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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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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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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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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8,882

작성
20.09.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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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1화

DUMMY

아론 씨의 제안을 받아들인 우리는, 현관을 열고 다시 센트리건을 마주했다. 센트리건은 우리가 나타나자 반응했지만, 아론 씨가 옆에 있자 총탄을 쏟아붓지는 않고 그저 총구를 겨누기만 했다. 언제 불벼락이 쏟아질지 노심초사하는 우리를 제치고, 아론 씨는 성큼성큼 걸어갔다.


“따라오게나. 저 센트리건은 소피아가 산 것이어서 나는 자세한 사양 따위는 모르네. 하지만 소피아가 자기랑 나는 저 센트리건의 마수에는 예외가 되게 했지. 자네들도 곁에 있으면 안전하네.”

“이 광경을 소피아가 본다면, 당신이 배신했다고 알아차리지 않을까요?”

“마음대로 생각하라고 하게. 나는 더는 그녀에게 놀아나지 않을 거네. 내 아내의 소생을 약속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나온 건 아첨과 거짓말이었어. 오늘부로 종지부를 찍겠네.”


우리는 마당 어딘가 소피아가 숨어있나 하고 주위를 둘러보았다. 벽에 가까운 곳에는 사람이 한둘은 들어갈 만한 수풀이 우거져있었다.


“저런 수풀에도 숨을 수 있겠군요. 제가 소피아라면 저런 곳에 숨겠습니다.”

“내 생각은 다르네. 이 마당에 수풀 따위는 많지만, 소피아가 저런 곳에 오래 버틸 수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네. 그녀는 엘리트야.”

“엘리트인 것과 수풀 사이에서 기다리는 인내심은 별개라고 생각합니다만. 의체에 대한 전문가라면 어마어마한 노력파라는 뜻 아닙니까. 그 정도의 고생 정도는 참고 기다릴 수 있을 겁니다.”

“자네는 소피아에 대해 몰라. 지금 이 사건을 일으킨 그녀가 참을성이 있는 것처럼 보이나? 조금만 참을성이 있었어도 나인 척 변장하고 자네들을 이 저택에 가두는 짓거리 따위는 하지 않았을 거야.”


이 저택에서 일어난 살인사건과는 관련이 없기는 하지만, 소피아가 살인이 일어난 환경을 제공했다는 사실만은 명백하다. 하지만 이런 경우에는 간접살인조차도 애매하지 않을까. 기껏해야 무단침입이나 상해죄나 적용되리라.


그렇다면 대체 왜 소피아는 우리를 저택에 가두는 수고를 한 거지?


의문을 뒤로한 채로, 나는 아론 씨 뒤를 바짝 붙어 따랐다. 그는 긴 손가락으로 높은 담벼락 구석에 있는 작은 창고를 가리켰다. 손가락으로 가리키지 않았더라면 존재하는지도 몰랐을, 그런 보잘것없는 건물이었다.


“나는 저기에 소피아가 있다고 생각하네. 이 저택에 비밀통로나 지하실을 제외한 숨겨진 방은 없어. 이 저택을 지은 설계자인 내가 보증하겠네.”


그러고 보니 제임스 씨가 식품창고가 원래 바깥에 있었다가, 안으로 옮겼다고 둘째날 말했었지. 흘려들은 이야기라 깜빡하고 잊고 있었다.


“하지만 소피아가, 당신이 지하실에 잠들어있던 사이 공사했을 가능성도 있지 않습니까?”

“자네의 말도 일리는 있어. 실제로 지하실의 의체저장소도 그런 식으로 들여놓았으니까. 하지만 고작 며칠 정도로 벽이나 바닥을 뚫는 공사는 할 수 없다고 생각하네. 이 저택, 꽤 견고하게 지어서 어지간한 드릴로는 어림도 없어.”


그러므로 자기가 잠든 동안 저택에 비밀통로를 짓기 위해 대규모 공사를 하는 건 불가능하다. 아론 씨는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집주인이 그렇게 말하는데 반박이 여지가 없다. 나중에 다른 증거라도 나오면 모를까.


지금까지 침묵을 지키고 있던 루돌프가 입을 열었다.


“아버지, 지금까지 어머니를 되살리기 위해 소피아의 명령을 듣던 건 알겠어요. 거기에 대해 왈가왈부하지는 않을게요. 하지만 소피아가 아버지를... 이 꼴로 만들고 나서도 그녀의 의도에 대해 의심하지 않았던 건가요?”

