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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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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연재수 :
50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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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2,594

작성
20.08.17 09:06
조회
3,1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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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
글자
10쪽

11화 왕태자 이혁(5)

DUMMY

경희궁에 도착한 이완용은 똥 씹은 표정을 하며 자리에 앉아있었다.


그는 결코 경거망동하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기분이 좋지도 않았다.


바로 집을 나섰는데도 그보다 먼저 와있는 사람이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도대체 친일파 놈들은 왜 여기 와 있는 것인가?

왕태자가 민비의 원수를 용서했을 리도 없고...




경희궁의 회의실에는 친러파와 친일파가 정확히 반으로 양쪽으로 나뉘어 앉아있었다.


총리대신 김홍집을 비롯해서 기라성 같은 대신들이 한 자리에 모여 있는 것이다.


재미있는 점은 을미사변으로 내각이 물갈이 되었는데, 을미사변 전의 대신들과 을미사변 후의 대신들이 한자리에 있다는 정도다.


그리고 그들은 당연히 사이가 좋을 수 없었다.



“허허... 거참! 이게 무슨 일인지 모르겠군. 쪽바리와 친한 것들하고는 겸상도 안하는데 말이오.”


“그 말이 맞소. 도대체 왕태자 전하는 무슨 생각인지.... 쯧쯧.”


“뭣이? 지금 말다했소?”


“아니, 다 못했소. 내 말이 틀렸소? 하긴... 천한 일본 낭인들과 일을 도모하는 자들과 내 무슨 말을 하겠소?”


“으....! 이런 무뢰배가!”



드르륵-



그들이 괜히 헛기침을 하며 시비를 걸고 있을 그때, 회의실의 문이 열리고 이혁이 들어왔다.


그는 결코 위엄이 있어 보이는 외모는 아니었지만 의외로 좌중에 있는 대신들은 순간적으로 압도당했다.



특히 이완용은 마른 침을 꿀꺽 삼키며 긴장했다.


그가 어떤 관직을 가지는 지는 모두 이혁에게 달려 있는 것이다.


찰나의 순간 그는 이혁과 눈이 마주쳤는데, 왕태자가 그를 보며 미소 짓는 것 같았다.


헤헤...


그래서 이완용도 바보처럼 웃었다.

왕태자에게 좋은 인상을 준 게 분명하다고 안심하며...


‘웃기는 뭘 웃어? 멍청한 놈. 너는 이제 뒤졌다.’


반면에 이혁이 웃은 이유는 간단했다.


패줄 놈들이 하나도 아니고 여럿이니 얼마나 신나는 일인가?


그것도 을사오적 이완용까지.



“자! 그럼 첫 번째 어전회의를 시작합시다.”


자신감 넘치는 그의 어조에 대부분의 대신들이 주춤하며 침묵하고 있을 때 친러파가 치고나왔다.



“오셨습니까? 왕태자 전하. 대리청정을 감축 드립니다. 이제 조선도 날개를 달겠군요. 그런데... 친일파 놈들은 왜 부르셨는지 이해가 안갑니다. 어서 쫓아내시지요.”


친러파 안경수는 반색하며 이혁을 반겼다. 그의 생각대로라면 왕태자는 민비의 원수인 친일파를 경원할 것이다.


어느 아들이 어미를 죽인 원수와 겸상하겠는가? 관직도 친러파가 독점해야 정상이다.


‘아차, 우리가 늦었구나.’


뒤늦게 김홍집이 탄식했지만 이미 공은 저쪽으로 넘어갔다. 그는 친러파가 실수하기를 기다릴 수밖에 없었다.


아무래도 먼저 왕태자와 인사하는 쪽이 좋은 인상을 주지 않겠는가?


그나마 왕태자와 사적으로 만났으니 다행이라는 생각을 하지만... 과연 그게 좋은 인상을 주었나? 하면 그것도 아니다.



‘제길... 역시 러시아 놈들과 친하게 지내는 놈들이라 눈치가 빠르다니까. 러시아 말도 잘 못하면서 눈치로 다 알아듣는 놈들이니...’


김홍집은 본인답지 않은 실수를 했다고 생각하며 분위기를 살피기로 했다.



