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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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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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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23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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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4화. 차기작 (2)

DUMMY

최재범의 질문을 듣고 눈살이 찌푸려졌다.

지금 저한테 <아직 서른>에 나온 인물을 해석해 보라고 했습니까?


“작가님!”


보란 듯이 발끈했다.

눈을 부릅뜨자, 최재범의 입이 실룩댄다. 내가 뭐에 열 받았는지 알고 있는 눈치다.


“왜요, 유일한 감독님?”


어우, 저 장난기서린 얼굴 좀 봐.


“와···. 거짓말 하나도 안 보태고 제가 작가님에게 이 질문 다섯 번은 넘게 받은 것 같은데요. 그때마다 성실하게 답한 거로 기억합니다만!”

“큭, 알죠.”

“근데 왜 또 묻는 건데요?”


입에 침이 마르도록 열변을 토했던 시간이 떠올랐다.

최재범은 내가 자신의 책을 모두 읽었고, 필명인 ‘마크 벤턴’의 팬클럽 사이트에 가입할 걸 알고서는 ‘저한테 그렇게 관심이 많았어요?’라며 좋아했다. 그러고는 만날 때마다 질문을 늘어놨다.


- 제 책의 어떤 점이 좋았어요?


팬과 소통하지 못했던 십 년간의 답답함을 해소하려는 듯이 쏟아냈다.

감상평부터, 비호감 캐릭터가 있었냐는 예상치 못한 질문과 당신이라면 이 상황에서 어떻게 행동했을 것 같냐는 추상적인 물음까지.

묻고, 묻고 또 물었다.

나는 그의 글을 좋아했기에, 기쁜 마음으로 진솔하게 답했다.

최재범은 내가 하는 말을 메모하거나 ‘한 번만 더 말해줄래요?’라며 놓친 부분을 되짚고 가는 섬세한 사람이었다. 어떤 날은 자신이 쓴 책 중에서 한 권을 정해놓고 토론하자며 열 시간을 붙잡고 늘어져서는-.


‘삼시 세끼를 같이 먹었지.’


그러다 보니까, 알고 지낸 시간에 비해 대화량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다. 서로를 파악하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작가님과 나눈 대화를 모아서 정리하잖아요? <아직 서른>의 논문이 될 겁니다.”

“알죠, 알죠. 그런데 방금 일한 씨가 저한테 뭐라고 했어요?”


봉경규 감독을 만나게 되면, 소설 속 인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보라고 했다. 현장에서 ‘원작자와 같은 생각’을 가지고 배우에게 연기를 요청할 사람인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그때 할 질문을 미리 일한 씨에게 해본 거예요.”


능청스럽게 말을 돌리는 최재범을 보고 헛웃음이 나왔다.

저 미소에 속아줄까, 말까?

그는 자신의 작품에 대해서는 허투루 말을 하는 사람이 아니다. 언제나 대화에 목적이 있었고, 자신이 원하는 답을 얻어야 끝내는 사람이었다.

지금도 분명 어떠한 의도를 가지고 내게 질문을 했을 거다.

뭘까?

평소답지 않게 툴툴대니까, 당황했는지 내 표정을 살폈다.


“의미 없는 질문이었으면, 대답 안 하고 넘깁니다.”

“꼭 그런 건 아니고-.”


최재범은 말 끝을 흐리며 나를 보고 웃었다.

자기만큼이나, 궁금증을 참지 못하고 파고드는 나를 알기에 뜸을 들이면-.


“뭐가 궁금해서 또 물어본 건데요?”


이렇게 되물을 걸 알고 있는 사람이었다.

우리는 만남의 횟수만큼 서로의 말하는 방식을 터득해갔다.


“일한 씨가 저번과 같은 대답을 내놓을까, 아닐까. 궁금해서 물었어요.”

“생각은 바뀌지 않았습니다.”


최재범은 잘린 샌드위치의 끝자락을 마저 먹더니, 만족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일한 씨라면 생각이 바뀌지 않았을 것 같았어요.”

“네?”


알면서 왜 물어본 거예요?

그는 내 생각을 읽은 것처럼 몸을 가볍게 앞으로 기울였다. 진지할 말을 할 때 행동이었다.


“음..... 같은 질문을 여러 번 하면, 내가 대답을 잘못했나? 정답이 따로 있을까? 고민하다가 자기 생각을 잃어버리는 사람이 있어요. 근데 일한 씨는 뚝심 있게 계속 같은 답을 내놓더라고요.”

“서로의 생각을 묻는 건, 옳고 그름을 따지자는 게 아니니까요. 정답이 없는 대화에 굳이 굽힐 필요가 없죠.”

“나는 그걸 서른이 넘어서 알았거든요.”


최재범이 한 손으로 턱을 괴고 나를 봤다.


“일한 씨 스물한 살이라고 했죠?”

“네.”

“어떤 인생을 살았기에 벌써 그런 것까지 깨닫게 된 거예요?”

“남과 다를 바 없는 삶을 살았는데요.”


인생이 쉬운 사람이 있을까.

사건의 크기만 다르지, 겪는 고통의 농도는 비슷하지 않을까.