“....물론 의심은 하고 있었단다. 내 아들아. 하지만 나는 우유부단했어. 대체 어떻게 해야 할지 몰랐단다. 너희가 내 저택에 다시 들어왔다는 사실은 알고있었지만.... 소피아는 내게 너희들과 접촉하지 말라고 했단다.”

“....하지만 왜요?”

“이유는 모르겠구나. 그녀가 뭘 꾸미고 있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소피아는 다른 목적이 있었다는 말인가. 도저히 그 목적이 뭔지 모르겠다. 로자 씨와 루돌프 씨 역시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그때, 갑자기 로자 씨가 목청을 높였다.


”그렇다면 크라우스 오빠가 죽은 게 고작 아버지를 각성시키기 위해서였다고요? 그렇게 말씀하시는 건가요? 당신이라는 사람은 당신 아들이 죽었는데...!“

”......할 말이 없구나. 나를 용서해달라는 말은 하지 않겠다. 하지만 부디, 이 못난 아비에게 속죄할 기회라도 다오. 내 손으로 모두 끝내마.“

”아니야. 이건 모두 나 때문이야.“


유리아 부인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모두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그녀는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억누르지 못해 부들부들 떨었다.


“나랑 제임스가 둘째 날 밤 너인 척하는 소피아를 살해하지만 않았더라도 이런 일은 벌어지지 않았을 거야. 이건 그 살인의 복수가 틀림없어. 내 책임이야 아론. 내 책임이야...”


아론 씨는 죄책감에 몸부림치는 유리아 부인의 머리를 쓱쓱 쓰다듬었다. 유리아 부인은 가만히 흐느끼며 그 손길을 받아들였다.


“너랑 제임스는 그저 당시 옳다고 생각했던 행동을 했어. 그러니 자책할 필요 없어.”

“하지만! 나는 그때 소피아가 널 죽인 줄 알았다고! 그래서 문답무용으로 살해를 결심했지! 하지만 여기 네가 버젓이 살아있잖아! 그럼 대체 내가 해왔던 행동은... 그렇게만 보면 나는 소피아보다 더 나쁜 놈이 되는 거잖아-”

“하지만 난 여기 살아있지. 그거면 된 거야. 그럼 가서 이 사건의 종지부를 찍어보자.”


유리아 부인을 뒤로하고 아론 씨는 자그마한 창고의 문손잡이를 잡았다. 예상외로 문은 쉽게 열렸다. 내부는 조명이 들어오지 않아 어두컴컴했다. 아론 씨는 벽면을 더듬거리며 중얼거렸다


“이쯤 어디 전등 스위치가 있어야 하는데..... 억!”


외마디 비명과 함께 아론 씨의 몸이 뻣뻣하게 굳더니 바닥에 쿵 하고 쓰러졌다. 나무토막처럼 뻣뻣해져서 움직이지 않았다.


“소피아....!”


유리아 부인이 외마디 비명을 토해내는 것과 동시에, 나는 리볼버를 들어 올렸다. 소피아가 나타나면 금방이라도 발포할 생각이었다. 그러나 창고의 어둠은 여전히 그대로였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칠흑을 이기기 위해서인지, 다들 목소리를 높였다.


“우리를 무시할 생각이냐! 아론 씨를 당장 원래대로 돌려놓아라!”

“아버지를 원래대로 돌려놔! 이 미친년아!”

“이대로 계속 버텨도 불리해지는 건 당신 쪽일 텐데요...!”


유리아 부인의 말이 끝나자마자 불이 환히 켜지면서, 반대편 벽에 갈색머리의 여자가 떡하고 드러났다. 프로젝터식 영상인가! 올려다보니 천장에 빔프로젝터가 소피아의 영상을 쏘고 있었다. 영상 속 소피아는 표독스레 말했다.


“그 의체에게 말 걸어서 뭐하려고? 그건 그저 껍데기일 뿐이야. 안에 들어갈 사람이 없으면 마네킹이나 똑같지. 그럴 바에는, 여기 있는 나, 진짜 소피아에게 말 거는 게 좋지 않겠어?”


그녀의 도발을 무시하고 나는 머리를 굴렸다. 저 의체 안에 진짜 소피아가 들어가 있고, 어떻게든 빔프로젝터와 연결해 우리를 도발하고 있을 가능성도 있다. 영상 속의 소피아는 자랑스레 선언했다.


