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이미월 님의 서재입니다.

1달

웹소설 > 일반연재 > 판타지

완결

건보
작품등록일 :
2020.11.24 15:24
최근연재일 :
2022.09.20 19:45
연재수 :
84 회
조회수 :
2,489
추천수 :
8
글자수 :
451,055

작성
20.12.23 20:00
조회
18
추천
0
글자
12쪽

31화

DUMMY

31.


육포를 씹으며 이동을 하던 유리가 갑자기 주저앉더니 먹은 것을 다 게워냈다.


“오웩!”


다행히 먹은 게 물과 육포밖에 없어 금방 자리에서 일어났다.

입안에 남은 이물을 뱉어내고 행군 다음 다시 움직였다.

아직 입안에 역한 기운이 남아있었지만 억지로 집어삼켰다.


‘어차피 죽어도 다시 살아나는 몸인데 이럴 바에는 안 먹는 게 나아. 게다가 허기진 상황이라면 분명 위험한 상황일 텐데. 그런 걸 따져보면 끼니를 채울 이유가 없어. 차라리 죽고 다시 시작하는 게 났지.’


한시도 살기를 거두지 않아 대부분의 생물은 유리의 곁으로 다가오지 않았다.

개미귀신들도 유리가 다가오면 그를 피해 자신의 영역을 벗어났다.

다만 센싱 버그만은 일정한 주기마다 유리를 덮쳤다.

무리 없이 처리할 수는 있었다.

하지만 잠깐이나마 발길을 붙잡는 이 벌레들 때문에 유리는 짜증을 느끼고 있었다.

다시 한번 유리가 휘두른 검에 한 마리의 벌레가 죽어 나갔다.


키에···


아직 숨이 붙어있던 벌레를 반으로 갈랐다.


‘도대체 얼마나 이것들을 베어야 하는 건지.’


자신이 만든 처참한 현장을 뒤로하고 다시 가던 길을 걸어갔다.

센싱 버그를 잡은 지가 방금이라 이제는 정말 주위로 어떠한 생명체도 다가오지 않았다.

물론 오래가지는 않겠지만.

그래도 이 순간을 놓칠 수 없기에 자신의 능력이 되는 한까지 최대한의 범위로 감각을 펼쳤다.


‘윽!’


평소의 몇 배에 해당하는 정보가 삽시간에 머릿속으로 흘러들었다.


‘머리가···’


그 양이 과했던 것인지 이마를 부여잡으며 휘청거렸다.

하지만 이미 사람의 정신으로는 버티지 못할 일을 여러 번 겪은 몸.

그것을 증명하듯 잠깐 휘청거리기만 했을 뿐, 곧바로 균형을 잡고 움직였다.


‘그래도 후유증에 비하면 별거 아니야.’


감각이 넓어진 것을 생명체들도 느낀 것인지 빠른 속도로 그의 감각을 벗어났다.

그에 맞춰 머릿속으로 들어오는 정보의 양이 상당히 줄어들었다.


‘이제야 머릿속이 좀 편하군.’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어떠한 변화가 일어난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더욱 다양한 정보를 알 수 있어 정확한 방향을 잡을 수 없었다.

막막하기만 했다.


“하···.”


사막에 발을 딛고서부터 한시도 열리지 않던 입에서 처음 나온 것은 깊은 한숨이었다.


‘뭘 어떻게 해야 하는 거지···.’


나약한 마음을 가지지 않기로 다짐했으나.


‘이 넓은 곳에서 난 뭘 해야···.’


막막함만이 이어지는 현 상황에서는 강철같은 마음에도 금이 갈 수밖에 없었다.


‘일단 방향감각을 잃지는 않았어. 그러니 일단은 다시 가던 방향으로. 아니, 방향을 틀어야 하나···.’


갈피를 잡지 못하고 있는 사이 지면이 흔들렸다.


‘이 벌레들은 정말 끝도 없이 오는군.’


지면이 흔들리기 전부터 센싱 버그들이 접근하고 있는 것은 알고 있어 검을 뽑을 준비는 하고 있었다.

그렇게 검을 뽑아 벌레들을 베려는 찰나 유리의 머리에 한가지 생각이 스쳤다.


