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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고블린 동굴

남궁 공자가 그걸 어찌 아시오?

웹소설 > 작가연재 > 무협, 퓨전

글고블린 아카데미 작가
작품등록일 :
2023.05.10 10:05
최근연재일 :
2023.07.12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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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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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388,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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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05.23 23: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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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
11쪽

어쩌면...?

DUMMY

남궁호의 외침에 튀어나온 건 웬 노인이었다.

머리와 수염은 하얗게 새었을 연배로 보였는데, 그 위로 때가 잔뜩 타서 회색이 되어 있었다.

옷차림은 또 어떤가.

바람만 불어도 찢어질 것 같은 낡은 옷가지는 원래의 형태가 짐작도 가지 않았다.

심지어 신발은 아예 없고 구멍이 숭숭 뚫린 발싸개만이 겨우 발을 감싸고 있었다.

그러나 남궁호는 그런 비루한 행색의 노인을 경시하지 않았다.


‘허리에 매듭이 9개.... 역시 개방의 방주구나.’


거지 노인의 정체를 바로 알아차린 남궁호.

사실 그가 개방 방주를 찾아낸 건 우연의 결과가 아니었다.


‘강남정파연합 발족식 이벤트에서 개방 방주가 아버지를 따라서 왔다는 식으로 얘기하거든.’


동선을 생각해봤을 때, 개방 방주가 남궁세가에서 출발하는 검왕 일행을 뒤쫓았을 가능성이 높았다.

때문에 남궁호는 아버지의 의심을 피하기 위해 백호안을 사용해서 주변을 탐색했다.

과연 그의 추측은 적중했다.

어떤 방법을 썼는지는 몰라도 생각보다 가까운 거리에 개방 방주가 숨어있었다.

검왕조차 알아차리지 못했으니 그의 은신술이 얼마나 뛰어난지 알 수 있는 대목이었다.


“히히, 검왕이 뱃멀미가 심해 물길을 선호하지 않는다더니 그 소문이 진짜였나 보네? 장강을 타고 가면 금방인 거리를 이렇게 유유자적하게 기어가고 있으니까 말이야!”


“...걸괴께서 제가 강남정파연합으로 가는 건 어떻게 아셨습니까?”


남궁천은 개방 방주를 걸괴라고 불렀다.

정도 무림에는 당대의 강자로 평가받는 일제오왕칠괴가 있었다.

한 명의 무제(武帝).

다섯 명의 왕.

일곱 명의 괴.

그 중 검왕과 걸괴가 이 자리에 모인 것이었다.

걸괴는 검왕의 물음에 도리어 이상하다는 듯 되물었다.


“이 강호에 어찌 내가 모르는 게 있겠냐? 특히 잔치에 관한 것은 무조건이지!”


“...무광선사께서 일러주신 모양이군요.”


잠깐 고민하던 검왕은 어디서 정보가 샜는지 금방 파악해냈다.

이에 걸괴는 몸 이곳저곳을 벅벅 긁으며 말했다.


“히히, 불심이 깊은 양반들은 참 숨기는 게 없어서 좋아~”


검왕의 추측이 맞다고 시인하는 소리였다.

의문이 풀린 검왕은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건 그렇다 쳐도, 제 아들이 수련하는 걸 숨어서 지켜보신 건 불문율에 어긋나지 않습니까?”


무림에는 타인의 수련을 훔쳐보는 걸 금기시 하는 게 암묵적인 규칙이었다.

무인에게 무공은 자산을 넘어 생명과도 직결되는 것이었으니까.

비록 남궁호가 남궁세가의 중급 검법까지만 익혀 흔한 검공을 연습했다고 해도, 걸괴의 행동은 무림의 선배로서 옳은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걸괴는 뻔뻔하게 나왔다.


“엥? 내가 여기서 쉬고 있는데 너희들이 갑자기 와서 멋대로 검을 휘두른 거잖아!”


되도 않는 억지를 부리는 걸괴.

검왕은 그런 노인의 모습이 익숙한지 작게 한숨을 쉬었다.

이렇게 제멋대로인 성격이 무려 개방의 방주를 걸왕이 아닌 걸괴로 만든 것이리라.


“보니까 뭐 별 중요하지도 않은 칼질을 하고 있던데 왜 그렇게 난리야? 나는 그런 날붙이에 대해선 까막눈이라 봐도 몰라~”


남궁호는 배 째라 식으로 나오는 걸괴에게 사과 따위는 받지 못할 걸 알았다.

중원 모든 거지들의 대장이면 철면피신공을 대성했을 테니까.

하지만 살살 긁어내면 다른 걸 얻어낼 순 있었다.


“맞는 말씀이십니다! 아직 제 실력이 미천하여 가문의 비기가 노출될 걱정은 내려놓으셔도 될 것 같습니다, 아버지.”


