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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은유 님의 서재입니다.

2와4사이월의 마법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고은유
그림/삽화
표지 by 요나
작품등록일 :
2022.05.11 14:15
최근연재일 :
2024.04.30 22:53
연재수 :
245 회
조회수 :
11,055
추천수 :
683
글자수 :
1,304,125

작성
23.02.23 12:00
조회
42
추천
2
글자
11쪽

156. 한동안 일광욕은 필요 없겠어

DUMMY

폐허가 된 마을.

마을을 이루는 집들은 모조리 무너져 내려있었고 마을에는 그 어떤 인기척도 느껴지지 않았다.


아니.

모두가 떠난 마을에 남아있는 이가 하나 있었다.


이전에는 집이었던 무너진 잔재들 더미 아래에서 누군가 꼬물거리며 모습을 드러냈다.

덩치가 좀 크지만 얼굴은 앳된 것을 보니 어린 아이였다.


쏴아아아아


아이는 쏟아지는 비는 아랑곳 않고 주변을 살피기 시작했다.

곧 바닥에서 구르고 있는 사과를 발견한 아이는 젖은 옷에 슥슥 닦고는 한 입 베어물었다.

사과를 다 먹은 아이는 다시 먹을 것을 찾아 움직였다.


예전 기억에 의지하여 마을 내 가장 부자였던 자의 집이었던 곳을 찾아간 아이는 폐허 더미를 힘겹게 들추기 시작했다.

그러다 문득.

아이는 누군가 그의 뒤에 서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 아이야. 여긴 무슨 일이 있던 것이냐?

- 히익!


아이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저를 부른 사람이 누구인지 확인도 하지 않고 달아났다.


- 잠깐 기다려보거라.


도망치던 아이는 금빛의 기운이 아이를 붙잡아 들어올리는 바람에 멀리 도망치지 못했다.


- 아. 안돼! 오. 오지 마세요.


공중에 붕 떠 아무 것도 못하게 된 아이는 저를 향해 걸어오는 사내를 바라보았다.

갑옷은 여기저기 찢겨 있었고 몸에도 상처 투성이였다.

누더기가 된 망토 한쪽에 박혀있는 문장만큼은 알아볼 수 있었는데 그곳에는 요엠가움에서 가장 신성시되는 솔늑대의 머리가 그려져 있었다.


아이에게는 프로토케의 땅에서 왜 요엠가움의 기사가 돌아다니고 있는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저 여기서 벗어나야 한다는 생각뿐이었다.


- 이야기를 하려는 것 뿐이니 진정 좀 하거라.

- 오. 오지 마!


아이의 감정이 격양됨에 따라 아이 몸 주변으로 미세한 묵색의 기운이 끓듯이 뿜어져 나왔다.


- 허... 그렇게 어린 나이에 히펠을 다루는 게냐.


더 놀라운 것은 그 미약한 묵색의 기운이 사내의 금빛 기운과 닿는 순간 아이를 들어올리고 있던 금빛 기운을 끊어냈다는 것이다.

하지만 겨우 사내의 기운에서 벗어난 아이는 사내에게서 도망치는 것도 잊고 제 몸에서 흘러나오는 묵색의 기운을 떨쳐낸다고 난리였다.


- 제. 제발! 멈춰!

- 흐음...


가슴에 솔늑대 문장을 단 사내는 떨쳐내려고하면 할수록 더욱 더 짙어지는 묵색의 기운에 당황하는 아이에게 뭔가 사정이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너무 이른 시기에 피어난 재능은 종종 당사자를 비극으로 밀어넣기도 한다는 것을 사내는 모르지 않았다.


'이걸 재능이라는 말로 규정할 수 있는지도 의문이지만...'


저 나이에 히펠을 다룰 수 있다는 것도 천 년에 한 번 나올 재능이었지만 지금 아이가 보이는 것은 그게 전부가 아니었다.

아이의 것이 아닌 주변에 녹아있는 기운이 묵색의 히펠이 되어 아이의 몸에 들러붙고 있었다.


이미 제 통제를 벗어나 몸집을 부풀리는 검은 기운을 본 아이의 눈이 절망으로 물들었다.


- 어서 도. 도망치세요!


눈에 어리는 선명한 절망.


통제할 수 없는 재능을 가진 아이와 폐허가 된 마을.

사내는 마을이 이 모양이 된 것이 누구에 의한 것인지 깨달았다.


안 그래도 사내는 의문이었다.

아무리 침략전이 벌어지고 있다고 해도 기사들은 어지간한 상황이 아니고서야 평범한 사람들이 사는 마을을 이 모양으로 초토화시키지는 않기 때문이다.


'아이를 어떻게 한다...'


