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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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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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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0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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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01.07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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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46화

DUMMY

46.


‘다 끝냈으니 서두르자.’


유리는 흙을 털며 동산에서 내려와 길베르트가 말한 대장간으로 움직였다.

대로는 최대한 피하며 골목길을 통해 서쪽 상가에 도착했다.


‘이름이 없다 했었지.’


상가를 둘러보기를 잠시 어렵지 않게 금방 대장간을 찾아냈다.

시간이 시간이다 보니 불은 다 꺼져있었으나 유리는 문고리를 잡고 돌렸다.

잠겨있지 않아 문고리가 부드럽게 돌아가며 문이 열렸다.


‘아직 깨어있는 건가.’


들어가자 닫힌 문 사이로 빛이 흘러나오는 방이 있었다.

그 빛에 의지하며 앞으로 가 문고리를 잡고 열었더니.


“크르렁. 컥! 커헉. 후.”


체구가 작은 노인이 한 손에 술병을 쥐고 코가 벌게진 채 의자에서 넘어질 듯한 모습으로 자고 있었다.


“술. 더 줘···.”


유리는 노인에게 다가가 노크하듯이 가볍게 이마를 두드렸다.


“음? 넌 뭐, 끄어억!!”


와장창!!


의자가 뒤로 넘어가며 노인이 그만 넘어지고 말았다.

그 와중에 탁자가 노인의 발에 걸려 엎어지며 술병과 그릇이 깨져버렸다.


“아이고 허리야. 잘 자고 있었는데···. 이 시간에 뭐야!”


노인은 반쯤 풀린 눈과 함께 유리를 향해 성질을 냈다.

유리는 몸을 낮춰 노인과 눈높이를 맞췄다.


“길베르트알지?”

“그 망할 양반이 왜?! 그게 나를 깨운 거랑 뭔 상관이 있어!”

“녀석이 이리로 오면 구멍으로 안내해 준다고 했거든.”

“뭐야, 그거 때문이었어? 썅, 왜 하필 지금이람. 일단 일어나야 하니까 좀 나와봐!”


유리가 한 발자국 물러나자 노인이 무릎을 짚으며 힘겹게 일어났다.


“아이고 허리야···.”


그리고 품에서 열쇠 꾸러미를 꺼내더니 뒤편의 문으로 다가갔다.


“아까운 술이 다 엎어졌네.”

“길베르트한테 청구해.”

“그 찌질한 구두쇠가 그런 걸 잘도 해주겠네. 거기서 기다리고 있어.”


노인이 굳게 닫힌 문의 자물쇠를 하나씩 풀며 입을 열었다.


“루이라는 이름을 대면 비싼 술 한 병 정도는 받을 수 있을 거야.”

“형씨가 뭐라도 돼?”

“놈의 지인인데 그 녀석이 함부로 못 건드려.”


그는 자물쇠를 풀다 말고 고개를 돌려 유리를 쳐다봤다.


“진짜지?”


방금까지 풀려있던 게 거짓말이었던 것처럼 아주 맑은 눈빛이었다.


“자물쇠 풀면서 들어. 거짓말하는 거 아니야. 대신 이름을 댈 때 가명이라는 건 꼭 붙여. 안 그러면 아마 못 알아들을 거야.”

“찾아갔는데 안 먹히는 순간 3대가 멸하라고 저주를 퍼부을 거야.”

“퍼붓든 말든. 그보다 얼마나 걸리는 거지?”

“거참 성질도 급하네. 기다리고 있어 보라고 했잖아.”


노인의 손이 아래의 자물쇠로 내려가지 않았다.


“그보다 이건 또 왜 이렇게 안 들어가는 거야.”


술에 취한 탓에 자물쇠에 열쇠를 끼우지 못하고 있었다.

보다 못한 유리가 검을 뽑고는 노인을 옆으로 밀쳤다.


“너 지금 뭐 하려고.”

“금방 끝나.”


쾅! 쾅!


남은 자물쇠 2개를 손잡이로 내려쳐 부서뜨렸다.


“일해야 할 게 늘었군···.”


노인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런 건 길베르트한테 다 청구해. 그보다 이제 끝난 거지?”

“기다려. 끝에 문 하나가 더 있어서 나도 따라가야 해.”


노인은 대장간의 문을 잠그고 종이에 무언가를 끄적인 다음 랜턴을 챙기고 안으로 들어갔다.

유리도 그를 따라 들어갔다.

랜턴의 빛에만 의존한 채 조용히 굴을 걷던 중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원래 그렇게 행동해?”

“평소에는 안 그런데 지금은 좀 많이 급해서 말이야. 뭐, 문제 있나?”

“살짝. 덕분에 술이 깨서 말이야.”

“그게 무슨 문제라고.”

“아주 큰 문제가 생겼어.”


노인은 발걸음을 멈췄다.

표정은 상당히 일그러져있었다.


“속이 안 좋아졌어. 오웩!”


노인은 벽을 붙잡은 채 힘겹게 속을 게워냈다.

