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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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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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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484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10.18 23: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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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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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쪽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7

DUMMY

드르륵. 연수는 교실 문을 열었다. 아직 아침이라 교실안의 공기는 쌀쌀했다. 보통 이맘때의 교실은 떠들썩한 분위기에 가득 차 있었다. 아이들은 수업전의 짧은 자유 시간을 누리느라고 바빴다.

그러나 오늘은 뭔가 달랐다. 학생들은 자기 자리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학생들은 무표정한 얼굴로 한 방향을 뚫어져라 바라보고 있었다. 연수는 학생들의 시선을 따라 칠판을 바라보았다. 칠판에는 커다랗게 한자 "水"가 적혀 있었다. 연수는 다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학생들의 얼굴은 마네킹처럼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다음 순간 주술이 풀렸다. 시끄러운 말소리가 봇물처럼 터져 나왔다. 아이들은 거짓말처럼 자리에서 일어나 교실을 활보했다. 누군가는 레슬링을 한다면서 장난스러운 동작으로 앞사람의 목을 조르는 시늉을 했다. 또 누구는 핸드폰에 이어폰을 연결하고 음악을 듣고 있었다. 또 누군가는 만화책을 책상 서랍에서 반쯤 꺼내 들여다보고 있었다.

연수는 다시 칠판을 바라보았다. 방금 전에 쓰여 있던 "水"가 거짓말처럼 사라지고 없었다. 연수의 이마에 땀방울이 돋아났다. 연수는 칠판으로부터 뒷걸음질 쳤다. 탁. 누군가가 연수의 등을 때렸다. 연수는 소스라치게 놀라 소리를 질렀다.

"으아악!"

반장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너 담임이 오래."


담임이 부른 곳은 교사 휴게실이었다. 탁자를 사이에 두고 푹신한 소파가 놓여 있었다.

"앉으렴."

담임의 권유에 연수는 엉거주춤하게 자리에 앉았다.

"형사님이 몇 가지 물어볼게 있단다."

형사라는 남자는 우락부락한 생김새를 하고 있었다. 담임은 불편한 표정으로 둘을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남자는 연수에게 사진을 한 장 내밀었다. 사진 속에는 단발머리의 여고생이 있었다. 특별하게 예쁜 외모는 아니었다. 거리를 걷다보면 한 두 번쯤 만날법한 그런 얼굴이었다.

"이 학생이 누군지 아니? 혹시 만난 적은 있니?"

연수는 고개를 저었다.

"오늘 사진으로 본 게 처음이에요."

"이 학생 이름은 조순이란다. 행복 고등학교 학생이지. 그런데 정말 만난 적 없어?"

"네, 모르는 사람이에요."

"흐음."

형사는 생각에 잠긴 표정이었다.

"그저께 어디에 있었지?"

"집에요. 엄마와 함께 있었죠. 그런데 왜 그런 걸 묻는 거죠? 무슨 일 있어요?"

"죽었단다. 자택에서 동생과 함께 숨이 끊어진 상태로 발견되었다. 조순이 학생이 마지막으로 채팅한 상대가 너더구나. 00카페에서 말이다."

"아...."

연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생각나요. 닉이 '도와주세요'였던가. 고민이 있어 보이기에 채팅을 했는데, 가족 간에 문제가 있어보였어요."

"문제?"

"네.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나서 다들 이상해졌다면서 우울해하던데요. 하지만 오래 이야기하진 않았어요. 금방 나가버렸으니까."

"그래, 그렇구나."

형사는 사진을 품에 넣었다.

"그럼 저 가 봐도 되죠? 곧 수업시작이라...."

"그래, 가보렴."

형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죽었던 거구나."

연수는 상의 호주머니에 손을 넣어 폴더를 만지작거렸다.

'아빠, 정말 이상하지 않은 거야? 왜 찌개 냄비가 여기 있냐고!'

'엄마가 끓였나보지.'

'엄마는 죽었잖아.'

순이는 아침마다 물었을 것이다. 그때마다 대답은 같았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왜 날 존중하지 않아?'

