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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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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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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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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9.02 22: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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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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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2쪽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6

DUMMY

"또 그 꿈이야."

수애는 식은땀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기분 나쁜 꿈이었다. 수애는 베란다 쪽을 바라보았다. 베란다로 향하는 문은 활짝 열려 있었다.

'베란다에서 뛰어내렸죠.'

낮에 만난 부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쟁쟁거리면서 울렸다. 수애는 베란다문을 닫으려고 베란다로 걸어갔다. 그때였다. 창문 너머 난간에서 무언가 검은 물체가 빠른 속도로 떨어지고 있었다. 열일곱, 열여덟이나 되었을까. 교복차림의 여자애가 거꾸로 서 있었다. 여자애는 누구에게 전화를 거는 것처럼 핸드폰을 귀에 바짝 들이대고 있었다. 여자애가 고개를 돌렸다. 수애는 여학생과 두 눈을 마주치고 말았다.

"어, 어?"

수애는 소리도 지르지 못하고 뒷걸음질 쳤다. 붉은 체크가 쳐진 검은 치마가 펄럭였다. 여자애는 수애를 향해 빙그레 웃어보였다. 그리고 사라졌다. 미칠 듯한 속도로 여자애는 저 바닥을 향해 추락하고 있었다.

"으아아아악."

여자아이가 사라지자마자 수애는 기다렸다는 듯이 비명을 터트렸다. 수애는 떨리는 손으로 수화기를 들었다. 뽁뽁복. 수애는 마구 119를 눌러댔다.

"네, 119입니다."

"도와주세요, 도와주세요. 사람이, 사람이 떨어졌어!"

"부디 진정하시고 주소를 이야기해주세요."

"서울시 천국구 행복동 행복 2단지 340동이에요. 제발 빨리 와주세요."

"네, 곧 가겠습니다."

수애는 덜덜 떨면서 수화기를 내려놓았다. 수애는 이불을 뒤집어쓰고 울음을 터트렸다.

"진호씨, 진호씨. 어디있는 거야. 제발 와줘."

위이이잉. 요란한 사이렌 소리가 아파트 단지에 울렸다. 수애는 이불을 뒤집어 쓴 채 베란다로 기어갔다.

"으, 응급차가 온 걸까?"

정말로 온 걸까? 확인해보고 싶었지만 도저히 베란다 아래를 내려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수애는 베란다의 문지방 앞에서 못박힌 듯 멈춰 섰다. 수애는 그대로 한참동안 앉아 있었다. 요란하게 울려대던 응급차의 사이렌 소리가 멀어져갔다. 모든 게 끝난 모양이었다.

"이제는 내다봐도 돼."

수애는 자신에게 속삭였다. 자신의 말대로 구급요원들이 여자아이의 시체를 치웠을 것이다. 그래도 감히 내다볼 엄두가 나지 않았다.

"괜찮아. 다 치웠을 거야."

수애의 머릿속에 바닥에 추락사한 여자아이의 모습이 떠올랐다. 엉망진창으로 일그러졌을 얼굴과 기이한 방향으로 뒤틀려있을 팔다리...아, 만약에 여자아이의 목이 뒤로 틀려 있어서 나를 바라보면 어쩌지? 수애는 이불을 한 옆으로 밀쳐냈다. 그래도 수애는 베란다밖을 내다보지는 못했다.

"후우우."

수애는 길게 심호흡을 하고는 아래를 내다보았다.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다. 수애가 머릿속으로 상상한 핏자국도 팔다리가 뒤틀려있는 시체도 없었다. 처음부터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보도블록은 깨끗하게 치워져 있었다. 온몸에서 기운이 빠져나갔다. 수애는 털썩 주저앉았다.

"진호 씨, 진호 씨."

수애의 눈에서 눈물이 주르륵 흘러내렸다. 수애는 다시 수화기를 붙들었다.

"지금은 통화할 수 없는 상황이오니 전화를 다시 걸어주시거나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 삐하는 통화음이 흐르면 메시지를 남겨주십시오."

예의 그 정중한 목소리였다. 삐하는 신호음이 울리자 수애는 속사포처럼 말을 뱉었다.

"진호 씨, 나 수애야. 이 메시지 들으면 바로 집에 와줘. 우리 아파트에서 어떤 여자애가 뛰어내렸어. 무서워. 나 무서워 죽겠어. 도저히 혼자 못 있겠어. 여보, 제발...."

수애는 말을 잇지 못하고 흐느꼈다. 수애는 수화기를 끊었다. 안방에서 수애의 핸드폰이 울렸다. 수애는 서둘러 핸드폰의 폴더를 열었다.

"문자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진호에게 온 문자였다. 수애는 확인 버튼을 눌렀다.

"오늘부터 며칠 동안 야근이 있어서 집에 한동안 들어갈 수 없을 것 같아. 미안."

짧은 메시지였다. 수애는 훌쩍이면서 폴더를 닫았다. 수애는 모로 바닥에 누웠다. 시계를 보니 새벽 4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수애는 힘없이 눈을 감았다.