‘그런데 굳이 이것들을 계속 벨 필요가 있을까···.’


계속해서 스트레스가 쌓임으로써 정신이 지치고 아주 약간 나약해진 마음 사이로 든 생각.

고작 1초도 걸리지 않을 만큼 찰나의 순간이었다.

하지만 그것이 그에게 화를 가져왔다.

정면에서 아가리를 벌린 채 고개를 떨구는 벌레는 피했으나 발밑에서 올라오는 것에게는 한 박자 늦게 반응했다.

그래도 미리 준비하고 있었던 만큼 몸을 돌리며 재빨리 그 자리를 벗어났다.

물론 완전히 피하지는 못했다.


‘큭!’


벌레의 커다란 이빨 중 하나가 로브와 함께 유리의 왼팔을 세로로 길게 찢고 지나갔다.

상처가 깊지는 않았으나 크기가 크기인 만큼 무시할 수 없는 양의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겨우 그런 것 가지고 해이해지다니.’


계속해서 솟아오르고 고개를 떨구는 벌레들을 피하며 기운을 끌어올렸다.

공격을 하나하나 피함과 동시에 검을 휘두르며 삽시간에 모든 것들을 베어버렸다.

적이 없다는 것을 확인한 유리는 체액을 털어내며 기운을 갈무리했다.

배낭에서 물을 꺼내 상처를 씻고 붕대를 감았다.


‘겨우 그 정도에 해이해지고 이딴 것들에게 상처나 입다니···.’


그의 입가에 어느새 차가운 미소가 걸려있었다.


‘오늘 당장 죽어도 이상할 게 없군.’


상처 치료를 끝낸 유리는 자신의 왼쪽 손바닥을 쳐다봤다.

그리고 허리춤에 걸려있던 검을 뽑고 검신을 강하게 움켜쥐었다.

따끔한 통증이 손바닥에 전해졌다.

검신을 따라 흐른 핏방울이 모래 위로 떨어졌다.


‘너 때문에 마리아가 어떻게 됐는지 생각해라.’


다시 한번 다짐을 하며 검에 흐른 피를 닦은 다음 붕대를 감고 발걸음을 옮겼다.

음식을 섭취하는 것도 신경을 쓸 필요가 없어 이따금 씩 물로 목만 축였다.

그렇게 1시간, 2시간이 지나고 태양이 지평선에 걸쳐 뉘엿뉘엿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발이 무거워. 온몸에 힘도 들어가지 않고···.’


몸 상태가 몇 시간 새 급속도로 악화됐다.

10걸음도 나아가지 못하고 모래 위에 무릎을 꿇으며 쓰러지고 말았다.

그리고 힘겹게 몸을 돌려 왼팔의 붕대를 풀어 상태를 확인해보려 했으나.


‘늦었어.’


그럴 필요는 없었다.

이미 노란 진물이 굳어있는 데에다 감각이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말이다.


‘그 벌레들이 독을 가지고 있다는 정보가 없어 방심했어. 해독제를 써도 늦겠고 독의 성분도 모르니.’


유리는 움직일 생각을 하지 않고 모래 위에 드러누웠다.

등으로 뜨거웠던 모래가 차갑게 식는 게 느껴졌다.


‘아마 오늘이 시작됐을 때는 별다른 일이 없었지···.’


오늘은 살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조용히 눈을 감았다.


‘이번에는 큰 고통 없이 죽을 수 있겠어.’


***


“우웁!”


차가운 모래 위에는 모든 감각, 감정 그리고 사고가 돌아온 유리가 헛구역질을 하고 있었다.


‘몇 번을 겪어도 익숙해지지 않는군.’


어느 정도 진정을 하고 입을 행군 뒤 일어나 발을 옮겼다.


‘지금부터 시간이 지난 후에 이상한 벌레들이 달라붙었었지.’


만일을 대비해 회귀 전처럼 감각을 자신의 한계 범위까지 늘렸다.

약간의 두통이 찾아왔지만 한 번 겪었던 일이기에 그리 길지는 않았다.

가만히 걸어가다 자신의 왼손바닥을 바라봤다.

아무런 상처 없이 굳은살만이 박힌 손밖에 보이지 않았다.

