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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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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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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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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09.02 2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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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공포]행복동 아파트(2.마이 스위트 홈)-17

DUMMY

"水는 물의 형상을 흉내 낸 상형문자입니다."

다시 한 번 여선생의 딱딱 끊어지는 말투가 들려왔다. 수애는 후다닥 계단을 뛰어올라갔다. 15층에 도착했을 때, 수애는 거의 기진맥진해져 있었다. 수애는 비틀거리는 걸음으로 1505호를 향해 걸어갔다.

"마이 스위트 홈, 스위트 홈."

깔깔거리는 웃음소리와 함께 스위트홈의 노래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들려왔다. 빗물받이로 복도에 해놓은 파이프였다. 아래층의 소리가 파이프를 타고 올라온 모양이었다. ....상형문자입니다, 이 말이 수애의 등 뒤에서 계속 따라왔다. 수애는 덜덜거리는 손으로 열쇠를 호주머니에서 꺼냈다.

"여기 집 주인이신가요?"

낯선 그림자가 집 앞에서 있었다. 수애는 깜짝 놀라서 그만 주저앉을 뻔했다. 남자는 수애를 향해 손을 들어보였다. 창백한 얼굴의 남자였다. 남자의 두 눈에는 깊은 음영이 드리워진 얼굴이었다.

"말씀 좀 여쭙고 싶은데...."

수애는 남자가 자신을 잡으려고 한다고 생각했다. 수애가 비명을 지르려고 마음먹었을 때, 남자의 손에 들린 붉은 핸드백이 보였다.

"이 핸드백이 이곳에 떨어져 있더군요."

"난 몰라요, 모르는 일이에요."

수애는 앙칼지게 소리 질렀다.

"아,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남자는 느릿한 말투로 말했다. 남자는 힘겨운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저는 205호에 사는 사람입니다. 낯선 사람이 아닙니다. 그냥 간단한 몇 마디 말을 여쭤보려고 합니다."

남자는 말을 멈추고 잠시 숨을 골랐다. 수애는 서둘러 현관문을 향해 달려갔다. 수애는 열쇠구멍에 열쇠를 꽂았다. 아니 그러려고 했다. 덜덜 떨리는 손 때문에 열쇠는 자꾸만 미끄러졌다. 빨리 집에 들어가고 싶었다. 이 낯선 남자를 피해서 집안으로 숨고 싶었다. 적금을 깨서 마련한 집, 삼 년 동안 아이 갖는 일까지 포기해서 마련한 집, 마이 스위트 홈.

"사실 며칠 전에, 아내가 교통사고를 당했습니다. 그날 아내가 분명히 이 핸드백을 하고 나갔었죠. 그런데 유류품에는 없었습니다. 경찰들 말로는 아무리 찾아도 없다고...."

마침내 현관문이 열렸다. 수애는 어두컴컴한 집안으로 뛰어들었다. 그 찰나, 수애는 볼 수 있었다. 남자의 손에 들린 핸드백에서 떨어지는 피를. 그 핸드백은 원래부터 붉은 색이 아니었다. 피가 떨어진 자리에 하얀 점이 얼룩처럼 남아 있었다. 마치 붉은색으로 하얀색 핸드백을 염색이라도 한 것처럼 보였다.

"꺄아악!"

수애는 비명을 지르면서 문을 잠갔다. 안전고리까지 걸고서야 수애는 문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저기, 전 그냥 묻고 싶어서 그러는 겁니다. 놀라게 할 생각은 없었습니다."

남자의 목소리가 문 뒤에서 들려왔다.

"빨리 가지 못해요? 계속해서 거기 있으면 경찰에 신고 할 거예요!"

수애는 인터폰의 수화기에 손을 가져가면서 소리 질렀다.

"죄송합니다."

남자가 머뭇거리듯이 말했다.

"꺼져버려!"

수애는 소리 질렀다. 남자의 뚜벅거리는 걸음소리가 멀어져갔다. 후유. 수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면서 무너져 내렸다. 수애는 흐느껴 울면서 핸드폰을 움켜쥐었다. 수애는 진호의 핸드폰번호를 꾹꾹 눌렀다.

"지금은 전화를 받을 수 없사오니 다시 걸어주시거나 삐 소리가 나면 메시지를 남겨주시기 바랍니다."

차가우리만치 정중한 목소리였다. 벌써 며칠 새 같은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수애는 울음을 터트렸다.

"진호 씨, 왜 집에 안와. 대체 언제쯤 올 거야?"

