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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색물감 님의 서재입니다.

행복동 아파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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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회색물감
작품등록일 :
2010.10.23 22:38
최근연재일 :
2010.10.23 22:38
연재수 :
43 회
조회수 :
23,505
추천수 :
276
글자수 :
222,022

작성
10.10.17 02: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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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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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0쪽

[공포]행복동 아파트(3.푸른 수면)-34

DUMMY

"야, 연수!"

뒤에서 욱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수는 복도를 달리기 시작했다. 욱이 막 모퉁이를 돌 무렵이었다. 퍽. 누군가의 손이 연수를 낚아챘다. 한 놈이 연수의 두 팔을 뒤로 돌려서 잡고 있는 동안 다른 놈이 주먹으로 연수의 배를 때렸다.

"으악!"

숨이 막혀왔다. 연수의 무릎에서 힘이 풀렸다. 그들은 연수가 쓰러지게 내버려두지 않았다.

"일어나, 새꺄."

나직한 목소리가 귓바퀴를 간질였다. 신우의 목소리였다. 도지가 연수의 배를 또 한 번 때렸다. 연수는 억지로 힘이 들어가지 않는 다리에 힘을 주어 일어났다.

신우는 접이식 나이프를 꺼내들었다. 착. 영화에서처럼 신우가 손잡이를 허공에 대고 흔들자, 용수철이 튕기는 소리가 나면서 칼날이 튀어나왔다.

"와아, 멋있어!"

도지가 침을 튀겨가면서 박수를 쳤다. 다른 이들은 아무 말 없이 그런 신우를 바라보고만 있었다. 신우는 칼날을 연수의 눈가로 가져갔다.

"대체 왜 이러는 거야?"

신우는 입매를 실쭉거렸다.

"왜? 이유 같은 걸 여기서 왜 찾아. 어차피 그런 건 아무 소용없는 거야. 그것보다 다른 걸 걱정해. 내가 이걸로 네 눈깔을 후벼 팔까 안 후벼 팔까, 이런 거 말이야."

"넌...네가 엄청 잘났다고 생각하겠지?"

연수는 신우를 올려다보았다. 퍽. 신우는 발을 들어 연수의 다리를 걷어찼다. 연수가 무릎을 꿇자, 신우는 발로 신우의 무릎을 밟았다.

"멍청한 새꺄. 누가 너한테 입을 열어도 좋다고 했어? 이 네미랄놈아. 넌 나한테 복종해야 해. 알아?"

"찔러. 찔러보라고. 네가 직접. 다른 놈한테 시키지 말고."

연수가 툭 말을 던졌다. 신우의 눈 꼬리가 슬쩍 떨렸다.

"아무리 대단해봤자, 이 학교 안에서 뿐이겠지. 나가봤자, 평생 다른 조폭들의 칼받이 밖에 안 되는 인생이야."

"이 개자식이!"

신우가 달려들었다. 신우는 연수의 얼굴과 팔 다리를 가리지 않고 발길질을 했다. 연수가 기절하려는 찰나, 신우는 연수의 턱을 잡아 올렸다. 차가운 감촉이 뺨을 훑고 지나갔다. 이어서 화끈한 통증이 느껴졌다.

"크흑."

"내 손으로 죽일 순 없지. 나는 그래도 졸업은 해야 하겠거든. 그러니 이러면 되겠다. 너 그냥 자살해라."

신우가 속삭였다.

"이왕이면 높은 곳에서 떨어지면 되겠네. 너 아파트 살잖아. 아니면 손모가지를 칼로 긋든가. 그것도 싫으면 어떤 미친놈처럼 네 몸에 기름 붓고 불붙이는 건 어때? 왜 영화로도 나왔잖아? 그렇게 죽으면 되겠네. 잘하면 그 미친놈처럼 유명인사도 되고 좋잖아?"

"병신."

부어오른 한쪽 눈은 잘 떠지지 않았다. 연수는 히죽 웃었다.

"전태일은 분신자살해서 유명한 게 아니야. 노동운동으로 유명한 거지. 어떻게 하면 그 깡통 울리는 소리를 그칠 거냐?"

다시 한 번 화끈한 통증이 다른 쪽 뺨에 전해졌다.

"죽고 싶냐? 그럼 죽어."

"싫은데?"