반면에 안경수는 깜찍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왕태자가 대리청정을 한다면 친러파가 정권을 잡기 좋을 것이다... 그 뒤에는 마음대로 조선의 강산을 열강에 팔아치우고 뇌물을 받아야한다. 흐흐’


안경수 입장에서는 이런 마음을 이혁이 모르길 바랐을 것이다.


문제는... 이혁이 아관파천 이후에 친러파가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알고 있다는 것이다.


‘광산이면 광산, 철도면 철도. 모두 열강에 팔아먹은 놈들... 특히 안경수는 여러 음모를 꾸미다가 사형당한 쓰레기 같은 놈이지... 내 비위를 맞추려고 안달이 났구나. 이런 놈에 비하면 김홍집은 양반이지.’



안경수에 대한 정보를 떠올리며 이혁은 좌중을 향해 미소 지었다.



“앉으시오. 안경수 대감. 이렇게 와주셔서 감사하오. 바로 안건으로 넘어가도록 하지요. 첫 번째 안건은... 친일파와 친러파의 탕평책입니다.”



이혁은 누구의 속셈에도 휘둘릴 생각이 없었다.


왕의 권력이 가장 강해지는 때는 신권이 균형을 이룰 때이다.


조선 말기의 정치가 혼란스럽고 답이 없었던 건 무능한 왕이 한쪽 계파에 휘둘렸기 때문이다.


하지만 탕평책이 쉬운 것은 아니다. 양쪽 계파 모두 만족하지 못하니까.


당연히 불협화음이 터져 나왔다.


시작은 친러파였다.


그들은 정권을 잡을 욕심이 앞서있었는데 이혁의 결정을 듣고 화가 났다.



“하지만 왕태자 전하! 저들은 중전마마를 시해한 역적입니다. 어찌 역적과 정사를 함께 할 수 있겠습니까? 이는 왕실의 법도에 맞지 않는 일이옵니다.”


“맞습니다. 왕태자 전하!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통촉하여 주시옵소서!”


친러파들은 당장에 자결이라도 할 것처럼 분위기를 잡고 목소리를 높였다.


만약에 의자에 앉아있지 않았다면 머리라도 마루에 찍었을 것이다.


이혁은 짜증을 내며 친일파 쪽을 살폈는데, 생각보다 이쪽은 조용했다.


아무래도 지은 죄가 있는 친일파는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을 것이다.


그리고 바로 이게 이혁이 친일파를 포함한 내각을 꾸릴 생각을 한 이유다.


결코 친일파가 예뻐서 기회를 주는 것이 아니라, 죄 지은 놈들은 구슬려서 써먹기 편하기 때문이다.


아무래도 죄 지은 놈들은 비빌 구석이 적지 않겠는가? 그렇다면 그의 말 빨도 잘 먹힌다.



게다가 김홍집을 따로 불러서 설득(???)한 보람도 있어서 친일파는 당분간 조용할 것이다.



흠칫!


김홍집은 이혁이 자신을 쳐다보자 반사적으로 목소리를 높였다.


괜히 그 눈빛을 무시했다가 어떤 고초를 또 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허! 감히 왕태자 전하가 말씀하시는데 관직도 없는 자가 토를 다는 것이오? 내 이래서 당신들과는 상종하지 않았소. 어디 말이 통해야 대화를 하지.”


“뭣이! 총리대신 대감! 말이 너무 심한 것 아닙니까?”


그 말에 성질이 급한 안경수가 면박을 주었지만, 김홍집은 대꾸조차 하지 않았다.


마치 너 같은 잡배가 나와 얘기를 나눌 주제가 되냐? 는 태도에 안경수는 열불이 났다.


‘도대체 상황이 왜 이렇게 된 것인가? 중전을 시해한 친일파와 왕태자가 붙어먹다니.’


사실 이혁은 특별히 친일파와 붙어먹은 것은 아니고 두 계파를 견제시킬 생각이었지만 그는 알지 못했다.


그래서 분기를 어찌하지 못해 속앓이를 했던 것이다.


그때, 잠자코 지켜보던 이혁이 나섰다.


“다들 서찰은 다 받으셨을 걸로 믿소. 나는 대신들이 도착하는 순서대로 관직을 주겠다고 약속했습니다. 기억하시오?”