“자, 봐봐, 범인을 찾으러 왔는데 지금 여기 있잖아. 너희는 자꾸 날 범인이라고 하는데, 그럼 말해 봐, 나는 어떤 사건의 범인이게?”


나는 곧바로 대답했다.


“당신은 어떤 사건의 범인도 아닙니다. 적어도 이 저택 내에서 일어난 사건은 모두 개별적으로 일어난 일이죠.”

“그래, 맞아. 하지만 너희는 아론의 말만 듣고 날 잡으러 왔다는 말이야? 그럼 바로 여기있네. 그래서 어쩌게?”

“당신은 우리 모두를 저택 안에 잡아두었습니다. 아론 씨와 함께 있던 당신은, 사랑에 목매어 아론 씨를 의체에 옮기고 가면극을 했습니다. 그리고 당신의 다른 자아가 살해당하자, 센트리건을 가동시켜 저택에 가둬놓았죠.”


적어도 이게 저택에 일어난 사건들의 전말이다. 그러나 소피아는 감명받은 것 같지는 않았다.


“잘 정리했어. 탐정. 하지만 여기에서는 한가지 문제가 생기네. 만약 내가 복수를 하고 싶었다면, 센트리건 대신 경찰을 부르는 게 더 빠르지 않았을까? 경찰이 조사하면 범인이 제임스랑 유리아인줄은 드러났을 텐데.”

”당신은 사랑 때문에 아론 씨를 의체에 옮긴 사람입니다. 당신이 그저 경찰을 부르고 그걸로 마무리할 거라 보기는 힘들죠.“


지금까지는 이쪽이 주도권을 잡고 있다. 하지만 지금으로서는 소피아가 유리한 위치에 있다. 절대로 소피아가 그 사실을 깨닫게 해서는 안 된다. 나는 계속해서 질문했다.


”왜 아론 씨를 셧다운한 거죠? 아론 씨가 당신을 배신했기 때문입니까?“

”왜냐하면, 그건 아론이 아니니까. 프로그램



”아론 씨를 ‘고작 프로그램’으로 다운그레이드 시킨 건 당신이지 않습니까. 당신의 손에 아론 씨는 6일 전 살과 피를 가진 인간에서 의체로 변경된 겁니다.“

”아니, 내 말을 오해한 모양인데. 아론은 6일 전 이미 죽었어. 이 사실은 몰랐나 보지?“

”헛소리!“


방금의 말은 내 입에서 나온 게 아니라 로자 씨가 말한 것이었다. 하지만 로자 씨가 외치지 않았더라면 대신 내가 외쳤으리라. 소피아가 말한 내용은 그만큼 터무니없었으니까.


하지만 소피아의 수는 성공했다. 이제 우리는, 소피아에게 그 설명의 해명을 들으면 안 되는 처지로 전락하고 말았다. 나는 아닐지 몰라도, 삼남매와 유리아 부인은 아니리라. 소피아는 말꼬리를 늘이며 놀리듯 대답했다.


”아론 씨는 당신이 정지시킨 의체에 있었습니다!“

”아니, 당신 정말 그 말을 누구 입에서 들었는지 기억 못해? 잘 생각해 봐. 첫날의 누구가 당신에게 말했는지...“


첫날에 내게 말했던 사람...내게 말했던 사람은....


”소피아, 당신이었죠. 당신이 아닌 다른 소피아.“

”그래, 나는 세 번째 소피아야. 첫 번째는 살과 피를 가진 진짜 인간, 둘째는 살해당한 아론의 의체, 그리고 셋째는 여기서 대화하는 나.“


이거 점점 복잡해지는군. 지난 6일 동안 이 저택에는 두 명의 소피아가 있었다. 한 명은 아론행세를 하고, 또 다른 한 명은 무슨 일이 일어났을 때를 대비해 지하실에 있던 백업본이었다. 그 백업본이 지금 우리를 마주하고 있는 장본인이었다.


.....뭔가 이상하다. 지금 대화가 어느 방향으로 흘러가고 있는 거지? 지금 소피아가, 나는 지금 아론을 죽였다고 자백하려는 건가? 그럴 리 없다. 우리를 센트리건으로 저택에 나가지 못하게 하지 않은가! 소피아는 그런 나를 비웃듯 질문했다.


“당신, 지금 센트리건 생각하고 있지? 그럼 생각해 봐. 센트리건이 당신을 모두 밖으로 못 나가게 하기 전에 무슨 일이 있었지?”

“그게 무슨...아.”

