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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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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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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2,5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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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19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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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쪽

13화 천마탈(1)

DUMMY

“전하...”


정신을 차린 홍계훈이 눈을 떴다. 그는 조금 전까지 사경을 헤맸던 사람처럼 보이지 않았다.


눈빛은 강렬해서 황야의 늑대를 보는 것 같았고 목소리는 전혀 떨리지 않고 위엄 있었다.


사정을 모르는 사람이 보았다면, 그가 잠을 자다가 일어났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어쨌든 그의 생환은 이혁에게 반가운 소식이다.



“대감. 정신이 드십니까?”


“예. 왕태자 전하. 그런데 어찌 이런 누추한 곳까지 걸음 하신 겁니까? 왕태자 전하의 품위가 손상될까 걱정되옵니다.”


“내 대감을 되살릴 수만 있다면 지옥 불구덩이라도 가야지요. 그리고 감히 누가 이런 일로 조선 왕실의 위엄을 손상시킨다는 말입니까? 충신이 다치면 군주가 와보는 게 도리입니다.”


아직 이혁은 조선의 군주는 아니었지만 두 사람 중의 누구도 그 사실을 짚고 넘어가지는 않았다.


평소 홍계훈은 고리타분한 성격이라 그가 멀쩡한 정신이었다면 잔소리를 했겠지만, 지금은 그럴 정신이 없었을 것이다.



“왕태자 전하가 저희 집에 오시다니 삼대의 영광이옵니다. 소신이 누워서 전하를 뵐 수밖에 없음을 용서하소서.”


홍계훈은 자리에서 일어서려고 했지만 여의치 않다는 것을 느끼고 그만 두었다.


총상이 완전히 아물지 않은 탓이다.


이혁은 침통한 얼굴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생각했다.


‘천마 어르신, 만약에 지금보다 강해지면 병자도 치료할 수 있습니까?’


그는 무공에 대해 아는 바가 적었기에 천마에게 물었다.


-흥! 물론 무공 중에는 치유술도 있다. 하지만 본좌는 이론으로만 알고 있을 뿐이고 그런 무공을 시전하려면 최소 화경의 경지에 도달해야 한다.


천마가 콧방귀를 뀌면서 냉소적으로 말하자 이혁은 실망했다. 그는 혹시나 하는 기대를 가졌던 것이다.


‘제가 치유술을 시전 하기는 무리라는 소리군요. 그래도 홍계훈의 기혈을 안정시키는 것은 가능하지 않겠습니까?’


-물론 가능하다. 하지만 네 녀석의 얕은 내공으로는 불가능하지.


이때다 싶어 이혁을 무시하는 천마의 목소리는 오만했다. 하지만 이혁은 기분이 나쁘기는커녕 다시 기대가 생겨났다.


혹시 천마가 나선다면 홍계훈이 치료될 수도 있는 건가?


그래서 감탄하는 목소리로 천마를 치켜세웠다. 그가 겪어본 바로는 단순한 성격의 천마는 알면서도 당해주곤 했다.


‘정말 대단하십니다! 역시 고금제일 천하제일인 이군요! 그렇다면 어서 그 무공을 보여주시지요. 마침 적당한 병자가 있으니 얼마나 좋은 기회입니까?’


- ...지금 말이냐?


천마는 떨떠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는 왠지 이혁이 또 술수를 부리는 기분이 들었다.


- 흥! 내가 왜 생전 처음 보는 늙은이를 고쳐야 한다는 말이냐? 택도 없는 소리는 집어치워라.


‘그렇습니까? 허어... 아쉽군요. 그것 참.’


- 뭐가 아쉽다는 말이냐? 괜한 잔꾀를 부릴 생각이면 집어치워라. 맹랑한 놈.


거칠게 말하면서도 천마는 왠지 솔깃한 어조였다.


이혁이 정당한 이유를 말한다면 그깟 무공을 조금 사용해주는 것은 문제가 아니다.


‘그것이... 사실 이번에 한양을 벗어나 나주에 가볼 생각이었습니다. 조선의 풍경은 지방마다 다르고 아름답기로 유명한데, 천마 어르신도 분명 좋아하셨을 겁니다.’


- 그런데 뭐가 문제냐? 이 노인네는 내버려 두고 가면 되지.


불통거리는 천마의 말투에 이혁은 미소를 숨기며 음울하게 지껄였다.


‘저는 홍계훈을 새로운 친위대의 수장으로 낙점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리에서 일어나지 못한다면, 또 다른 인재를 물색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러니 나주에 갈 여유는 없어진 것이죠.’


- 끄응...



사실 이혁은 홍계훈과 상관없이 나주로 가서 홍수를 막아야했지만, 천마는 그런 것까지는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평소에 이혁의 말에 전혀 관심이 없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이완용과 이혁의 대화에 귀를 기울였다면 이혁의 주장이 틀렸다는 것을 눈치 챘겠지만...



‘정말 슬픈 일이군요. 한양을 벗어날 수 없어졌으니 이참에 많은 정무를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겠습니다. 천마 어르신, 좀 갑갑하시더라도 참아주시지요.’


- 끄응... 좋다. 내 이 노인을 도와주마. 그래봤자 기혈을 안정시켜서 자연 치유력을 높이는 것뿐이지만.



씨익-


‘감사합니다. 어르신.’


천마와 대화를 마친 이혁은 너무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고 홍계훈에게 말했다.



“옷을 벗으시오. 대감.”


“예?”


처음에 홍계훈은 자기가 잘못 들었다고 생각했다.


왕태자가 미치지 않고서야 대낮에 사내의 옷을 벗길 이유가 있겠는가?



“어허! 어명이오. 어서 옷을 벗으시오.”


