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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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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5 13:32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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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56
추천수 :
2,149
글자수 :
295,352

작성
24.07.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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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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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
글자
12쪽

53화. 같이 합시다 (2)

DUMMY

미화원이 건네준 쪽지를 펼쳐서 최재범에게 보였다.


“고독을 기다리며,라고-.”


어떤 내용인지 저도 잘은 모르지만.


“연극 공연이 있어요. 오랜만에 다 같이 모였는데, 밥만 먹고 헤어지기는 아쉽잖아요.”


그러니까.


“예술에 몸담은 사람들로서, 문화인답게! 연극을 보러 가는 건 어떨까요? 이건 제가 살게요.”

“그래요!”


예상대로 신애리가 가장 먼저 반응했다.

콘티 작업으로 바빠진 탓에 얼굴을 통 못 보던 차였다. 한번 보자, 내일 보자. 말만 하고서 시간 잡기가 어려워 며칠째 통화만 했다. 그러다 만났으니 얼마나 반갑겠어!

어울릴 기회가 왔는데 그냥 흘려보낼 신애리가 아니었다.


“재미있겠다! 오거리 극단이라고 했죠?”


신애리가 대답을 바라는 듯이 나를 보기에 그렇다는 의미로 끄덕였더니, 빠른 손놀림으로 장소를 검색했다.


“여기서 가깝네. 근처에 공영주차장도 있는데요? 주차하고 걸어가면 오 분 정도 거리에···. 어머머!”


대단한 것을 발견한 것처럼 신애리의 목소리가 커졌다.


“주변에 맛집이 왜 이렇게 많지?”

“그래요?”


관심을 보이지 않던 최재범의 표정이 밝아졌다. 휴대폰을 꺼내 들고 검색에 동참했다. 데칼코마니처럼 둘은 마주 보고서 휴대폰 액정을 슥슥 넘겼다.


“작가님, 저는요. 대낮에 대학로에 나와 본 게 처음이에요.”

“저도 스무 살 이후로 처음입니다.”


둘은 한마음으로 음식 사진을 넘겨봤다. 그러다 최재범의 눈이 커졌다.


“애리 님, 인도 커리 전문점인데 어떤거 같아요?”

“푸하하하 이게 뭐예요?”


슬쩍 봤더니, 잇스타 감성이다 뭐다 하면서 너저분한 콘셉트의 식당이 있던데. 그 느낌이다.


“정체성이 없죠? 일본처럼 꾸몄는데 식기는 이탈리아고 요리는 인도 음식인데-.”

“운영은 한국 사람이 하네요? 너무 웃기다. 근데 음식 평이 좋아요!”

“가보고 싶지 않아요?”


최재범의 말에 신애리가 끄덕였다.


“가요, 가요!”


신애리는 근육량을 늘리기 위해서 식단 관리를 끊었다. 적당히 살이 붙으면 운동을 시작할 거라고 했다. 덕분에 뭐든 먹을 수 있는 자유를 얻었다.


“인도 커리를 먹은 다음에···. 작가님 디저트는 여기 어때요?”


신애리가 휴대폰을 보이자, 최재범의 얼굴이 쑥 내민다.


“눈꽃 빙수?”

“궁금해서 배달해서 먹어 봤는데, 뚜껑에 눈꽃얼음이 눌려와서 폭신한 감이 없더라고요. 매장에서 먹으면 입에서 살살 녹는대요.”

“한 번도 안 먹어 봤어요.”


별것 아닌 일에 신애리는 꽤 충격을 받은 것처럼 화들짝 놀랐다.


“정말요? 오늘 먹어봅시다!”

“인도 카레 먹고 눈꽃 빙수, 고?”

“고!”


의욕에 불타오르는 둘을 보며 웃음이 났다. 최재범과 신애리는 기자회견을 통해서 한 작품에 들어간다고 밝힌 뒤, 당당하게 친해졌다. 만났다 하면 고등학생처럼 뭐 먹을까 대화로 정신없다.

저렇게 둘이서 놀면 참 좋겠는데-.

꼭 나랑 강철수 매니저도 같이 있어야 한다고 했다.


‘바쁜 대표님까지 불러내지 않는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할까.’


우리가 무슨 대화를 하든 말든.

신경을 쓰지 않고 뭔가를 검색하던 강철수 매니저가 어딘가에 전화를 걸었다.


