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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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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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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
20.08.2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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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글자
12쪽

16화 천마탈(4)

DUMMY

사실 이혁이 문한규의 속셈을 알고 있었다면, 이런 고민 따위는 안했을 것이다.


일본의 요청을 받아들여 멀쩡한 제방을 무너뜨리려는 문한규를 가차 없이 처단했겠지.


제방이 무너진다면 얼마나 많은 사람이 피해를 입고 또 죽었겠는가?


하지만 이혁은 지금 그 사실을 몰랐기 때문에 아들의 죄로 아비를 처벌한다는 딜레마를 안고 있었다.



“...그렇구나. 네 놈의 죄를 네가 알렸다! 영산강 제방의 보수공사를 맡은 감역이 근무지를 이탈하였으니 중벌을 받아야 마땅할 터!”


이혁은 복잡한 마음은 접어두고 문한규를 질타했다. 눈동자는 서릿발처럼 차가워졌고 목소리에서는 왕의 위엄이 느껴졌다.



그 기세에 문한규는 어안이 벙벙해질 지경이었다.


그가 생전에 왕태자를 만날 일이 뭐가 있었겠는가? 심지어 나주에는 왕태자의 대리청정 과정에 있었던 일도 알려지지 않았다.


이혁이 너무 빠르게 움직인 탓이다.



그래서 그는 말 그대로 자다가 코 베인 기분이었다.


오카모토에게는 청탁을 들어준다고 했지만, 아직 제방을 무너뜨리는 일은 시작도 안했다.


제방에 서출 놈을 보낼지 고민하고 있는데, 이혁에게 불려온 탓이다.


억울한 마음에 문한규의 눈자위가 붉어진다.



“그 점은 사죄드리옵니다. 하오나 날마다 비가 굵어지고 영산강의 수위가 높아지고 있는바, 소신의 병약한 몸으로는 현장에서 버티기가 힘들었습니다. 대신에 소신의 아들놈을 보내기로 하였으니 걱정 마십시오.”


아이를 달래듯이 교활한 어조로 말하는 문한규를 보면서 이혁은 탐탁지 않았다.


그때, 그의 기분을 눈치 챈 천마가 말을 걸었다.


-또 무슨 일이냐? 뭔가 기분이 좋지 않은 것 같구나. 혹시 네 앞에 무릎 꿇고 있는 종자가 또 나쁜 놈인 것이냐?


천마는 그동안 이혁의 행보를 보고 이혁이 뭔가 숨겨진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눈치 챘다.


왜냐하면 이혁은 처음 사람을 만났는데도 그 사람이 어떤 성격을 가지고 있는지 알고 있었던 것이다.


오랫동안 강호에서 칼 밥을 먹었던 천마가 그 사실을 눈치 채지 못했을 리 만무하다.



‘...지금 제 앞에 앉아있는 자는 좋은 성품의 관리는 아닙니다. 오늘도 그는 업무를 태만히 해 나주의 백성들을 위태롭게 했습니다. 하지만 문제는 그것이 아닙니다.’


이혁은 망설이다가 천마의 질문에 답했다.


그는 문한규와 그의 가문을 어찌해야할지 고민이 깊었기 때문에 조언을 구하고 싶었다.


-그럼 뭐가 문제이냐? 보나마나 네 녀석의 여린 심성이 만들어낸 문제겠지만 내 들어주마. 흐흐


천마는 간만에 이혁이 그를 대우하는 기분에 입이 째지 게 웃었다.


솔직히 요즘 들어 이혁이 슬슬 맞먹으려고 드는 게 영 불만이었다.


‘사실 어르신 저는 미래를 보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저 문한규의 아들이 이 조선에 엄청난 불행을 가져온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으니, 이를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문한규의 아들 문종구.


문익점의 18대손인 그는 붓 속에 목화씨를 숨겨온 문익점과는 전혀 다른 사람이었다.


정식 학력도 없을 정도로 무식한 것은 둘째 치고, 한일 병합 조약이 체결되자마자 군산부 참사로 친일 행적을 보였다.


그뿐이랴? 넓은 토지를 보유하고 여러 친일 기업들을 운영하며 백성의 고혈을 쥐어짰고 그 공으로 일제 말기에 중추원 참의에 임명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처벌을 받았을까?


1949년 반민족행위처벌법에 의해 반민특위가 발족되었지만, 도리어 반민특위가 습격을 받으며 기소유예를 받았다.


안타깝지만 그게 역사인 것이다.



독립군의 후손은 유공자 연금으로 살아가고, 친일파의 후손은 2020년에도 부자로 살아가는 현실.



이혁은 그 미래를 바꾸기 위해서 싸우고 있었기에... 눈 앞에 있는 문한규와 문종구를 가만히 둘 수는 없었다.





