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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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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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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8.23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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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7화 천마탈(5)

DUMMY

만식은 어릴 적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다. 겨우 일곱 살에 사서삼경을 땠고 손자병법을 암기했다.


동네의 패싸움에서는 항상 승리했고 어른 병사들과의 대련에서도 져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그의 재능은 꽃피우지 못했다. 서출의 존재를 숨기려고 했던 아버지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처를 받다보니 감정이 무뎌졌다.


솔직히 그는 죽음이 두렵지 않았기에 창의적인 해결방안을 도출할 수 있었던 것이다.



“왕태자 전하 말입니까? 내가 그걸 어찌 알겠습니까? 아...! 나주부의 관리들과 영산강의 제방에 갔다는 소리는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건 왜 물으십니까?”


허겁지겁 대답하는 문종구를 외면하며 만식은 돌아섰다.


원하는 답을 들었으니 더 이상 대화는 필요 없다.



어릴 적부터 온갖 차별을 겪었던 그는 별로 문종구를 좋아하지 않았다.


그리고 가족 중에서 유일하게 그를 형으로 존대하는 문종구는 애증의 대상이었다.



“너는 군산으로 돌아가 숨어있어라. 그리고 한 달 동안 아무런 소식도 들리지 않으면, 나주의 소식을 수소문해 보거라.”


“혀... 형님! 어디로 가십니까? 아버지는요?”


겁에 질린 문종구가 목소리를 높였지만 만식은 걸음을 멈추지 않았다.


그는 문한규가 제방을 무너뜨리라는 청탁을 받았다는 사정은 알지 못했지만, 자신이 해야 할 일은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



“아버지는 집으로 돌려보낼 것이야.”



마침 사냥에서 돌아오는 길이라서 챙길 것이 많지는 않았다.


만식은 똥간 옆에 있는 허름한 별채로 들어가 총알을 챙기고 우비를 뒤집어썼다.


그리고 수건으로 얼굴을 가리고 엉망진창으로 변한 집을 나섰다.



사람 사냥이 호랑이 사냥보다 어려울 게 무엇인가?






**






같은 시간, 왕태자 이혁은 관찰사 등과 함께 제방에 도착해 있었다.


저수지의 수위를 살피니, 언제라도 넘칠 정도로 물이 가득 차 사람들을 공포에 물들게 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왕태자 전하.”


관찰사가 근심어린 얼굴로 이혁에게 물었다.


사실 며칠 전부터 그는 제방의 상태가 염려되었지만 와보지는 않았다.


비에 몸이 젖는 것도 싫었고 곧 다가올 재앙을 예상하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제방에 와 보니, 그가 얼마나 안이하게 대처했는지 깨달았다.



“소신의 생각에는 하루를 버티기 힘들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인부들도 너무 많이 지쳤습니다. 교대를 해야 하는데... 그것도 여의치가 않고요.”


“오는 길에 많은 백성들이 장마로 놀고 있는 것을 목격했소. 그런데 왜 사람이 없다는 것이오?”


이혁이 의문을 표시했다.


그의 의문은 정당했다. 장마로 대부분의 백성들이 집에서 놀고 있는데 인부가 없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그러자 관찰사가 난감한 기색을 보이며 대답했다.



“사실 백성들에게 지급할 돈이나 쌀이 없습니다. 이미 관청의 곳간은 텅텅 빈지 오래이거든요.”


“조정에 세금을 보내서 그렇게 된 것이오?”


“어쩔 수 없는 일입니다. 지금 조선은 외세와 싸우고 있지 않습니까? 백성들이 감내해야지요.”

이혁은 더 이상 말하지 않았지만, 통탄할 지경이었다.


미곡의 대부분이 헐값에 일본에 팔려가고 있는 상황은 알고 있었지만, 지방의 상황이 이렇게 안 좋을 줄이야.



“역시 미곡 수출량이 너무 많기 때문이군. 일본 제국 말일세.”


“......”


관찰사는 조용히 침묵했다. 친일파가 설치고 있는 지금의 조선에서는 말 한마디가 사형선고가 될 수 있다.


왕태자 이혁 정도 되면 좀 낫겠지만, 조선인들은 일본인을 두려워하고 있었다.


남의 나라 궁궐에 들어와서 국모를 살해하는 놈들을 두려워하는 건 정상이다.


어쨌든 이혁은 임시방편을 마련해야했다.



“그런데 전하의 말대로 문한규를 심문하였더니, 그가 새로운 사실을 자복했습니다. 어떻게 문한규가 음모를 꾸미고 있는지 아셨습니까? 소신은 전하의 혜안에 그저 감탄할 따름입니다.”