사내는 잠시 고민이 되었다.

막말로 그는 지금 불행에 빠진 어린 아이를 챙길 여력이 없는 상태였다.

본인부터 적국에서 빠져나갈 수 있을지 미지수였으니 말이다.


그러나 이미 많은 것을 잃었으며 이대로 놔두면 더 많은 것을 잃을 아이를 가만히 놔둘 수는 없었다.


- 진정하고 나를 보고 따라해라. 네 몸에서 흘러나오는 까만 것을 다스릴 방법을 알려주마.

- ...!

- 숨을 크게 들이쉬고...


쏴아아아아


거침없이 쏟아져 내리는 비를 맞으며 두 사람은 한참이나 움직일 줄을 몰랐다.


***


산산히 부서져 떨어져 내리는 용병왕의 대검.

그의 히펠을 감당하지 못해 부서지고 만 것이다.


용병왕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자신의 대검이 떨어져 내린 곳을 중심으로 일대가 폐허가 되었다.

가장 뜨거운 불의 히펠은 우습게 찢어버릴 정도로 강력한 한 방이었다.


그가 가장 자신하던 기술이자 그의 모든 정수를 담은 기술이었다.

감히 단언컨대 이 검은 영웅왕의 재래라고 불리는 그 유명한 요엠가움의 왕 테노부스라는 자도 막을 수 없을 것이었다.

빈말 안하는 것으로 유명한 그 냉철한 시장도 인정한 것이었다.


별것도 아닌 움직임 하나하나마다 일일이 기술명을 붙이는 것을 극도로 싫어하는 용병왕도 이 기술에는 이름을 붙여줬다.


'유성검.'


하늘에서부터 떨어지는 무지막지한 질량의 검은 그 자체로 실로 유성이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마치 항거할 수 없는 재해와 같은 그의 검 아래에서는 그 누구도 고개를 쳐들지 못해야 한다.


그래.

분명 그래야 했는데 지금 눈앞에 있는 곰탱이는 도대체 무엇이냔 말이다.

이해할 수 없는 광경에 용병왕이 말을 더듬었다.


"넌... 너는 대체."


평온한 표정의 페트라는 들어올렸던 검을 회수하려 했다.

그러나 그의 검 역시 균열이 번지더니 깨지고 말았다.

깨진 검의 손잡이만 회수한 페트라가 입을 벙긋거렸다.

한박자 늦게 그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리인 거 같네요."


용병왕이 귀신에라도 홀린듯 입을 헤벌리고 반응이 없길래 페트라가 다시 말했다.


"제 승리인 듯합니다."

"말이 안 된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용병왕이 페트라에게 쏘아붙였다.


"막을 수 있다 없다를 말하는 것이 아니야. 어떻게 조금의 타격도 없을 수 있지? 그건 불가능하다. 네가 나보다 몇 수나 위에 있지 않은 이상...!"


울분에 찬 용병왕의 말은 어느새 되돌아온 가장 뜨거운 불에 의해 막혔다.


"그만. 어린 사슴의 승리다."

"난 승복할 수 없다! 뭔가 속임수를 쓴 것이 분명하다! 그게 아니고서야 이렇게 아무렇지 않을 수 있겠냐는 말이다!"

"결과에 승복하지 않을 셈이냐? 용병왕. 왕의 이름을 달고 있다면 그 말의 무게를 가볍게 만들지 말아라."

"감히 지금 누구에게..."


짝. 짝. 짝


격해지는 분위기 가운데에 경쾌한 박수소리가 울려 퍼졌다.

골락 시장이 낸 소리였다.


"그만. 여기 있는 그 누구도 페트라 부단장님이 속임수를 쓰는 것을 보지 못했네. 당장 자네도 모르지 않나. 만약 속임수를 썼다고 해도 여기 있는 두 초월자를 속일 정도라면 그건 그 나름대로 엄청난 일이야. 어느 모로 보나 자네의 패배야."


잔뜩 성이나 이 일대를 뒤집어 놓아도 이상하지 않던 용병왕은 시장의 말에 단번에 기세를 누그러뜨렸다.

여전히 화를 참지 못해 씩씩 거리는 눈으로 페트라를 노려 보면서도 그는 무얼 더 하지 않는 것이다.

페트라를 씹어 먹을 듯 노려 보던 그는 몸을 돌려 훈련장(이었던 곳)을 벗어났다.


"가장 뜨거운 불이시여 용병왕의 결례를 용서하소서."

"됐다. 승부에서 진 자는 원래 속에서 천불이 이는 법이다."

"너른 마음으로 이해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일은 나중에 책임지고 사죄하도록 하겠습니다."


에텔.

