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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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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494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10.18 23: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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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8
추천
7
글자
9쪽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5

DUMMY

지아는 205호의 현관 앞에 서 있었다.

'이래도 될까? 이렇게 연락도 없이...'

지아의 한 손에는 장바구니가 들려 있었다. 지아는 심호흡을 하고 초인종을 눌렀다. 문이 열렸다.

"어머, 석호 씨."

지아는 석호의 말쑥한 얼굴을 보고는 자신도 모르게 놀라서 탄성을 지르고 말았다.

"아...지아 씨군요."

석호는 쑥스러운 표정으로 고개를 숙였다.

"저...저 번에 저녁 약속 죄송합니다.""그거 아직 유효하죠?"

"네?"

지아는 대답대신 장바구니를 앞세우고 현관에 들어갔다.

"지, 지아 씨?"

석호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지아는 싱크대로 갔다. 지아는 마트에서 산 해물탕 세트를 꺼내놓았다.

"냄비가 어디 있죠?"

"그...아래쪽에 있을 거예요."

지아는 부스럭 소리를 내면서 냄비를 찾았다.

'내가 너무 대담한 거 아닐까. 다짜고짜 남자 혼자 사는 집에 쳐들어오다니. 날 이상하게 볼지도 몰라.'

석호에게서 등을 돌린 지아의 뺨은 붉게 물들어 있었다.

"밖에서 사먹는 것보다는 나을 거예요."

지아는 손질되어 있는 채소와 해물을 냄비에 담으면서 말했다.

"오래 걸리진 않을 거예요."

석호는 지아의 뒤에서 어쩔 줄 몰라 하면서 서 있었다. 이대로 있기가 너무 어색해서 석호는 거실로 나왔다.

석호는 방금 전까지도 순영과 순영의 남자에 대해서 생각하고 있었다. 대체 둘이 어느 정도의 관계였을까 생각하면서 석호는 텅 빈 공간을 쏘아보며 앉아 있었다. 석호의 상상 속에서 둘은 이미 갈 때까지 간 사이였다.

'죽은 사람을 두고 질투하다니.'

새삼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

'난 순영이 죽고 나서 그렇게 괴로워했는데...'

이제 상상은 자신이 죽었다면 순영은 어떻게 했을까 하는 생각으로까지 번져 있었다. 어쩌면 지금쯤 그 남자와 함께 밤을 보내고 있었을지도 몰랐다. 만약 자신이 죽고 순영이 혼자가 되었다면.

'이런...'

석호는 고개를 저어 망상을 털어냈다.

"그럼 해물탕이 다 될 때까지 뭐할까요?"

지아가 불쑥 거실에 나타났다.

"네, 네?"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호의 얼굴은 약간 홍조가 돌고 있었다. 지아는 푸훗하고 웃었다.

"텔레비전이나 보죠."

지아의 말에 석호는 서둘러 리모컨을 찾았다. 석호는 첫 데이트를 떠올렸다. 막 대학에 입학했을 때였다. 친구의 주선으로 미팅을 간 적이 있었다. 그때 석호는 후줄근한 추리닝차림이었다. 그 자리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잊히지 않았다. 다들 속된말로 벙찐 표정이었다. 당시 순영은 친구의 파트너였는데, 그런 석호의 모습을 보고는 깔깔깔 웃음을 터트렸다.

꼭 그때로 돌아간 것 같았다. 석호는 지저분한 잡동사니 속에서 리모컨을 꺼내 텔레비전을 켰다. 텔레비전에서는 막 VJ특공대가 하고 있었다. 캐스터들이 과장된 목소리로 말하면서 시장 곳곳을 누비는 모습이 보였다.

"앉아도 되요?"

지아가 물었다.

"아, 네."

지아가 석호의 옆에 앉았다.

"크흠."

석호는 헛기침을 터트렸다.

"어제 정말 죄송했어요. 제가 정신이 어떻게 됐었나 봐요."

"뭐...그럴 수도 있죠. 아니, 애초에 바람맞힌 제 잘못이죠. 하하."

석호는 뒷머리를 긁었다. 지아는 슬며시 웃음을 떠올렸다.

"저, 정말 그런 이야기 한 거 처음이에요."

지아가 입을 열었다.

"예전 직장 이야기 말이에요."

"저도 처음이에요. 예전에 이야기 했었죠. 그렇게 다른 사람과 마음을 터놓고 말한 건 처음이었죠."

아마 순영이하고도 그렇게 말하진 못했을 거야. 석호는 생각했다.

"이상하죠?"

"그러게요."

둘은 텔레비전 화면을 응시했다. 화면에서 나오는 색상들이 석호와 지아의 뺨을 훑었다. 석호는 지아의 옆얼굴을 바라보았다. 지아의 뺨에 그려지는 그림들이 나비처럼 팔랑이고 있었다. 석호는 그 그림들이 예쁘다고 생각했다. 석호는 입을 열었다.

"저..."

"띵동."

초인종이 울렸다.

"누구지?"

석호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호는 문을 열었다.

