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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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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5 13:32
연재수 :
5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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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348
추천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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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95,352

작성
24.07.0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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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2화. 같이 합시다 (1)

DUMMY

<아직 서른>의 출연진은 몸을 잘 써야 한다.


“악마가 천방지축이다 보니까, 강풍으로 배를 흔들고 폭우로 집을 쓸어내릴 때 정신없이 휘둘려질 배우가 필요합니다.”


내 의견에 반대하는 사람은 없었다.

악마 역할은 예정대로 신애리가 맡았다. 배역 이름은 소설과 달리 ‘루시’로 변경했다. 라틴어로 빛이란 의미인데, 악마가 빛에 가까이 가기 위한 과정을 담는다는 의미로 부여했다.


“자, 그럼 루시를 상대할 배우를 만나러 가볼까요?”


강철수 매니저는 기가 막힌 사람을 찾았다며 최재범, 신애리 그리고 나를 호출했다.


“마음에 안 들면 제가 오늘 저녁 삽니다. 최고급 레스토랑 가장 비싼 코스로 지를게요.”


충분히 그럴 능력이 있는 분이 하는 말이라서 ‘정말요?’하고 놀라지는 않았지만.

확신에 찬 행동에 누구길래 저럴까? 기대됐다.


“어떤 역할에 캐스팅할 건데요?”

“비밀입니다.”


강철수 매니저가 후훗 웃으며 나를 빤히 봤다.


“만나면 알게 될 겁니다.”


와-.

피디일 때는 이게 맞을까? 저게 맞을까? 주변을 살피느라 바쁘시더니, 매니저로 복귀하고는 한 치의 망설임이 없다.


“약속 장소가 어딘데요?”


어디 연예 기획사라던가, 업체명을 들으면 감을 잡을 것 같아서 물었더니.


“놀라지 마세요!”


강철수 매니저가 씩- 웃으며 긴장감을 조성했다.


“바로!”


두둥!


“왕의 광대 팀 연습실에 갈 겁니다.”

“네-에?”


놀란 건 나뿐만 아니다. 신애리와 최재범도 헉 소리를 냈다.

‘왕의 광대’는 대한민국의 ‘태양의 서커스’라 불린다. 무용수와 체조선수로 구성되어 새처럼 날고 치타처럼 달리며 원숭이처럼 곡예를 부리는 사람이 소속돼 있다.


“잠시만요!”


신애리가 놀라서 손을 들었다.


“거기는 방송 출연 제한하는 거로 아는데요? 어떻게 뚫었어요?”

“저, 강철수입니다!”


어깨가 하늘 높은 줄 모르고 올라가는 강철수 매니저를 보고 다들 큭큭큭 터졌다.


“단장과 친분이 있습니다. 왕의 광대가 초창기에 공연장이 없었어요. 그때 제가 길을 터줬더니, 그걸 기억하고서 이렇게 도와주네요.”

“매니저님 최고!”


너무 잘 됐다.


“감독님, 제가 누굴 보여줄지 알고 벌써 좋아하는 겁니까?”

“누가 되었든 몸을 잘 사용하겠죠.”

“그거야 그렇죠. 자자 나갈 채비를 합시다.”

“네!”


서둘러 날밤 영화사를 나왔다.




***




대학로 끝자락에 붙은 ‘왕의 광대’ 건물.

공연장은 아니고 1층부터 5층은 통으로 뚫어서 연습장으로 사용한다. 삼백여 명의 단원이 소속돼 있다.


“위험한 동작도 많고, 체력 소비가 크다 보니까 한 역할에 세 명씩 배정받아서 공연한다더군요. 덕분에 많은 단원과 만났습니다.”


강철수 피디는 사전 미팅을 할 때, 다들 호응이 좋았다며 편안한 만남이 될 거라고 했다.


“오늘은 이미지 위주로 보고, 마음에 들면 이후에 사무실로 불러서 연기를 봅시다.”


설명을 끝낸 강철수 매니저가 건물의 문을 열었다.