골락 다섯 도시 중 하나, 베아티의 시장인 제 이름을 걸고 사죄하겠다는 말과 함께 그 역시 몸을 돌려 훈련장을 떠났다.

멀어지는 시장을 향해 가장 뜨거운 불이 물었다.


"바로 떠날 것인가?"

"아뇨. 보시다시피 저희 골락의 수호자께서는 한 번 삐지면 오래 가서... 허락해 주신다면 며칠 머무르며 기분을 풀어주고 가고 싶습니다만."


용병왕이 허락의 의미로 고개를 주억거리자 시장은 또 다시 구부정한 몸을 꾸벅 숙여 보이고는 자리를 떠났다.


"자 그럼. 사슴의 아이들은 나를 따라 와라."


가장 뜨거운 불은 라페의 장인들을 불러 훈련장 보수를 시키고는 페트라 일행을 이끌고 다시 제 거처인 불의 근원으로 돌아갔다.


***


불의 근원으로 돌아온 가장 뜨거운 불은 사방으로 타오르고 있는 형형색색의 불을 향해 히펠을 뿜어냈다.

그의 히펠에 반응하며 형형색색의 불길 중 하나가 몸집을 부풀리더니 불의 장막이 되어 방 주변을 덮었다.


"저 불들의 연료는 내 히펠이다. 평범한 불이 아니지."


뜬금 없이 집의 장식품 자랑?


"가장 뜨거운 불은 불로 온갖 것을 할 수 있다."


이번에는 제 자랑.


"방금 외부로 소리가 빠져나가는 것을 차단했다."


단순히 자랑하려고 했던 말은 아니었던 모양이다.

그러더니 그는 불의 근원 구석에서 유독 두껍게 타오르는 새하얀 불길을 향해 손을 뻗었다.

새하얀 불의 가운데가 쩍 갈라지며 안으로 공간이 드러났다.

그곳에서 등장한 것은 흑발의 여인이었다.


"고생했다. 마법사."


딜람과 똑 닮은 얼굴을 한 여인은 다름 아닌 떼르 이시아, 딜람의 엄마였다.

불 속에 있어서 그런지 이전보다 얼굴이 좀 타긴 했는데 확실했다.


이를 본 세슈람은 표정관리를 못하고 그녀를 부르려 했지만 딜람이 그의 입을 틀어막았다.

가장 뜨거운 불이 무슨 목적으로 엄마를 숨기고 있는지 모르는 와중에 함부로 서로 아는 사이라는 것을 드러낼 수는...


"저 어린 마법사는 딸인가?"

"맞아요."

"꼭 닮았군."


이미 모조리 다 들통이 났다는 것을 깨달은 딜람은 어쩐지 맥이 풀리는 기분이었다.


"뭐... 뭐가 어떻게 된 일이에요?"


이시아는 제 딸에게 다가가 그녀를 품에 꼭 안았다.


"다행이다. 우리 딸 똑똑하니까 무사할 줄 알았어."


그제야 딜람은 가슴 한 켠에 남아있던 걱정이 조금이지만 사라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딜람 역시 제 엄마를 꼭 껴안으며 말했다.


"응. 당연하지."


이시아는 세슈람에게도 다가가 그의 볼을 쓰다듬었다.


"세슈람도 무사해서 다행이야."

"네. 아주머니도 무사하셔서 다행이에요."


그녀는 마지막으로 페트라와 디르앤을 향해 고개를 숙여 인사했다.


"우리 아이들을 지켜줘서 고마워요."


페트라가 민망함에 슬쩍 웃으며 인사를 받았다.

지금 이 상황이 이해가 안되기는 기사들도 마찬가지.

디르앤은 가장 뜨거운 불을 보며 물었다.


"설명을 해주시겠습니까?"

"음!"


그는 자연스레 이시아에게 말을 넘겼고 이시아는 뭐 어려운 일이냐며 상황을 설명했다.


"제가 라페에 떨어졌고 저분께서 저를 구해주셨어요."

"... 아니."


그건 보면 알겠다.

디르앤이 궁금한 건 어째서 가장 뜨거운 불은 갑작스레 등장한 마법사를 죽이지 않고 살려 뒀냐는 것이다.

보아하니 시종으로 분장한 어린 마법사들의 정체도 진작 꿰뚫고 있었던 거 같은데 이들에 대해서도 별 행동을 취하지 않았고.


"가장 뜨거운 불께서도 이단들을 감싸는 것입니까?"

"그렇다."

"어째서죠?"


디르앤의 물음에 잠시 뜸을 들인 가장 뜨거운 불이 말했다.


"이들이 이 어두운 땅 가운데에 빛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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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8 158. 상상도 못한 정체 23.02.28 30 2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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