-흐음. 내 예상은 하고 있었지만 정말 신기한 능력을 가지고 있구나. 무림에도 가끔씩 미래를 본다는 사기꾼들이 있었지...


‘어르신!’


-크흠! 그래. 너는 거짓을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안다. 만약 내가 너와 같은 상황이었다면 망설이지 않을 것이다. 너에게는 목표가 있지 않느냐? 나는 기억한다. 네가 친일파 모두를 죽이겠다는 약조를 했던 것을.


‘천마 어르신 말씀이 맞습니다. 처음으로 천마탈을 쓰는 날, 저는 맹세했습니다. 조선의 미래를 바꾸기 위해 친일파 전부를 죽이겠다고요.’


이혁은 손에서 피가 날 정도로 주먹을 꽉 쥐었다.


대리청정이 되었다고 벌써 편해졌던 걸지도 모른다. 분명 그는 수라의 길을 걷겠다고 맹세했는데.


-그럼 너 자신을 믿고 걸어가거라. 한 나라의 운명을 바꾸는 대업이 어디 쉬운 것이겠느냐?


천마는 조금 전과 달리 진지한 어조로 이혁에게 힘을 실어주었다.


그는 무림의 천하제일인 이었지만 중원의 황제가 될 수 없었다.


황제를 죽이는 것은 쉬운 일이지만 중원을 차지할 수는 없었다.


무력으로는 천마신교의 위상을 드높이는 것이 전부였기에...


하지만 그는 믿었다. 신념과 용기를 가진 이혁이 조선을 구할 수 있다고.



“폐하를 대리하는 섭정, 나 왕태자 이혁은 명한다. 관찰사는 들어라!”


마침내 이혁의 위엄 있는 음성이 빗소리를 뚫고 들려왔다.


그의 옆에 시립하고 있던 관찰사와 경무관은 깜짝 놀라 이혁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사실 관찰사는 이때까지 적지 않은 고관을 만났지만 이런 기분은 처음이었다.



‘어쨌든 왕태자는 홀로 나주부를 찾았다. 그런데 어찌 이렇게 당당할 수 있는 것일까? 조선의 미래는 밝구나. 내 힘이 닿는 데 까지 전하를 도와야겠다.’


그는 그다지 충신이라고 할 사람은 아니었지만, 지금 이 순간 감동받았다.


그리고 갑자기 부끄러워졌다.


그는 나주부의 관찰사 자리에 안주하고 있었던 것이다. 지방의 유지와 결탁하며.



“말씀하시옵소서. 왕태자 전하! 소신 신명을 다해, 전하의 명령을 수행하겠나이다.”


관찰사가 혼자 감격하고 있을 때, 경무관은 벌써 분위기에 따라 왕태자에게 충성을 맹세하고 있었다.


관찰사는 자신보다 직급이 낮은 경무관에게 눈총을 쏘았지만 늦게라도 그를 따라하는 게 전부였다.


“소신도 전하의 말씀에 따르겠사옵니다. 말씀하시지요.”



이혁이 앉아있는 의자는 별로 크지 않았다.


그저 관청에 있는 평범한 의자에 불과했다. 하지만 두 사람의 관료는 이혁이 옥좌에 앉아있는 것 같은 착각에 휩싸였다.


그만큼 그들은 심리적으로 위축되어 있었다.



“감역 문한규는 영산강 제방공사를 태만히 하여 많은 백성을 위험에 빠뜨렸다. 당장 문한규를 옥에 가두어 죄상을 낱낱이 밝혀라!”


문한규를 징계하며, 이혁은 그가 제방 공사를 태만하게 감독한 것이 누군가의 사주에 의한 것이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다.


그래서 그의 배후를 캐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바보가 아니라면 제방이 무너지면 자신이 어찌될지 알 텐데... 자기 마음대로 제방 공사를 태만히 했을 리 없다.’


만약에 그 배후가 일본이라면... 대가를 치러야 할 것이다.



“...!!!”


그 자리에 있던 세 명의 관리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 왕태자의 결단은 모두의 예상 밖 이였다.


기껏해야 감봉이나 좌천으로 끝날 것으로 생각했는데...



“그리고 그의 가족도 추포하여 심문하라. 혹시 이 일에 연루되어있을지 모른다. 특히 문한규의 아들, 문종구는 절대로 놓쳐서는 안 된다. 어서 움직여라! 나는 영산강의 제방으로 갈 것이야!”



이런 결과는 문한규가 제방공사를 지지부진하게 하면서 자신의 의도를 노출했기 때문이다.


공사를 열심히 하는 척하다가 갑자기 제방을 무너뜨렸다면, 이혁이 개입할 여지도 없이 나주는 물바다가 되었을 것이다.