“음, 음. 그렇지. 난 항상 맞는 말만 하는 편이야~”


“다만 우려되는 것은, 강호에선 때때로 작은 명분이 일을 크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방주님께서 까마득히 어린 후배의 수련을 일방적으로 보셨다는 소문이 나기라도 한다면.... 평소 방주님의 정보력을 경계하던 이들에게 명분을 줄 수도 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엥? 어떤 시부레 것들이 감히 날...!”


펄쩍 뛰며 화를 내려던 걸괴는 순간 멈칫했다.

그 자신을 아니꼽게 보는 자들이 무림에 널렸다는 걸 알고 있었으니까.

괴팍한 성격.

제멋대로 수집한 온갖 정보들.

구걸로 운영되는 개방의 특성 등등.

보기와 다르게 정의로운 활동도 많이 하는 걸괴였지만, 정도 무림에서도 그리 환영을 받지 못했다.


‘요즘 좀 이상한 움직임도 포착되고 있긴 하지.’


최근 들어서 걸괴나 개방의 고수들을 추적하는 정황이 발견됐다.

그렇다 보니 남궁호의 말을 완전히 부정할 수가 없었다.


“헹! 그래서 뭐, 네가 소문이라도 내겠단 거야?”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하지만 아시다시피 이속우원(耳屬于垣)이라는 말처럼 어디에나 귀가 있는 법입니다. 저희도 아무도 없는 줄 알았지만 방주님께서 계셨던 것처럼요.”


“아잇, 어려운 말 쓰지 말고. 하고 싶은 말이 뭐야? 결론만 내놔 봐.”


걸괴가 답답하다는 듯 물었다.

이에 차분히 미소 지으며 답하는 남궁호.


“걸괴 선배님께서 자그마한 가르침이라도 주신다면 그때부턴 제 수련을 몰래 본 게 아니라 도와주신 셈이 되지 않겠습니까?”


남궁호는 일부러 호칭을 걸괴로 바꾸었다.

칠괴 중 하나에 걸맞은 조언을 내놓으란 뜻.

걸괴는 그 저의를 알아듣고 피식 웃었다.


“요, 요 앙큼한 놈 봐라? 이거 사실 남궁이 아니라 제갈 아니야?”


“걸괴 선배, 말씀 가려서 하시지요.”


“아, 농담이야, 농담. 거, 사람 민망하게 만들기는.”


제갈 운운하는 걸괴에게 검왕이 불쾌한 기색을 드러냈다.

하지만 걸괴는 이를 가볍게 넘긴 뒤 남궁호를 보았다.


“남궁 꼬맹이 네놈한테 놀아나는 것 같긴 하지만, 재치가 제법 맘에 들었어! 이 걸괴님께서 친히 한 수 가르쳐주마. 히히!”


팔을 걷어붙이며 남궁호와 검왕에게서 조금 떨어진 걸괴.

그의 손에는 어느새 대나무 몽둥이가 들려 있었다.


‘저건 대체 어디에 보관하고 있었던 거지...?’


남궁호의 의문스러운 표정에도 걸괴는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설명을 시작했다.


“자, 봐라. 아까 삼재검법 했지? 태산압정, 횡소천군, 팔방풍우 이렇게 초식이 세 개잖냐. 그치?”


걸괴의 대나무 몽둥이가 허공을 무심하게 갈랐다.


“무공이라는 게 말이야. 다 만든 사람이 뜻이 있어서 만든 거라는 거지. 예를 들면 타구봉법은 싸가지 없는 새끼들을 개 패듯 때려잡는 봉법이거든. 보면 이렇게 반절구둔(反截狗臀)은....”


걸괴가 타구봉을 횡으로 휘둘렀다.


“횡소천군이랑 겉보기엔 크게 다를 바가 없지? 그렇담 횡소천군과 반절구둔의 차이는 어디에서 오냐 이거야. 물론 속으로 들어갔을 때 내공의 운용이 다르겠지만, 그조차도 더 근본적인 이유로 달라지는 거야.”


남궁호는 걸괴가 무얼 말하고 싶은 것인지 아직 갈피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뭔가 대답은 해야겠다는 생각에 뱉은 말이라는 게....


“어.... 초식명이 다르다...?”


...따위의 소리를 했다.

그가 괜히 영양가 없는 말을 던졌나 후회하고 있는데, 걸괴에게서 의외의 반응이 나왔다.

걸괴는 옳다구니 하며 타구봉으로 바닥을 때렸다.


-팍!


경쾌하게 튕기는 대나무 몽둥이.


“이야~ 이놈 봐라? 정답이다, 꼬맹아! 초식명이라는 건 무공의 창시자가 머리통을 쥐어짜내서 구결을 관통하는 것으로 고르는 거거든. 그러니 초식의 핵심은 초식명이라 이 말씀!”


걸괴는 이야기가 통하는 듯하자 기분이 좋아져 춤추듯 봉을 휘둘렀다.

그러다 갑자기 타구봉을 휙-하고 움직여 남궁호를 가리켰다.


