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610
추천수 :
8
글자수 :
451,055

작성
20.12.28 20:00
조회
22
추천
0
글자
13쪽

36화

DUMMY

36.


잠에서 깬 케이론은 일어나 몸을 풀었다.

그리고 옆에서 명상을 하고 있던 유리에게 말을 걸었다.


“잠은 잤나?”

“불면증이 심해서 잠을 잘 못 잡니다.”

“그건 좀 안타까운 얘기군. 그런데 밖에 나갔다 오기라도 한 건가? 바지에 흙먼지가 좀 묻어있는데?”


유리는 고개를 내려 확인한 뒤 가볍게 바지를 털었다.


“새벽에 잠시 바람을 쐬러 갔었는데 나가자마자 일이 있어서 말이죠.”

“별다른 소리나 기운은 못 느꼈다만?”

“티 안 나게 썼습니다. 그리고 소리야 관절기나 한 번에 기절시키면 안 나게 할 수 있죠.”


케이론은 살짝 놀란 눈빛을 띠었다.


“내가 호락호락하게 키우지는 않았는데. 게다가 인간이지 않나? 마나를 그 정도만 사용한다고 해서 종족의 차이를 메꿀 수는 없을 텐데?”

“그거는 상대가 정상일 때의 얘기지 않습니까. 적잖이 흥분한 상태에서 죽이려고 공간을 훤히 드러내면서 급소만 노리는데 어떻게 못 피하겠습니까.”

“얼마나 흥분했지?”

“붉은 천을 본 황소 수준이었습니다.”

“적잖이라는 말이 잘못된 거 아닌가?”


유리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 어떠한 대답도 하지 않았다.

케이론은 찝찝함을 느끼면서도 유리를 다시 보았다.


“말을 넘기는 건 좋지만 미소는 짓지 말게. 우리 같은 감정에 예민한 자들에게는 도발하는 거나 다름없어. 그보다 같이 식사나 하지.”


그렇게 둘은 집을 나섰다.


“그런데 집에서 먹는 게 아니었습니까?”

“집에서 먹기는 하지만 그게 내 집은 아닐세.”


그렇게 도착한 곳은 다름 아닌 울드의 집이었다.

일찍부터 밥을 만들고 있었던 것인지 밖으로 고소한 냄새가 폴폴 풍겼다.

밥 냄새를 맡으며 케이론과 유리는 안으로 들어갔다.


‘살기?’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느껴지는 옅은 살기에 유리의 눈이 절로 찌푸려졌다.

게다가 이 살기의 주인을 찾는 것도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인간도 같이 데려왔습니다.”


울드는 처음 만났을 때처럼 초연한 미소를 보였다.

이 살의의 시작지점이 바로 초연한 미소를 짓고 있는 울드였다.


‘왜?’


케이론은 신경 쓰지 않았다.

게다가 셋만 있는 것도 아니었다.

기절하고 케이론에게 들려 나갔던 웨어울프가 유리를 보자마자 행동을 멈췄다.


“케이론님, 인간은 왜 데려오신 겁니까! 어제의 만행을 기억하지 못하시는 겁니까!”


그 역시도 살기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않는 것인지 유리만 죽일 듯이 쳐다봤다.

케이론은 그를 무시하며 울드와 눈높이를 맞췄다.


“오늘은 어떠십니까?”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통증이 몰려오는데도 진정되지 않아.”


울드의 눈동자와 손이 심하게 떨렸다.

얼굴 근육은 마음대로 움직이며 이따금 경련도 일어났다.


‘주술의 부작용? 하지만 어제 대화에서는 분명 대가를 치러서 괜찮다고 했는데?’


오갔던 말과는 다른 반응에 무언가가 잘못 돌아가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빈. 주술적으로 조치를 취하거나 시약 같은 것을 사용했나?”


케이론은 여전히 유리를 노려보고 있는 웨어울프에게 말했다.


“하려고는 했으나 스승님께서는 그저 가까이 다가오지 말라고만 하셨습니다.”


그는 유리에게 향해있던 시선을 돌리고 케이론의 말에 답했다.