"안녕하세요."

"여, 연수?" 석호는 당황했다. 하필이면 이럴 때 오다니. 연수는 예의 푸른 기가 감도는 눈으로 석호를 올려다보고 있었다.

"저...다음에 오면...."

석호가 말을 잇기 전에 연수는 문을 밀치고 집안으로 들어섰다.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라 석호는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아..."

연수는 거실 소파에 앉아 있는 지아를 발견했다. 연수는 석호를 돌아보았다.

"설마 어른들의 저녁시간인가요?" 석호는 말문이 막혔다.

"무, 무슨 소리야!"

"아니라면 끼어도 되죠?" "누구...?"

지아는 어색한 미소를 띠웠다.

"참, 쌍둥이들은 잘 있죠?"

연수는 탁자 앞에 앉으며 말했다. 지아와 맞은편 자리였다.

"쌍둥이?" 석호는 연수를 바라보았다. 연수가 하는 말이 이해가 되지 않아서였다.

"애들 말이죠."

"애들?"

"저기 있잖아요."

연수는 한쪽을 가리켰다. 텔레비전 옆이었다. 그곳에는 순영이 아이들을 안고 찍은 사진이 탁상액자에 끼워져 있었다. 하지만 액자는 석호가 마신 맥주 캔이며, 과자봉지로 절반 이상이 가려져 있었다.

"어, 그..."

석호는 연수와 액자를 번갈아 바라보았다.

"참 전화 왜 하셨죠?"

연수가 물었다.

"어제 전화하셨잖아요, 석호 형."

"그...나중에 이야기하면 안 될까?"

"해물탕 넘치겠어요."

지아가 자리에서 일어나 부엌으로 갔다.

"너....어떻게...." 석호는 얼굴을 찡그렸다. 어떻게 석호에게 쌍둥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았을까. 액자를 보고 알았다지만 쉽게 납득되지 않았다.

"아, 참. 지아 누나."

연수는 부엌을 향해 말했다. 지아는 가스레인지 앞에 멈칫하고 멈춰 섰다.

"여긴 좁은 동네에요."

지아는 고개를 돌렸다. 지아의 얼굴은 경악으로 물들어 있었다.

"과거란 게 쉽게 지워지는 게 아니거든요?"

연수는 품에서 과자봉지를 꺼냈다. 찌익. 연수는 과자봉지를 찢었다. 그 안에 내용물이 주르르 탁자에 떨어졌다. 젤리였다. 곰돌이 모양 젤리.

"이거 꼭 아기 같지 않아요?"

연수는 젤리를 하나 집어 들었다. 똑. 연수는 손쉽게 곰돌이의 목을 떼어냈다. 지아는 휙 고개를 돌렸다.

"가볼 게요."

지아가 거실로 돌아와 핸드백을 챙겨들었다. 지아는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지아는 현관문에 몸을 기댔다. 아직까지도 심장이 떨려왔다.

'여긴 좁은 동네에요.'

연수의 말이 떠올랐다.

'혹시 그 아이들, 그 아이들이 소문을 퍼트린 걸까?'

지아는 계단이 있는 복도 쪽을 바라보았다. 그 순간에 맞춰 아이들 웃음소리가 계단 쪽에서 들려왔다. 지아는 계단을 향해 걸어갔다. 그 때까지도 아이들의 웃음소리가 머리위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지아는 위를 올려다보았다. 아무도 없었다.

"끼이익."

지아는 화들짝 놀라 뒤를 돌아보았다. 교복을 입은 여자아이가 벽 쪽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서 있었다.

'분명히 아까는 없었는데.'

지아가 이곳 복도로 들어설 때까지만 해도 인기척이 없었다. 작은 체구로 보아 고등학생보다는 중학생 같았다.

아이의 손에는 못 하나가 들려 있었다. 아이는 그것으로 끊임없이 벽을 긋고 있었다. 벽에는 커다랗게 "水"라는 한자가 새겨져 있었다. 한자는 천장에서 바닥까지 빈 공간을 채우고 있었다. 겨우 저렇게 작은 못으로 팠으리라고는 믿어지지 않았다.

"그들은 바보야."

아이가 중얼거렸다.

"정말 바보라고. 다들 왜 그렇게 이곳에 집착하는지 모르겠어."

"이름이 뭐니?"

지아가 조심스럽게 말을 걸었다. 뚝. 아이는 못을 든 손을 내렸다.

"나 당신을 알아."

아이가 중얼거렸다.

"뭐? 날 안다고?"

지아는 어색한 웃음을 지었다.

"당신은."

아이는 다시 못을 들고 아까의 작업을 계속했다.

"곧 알게 될 거야."

콰콰쾅. 계단에서 굉음이 들렸다. 커다란 가구가 부서지는 것 같은 소리였다. 지아는 귀를 틀어막으면서 자신도 모르게 눈을 감았다. 지아가 눈을 떴을 때, 아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벽면을 메웠던 한자 "水"도 없었다. 벽면은 원래부터 그랬다는 듯이 매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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