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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티 님의 서재입니다.

천마조선

웹소설 > 작가연재 > 대체역사, 판타지

게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0.08.06 19:09
최근연재일 :
2020.09.18 13: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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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222,594

작성
20.08.14 1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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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3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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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8
글자
11쪽

8화 왕태자 이혁(2)

DUMMY

“왕태자 전하! 총리대신 김홍집 대감 들었사옵니다.”


조내관 대신에 새로 들어온 이 내관이 공손하게 허리를 숙이고 이혁에게 아뢰었다.


-뭐? 총리대신이 일개 왕태자에게 올 이유가 없잖아? 나라의 중전도 쳐 죽이는 놈들인데... 너 무슨 수를 쓴 거냐?


천마는 조금 전까지 화나있었다는 사실도 잊은 채 경악했다.


하긴 그가 이때까지 만난 인간들은 왕과 왕비 빼고는 전부 낮은 지위에 있었으니, 놀라는 것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그는 중원에서 황제는커녕 지방의 관리도 만나 본 적이 없었다.



“별로 대단한 수를 쓴 건 없습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도록 만든 것뿐이죠. 지금 친일파는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역사대로라면 아관파천 이전까지 무리 없이 버티겠지만... 지금은 일본 공사도 사망했고, 유길준과 훈련대 장교들도 생사를 알지 못합니다.”


-흐흐. 그러니까 네놈이 다 이 상황을 만든 것이다? 정말 정파의 말코 놈들 같은 잔꾀이구나. 흥! 본좌는 그런 얄팍한 수는 쓰지 않는다.


“...무식한 게 자랑은 아닙니다.”


-지금 뭐라고 했냐? 너 죽을래?


“크흠. 안으로 들라 하라!”


이혁은 서슬 퍼렇게 말하는 천마를 무시하고 이 내관에게 소리쳤다.



“예-이! 들어가시지요. 대감.”


드르륵-


저벅 저벅 저벅


안으로 들어오는 김홍집을 보며 이혁의 눈이 가라앉았다.


김홍집. 그에 대해서는 여러 말이 있다.


나라의 개화를 위해서 몸을 던진 충신.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간신.


어쨌든 을미사변 이후에 그가 자책하며 자살을 시도했다고 하는 이야기와, 아관파천 이후에 일본으로 도망가자는 권유를 뿌리치고 돌에 맞아 죽었다는 이야기는 유명하다.



“안녕하십니까? 왕태자 전하.”


작은 체구와 고집스러운 눈을 바라보며 이혁은 그를 상대하는 것이 만만치 않겠다고 느꼈다.



“그래. 총리대신. 앉으시오. 그런데 무슨 일이오?”


“그것이...”


거침없이 이혁을 찾아온 그는 의외로 용건을 말하는 것을 망설였다.



‘뭐라고 설명해야 이 왕자가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나를 원망하고 있을 것이다. 민비를 살해한 원흉으로.’


“왕태자 전하, 지금의 조선은 위기에 처해있습니다. 밖으로는 일본과 러시아가 이 나라를 침략하고 있고 조선의 국력은 말라가고 있습니다. 이런 시기에 조선인끼리 싸워서야 되겠습니까?”


“아아. 쓸데없는 사족은 달지 마시오. 내 이미 다 알고 있으니.”


"무슨 말씀이십니까?"


"내 입으로 굳이 말해야 아나?"


이혁의 눈빛은 깊은 바다처럼 차갑게 가라앉아 있었다.

이를 보는 김홍집은 그가 이전과는 무언가 달라졌음을 느꼈다.



‘.....!!! 왕태자가 이런 느낌이었나? 뭔가 이상한데?’


김홍집의 정치적 성향에 대한 논란은 접어두고, 그는 이시대의 엘리트가 맞다.


그래서 그는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을 했다.


첫 번째, 어째서 왕태자는 그의 방문에 놀라지 않는가? 내각의 수장이 찾아왔는데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행동하는 게 이상하다.


두 번째, 그가 찾아온 이유를 알고 있다고? 친일파 내부에서도 아무도 김홍집의 생각을 알지 못하니, 왕태자가 그의 생각을 알 수는 없다.