“새로운 사실이 나왔다고? 그게 무엇이오?”


이혁이 흥미를 보였다. 문한규의 과실이 드러나면, 그를 처리하기가 쉬워진다.



“그것이... 입에 담기도 송구하여... 문한규가 일본 공사관의 오카모토란 자의 청탁을 받아 영산강 제방을 무너뜨리려고 음모하였다고 합니다.”


“그거 잘 되었군. 내가 듣기로 문한규가 부자라고 들었는데... 그의 집에 쓸 만한 것이 있지 않겠는가?”


이혁은 반색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문한규가 그런 음모를 꾸미고 있었다니... 근데 오카모토라고? 그 자는 끼지 않는 일이 없구나. 유길준의 집에서 처리한 줄 알았는데... 한양에 가면 오카모토의 거취를 알아봐야겠다.’



역시 문한규가 제방 공사에 열성을 보이지 않고 지지부진하게 시간을 끌고 있었던 것은 다 이유가 있었다.


그에게 일본 공사관의 입김이 닿아있었던 것이다. 그것도 이혁과 을미사변으로 악연을 맺은 오카모토 류노스케 부무관이!


어쨌든 이혁은 정보가 부족한 상황에서도 일본의 음모를 꿰뚫어 보았으니, 과연 범상치 않은 자질이 있다고 할 것이다.



휴-


이혁이 안도의 한숨을 내쉬는 모습을 보며 관찰사가 그의 질문에 마저 답했다.



“분명 문한규는 부자이오나 그의 본가는 군산이옵니다. 나주의 집은 잠시 오고가는 곳이지요. 그래도 제법 자산이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재물과 미곡으로 인부들을 쉬게 하고, 그 사이에 다른 백성들로 제방을 쌓으면 어떻겠소?”


“명안이시옵니다. 전하.”



깊이 고개를 숙이며 존경심을 표시하는 관찰사의 얼굴은 처음과 완전 딴판이었다.


사실 지방 관리의 입장에서 왕족은 높은 사람일뿐, 그다지 신뢰가 가는 존재가 아니다.


그런데 이렇게 왕태자가 홀로 홍수를 막기 위해서 왔다고 하니, 그 마음이 예전 같지 않았다.


저절로 조선 왕가에 대한 충성심이 솟아올랐다.



“그리고 군산(당시 전주부)에도 연락하여 문한규 집안의 재물을 압수하고 가족을 옥에 가두라고 명하시오. 내 홍수가 해결된 이후에 그들의 거취를 결정할 것이오.”


이왕 마음먹은 이상, 허술하게 행동해서는 안 된다.


이혁은 자신이 조선의 마지막 희망이라는 사실을 잘 알았다.


괜히 후환을 남겨서 좋은 꼴을 볼 것은 없다.



“알겠사옵니다. 전하. 그렇다면 군산의 재산은 어떻게 할까요? 그 집안은 토지도 많습니다. 워낙 대대로 지주 집안이라...”


헛웃음을 지으면서도 관찰사는 허탈함을 감출 수 없었다. 조금 전까지 하하 호호하던 문한규가 근무태만으로 몰락하는 것이 남일 같지 않다.


그 기색을 눈치 챈 것인지, 이혁은 냉담하게 대답했다.



“문한규의 토지는 왕실 재산으로 몰수될 것이며, 그의 재물은 나주의 수해를 복구하는 데 쓰일 것이다.”


“예. 전하.”


앞으로 일본을 상대하려면 재산은 많을수록 좋다.


문한규의 재산이 친일이 아니라 반일을 위해 사용될 것이라는 게 아이러니지만.



“그런데 빗줄기가 점점 거세집니다. 왕태자 전하. 안으로 들어가시는 게 좋지 않겠습니까?”


“걱정하지 마시게. 나도 체력하나는 자신 있으니.”



**




만식은 관청에 가서 평소에 친하게 지내던 군관에게 물었다.


“군관 나으리, 한 가지 여쭐 것이 있습니다.”


“그게 무엇인가? 크흠! 알다시피 지금 분위기가 별로 좋지 않네. 그래서 이렇게 자네를 만나는 것도 좀...”


세상 민심이 다 똑같다고 하던가?


만식은 군산과 나주를 아우르던 가문의 명성이 바닥에 떨어졌다는 생각을 했다.


하지만 그는 원래도 별로 가문에 연연하지 않았기에, 기분 나쁜 티를 내지 않았다.