꿈속의 남자는 학원에서 돌아온 딸의 목을 졸랐다.

'과장은 매일같이 사표 쓰라고 지랄하지 않나! 마누라는 자살하지 않나! 딸내미는 말대답이나 하지 않나! 내가 뭘 잘못했어?'

뒤이어 들어온 아들도 가죽혁대로 목을 졸랐다.

'그게 무슨 상관이야?'

연수는 남자의 말을 되 뇌이면서 교실문의 문고리를 잡았다.


퍼억. 연수가 교실에 들어서자마 누군가의 발길질이 날아왔다. 너무 급작스러운 일이라 연수는 자신을 방어할 자세도 취하지 못했다. 연수는 배를 맞고는 바닥에 쓰러졌다. 숨이 막히고, 눈앞이 뿌옇게 흐려졌다.

"야, 이연수! 너 아직도 안 죽었냐?"

신우의 목소리였다. 신우는 연수를 내려다보다가 연수가 고개를 들자, 다시 발길질을 날렸다.

"크흑!"

연수는 배를 움켜쥐었다.

"너 왜 안 죽었냐? 엉? 세상 사는 게 무척 행복한 가보지?"

"너, 너는...너는 왜 사는데?"

연수는 힘들게 말을 뱉었다. 퍽. 또 한 번 발길질이 날아왔다.

"이 개새끼가! 말귀를 못 알아듣네? 빨리 죽어버리라고! 이 버러지 같은 놈아."

퍽퍽퍽. 연속해서 가죽 공을 차는 소리가 교실 뒤편에서 들려오고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뒤돌아보는 학생은 아무도 없었다. 연수는 신우에게 맞으면서 학생들을 바라보았다. 모두들 아까처럼 앞만 바라보며 앉아 있었다. 심지어 단짝 욱마저 같은 모습이었다.

"그만 해라. 그러다 죽겠다."

도지가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신우는 숨을 고르면서 연수에게서 물러났다.

"그래, 그래. 죽으면 안 돼지. 저 놈은 제가 스스로 죽어야지. 내 손 더럽힐 필요 있나?"

신우는 허리를 굽혔다.

"네가 자살할 때까지 이렇게 매일 아침 널 손봐주지. 네 얼굴은 볼 때마다 때리고 싶은 그런 얼굴이거든? 넌 이제 인간이 아니야. 내 스트레스 해소 장난감이지."

신우는 허리를 폈다. 신우는 자기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도지가 껌을 질겅이면서, 연수를 한 대 걷어차고는 신우를 허겁지겁 쫓아갔다.

연수는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입에서 침이 흘렀다. 침이 흐르는 것을 느끼면서도 입을 닫을 수가 없었다. 연수는 끙끙거리면서 숨을 쉬려고 노력했다. 진탕된 것 같은 뱃속이 진정되기를 기다리면서. 그래도 교실 뒷자리를 돌아보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연수는 가까스로 조회 전에 자기 자리로 돌아갈 수 있었다. 연수는 바닥을 기다시피하면서 의자로 가 앉았다. 드르륵. 문이 열리고 담임이 나타났다. 담임은 조회를 시작했다.


띠리리리! 핸드폰 벨소리가 요란하게 거실에 울렸다. 요새 유행하는 소녀 그룹의 노래였다. 석호는 신음을 흘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통으로 머리가 지끈거렸다. 석호는 자신의 벗은 몸을 내려다보았다.

"뭐지..."

석호는 끙하고 신음을 뱉으면서 옆자리를 돌아보았다. 침대 옆자리에는 자신처럼 나체의 모습으로 여자가 누워 있었다.

"지아?"

지난밤에 함께 술을 마신 기억이 살짝 스쳐지나갔다. 석호는 머리를 움켜쥐었다. 술기운이 용기를 주었을지 모를 일이었다. 어쩌면 아내가 불륜을 저질렀을지 모른다는 사실이 죄책감을 날려버렸을지도 모른다.

지아가 했던 말이 기억났다.