아침. 수애는 해물찌개 국물을 수채 구멍에 버렸다. 남은 찌꺼기는 검은 비닐봉지에 담았다. 수애는 음식물쓰레기를 들고 밖으로 나왔다. 쓰레기 수거함 근처에서 사람들이 수군거리면서 모여 있었다. 수애는 그들 속에서 낯익은 얼굴을 발견하고 다가갔다. 어제 낙원할인마트에서 만난 사람이었다.

"안녕하세요, 재민 어머니."

수애는 파마머리를 한 여자에게 인사를 건넸다. 재민 엄마가 수애를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에요?"

"아, 그게...어제 누가 장난전화를 한 모양이에요."

"장난 전화요?"

"그래요. 글쎄 누가 이 건물에서 사람이 떨어졌다고 119에 장난전화를 걸었나봐요."

단발머리의 순이 엄마가 대화에 끼어들었다. 단정한 인상과 달리 순이 엄마는 재민엄마보다 수다스러운 편이었다. 순이 엄마의 말에 수애의 표정이 딱딱하게 굳었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순이 엄마는 계속해서 수다를 떨었다.

"그래서 새벽 4시에 응급차가 달려오고 난리였어요. 장난전화를 하려면 낮에 할 것이지 왜 하필이면 남들 다 자는 밤에 전화를 해가지고 그 난리를 피우는지 몰라. 덕분에 잠을 설쳤지 뭐에요. 아마 나만 그런 게 아니고 이 아파트 단지 사람들 전부 그랬을 거야."

"추락사한 게 아니라고요?"

수애는 순이 엄마의 말을 끊고 물었다. 순이 엄마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요. 죽은 사람은 아무도 없다니까요."

"난 어젯밤 얼마나 놀랐는지 몰라요."

재민엄마가 무거운 목소리로 말했다.

"십 년 전에 이 아파트 단지에서 여고생이 세 명이나 떨어져 죽었거든요. 그날 이후로는 조그만 소리만 들어도 자다가도 깜짝 깜짝 놀라서 깨요."

"여고생이 세 명이나...?"

"여고생들만 죽었나 뭐. 이곳에서 여러 사람 죽었지. 부모가 결혼 반대한다고 손 붙잡고 떨어져 죽은 커플이 있나하면, 그냥 아무 이유 없이 이곳까지 와서 죽은 사람도 있었지."

순이 엄마가 빠른 목소리로 말을 늘어놓았다. 재민엄마가 순이 엄마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제야 순이 엄마는 입을 다물었다.

"하지만 걱정하지 말아요, 새댁. 사람들이 주로 죽은 곳은 340동이 아니라 344동이었어요."

"340동에도 두 사람이나 죽었잖아요. 한명은 여고생이고, 또 한사람은 15층에 살던 남자였죠."

순이 엄마가 그새를 못 참고 끼어들었다. 재민엄마가 다시 눈치를 주자 순이 엄마는 입을 다물고 수애의 눈치를 살폈다.

"하여간 걱정할 필요 없어요. 아주 오래전 일이니까."

재민엄마가 힘을 주어서 말했다.

"네."

수애는 힘없이 대답하고는 음식물 쓰레기 수거함에 음식물쓰레기를 버렸다. 엘리베이터의 액정화면에는 불이 나가 있었다. 기술자 두 사람이 엘리베이터 안에서 작업을 하고 있었다. 엘리베이터 옆에는 수리중이라는 팻말이 붙어 있었다.

"아이고, 안녕하십니까."

경비가 수애를 알아보고 인사를 건넸다.

"저, 저거는요?"

수애는 엘리베이터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아, 네. 저번에 엘리베이터 소리가 시끄럽다고 하셨잖아요. 기술자들 말로는 엘리베이터가 낡아서 그렇다는 군요. 우선 임시변통으로 소리가 덜 나게 해놓기로 했습니다. 엘리베이터 교체문제는 부녀회에 물어보기로 하고요."

"그럼 엘리베이터는 한동안 못 타는 건가요?"

"네. 내일까지는 힘들지만 계단을 이용해 주십시오."

수애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계단으로 걸음을 옮겼다. 층계를 올려다보자 어지러울 정도로 끝도 없이 계단이 이어져 있었다. 수애는 옮겨지지 않는 걸음을 옮겼다.

막 6층을 지날 때였다. 쿠당탕탕. 시끄러운 소음이 울렸다. 수애는 뚝 걸음을 멈췄다. 수애는 겁에 질린 표정으로 층계를 올려다보았다. 저 위에 뭔가 있으면 어떻게 하지? 수애는 계단 난간을 움켜쥐었다. 수애는 결심하고 난간에서 손을 떼었다. 난간에는 수애의 손자국이 깊게 나 있었다.

"와아아."

아이들의 함성소리가 가까워진다. 수애가 7층에 올라서자마자 쌔앵하는 소리와 함께 한 떼의 아이들이 롤러블레이드를 타고 복도를 질주하고 있었다.