“그 반응을 보니 깨달은 모양이네. 그래, 아론의 의체가 거기 있는 유리아랑 지금은 하늘나라에 있는 제임스 때문에 살해되었지. 정확히는 ‘또 다른 내’가 있던 아론의 의체지만. 센트리건을 개라고 생각해 봐. 충직한 주인을 잃은 개는 무슨 행동을 할까?”


소피아가 뭘 말하고 싶은 건지 감이 잡히기 시작했다. 그러나 로자 씨는 아직 감이 안 잡히는 모양이었다.


“탐정님, 저.... 년이 뭘 말하고 있는 건가요?”

“소피아는 누구의 개입도 없이 센트리건이 스스로 우리를 가둘 가능성을 말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항상 의문을 품고 있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센트리건을 둘째 날 밤과 셋째 날 아침 사이에 조작했는지. 용의자라면 소피아밖에 없습니다만, 그 기능을 모르는 이상...”


센트리건의 기능은 그걸 설치한 사람, 소피아만 알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소피아의 입에서 나오는 말마다 진위를 분석해가며 따져야 할까? 제길, 코너로 몰아넣었다는 느낌이 팍 들었는데! 그때, 유리아 부인이 말을 꺼냈다.


“모리건, 나 하나 말할 게 있어.”


그녀의 표정은 진지해 보였다. 나는 직감적으로, 유리아 부인이 말하고자 하는 내용이 사건해결에 중요한 단서가 될 것을 직감했다.


“나, 그때 제임스랑 같이 아론인척 하는 소피아를 살해하고 나서, 나는 몸을 숨기기 위해 2층 창문에서 뛰어내렸었거든. 그때 센트리건은 날 쏘지 않았어. 그러니 소피아가 센트리건을 조작했을 리는 없어. 이제 말해서 미안해.”


이런 중요한 정보를 지금 말한 유리아 부인에게 화가 났지만, 지금은 어쩔 수 없다. 정보의 파편을 모아 짜 맞추는 게 우선이다.


“왜 2층에서 뛰어내린 겁니까? 센트리건은 아론 씨와 친지들을 제외하고 센트리건이 통과하지 않는다는 걸 알 텐데요.”

“왜냐면 실험을 해보았거든. 내가 처음에 운전기사로 가장해 삼남매와 같이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는 말은 해줬지? 풀숲에 숨은 다음 센트리건이 처음에 경고만 한다는 걸 알고, 그 한계를 테스트해보려고 했는데... 예상 외로 아무 반응도 없었어.”

“그렇지만 센트리건이 이상작동하기 시작한 셋째 날 아침에는 안 통했고요?”


유리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응, 너희들이 허둥대는 걸 저택 안에서 보고, 안 보는 사이 시험해보려고 했지만, 된통 당했다고. 하마터면 진짜로 총알에 맞을 뻔했어.”

”하지만 그건 이상합니다..... 센트리건을 설치한 사람은 소피아. 소피아라면 애초에 당신을 첫째 날에도 저택에 들여보낼 리가 없습니다. 당신은 제임스 씨를 제외하면 가장 내부사정에 정통하니까요.“

”....그렇겠지?“

”하지만 소피아가 센트리건의 패스 목록에 부인을 넣었다는 말은.... 소피아가 유리아 부인을 이 저택에 들여보내고 싶었다는 말이 됩니다만.“


소피아는 유리아 부인을 들여보내고 싶었다. 왜? 그녀의 가장 큰 장애물이라 생각했을 텐데도. 그렇다면 애초에 전제 자체가 잘못되었다는 걸까?


나는 지금까지 소피아의 동기가, 아론 씨의 유산을 타 먹으려는 줄 알았다. 결국 삼남매도 그 유산 때문에 저택에 왔으니까. 그래서 유산상속에 방해가 되는 사람들을 제거하려는 줄 알았다. 하지만 실제로 저택에 일어난 사건들은 소피아가 일으키지 않았다.


그렇다면 전혀 다른 동기가 있다는 말이 된다. 그때 우리의 논의를 듣고 있던 소피아가 시원스레 말했다.


