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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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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연재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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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4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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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2,594

작성
20.08.16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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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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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글자
11쪽

10화 왕태자 이혁(4)

DUMMY

“앞으로 내각을 대신해서 어전회의가 모든 결정을 할 것이오. 그러니 내각의 대신들은 매일 아침 경희궁으로 나를 찾아와야 합니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김홍집은 같은 상황인데도 고종과는 반응이 달랐다.


정치 9단인 그는 이혁 앞에서 속내를 전부 보이지는 않았다.


그렇지만 이마에 송골송골 맺힌 땀과 새하얗게 질린 얼굴을 보면 속내는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다시 한 번 말씀해주시지요. 소신 잘못 들은 것 같습니다.”


김홍집은 정말로 자신이 잘못 들었기를 바랐다. 이혁이 한 말은 정말 말도 안 되는 일이었기에.


그의 말대로라면 내각을 무력화하겠다는 것이 아닌가? 결국 왕태자가 모든 결정을 내리겠다는 말이니...



“잘못 듣지 않았소. 앞으로 내각의 모든 결정은 어전회의, 상참에서 하겠소.”


“그건 불가능합니다. 법과 원칙이 있는데 어찌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그는 얼굴을 굳히고 절대불가하다는 원칙을 내세웠다. 하긴 이때까지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불가능했을 것이다.


전제 군주의 권리를 제한하는 개혁정책에서는...


하지만 완고한 그의 대답에도 이혁의 얼굴은 도색이라도 한 것처럼 변화가 없었다.


이혁은 자신이 있었던 것이다.


그래서 그는 은근히 앞으로 몸을 기울이며 김홍집을 쏘아보았다.


철렁.


김홍집은 뱀과 같은 이혁의 눈빛에 가슴이 내려앉았다.


‘왕태자는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것인가? 정치 9단인 내가 기세에서 밀리다니...’


최고의 엘리트 출신인 그로서도 이런 상황은 예상 밖이었다.

물론 유약하고 무능하다는 이혁의 소문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법과 원칙은 언제든지 변할 수 있는 것이오. 내각에서 바꾸면 되는 거니까.”


“아니, 그래도...!”


김홍집이 발작적으로 반박하려는 것을 막으며 이혁은 다시 등받이에 허리를 기대었다.


언뜻 보기에 산책을 나온 것처럼 평온한 얼굴은 반감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자신감에 차있다.



“아니면 다른 방법도 있소이다. 더 쉽고 간편한 방법.”



꿀꺽.


태연하게 대안을 제시하는 이혁을 보면서 김홍집은 두려움을 느꼈다.


‘이건 사람이 너무 다르지 않은가? 지난번에도 느꼈지만 정말로 왕태자가 민비의 죽음으로 각성했다는 말인가?’


그는 다 큰 어른이 오줌이라도 쌀 것 같은 기분이었다. 귀신에게 홀린 것처럼.


‘진짜 미치겠군. 사람의 분위기가 이렇게 달라지다니.’


김홍집의 눈동자는 갈 곳을 찾지 못해 방황했고 목은 갑갑했다.

누가 두 손으로 조르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반면 이혁은 슬며시 미소마저 지으며 해결책을 제시했다.



“그냥 자네들이 짐 싸고 궁에서 나가면 되네. 대신할 사람은 얼마든지 있으니.”


“왕태자 전하! 장난이 지나치십니다.”


이때까지 잘 참고 있던 김홍집이 폭발했다. 그는 자신의 위치도 잊어버리고 분노한 감정을 드러냈다.


그도 이래서는 안 된다는 사실을 잘 알았지만 어쩌겠는가?


이미 그의 인내심은 한계를 초과했다.



- 그냥 얘도 죽여 버리자.


신난 천마의 목소리를 들으며 이혁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저벅


저벅



그는 장식용 칼이 걸려 있는 곳까지 걸어가서 칼을 들고 돌아섰다.


“장난이 아니다. 김홍집.”


북해의 얼음보다 차가운 그의 목소리에 김홍집은 몸을 떨었다.


동공은 확장되었고 심장은 두방망이질 치는 와중에도 그는 이성적으로 생각하려고 노력했다.


‘검을 왜 든거지? 여기서 칼부림이라도 하겠다는 건가?’


김홍집은 두려움이 앞섰지만 이혁이 정말로 자신을 찌를 가능성은 없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그는 조선의 총리대신이 아닌가? 오늘 대리청정을 시작한 왕태자가 쉽게 볼 수 있는 상대가 아니다.