“그런데 네 놈은 초식을 선보인다면서 초식명을 안 외치더라 이거야. 실전도 아니고 수련을 하는 중이라면 무조건 초식명을 입 밖으로 내야 돼!”


“초식명을 말씀이십니까?”


“그래! 무의 길은 곧 심(心)의 길이나 다름이 없지. 말이라는 건 생각과 마음을 구체화한 결과물이라고. 그보다 확실하고 손쉽게 심상을 그리는 방법이 없다 이거야!”


걸괴의 타구봉은 다시 횡베기, 종베기, 찌르기를 반복했다.

그것은 때론 삼재검법 같기도 하고, 타구봉법 같기도 했다.


“몸의 움직임과 내공의 흐름을 합일시키는 가장 쉬운 길이 바로 초식명을 외는 거다. 너희 같은 검객들이 그렇게 바라는 심검이라는 게 결국 이런 거거든. 알아들어? 횡소천군! 반절구둔! 반절구둔! 횡소천군!”


좌우로 왔다 갔다 하는 걸괴의 몽둥이.

하지만 이번엔 삼재검법과 타구봉법의 구분이 명확하게 되었다.

이에 남궁호는 감탄한 듯 고개를 주억거리며 감사를 표했다.


“선배님의 가르침, 마음에 새기겠습니다!”


“그래, 그래. 여기 검왕 녀석보다 싹수가 아주 푸릇푸릇하구나!”


걸괴는 이만 시연을 마쳤다.

그러고 나서 검왕을 타박하기 시작했다.


“검왕이라더니 제 실력 키우는 것만 잘하지, 가르치는 건 영 젬병이구만? 당연히 이런 것부터 알려줘야 하는 거 아니냐?”


“호아는 무공 익히기 시작한 지 이제 한 해도 채 지나지 않았습니다. 심상을 체화하는 개념은 아직 이르지요. 단계에 맞춰서 천천히 가르치려 했습니다. 너무 진도가 빨라도 생각이 복잡해져 심마가 찾아오기 십상이지 않습니까.”


검왕의 대꾸에 걸괴는 눈썹을 꿈틀했다.


“엥? 저놈 저거, 무공을 배운 게 아직 일 년이 안 됐다고? 근데 내 말을 알아먹은 것 같은데?”


걸괴가 검왕과 대화하는 사이, 남궁호는 삼재검법을 펼쳐보고 있었다.


“태산압정! 횡소천군! 팔방풍우!”


기술창에 등록된 무공을 사용하는 방법은 두 가지가 있었다.

머릿속으로 원하는 기술을 사용하겠다고 의식하는 것.

그리고 스킬을 쓰는 것처럼 초식명을 외치는 것.

남궁호는 초식명을 뱉으면서 직접 초식을 펼쳐보니 신기한 감각을 느낄 수 있었다.


‘기술창의 효과가 내 초식 동작을 보조해주고 있어...! 어쩌면 기술창은 심검의 원리로 만들어졌는지도...?’


무공과는 전혀 관련이 없을 것 같던 상태창.

그런데 의외로 무공의 이치와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는 듯했다.


‘아직 확실하지는 않지만, 어쩌면 내가 이곳으로 넘어오게 된 것과 상태창이나 안내 문구 같은 요소들이 초자연적인 현상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람이 기를 써서 날아다니고, 도술도 펼치는 세상이잖아?’


남궁호는 자신이 천재지변 같은 것에 휘말린 게 아니라, 모종의 의도를 품은 누군가의 소행일지도 모르겠단 생각을 했다.


‘빨리 강해져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게 돼야 해. 그게 급선무야. 그리고 무공의 경지가 더 오르면 기술창과 심검처럼 더 많은 단서도 얻을 수 있겠지...!’


왠지 소름이 돋은 남궁호.

그는 지금의 기분을 털어내고자 더욱 열심히 삼재검법의 검초를 흩뿌렸다.

거의 무아지경에 빠진 듯 움직이는 남궁호를 보며 걸괴가 눈을 빛냈다.


“검왕 이놈! 요즘 들어 첫째 아들만 협행을 돌리고 집에 박혀 살기에 꿀단지라도 숨겨놓았나 했더니? 순 아들바보가 돼서 행사들에 출석을 안 했던 거였네!”


이제 알았다는 듯 낄낄 웃는 걸괴.


“그래 뭐, 저런 녀석이라면 키워봄직하겠어. 나도 남궁세가랑 같이 강남연합까지 가도 되냐?”


“...어차피 거부한다고 해도 따라오실 거 아닙니까?”


“그치, 그치! 히히, 이제 눈치도 제법 빨라졌네?”


여전히 뻔뻔한 태도에 검왕은 별 수 없이 걸괴의 동행을 수락했다.


작가의말

철면피는 거지의 필수 덕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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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 전화위복 +7 23.06.14 5,752 125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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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 하지만 지금은 제... +7 23.05.28 7,093 146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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