"그럼 죽고 싶을 때까지 괴롭혀주지."

신우의 말을 신호로, 아이들이 달려들었다. 아이들은 각목으로 연호를 때리기 시작했다. 연호는 공처럼 몸을 둥글게 말았다.

"너희들, 여기서 무슨 짓이냐!"

어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들이 우르르 다른 곳으로 몰려갔다.

"너 괜찮냐?"

조금 멀리서 다른 반 선생이 달려오고 있었다. 연수는 비틀거리면서 자리에서 일어났다.

"너 몇 반이었지? 눈에 익은 얼굴인데...."

연수는 절뚝거리면서 반대 방향으로 걸어갔다.

"기다려! 많이 다친 것 같은데."

교사의 목소리가 몇 번 더 들려왔지만 연수는 돌아보지 않았다. 연수는 숫제 뛰다시피한 걸음으로 그 자리를 떠났다.


집에는 아무도 없었다. 연수는 세면대로 갔다. 어머니가 직장에서 돌아오는 시간은 대략 오후 여섯 시쯤 되었다. 얼굴에 물이 닿자, 상처가 쓰라려왔다.

연수는 거울을 통해 얼굴에 난 상처를 들여다보았다. 왼쪽 뺨에 세로로 길게 한줄, 오른쪽 뺨에는 옆으로 누운 상처가 턱 쪽에 나 있었다. 연수는 알코올로 대충 소독하고 반창고를 붙였다. 멍은 어떻게 할 수가 없어서 그냥 내버려두었다.

어머니는 보통 때보다 늦은 시각에 귀가했다.

"너 왜 아직 학원 안 갔어?"

혜자는 마루에 앉아 있는 연수를 발견하고 물었다. 혜자는 거실에 들어섰다가 연수의 얼굴을 보고는 깜짝 놀라고 말았다.

"얼굴이 대체 왜 그러니?"

혜자는 연수의 눈두덩이 시퍼렇게 부어있는 것을 보고는 비명을 질렀다.

"여기 상처, 누가 냈어? 응?"

"그게...학교 계단에서 굴렀어요. 이건 긁힌 자국이에요."

연수는 엄마의 눈을 피했다.

"아무래도 학교에 가봐야겠다. 대체 누가 내 아들 얼굴 이렇게 만들어놨는지 물어야겠어."

"정말 계단에서 구른 거예요. 내 실수라니까. 내일 엄마가 학교 오면 난 창피해서 얼굴 들고 다닐 수가 없어요."

"정말 이 녀석...어쩌다가 구른 거야."

혜자는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연수를 들여다보았다.

"가슴이 덜컥 내려앉는 줄 알았잖아."

"그런데 왜 이렇게 늦었어요?"

"아...그게...집 내놨어."

혜자는 가방을 내려놓으면서 말했다.

"집이오?"

"그래. 자꾸 안 좋은 일이 생겨서...딴 데로 이사 가려고."

"학원 안 가도 돼요? 오늘 딱 하루 만요. 이 얼굴로는 가기 힘들다고요."

연수는 얼굴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알았다. 그런데 연고는 발랐니? 정말 병원 안 가도 되겠어?"

"정말 괜찮아요."

연수는 웃어보였다.

"쾅쾅."

갑자기 현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혜자는 고개를 갸웃했다.

"누구세요?"

"거기 연수 어머니 계시죠? 좀 나와 보세요!"

앙칼진 목소리였다. 혜자는 조심스럽게 문을 열었다. 중년 여자가 불쑥 현관을 밀치고 들어왔다. 여자를 따라서 비슷한 또래의 여자들이 줄줄이 따라 들어오고 있었다.

"다, 다들 왜 이러세요?"

"연수 어머니. 전 부녀회장이에요."

선두에 선 여자가 말했다.

"저번에 회의 때 나오셨죠? 그때 분명히 들었죠? 4억 이하로는 집 내놓지 말라고 한 거."

부녀회장은 팔짱을 꼈다.

"그런데 이번에 황금 부동산에 매물 나온 거 보니까, 연수 어머니만 혼자서 3억 8천에 내놨더라고요."

"그렇게 해야 잘 나간다고 하더군요. 사실 여긴 역세권도 아니고 하니까..."

"연수 어머니! 지금 그게 문제에요? 집값 떨어지잖아!"