우당탕탕- 아악! 크아아! 휘이익! 낯설고 둔탁한 소리가 터져 나왔다. 사고 현장에서나 들을 듯한 거친 소음이 어디서 나는 걸까? 궁금해하며 고개를 돌렸더니-.


“와.....”


사람이 천장에 매달려 있다.

외줄에서 외줄로 넘어가는 사람, 훌라후프 같은 링에 아슬하게 앉아있는 사람, 얇은 리본 끈을 몸에 감고 뱅그르르 돌며 아래로 내려오는 사람까지.


“저들이 악마를 해야겠는데요?”


신애리의 말처럼, 비현실적인 몸동작에 입이 떡 벌어졌다.


“감독님. 저런 균형감각을 가진 사람의 몸에 안전장치 달아주면, 상상을 초월한 동작을 보여주겠죠?”

“그러게요-.”


그래픽이 필요 없을 것 같다. 신애리의 말에 맞장구치며 주변을 둘러봤다. 최재범도 흥미로운지 미소를 짓고 구경했다. 이에 강철수 피디가 자신을 따라오라며 손짓했다.


“한 발짝 걷고 오 분 구경하고 한 발짝 걷고 오 분 구경했다가는 여기서 날 샙니다. 어서 움직이세요-.”

“네!”


1층 계단 앞에 멈춰 선 강철수 매니저는 시계를 봤다.


“오전 연습 끝나고 보기로 했으니까, 십분 정도 남았네요. 잠깐 기다립시다.”

“그럼 저는 화장실에 다녀올게요.”


편안한 몸과 마음으로 만나고 싶습니다!

건물에 들어올 때부터 눈으로 찜해둔 화장실을 향해 후다닥 갔다. 연습 시간이라 그런지, 화장실에는 아무도 없었다. 입구 쪽에서 볼일을 보면, 소리가 밖으로 나갈까 신경이 쓰여서 벽 가까이 자리를 잡았다. 쉬-.


“셀레나! 오- 셀레나!”


무슨 소리지? 대사 같은데.


“당신을 만나기 위해 저 별을 타고-.”


배우인가 보다. 안정적인 호흡과 정확한 발음이 듣기 좋다. 화장실 환기구를 통해서 넘어오는 소리 같기에 모른척하려다가.


‘연기를 너무 잘하는데?’


얼굴이 궁금해졌다. 화장실에서 나와 밖으로 갔다.


‘웬일이야.’


목소리의 주인공은 청소부 차림의 미화원이다. 남자는 눈을 감고 연극 대사 같은 말을 차분히 뱉었다.


“저 붉은빛이 당신의 입술이라면 나는... 으으윽!”


깜짝이야. 그가 나를 발견하고서 소스라쳤다.

아이고 미안해라.


“놀라게 해서 죄송합니다.”


사과하면서 슬쩍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확인했다.

이목구비 뚜렷하고, 눈빛 강하고!

와- 씨.

왕의 광대는 청소하는 사람도 외모와 연기를 보고 뽑나 보다. 살짝 들은 대사에 몰입해 버렸다.


“배우인 줄 알았어요.”


인사치레였는데 그가 얼굴을 붉혔다.


“배우 맞습니다.”

“네?”


근데 왜 청소를...?


“소극장에서 연극하고 있습니다. 왕의 광대 팀을 너무 동경해서 연습하는 장면을 보고 배우고자, 파트타임으로 오전에 일합니다. 이제 막 끝나던 참이었어요.”

“그래도 돼요?”


아니 이거 들키면 혹시.


“저한테 말하면 안 되는거 아닌가요?”


잘릴까 봐 걱정돼서 물었더니 그가 웃었다.


“저처럼 하는 배우들 꽤 됩니다. 왕의 광대 팀은 무용과 체조 전공자만 받고 있어서, 저희는 지원 자체가 안되거든요. 어깨너머라도 몸 쓰는 걸 배우고 싶어서 주변에 맴돌면, 단장님이 못 이기는 척 받아주세요.”


그는 장갑을 벗고서 주머니에서 작게 접힌 종이를 꺼냈다.


“다음 주 수요일까지 오거리 극단에서 저녁 8시에 공연합니다. 좌석은 항상 여유가 있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편하게 와서 즐겨주세요. 저도 출연하니까 많은 관심 부탁드립니다.”