한 번으로 끝나지 않았고 몇 번의 구역질을 더 하고 나서야 고개를 들어 올렸다.


“물 있어?”


유리가 배낭에서 물을 꺼내 그에게 건넸다.

노인은 입에 물을 머금어 몇 번 헹구고 삼키며 갈증을 해소했다.


“이놈의 술을 빨리 끊던가 해야지.”


유리에게 물을 돌려주고 다시 길을 걸어갔다.

한참을 걸어가던 중 이번에는 유리가 입을 열었다.


“얼마나 더 걸어야 출구가 나오는 거지?”

“몇 시간은 더 걸어가야 해.”

“그럼 그 열쇠를 나한테 줘. 너랑 가다가는 얼마나 걸릴지를 모르겠어.”

“그건 안돼. 열쇠는 내가 들고 있는 것밖에 없어.”

“왜 여분의 열쇠는 안 만든 거지?”

“안 만드는 게 아니라 못 만드는 거야.”

“그건 또 무슨 말이야.”


노인은 발걸음을 멈추더니 이마를 짚고 한숨을 쉬었다.


“가뜩이나 머리 아파 죽겠는데 뭐가 그리 궁금한 거야?”


유리는 말없이 노인에게 작은 자루 하나를 던졌다.

노인이 자루를 열자 눈에 수십개의 금화가 들어왔다.


“열쇠를 못 만드는 이유가 뭐지?”


유리는 다시 그에게 질문을 던졌다.

노인은 자루를 닫고 발을 옮기면서 군말 없이 입을 열었다.


“일개 대장장이가 만들 수 없는 마법 도구야. 나도 길 양반이 줘서 받았을 뿐이니까. 게다가 몇 놈들은 마나를 못쓰겠다고도 하더라고. 참고로 훔쳐도 의미는 없어. 굴에 들어가기 전에는 항상 명부를 써놓으니까.”

“그건 상관없어. 그것보다 나오는 위치는?”

“브랜 마을이라고 알아?”

“위치로 말해줘. 이름은 몰라.”

“황도 북서쪽에 위치한 곳인데 이렇게 말하면 알겠어?”

“그 마을 이름이 브랜이었나?”

“그래. 그 마을의 대장간이 이 굴이랑 연결되어있지.”


그 대화를 끝으로 다른 말은 오가지 않았다.

그냥 걷기만 했다.

1시간, 2시간 어느덧 3시간째.

앞에서 가만히 걷고 있던 노인이 입을 열었다.


“그런데 형씨는 어쩌다가 길 양반이랑 엮인 거야?”

“지금은 아니지만, 옛날에 같이 일했던 사이야.”

“형씨도 팔자가 좋은 편은 아니네. 그딴 놈이랑 엮이고 말이야.”

“너보다는 괜찮지. 딱 동료였으니까. 그보다 앞으로 얼마나 남은 거지?”

“온 만큼 더 걸어가면 돼.”


둘은 다시 입을 다물고 걸었다.

이곳까지 걸어온 만큼 걸어 겨우 입구와 같이 많은 자물쇠가 걸린 문 앞에 도착했다.


“으아.”


노인은 도착하자마자 주저앉고 숨을 고르며 문에 등을 기댔다.


“쉬지 말고 빨리 문이나 열어.”

“조금만···. 조금만 쉬자고···.”

“그럼 너한테 준 돈 다시 돌려줘.”

“씨팔···.”


노인은 무릎을 짚고 땅바닥에서 일어나 자물쇠를 하나씩 따기 시작했다.


“빨리 이 짓거리를 그만두든가 해야지.”

“합당한 값을 치르지 않으면 불가능할 거야. 그리고 너는 그만두고 싶다고 그만두지는 못할 것 같은데.”

“···구역질이 다 나는군.”


어느새 자물쇠를 다 푼 노인이 문을 열었다.


“아잇, 진짜!”


유리는 노인을 밀치며 서둘러 문을 나갔다.

그리고 건물의 문을 열려고 했으나.


‘잠겨있군.’


그래서 그냥 힘으로 문고리를 부수고 문을 열었다.


“이건 또 왜 부수는 거야!”


외침을 무시했는데도 노인은 성을 내며 소리쳤다.


“해가 떠있을 때는 여기 있으니까 그렇게 알아둬!”


그 말을 머리에 새기며 마구간으로 향했다.

마을이 작은 탓에 금방 마구간에 도착했다.


“제일 좋은 놈으로 주셨으면 합니다.”

“가격이 많이 나가는데 괜찮으십니까?”

“돈은 얼마가 들든 상관없으니 빨리 가져와 주십쇼.”


마부는 그의 다급함에 서둘러 말을 가져왔다.

유리는 값을 지불하고 말을 타 곧장 입구로 향했다.

그리고 보증서를 보여줘 경비병의 경례를 무시하며 고삐를 세차게 흔들었다.

말의 체력을 조절하면서 쉼 없이 달렸다.


‘대충 4일에서 5일 정도는 걸릴 것 같은데.’


해는 이제 동이 튼 걸 넘어 머리 위에 올라와 있었다.

