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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님의 서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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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달대게
작품등록일 :
2024.05.08 11:32
최근연재일 :
2024.06.2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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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6.17 10: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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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38화. OTT 플랫폼 (3)

DUMMY

박선율 음악감독의 작업실은 홍대역 부근에 있었다.

주변이 핫플레이스라던데, 맛집도 많겠지? 박선율 음악감독을 쳐다보며 잠깐 딴생각을 했다. 침을 꼴깍 삼켰더니,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났다.


“출출해요?”


뱃고동 소리를 들은 박선율 음악감독이 웃으며 되물었다.


“배고프구나?”

“네. 점심을 못 먹었거든요.”


어느덧 오후 네 시다. 속이 허하다 못해 쓰리다.


“저도 그래요. 밥 먹으러 갈까요? 대화는 식당에서 하죠.”

“좋아요!”

“감독님한테 무슨 음식을 대접해야, 잘했다는 소문이 날까요?”


의자를 밀고 일어나던 박선율이 뒤돌아봤다. 그의 시선이 소파에 잠든 남자에게 꽂혔다.


“저 녀석도 먹어야 하는데.”


걱정스럽게 쳐다보다가 깨우기가 망설여지는지, 시선을 내 쪽으로 돌렸다.


“잘 자는 사람 건들지 말고, 우리끼리 갑시다.”


네, 알겠습니다.

따라서 일어났다. 외투를 걸치던 그가 인상을 쓴다. 그리고 다급히 자신의 옷의 냄새를 맡았다.


“이틀을 꼬박 여기에 있었더니, 꿉꿉한 내가 나는 것 같기도 하고.... 저 괜찮아요?”


글쎄요.

머리카락이 기름지긴 했지만, 모자로 가리면 될 것 같고.

덥수룩한 수염은 스타일이라고 생각하면 그렇게 보일 것 같고.

옷에 뛴 떡볶이 국물은.... 누가 볼까요?


“괜찮습니다.”


그는 내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듯이 휴대폰을 꺼내 카메라 기능을 열었다.


“와.... 씨. 몰골이 말이 아닌데요.”


자기 얼굴을 보고서는 못 볼 걸 본 것처럼, 표정을 구겼다.


“이 꼴로 홍대를 돌아다닐 엄두가 나지 않네요. 십 분만 기다려 줄래요?”


박선율 음악감독이 천장을 손가락으로 가리켰다.


“이 빌딩 6층에 오피스텔이 있거든요. 씻고 말끔해져서 올게요.”

“네.”


얌전히 손을 모으고 의자에 도로 앉았다.


‘음악을 받으려면 말을 잘 들어야 해.’


관객이 좋아할 만한 ‘곡’을 제작해주겠다는 허락을 받아내기까지, 박선율 음악감독을 따라다닐 생각이다. 오늘 허락을 못 받으면, 다음 쉬는 날에 또 올거다. 허리 꼿꼿이 세우고 의자에 앉은 나를 보고, 박선율이 웃었다.


“감독님, 편하게 계세요. 수시로 손님이 드나드는 곳이라 장비 빼고는 다 건드려 봐도 됩니다. 저기 냉장고랑 수납장 보이죠? 다 열어봐도 돼요. 그럼 진짜 갑니다.”


그가 나가자, 작업실이 조용하다.

창문에 두꺼운 암막 커튼이 설치돼 밖이 보이지 않는다. 내가 왔을 때, 박선율 음악감독은 형광등을 켜지 않고 커튼 귀퉁이를 조금 거둬 햇빛을 들어오게 했다. 소파에 잠든 남자를 위한 배려였다.

그 약간의 빛으로 작업실 내부가 은은하게 보인다.


‘장비 멋있네.’


거대한 판에 빼곡히 들어찬 볼륨 버튼이 하나씩 돌려보고 싶게 생겼다. 녹음 부스도 방송에서 보던 것과 닮았다.


