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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알바생이 연출을 너무 잘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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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모전참가작 새글

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7.04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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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90,006

작성
24.07.01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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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50화. 어느 곳을 고를까요 (1)

DUMMY

분위기 살벌한데?

쿼카 엔터테인먼트에 찾아온 이래로 오늘이 가장 어수선하다. 직원들은 쉬쉬 거리며 자기들끼리 숙덕거리고, 어떤 상황에서도 점잖음을 잊지 않던 실장은 초조한 눈빛으로 휴대폰을 계속 확인했다.


“미안해요. 갑자기 이슈가 터져서.”


실장은 수척해진 몰골로 한숨을 내쉬었다. 구겨진 정장과 흐트러진 머리카락을 보아하니, 사무실에서 날을 샌 것 같았다. 사흘 전 마지막으로 통화할 때까지만 해도 분위기 좋았었는데-.


‘뭐가 터진 거지?’


미리 말해줬으면 다음에 찾아왔을 텐데, 가시방석에 앉은 것처럼 불편하다.

실장은 우리를 대표실이자 신애리의 집무실로 사용되는 곳으로 안내했다. 지각이라고는 모르던 신애리마저 없다.


“곧 오실 겁니다. 음료는 어떤 거로-.”


실장의 입에서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가 나왔다. 예의를 갖추기 위해 큽큽거리며 목에 힘주는 모습이 안쓰러웠다. 이런 사람을 부려서 음료를 받아먹을 만큼 목이 마르지 않았기에-.


“실장님, 저는 여기 자주 와서 뭐가 어디 있는지 잘 알아요. 제가 작가님 모실게요.”


그러니까 좀 쉬세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실장은 엄지와 검지로 자신의 이마를 잡고 꾹- 눌렀다. 몰려드는 스트레스를 짓이겨 버리려는 듯 강하게 압박하더니, 우릴 보고 웃는다.


“중요한 자리에 이런 모습 보여서 미안합니다. 큰불을 꺼서 괜찮을 줄 알고 약속대로 오시라고 한 건데, 상태가 보기 흉하죠?”


힘겹게 웃으며 가죽 소파를 가리켰다. 그리고 실장은 맞은편 소파에 앉았다.


“시나리오는 파일에 담아 왔나요? 제가 프린트해오겠습니다.”


USB를 달라는 손짓 같았는데, 최재범이 가방을 열어서 복사된 시나리오를 꺼냈다.


“준비해 왔습니다.”


세 부를 가져왔단 의미로 최재범은 손가락을 세 개 펴 보였다. 겉면마다 몇 번째 복사본인지 적힌 숫자와 최재범 그리고 내 사인이 있다.


“회의에 참석한 사람 이외는 읽지 않았으면 합니다.”


보다시피 최재범은 글이 유출되는 것에 매우 민감했다.

<개천에 뜨는 별>, <칙칙폭폭> 때는 해보지 않은 철통 보안이었다. 계약서에 도장을 찍기 전까지는 상대가 누구든 믿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그래서 오늘도 직접 시나리오를 들고 왔다.


“잠시만요. 전화가 들어오네요.”


실장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통화하고 오겠습니다. 필요한 게 있으면 대표님 책상에 있는 호출 버튼을 눌러주세요.”


실장이 나가고 대표실 문이 닫히며 최재범과 둘이 남았다.


“전쟁터가 따로 없네요.”


내내 들이마셨던 불편한 공기를 뱉어냈다. 신애리를 기다리는 동안 딱히 할 게 없어서 소파에 몸을 푹- 집어넣었다. 포근하다.

최재범은 탁자 위에 놓인 시나리오를 뚫어져라 봤다.


“작가님, 괜찮아요?”

“네? 뭐가요?”

“갑자기 진지해져서요.”

“아, 그건.”


대답을 들으려는데, 벌컥 문이 열렸다. 검정 야구모자, 마스크 그리고 선글라스로 얼굴을 가린 신애리다.


“늦어서 미안해요.”


고작 5분 늦었는데, 몇 시간은 지각한 것처럼 신애리는 고개를 숙였다. 조금 전까지 실장이 앉아 있던 자리에 앉으며 선글라스와 마스크를 벗었다.