세 번째, 겨우 약관이 지난 왕태자의 눈빛이나 태도가 듣던 바와 달랐다. 소문에는 왕태자가 허약하고 유한 성격이며 국본의 자질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 그의 눈빛은 그야말로 왕의 그것이다.



“너무 생각이 많소. 대감은.”


“......”


“그래서 이런 사단이 벌어진 것이오. 머릿속으로는 조선의 개화를 위해서 불가피한 일이라고 생각하지만, 가슴은 여리니 어찌 휘둘리지 않겠소? 이번 일도 그래서 이렇게 된 것이오.”


“...무슨 말씀인지 모르겠습니다. 왕태자 전하. 저는 그저 일개 신하에 불가할 뿐입니다.”


“그래요? 그렇다면 내가 묻겠소. 대감은 조선의 신하요? 아니면 일제의 신하요?”


“...조선의 신하이옵니다.”


잠시 침묵하던 김홍집이 입을 열었다. 그렇게 대답하면서도 그는 수치심을 이길 수 없는지, 얼굴이 벌겋게 달아올랐다.


적어도 그는 염치를 아는 사람이었다.


말로는 조선의 신하라고 하면서 그동안 친일 행적을 해왔으니...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이 없었다.



“좋소. 그럼 나는 조선의 국본으로서 일개 신하를 대하듯이 하리다. 이제 말해보시오. 나에게 원하는 것이 무엇입니까?”


이혁은 지금까지 계속해서 몰아붙인 것이 무색하게 한순간에 태세를 전환했다.


김홍집은 조금 얼떨떨한 기분이었지만 긴장을 풀었는데, 그때서야 그는 자신의 등허리가 축축하게 젖었다는 걸 눈치 챘다.


과도하게 긴장한 탓이다.



'왕태자가 변했다. 내가 알던 그 분이 아니야.'


김홍집은 머릿속에서 누군가 종을 쳐대는 것 같은 어지러움을 느꼈다.


'오늘은 득보다 실이 많을 수도 있겠구나.'



“휴- 알겠습니다. 왕태자 전하. 최근에 불미스러운 사건으로 인해 조선이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래서 왕실의 지원이 필요합니다. 유생들을 진정시킬 수 있는 것은 왕실이니까요.”


“흠... 그런데 내가 듣기로는 이미 폐하가 조서를 내렸다고 들었네만? 고작 왕태자인 내가 뭘 할 수 있겠나?”


“......”


모르쇠로 일관했지만 이혁은 김홍집의 의도를 알고 있었다.


조선의 역사를 살펴보면, 수많은 어린 왕이 신하들에게 휘둘리고 정사를 돌보지 못했다.


김홍집은 고종보다 이혁이 다루기가 쉽다고 판단한 것이다.


사실 유길준 사택 참변에서 친일파들이 몰살되지 않았다면, 그가 이렇게 까지 움직일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상황이 안 좋아지면서 김홍집은 표면적인 왕실의 지지가 아닌, 진짜 도움이 필요했다.



“한번만 살려주십시오. 왕태자 전하! 내각은 왕실의 전폭적인 지지가 필요합니다. 중전마마의 유일한 적자인 왕태자 전하가 나서시면 민심을 안정시킬 수 있습니다.”



김홍집이 머리를 바닥에 찍으며 호소했다. 그는 원래 이런 인물이 아니었다.


항상 이성적으로 조선의 왕실을 평가하고 무시했다. 하지만 지금 그는 위기에 쳐해 있었다.



한편 이혁은 그 모습을 역겹다는 듯이 쳐다보며 침묵했다.



-참 세상 사는 거 다 똑같다. 나한테 반란을 일으켰던 부하들도 마지막엔 다 저렇더라고...


‘정말 그렇군요. 말씀대로 상대할 가치는 없겠습니다.’



“자네는 내가 어미를 죽인 악적들을 용서하기를 바라는 것이군. 그것도 만인 앞에서... 조선의 사직이 정말로 위태롭구나. 조선의 총리대신이 조선의 국모를 시해한 악적을 용서하라고 청하다니...”


“왕태자 전하! 그것이 아니옵니다. 저는 오로지 조선의 사직을 위해서 드리는 말씀입니다. 이대로 놔두다가는 일본이 군대를 보낼 수도 있습니다.”


졸지에 반역 죄인을 두둔하는 사람이 되어버린 김홍집은 이마에서 땀을 흘리며 반박했다.