“대학로 공연 티켓 부스죠?”


응?


“아- 네. 다름이 아니라 <고독을 기다리며>란 공연을 예약하려는데, 목록에 없어서요.”


이런, 한발 늦었다.

강철수 매니저는 내가 산다고 한 티켓을 먼저 구매하려고 알아봤나 보다. 몰래 온라인 예매를 하려다가 실패했는지, 통화를 시도했다.

항상 이런 식이다. 자식뻘 되는 녀석이 쓰는 돈은 부담스럽다며 커피 한 잔도 받길 부담스러워하신다.


- 청춘 때 번 돈은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 쓰세요. 그러다 여유가 생기면 저처럼 청춘에게 베푸세요.


잘 보고 배우라며 이렇게 모범을 보이셨다.


“아···. 그렇습니까? 알려주셔서 감사합니다.”


통화를 끊은 강철수 매니저가 입을 삐죽 내밀었다.


“<고독을 기다리며>는 정식 공연이 아니라네요. 공연장에서 구매하랍니다.”


연극 문화에 대해서 자세히 알지 못하는 나는, 매니저님의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정식이 아니면....?”

“이벤트 같은 겁니다. 극단에서 올리는 공연 이외의 공연인 거죠. 정식 공연에 선출되지 않은 배우끼리 실력 향상을 위해서 만든 작품이거나, 생활비를 마련하기 위해서 극단과 상관없이 별도로-.”

“공연을 올린다고요?”


그러고 보니까, 남자는 청소 일을 하면서 ‘왕의 광대’의 움직임을 배우고 있었다.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걸까?


“가서 보면 알겠죠?”


강철수 매니저의 말을 듣고 주춤거려졌다.

정식으로 올라가지 않는 공연이면 아무래도 허술한 부분이 있겠지. 그런 공연을 세계적인 작가, 세계적인 배우가 보면? 시시하겠다.


“저만 갈게요.”

“왜요?”


들떠있던 신애리가 놀랐다.


“같이 가자더니, 왜 혼자 가려고 해요?”


대뜸 서운한 표정이다. 그러다 눈을 축 늘어뜨리고서 나를 봤다.


“왜-에?”

“연극 수준이 높지 않을 것 같아서요. 저는 소극장 공연이 처음이라서, 신기하고 좋겠지만.”

“우리는 지루해할 것 같아요?”


최재범과 강철수 매니저가 없었다면, 반말로 ‘됐거든! 같이 갈 거야!’하며 씩- 웃었을 신애리가 예의를 차리느라 성격을 부리지 못해서 답답한가 보다. 눈을 치켜뜨고 흘겨봤다.


“감독님, 소극장 공연 본 적 없다고 했죠?”

“네.”

“거긴 좁아서 배우의 숨결이 다 들리거든요. 수고로움이 생생하게 전달돼서 재미를 따지기보다, 연기를 못하면 응원하게 되고 잘하면 전율이 흘러요.”


무대와 관객석이 많이 가깝나 보다.


“그리고 감독님!”

“네?”

“가는 목적이 공연 관람이 아니잖아요?”


내 속을 훤히 알고 있다는 듯이 신애리가 웃었다.


“마주친 남자가 마음에 들었던 거잖아요?”


신애리의 말대로다.

이런 표현을 해도 되는 건지 모르지만, 그 남자의 얼굴에 녹록지 않은 인생이 보였다. 동병상련이라고 해야 할지···. 이끌렸다, 그래서 궁금했다.


“이 쪽지를 줄 때의 모습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아요.”


종이로 전달되던 그의 떨리는 손길에 ‘작은 역할이라도 주고 싶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감독이란 위치에 오르자 부릴 힘이 생겼고, 그걸 그에게 사용하고 싶었다.


‘신애리도 나를 그렇게 도와줬으니까.’


막상 만나보면 첫인상과 전혀 다른 사람일 수 있다. 그러면 뭐, 그냥 돌아오는 거지.


“공연이 실망스러워도 저한테 뭐라 하기 없기예요."

“오케이!”


신애리의 말에 강철수 매니저가 시계를 봤다.


“예매하고 식사를 해도 시간이 충분하겠어요. 오거리 극단으로 먼저 갈까요?”

“네!”


다 같이 신애리의 밴을 타고 이동했다.