‘이런 곳에서 영화 음악이 만들어지는구나.’


여기저기 둘러봤다. 그러다 빛에 반사되는 먼지에 놀랐다.


‘엄청난 양인데?’


테이블과 탁자 위를 가득 채운 일회용 음료 컵이며, 구석에 쌓아둔 배달 음식 봉투며, 바닥에 굴러다니는 과자부스러기까지.


‘청소할 시간도 없었나 봐.’


콜록-. 소파에서 자던 남자가 기침했다.


‘실내공기 상태 최악일 거 같아.’


뭐든 만져도 된다고 했으니까, 쓰레기를 건드려 볼까?

청소를 해야겠다.

환기하기 위해서 창가로 갔다. 창문을 한 뼘 열었더니 늦겨울의 차가운 바람이 매섭게 들어온다.


“어어-”


이러면 자는 사람 추울 텐데.

다급히 박선율 음악감독이 두고 간 담요를 들어서 남자의 몸에 올렸다. 서둘다가 퍽! 생각보다 거칠게 덮어졌다. 깼을까?


.....


남자는 깊이 잠들었는지, 움직이지 않는다.


‘크크- 혼자서 웬 호들갑이냐.’


웃으며 청소를 시작했다.

이건 그에게 잘 보이려고 하는 행동은 아니다. 어린애가 넘어지면 붙들기 위해서 손부터 나가는 것처럼, 이런 공간에 잠든 사람들 보니까, 신경이 쓰여서 ‘내 마음 편해지려고’ 움직이는 거다.


‘부담스럽게 청소를 왜 했냐고 물으면, 심심해서 했다고 둘러대야겠다.’


바닥까지 쓸고 싶었지만, 너무 바스락거리면 자는 사람 깨울까 봐 자제했다.


‘이제 뭐 할까.’


남자 머리맡에 놓인 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음악감독님이 작업했다던, 연극 대본인가?’


봐도 될까? 판매하는 형태면 읽고, 복사본이면 그냥 둬야지. 시나리오처럼 외부 유출하면 안 되는 작품일 수 있으니까.

확인부터 해보자. 조심스럽게 남자에게 다가갔다. 책을 집으려는데-.


“누구세요?”


남자가 깼다.


“아- 저는 박선율 음악감독님이 작업하는 영화의 감독입니다.”

“<칙칙폭폭>이요?”

“네.”


남자는 너무 졸려서 눈이 떠지지 않는지, 눈을 감은 채 입만 움직였다.


“저는... 최재범입니다.”

“저는 유일한입니다. 혹시 실례가 안 되면, 머리 쪽에 있는 책을 봐도 될까요?”


남자는 자신의 머리 주변을 더듬거려 내가 읽으려 했던 책을 들었다.


“이거 영어예요.”

“그래도 괜찮습니다.”


가까이서 보니까, 시집처럼 얇아서 잠깐 보기에 좋을 것 같다.


“저 아무한테나 책 안 빌려주는데, 담요 덮어줘서 보여주는 거예요.”


제가 덮어준 거.


“알고 있었어요?”

“감독님, 우리 엄만 줄 알았어요. 자고 있으면 방에 들어와서 귀 옆에서 청소기 돌리거든요.”


강하게 크셨네요.


“읽고 돌려주세요. 재미있다고 가져가면 경찰에 신고할 겁니다.”


최재범은 시시한 말장난을 치고서 다시 잠들었다. 건네받은 책을 들고 내 자리로 왔다.


‘소설이네?’


첫 문장부터 예사롭지 않다.


- 악마가 나타나 속삭인다.


[서른 살이면 인생 충분히 즐길 수 있는 나이입니다. 서른까지만 사는 건 어때요? 이후 목숨은 저에게 넘기면 그 시간을 값으로 치러서 드리죠.]


스물두 살의 남자는 악마의 말에 주춤한다. 흔들리는 눈빛을 본 악마가 입맛을 다신다.