”그래, 맞아. 나는 너, 유리아, 그리고 아론의 자식이 모두 이 저택에 들어오기를 원했어.“

”하지만 왜...?“

”간단해. 반대로 생각해 봐. 내가 유리아를 저택 안으로 안 들여보낼 이유가, 내가 아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알아차릴 가능성이 높아서 그랬다면, 그 반대의 경우는 뭐가 있을까?“

”설마... 당신 유리아 부인이 당신이 아론이 아니라는 걸 눈치채주길 바랬던 겁니까?“

”그래, 맞아. 하지만 나는 아론의 친척들과 당신의 청문회를 기대했지, 내 방에 슬쩍 들어가 살해할 거라고는 꿈도 못 꿨지만 말이야. 내가 아무래도 유리아 부인을 얕보았던 것 같아.“


유리아 부인은 아무 말도 못하고 수치심으로 가만히 얼굴을 붉히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아까 유리아 부인은 저기 쓰려져 있는 ‘아론’에게 자기 때문에 이 사단이 났다고 고백했었지. 지금은 가만히 내버려 두는 게 최선일 것이다.


”당신은, 당신이 아론이 아니라는 사실을 다른 사람이 증명하기를 바랐다. 하지만 어째서? 그렇다면 애초에 당신이 아론 씨의 의체를 차지할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애초에 내가 직접 아론이 아니라고 말했다면, 누구도 믿지 않을 테니까. 오히려 농담이거나 거짓말이라 생각하겠지. 내가 당신을 고용한 것도 그래서야, 탐정. 비록 나는 첫째 날까지의 기억밖에 없지만.“

”왜냐하면 의식의 업로드는 지하실에 가서 물리적으로 접속해야 하기 때문이겠죠. 그리고 당신은 둘째 날부터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았어요.“

”그래, 나도 왜 당시의 내가 그런 행동을 했는지 모르겠다니까. 짐작은 가는데 말이지.“

”그게 뭡니까?“


화면 속 소피아는 한숨을 쉬었다.


”아마 두려웠던 게 아닐까. 진실을 밝힐 준비가 되지 않아서 자책감으로 두려워했던 거라고 생각해. 그래서 방안에 박혀서 이것저것 고민하며 마음의 준비를 했을 거야. 기억은 이어져 있지 않지만 나라도 그랬을 거야.“

“하지만 유리아 부인에게 살해당한 소피아와 당신은 같은 사람입니다.”

“같은 사람이 되는 기준은 어디서부터일까? 어제까지만 해도 똑같은 생각을 가졌다 해도, 다음 날부터 두 사람으로 분열된다면, 그 둘은 서로 다르게 생각하기 시작할 거야. 소피아는 다른 누구도 믿을 수 없다는 걸 알았어. 그래서 자기 자신을 협력자로 이용한 거야.”


그렇다. 소피아가 의식을 의체에 업로드한 이유. 나는 그저 살아 돌아온 아론 씨로 위장하기 위해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유리아 부인이 중얼거렸다.


”그렇다면 아론이 당신을 살해한 것에 대해 날 위로하며 머리를 쓰다듬었던 것도...“

”아까도 말했잖아? 자기를 책망할 필요 없어. 나는 비록 아론의 형상을 빌려서 말할 수밖에 없었지만, 당신으로서는 옳다고 생각한 행동을 한 거야. 그러니, 아론을 생각해서라도 자책하지 마.“

“소피아...”


유리아 부인이 울먹였다. 로봇이라 눈물을 흘릴 수는 없지만, 인간이었다면 벌써 몇 번이고 펑펑 눈물을 흘렸으리라. 그녀는 마침내 진정하고 화면 속 소피아를 똑바로 바라보았다.


“소피아, 당신이 진정 선의가 있다면 말해주세요. 그날, 6일 전에 무슨 일이 있었나요?”


화면 속 소피아의 얼굴이 어둑어둑해졌다. 당시의 상황을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괴롭다는 것처럼...


”나는 그때까지만 해도 아론이 진지하게 자기 죽은 아내, 켈리를 살리려던 거라고 믿고 있었어. 당시 그의 애인 자리를 차지하기는 했지만, 항상 내게 과분한 자리라고 느끼고 있었어. 그래서 일에 진지하게 임했지만...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되었어.

나는 켈리를 살릴 수 없었어. 내 기술과 노력으로도 죽은 자에게 삶을 불어넣을 수는 없었던 거야. 나는 이 사실을 아론에게 알려야 하나 고민했어. 결국, 고민 끝에 6일 전 아론의 침상 그 사실을 말했어. 그리고 하나 충격적인 소식을 듣게 되었어.“


소피아는 잠시 눈을 감았다. 그녀가 인간의 몸을 갖고 있던 시절의 생각을 정리하는 것이겠지. 이제는 다시 닿을 수 없는 그 세계의 봄날을.


