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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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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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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2,5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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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2,594

작성
20.08.15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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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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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5
글자
9쪽

9화 왕태자 이혁(3)

DUMMY

“...지금 뭐라고 하였느냐? 짐이 잘못 들은 것이겠지? 네가 그렇게 말했을 리 없다. 어릴 적부터 착하고 여린 성격의 네가 아니었느냐? 어서 대답해다오.”


“......”


고종은 바들바들 떨리는 무릎을 누르며 폐부에서 쥐어짜듯이 말했다.


노인처럼 숨이 턱 끝까지 차올라서 갑갑하다.


그는 빙의한 이혁을 한번밖에 만나지 못했으니, 이런 이혁의 변화가 이해되지 않았다.


물론 고종도 조선의 역사에서 아버지와 아들의 골육상쟁이 수없이 벌어졌다는 걸 알고 있다.


당장 조선을 세운 태조 이성계와 태종 이방원만 해도 그렇지 않은가?


물론 유약한 이혁이 이런 말을 할 줄은 몰랐지만...



“아바마마, 작금의 조선이 위기에 쳐하고 국모가 시해당한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나는 잘 모르겠다. 짐은 최선을 다했어.”


고종은 손아귀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움켜쥐며 분노를 삼켰다.


‘아비의 옥좌를 빼앗으려는 자식이라니? 패륜이 아닌가?’


당장이라도 화산처럼 폭발할 것 같은 감정을 누르며 고종이 대화를 이어나갔다.



“내가... 아니, 짐이 그 이유라는 말이냐?”


“황공하오나 그러하옵니다. 대원군 할아버님과 어마마마의 처가가 권력다툼을 했기 때문에 외세가 개입할 여지를 주었습니다. 그때 아바마마는 무얼 하셨습니까?”


“네 이놈!... 짐은... 짐은 최선을 다했다!”


고종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분노를 표출했다. 아직 죽지 않았다는 듯이.


아직 나의 시대라는 듯이...


하지만 이혁의 눈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무능한 군주를 조선의 권력에서 배제하려는 그의 생각이 정답이라고 믿었기에.


앞으로 고종이 얼마나 많은 삽질을 하는가? 일제한테 휘둘리고, 열강들에게 여러 이권을 퍼주어 조선을 망하게 했다.


‘그는 결코 좋은 군주가 아니야. 지금이라도 바로잡으려면 내가 나서야 한다.’


그래서 고종의 열변에도 이혁의 눈동자는 흔들리지 않았다.


“최선을 다했다는 말로는 변명이 되지 않습니다. 아바마마.”


고종은 얼마 전에 사라진 의금부를 부르고 싶은 충동을 억눌렀다.

여러 개혁을 시행한 결과, 왕은 궁궐에 유폐되어있을 정도로 힘을 잃어버렸다.


대표적인 왕의 친위세력인 의금부는 갑오개혁 때 법무아문으로 바뀌었고 지금은 법부로 바뀌었다.


쉽게 말해서 더 이상 왕이 제왕적 권력을 휘두를 수 없게 되었다는 소리다.


말 그대로 명목상의 왕일뿐. 자신의 앞에서 반역을 입에 담는 왕태자를 어찌할 수 없다는 사실에 그는 절망했다.


꿀꺽.


목젖으로 마른 침을 삼켜도 갈증이 해소되지 않았고 머릿속은 늑대가 울부짖고 있는 것처럼 시끄러웠다.


더 이상 탈출구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어찌하라는 말이냐? 왕태자.”


현실을 직시하자 고종은 허탈해졌다.


이제 그에게는 왕태자의 제안을 들어보는 것밖에 대안이 없었다. 당장에 그는 친일파에 의해 연금된 상태가 아닌가?


그의 감정변화 느낀 이혁의 입 꼬리가 위로 올라갔다.


“정말로 왕위를 넘겨달라는 말은 아닙니다. 그저 아바마마의 안위가 위태로우니 소자가 정무를 대신하겠다는 뜻이었으니 노하지 마십시오.”


“끄응... 정확히 어찌하라는 소리냐? 아까도 말했다시피 나는 아무런 힘이 없다. 그건 네가 더 잘 알지 않느냐?”


조금 전까지 화를 내었던 것이 무색하게 고종의 말투가 부드러워졌다.


사실 그는 거의 포기상태였던 것이다.


누구라도 괴한이 침입해 중전이 살해당하는 현실에 두려움을 느끼지 않겠는가?


고종은 다음 차례는 자신이라고 생각했다.


‘어차피 나는 할 수 있는 게 없다. 왕태자가 무엇을 원하든 줘버리면 그만이지...’


“아바마마, 소자가 대리청정을 할 수 있도록 힘을 실어주십시오.”


“대리청정? 짐이 아직 정정한데 무슨 말이냐?”


“을미사변으로 더 이상 궁궐이 안폐하지 않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비가 많이 올 때는 잠시 피해가라는 말도 있으니, 폐하께서는 뒤로 물러나시어 기회를 기다리시는 게 좋겠습니다.”


“기회를 기다린다... 좋은 말이지만 그다지 내키지 않는구나. 세상 사람들이 짐을 겁쟁이라고 놀리지 않겠는가? 낭인들이 무서워서 아들에게 옥좌를 맡겼다고.”


겉으로는 반대하면서도 고종의 얼굴은 화색이 돌았고 말투도 봄바람처럼 나긋나긋해졌다.


지금의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다는 것이 큰 메리트였기 때문이다.



“지금 이 자리에서 약식으로 대리청정을 선포하시고 대원군의 사저로 가십시오. 아직도 할아버님을 따르는 자들이 많으니 신변의 안전을 책임질 수 있을 것입니다.”