[거래 가능성이 있어 보이는 손님이군요.]


악마는 기회를 놓칠세라 장부를 확인하듯, 남자의 명줄을 잡아당겨 남은 길이를 잰다.


[손님은 쉰여섯에 죽습니다. 서른까지만 살고 남은 이십육 년을 제게 넘기면, 년당 1억씩 계산해드리죠. 26억원 받고 서른 살에 삶을 종료합시다.]


억소리에 남자의 눈에 생기가 돈다. 요즘 돈이 필요하던 차였다. 스물두 살이니까, 서른에 죽는다고 치면.


‘남은 칠 년 오 개월 동안, 26억 원을 쓰면서 살 수 있어!’


평생 누려보지 못한 호화로운 생활을 기대하며, 서른 살 이후의 목숨을 악마에게 넘긴다.


‘이 책, 재밌네.’


소설을 인간이 서른 살쯤 마주하는 것에 관해 이야기했다.

열다섯에 목숨을 넘긴 소년이 서른에 모든 걸 내줄 만큼 사랑하는 여인을 만나게 된다. 미래를 약속하고 싶지만, 악마와의 약속으로 목숨을 빼앗겨 사별한다.

이런, 가여워라.

스물여덟에 목숨을 넘긴 여자는 이후 복권에 당첨되어, 악마에게 받은 돈이 무의미해진다.


‘환불하러 가지만, 악마에게 퇴짜맞지.’


적당한 코믹이 섞인 소설은 ‘좀 더 살아볼 가치’에 대한 물음을 던졌다. 읽으면서 간간이 시간을 확인했다. 박선율 음악감독이 돌아오면 뒷 내용을 읽지 못하고 일어나야 한다.


‘아직 많이 남았는데-.’


생각하기 무섭게 작업실 문이 열렸다.


“감독님!”


박선율이다.


“오래 기다렸죠? 나와요, 밥 먹으러 갑시다.”


네-. 하고 일어나야 하는데 남은 소설이 눈에 밟힌다. 한 시간, 아니 삼십 분이면 다 읽을 것 같은데···. 밥 먹고 돌아와서 더 읽어도 되냐고 물어볼까?

들고 있는 책과 잠든 최재범을 번갈아 봤다. 이런 나를 보고 박선율 음악감독이 화들짝 놀랐다.


“감독님, 그 책 뭐예요?”


말해놓고서, 자신이 보고 있는 게 사실인지 확인하려는 듯이 눈을 크게 뜨고 다가온다.


“진짜, 저놈 책이네. 이거는 보면 안 돼요. 저 새끼···. 아니 쟤가 알면 죽일지도 몰라요.”

“내가 허락했어.”


소파와 하나가 되어있던 최재범이 자세를 고쳐 앉았다.


“너는 왜 알지도 못하면서 오바야.”

“오바라니! 너 출판 전에는 다른 사람한테 책 공개 안 하잖아.”


이게 저 사람이 쓴 책이었구나.

막힘없이 술술 읽혀서 시간가는 줄 몰랐다.


“예외도 있어.”

“어, 너 뭐냐.”


음악감독인 손으로 최재범이 덮은 담요를 가리켰다.


“캐릭터 담요는 쑥스러워서 안 덮는다며? 덮었네! 어지간히 추웠나 봐?”


그거 제가 덮어준 건데요. 이를 알 리 없는 음악감독이 실눈을 뜨고 킥킥 웃으며 최재범에게 다가갔다.


“막상 덮으니까 따뜻하지? 포근하지? 존나 좋지?”

“존나 냄새 나.”


박재범은 담요를 밀쳐내고 일어섰다.


“밥 어디서 먹을 거야, 나도 같이 가.”


고개를 돌려 나를 봤다.


“괜찮죠?”

“아니요.”


안 됩니다. 음악감독님께 매달려서 ‘음악’을 받아내야 하거든요.