케이론은 깊게 한숨을 쉬며 방으로 들어가 오묘한 푸른빛을 띠는 액체가 담긴 병을 들고 나왔다.


“몇 가지를 배합해서 만든 수면제입니다. 급하게 만들어 살짝 부작용이 있을 겁니다. 아마 하루에서 이틀 정도는 움직이는 데 조금 불편하실 겁니다.”

“고맙네.”


울드는 케이론이 건네준 시약을 힘겹게 마시고 다시 침대에 누웠다.

그 사이 케이론의 옆으로 유리가 다가갔다.


“왜 검에 손을 올리고 있는지 궁금하군.”


불만이 섞인 목소리였다.


“제가 더 궁금합니다. 저렇게 살기를 풀풀 풍기는데 무방비하게 접근합니까?”

“항상 있는 일일세.”

“오늘은 그 항상 이라는 말의 의미가 다른 것, 컥!”


그 순간이었다.

누워있던 울드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더니 순식간에 유리를 넘겨 트리며 양손으로 목을 붙잡았다.

재빨리 마나를 끌어 올려 목뼈가 부서지는 일은 모면했으나 숨이 막히는 것까지는 막을 수 없었다.


‘무슨 힘이···.’


최대한 마나를 일으켜 손을 떼어내려고 했지만 쉽지 않았다.

울드 또한 마나를 사용하고 있었으니까.

상대는 늙고 병든 노인인데도 자신보다 많은 양의 마나를 사용해 뿌리칠 수가 없었다.


“루테프, 죽어!”


그래도 케이론이 신속하게 그를 떼어내 준 덕분에 목숨은 부지했다.


“쿨럭, 쿨럭!”

“자네 괜찮나.”

“일단은 괜찮습니다. 그런데 정말로 이게 항상 있는 일입니까?”

“나도 이런 적은 처음이야. 그보다 빈! 멍하니 있지 말고 마비초, 수면초, 신경초가 들어간 시약 아무거나 대충 섞어서 가져와라. 치사량은 생각하고.”

“예, 예!”


그는 황급히 방으로 들어갔고 남은 둘은 혹시나 하는 상황을 대비해 마나를 끌어 올렸다.

유리는 거기서 그치지 않고 검을 뽑고 마나를 최대한 끌어 올렸다.


“굳이 그렇게까지 할 필요가 있나?”

“뒤를 잡고 계셔서 모르시겠지만 지금 저를 바라보며 살벌하게 웃고 계십니다. 그리고 혹시나 해서 물어보는 건데.”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리가 딛고 있던 땅에서 뾰족한 바위가 솟아올랐다.

유리는 검을 휘둘러 바위를 베며 자리를 벗어났다.


“이곳이 매개체였군요.”

“빈, 얼마나 남았지!”

“거의, 거의 다 됐습니다!”


하지만 울드의 행동이 더 빨랐다.

방 입구가 솟아오른 바위에 가로막혔다.

유리가 달려가 바위를 부수려고는 했지만, 주술 때문에 접근할 수도 없었다.


“주술은 쓸 줄 모르십니까?”


유리는 바위를 베고 피하며 말했다.


“쓸 수는 있지만 울드 만큼의 경지가 아닌 이상 바위를 없애기에는 힘들어. 안에 있는 놈도 마찬가지고.”

“기절도 못 시킵니까? 새벽에 만난 것들은 흥분해도 쉽게 기절하던데.”

“이 자세에서 힘을 풀긴 힘들 것 같군. 탈진하거나 빈이 어떻게 하는 수밖에 없다네. 아니면 자네가 하게.”

“그게 가능하면 진즉에 했습니다.”


바위를 베어도 끝없이 솟아올랐다.

게다가 점점 발을 디딜 곳도 사라져 피하기에도 무리가 있었다.


‘하기 싫은 방법이지만···.’


별다른 방법이 보이지 않아 유리는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기운이 느껴지면 바로 달려와 주십쇼.”

“그게 무슨 말!”


그게 끝이었다.

