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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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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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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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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882

작성
20.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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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쪽

13화

DUMMY

우리가 저택에서 풀려나고 경찰의 조사를 받게 된지도 꼭 이틀이 흘렀다. 우리가 글리치 시티 경찰서의 좁은 방에서 심문을 받는 동안, 경관들은 저택을 빠짐없이 조사했고 곧 창고에서 내부 회로가 새까맣게 탄 3번째 의체를 발견할 수 있었다.


루돌프 씨와 로자 씨가 먼저 심문에서 풀려났다. 경찰은 혈육인 그들이 저택의 사건과 관련이 없다고 판단하고는 심문 3시간 만에 그냥 보내버렸다. 듣기로 로자 씨는 머리를 식히기 위해 여행을 가고, 루돌프는 아론의 남은 재산을 정리한다고 하던가.


저택은 팔아버린다고 들었다.


나는 3번째로 심문에서 풀려났다. 형사들에게 내가 추리하고 밝혀낸 정보들을 3번씩이나 반복해서 말하고 나서, 그들은 미심쩍다는 표정으로 나를 석방했다. 궁금하면 직접 현장에 가보지 그래.


유리아 부인은 아직 구류상태였다. 우선 주거침입죄가 적용되는 데다, 제임스와 합을 이루어 침실에서 소피아v2를 살해한 것인지에 대해서는 살인죄인지 재물손괴인지 결론이 나지 않았다. 앞으로 재판은 몇 달을 이어가야 할 듯싶다.


3일만의 귀가지만 체감상으로는 한 달처럼 느껴졌다. 로자와 루돌프가 먼저 왔다 갔는지 그들의 서명이 담긴 작은 상자가 놓여있었다.


“흐음... 사진? 의뢰비를 기대했지만 역시 무리인가.”


여기서 의뢰비를 걸고 넘어지면 천하의 개쌍놈 취급받겠지. 집주인인 유리아 부인도 잡혀간 이상 이번 달 집세는 안 내도 되는 건가. 사진에는 익숙한 얼굴과 낯선 얼굴이 있었다.


“이건 생전의 아론 씨고, 이 여자는 소피아인가.”


사진 속의 소피아는 어깨 길이의 구불구불한 갈색 머리카락과 지성이 느껴지는 갈색 눈동자의 여인이었다. 둘은 정면을 보며 환하게 웃고 있었다. 뒤에 글리치 시티를 흐르는 강이 보이는 걸 보니 데이트 코스에서 찍은 거겠지.


다른 사진은 유리아 부인과 제임스가 찍혀있었다. 평소 입고 다니던 고딕풍 드레스와는 달리 깔끔한 하녀복을 입은 유리아 부인이, 마찬가지로 집사복을 입은 제임스 씨와 같이 손을 붙잡고 의자에 앉아있었다.


사진을 뒤집어보자 누군가의 서명이 적혀있었다. 아니, 휘갈겨 쓴 글씨라서 서명인 줄 알았지만 누군가가 이 커플을 위해 쓴 축하 인사였다.


‘둘의 맺음을 축복하며. 아론이.’


나는 사진을 덮고 상자 안에 넣었다. 기억은 이대로 봉인하는 쪽이 나으리라. 어쩌면 아론은 소피아가 말한 대로 쓰레기가 아니었고, 이 사건은 장대한 착각의 결과일 뿐이었다.... 이러면 더 슬프겠구나. 비난할 악이 없는 사건은 슬프기 그지없다.


“정말이지 스릴 넘치는 하루였지. 아직도 그게 다 하루 안에 일어났다니. 믿어지지 않는다니까.”


회전의자에 앉아 등을 기댄다. 고생해온 등을 받추느라 의자가 기쁘게 뻐걱거렸다. 크라우스가 살아있었더라면 이런 즐거움도 맛볼 수 있을 텐데. 안타까운 일이다.


갑자기 퍼뜩 생각이 떠올라 자세를 고쳐잡았다. 분명히 사건은 끝났을 텐데 뭔가 자꾸만 걸렸다. 소피아는 제임스가 크라우스를 죽였다고 했다. 루돌프도 인증했으니 확인된 사실이다.


2층의 부서진 감시카메라.... 소피아는 그 감시카메라가 고장났다는 사실에 대해 얼버무렸다. 소피아 이외의 누군가가 감시카메라를 부쉈다고 해도 그럴 시간이 없다. 애초에 우리가 크라우스의 시체를 발견했을 때, 우리는 모두 관제실에 있었으니까.