“무난했어요.”

“이것 봐, 사람이 참 단단해.”


감탄하더니, 최재범은 커피를 한모금 마셨다.


“영국에 있으면서 나쁜 놈만큼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어요. 같은 교육을 받고 자랐는데, 누구는 인종 차별에 절어있고, 누구는 그걸 미안해했죠. 어떤 차이로 행동 양상이 다른 걸까? 고민하다가 일한 씨 같은 사람을 만나며 답을 찾았죠.”


푸핫!


“저 같은 사람이 어떤 사람들인데요?”


호기심에 입이 삐죽 나왔다.

마크 벤턴의 소설에 나오는 인물은 입체적이다. 한없이 착하던 인물이 궁핍에 처하면 범죄를 저지르고, 악인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아이를 구해서 영웅이 되기도 한다.

이 사람은 이런 결말을 가져올 거다, 라는 예상을 비트는 작가로 유명하다. 그런 그가 바라본 나는 어떤 사람일까?


“세상을 보는 기준이 자신에게 있어요. 그래서 열등감이 없어요. 놀라운 건 우월감도 없죠.”


최재범이 손과 손을 부딪혀 가볍게 착, 손뼉을 쳤다.


“열등감과 우월감이 합쳐지면 인간이 악마로 변하거든요.”


오-!


“나는 쟤보다 나은 조건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왜 쟤보다 부족하게 살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에 자리 잡으면 세상이 부조리하게 느껴지면서 화가 나게 되죠.”


경청하고 있다는 의미로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런 사람은 화를 만든 건 자신의 열등감인데, 원인 제공을 상대가 했다고 착각해요. 자신의 열등감을 해소하기 위해 자신이 가진 우월함으로 상대를 짓밟아야 속이 풀리죠. 피부색, 국적, 우리 부모님이 누군지 알아? 따위를 내밀어서 공격합니다.”


최재범이 말하는 부류의 사람을 안다.

학교에 가면 부잣집에 고학력 부모와 살며, 고액 과외를 받는 부류가 있는데.

그중에 한 명이 나를 향해 ‘내가 너보다 당연히 공부를 잘해야 하지 않냐. 네가 전교 1등인 게 이해가 되지 않는다.’라며 시비를 걸어왔던 적이 있었다.

그러면서 한다는 소리가.


- 유일한, 너 커닝했지?


나쁜짓을 했냐고 물었다.

네가 가진 조건으로 받을 수 있는 성적이 아니라며 나를 몰아세웠다. 나는 잘못한 게 없는데 애들 앞에서 ‘편모에 가난한 놈이, 학교 끝나면 알바자리 구하러 다닌다고 공부할 시간도 없으면서!’ 어떻게 네 따위가 전교 1등이냐는 말로 집안 사정이 들통나야 했다.

틀린 말이 아니라서 가만히 들어봤다.

그래서 어쩌라고.


- 야.


씩씩대는 놈을 불러 세웠다.


- 네가 공부 못해서 등수가 안 나온 걸 왜 나한테 난리야.


그리고-.


- 나는 네 말처럼 그런 환경에서 공부해서 1등 했어. 너는 어떤 환경이기에 성적이 그렇냐?


궁금해서 물어봤다.

기죽지 않는 모습에 당황했는지, 녀석은 얼굴이 붉어져 교실을 뛰쳐나갔다.


‘그러게 왜 덤벼.’


내 힘을 바꿀 수 없는 외모, 부모, 가지고 태어난 자산 등은 인정해버리면 된다. 안 되는 걸 붙잡고 속상해할 시간에, 내 힘으로 바꿀 수 있는 등수에 집중했다.

그때 일을 생각하면, 대처를 잘한 것 같다.


“일한 씨처럼 기준이 명확한 사람은 흔들림이 적더라고요.”


최재범은 잘린 샌드위치 중에서 고기가 많이 들어서 부분을 내게 줬다. 먹음직스럽기에 받아 들었다. 한입 크게 베어 물자 불고기 소스가 입안 가득 퍼졌다.


“내일 영화사 대표와 감독 만나는 자리에. 같이 가줄래요?”

“네?”


놀라 빵이 목에 걸렸다. 아이스 커피로 꿀꺽 넘기고, 그를 봤다.


“제가 거길 왜 가요?”

“저한테, 분노 버튼이 있어요. 옆에서 못 누르게 막아주세요.”


최재범이 주먹을 쥐고 엄지를 들었다.


“그게 언제 눌리는데요?”

“작가가 누구냐에 따라서 작품을 다른 시각으로 볼 때요.”

“아.....”

“소설을 보고 당장 계약하자던 에이전시 직원이 저를 만나고서, ‘영국인이 아니네?’ 이러더니 갑자기 책이 별로라고 할 때 생겼어요.”


이런.


“프린트된 글자가 멋대로 바뀔 리 없잖아요? 근데 재미가 없어졌다더라고요. 제게 영국인이 아니어서 계약을 못 한다고 했으면, 받아들였겠지만.”

“작가에 따라서 글이 달리 평가되는 건 못 참는 거죠?”

