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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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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490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10.02 16:45
조회
614
추천
6
글자
6쪽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0

DUMMY

3부. 푸른 수면


처음에는 단순한 호기심이었다. 연수는 당시에 '내고장바로알기'라는 학교숙제를 하고 있었다. 이것이 특별한 의미가 있는 일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았다. 잘난 체하기 좋아하는 담임이 내준 숙제를 빨리 끝내고 컴퓨터게임이나 할 생각이었다.

연수는 대충 이 행복동이라는 젠장맞을 동네의 역사를 인터넷으로 조사해서 뽑을 생각이었다. 하지만 웬일인지 인터넷으로는 쉽게 뽑아낼 수 없었다. 결국 연수는 구립 도서관까지 찾아가야했다. 연수는 관련책자를 복사해서 공책에 오려붙일 생각이었다.

젠장 맞게도 복사기는 복사카드를 써야했고, 무려 삼천 원을 내야했다. 단지 한 장의 사진만 복사할 생각인데 이게 무슨 일이란 말인가. 연수는 투덜거리면서 삼천 원을 들여서 산 복사카드와 잠시 빌린 책을 들고 이층 복도로 걸어갔다.

복도에는 나이가 지긋한 노인이 한 사람 앉아 있었다. 노인에게서는 노인 특유의 이상야릇한 냄새가 났다. 연수는 얼굴을 잔뜩 찡그리면서 복사기에 복사카드를 넣었다. 노인이 고개를 돌렸다. 노인은 옥색 두루마기에 검은 테가 둘린 하얀 모자를 쓰고 있었다.

노인이 연수를 보고는 느릿한 걸음으로 연수에게 다가왔다. 연수는 복사기의 덮개를 열고 책자를 올려놓았다. 연수가 버튼을 누르자, 복사기는 요란한 소리를 내면서 종이를 토해냈다.

노인이 복사된 용지를 집어 들었다.

"이사진은 개발붐이 일어나기 전 60년대 사진이군."

노인은 돋보기안경을 고쳐 쓰면서 중얼거렸다. 연수도 힐끗 사진을 들여다보았다. 사진속의 행복동은 시골깡촌이었다. 군데군데 참외밭이 있는 가운데, 새카만 강물이 한줄기 흐르고 있었다.

"사진 속에서는 아직 강이 복개되지 않았군. 곧 이 위에 단단한 시멘트 덮개가 얹히겠지.

그런데 왜 이사진을 복사하는 거지? 이 동네의 과거에 대해서 궁금한 게 많은 건가?"

노인은 복사용지를 내려놓으면서 물었다. 연수는 퉁명스러운 목소리로 대답했다.

"왜요. 사는 동네에 대해서 이렇게 조사하는 게 뭐가 이상해요?"

노인은 호기심이 어린 눈초리로 연수를 바라보았다.

"이상할 것은 없지. 다만, 학생이 알고 싶어 하는 과거가 어떤 것인지에 따라 달라질 거야."

"무슨 뜻이죠?"

노인의 입가에 가느다란 미소가 어렸다. 노인답지 않게 교활하고 음험한 미소여서 연수는 자신도 모르게 움츠러들었다.

"그냥 이 사진으로 만족하도록 해, 학생. 많이 알수록 좋은 건 없어."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지팡이를 달각거리면서 복도를 걸어갔다. 연수는 홀린 듯이 노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노인이 문득 걸음을 멈추었다.

"혹시 이 동네의 과거에 대해서 자세히 알고 싶거든, 신문을 찾아보게. 70년 2월 3일자,ㅇㅇ신문 제 6면을 찾아보도록 하게."

노인은 그렇게 말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연수는 다시 복사기로 시선을 돌렸다. 연수는 복사기에서 복사카드를 회수하고는, 복사용지를 챙겨서 자리를 떴다.

연수는 성의 없게 A4용지 한가득 책에서 베낀 말들을 적고, 사진을 한 장 붙였다. 그렇게 해서 학교숙제가 완성되었다. 그냥 그렇게 끝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거기서 일이 끝나지 않은 것은, 연수가 나중에 생각해보아도 운명이라고 할 수밖에 없었다.

연수가 집에 돌아왔을 때였다. 연수의 집은 행복 2단지의 344동 아파트의 3층에 자리잡고 있었다. 어째서인지 이곳의 엘리베이터는 3층에서 서지 않는다. 아파트측에서는 전기를 아끼기 위해서라고 했다.

