지만 가까이 가니 선생님이 있다. 컴퓨터로 서류 같은 것을 작성하고 있던 선생님은 내가 가까이 오니 굉장히 쿨하게 말씀하신다. 아까 전 선입견 가득한 모습은 온데간데없다. 그렇다 해도 아까 보인 호전적인 모습이 머리에 아른거려 나는 약간 거리를 두고 사감 선생님을 따랐다.

선생님이 날 데리고 간 곳은 학교 건물 뒤편에 있는 기숙사. 4층 정도에 가로로 꽤나 긴 형태의 건물이다. 생각보다 사람 많이 들어갈 수 있겠네, 하는 생각이 든다. 기숙사 앞까지 걸어가며, 선생님이 말한다.

“아까 그런 건, 염려 돼서 그런 거야. 혹시라도 안 좋은 소문나면. 알지?”

“네, 네. 그건 절실하게 알아요.”

“그래, 하물며 같은 기숙사 사는데 그런 추문이라도 생기면. 안 그래도 교장 선생님이 부탁하셨거든. 잘 단속해 달라고.”

“……네.”

어떤 교장 선생님이야, 보고 싶네. 꼭 만화에 나오는 사립학원 엉터리 이사장 같은 건 아니겠지. 아닐 거야, 아무리 여기가 사립학교라 해도 이건 흔한 대한민국 학교인걸.

“네 방은 1층이야.”

“방이 있어요? 저 혼자 쓸 만한?”

“물론 없지.”

“……그럼 전 어디서 살라는 거죠.”

선생님은 굉장히 모순된 대답을 한다. 방금 전에 ‘네 방’은 1층이라고 말해놓고!! 선생님은 피식 웃으며 나를 보며 말한다.

“기숙사는 한 방에 4명씩, 침대도 있고, 각자 책상도 있어. 이래 보여도 시설은 엄청 좋거든. 그리고─ 층마다 샤워실, 세탁실, 세면실이 있고 화장실은 방마다 있어.”

“우와. 근데 제가 4인실을 혼자 써도 되나요.”

“물론 안 되지. 남는 방도 없고. 무엇보다 넌 여기서 살면 샤워실, 세탁실, 세면실 모두 쓰지 못 해.”

“뭐에요 그게!! 아니, 뒤엣건 그렇다 치는데 방이 없다뇨! 그럼 저보고 기숙사 신청서는 왜 쓰라고 하신 거 에요!”

선생님의 놀리는 말에 나는 또 분노가 폭발해서 외쳤다. 선생님은 그런 나를 보더니 만족스런 표정으로 웃음 지으며 느긋하게 말한다.

“성격도 급하네. 기다려봐, 괜히 널 기숙사로 데려가는 게 아니잖아.”

“……아니, 방이 없다고 하니까.”

선생님의 느긋한 말에 난 어른에게 농락당한 아이 같은 기분이 들어 살짝 얼굴이 붉어지는 느낌이 든다. 너무 쉽게 흥분했나. 그런 것 같다. 기숙사 앞에 오자 선생님은 엉덩이 주머니에서 열쇠를 꺼낸다. 기숙사 정문은 자물쇠로 잠겨 있다.

‘철컥.’

“네가 쓸 방은, 여기야.”

“……에?”

선생님이 문을 열고 기숙사로 들어왔다. 1층에는 아무래도 애들이 사는 방이 없는 모양이다. 입구 쪽에 ‘사감실’ 이란 패가 달린 방이 있고, 나머지는 방이 아니라 창고 같은 느낌의 방들이다. 방도 일반적인 나무문이 아니라 철제문에 자물쇠로 굳게 잠겨 있다. 선생님은 그 중 작은 문의 자물쇠를 열고 그 방으로 들어서며 말한다.

─자욱한 먼지. 정리돼 있지 않은 여러 짐짝들. 짐 종류도 가지가지라, 무슨 천막 같은 것도 있고, 옷, 축구공, 제기, 수술 등등 이것저것 엄청 많다. 얼핏 보면 기숙사 창고가 아니라 체육관 창고 같기도 하다. 방 자체도 그리 크지 않아서 우리 집 내 방의 2/3정도 되는 크기이다. 그런 크기의 작은 방에 왜 이런 짐들을 쑤셔 놓은 건지. 특이한 건 창고임에도 바닥이 시멘트 바닥이 아니라 장판이 깔려 있는 일반 방 같은 바닥이다. 그래봤자 온갖 짐들과 먼지, 흙, 신발자국 투성이라 시멘트 바닥이랑 다름이 없지만.

“여기……요?”

“그래. 나 왔을 때부터 이런 방이었는데. 더 심해졌지. 여기 있는 건 다 체육선생이 넣은 거야. 그 빌어먹을 영감탱이가 창고 좁다고. 그래놓고 강당에 자기 방 만들어서 매트리스 가지고 와서 수업시간에 자고 있더라고. 나 참, 그래놓고 연금은 당당히 받아 처먹겠지.”

“……선생님.”

“응?”

선생님은 냉소적인 말투로 말한다. 나는 선생님이 말하는 것을 들으며 잠시 생각에 빠졌다. 이게, 이게 정녕 내 방이라고. 혼돈투성이이다. 머릿속이 하얘지는 느낌. 정신을 퍼뜩 차리고, 현실로 돌아오기 위해 선생님께 잔뜩 질문을 시작했다.

“이 짐들, 짐들은 어떡하라구요.”

“치워야지. 네가.”

“네? 제가요?!”

“그럼 거기 살지도 않는 여자애들이 치우겠니, 가냘픈 여교사인 내가 치우겠니. 엄연히 네가 사는데 네가 치워야지.”