그러면 우리가 비명을 듣고 1층으로 달려나가고 나서 누군가가 감시카메라실에 들어가 기계를 망가뜨렸다.... 소피아라면 가능하다. 의체를 몇 개씩 가지고 있는 소피아라면 우리의 눈을 피해서 하는 것쯤은 식은 죽 먹기겠지.


제임스의 일도 있다. 제임스는 경찰에 신고도 하지않고 유리아 부인과 같이 살인을 저질렀다. 동기는 여러 가지 생각할 수 있겠지만 아마도 복수이리라. 자기가 10년 동안 모신 주인을 속이고 죽인 여자다. 감옥에 보내는 것만으로는 성이 안 찼겠지.


거기다 다른 의문점도 있다. 원본 소피아는 경찰에 체포되었다. 그런데 왜 경찰은 이미 이 사실을 눈치채고 있지 않았을까? 3번째 소피아도 원본이 어디 체포되었는지는 모르는 눈치였다. 원본 소피아는 대체 어디에 있는 걸까?


이걸로 괜찮은 걸까?


“뭐, 이제 내 관할이 아니니까. 나 같은 사립탐정은 자기 본분을 잘 알아야 오래 살아남는 법이지.”


할 일이 없어 TV를 보다가 곧바로 지루해져서 꺼버렸다. 뭔가 시간을 죽일 게 없을까 하고 고민하던 찰나 방문이 열렸다. 유리아 부인이었다.


“유리아 부인...? 재판은 잘 되었나요?”


로봇인데도 초췌해질 보일 수 있구나, 하는 수준까지 도달한 유리아 부인은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우선 날 더 지켜볼 예정이래. 배심원의 의견이 크게 작용한 거 같아. 인공지능이 재판장을 하기는 하지만, 글리치 시티는 배심원의 의견을 중시하니까 재판장으로써도 어쩔 도리가 없었겠지.”

“그래서...?”

“구속은 없는 대신 내 안구에 감시 프로그램이 깔렸어. 일거수일투족을 감시하고 뭔가 수상한 짓을 하면 근처 경찰서에 신고를 보내는 방식이지.”

“가택연금이 안 된 게 다행이군요. 저같은 못미더운 하숙인으로는 밥벌이, 아니 전기벌이가 시원찮잖아요.”


유리아 부인은 웃으며 옷걸이에 입고 온 코트를 걸었다. 나는 일부러 유리아 부인의 시선을 사로잡도록 상자의 위치를 바로잡았다.


“그 상자는 뭐야? 누구한테 선물이라도 받았어?”

“제가 아니라 유리아 부인에게 보낸 거 같아요. 루돌프랑 로자가 보내준 거예요. 여기, 사진이요.”


유리아 부인은 사진을 받아들더니 표정이 굳어졌다. 이런, 실수했다고 생각한 순간 뺨 아래로 또르르 눈물이 흘렀다.


“루돌프랑 로자에게 감사를 전해야겠어. 천금보다 더 값진 선물이야. 정말로.”

“전에는 로봇이라 눈물을 흘리지 못한다고 하지 않았나요.”

“그래, 하지만 로봇도 눈물을 흘리고 싶을 때도 있어. 하하, 냉각수가 흘러내렸네. 이런, 닦아야지.”


유리아 부인은 주섬주섬 주머니에서 손수건을 꺼내 닦으려고 했지만, 내가 내민 손수건에 멈칫하더니 미소를 지었다.


“혹시 여기에 코 푼 거 아니지?”

“제가 이런 고급 손수건에 코를 풀만큼 형편이 좋을 것 같습니까?”


우리는 서로를 바라보며 웃었다. 어쩐지, 나와 유리아 부인의 사이가 살짝 가까워 진듯한 느낌이 들었다.


“혹시 로자랑 루돌프 소식은 들었어? 내가 없는 동안 뭔가 들었나 싶어서.”

“로자는 여행갔고 루돌프는 아론 씨의 유산을 정리하고 있다는 것밖에 모릅니다. 아무래도 그 저택은 팔아버린다고 하더군요.”

“잘됐어. 그런 저택에 살아봐야 나쁜 추억만 기억나겠지. 루돌프가 오랜만에 현명한 결정을 했네. 항상 애 같았는데.”


저택에 오래 산 유리아 부인의 입장에서는 아무래도 나에 비해, 로자와 루돌프의 변화에 대해 감상이 많은 모양이었다. 마치 명문대를 졸업한 자식을 보는 부모의 입장이라고 해야 할까.


그런 자식이 한 명이 죽었으니 유리아 부인의 기분은 말이 아닐 것이다. 거기다 고강도 심문까지 겪었으니 심신이 지쳐있었겠지. 그런데도, 유리아 부인은 아무것도 아닌 것처럼 행동하고 있다.