"산다는 게 무섭네요. 과거란 꼬리표가 쉽게 떨어지지 않네요. 그냥 지금은 누군가와 함께 있고 싶어요. 다른 생각은 들지 않아요." 둘은 해물탕을 안주 삼아 소주잔을 기울이고 있었다.

"석호 씨도 가끔 그런 생각이 들어요?"

"난..."

석호는 지아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지아 씨, 참 예쁘네요. 저도 그 말밖에는 다른 생각은 들지 않네요."

"정말로요?"

두 사람의 시선 끝이 만났다. 지아는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호도 지아를 따라 일어났다. 지아는 덥석 석호의 입술을 훔쳤다. 석호는 지아의 허리를 안았다. 석호가 기억하기로는 두 사람 다 옷을 벗느라고 정신이 없었다. 그 다음 일은 정확하게 기억나지 않았다.

석호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호는 속옷을 챙겨 입고 거실로 나갔다. 여전히 핸드폰은 요란하게 울리고 있었다. 소리의 진원지는 지아의 핸드백이었다.

"어...그거 내 핸드폰이야."

안방에서 지아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가져다줄게."

석호는 자신도 모르게 반말을 하고는 머리를 긁적거렸다. 어느새 인가 서로에 대한 존대가 사라지고 없었다. 석호는 지아의 핸드백에서 핸드폰을 꺼냈다.

지아는 헝클어진 머리를 하고 앉아 있었다.

"잠깐만 나가줄래?"

지아는 핸드폰을 받아들면서 물었다. 석호는 고개를 끄덕이고는 거실로 나갔다.

"네. 오늘 몸이 좀 안 좋아서 늦게 갈 것 같아요. 죄송합니다."

지아의 소곤거리는 목소리가 간간이 들려왔다.

'내가 대체 무슨 짓을 했담.'

석호는 머리를 다시 한 번 북북 긁으면서 생각했다. 거실 한쪽에 놓인 아이들의 사진이 눈에 밟혔다.

'다시 연애같은 거 못하게 될 줄 알았는데.'

석호는 쓴웃음을 지었다.

"죄송합니다."

지아는 핸드폰 폴더를 닫았다. 예정에 없던 일이어서 지아 자신도 당황하고 있었다. 지아는 석호가 오기 전에 얼른 옷을 갈아입으려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막 옷을 줍는 지아의 눈에 바닥에 떨어져 있는 노트가 띄었다.

"이게 뭐지?"

지아는 노트를 펼쳤다.

"뭐야?"

지아는 이마를 찌푸렸다. 노트에는 빼곡하게 "水"라는 한자가 적혀 있었다. 지아는 노트를 닫고는 화장대 위에 올려놓았다.

"흠흠."

지아는 헛기침을 하면서 안방 문을 열었다.

"저기..."

"그게..."

둘은 동시에 입을 열었다가 다물었다.

"그러니까...."

"미안...."

둘은 다시 입을 열었다가 또 다물었다. 둘은 시선을 다른 곳으로 돌렸다.

"아침...안 먹을 거예요?"

지아가 어색한 존댓말로 물었다.

"아, 그렇죠?"

석호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석호는 냉장고 문을 열고 어제 먹다 남긴 해물탕 찌꺼기를 꺼냈다. 석호는 그것들을 한데 냄비에 넣고 끓였다.

지아는 열없는 표정으로 식탁 앞에 앉아 있었다.

"저기, 존댓말 언제까지 사용해야해?"

지아가 입을 열었다.

"그게 난..."

석호는 식탁을 차리던 손길을 멈췄다.

"사귀자는 게 아니라..."

그러기에는 둘 다 부담이 컸다. 지아는 초음파 사진을 떠올렸다. 지아의 뱃속에서 숨을 쉬고 있던 그 조그마한 것을.

"그냥 편하게 지내고 싶어. 친구로 말이야."

석호는 거실 어딘가 있을 아이들의 사진을 떠올렸다.

"그래."

석호는 한참만에 대답했다.

"말을 놓자."

석호는 수저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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