그러나 따끔거리는 통증을 느꼈다.


‘나약해지지 말자. 그래야 딸을 구한다.’


속으로 되뇌이며 몇 번이나 다짐했다.

그리고 하염없이 걸었다.

사막을 걸은 지 꽤 긴 시간이 지났을 때 지면이 흔들렸다.


‘이번에도 아무것도 느껴지지 않았어.’


유리는 검을 뽑으며 마나를 일으켰다.

그렇게 잠깐의 시간이 흐른 뒤 유리를 둘러싸듯이 5마리의 센싱 버그가 모래를 뿜으며 나타났다.


‘5마리!? 어째서? 분명히 밤에 덮친 벌레는 10마리였을 텐데.’


유리는 그것에 관한 생각을 이어가지 못했다.

5마리의 벌레들이 유리를 향해 동시에 머리를 떨궜기 때문이다.

그래도 준비를 하고 있었던 만큼 그 공격을 못 피할 리는 없었다.


‘일단 이 녀석들을 베고 다시 생각하자.’


숨 쉬듯이 마나를 돌려 끌어올렸다.

일련의 행동은 찰나의 순간에 이루어져 벌레들의 머리가 그에게 닿기까지는 아직 거리가 있었다.

판단을 빠르게 끝냄과 동시에 자리를 벗어나며 검을 휘둘렀다.

한 마리의 주둥이 일부가 잘려나가며 모래 위로 떨어졌다.


끼에엑!!!


주둥이가 베인 벌레가 요동치며 다른 벌레들과 부딪혔다.

삽시간에 벌레들 사이에 혼란이 찾아왔고 유리는 그 속에서 기민하게 움직였다.

검으로 가르거나 신체를 도려냈다.

왼손에 단검도 같이 쥐어 베는 것을 모자라 아예 찢어냈다.

벌레는 하나둘씩 장기와 체액을 쏟아내고 흘리며 모래 위로 쓰러졌다.


‘조사해 봐야겠지. 그리고 상황이 변한 것은···. 뭔가가 일어나고 있는 건 확실한데 내가 어떻게 할 수 있을지나 모르겠군.’


우선 자신에게 화를 입혔던 독에 대비하기로 했다.

로브를 길게 찢어 물을 적시고 입과 코를 가린 뒤에 머리 뒤로 묶었다.

주의와 긴장을 하며 벌레들의 사체에 가까이 다가갔다.

몸체가 워낙 큰 탓에 베인 부분 중 한 군데를 조사하는 데에도 상당한 시간이 걸렸다.


‘여태까지 조사된 것들과 다른 건 없어.’


계속 조사를 하던 중 유리의 눈에 은은한 빛이 흘러들어왔다.


‘뭐지?’


그것에 가까이 다가간 유리는 정체를 확인할 수 있었다.


‘푸른색의···, 보석?’


유리는 즉시 단검을 꺼내 그 부분만을 도려내어 보석을 떼어냈다.

물을 꺼내 살점과 피를 흘려보내고 손상이 가지 않게 붙어있는 살덩이를 떼어냈다.

깔끔한 모습으로 나타난 보석은 손바닥만 한 크기와 함께 영롱하며 완연한 푸른색을 띠었다.


‘나머지 사체들에도 있나 확인해봐야겠어.’


남은 4구의 사체도 자세히 조사했다.

그것들에서도 똑같은 보석이 발견되어 총 5개의 보석이 유리의 손으로 들어왔다.

그는 4개의 보석을 배낭에 집어넣고 오른손에 쥐어진 하나를 가만히 바라봤다.


‘지금 이 보석을 쥐고 바라보고 있는데도 보석이 없는 것처럼 느껴져.’


벌레들의 사체를 바라본 뒤 다시 보석으로 시선을 돌렸다.


‘이게 내 감각을 뚫고 벌레들이 접근할 수 있었던 원인이었던 것 같은데.’


유리는 싸늘한 시선과 함께 손에 힘을 줘 보석을 부쉈다.

보석은 영롱한 푸른빛은 사라지고 탁한 빛을 내는 몇 개의 돌조각이 됐다.

무슨 일이 일어나지는 않았다.