“물론입니다. 왕태자 전하.”


제일 먼저 와있었던 김홍집이 억지로 입 꼬리를 끌어내리며 대답했고 몇몇 대신들은 심기가 불편해보였지만 침묵했다.



“그래서 도착한 순서대로 관직이 주어질 예정이오. 먼저 총리대신 김홍집, 중추원 의장 어윤중, 농상공부대신 김가진, 외부대신 김윤식, 학부대신 이완용, 군부대신 안경수, 내부대신 이윤용. 법부대신 이호준. 모두 축하드리오.”


이혁의 말을 듣고 나서 여러 대신들은 머리를 굴리며 어느 계파가 이득인지 따지려고 했다.


하지만 아무리 따져 봐도 자기 계파가 손해는 아니라는 결론에 도달했다.



원래 내각을 독점하고 있던 친일파는 자리를 보전할 수 있어서 좋고, 좌천당했던 친러파는 복권된 셈이니...


물론 여기 없는 자들이 권력에서 배제당하겠지만 그게 이들과 무슨 상관인가?



“이의 있는 자는 지금 말하도록 하시오. 나중에 딴말하지 말고.”


“다른 생각이 있을 리 있겠습니까? 여기 모인 대신들은 모두 왕태자 전하의 현명한 판단에 찬동하옵니다. 과연 왕태자 전하는 소문대로 영민하시군요. 대조선의 미래가 밝사옵니다.”



이혁이 눈을 가로로 좁히며 의견을 묻자, 잠자코 있던 이완용이 이혁에게 금칠을 해주었다.


그의 생각에 이번 인사는 친러파에게 이득이었다.


그리고 보아하니, 군부대신 안경수가 또 쓸데없는 말로 시비를 걸게 분명해 보였던 것이다.


괜히 대리청정의 심기를 거슬러서 친러파가 좌천되는 날에는 그만한 손해가 없다.


그래서 안경수가 말하기 전에 이혁을 칭찬하며 점수를 딸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렇소? 김홍집 대감의 생각은 어떠합니까?”


“소신도 전혀 이의가 없사옵니다. 어찌 선비가 관직에 연연하겠사옵니까? 오직 대조선의 앞날을 걱정할 뿐이옵니다.”


사실 김홍집은 이혁이 을미사변을 언급하지 않는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다.


게다가 자기 자리도 보전했으니 기뻐서 춤이라도 추고 싶었다.



“대감의 생각이 그렇다면 이번 인사는 문제가 없겠습니다. 오늘 상참(어전회의)은 여기까지 하도록 하지요. 다들 정무에 힘써주시오.”


이혁이 김홍집을 다시 총리대신으로 낙점한 것은 별다른 이유가 없다.


그나마 그가 여기 있는 놈들 중에서는 괜찮은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혁은 대신들 앞에서 총리대신 김홍집을 치켜세워주었다.



“자, 모두 해산하시오. 아... 학부대신 이완용은 잠깐 남으시오.”


“알겠사옵니다. 왕태자 전하.”



김홍집 등이 인사를 하고 나가자, 회의실은 언제 북적거렸냐는 듯이 휑해졌다.


그리고 이완용은 이번 기회에 제대로 왕태자의 호감을 사야겠다는 생각에 온갖 감언이설을 준비하고 있었다.


대리청정이라고 해도 고작 21살의 왕태자가 아닌가?


그의 교활한 혓바닥으로 구슬리는 것은 어렵지 않다.



드르륵-


그때, 문을 열고 이 내관에게 뭐라고 속삭인 이혁은 문을 닫고 이완용에게 다가왔다.



“왕태자 전하. 무슨 일로 소신을 남으라고 하셨는지...? 허허. 그게 무엇이든 소신은 백골난망이옵니다. 앞으로도 분골쇄신하여 왕태자 전하를 위해 충성을 다하겠습니다.



이완용은 얼굴에 미소를 달고 달콤한 꿀을 바른 언어로 이혁을 미혹했다.


그가 생각하기에 깊은 암자의 승려처럼 인자한 표정을 짓고 있는 이혁의 기분은 좋아보였다.



이혁이 이완용의 뺨을 후려치기 전까지는 말이다.


쫙!


“야 이 개새끼야. 일단 좀 맞자.”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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