“그…… 그거야……! 그래요, 그렇다고 치는데. 여기 살 수 있는 거 맞아요? 창고인데?”

“바닥 봐봐. 원래는 그냥 방이었던 데 맞아. 보일러도 연결돼 있어서 겨울에 따뜻해. 저번 겨울에 여기 숨어 있어봐서 알아. 안성맞춤인데.”

“으으. 그럼 정말, 여기서 살으라구요?”

“응. 알아서 치워서, 알아서 짐 들어와서 살아. 물론 규칙을 따라야겠지만.”

“규칙은 또 무슨…?”

“너한텐 「특별규칙」이 붙을 예정이니까. 엄연히 여자 기숙사의 남학생인데.”

“아…… 하아.”

머릿속이 아득해진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엄마한테 전화해서 하숙집이나 자취방을 구해 달라는 게 나을까. 아니, 믿음이 가질 않는다. 차라리 엄마한테 돈을 나한테 달라고 하고 직접 집을 구하고 다닐까. 그건 또 그렇다. 아무도 모르는 타지인데. 결국은 여기서 사는 수밖에 없겠구나. 하지만 끝이 보이질 않는 정체모를 짐들과 바닥이 회색이 되도록 쌓인 먼지와 흙들을 보니 정말 나오느니 한숨이다. 고개를 푹 숙이고 풀이 죽은 모습을 취하자 선생님이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한다.

“조금은 용기를 내. 이 정도 시련을 가지고 이러면 안 되지, 사내자식이. 앞으로 살아가며 있을 더욱 큰 고통과 시련을 기대하면서, 이 정도는 헤쳐 나가야지.”

“……참 현실적이면서 도움 되는 충고시네요.”

“그렇지. 그게 인생이니까.”

말투 자체가 냉소적인 선생님이니만큼 참 사감 선생님다운 위로다. 별로 위로가 되지 않는 게 함정인데. 기가 죽어 별 말 없이 멍하니 창고 방을 보고 있는 나에게, 선생님은 내 어깨를 툭툭 치며 ‘됐고, 밥이나 먹으러 가자. 선생님이 사 줄게’ 한다. 나는 또 한숨을 쉬고 알았다고 대답했다. 아아─ 모르겠다. 일단은, 방이 생겼으니, 그걸로 만족하는 선에서 처리할까.


작가의말

쓸 수 있을 때 많이 써야겠지요... 나중에 늙으면 손가락 관절 나가서 많이 못 쓸테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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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 ' 12

  • 작성자
    Lv.16 단일
    작성일
    14.01.10 16:32
    No. 1

    잘보고갑니다 건필하세요!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0 18:06
    No. 2

    감사합니다!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8 애상야
    작성일
    14.01.19 01:40
    No. 3

    미희가 교사로 취직하서 결혼하지 않았다면 저런 여교사가 되었을 것 같은 기분이 드는 건 저 혼자 뿐일까요? 어찌 비슷한 캐릭터가 눈 앞에 아른거리는게... 익숙한 느낌입니다. 읽다보면 느낀 것이 하나 있습니다. 무언가 묘사할 때 작가님 글 묘사에 사극체가 꼭 한번은 들어가는데, 이것 말고도 방언이나 특정 직업꾼의 말투를 따라 넣어도 글에 재미를 증가할 것 같군요. 지금 이 작품이 저에겐 자극적이긴 하지만 독자들에겐 딱 좋을 거라 봅니다.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1.19 01:46
    No. 4

    12화 정도에서 갑작스런 섹시미(?)로 무장한 미희 말씀인가요. 아무래도 저는 제 작품을 스스로 표절하는 경향이 매우 심해서, 랄까 표절이라기보단 결국 그 밥에 그 나물로 돌고 도는 거죠... 흑. 딱 봐도, 유경-미희 // 웅도-사감 이렇게 비교해놓고 보면 똑같아져 버리거든요. 나름대로 차별성을 둬야 겠지만... 차별성이 있다면 사감 선생님이 성인 여성이라 훨씬 대담하다는 정도.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64 신수하
    작성일
    14.02.24 12:20
    No. 5

    전학가면 되는데;; 왜 계속 다닐려고 하지...;;;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4 21:49
    No. 6

    그러게요, 왜 계속 다니려고 할까요... 엣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26 푸르른솔이
    작성일
    14.02.26 20:12
    No. 7

    수...수위가..ㅎ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2.27 10:10
    No. 8

    아, 아뇨, 여기서부터 수위 말씀하시면...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99 神殺
    작성일
    14.03.03 19:32
    No. 9

    음? 저희 학교 기숙사는 남녀 혼숙이었는데요... 지금도.
    같은 방만 쓰지 않을 뿐... 그럼 혼숙은 아닌건가? 하하하
    저희 학교는 특이한건지는 모르겠지만 남녀 인원 구성이 좀 유동적으로 바뀌어서 1년에 6개월 정도씩은 같은 층에 남녀가 같이 머물고, 같은 공간에서 공부하고... 가끔 밤에 몰래 넘어가서.. 네, 그랬습니다. 흐흐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3.06 10:45
    No. 10

    어멋... 부러워라... 부럽네요...

    찬성: 0 | 반대: 0

  • 작성자
    Lv.75 널그리워해
    작성일
    14.08.23 15:12
    No. 11

    으흐흐흐흐

    찬성: 0 | 반대: 0

  • 답글
    작성자
    Lv.27 김태신
    작성일
    14.08.23 21:37
    No. 12

    후후후후후......

    찬성: 0 | 반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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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 학교에 관심 받고 싶은 변태 한 놈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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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01화 - 3 +12 14.01.10 6,747 162 20쪽
2 01화 - 2 +14 14.01.09 8,311 183 19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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