아나운서처럼 또박또박 말을 하고서 그는 퇴근한다며 자리를 비켰다. 종이를 건넬 때의 떨리는 목소리와 흔들리는 눈빛에서 간절함이 느껴졌다.


‘<고독을 기다리며>···. 창작극인가? 오늘도 하네.’


무대 위에서 본격적으로 연기하는 그는 어떤 모습일까?

아차, 이런 생각 할 여유가 없다.


‘오디션 봐야지.’


부랴부랴 팀원이 기다리고 있는 장소로 돌아갔다. 그곳에 화장을 짙게 한 중년 여성이 나를 반겼다.


“단장을 맡은 길복희입니다.”


이미 다른 사람과는 인사를 마친 듯 화기애애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아직 서른>의 유일한 감독입니다.”

“자, 그럼. 모두 모였으니까 이동할까요?”


단장의 안내에 따라 소형 연습실로 이동했다. 문 앞에 멈춰 선 단장은 우리를 향해 몸을 돌렸다.


“매니저님이 다녀가신 이후로 한동안 어수선했어요. 미디어 노출이 금지된 곳에서 영화 출연이 허락되다니, 일탈이 따로 없잖아요?”


피식 웃더니, 말을 이었다.


“서커스 공연을 정착시키기 위해서 오랜 시간 한눈팔지 않고 이 길만 달려온 친구들입니다. 이제 자유를 주려고 해요.”


말하고서 뭉클한지, 단장이 코를 찡끗했다.


“우리 식구들 예쁘게 봐주세요-”


친절한 웃음을 따라서 우리도 웃었다.

도착한 연습실은 스트레칭을 하는 공간으로 무용수들이 사용한다고 했다. 한쪽 벽이 거울로 된 그런 곳인가?

똑똑똑 단장이 문을 두드리고 여는 순간!


‘왕의 광대 팀의 마스코트 허우재가 저기 왜 있어?’


그가 바닥에 앉아서 다리 스트레칭을 하다가 우릴 보고 인사했다.


“반갑습니다. 허우재입니다.”


미쳤다. 정말 그다!

허우재는 발레리노로 활동하다가 더는 자신에게 장래가 보이지 않는다고 판단, 서커스로 방향을 틀어서 폭발적인 연기력으로 왕의 광대를 이끄는 주역이 됐다. 그가 연기했던 미치광이 광대는 무용수 사이에서 ‘창작극 교과서’로 불린다.


“들어오세요.”


허우재가 마룻바닥을 딛고 일어서는데, 비주얼이 압도적이다.

190센티미터가량의 키. 길쭉하게 뻗은 팔다리를 감싼 가는 근육. 날카로운 눈매와 오뚝한 코, 무엇보다 가늘고 선명한 입술이 ‘싸움을 걸 엄두가 나지 않는’ 성깔 있는 외모를 완성했다.


‘악마의 우두머리 역할로 딱이야.’


인간을 부러워하는 신애리를 하찮게 여기며 짓누르는 캐릭터다.

그가 눈에 뭐가 들어갔는지 머리를 탁 털며, 고개를 숙였다가 들었다. 눈을 치켜뜰 때 섬뜩하다. 얇은 입술이 옆으로 벌어지며 씩- 웃는데 소름 돋는다.

나는 강철수 매니저에게 다가가 조용히 물었다.


“선배 악마 역할인가요?”

“네.”


대화를 엿들은 신애리가 웃는다. 최재범은 조용히 고개를 끄덕였다.


“시나리오를 찢고 나왔는데요?”

“하하하하하-. 제 눈에만 그렇게 보인 게 아니었군요.”


모두 그의 첫인상에 홀려버렸다.

선배 악마는 소설에는 없는 인물이다. 시나리오를 쓸 때 신애리가 연기하는 악마가 인간을 부러워하고 있음을 부각하기 위해서 비교 대상으로 만든 존재다.

나는 손에 난 땀을 바지에 벅벅 닦고 내밀었다.