“죄송해요, 중요한 대화가 오갈 자리라서요.”

“관객 호응을 유도하는 영화 음악 만들어 달라고 하려는 거죠?”


최재범은 자면서 우리 이야기를 다 들었나 보다.


“방해 안 하고, 밥만 먹을게요. 없는 사람 취급하고 대화하세요. 배가 너무 고파서 그래요.”


그렇게 말씀하시면 어떻게 거절합니까.

우리는 함께 이동했다.




***




최재범은 약속을 지켰다. 정말 조용히 식사만 했다.

고급 한정식이라 그런지 음식이 매우 맛있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최재범이란 남자는 공개된 홀에서는 식사하지 않는단다. 그 탓에 좋은 곳에 왔다.


“감독님 생각은 잘 들었습니다. 이건 우리끼리 정할 일이 아니에요. 노래를 부를 배우의 입장도 들어야 하고, 그들이 허락한다고 해도 추가 작업비에 대한 조율이 필요해요. 그리고-.”


박선율 음악감독이 쓰읍- 공기를 들이마셨다.


“무엇보다도, 곡 하나 더 넣는다고 제주 국제 음악 영화제에서 수상할 거란 생각이 들지 않아요. 시간, 금액을 투자했는데, 성과가 없을 수도 있어요.”

“그래도 해봐야죠.”

“뭐, 나쁘지 않은 방법 같기는 합니다.”

“대화 끝난건가?”


최재범이 입을 열었다.


“박선율은 다른 사람들도 좋다고 하면 음악 만들거지?”

“어.”


분명히 들었다. 방금 박선율 음악감독이 ‘어!’라고 했다.


“정말요?”

“상황이 그렇게 흘러가게되면 동참해야죠.”

“감사합니다.”

“감독님, 그럼 이제 저랑 말씀 좀 하시죠.”


최재범이 나를 봤다.


“소설 어땠어요?”

“반 정도 읽어서 전체를 말하기가....”

“느낌만 말해줘도 도움이 될 거 같아요.”


도움?


“한국에서 이름이 알려진 후로, 객관적으로 글을 평해주는 사람이 없어요. 유명세 때문인지 좋다는 말만 하니까, 신뢰가 되지 않더라고요.”

“작가님, 유명한 분이세요?”


내 말에 그가 피식- 웃었다.


“이름만 알려져 있어요. 얼굴은 공개하기 싫어서 한국에 들어오면 이렇게 숨어서 지내요.”


이상하다, 최재범이란 작가는 들어본 적이 없다.


“저는 재미있게 읽었어요.”


이유를 덧붙이면요.


“악마에게 목숨을 판 후에, 자신이 원하던 ‘어떠한 기회’가 찾아오잖아요. 그 기회는 악마의 계획이 아니라 원래 자신에게 올 기회였죠. 악마와 거래하지 않았으면 그 기회를 잡아서 재미난 노년을 살지 않았을까? 생각하니까 재미있더라고요.”

“재미있었다고요? 등장인물이 죽어서 그 기회를 놓치잖아요.”

“그래서 희망적이던데요?”

“희망이라뇨?”

“읽는 저는 살아있으니까요.”


대답이 흥미로웠을까, 최재범의 몸이 내 쪽으로 기운다.


“작가님. 저는요. 악착같이 살겁니다. 소설 속 인물처럼 기회를 놓치지 않을 거예요. 미래가 있다는 게 얼마나 좋아요?”


웃었더니, 최재범이 두손으로 자신의 얼굴을 감쌌다.


“제가 전하고 싶었던 메시지가 바로 그거입니다!”


그가 기뻐하며 내게 악수를 청했다.


“필명은 마크 벤턴입니다. 영국에서 활동 중이죠.”


네?

제가 기사로만 봤던......!

너무 놀라서 입이 다물어지지 않았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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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30화. 뭉치면 살고 (2) 24.06.07 749 30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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