그래서 그는 괜한 배짱을 부렸다.


“......! 왕태자 전하. 칼을 원래 자리에 돌려놓으시지요.”


물론 이혁에게는 씨알도 먹히지 않았지만...


도리어 이혁은 살기를 뿜어내며 검자루에 손을 올렸다.



“내게 명령하지 마라. 총리대신. 나는 이 나라의 왕을 대리하는 섭정이다.”


“말이 심하십니다. 왕태자!!”


저벅. 저벅.


‘거침없이 다가오는 발소리가 살을 베는 것 같이 두렵구나.’


한 손에 검집을 들고 다가오는 이혁에 맞서 김홍집도 자리에서 일어났다.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점점 커져 간다.


그는 주위를 둘러보며 아무 거나 집어들 것을 찾았지만, 마땅한 것을 찾을 수 없었다.


“너는 국모를 시해하고도 자리를 보폐하고 싶었더냐? 내 너를 여기서 참한다고 해도 할 말이 없을 것이다.”


“윽... 왕태자 전하!!!!! 제가 한 일이 아닙니다.”


스르릉-


시리도록 밝은 보검이 검집에서 뽑혀 나왔다.



휘잉-


그 검이 바람을 가르며 휘둘러지자, 김홍집은 비명소리를 지르며 눈을 감았다.


이혁에게 맞서는 기세는 좋았지만 김홍집은 문관이다. 그는 끝까지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이렇게 죽는 건가? 조선의 개화를 이뤄내지 못하고? 분하고 원통하구나.’


움찔?


‘뭐지? 왜 아프지가 않지?’


분명히 통증이 느껴져야 하는데 아무런 느낌도 없었다.

김홍집은 조심스럽게 눈을 떴다.


흠칫.


새하얀 보검이 그의 눈앞에 멈춰서 있었다.

그 시리도록 아름다운 검 날을 보면서 김홍집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죽다가 살아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그냥 죽여라. 크크... 어차피 죽이게 될 건데.


‘그럴 수 없습니다. 그러기엔 너무 아까운 인물이거든요.’


-그래? 그렇다면 조심해라. 어째 네 옆에 있는 놈들은 죄다 배신자의 관상을 가지고 있는지... 지난번에 내관도 그렇고.


이혁이 잔뜩 흥분한 상태였기에 천마도 말이 많아졌다. 살인하면 천마 아닌가? 그는 이런 순간을 즐겼다.


‘이때의 조선에는 그런 자들이 많았나 보죠. 그랬으니 나라가 망했겠지.’


-뭐? 내가 보기에도 거의 망한 것 같기는 하다만... 아직 망한 것은 아니지 않느냐?


‘...아닙니다.’


또 말실수를 한 이혁은 얼버무렸고 천마는 캐묻지 않았다.


천마는 원래 단순한 성격에다가 다른 사람의 비밀에 관심이 없었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오직 그 자신의 감정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김홍집이 눈을 뜨고 나서 10초 정도 시간이 흘렀다.


이혁은 천마와 대화를 나누고 있었을 뿐이지만, 김홍집에게는 자신을 죽일지 말지 고민하는 시간처럼 느껴졌다.


살고 싶은 욕망에 김홍집의 눈이 충열 되었다.


그는 지금 절박했다.



“제발 살려주십시오. 왕태자 전하. 저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습니다.”


‘역시 의연하게 조선을 위해서 죽었다는 이야기는 과장된 것이었나? 하긴 그가 이렇게 까지 죽음의 공포를 느낀 적은 없겠지. 잘난 척해도 머리 좋은 엘리트에 불과하니까.’



이혁은 생각을 정리하며 입을 열었다. 더 이상 시간 끌 필요는 없으니...



“나의 명령은 변하지 않는다. 김홍집. 앞으로 모든 결정은 어전회의 상참에서 한다. 알겠느냐?”



유약한 왕자가 아니라 백전무패의 장군처럼 당당하게 말하는 그의 기세에 김홍집은 무력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알겠습니다. 일단 이 검부터 좀 치워주시지요.”


스르릉-


왕실의 보검이 검집에 들어갔다.


털썩.


검이 치워지자 김홍집은 아무데나 주저앉았다. 거칠게 숨을 내쉬는 그는 진짜 아무 생각이 없었다.


