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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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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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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96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10.07 0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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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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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쪽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24

DUMMY

지아가 문을 열자마자, 남자가 활짝 문을 열고는 집안으로 들어왔다. 석호였다. 석호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고 있었다.

"왜 그래요? 무슨 일 있어요?"

지아는 당황해서 물어보았다. 석호는 멍한 표정으로 지아를 바라보았다. 석호는 지금 눈앞에 있는 여자가 누군지 모르는 눈치였다. 석호는 여자를 바라보았다.

'죽은 아내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석호는 이렇게 말할 수 없었다. 석호는 땀을 닦고 말했다.

"그...그러니까...그냥 대화하고 싶었어요."

석호가 말했다. 지아가 고개를 갸우뚱했다. 뭔지는 모르겠지만, 석호는 매우 겁에 질린 표정이었다. 지아는 우선 석호를 소파에 앉혔다. 지아는 부엌으로 들어가서 커피를 가지고 나왔다.

"자, 드세요."

지아가 말했다. 커피는 적당히 미지근했다. 석호는 머뭇거리다가 커피를 마셨다.

"왜 갑자기 뛰어드신 거예요?"

지아가 물었다.

"그러니까, 그러니까...."

석호는 뺨을 긁었다.

"괜찮으신가 해서요. 아침에 뵈니까 몸이 아파보이시더군요."

석호는 속으로 말도 안된다고 생각했다. 석호는 지아가 경찰에게 전화를 걸 거라고 생각했다. 누가 봐도 석호는 수상한 남자였다.

"제가 아프다고요?"

지아는 어색하게 웃었다.

"그보다 황금 같은 일요일에 제 걱정을 하신 거예요? 부인은 어쩌고요?"

지아는 곁눈질로 석호의 결혼반지를 가리키면서 물었다. 석호는 결혼반지를 낀 왼손 검지를 매만졌다.

"아내는 집에 없어요."

석호가 말했다. 석호는 아직 이웃사람에게 아내의 죽음을 알리고 싶지 않았다. 석호는 지금도 마음 한 구석에서 믿고 있었다. 아내가 금방이라도 현관문을 열고 들어올 거라고. 순영은 석호에게 아이들이 어디에 있냐고 물을 것이다. 그리고 점심을 하겠지. 석호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지아는 커피잔을 내려놓았다.

"남자들은 가족에게는 고민을 꺼내지 못하나보죠?"

지아가 물었다. 석호는 시선을 내려트렸다.

"오늘 겨우 본 사람에게 고민을 들어달라고 쳐들어올 정도로, 고민하면서 말이예요. 부인에게 가서 이야기해 보는 게 어때요?"

"아내는....들을 수 없어요."

지아는 한숨을 내쉬었다. 남자란 족속이 다 이렇지. 지아는 작게 투덜거렸다.

"예전에 그 사람도 그랬어요. 아내가 돈을 밝힌다고 욕하더라고요. 아내가 자신을 무시하고, 잠자리에서도 남자답지 못한다고 화를 낸다고 말이에요. 아내한테 직접 말하지 못하고 나한테 그러는 거예요. 웃기지 않아요? 왜 그런 이야기를 생판 남인 나한테 이야기하는지. "

지아는 커피 잔을 매만졌다. 처음 본 사람에게 예전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그 이야기는 묻어버리려고 했으니까.

"어떤 고민이 있으신 거죠?"

"잠이 오지 않아요."

석호가 말했다.

"아, 네. 아직 낮이니까요."

지아가 여상한 말투로 말했다.

"아내가 오지 않아요."

석호는 결혼반지를 매만졌다.

"나한테 무척 화가 나 있어요. 이야기를 할 수 없어요. 처음엔 모든 게 순조로웠죠. 훌륭하진 않지만 그럭저럭 좋은 직장을 잡았는데다가, 정말 괜찮은 여자와 결혼했거든요. 집도 샀고요. 내 나이 대에는 무척 빨리 집을 산거예요. 남들은 십년, 이십년이 걸려야 집을 사거든요. 그런데...."

석호는 말을 끊었다. 더 말을 잇기가 힘들었다. 지아는 석호의 말을 기다렸다. 석호는 간신히 말을 이었다.

"아이가 생겼어요. 그것도 남들보다 이르게요. 아내는 그것 때문에 힘들어했죠. 아이를 낳자마자 직장에서 해고되었고...해고는 아니었지만 사실상 해고된 거나 다름없었죠. 아내는 몹시 힘들어했어요. 하지만 나도 나 나름대로 직장생활을 하느라고 힘들었기 때문에....아이가 생기고 나서는 모든 게 엉망이었어요. 모든 게....빌어먹을."

석호는 욕설을 뱉었다. 더 참을 수 없었다. 눈물이 고였다. 장례식에서도 울지 않았는데, 낯선 여자 앞에서 눈물을 보일 수 없었다.

"돈은 돈대로 모이지 않았고, 아내는 아내대로 힘들었고...아내는 나 때문에 죽은 거예요."