“군대? 일본군은 이미 청일전쟁 때 들어와 있지 않은가? 열강의 간섭으로 요동반도를 공짜로 토해낸 놈들이 뭘 할 수 있다는 말이냐? 러시아에게 도움을 요청하면 그만이다. 아니 그런가? 총리대신.”


“...왕태자 전하. 그것만은 제발...”


괜히 대들다가 본전도 못 찾게 된 김홍집은 연신 머리를 숙이며 사죄했다.


애초에 을미사변이라는 과격한 수단을 써야했을 정도로 일본은 러시아에게 밀리고 있었다.


이런 와중에 왕태자가 러시아에 붙으면 일본은 조선에서 끝이다.



“크흠! 내 자네의 제안에 대해서는 생각해볼 터이니 오늘은 물러가라.”


“왕태자 전하!!”


“허어! 물러가라고 하지 않았나! 내가 부르기 전에는 한발자국도 경희궁에 들이지 말라!”


추상같이 목소리를 높이는 이혁의 목소리에 김홍집은 머리를 들어 그의 눈을 쳐다보았다.


이마에서 피를 흘리며 그는 생각했다.


'꿀꺽...이무기가 용이 되었다. 아아...내가 성급하게 조선의 몰락을 점찍었구나!'




**



김홍집을 돌려보내고 나서, 이혁은 경복궁을 찾았다.


확실하게 김홍집 내각의 양보를 얻어내기 위해서는 이쪽도 그만한 힘을 가져야 한다.


하나를 주고 하나를 얻는 것이 정치 아닌가? 확실하게 지금 상황을 무마할 수 있다면 정계에 화려하게 등장할 수 있다.


“왕태자 전하. 폐하께서는 몸이 좋지 않으니 내일 찾아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럴 리가... 친일파 내각에 의해 유폐당한 거겠지.’


이혁은 그를 만류하는 상선을 바라보며 생각했다. 이렇게 중요한 상황에 한낱 내관의 한마디에 돌아갈 생각은 없다.


그는 지금 고종을 만나서 할 말이 있다.



“닥치고 문이나 열어라.”


“왕태자 전하...”


“어허! 감히 뉘 안전이라고 나서는 것이냐? 네놈이 정녕 죽고 싶은 것이냐?”

“...살려주시옵소서. 왕태자 전하.”


고압적인 태도를 보이던 상선이 옆으로 비켜서자, 이혁은 문 옆에 서있는 두 명의 궁녀에게 눈짓했다.


흠칫!


궁녀들이 눈을 피하면서 어서 문을 열었다. 괜한 화가 미칠까 두려웠기에...




드르륵-


넓은 대전에는 며칠 사이에 늙어버린 고종이 있었다.


그는 이혁이 들어온 것에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곧 무감각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사랑하는 아내를 잃고 무슨 기분이겠는가?


어두운 독방에 갇힌 노인의 그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고종은 한동안 말을 하지 않은 듯, 거칠거칠한 음색으로 이혁을 불렀다.


“왔느냐?”


“아바마마. 소자. 문안인사 드리옵니다.”


이혁은 침중한 안색으로 절을 올렸다.


어쨌든 이혁의 친모가 죽었다. 복수를 했다고 해서 그 기분이 풀리지는 않는다.


답답하고 억울한 기분.


안타까운 조선을 구하고 싶은 감정 말이다.



“그래. 왕태자. 오늘은 무슨 일로 왔는가?”


두 사람은 일부러 명성황후를 언급하지 않았다.


마치 조금이라도 그 얘기를 하면 안 될 것 같은 느낌에...



“오늘은 아바마마께 한 가지 청을 드리기 위해 왔습니다.”


이혁은 우울한 기분을 환기하며 고종과 눈을 마주쳤다.


“그게 무엇이냐? 내 그게 무엇이든 주고 싶으나... 보다시피 나는 아무것도 줄 수 있는 것이 없다.


고종이 낙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아무 것도 할 수 없는 상황에 절망해 있었다.


사실 역사에서는 이후에도 여러 번 기회가 있었지만, 지금의 그는 알지 못했고, 안다한들 달라질 것은 없었다.



“아닙니다. 폐하가 줄 수 있는 게 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왕위를 넘겨주십시오. 아바마마.”


이 작품은 어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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