수애는 더듬더듬 말을 이었다.

"나 무서워. 정말 무서워. 오늘은 낯선 남자가 집 앞에 찾아왔어. 방금 갔는데, 언제 또 올지 모르겠어. 자기 아직도 야근이야? 야근 관두고 집에 오면 안 되는 거야?"

수애는 말을 마치고 폴더를 닫았다가 다시 거칠게 열었다. 수애의 목에 퍼런 힘줄이 돋아났다.

"야이 빌어먹을 자식아. 대체 언제 집에 들어올 거니? 이 집 너 혼자 샀어, 응? 내가 불임소리 들어가면서 산 집 아냐? 왜 안 들어오는데? 밖에서 딴 살림이라도 차렸니? 응? 거기서 애라도 낳은 거니? 대답하라니까, 이 자식아."

수애는 미친 듯이 욕설을 퍼부었다. 대체 왜 나 혼자서만 이 집을 지키고 있느냔 말이야. 이상한 일들만 일어나는 데 왜 당신은 여기 없어? 수애는 감정을 그대로 배설해버리고는 폴더를 닫았다. 너무 급하게 말을 뱉어서일까. 숨이 차면서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어린 시절 풍선을 너무 많이 불어서 숨이 찼던 것이 생각났다. 그때도 이렇게 머리가 어지러웠지. 수애는 중얼거렸다. 수애는 스르르 눈을 감았다.


뚜벅 뚜벅 뚜벅. 규칙적인 걸음소리가 복도를 울렸다. 수애는 현관문을 열고 집밖을 내다보았다. 사람들이었다. 사람들이 한 줄로 복도에 늘어서 있었다. 수애는 이번에는 이것이 꿈이라는 사실을 확연히 알 수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이곳에 온 이후로 줄곧 꾼 꿈이니까. 수애는 줄을 향해 다가갔다. 수애는 자신이 무엇을 할지 알 수 있었다. 수애는 줄에 선 여자에게 걸어가고 있었다. 보라색 옷을 입고 핸드백을 든 여자.

'아마 어디로 가냐고 묻겠지?'

"저, 다들 어디로 가는 거죠?"

'그곳으로 가야 한다고 대답할 거야.'

여자가 수애를 돌아보았다. 여자는 핏기 없는 표정으로 말했다.

"그곳으로 가야해요."

"그곳이 어딘데요?"

여자는 수애를 뚫어지라고 쳐다보았다. 이번에는 이전의 꿈과 달랐다. 수애는 당황했다.

"당신도 알고 있잖아요?"

여자는 그렇게 말하고는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이상했다. 항상 꿈속에서 여자가 들고 있던 붉은 색 핸드백이 보이지 않았다. 아니, 그것이 아니었다. 수애의 신경을 곤두서게 하는 것은 핸드백이 아니었다.

수애는 서서히 시선을 아래로 내렸다. 여자의 노란색 구두가 보였다. 붉은 염료가 잔뜩 칠해진 노란 색 구두코, 구두코. 구두코라니? 수애는 퍼뜩 고개를 들었다. 분명히 여자는 뒤돌아보고 있는데? 그제야 수애는 여자의 목이 돌아가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여자의 몸은 수애를 향해 있었지만 고개는 완전히 뒤로 돌아간 상태였다. 수애는 천천히 뒷걸음질 쳤다.

"수애 씨? 수애 씨 왜 여기 있는 거예요?"

갑자기 일행 속에서 누군가가 수애를 불렀다. 예전에 본 적 있는 그 중년부인이었다. 부인은 수애를 향해 손을 저어보였다.

"어서 들어가요. 당신은 여기 있으면 안 돼요. 어서요. 그리고 내가 보라는 거 봤어요?"

"보라는 거라니요?"

수애는 멍한 얼굴로 물었다.

"작은 방의 벽장, 바닥에 있는 장판을 들춰보라고 했잖아요?"

그때였다. 보라색 드레스의 여자가 고개를 돌려서 수애를 쏘아보았다. 보라색 드레스에서 피가 뚝뚝 떨어졌다. 붉게 번진 옷에서 언뜻 푸른색이 보였다.

"원래 푸른 색 옷이었던 거야? 그럼..."

수애의 눈이 크게 치떠졌다. 여자가 미친 듯이 웃음을 터트리면서 수애를 향해 달려들었다.


"꺄아아아악!"