유리의 왼쪽 가슴에 커다란 바위가 깊게 박혀있었다.

그는 그대로 정신을 잃으며 쓰러졌다.


***


이른 새벽 시간.

10명의 인원이 단검을 들고 죽일 듯이 노려보며 한 명의 남자를 둘러싸고 있었다.

남자의 정체는 유리였다.

위험한 상황임에도 유리는 위협이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는 듯이 태연했다.

물론 겉으로만.


“웁!”


유리는 주저앉으며 헛구역질을 하기 시작했다.

몸 또한 경련을 넘어 발작을 일으켰고 마나도 거칠게 들끓었다.

갑자기 상태가 안 좋아지자 틈을 노려 죽이려 했으나 거친 마나에 10명은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러다 한 명이 움직이려는 순간.


“모두 물러가라.”


케이론이 밖으로 나오며 일갈했다.


“하지만 스승님.”

“나는 분명히 물러가라 하였다.”


케이론의 강경한 태도에 얼굴에 불만을 가득 품으며 10명은 물러났다.

그는 기운을 갈무리하지 못하며 애를 쓰고 있는 유리를 부축해 일으켰다.


“무슨 일이 있던 거지? 저 중에서 자네를 이렇게 할 수 있는 이는 없을 텐데.”


유리는 힘겹게 숨을 고르면서 케이론의 말에 답했다.


“하···, 그저 죽다 살아났을 뿐입니다.”

“그럼 누군가가 자네를 죽였다는 건데. 이 마을에서 누가?”


거칠었던 마나가 어느 정도 진정은 됐지만, 편하게 숨을 쉬지는 못했다.


“울드입니다. 아마 오늘 대화 때문에 잘 붙들고 있던 정신을 놓은 것 같습니다. 아니면 트라우마를 건드렸다거나. 작정하고 저를 죽이려 들더군요.”

“울드께서는 알고 있나?”

“분명히 다 알고 있을 겁니다. 빨리 가야 합니다.”

“알겠네. 그런데 안으로는 왜 다시 들어가는 건가?”

“뭐 하나만 챙기고 바로 가겠습니다. 늦지는 않을 겁니다.”


케이론은 곧장 울드의 집으로 향했다.

유리도 배낭에서 무언가를 꺼내더니 서둘러 향했다.

그는 안으로 들어갔을 때 케이론이 제압하고 있거나 대치하거나 종료되거나 하는 상황이 일어나고 있을 줄만 알았다.


‘이게 무슨.’


하지만 어느 것도 아니었다.

케이론이 어느 정도 긴장을 하는 것은 눈에 들어왔으나 그게 끝이었다.

누구도 살의나 마나를 끌어 올리지 않았다.

그저 차를 마시고 있었다.

울드가 유리를 향해 개운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자네도 왔어? 아까···라고 해야 하나? 어쨌든 미안하게 됐어.”

“그···, 이제는 괜찮으신 겁니까?”

“그래. 심지어 한번 표출하니까 개운하기까지 하는군.”


그렇다 하여도 긴장을 늦출 수는 없었다.

울드는 그 누구도 눈치채지 못하게 자신을 죽일 수 있으니까.

유리가 조금 더 상황을 파악하고 있는 사이 뒤에서 누군가의 기척을 느꼈다.


“누가 이른 새벽부터 마나를 거칠게 뽑아낸다 했더니 인간이었어?”


상대를 홀릴 듯한 매혹적인 목소리에 유리는 무심코 뒤를 돌아봤다.

큰 키에서 나오는 내려다보는 눈빛, 속살이 비칠듯한 의복 그리고 뱀의 꼬리.


“라미아시군요.”

“인간 주제에 그런 것도 알아? 우리가 숨은 건 꽤 옛날이라 그쪽 사회에서는 잊혀진 줄로만 알았는데.”


유리는 말을 넘길 때마다 나오는 무미건조한 미소를 지었다.

그 미소에 라미아는 얼굴을 찌푸렸다.


“좀 짜증나네.”

“그만둬라, 이나리.”


짧은 말과 함께 마나와 살기를 일으키자 곧바로 울드가 제지했다.