또한 이혁은 문한규가 친일파 문종구의 아버지라는 사실도 알 수 없었을 것이다. 공사를 잘하고 있는 책임자를 문책할 일이 뭐가 있겠는가?



하긴 문한규가 일본 공사관에 줄을 대고, 오카모토의 돈을 받았을 때부터 그의 운명은 정해졌다.


제방이 무너진 후에 공사 담당자가 어찌 살 수 있겠는가?




**




한 소년이 나주의 북쪽에 있는 금성산을 오르고 있었다.


아직 약관도 되지 않은 듯 동안의 얼굴이었지만 그의 손에는 조총이 들려있었다.


그는 허름한 옷차림을 하고 있었지만, 누구도 그의 신분을 의심하지 않았다.


얼굴에는 귀티가 흐르고 눈에는 은근한 살기가 흐르고 있었기 때문이다.


한참을 산을 오르던 남자는 갑자기 숨을 죽이고 무릎을 굽혔다.


그리고 조총을 들어 무언가를 조준했다.



그것은 산군이었다.


거대한 호랑이.


눈빛만으로도 사람을 죽일 수 있을 것 같은 이 산의 주인은 여유롭게 걸을 걷다가, 뭔가 이상한 기척을 느낀 듯 주위를 살폈다.



꿀꺽.


소년은 최소한의 움직임으로 총구를 청소하고, 심지에 불을 붙였다.



파지지직-


하지만 불꽃이 심지를 타는 냄새까지는 어쩔 수 없었다.


호랑이는 코를 킁킁거리며 냄새를 맡고 그가 있는 곳으로 다가왔다.


그 거리가 점점 짧아진다.


10M


5M


2M


그리고 코앞으로 다가온 호랑이와 소년의 눈이 마주쳤다.



“크와아아아앙!!!”


호랑이가 분노하며 그를 향해 달려왔고 그 울음소리에 주위에 있던 짐승들이 모두 도망갔다.


거대한 호랑이가 손가락만 까딱해도 그는 죽을 것이다.


저 서늘하고 커다란 손톱을 보라! 명장이 심혈을 담아 빚어낸 명검에 못지않다.



“크아아아아!!!!!”


하지만 목숨이 위협받는 상황에서도 소년의 눈빛은 침착했다.


그는 코앞까지 다가온 호랑이를 정확하게 조준하고 방아쇠를 당겼다.


-탕!


그 소리는 별로 크지 않았다. 호랑이의 목소리에 비교할 수도 없을 것이다.


작은 소년을 죽이기 위해서는 침이 질질 흐르는 호랑이의 이빨까지도 필요 없다.


무심코 휘두른 발길질로도 충분할 것이다.


그러나 오늘 호랑이는 운이 없었다.


정확하게 미간에 총알을 맞은 호랑이는 숨소리도 내지 못하고 즉사했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생존에 기뻐하거나? 호랑이를 잡은 것에 흥분해야할 소년은 아무런 감정 표현을 하지 않았다.


챙-


그는 조용히 단도를 꺼내서 호랑이의 껍질을 벗겼을 뿐이다.




**




소년이 집으로 돌아왔을 때, 나주의 집은 풍비박산 나있었다.


집안의 물건들이 사방에 널브러져있었고 가족들은 보이지 않았다.


오직 문종구만이 그를 반겼을 뿐이다.



“형님! 왜 이제 오셨습니까. 지금 큰일이 났습니다. 왕태자란 작자가 온 집안을 풍비박산 내었습니다. 이걸 어쩌면 좋습니까?”


“......”


문한규의 숨겨진 서출, 만식은 곱상한 얼굴로 무표정하게 생각에 잠겼다.


그는 그다지 머리를 쓰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그의 아버지가 싫어했기에.


하지만 아버지 때문에 드러내지 않았을 뿐, 머리는 원래 좋았다.



“왜 말이 없으십니까? 형님! 어떻게든 아버지를 옥에서 빼내야지요.”



오히려 문종구가 몸이 달았다.


그는 운이 좋게 친구들과 밖에서 놀고 있어, 살아날 수 있었지만 다른 가족들은 관청에 잡혀있었다.


그러나 머리가 좋지 않았던 그는 해결방법을 생각할 주제가 못되었기에 만식만 기다리고 있었다.



“그가 어디로 갔느냐?”


차분하게 묻는 만식의 말에 문종구가 대답했다.


“어디로 가긴요? 당연히 관청으로 끌려갔지. 형님. 어서 구해야 합니다. 아버지가 잡혀 있어요.”


아쉽게도 만식이 원하는 대답이 아니었다.


그래서 그는 뱀처럼 살기가 감도는 얼굴로 재차 물었다.



“왕태자가 어디로 갔냐고 물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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