협상에서 손해를 본 게 무슨 상관이겠는가? 이렇게 살아났는데.



그런 김홍집을 보며 이혁은 생각을 정리했다. 그는 지금 외줄타기를 하고 있었다.


왕실의 권위가 무너진 상황에서 권력을 잡으려면 다른 수가 없다.


대신들이 자의적으로 권력을 반납하면 되는 것이다.


게다가 지금 내각 대신들은 생사의 위기에 쳐해 있으니 좋은 기회라고 볼 수 있다.


이 또한 천마탈의 활약으로 친일파가 궁지에 몰린 탓인데, 지금 친일파는 일본 공사의 사망으로 일본의 지원을 받지 못하고 있었다.



“곧 대신들에게 경희궁으로 초대하는 서찰이 갈 것이네. 그때 다시 보도록 하지. 빠르게 움직이는 게 좋을 거야. 이번 상참에서는 인사이동도 있을 테니... 다시 그대가 총리대신이 될지 누가 알겠는가?”


그 자리를 떠나며 이혁은 바닥에 주저앉은 김홍집에게 차갑게 말했다.




**




을미사변으로 실각한 이완용은 자택에 있었다.


그는 언제 살해당할지 모른다는 걱정에 새로운 계획을 꾸미고 있었다.


일단 왕이 연금된 이상, 그를 설득해서 밖으로 빼낼 수 있다면 친러파가 다시 정권을 잡는 것도 가능했다.


그래서 이범진, 이윤용, 윤치호 등과 아관파천을 모의하고 있었다.


그런 와중에 밤중에 경희궁에서 날아온 전갈은 생뚱맞은 것이었다.



“경희궁에서 전갈이 왔다고?”


“예. 대감.”


‘경희궁이라면 왕태자 전하가 있는 곳이다. 그가 왜...’


이완용은 고개를 갸웃하며 하인에게 물었다.


“무슨 내용이더냐?”


“소인은 잘 모르겠습니다. 그저 경희궁의 내관이 전해준 것을 들고 왔을 뿐입니다.”


“이리 가져오너라.”


드르륵-


대수롭지 않게 문을 열고 들어온 하인의 손에서 서찰을 낚아챈 이완용은 여유롭게 서찰을 펼쳤다.


왕태자가 이미 좌천된 자신을 왜 찾는지 궁금했기 때문이다.


서찰은 두 장이었다. 그는 천천히 첫 번째 서찰을 읽어나갔다.


그런데 조금 전까지 편안한 안색이 서찰을 읽어가면서 조급하게 변했다.


그는 이렇게 말도 안 되는 개소리는 처음 듣는다는 듯이 코웃음을 치다가 갑자기 정좌하며 목소리를 높였다.



“...짐의 명으로 어제 술시부터(저녁 7시-9시) 왕태자 이혁이 대리청정을 시작하였다. 대신들은 왕태자 이혁을 보좌해 조선을 다시 세우라.”


이마에서 땀을 비 오듯이 흘리며 이완용은 허겁지겁 두 번째 서찰을 읽었다.



“나 왕태자 이혁은 폐하의 명을 받아 대리청정을 하게 되었다. 그런 내가 첫 번째로 명하니, 서찰을 받은 대신은 지금 당장 경희궁으로 들어 충성을 맹세하라! 궁에 빠르게 오는 순서대로 높은 관직을... 돌쇠야!”


두 번째 서찰을 다 읽는 둥 마는 둥 하며 이완용은 돌쇠를 불렀다.


지금 한시가 급했다. 이런 기회는 다시 오지 않을 수도 있었던 것이다.


이 서찰이 진짜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만의 하나라도 이 서찰이 진짜라면, 그는 지금 경희궁에 가야 했다.


이완용은 짧은 다리로 부리나케 움직이며 의관을 정제했다.


오늘 집에 있었던 게 운이 좋았다.


좌천당한 것을 비관하며 술이나 퍼마시고 있었다면, 이 서찰을 받지 못하지 않았겠는가?


어쨌든 이완용, 그는 언제나 운이 좋았다. 역사에서 그런 만행을 저지르고도 천수를 다했으니.


뭐... 친러파가 몰락하고도 친일파로 순식간에 갈아탄 박쥐같은 처세술도 주요했지만.



“예. 대감.”


“어서 가마를 대령하라!!!! 경희궁으로 갈 것이야!”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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