수애는 비명을 지르면서 눈을 떴다. 식은땀이 장판에 짙게 배어 있었다. 방금 전 쓰러진 채로 그대로 잠든 모양이었다. 수애는 몸을 일으켰다. 찌지직. 장판에 눌어붙어있던 살이 떼어지면서 기이한 소리를 냈다. 수애는 땀에 전 머리카락을 뒤로 넘겼다. 시계를 보니 벌써 밤 9시를 넘어가고 있었다.

"이상한 꿈이네."

수애는 여상한 말투로 중얼거렸다.

'수애씨, 내가 보라는 거 봤어요?'

꿈속에서 보라색 드레스의 여자가 덮치기 전, 중년부인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수애는 피식 웃었다.

"그냥 꿈이잖아."

뚝뚝뚝. 수도꼭지를 제대로 잠그지 않은 모양이었다. 싱크대에서 물방울이 듣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딘지 모르게 차갑고 습한 느낌이 들었다. 수애는 홀린 듯이 작은 방을 향해 걸어갔다.

"그냥 꿈이야. 그냥 꿈이지만, 확인만 해볼 거야."

수애는 자신에게 그렇게 중얼거렸다. 확인만 해보는 거야. 벽장 문을 열어서 아무것도 나오지 않으면 한바탕 웃어버리고는 자는 거야. 알았지, 수애야? 수애는 자신에게 다짐을 하고는 작은 방으로 갔다. 총 세 개의 방이 있었는데, 큰 방은 안방으로 쓰고, 중간크기의 방은 진호의 서재라고 두었다. 가장 조그마한 방은 나중에 아이가 생기면 쓸 생각이었다.

수애는 작은 방의 벽장 앞에 섰다. 수애는 심호홉을 하고는 벽장 문을 열었다. 벽장안에는 아직 풀지 않은 이삿짐이 종이상자에 담긴 채 그대로 쌓여 있었다. 그 속에는 수애가 예전에 미리 사둔 아기용품이 들어 있었다. 수애는 상자 밖으로 비죽 나온 고무젖꼭지를 만지작거렸다. 수애의 얼굴에 살짝 웃음이 걸렸다. 수애는 고무젖꼭지를 원래 자리에다 두고 허리를 숙였다. 수애는 조심스럽게 벽장바닥을 만져보았다. 한쪽 끝이 볼록했다.

'뭐지? 뭔가 숨긴 거야?'

수애는 전 주인들을 떠올렸다. 화목해보이던 노부부의 얼굴이 떠올랐다. 그 사람들이 숨겼을까? 숨겼다면 대체 무엇을?

'이왕이면 당첨복권이라든가 상품권이라든가 그런 거였으면 좋겠는데.'

수애는 엉뚱한 생각을 하고는 웃었다. 수애는 벽장에 있던 종이상자를 밖으로 끄집어내고는 장판을 들추었다. 벽장 바닥에는 작은 책 한권이 놓여 있었다. 수애는 책을 집어 들었다. 책은 검은 비로드 천으로 쌓여 있었다.

"행복중학교 1995년도 졸업앨범."

수애는 책 표면에 쓰인 글자를 읽었다. 수애는 앨범을 매만져보았다. 앨범 몇장이 접혀 있었다. 수애는 접혀있는 쪽을 펼쳤다.

"3학년 2반"

평범한 졸업앨범이었다. 반 학생들이 단체로 찍은 사진이 전면에 있었고 우측 상단에는 담임선생의 사진과 교훈이 적혀 있었다.

"행복중학교 모범반 2반"

교훈은 썩 훌륭하진 않았다. 어이없는 웃음이 나올 만큼 단순했다. 다음 장을 넘기자 개인사진이 나오기 시작했다. 책장이 또 한 장 접혀 있었다. 그곳을 피자 여러 명의 여학생의 사진이 나왔다. 사진 밑의 이름에 빨간 펜으로 다섯 개의 동그라미가 그려져 있었다. 수애는 동그라미가 쳐진 이름을 차례로 읽었다.

"김연지, 이지애, 송지영, 이현아, 정은혜."

책장을 잡은 수애의 손이 희미하게 떨렸다. 수애의 시선이 마지막 사진에 머물렀다가, 수애는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다시 또 책장이 접혀 있었다. 그곳에도 사진 밑에 동그라미가 쳐져 있었다.

"오진호."

수애는 이름을 확인하자마자 졸업앨범을 던져버렸다. 진호였다. 분명히 진호였다. 비록 앳된 모습이긴 했지만 수애의 남편인 진호가 확실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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