“시작할까요?”


시작은 무슨.

툭 건들면 당장이라도 눈물을 와락 쏟을 것처럼 슬픈 표정을 하고 있으면서.


“괜찮아요?”


걱정했더니, 신애리는 두 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가렸다.


“정신없이 왔더니-.”

“실장님한테 들었어요. 이슈 터졌다면서요?”

“어... 응.”


목소리에 힘이 없다. 신애리의 이런 모습이 낯설다.


“큰불을 껐다고 들었는데-.”

“어, 이제 괜찮아.”


신애리가 얼굴을 가렸던 손을 내렸다. 울까 봐 걱정했는데 그렇지는 않았다. 그저 볼이 더 붉어지고 코끝이 발갛게 됐다.


“고비를 넘겼더니, 힘이 풀려서 이래.”

“무슨 일인지, 물어봐도 돼요?”


신애리가 탁자 위에 놓인 포스트잇에 메모를 했다.


[잭팟 필름]

[스타트 컷]


두 군데 모두 영화 수입 배급사로 주식 상장 기업이다.


“이번 일을 겪으면서, 작가님과 너한테 알려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오늘 약속 취소하지 않았어. 이 회사들 알지?”

“네. 블록버스터 전문 영화 수입 회사잖아요.”

“맞아, 반대로 그런 스케일이 큰 영화에 투자도 하고 제작도 해.”


말하며 신애리가 눈을 지끈 감았다. 욱 올라오는 감정을 누르는지 속눈썹이 파르르 떨렸다.


“이 중에 한 곳이 돈을 빼돌렸어.”

“빼돌리다니요?”

“사기를 쳤는데, 소속사 배우가 연관되어 있다는 연락에 검찰청 다니느라 정신이 없었어.”

“어떻게 됐어요?”

“확인하고 있는데, 문제없을 것 같아.”


다행이다, 진짜 다행이다.

마음이 놓이자 궁금해진다.


“사기면, 어떤 종류의....?”

“임동한 감독의 시나리오 <7분의 행방>이 제작 확정됐어. 웹플릭스에서 일부 투자한다는 소식에 투자자들의 관심이 높아지면서 10부작 시리즈로 변경됐지."


이 과정에서 뭐가 잘못되었을까?


“<7분의 행방>은 무조건 된다는 말에 몇몇 배우가 투자에 참여했나 봐. 투자자에 이름을 올린 거지. 그 돈이 필리핀 도박장에 사용된 동향이 잡혔어.”

“도박이요?”

“누가 그런 짓을 한 건지 알아내는 과정에서 투자자도 조사를 받았어.”


영화에서나 보던 일이 현실에서 일어났다.


“다행히 그 기간에 우리 배우는 해외 활동이 없어서 빠져나왔어. 통장 입출금 목록에 고액이 잡히지도 않아서 의심받을 일도 없고.”


말하며 머리가 지끈거리는지 고개를 푹 숙였다. 신애리는 그 상태로 포스트잇을 톡톡 쳤다.


“잭팟 필름과 스타트 컷이 공동 제작사로서 투자자의 돈을 받아 갔거든. 아무리 봐도 이 둘 중에 뭐가 있어."


답답하네.


“검찰 말로는 한두 번 해본 솜씨 같지가 않대. 도박장에 있던 남자가 누군지 알아낼 증거가 나오지 않은 상태에서 ‘잭팟 필름’과 ‘스타트 컷’은 서로 억울하다는 입장이야. 그러니까 알아 둬. 여기 중에 한 곳은 얼마 못 가서 뉴스에서 보게 될 거야.”


문이 열리며 실장이 들어왔다.


“대표님, 검찰에서 연락이 왔는데 진....”


진?


“...... 우리 배우 포함 다른 소속사 배우도 용의자에서 피해자로 전환될 거랍니다.”

“살았다!”


도박 혐의에서 벗어났다는 말에 신애리의 표정이 사르르 녹았다.


“아... 이럴 줄 알았어.”

“대표님, 남은 사안은 이 사건을 수면 위로 올리느냐, 가라앉게 두느냐랍니다. 진... 그러니까.”