“...잘할 수 있겠느냐?”


돌연 고종이 눈 사이를 좁히며 물었다. 세상 어느 왕도 권력욕이 없는 사람은 없다.


고종도 역시 마찬가지였고 그래서 혹시나 아들이 뒤통수치지 않을까 걱정이 생겼다.



“물론입니다. 제가 아바마마를 대신해 외세와 싸우겠습니다. 폐하가 돌아오시는 날, 경복궁에는 수천의 군사들과 충성스러운 신하들이 마중 나와 있을 것입니다.”


“수천의 군사라...”


고종의 눈이 흐리멍덩하게 풀어졌다. 마땅히 그가 가져야할 권력을 되찾을 수 있다는 욕망에 취해버린다.


더 이상 그는 이성적인 판단이 불가능했다.


현실에서 도피하고 싶다는 마음과 권력에 대한 욕심으로 이성이 마비되었기 때문이다.


“좋다. 내 너를 대리청정으로 인정하고 조서를 쓰겠다. 내일 아침이면 전국 방방곳곳에 벽보가 붙을 것이다. 왕태자 이혁이 대리청정을 시작했다고.”


드디어 고종의 입에서 원하는 말이 나왔을 때, 이혁은 기뻐하는 대신 고개를 깊이 숙였다.


하지만 고개 숙인 이혁의 눈이 순간적으로 붉게 빛난 것 같다고 느낀 것은 착각이 아니다.


그의 안에 있는 천마가 기쁨의 춤을 추고 있었기에.


-으하하핫! 정말 너는 맘에 든다니까? 내가 왕이 된다고? 으하하핫!! 역시 똑똑한 녀석이구나! 으하하하. 소림의 땡중들이 내가 왕이 된 걸 알면 얼마나 배가 아플까?


무림에서 절대 권력을 누렸던 천마도 세속의 권력을 가졌던 적은 없었다. 그래서 그는 자기 일처럼 기뻐했던 것이다.


씨익-


머릿속에서 울리는 천마의 호탕한 웃음소리를 들으며 이혁은 고개를 들었다.


“감읍하옵니다. 폐하.”


그날, 내시들이 동석한 자리에서 왕태자 이혁은 고종에서 대리청정을 명받았다.


이 소문이 은밀히 궁궐을 벗어나서 친일파 대신들에게 들어갔음은 당연하다.



**



“허허...한방 제대로 먹었습니다. 왕태자 전하.”


“무슨 말인지 도저히 모르겠군요. 총리대신.”


호로록...


이혁은 아침 댓바람부터 옷자락을 휘날리며 경희궁을 찾아온 김홍집을 상대하고 있었다.


얼굴을 울그락 불그락하며 거친 호흡을 가다듬는 김홍집은 누가 봐도 화가 나 보였다.


그는 왕태자가 원하는 게 무엇인지 궁리하다가 밤을 꼴딱 새어버렸기에, 눈 밑이 시커멓게 변했다.



“그렇게 모른척하셔도 다 알고 왔습니다. 폐하께서 대리청정을 명하셨다고요?”


“그렇소. 아직 벽보도 붙기 전 이건데 어찌 아시었소? 과연 대감의 권력이 하늘을 찌릅니다 그려.”


호로록.


이혁은 천천히 차를 한 모금 마시며 비꼬았다. 그런 그의 태도에 김홍집은 좌불안석이었다.


두근. 두근.


심장소리가 커지고 안 그래도 쪽 째진 그의 눈이 더 작아졌다.


“도대체 어떻게 폐하를 설득하신 겁니까? 어제까지만 해도 전혀 그런 기색이 없으셨는데요. 그리고 폐하는 무슨 생각으로...”


“그만. 더 이상 말하면 반역죄로 다스리겠소.”


움찔!


분기에 차서 말을 이어가던 김홍집은 이혁의 말에 흐름이 끊겼다.


그리고 얼굴이 새파래져서 자신의 잘못을 깨달았다.


아무리 왕이 없는 자리라고 해도, 왕태자 앞에서 왕을 욕보여서는 안 된다.



“크흠... 폐하를 능멸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왕태자 전하.”


“세상 참 좋아진 것 같습니다. 총리대신. 조선의 사직을 욕보이고도 목이 달려있다니 말이오.”


“크흠!”


이혁의 말에 김홍집은 무의식적으로 목 주변을 쓰다듬었다.

금방이라도 목이 달아날 것 같은 두려움이 들었던 것이다.


반면 이혁은 독사 같은 눈으로 김홍집의 하얀 목덜미를 노려봤다.



‘원래라면 저 목은 잘리지 않고 돌팔매에 맞아 죽지만... 그의 행동에 따라 이번에는 목이 잘릴지도 모를 일이지.’



“그래... 피차 서로 원하는 것을 알고 있으니 더 이상 말을 늘이지는 마시오.”


“... 말씀하시지오. 왕태자 전하. 어차피 저에게는 선택지가 없지 않습니까?”


김홍집은 혀를 차며 신세를 한탄했다. 그가 예상한 그림은 이게 아니었다.


민비를 처단한 후에 두려움에 가득 찬 대신들을 윽박질러 친일 내각을 안정시켰어야 하는데... 자리를 유지하기도 어려워지다니!


막말로 이혁이 도와주지 않는다면 기세가 오른 민중에게 돌에 맞아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김홍집이 똥 마린 개처럼 불안해하는 걸 보면서 이혁은 입 꼬리를 올렸다.


그는 이번 기회를 이용해서 얻어낼 수 있는 것은 모두 얻어낼 생각이었다.


“물론이오. 그러니 똑똑히 귀를 열고 들으시오. 이게 그대의 구명줄이 될 터이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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