이나리는 마나와 살기를 말끔히 지웠다.


“죄송합니다. 원체 마나에 민감한 몸이다 보니 상당히 거친 마나를 느껴 저도 모르게 흥분했나 봅니다.”

“이나리가 저렇게 말하니 자네도 검에서 손을 내려두게.”


유리도 손을 내려놓았다.

이나리는 자신을 앞에 두고 검을 뽑으려 한 부분도 있지만, 눈치채지 못하게 행동한 것에 살짝 놀란 눈빛을 띠었다.


“그것보다 네가 거친 마나를 느꼈다고 집 밖으로 나올 줄은 몰랐는데?”

“나도 나올 생각은 없었어. 그런데 네가 있는데도 그게 울드의 집으로 가니까.”

“그야 이 마을에 있는 동안은 나하고 같이 움직여야 하니까.”

“그럼 조심 좀 해줘. 웬만해서는 집 밖으로 나오기 싫으니까. 그럼 울드, 저는 이만 가보겠습니다. 새벽에 실례했습니다.”


이나리는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한 번만 더 그런 식으로 마나를 뽑거나 표정을 지으면 울드가 막아도 죽일 거니까 그렇게 알아.’


머릿속에서 울리는 목소리와 함께 느껴지는 섬뜩한 살기에 유리는 순식간에 검을 뽑았다.

식은땀까지 적지 않게 흘렸다.


“진정해도 돼. 단순한 살기일 뿐이야.”


케이론은 한숨을 쉬며 입을 열었다.

유리는 검을 집어넣었다.


“이게 말입니까? 이런 게 단순한 살기라면 저희가 한 거는 장난밖에 안 되는 것 같습니다.”

“저래 보여도 뱀이니까.”


유리는 살기와 마나를 진정시키며 울드를 바라봤다.


“그보다 이제는 괜찮으신 겁니까?”

“이것도 잠깐일 뿐이겠지. 또 한 번 정신을 놓기 전에 무언가 조치를 취하기는 해야겠어.”

“그럼 혹시라도 그런 상황이 오게 되면 이걸 들이키시면 될 겁니다.”


유리는 배낭에서 꺼냈던 물건을 건네줬다.

투명한 액체가 든 시약이었다.


“굉장히 강력한 수면제입니다. 다 들이키면 못해도 이틀은 꼼짝없이 누워있어야 할 겁니다.”

“마시는 즉시 바로 말인가?”

“바로라고 해도 될 정도로 효과가 빠르게 나타날 겁니다.”

“고맙게 쓰지. 그것보다 케이론. 계속 이곳에 있을 건가?”

“일단은 그렇게 할 생각입니다.”

“그럼 저도 여기 있어야겠군요.”

“자네는 왜?”

“새벽 내내 싸움을 하고 싶지는 않아서 말이죠. 저도 편히 쉴 수 있는 시간은 있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흠. 딱히 무슨 방법이 없으니 조금만 참게. 그리고 시간도 늦었으니 오늘은 여기까지 하죠.”

“그래야겠지.”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49화 21.01.10 24 0 12쪽
48 48화 21.01.09 26 0 13쪽
47 47화 21.01.08 18 0 13쪽
46 46화 21.01.07 20 0 12쪽
45 45화 21.01.06 20 0 12쪽
44 44화 21.01.05 20 0 12쪽
43 43화 21.01.04 21 0 13쪽
42 42화 21.01.03 21 0 12쪽
41 41화 21.01.02 20 0 12쪽
40 40화 21.01.01 21 0 12쪽
39 39화 20.12.31 19 0 13쪽
38 38화 20.12.30 18 0 13쪽
37 37화 20.12.29 23 0 12쪽
» 36화 20.12.28 23 0 13쪽
35 35화 20.12.27 25 0 12쪽
34 34화 20.12.26 22 0 14쪽
33 33화 20.12.25 18 0 13쪽
32 32화 20.12.24 17 0 12쪽
31 31화 20.12.23 19 0 12쪽
30 30화 20.12.22 21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