"인석들! 여기서 타면 다친다! 어서 내려가지 못해?"

노인의 고함소리가 한차례 울리더니 쾅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닫혔다. 수애는 후우하는 한숨을 내쉬고는 계속해서 계단을 올라갔다.

'아무도 죽지 않았다고. 그럼 내가 본 건 대체 뭐지?'

수애는 새벽에 보았던 광경을 떠올렸다. 그건 환상도 꿈도 아니었다. 수애는 여고생의 흩날리던 단발머리와 분홍색 헤어밴드며 교복치마에 나있던 붉은색의 체크무늬도 기억하고 있었다. 그리고 여고생이 쥐고 있던 핸드폰도.

"대체 뭐야, 뭐냐고."

새로 이사한 아파트인데, 처음으로 생긴 내 집인데, 왜 자꾸 이런 일만 일어나는 거야. 수애는 그만 울고 싶어졌다.

쿠당쾅쾅. 또였다. 수애는 떨면서 층계를 올려다보았다. 기다란 그림자들이 흔들리고 있었다.

"아직 이야?"

"아직 이야."

"그곳에 가야하는데."

그곳. 소름이 끼쳤다. 그곳에 가야한다. 그런데 그곳이 어디지? 수애는 자신도 모르게 그림자들을 향해 소리쳤다.

"그곳이라뇨? 그곳이 어딘데요? 어디냐고요."

수애는 달려가다시피 하면서 계단을 올라갔다.

"대답해, 개자식들아! 그곳이 어디야!"

수애는 잔뜩 화가 나 있었다. 그곳, 그곳이라니. 꿈에서도 그곳, 여기서도 그곳. 대체 그 빌어먹을 그곳이 어디란 거야!

타다닥. 수애는 숨을 헐떡이면서 13층에 올라섰다. 수애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땡그렁. 찌그러진 깡통 하나가 복도에 뒹굴고 있었다. 그림자는 어디서도 보이지 않았다.

그그극. 뭔가가 긁히는 소리가 났다. 엘리베이터의 맞은 편 벽에서 누군가가 낙서를 하고 있었다.

"얘야, 거기서 뭐하니?"

"네?"

소녀는 놀란 얼굴로 수애를 돌아보았다. 소녀의 손에는 작은 못이 들려 있었다. 낯익은 얼굴이었다. 아침마다 만나는 여중생이었다.

"水"

벽에는 이 글자가 저 천정에서부터 바닥까지 커다랗게 새겨져 있었다. 어떻게 천정에 손이 닿은 거지? 저걸 혼자서 새기려면 무척 힘들었을 텐데. 수애는 얼굴을 찌푸렸다.

"걱정하진 마렴. 혼내지 않을 테니까. 그건 그렇고 혹시 아까 여기 지나가던 사람들 못 봤니?"

아이의 표정이 이상하게 일그러졌다. 소녀는 간신히 참았던 것을 터트렸다.

"파하하하하."

아이는 눈 꼬리에 눈물방울을 매단 채 웃음을 터트렸다. 웃음이라기보다는 비명에 가까운 소리였다.

"그 바보들, 그 바보들 말이에요? 몰라요. 아마 옥상에 갔나보죠."

소녀는 그렇게 말하고는 하던 일을 마저 했다. 소녀는 길게 물 수자의 오른쪽 변을 마무리하고는 못을 호주머니에 넣었다.

"병신들, 날 잡을 수 있을 줄 알고?"

소녀는 심술궂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오늘하고 내일은 엘리베이터를 탈 수 없대."

수애가 생각났다는 듯이 중얼거렸다. 소녀는 고개를 끄덕였다.

"알고 있어요. 그 녀석들이 계단을 오르락내리락하는 걸 보면 틀림없이 그럴 거예요."

"그 녀석들이라니?"

소녀는 대답없이 쏜살같이 계단으로 뛰어올라갔다. 수애는 멍하니 혼자 남아서 벽에 새겨진 한자를 바라보았다.

"水는 물의 형상을 흉내 낸 상형문자입니다."

문득 중학교시절 한문선생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귓가를 울렸다. 상당히 깐깐하게 생긴 얼굴의 여선생이었는데, 늘 검은색 테의 안경을 썼다. 한문선생은 지금 수애가 보는 것처럼 커다랗게 칠판 가득 水와 土자를 썼었다. 너무 크게 써서 그대로 글자가 칠판을 흘러넘칠 것만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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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1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41 10.10.22 396 5 10쪽
40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40 10.10.21 411 5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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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6 +2 10.10.07 516 7 10쪽
25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5 +3 10.10.07 480 7 12쪽
24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4 10.10.07 503 4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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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2 10.10.05 563 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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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0 +3 10.10.02 614 6 6쪽
19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9 10.10.01 603 6 13쪽
18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8 10.10.01 628 6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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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6 10.09.02 503 6 12쪽
15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5 10.09.02 505 7 8쪽
14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4 10.09.01 564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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