***




서울은 정말 주차난이 심하다.

공영주차장에 들어가서 차를 세울만한 곳을 찾는 데만 십여 분이 소요됐다. 빈 곳을 찾느라 주차장 안을 돌 때면 사람들이 힐끗거렸다.


“밴을 타고 오는 바람에 대놓고 연예인입니다, 소문을 내버렸네요.”


강철수 매니저는 툴툴대며, 유명인은 차에 남아있으라고 했다. 차 문이 열리고 매니저님이 내렸다.


“오- 누구?”

“할아버지인데?”


여기저기 수군대는 소리가 들렸다.


“연예인 아니잖아.”


머지않아서 반응이 시들해졌다. 다음으로 내가 내렸다.

또다시 사람들의 이목이 모인다.


“배우?”

“아니.”

“그럼?”

“암것도 아닌데?”


네, 저는 암것도 아닙니다.

실망하고 고개를 돌리는 사람들을 보며, 차 안에 있는 두 사람을 생각했다.


‘만약 신애리가 내렸으면?’


꺄악- 거리며 사람들이 달려들었겠지.


‘마크 벤턴이 내렸으면?’


역시 사인해 달라며 몰려들었겠지. 얼굴이 알려진 삶이란, 불편하다.


“하하하하하-. 우리끼리 나오니까 아무도 쳐다보질 않는군요!”


강철수 매니저는 골목을 오르며 시원하게 기지개를 켰다.


“이 좋은 날씨에 산책도 제대로 못 하고 차에만 있는 청춘이란.”


신애리, 최재범을 콕 집어 말했다.


“짠하니까, 저녁은 저들이 원하는 음식을 먹읍시다.”


네! 알겠습니다.

얼마 걷지 않아서 오거리 극단이 나왔다.

1층은 슈퍼마켓, 2층은 피아노 학원으로 사용되는 허름하고 작은 상가건물 3층이었다. 엘리베이터가 없어서 열심히 걸어 올라갔다. 발소리가 크게 울리는 것 같더니만, 그 소리를 들었는지 한 남자가 3층에서 얼굴을 빼꼼 내밀었다.


“공연 보러 오셨어요?”


끄덕이자, 남자는 반기며 손을 흔들었다.


“환영합니다. 창작 뮤지컬 <님아 그 곡을 부르지 마오> 2시 공연이 곧 시작됩니다.”


우리가 찾던 작품이 아니다.


“<고독을 기다리며> 보러 왔는데요.”

“고독을 보러 오셨······. 고독이요?”


남자는 놀라더니, 활짝 웃었다.


“고독을 보러 오셨구나!”


3층에 올라가 마주할 때까지 남자는 싱글벙글했다.


“와..... 잠시만요, 바로 구매를 도와드리겠습니다.”


남자는 접수대로 사용되는 탁자의 서랍을 열어서 한참을 뒤적였다. 원하는 게 없는지 위에 놓인 메모지를 한 장 뜯었다.


“몇 분 관람하시나요.”

“네 명이요.”


남자는 메모지에 ‘고독’ 이란 글자를 네 번 적고서 옆에 ‘삼동이가 보증함’이라고 썼다.


“저녁 8시 공연입니다. 이거 보여주시면 입장 될 겁니다. 안된다고 하면 삼동이한테 확인해 보라고 하세요. 이건 제 진짜 이름은 아니고 극 중 이름입니다.”


유쾌하게 설명하더니 메모지를 내 손에 쥐여줬다.


“<고독을 기다리며>는 따로 티켓을 만들지 못했거든요. 이해 부탁드립니다. 한 장에 팔천 원이니까······. 삼만 이천 원 되겠습니다.”


카드 결제가 되지 않는 곳 같아서, 나는 챙겨온 오만 원을 냈다.

카드만 들고 다니는 강철수 매니저는 아차 싶은지 지갑을 꺼냈다가 도로 넣었다. 이런 우리를 남자가 요리조리 봤다.


“두 분 낯이 익어요.”


<아직 서른>의 제작 발표회가 방송을 탄 후로, 이런 말을 듣고는 한다. 쑥스러워서 모른척해달라는 의미로 고개를 돌렸다.

남자는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우리를 몇 번 더 보고는 고맙게도 관심을 멈췄다.