“별로 대단 한 것을 여쭙는 것이 아닙니다. 하지만... 이거라도 받으시지요.”


만식은 오늘 사냥한 호랑이 가죽을 군관에게 내밀었다.



“으허헉! 이사람. 깜짝 놀랐지 않은가? 그나저나 상등품 같군.”


군관은 갑자기 만식이 호랑이 얼굴을 들이밀자 깜짝 놀랐다. 하지만 곧 뇌물이라는 것을 깨닫고 흡족한 미소를 지었다.


녹봉으로 이런 물건을 손에 넣으려면 한세월이니.


분명 그의 아내도 좋아할 것이라는 생각에 그의 목소리가 부드러워졌다.



“그래. 원하는 정보가 무엇인가?”


“지금 저희 가문이 위기에 쳐하지 않았습니까? 그래서 여러 가지로 상황을 알아보는 것뿐입니다. 그런데... 왕태자 전하는 나주까지 왜 오신 것입니까? 이해가 안 되는 군요.”


만식은 평소와 다르게 말을 많이 하려니 혓바닥에 바늘이

돋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왕태자가 나주에 왜 왔는지, 누구랑 왔는지를 알아내야 한다.



“글쎄... 그 분의 생각을 내가 어찌 알겠나? 나는 그저 위에서 시키는 대로 할 뿐이지. 가만 보자... 좀 이상하기는 했네. 왕태자가 홀로 움직이는 상황이 말이 안 되지 않나?”



그 말에 만식은 눈을 빛냈다.


왕태자가 혼자 나주에 왔다면 일은 쉬워진다.



“그러니까 왕태자가 혼자 왔다는 말이십니까?”


“그렇지. 참 기이한 일이 아닌가? 믿지 않아도 할 수 없지만 사실일세.”


“저는 군관님을 믿습니다. 그럼 혹시 앞으로 저희 아버지가 어찌되실지 아십니까?”


문한규는 숨긴다고 숨겼지만 전라도에서 만식이 문한규의 서출이라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은 없었다.


그래서 군관은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



“그야 내가 어찌 알겠나? 왕태자 전하가 자네 가문에 좋은 감정은 아닌 것 같군... 자네도 얼른 피하게. 내 평소 친분이 있는 사이라 말해주는 거지만 분위기가 심상치 않아.”


“걱정 마십시오.”



군관과 작별한 만식은 제방으로 향했다.



쏴아아-


저벅 저벅


진흙에 발이 빠지고 점점 거세지는 빗방울에 우비가 다 젖어버렸지만 그에게는 익숙한 일이다.


사냥을 하다보면 더한 일도 수두룩하게 겪으니...


영산강의 저수지는 사람들로 북적 거렸다.


그는 숲속에 몸을 숨기고 저수지가 잘 보이는 언덕을 올라가 몸을 숨겼다.


그리고 목표가 나타날 때까지 바닥에 엎어져서 숨을 죽였다.


당연히 나뭇가지로 은폐했기 때문에 금방 발견될 걱정은 없었다.



‘나타났다.’


그때, 나주에서 처음 보는 사람이 관찰사등과 함께 제방 앞으로 다가갔다.


그의 복색은 평범했지만 만식은 그가 왕태자라는 사실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다.


얼굴에서 풍기는 기운이 남달랐기에.


왕태자 말고 관찰사가 모실 정도의 인물이 나주에 또 누가 있겠는가?



‘조금만 더 다가와라. 조금만 더...’


만식은 50m가 넘는 거리도 명중 할 수 있었지만 이혁이 50m 안으로 다가올 때까지 기다렸다.



70m


'조금만 더 기다리자.'



60m



'이제 다섯 발자국만 더 오면 된다.'


꿀꺽.


만식의 목 울대가 움직였다.


평소 무감정했던 호랑이 사냥과는 느낌이 다르다.


그는 살짝 떨리는 총구를 고정하기 위해 숨을 멈추고 초점을 맞췄다.


신경이 확장되고 순간적으로 긴장감이 고조된다.



'이제 거의 다 되었다. 이 거리에서는 놓치지 않아.'



55m...



'마지막 한 발자국만 더 와라. 이혁!"


만식은 마지막까지 호흡을 조절하며 방아쇠에 손가락을 올렸다.


그러자 점점 더 가까워지는 이혁이 보인다.




53, 52, 51...... 50!



'지금이다!'


만식은 동공을 확장하며 방아쇠를 당겼다.



- 탕!!!!


그리고 호랑이도 한방에 때려잡았던 총알이 발사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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