연수는 아파트 앞에 쳐진 하얀 차일을 바라보았다. 누군가가 죽은 모양이었다. 만약에 연수가 그곳에 있던 영정사진을 보지 않았더라면, 운명이 바뀌었을까? 하얀 모시옷을 입은 할머니가 영정사진을 안고 울고 있었다. 연수는 흘깃 할머니를 보고는 아파트 층계로 올라갔다.

이미 저녁때가 다 되어서 층계는 몹시 어두웠다. 자동으로 불이 켜지는 적외선센서 등은 층계중간쯤에 위치하고 있어서 한참동안은 어두운 층계를 더듬으면서 올라가야했다.

연수는 전기를 아낀다고 엘리베이터버튼을 고정시킨 멍청한 아파트 관리사무소를 잠시 욕했다.

쿠당탕탕. 누군가가 발을 구르는 소리가 위층에서 들렸다. 연수는 얼굴을 살짝 찌푸렸다.

"그곳으로 가야해요."

"그곳으로..."

작게 속삭이는 사람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그 목소리들이 어떤 소리를 닮았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어떤 소리를 닮은 것인지는 좀처럼 생각나지 않았다.

"너도 저 소리가 들리니?"

어둠속에서 불쑥 여자의 그림자가 나타났다. 연수는 하마터면 놀라서 계단을 구를 뻔했다. 연수는 간신히 정신을 차리고 적외선 센서등이 있는 층계까지 올라섰다. 여자는 하얀 카디건을 입고 서 있었다. 여자의 회색덧버선이 보였다. 얼굴은 젊은데 덧버선을 신은 걸 보니, 이제 막 신혼인 주부 같았다.

"아, 네. 들리는데요. 왜요?"

"안됐구나. 아직 어린 데."

여자는 그렇게 중얼거리고는 몸을 돌려서 층계를 걸어 올라갔다. 연수는 그 자리에 돌처럼 굳어버렸다. 왠지 모를 불안감에 심장이 두방망이질 쳤다. 연수는 빠르게 계단을 달려 올라갔다. 누군가가 뒤쫓아 올 것 같은 기분이 자꾸만 들어서 연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자꾸만 힐끔 힐끔 뒤를 돌아보았다.

집에 들어가기 전, 연수는 엘리베이터 앞 복도의 벽에서 커다랗게 "水"라는 한자가 쓰여 있는 걸 발견했다. 연수는 고개를 돌려서 집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집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머니와 아버지 모두 맞벌이라서 집은 항상 비어있기 일수였다. 연수는 맨 위의 안전고리까지 걸고나서야 후우하고 한숨을 내쉬면서 바닥에 주저앉았다.

문득 날카로운 깨달음 하나가 연수의 머릿속을 스쳐지나갔다. 아파트에 들어서기 전 보았던 하얀 차일과 영정사진. 그 영정사진 속에는 옥색두루마기에 검은 테가 둘린 하얀 모자를 쓴 노인이 있었다. 바로 연수가 오늘 낮에 구립도서관에서 본 노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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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6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6 10.10.18 448 6 14쪽
35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5 10.10.18 328 7 9쪽
34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4 +1 10.10.17 535 9 10쪽
33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3 10.10.17 379 7 12쪽
32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2 +2 10.10.13 515 7 11쪽
31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1 +3 10.10.12 557 6 14쪽
30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0 +2 10.10.09 429 7 10쪽
29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9 10.10.09 433 6 12쪽
28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8 +3 10.10.09 453 6 14쪽
27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7 10.10.09 482 7 12쪽
26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6 +2 10.10.07 516 7 10쪽
25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5 +3 10.10.07 480 7 12쪽
24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4 10.10.07 503 4 8쪽
23 [공포]행복동 아파트(2.푸른 수면)-23 +3 10.10.05 538 6 12쪽
22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2 10.10.05 563 6 12쪽
21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1 +2 10.10.04 511 5 13쪽
»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0 +3 10.10.02 615 6 6쪽
19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9 10.10.01 603 6 13쪽
18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8 10.10.01 628 6 14쪽
17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7 10.09.02 534 6 11쪽
16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6 10.09.02 504 6 12쪽
15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5 10.09.02 505 7 8쪽
14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4 10.09.01 564 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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