“유리아 부인, 잠시 거기 앉아계세요. 제가 차를 끓여오겠습니다. 홍차가 좋으시죠?”


유리아 부인은 깜짝 놀란듯한 표정을 짓더니, 곧 배시시 웃었다.


“복도 나가서 오른쪽 찬장에 티백 상자가 있어. 차 종류를 표시해 놓았으니까 꺼내와. 차 솜씨, 기대하고 있을게.”


나는 복도로 나가 유리아 부인이 말한 찬장에서 티백을 꺼냈다. 포트는 바로 옆에 있어서 물을 끓이고 차를 끓이는데 불편함은 없었다. 차가 다 끓을 무렵, 나는 하숙집 현관 매트에 곱게 접힌 편지를 발견했다.


“루돌프나 로자가 보낸 건가.”


나는 편지와 김이 오르는 컵을 가지고 내 방으로 돌아왔다. 유리아 부인은 컵에 입을 대더니 눈썹을 약간 찌푸렸다.


“아직 개선해야 할 부분이 많네. 그래도 티백으로 이정도면 잘 한거야.”

“로봇인데도 차에 관심을 보이는 부인이 이상한 겁니다. 참, 현관 앞에 이 편지를 발견했습니다.”

“광고지 같은 거 아냐? 갔다 버려.”

“아니요. 꽤 고급스럽게 접혀있는데요. 광고지라면 애초에 편지지에 담지 않았겠죠. 제 생각에는 루돌프나 로자가 보낸 거 같은데요.”


유리아 부인은 내 손에서 편지를 뺏어열었다. 나는 유리아 부인을 탓하지 않았다. 나라도 그랬을 테니까. 부인의 눈은 어쩌면 로자와 루돌프가 보냈을 편지에 대한 희망으로 부풀어있었다.


거칠게 편지봉인을 뜯은 유리아 부인은 내용물을 꺼내들고 읽기 시작했다. 처음 읽기 시작했을 때의 열정은, 문장들을 읽으며 빠르게 사그라들었다.


“‘첫 번째 시련에는 성공하신 걸 진심으로 축하드립니다. 다행히도 한 명의 희생자만 내고 통과하시다니, 아무래도 운은 제가 아니라 그쪽 편인가 봅니다. 현재 루돌프 씨와 로자 씨는 제 관리 하에 있습니다.

이놈! 인질을 잡으려는 거냐! 하고 물으신다면 저야 할 말이 없습니다. 제가 이런 행동을 취하지 않는다면 여러분은 결코 두 번째 시련에 오지 않을 테니까요. 그래서 한 가지 더 인센티브를 준비하겠습니다. 두 번째 시련을 클리어하신 분은, 그 전의 시련에 가장 궁금했던 것에 대한 답변을 해드리지요.

당신이라면 거부할 수 없을 겁니다. 탐정.’”


편지를 다 읽은 유리아 부인은 말이 없었다. 나는 유리아 부인의 손에서 편지를 빼앗아 자세히 살펴보았다. 편지는 어디에서나 살 수 있는 일반지 재질이었고, 기원을 특정할 만한 뭔가는 없었다. 편지 아래에는 주소가 적혀있었다.


“이 주소는 글리치 시티 밖에 위치하는 주소입니다. 친절하게 약도까지 있군요. 어디 섬 같은데.”


글리치 시티는 바다를 낀 항구도시다. 삼각주를 이고 있는 만큼 하류에는 퇴적되어 온 섬들이 있다. 그러나 편지에 낀 섬은, 그런 섬보다 훨씬 더 멀리, 바다 한가운데에 있는 섬이었다.


유리아 부인은 편지 껍데기를 찢어버렸다. 내용물은 내가 들고 있으니 천만다행이지. 그걸로도 부족했는지, 유리아 부인은 책상을 탕 치고 일어났다.


“남의 감정을 장난감처럼 가지고 노는 놈. 나는 절대로 용서 못해.”

“그럼 오실 건가요?”

“말린다고 해도 따라갈 거야. 아니, 수영해서라도 기어코 목적지로 가고 말겠어.”


저택 사건에는 소피아 뿐만 아니라, 더 큰 배후가 있다. 그리고 그 배후는 루돌프와 로자를 납치하고 글리치 시티 밖의 섬을 옮길 만한 자금력과 행동력을 가지고 있다.


앞으로 험난한 나날이 닥쳐올 거라는 사실이 훤히 보였다.


작가의말

후속편은 나올 수도 있고 안 나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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