"어째서 그렇게 생각해요?"

지아가 물었다.

"왜 그게 석호 씨 탓이라고 생각하는 데요? 아이가 만들고 싶으면 생기고, 만들기 싫다고 안 생기는 거예요? 아이가 무슨 석호 씨의 분신이라도 된다고 생각해요? 아이는 그냥 아이일 뿐이라고요. "

지아는 담배를 꺼냈다.

"담배를 좀 펴도 돼요? 싫어하는 사람이 많아서..."

"마음대로 하세요. 여기는 지아 씨 집이니까."

지아는 담배를 물었다.

"부인이 직장에서 나온 건, 석호 씨 잘못이 아니라 그 빌어먹을 회사가 나쁜 거예요. 결혼한 여자가 애 생기는 건 아주 당연한 일이라고요. 그때가 아니었어도 언제라도 잘랐을 곳이에요. 석호 씨가 좋은 남편이 아니었을지는 몰라도, 나쁜 남편은 아니었어요. 부인도 아마 알고 있을 거예요."

석호가 울음을 터트렸다. 지아는 말없이 담배만 피웠다. 지아는 남자를 완전히는 아니어도 조금쯤은 알고 있었다. 석호는 지나치게 착한 사람이거나, 어렸을 때 엄격한 가정에서 컸던 것이 틀림없었다.

'여자인 내가 남자가 어떻다하고 말하는 건 그저 추측일 뿐이지만.'

지아는 중얼거렸다. 석호는 그저 울고 싶어서 찾아온 것 같았다. 한 십 분쯤 흐른 뒤에야 석호가 눈물을 훔치면서 일어섰다.

"이렇게 함부로 찾아와서 죄송합니다."

지아는 쓴웃음을 지었다.

"미안하다고 말하기에는 이미 늦은 시간이네요."

"그, 그런가요?"

석호가 더듬거렸다.

"그럼 내일 저녁 사시겠어요?"

석호는 깜짝 놀란 얼굴로 지아를 응시했다. 이 대담한 말에 지아 자신도 놀라고 말았다. 처음 보는 남자를 집안에 끌어들이고, 저녁 약속까지 잡다니. 이곳에서 얌전히 새 삶을 살려는 지아의 계획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하지만 한 번 내뱉은 말을 주워 담을 수 없는 법이었다.

지아는 어색하게 웃으면서 석호의 대답을 기다렸다.


"으와아앙"

아이들이 울어댔다. 순영은 화를 내고 있었다.

"그만해! 그만 울어대라고. 이 빌어먹을 것들아!"

순영은 아이들이 누워있는 요람을 흔들면서 말했다.

"순영아, 왜 그래?"

석호가 달려왔다. 순영은 신경질적으로 벽을 향해 우윳병을 집어던졌다.

"그 소리가 들려. 들린다고!"

순영이 귀를 틀어막고 외쳤다. 석호는 우유병을 집어 들었다. 우유병에는 금이 가 있었다.

"이게 무슨 짓이야?"

석호가 버럭 소리 질렀다.

"애들 놀래는 거 안보여? 애를 상대로 화를 내?"

"당신이 뭘 안다고 그래? 당신이 회사 나가면, 난 항상 애들과 남는다고. 애들은 말 같은 건 통하지 않아. 그냥 먹고 싸고 소리질러대는 것뿐이지. 나 혼자 해야 해. 나 혼자 해야 한다고. 두 시간간격으로 울어대는 애들을 안고 달래는 게 쉬운 줄 알아?"

"뭐야? 딴 여자들은 그럼 안 그래? 왜 너만 유별나게 그래? 애 낳은 게 벼슬인 줄 알아? 회사에서 일하는 건 안 힘든 줄 알아? 나도 누가 돈 주면서 집에서 애 돌보라고 하면, 당장 회사 때려치우고 애나 볼 거야. 개나 소나 다 하는 일에 뭘 그렇게 잘난 체 해?"

"개나 소나 다 한다고?"

"그래, 누구나 다 하는 거지. 요새는 열일곱 열여덟 먹은 애들도 쉽게 애 낳아서 쉽게 키우는데, 왜 너만 유별나게 그러냐고?"

"당신은 엄마가 아니니까 그런 소리를 하는 거야."

순영이 갑자기 서늘한 목소리로 말했다.

"하긴 당신은 엄마가 뭔지 모르니까."

석호는 손을 들어올렸다. 찰싹. 석호는 순영의 뺨을 세차게 때렸다. 정신을 차렸을 때는, 순영의 뺨에 붉은 손자국이 남아 있었다.

"미안."

석호가 말했다. 쌍둥이가 시끄럽게 울어대는 소리만이 울렸다. 불편한 침묵이 계속되었다. 석호는 주춤거리면서 문지방으로 물러섰다. 석호는 천천히 등을 돌렸다. 순영이 얼굴을 무릎에 묻었다.

"석호 씨. 당신은 저 소리가 안 들리는 거야? 그런 거야?"

순영이 물었다. 석호는 등을 돌려 달아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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