“주의할 점 알려드릴게요. <님아 그 곡을 부르지 마오>의 2부가 저녁 7시에 마치거든요? 이후에 무대 세팅 바꾸고 <고독을 기다리며>가 시작됩니다. 무대를 교체할 때는 위험해서 입장을 막고 있어요.”

“언제쯤 오면 될까요?”

“십 분 전에만 오시면 되는데···. 오셔야 합니다.”

“네?”

“꼭 와주세요!”


남자는 나를 빤히 봤다.


“꼭 오실 거라고 믿습니다.”


강렬한 눈빛 공격을 받고, 계단을 내려오는데 기분이 묘하다. 공연을 이렇게 작은 곳에서도 하는구나. 저렇게 간절히 관객을 붙잡는 곳이구나.

고달파 보여서 마음이 시큰했다.

따르르르르-.

3층에서 휴대폰이 울리자, 방금 표를 판매한 남자가 받았다.


- 형!


그의 말에 1층에서 대답이 돌아왔다.


- 너 지금 어디야? 나 오늘 일이 빨리 끝났어. 내가 표 팔게. 쉬어.


상황을 보아하니, 3층 남자와 1층 남자가 통화를 한다.

나랑 강철수 매니저는 2층에 있다 보니까 둘의 대화가 들렸다. 그런데 이상하다.


‘1층 남자.... 왕의 광대에서 만난 미화원 같은데?’


- 형, 방금 누가 왔다가 간 줄 알아?


우리를 말하는 건가?

3층 남자의 목소리에 당황한 나랑 강철수 매니저는 2층 피아노 학원 쪽으로 몸을 숨겼다. 잘못한 것도 없는데, 심장이 쿵쿵 거렸다.


- 강철수 매니저가 왔었어!

- 뭐?

- <고독을 기다리며> 표를 네 장이나 사갔어. 형, 지금 어디야? 나 너무 떨려···. 빨리 와.

- 강철.....


털썩.

난간 아래로 계단에 주저앉는 미화원 남자가 보였다.


- 형, 오늘 보러 온대.


약간의 침묵이 흘렀다.


- 믿기지 않아서 검색해 봤는데 맞아. 정말 강철수 캐스팅 매니저였어.

- .....

- 형, 잘하자!

- .....

- 형! 나는 형이....!

- .....

- 진짜 잘 됐으면 좋겠어.


주저앉았던 남자가 일어나 다시 계단을 올랐다. 무심하게 눈물을 훔치는 모습을 보며 나랑 강철수 매니저는 숨을 죽였다. 그는 아마도 힘든 시간을 버티는 중이겠지.

우리를 발견하지 못하고 3층으로 올라간 남자는 동생에게 밝은 목소리로 말했다.


- 잘 할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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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 54화. 같이 합시다 (3) +4 24.07.05 250 18 12쪽
» 53화. 같이 합시다 (2) +1 24.07.04 342 20 12쪽
52 52화. 같이 합시다 (1) +1 24.07.03 373 21 12쪽
51 51화. 어느 곳을 고를까요 (2) 24.07.02 408 24 12쪽
50 50화. 어느 곳을 고를까요 (1) +6 24.07.01 453 24 12쪽
49 49화. 직진 (3) 24.06.28 509 32 12쪽
48 48화. 직진 (2) +3 24.06.27 531 33 12쪽
47 47화. 직진 (1) +4 24.06.26 566 36 12쪽
46 46화. 차기작 (4) 24.06.25 564 35 12쪽
45 45화. 차기작 (3) +3 24.06.24 615 35 13쪽
44 44화. 차기작 (2) +3 24.06.23 673 36 12쪽
43 43화. 차기작 (1) 24.06.22 702 34 12쪽
42 42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2) 24.06.21 718 35 12쪽
41 41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1) 24.06.20 717 38 12쪽
40 40화. OTT 플랫폼 (5) +2 24.06.19 747 31 12쪽
39 39화. OTT 플랫폼 (4) 24.06.18 743 31 12쪽
38 38화. OTT 플랫폼 (3) 24.06.17 775 33 12쪽
37 37화. OTT 플랫폼 (2) 24.06.15 795 36 12쪽
36 36화. OTT 플랫폼 (1) 24.06.14 834 31 12쪽
35 35화. 메소드 연기 (2) +1 24.06.13 816 34 12쪽
34 34화. 메소드 연기 (1) 24.06.12 812 3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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