실장이 또 ‘진’이라고 했다.

쿼카 엔터테인먼트에서 성이 ‘진’씨인 사람은 진수아 뿐이다. 피해를 보았다는 소속 배우가 누군지 대충 알겠다.


“피해 금액을 포기하고 피해자에서 벗어나면 기사화될 때 이름 공개가 되지 않는답니다. 대신 피해 금액 7억을 포기해야 한답니다.”

“7억 돌려받기 위해서 싸우다가, 범법자와 친분이 있다는 루머가 퍼지면 배우 인생 끝나요. 돈 포기하고 연기 계속해야죠.”


신애리의 말처럼, 배우는 억울한 일을 당해도 조용히 덮어야 한다. 거짓이라고 해도 나쁜 일에 엮이면 이미지가 하락돼 작품이 끊길 위험이 있으니까.


“속상해.”


신애리는 실장의 말에 다시 눈물이 차올랐다.


“법 없이도 살 만큼 바른 사람인데···. 이런 일에 걸려들어서···.”

“대표님 의견 합쳐서 전달하고 오겠습니다.”


실장이 나가고, 신애리는 손으로 다시 얼굴을 가렸다.


“속 시원히 싸워 보질 못 해요. 매번 이런 식으로 덮고 덮고... 덮고...”


쌓인 감정이 올라왔는지, 꿀렁-.

신애리의 어깨가 흔들리며, 눈물이 투둑 떨어졌다.


“어어-.”


당황한 최재범이 앞에 놓인 티슈를 폭폭 뽑아서 신애리에게 건넸다. 나는 일어나 신애리 옆으로 갔다. 울보 엄마 덕분에, 우는 사람을 대하는게 어렵지 않다.

얼마나 무서웠을까.


“다 지나갈 거예요.”

“...... ”

“해결 방법 나왔으면 끝난 거예요. 수고했어요.”


이 분위기에 더 있기가 어색해 나는 최재범에게 신호를 보냈다.


‘나갑시다.’


최재범은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이고 가방을 들었다.


“신애리 님. 진정되면 읽고 연락 주세요.”


최재범의 말에 신애리는 바로 자세를 고쳐 앉았다.


“이런 모습 보여서 죄송해요.”

“괜찮아요, 오히려 약속 미루지 않아서 감사합니다.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고충을 볼 기회였네요.”

“이걸 또 그렇게 봐주시다니... 고맙다고 해야 할지.”

“자극이 되었어요. 그럼 답변 기다리겠습니다.”


나랑 최재범은 쿼카 엔터테인먼트 주차장으로 갔다. 운전석에 앉은 최재범은 의자에 기대 피식 웃었다.


“재미있네요.”


운전대를 잡고 중얼중얼 혼잣말을 한다. 뭐에 꽂힌 거지?


“뭐가요?”

“이해의 폭이 넓어진 것 같아요. 집단에 문제가 발생했을 때, 포지션에 따라서 어떤 반응이 일어나는지 미디어를 통해 학습했다고 생각했는데-.”

“실제로 보니까 달랐군요?”

“매우 흥미로운 시간이었어요.”

“그 말 신애리 선배가 들으면, 한 대 칠걸요! 남의 고통을 학습 자료로 사용하지 말라! 퍽퍽퍽!”


절대 그런 거 아니라는 듯이 최재범이 눈이 크게 떴다.


“오해 말아요. 일이 해결됐다고 하기에 하는 말입니다.”


그러게요.

해결안을 못 듣고 왔으면, 한동안 마음이 불편할 뻔했다. 그래서 말인데요.


“작가님, 제가 생각하기에는 우리 시나리오 진짜 미쳤거든요.”


내가 구성을 맡고, 최재범이 내용을 채웠는데, 완성도와 재미를 모두 잡았다.


“욕심이 나요. 미국에서 제작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신애리 선배는 원래 미국에서 활동하는 배우니까, 같이 가면 되잖아요. 투자금 확보도 쉽고-. 촬영 장비도 좋고-.”


저까지 데려가면, 미국에서 살아볼 기회가 생기니까 감사하고!