유리는 어쩔 수 없이 말에서 내려와 식사를 챙겨줄 겸 잠시 휴식을 취했다.

그리고 다시 이동을 하며 마을 하나를 지나쳤다.


‘고블린 무리인가.’


유리는 주위에 퍼진 다수의 기척을 느꼈으나 말의 속력을 줄이지 않았다.

오히려 고삐를 더욱 세차게 흔들었다.

그만큼 말의 속도가 점점 빨라졌다.

그 모습에 놀란 것인지 멀리서부터 고블린들이 다급하게 나타났으나.


히이이잉!!


유리는 고삐를 더 세차게 흔들었다.

고블린이 가까워짐에도 말은 속도를 줄이지 않고 점점 빠르게 달렸다.


키아악!


고블린들이 무기를 들고 달려들었으나 말은 신경도 쓰지 않고 짓밟으며 나아갔다.

비명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부서지고 터져나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자신들을 향해 날아오는 몇 개의 예기만 유리가 쳐내며 무리를 벗어났다.

고블린들과 거리가 어느 정도 벌어지자 말의 속도를 줄였다.


‘많이 지쳤군.’


그는 위에서 내려 고삐를 잡고 천천히 움직였다.


‘확실히 저번에 이곳을 지나갔을 때보다 마나 농도가 많이 가라앉았어.’


그리고 매고 있는 배낭으로 손을 가져갔다.


‘숲으로 들어가서 팔찌를 복원하면서 가면도 조사를 부탁해야겠지.’


어느새 고삐를 잡고 걸은 지 30분.

이제는 말이 얼추 체력을 회복했다고 생각해 다시 올라타고 고삐를 흔들었다.


히이이잉!


말은 다시 속도를 올렸다.


***


어느덧 해는 지평선에 걸려있었다.

이곳까지 오면서 중간에 고블린 무리를 만나기는 했으나 무리 없이 지나쳤다.

계속해서 이동하다 보니 해가 완전히 지며 달이 떠올랐다.

유리는 말에서 내려와 고삐를 나무에 묶어두고 노숙을 준비했다.


‘빠르면 3일 안에는 도착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배낭을 베개 삼아 땅바닥 위에 몸을 뉘었다.

말은 많이 지쳤던 것인지 벌써 잠에 빠졌다.

유리는 손을 올려 자신의 목을 쓰다듬었다.


‘후유증이 없어진 건 좋지만 백번이 넘도록 죽으니 아예 날짜 개념이 사라져 버렸어.’


정말 미쳐버려서 폐인이 되거나 목적만으로 움직이는 인형이 되거나 둘 중 하나지.


머릿속에 케이론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폐인이 되지는 않아서 그나마 다행이야. 그리고 인형은.’


유리는 숨을 깊게 들이마시고 내뱉었다.


‘오히려 감정을 컨트롤 할 필요가 없으니 마나랑 살기를 조절하기가 더 쉬워졌어.’


그때가 돼서도 그 말이 나올지 궁금하군.


또 다른 말이 떠올랐다.


‘마리아가 죽었습니다. 오히려 이 상황이 지금의 저에게는 좋습니다. 그러지 않았으면 지금쯤 완전히 미쳐서 아무것도 못 하고 있을 테니까요.’


숨을 고르며 눈을 감았다.


***


서서히 동이 떠올라 하늘이 밝아지고 있었다.

하지만 유리와 말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둘은 진작에 일어나 개울가에서 목을 축이고 있었다.


‘시원하군.’


빈 병에 물을 채워 담고 길가로 돌아갔다.

그리고 말에 올라타고 고삐를 흔들었다.

말은 천천히 속력을 올리며 길을 달려나갔다.


‘이 부근에 라이칸도 출몰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품속의 단검에 손을 가져다 대고 손잡이를 쓰다듬었다.


‘그것들만 안 나오면 돼. 나머지는 무시하면 되니까.’


그렇게 한참을 달렸다.

어느덧 말을 타고 달린 지 3시간째.

유리는 앞에서 다수의 기운을 느꼈다.


‘용병은 7명, 고블린은 40마리가 있고 오크도 3마리 정도 껴있군.’


거리가 가까워지며 말도 분위기를 느낀 것인지 자연스레 속력을 줄였다.

하지만 유리가 고삐를 세차게 흔들어 다시 속력을 높였다.

그렇게 거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유리의 눈에 그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역시 버티기가 힘들었나 보군.’


“거기 제발 우리 좀 도와줘!”

“이렇게, 이렇게 주기는 싫어! 제발 제발!”


용병들도 유리를 본 것인지 큰소리로 그의 시선을 끌었으나.


‘시간 아까워.’


유리는 앞을 가로막는 고블린 몇 마리만 쳐내며 말을 타고 달려나갔다.


“아···. 안돼, 여보···.”


오크가 들고 있던 통나무가 용병 하나의 머리를 부수며 피를 튀겼다.

유리는 그들을 무시하며 달려가는데 갑자기 주위로 그늘이 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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