그리고 그제야 돌조각이 된 보석의 존재를 확실히 느낄 수 있었다.


‘소크테라의 말대로라면 이런 것은 현재 인간의 마법으로는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니 100의 확률로 주술사의 짓이겠지.’


고개를 돌려 벌레들의 사체를 바라봤다.


‘이 벌레들의 주인도 주술사일 확률이 높을 테고.’


보석이 아닌 다른 특이점이 있나 추가로 확인을 했지만 그런 것은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다시 걷기 시작했다.


‘운이 좋으면 주술사를 금방 만날 수도 있겠어. 회귀 전에 이럴 것을.’


유리는 부지런히 이동했다.

달이 지고 해가 떠올라 차가웠던 모래가 다시 뜨겁게 달궈졌다.

여전히 공기를 무겁게 짓누르는 살기 때문인지 어떠한 생물도 유리의 근처에 오지 않았다.

센싱 버그를 제외하고는.

유리는 자신이 베어버린 3마리의 시체를 확인했다.

특이한 부분은 없었다.


‘역시 보석이 몸에 박혀있지 않아 기운을 숨기지 못하는 건가.’


유리는 걷다 말고 잠시 멈추더니 뒤를 돌아봤다.

그곳에는 끈적한 체액을 흘리는 벌레들의 사체가 있었다.


‘이 시간에도 벌레들은 나타나지 않았는데. 회귀 전과 바뀐 상황을 신경 쓰지 않을 수가 없겠어.’


사체를 바라본다고 답이 나오는 것은 아니기에 시선을 거두고 다시 발을 부지런히 옮겼다.

회귀 전과 상황이 변하기는 했으나 문제가 해결되는 것은 아니었다.

주술사의 것처럼 보이는 흔적을 발견하기는 했다.

그러나 발견만 한 것일 뿐 별다른 도움이 되지는 못했다.

모래 위를 이동한 지 몇 시간째 머리 위에 있던 해가 지평선에 걸렸다.


‘이때 죽었었지.’


죽음을 떠올리며 발걸음을 또 내딛는 순간 갑자기 유리가 밟았던 곳을 중심으로 땅이 가라앉았다.

그리고 점점 그 아래로 빨려 들어갔다.


‘모래 늪인가.’


유리는 당황하지 않고 침착하게 마나를 끌어 올려 벗어나려 했다.

하지만.


‘마나가 모이지 않아?!’


모래 늪을 빠져나가기 위해 다시 마나를 끌어 올렸지만 모이지 않고 대기 중으로 흩어졌다.


‘어떻게?!’


이 순간만큼은 침착함을 유지하던 유리도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떻게 해서든 모래 늪을 벗어나기 위해 힘을 주어 발버둥을 쳐보았지만 그럴수록 유리의 몸은 무서운 속도로 빨려 들어갔다.

모래 늪에서 발버둥 치기를 멈추고 이내 온몸에 힘을 풀었다.

빨려 들어가는 모래에 몸을 맡겼다.

그렇게 허리와 가슴, 그리고 어깨, 목을 지나 머리까지 늪으로 들어갔다.

그의 모습은 사막에서 발견할 수 없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1달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49 49화 21.01.10 21 0 12쪽
48 48화 21.01.09 23 0 13쪽
47 47화 21.01.08 17 0 13쪽
46 46화 21.01.07 20 0 12쪽
45 45화 21.01.06 20 0 12쪽
44 44화 21.01.05 20 0 12쪽
43 43화 21.01.04 20 0 13쪽
42 42화 21.01.03 20 0 12쪽
41 41화 21.01.02 20 0 12쪽
40 40화 21.01.01 20 0 12쪽
39 39화 20.12.31 19 0 13쪽
38 38화 20.12.30 17 0 13쪽
37 37화 20.12.29 22 0 12쪽
36 36화 20.12.28 22 0 13쪽
35 35화 20.12.27 25 0 12쪽
34 34화 20.12.26 21 0 14쪽
33 33화 20.12.25 17 0 13쪽
32 32화 20.12.24 17 0 12쪽
» 31화 20.12.23 19 0 12쪽
30 30화 20.12.22 20 0 12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