“그게 저의 분노 버튼입니다.”


그는 자신의 올라간 엄지손가락을 쳐다봤다.


“내일 영화 제작사를 만날 때, 저는 신인 작가로 소개될 겁니다. 상대는 대형 제작사와 기성 감독이죠. '신인 작가라 글이 이 정도 수준이군요.'라는 반응이 나오면 잘 대응할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그리고 다른 손으로 우뚝 서 있던 엄지를 꾹 눌렀다.


“팡- 터지면, 계약이고 나발이고 ‘없던 일로 합시다!’ 소리치고 나올 게 뻔해요. 근데 그러기 싫어요. 마크 벤턴이란 이름을 떼고 한국에 머물 소중한 기회를 감정적으로 날려버릴 수는 없죠. 일 년 간 한국에서 잘 지내보고 싶어요.”


그런 이유라면.


“같이 갈게요.”


제가 뭘 어떻게 도우면 될까요?


“제가 신인 작가란 이유로 <아직 서른>이 무시당하게 되면, 저를 끌고 밖으로 나가줘요. 바람 좀 쐬게-.”




***




존경하는 작가 최재범과 그의 소설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겁도 없이 ‘탑 영화사’에 따라왔다.


‘무탈하게 회의하고 집에 갈 수 있길!’


영화사는 여러 회사가 공유해서 사용하는 초고층 럭셔리 빌딩 12층에 있었다.

로비에 도착하자, 정장을 입은 회사원들이 커피를 들고 분주하게 움직였다. 명찰을 보아하니-.


‘탑 영화사 사람은 없어 보이지?’


최재범은 오늘 멋을 부렸다.

이런 회사원 사이에 섞여도 튀지 않을만큼 깔끔하게 입고 왔다.


‘할 줄 알면서 평소에는 왜 그렇게 입는 건지-.’


나는 신애리가 취업 선물로 사준 정장 바지와 셔츠를 입었다.


“오셨어요?”


흑백 출판 직원이다.

그는 최재범이 마크 벤턴인 걸 알고 있다고 했다.


“<칙칙폭폭> 너무 재미있게 봤습니다. 오늘 작가님이 감독님과 함께 오셔서 얼마나 든든한지 몰라요. 저희가 영화 쪽은 무지해서 도움이 필요했거든요. 잘 부탁드립니다.”

“저도 잘 부탁드립니다.”


가볍게 악수를 하고 엘리베이터를 앞으로 갔다.

징- 전화다.


‘엄마?’


무슨 일이지?


“저, 통화하고 다음 엘리베이터로 올라갈게요.”

“그럼 저희는 먼저 올라가겠습니다.”


직원의 안내에 따라 최재범은 먼저 올라갔다. 나는 급히 전화를 받았다.


“엄마, 무슨 일이에요?”

- 마트 쉬는 시간이라, 그냥 우리 아들 뭐하나 궁금해서 전화했지. 바빠?

“조금 전까지 띵가띵가 놀았는데, 이제 막 일하러 가요.”

- 아이고, 타이밍이 엇갈렸구나. 우리 아들 파이팅!

“엄마도 식사 잘 챙겨드시고-.”


엄마, 엄마 소리가 어리광으로 들렸을까, 옆에서 힐끔 쳐다보는 시선이 느껴졌다.


‘어?’


봉경규 감독이다.


“엄마, 나 끊어요.”

- 응. 수고해.


봉경규는 나를 모르는 듯했다. 방송에 몇 번 나왔다지만, 관심 밖의 인물이었나 보다.

징-. 전화다.

이번에는 내가 아니라 봉경규 감독이었다.


“어, 어.”


시큰둥하게 전화를 받은 그는 나를 한번 의식하더니, 무시하고 계속 통화를 이어갔다.


“괜찮아, 말해.”


상대방이 웅얼웅얼 뭐라고 하자, 그가 웃었다.


“베스트 셀러라고 해서 읽어봤더니, 짜깁기야. 마크 벤턴 소설을 따라 했어. 짭이야, 짭.”


단 몇 마디에 그가 최재범을 이야기하고 있음을 알아차렸다.


“신인이 그렇지 뭐. 글에 힘만 빡 들어가서는 인물이 정신없어. 대표는 소설이 인기 있다니까 판권 사서 뭔가 해보려는 거 같은데···. 그 상태로는 못 만들어. 다 갈아엎어야지.”


크하하하하하하, 봉경규가 웃었다.


“그러게 말이다. 보고 마음에 안들면 까야지. 그럼 다른 감독 넣겠지.”


이 자식이, 뭐가 어째?

누군 하고 싶어도 존경하는 작가님 발목잡는 걸까봐, 말도 못 붙이고 있는데!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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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뭉치면 살고 (2) 24.06.07 748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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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 28화. 프리 프로덕션 (2) 24.06.05 903 34 14쪽
27 27화. 프리 프로덕션 (1) 24.06.04 928 35 13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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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24화. 시작 +3 24.05.28 1,242 38 12쪽
23 23화. 지상 최대 시나리오 공모전 (8) +2 24.05.27 1,232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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