부녀회장이 빽 소리 질렀다. 너무 급작스러워서, 멀찍이 떨어져 있던 연수까지 움찔할 정도였다. 혜자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곧 그 표정은 분노로 바뀌었다.

"왜 반말하세요?"

"사람이 경우가 있어야지! 약속을 했으면 지켜야 할 거 아니야!"

"그래! 왜 남의 집값까지 망쳐!"

뒤에 있던 다른 여자가 맞장구를 쳤다.

"그냥 사람 모아놓고 고개 끄덕이게 한 게 무슨 효력이 있어요? 그리고 그거 담합이잖아. 불법이잖아! 그런데 뭐 잘했다고 나한테 목소리 높여? 당신들이 무슨 자격으로 내 집에 쳐들어와서 그래?"

"야, 저년 봐라! 다들 저년이 하는 말 들었지?""와, 뭐 저런 년이 다 있어?"

"개 같은 년!"

여자들이 우우 몰려들었다. 여자들은 눈에 불을 켜고 혜자를 에워쌌다.

"좋은 말로 할 때 들어, 이 쌍년아."

"쌍년? 야, 너 부녀회장 맞니? 무슨 말이 그 따위야?"

혜자도 지지 않고 삿대질을 했다.

"대가리에 피도 안 마른 것이 고개 빳빳이 들고 뭐라는 거니? 이 년아, 너 때문에 우리 동네 질이 떨어지잖아. 내가 나만 좋자고 4억 이하로 내놓지 말랬니? 그렇게 싸게 팔면, 우리는 뭐먹고 살라는 거야. 이 시팔 년아."

"4억이면 애들 껌 값이라고. 그걸로 등록비나 대겠어? 우리는 뭐 굶으라는 거냐? 다른 동네는 4억이 뭐니? 이정도 평수면 7억도 받을 수 있는데, 너 같은 개년 때문에 우리까지 손해 보잖아!"

"정말 막돼먹은 여편네 같으니라고. 그냥 확!"

"뭐야, 치려는 거야?"

혜자는 목소리를 높였지만, 어깨는 잔뜩 움츠리고 있었다.

"아빠에요?"

연수는 전화기를 들고 큰소리로 말했다. 여자들의 시선이 연수에게로 향했다.

"지금 어디에요? 집 앞이라고요? 네. 엘리베이터 쪽에 계시죠? 제발 빨리 올라와주세요. 무슨 일이냐고요? 일단 와보세요. 어서요."

달칵. 연수는 전화기를 내려놓았다.

"오늘 회사가 일찍 끝났다네요." 부녀회장의 눈매가 가늘어졌다. 연수는 무표정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오늘은 그만하고 가요."

"정말 재수가 없으려니까."

여자들은 투덜거리면서 하나둘씩 현관을 빠져나갔다. 부녀회장만이 마지막까지 남아 있었다.

"내 말 안 들으면, 이 동네에서 제대로 발붙이고 살지 못 할 테니 그럴 줄 알아. 이사 가기 직전까지 지옥이나 다름없이 만들어주지." 부녀회장은 말을 뱉고는 걸음을 옮겼다.

"후우. 대체 이게 무슨 짓들이야."

혜자는 털썩 자리에 주저앉았다. 연수는 현관문을 잠갔다.

"어떻게 할까요, 엄마. 경찰서에 전화할까요?"

"경찰서에?"

"주거침입죄는 최소한 물수 있지 않을까하는데요."

"얘는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그 여자들 말 못 들었어? 가만히들 있겠니?"

혜자는 후우 한숨을 내쉬었다.

"참 아빠는...?"

"회사가 그렇게 일찍 끝날 리 없잖아요."

연수는 짤막하게 말하고는 자기 방으로 사라졌다. 혜자는 멍하니 아들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연수는 책상으로 다가갔다. 책상위에는 어제 뽑은 타로카드인 희생카드가 그대로 놓여 있었다. 연수는 희생카드를 잠시 바라보다가 그 옆에 있는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

"부재중통화?"

연수는 폴더를 열었다.

"잠깐 어디 다녀올게요."

연수는 현관문을 열었다. 혜자는 소스라쳐 놀랐다.

"뭐? 어디 간다고? 오늘은 그냥 집에 있어라. 방금 전...."

탁. 연수는 현관문을 닫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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