모두 행복해질 것 같은데-.


“굳이 한국에 남을 이유가 있을까요?”

“제가 머릿속이 텅 비어서 한국에 왔다고 했잖아요.”


그랬죠.


“채우는 중입니다.”

“사서 고생도 안전하게 했으면 해요. 일이랑 엮이니까 걱정이 됩니다.”

“저는 좋은데요?”


최재범이 웃었다.


“지금을 위해서 영국에서 그 고생을 했나, 싶을 만큼 매 순간 신선하고 자극됩니다. 삶의 만족도가 높아요.”


저렇게 말하면, 말로 싸울 전투력이 사그라진다.


“작가님은 이상한 사람 같아요.”

“듣기 좋네요. 시간이 비는데 다음 일정을 고민해 봅시다.”


쿼카 엔터테인먼트에서 대화가 길어질 줄 알고 오후 약속을 잡지 않았다.


“날밤 영화사 갈까요? 대표님이 추천할 만한 배급사가 있다고 했어요.”

“좋죠.”


뚜르르르

뚜르르르

통화음이 몇 번 넘어가지 않고 홍길도 대표가 전화를 받았다.


- 감독님!


목소리가 힘차다.

침울한 사람이 가득한 곳에 있다가, 밝은 목소리를 들으니까 반갑다.


“대표님!”

- 언제 시간 되냐고 물어보려 했는데, 먼저 연락을 주셨네요. 괜찮은 투자사를 찾았습니다. 업체 자료가 넘어와서 같이 보자고 할 참이었어요.

“지금 갈까요?”

- 빠르게 진행하면 좋죠. 기다리겠습니다.




***




홍길도 대표는 슬리퍼를 신은채 입구까지 마중을 나왔다. 할 말이 많아 보였다.


“<아직 서른>의 반응이 좋아요. 여러 업체에서 호의를 보여서 일이 수월하게 진행됐습니다.”


회의실 갈 때까지 기다리기 어려운지, 대표는 복도를 걸으며 상황을 전했다.


“국내 배급사 쪽은 영화판이 불황이라서, 백억 원 이상 들어가는 영화는 관심 밖이더군요. 그래서 제했어요. 그나마 수입 배급사 쪽이 자본을 크게 굴리는데, 문제 있는 곳이 많아서 다 쳐냈습니다. 그렇게 두 곳이 남았는데, 대화가 잘 됐어요.”


감사합니다.

그간 홍길도 대표가 우릴 위에서 얼마나 열심히 뛰어다녔는지 알겠다. 이 정도로 수고할 거면, 그냥 우리 영화 맡아 주세요!라고 하기에는 제작비 팔백억 원은... 부담스러우시겠지.

회의실에 들어가자 테이블 위에 팸플릿이 놓여있다.


“감독님, 여기가 그 두곳입니다.”


[잭팟 필름]

[스타트 컷]


말없이 나와 최재범은 눈이 커졌다. 조금 전 쿼카 엔터테인먼트에서 투자 사기 혐의가 의심된다고 했던 곳이···. 저 중에 하나다.


“이 중에서 골라야 할 것 같습니다. 아니면 한국에서 더는 답이 없어요.”


와-.

어떡하지?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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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47화. 직진 (1) +4 24.06.26 500 33 12쪽
46 46화. 차기작 (4) 24.06.25 499 32 12쪽
45 45화. 차기작 (3) +2 24.06.24 551 32 13쪽
44 44화. 차기작 (2) +3 24.06.23 610 33 12쪽
43 43화. 차기작 (1) 24.06.22 636 31 12쪽
42 42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2) 24.06.21 654 32 12쪽
41 41화.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 (1) 24.06.20 658 35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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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39화. OTT 플랫폼 (4) 24.06.18 674 28 12쪽
38 38화. OTT 플랫폼 (3) 24.06.17 708 30 12쪽
37 37화. OTT 플랫폼 (2) 24.06.15 728 33 12쪽
36 36화. OTT 플랫폼 (1) 24.06.14 769 28 12쪽
35 35화. 메소드 연기 (2) +1 24.06.13 753 3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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