“......”


잠깐 동안 홍계훈은 고민했다.


여인에 대한 관심조차 없는 노구를 왕태자가 원하신다면 어찌 피하겠는가?



“그럼 부탁드리옵니다. 전하. 소신 이런 것은 정말 오랜...”


“닥치고 어서 누우시오!”


“으악!”



**




홍계훈의 기혈을 안정시키고 나서 이혁은 경희궁으로 향했다.

그런데 회의실에는 김홍집 총리대신이 도착해 있었다.


이제 정치가 아니라 업무를 해야 할 시간이었다.



“왕태자 전하. 어딜 다녀오십니까? 그런데 이완용 대감을 강릉으로 보내셨다고요? 갑자기 홍수라니... 소신은 이해가 되지 않사옵니다.”


“그 일은 알 것 없소. 나를 찾아온 게 그 일 때문이오?”


“아닙니다. 전하. 내각에 산더미처럼 업무가 쌓였습니다. 특히 개혁에 대해서 지시를 내려주셔야 저희가 방향을 잡을 수 있습니다. 전하가 생각하는 방향은 어느 것인지요?”


김홍집은 에둘러 이혁의 의도를 물었다.


그의 질문에는 여러 의미가 있었는데, 김홍집도 이혁이 온건파와 급진파 중에 어느 방향의 개혁을 원하는지 감이 안 왔기 때문이다.



“총리대신의 생각에는 우리 조선이 어떻게 발전해야 하겠소?”


“제 생각에는 일본처럼 군주의 권한을 제한하고 국민의 권리를 강화하는 쪽으로 개혁하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하옵니다. 허나...”


자신 있게 얘기하던 김홍집은 말미의 끝에서 머뭇거렸다.


머리가 좋은 그는 어차피 이혁이 입헌군주제에 찬성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이미 총리대신은 나의 생각을 잘 알고 있는 것 같구려. 입헌 군주제는 작금의 조선에 적합하지 않소. 영국(당시 영길리)처럼 외세의 침략을 받고 있지 않다면 고려해볼만 하겠지만...”


“...그 말도 맞사옵니다.”



김홍집은 작은 눈을 크게 뜨며 놀라움을 표시했다. 궁에 갇혀있었던 왕태자의 식견이 보통이 아니었던 것이다.



‘도대체 경희궁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인가? 어떻게 경희궁의 스승들도 속이고 혼자서 서양에 대해 공부할 수 있지?’


김홍집은 눈썹을 찌푸렸지만 그가 감히 상상이나 하겠는가? 이혁이 미래에서 왔다는 걸.



“권력은 왕에게 집중되어야 하고 국력은 외세의 침탈에 저항하기 위해 쓰여야 하오. 그런데 지금 국고에 남은 돈이 얼마나 됩니까? 그 걸로 개혁을 할 수 있소?”


“... 불가하옵니다. 그래서 소신은 철도나 광산을 외국에 매매하여 자금을 마련할 생각이었습니다.”


“나는 국유재산인 토지를 파는 것에 반대하오. 허나 땅을 빌려주고 수익을 창출하게 하는 형태라면... 가능하겠지. 물론 모든 매매는 오직 미국 달러로 계산되어야 합니다.”


“...!!!”


이혁은 경제학과도 아니었지만 조선이 헐값으로 철도부설권과 광산을 팔아넘겼다는 역사를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총리대신에게 계약 조건에 대해 못을 박았던 것이다.


예를 들면 10년 단위로 철도 용지의 임차권을 갱신하면, 나중에 토지를 되찾아 올 수 있다.


그리고 경복궁 중건과 수차례의 개혁으로 똥값이 되어있는 조선의 화폐나 일본의 화폐는 신뢰성이 낮았다.


그래서 그는 미국의 화폐로 계약대금을 받을 생각이었던 것이다.



“하지만 그래서는 좋은 가격을 받을 수 없습니다. 왕태자 전하. 지금은 개혁 자금이 우선이지 않겠습니까? 더 늦었다가는 열강의 침략에 맞설 수 없습니다.”


김홍집의 말을 듣다가 이혁은 생각했다.


그가 말한 열강에 일본은 포함이 되는가? 되지 않는가?


역시 친일에 물든 그의 썩어빠진 뇌를 개조하려면 시간이 필요하겠다.


“김홍집 총리대신.”


“예?!”


움찔. 이혁이 목소리를 낮추자 김홍집은 일전의 기억으로 움츠러들었다.


괜히 맞으면 자기만 손해다.



“어려운 일인 건 알고 있소.”


하지만 의외로 이혁은 폭력을 쓸 생각이 없는지, 불쌍하다는 눈빛을 보내며 차분하게 말했다.



“...하오니...”


“그러니까 조선 제일의 엘리트이자 총리대신인 그대에게 맡기는 게 아니겠소? 나는 그대를 믿소. 멍청한 호구들을 물어올 것이라고.”


“......”


김홍집은 뒤통수를 한 대 맞은 기분에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자신을 치켜세우며 믿는다는 데 뭐라고 대꾸하겠는가?


그 멍청한 얼굴을 바라보며 이혁이 못을 박았다.


“그때까지 그대가 좋아하는 개혁은 모두 중단입니다. 그러니 어서 나가서 호구들을 물어오세요. 음... 그래. 먼저 경인철도 부설권을 팔아 보는 게 어떻겠소?”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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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1화 경인철도 부설권(3) +5 20.08.27 2,069 41 8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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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화 천마탈(1) +2 20.08.19 2,842 59 9쪽
12 12화 왕태자 이혁(6) +5 20.08.18 2,947 56 11쪽
11 11화 왕태자 이혁(5) +3 20.08.17 3,143 62 1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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