”아론은 말했어. 나는 이미 죽은 아내를 살릴 수 없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내가 그렇게 말한 건, 너를 내 곁에 묶어두기 위해서였다. 고결한 성격을 가진 너라면, 죽은 아내를 되살리는 로맨틱한 작업에 망설임 않고 협력하리란 사실을 알았지. 하지만 이제 연극은 끝났다. 너는 내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영원히 내 것이 되리라.“


화면 속 소피아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나는.... 분노했었어. 내가 남몰래 연심을 품고 있었던 사람이 이런 사람이었을 줄은.... 내 모든 노력이 배신받는 기분이었어. 머리가 새햐얘졌지. 정신을 차렸을 때, 나는 근처의 만년필을 잡고 아론의 목덜미를 연속적으로 찌르고 있었어.“


유리아 부인은 얼굴이 파래졌다. 그녀는 중얼거렸다.


”그래서... 확실히 피가 너무 튀어서 이상하다 싶었지만...“

”정신을 차리고 나서 내가 무슨 짓을 했는지 깨달았어. 내가 있는 곳은 아론의 자택. 도망칠 수도 없지. 그래서 나는 아무도 모르게 저택 밖으로 나왔어. 다들 자고 있어서 내가 나가는 걸 눈치채지 못했지. 저택 밖으로 나가서는 내 은신처에 있는 의식저장장치에 내 의식을 저장하고 다시 현장에 돌아왔어. 거기서 제임스에게 잡혔던 거지. 유리아도 봤을 거야.“


유리아 부인이 말한 적이 있었다. 제임스가 소피아를 제압하는 동안 경찰을 불렀다고. 그런데 사실 그 장면은, 소피아가 이미 살인을 저지르고 은신처에서 의식을 복사하고 돌아오고 한참이 지난 것이었다.


”하지만 그건 말이 안됩니다. 도망칠 수 있었으면 왜 다시 돌아왔습니까?“

”도망쳐봐야 뭐하겠어? 며칠 더 도망치게? 요즘 경찰력을 무시하지 마. 원래의 내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는 몰라. 내가 가진 가장 늦은 원본의 기억은, 은신처에서 복사한 기억이니까. 하지만 무슨 감정이었을 지는 알 거 같아.“

”그게 뭡니까?“

”죄책감.“


홧김에 사랑하는 애인을 죽여버린 사람의 심정은 얼마나 갈가리 찢겨있을까. 나는 상상밖에 해볼 수 없다.


”그럼 진짜 소피아는...?“

”지금 어디 감옥에 있어. 제임스는 거짓말한 게 아니니까 안심해. 그리고 그녀는 자기의 의지를 잇는 존재로 나를 만들었어. 분명 며칠 전만 해도 똑같은 인생을 살아오던 여자였는데, 멋대로 나를 만들어버리고 가 버린 거야.

그래서 나는 아론을 만들었어. 나는 나 자신도 복제했는데 아론이라고 뭐 대수겠어? 그리고 내가 원하는, 이상적인 아론을 만들어도 뭐 대수겠어?“


소피아는 거의 울 듯이 말했다. 이 저택에 온 첫날, 제임스 씨는 내게 소피아가 감옥에 있다고 말했다. 역시 그건 진실이었던 건가.


”하나만 물어봅시다. 그러면 저기 있는 의체에 들어간 건 단순한 컴퓨터 프로그램이라는 말입니까? 아론 씨의 일부라거나 그런 게 아니라는 거군요.“


루돌프 씨의 질문에 소피아는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이번에는 로자 씨가 격분했다.


”아버지를 그렇게 갖고 노니 좋았어? 지금 나는 아버지한테도 화나지만, 너에게도 더 화가 나. 아론은 못 되먹은 인간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내 아버지였어. 그런데...너는...이제 속 시원해?“

”용서를 구하지는 않겠어. 나는... 도망치고 있었어. 원본 소피아가 내게 생명을 주었으니, 나도 그래야 한다고 생각했었지. 의체공학자였던 내게 간단한 인공지능 프로그램은 식은 죽 먹기였지. 하지만 그는 내게 진짜 아론이었어.

나는 완벽한 아론을 만들어냈어. 새로운 몸에 밀어 넣어지고, 애인이 배신해도 맞서 싸우겠다는 의지를 잃지 않는 남자. 나는 그런 남자를 꿈꿔왔던 거야.

하지만 그건 전부 쓸모없는 일이었어. 결국 백일몽. 이제는 그 백일몽에서 해방된 때가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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