“저는 유일한 감독입니다. 선배 악마 역할로 매니저님이 추천하셔서 만나러 왔습니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기 위해서 약간 표정 연기를 해봤는데, 괜찮았나요?”


아 그럼.


“방금 일부러 그렇게 웃으신 거예요?”


처음부터 분위기를 잡고 있었던 거였구나.


“너무 좋았습니다. 보는 순간, 악마 같다고 느꼈어요.”

“감사합니다.”


안도하는 허우재와 십분 정도 하하하하하 잡담을 늘어놓고 헤어졌다.


“더 볼 것도 없을 만큼 좋은데요?”


내 말에 다들 엄지를 들어 올렸다. 이에 단장이 휴대폰을 꺼냈다.


“이어서 다음 친구도 만나 보시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발소리와 함께 연습실 문이 열렸다.

아담한 소녀가 들어왔다. 열일곱? 많아야 열아홉쯤 보이는 앳된 얼굴이다.


“안녕하세요.”


허우재는 보자마자 역할이 떠올랐는데, 이 작은 소녀는 도저히 감이 오지 않았다.


“리나 역할을 지원한 김지원입니다.”


고맙게도 먼저 자신의 역할을 말해... 리나?

나는 놀라서 강철수 피디를 봤다.


“리나는 신애리와 만남부터 죽음을 맞이할 때까지 몸싸움을 하는 역할인데요.”


170이 넘는 신애리와 150 후반대의 김지원은 키 차이가 많이 난다. 비슷한 체구끼리 아등바등 싸우는 모습을 그리고 있었는데, 어긋났다.


“힘에 밀릴 거 같아요.”

“기계체조 선수 출신입니다.”


강철수 매니저의 말에 김지원은 연습실 끝으로 가서 섰다.


“싸우는 느낌을 살려서 준비한 동작이 있는데, 보여드려도 될까요?”

“부탁합니다.”


탁탁탁.

김지원은 발목을 가볍게 풀더니 달려가 옆돌기 한 번, 세 번의 텀블링을 하고 휘리릭 돌아서 착지했다. 내가 심사위원이었다면 십 점 만점에 십 점을 줬을 거다.


“작은 몸으로 빠르게 움직이니까, 빈틈을 비집고 들어가는 공격을 하면 멋지겠어요.”


그림이 그려졌다.


“날렵하네요.”

“그렇죠? 더욱이 스물네 살이라 욕설하는 장면도 문제 될 게 없습니다.”

“스물네 살이요?”


아이 같은 얼굴로 나보다 누나란다.

김지원이 나가고 연습실은 축제의 장이 됐다.


“강철수 매니저님은 정말... 전설입니다!”


붕붕 띄우는 말에 기분이 좋은지 강철수 매니저가 환하게 웃었다.


“밥은 안 사도 되겠군요.”

“제가 사죠. 다 같이 식사하러 가실까요?”


신애리의 말에 나는 아까 그 미화원이 생각났다.


“실은... 한 명 더 보고 싶은 배우가 있는데요. 같이 보러 가실래요?”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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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 50화. 어느 곳을 고를까요 (1) +6 24.07.01 453 24 12쪽
49 49화. 직진 (3) 24.06.28 508 32 12쪽
48 48화. 직진 (2) +3 24.06.27 530 33 12쪽
47 47화. 직진 (1) +4 24.06.26 565 36 12쪽
46 46화. 차기작 (4) 24.06.25 563 35 12쪽
45 45화. 차기작 (3) +3 24.06.24 614 35 13쪽
44 44화. 차기작 (2) +3 24.06.23 673 36 12쪽
43 43화. 차기작 (1) 24.06.22 702 34 12쪽
42 42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2) 24.06.21 718 35 12쪽
41 41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1) 24.06.20 717 38 12쪽
40 40화. OTT 플랫폼 (5) +2 24.06.19 746 31 12쪽
39 39화. OTT 플랫폼 (4) 24.06.18 743 31 12쪽
38 38화. OTT 플랫폼 (3) 24.06.17 775 33 12쪽
37 37화. OTT 플랫폼 (2) 24.06.15 795 3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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