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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추리

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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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18,882

작성
20.09.10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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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3화

DUMMY

하루가 지나고 날이 밝아도 아론 씨의 행태는 변함없었다. 방 밖으로 도무지 나오지를 않았고 설령 화장실을 가기 위해 방 밖으로 나와도 1층의 자식들에게는 눈길 하나 주지 않았다.


덕분에 제임스 씨만 바빠졌다. 식품창고는 1층에만 있어서, 2층의 방에 틀어박힌 아론 씨를 위해 음식을 날라야 한다고 불평을 늘어놓았다.


“그래도 창고를 저택 안으로 옮겨서 다행이지요. 바깥에 창고가 있습니다만, 지금은 쓰고있지 않습니다. 왜 그런 걸 마당에 만들었는지 모르겠습니다만.”


1층을 점거하고 있는 크라우스, 로자, 루돌프는 그런 아론 씨의 행보를 따지고 들지는 않았다. 그들은 늙고 지친 아론 씨가 먼저 나가떨어질 것이라 믿고 있었다. 아니면 아론 씨를 가장하는 자가 누구이든 간에 그들을 만나지 않고서는 못 배길 것이라 단언하고 있었다.


“이렇게 영원히 대치할 수는 없어요. 2층의 남자도 그걸 잘 알겁니다.”


크라우스 씨의 단언이었다.


그 덕분에 오로지 나만이 1층과 2층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게 되었다. 제임스 씨는 방 안에 틀어박힌 아론 씨의 시중을 드느라 바빴기에 오히려 내 행동의 제약이 없어지게 되었다. 이제 눈치 보지 않고 조사할 수 있게 되었다.


5일 전 아론 씨가 한 번 살해당했던 장소는 아론 씨의 방이었다. 지금 내가 들어갈 수 없는 장소다. 하지만 경찰이 수사로 뭔가 수상쩍은 걸 발견해 낼 수 없었다면, 초야한 사립탐정인 내가 중요한 증거물을 찾아낼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결국 내가 얻을 수 있는 증거물은 증언뿐인 것이다. 그리고 1층에는 그런 증언 제공자들이 하는 일도 없이 뒹굴고 있었다.


“우리 아버지가 살해당한 사건이요? 비극적인 사건이죠. 죽은 아내를 버려두고 바로 다른 애인과 사귀다니. 뭔가 다른 뜻이 있지 않고서는 바로 될 일이 아닙니다.”

“다른 뜻이라면 아론 씨와 애인이었던 소피아 씨가 불륜관계였다는 말인가요?”

“증거는 없습니다만, 저희의 친모이신 켈리께서는 아버지에게 숨겨진 애인이 있다고 의심하고 있었습니다. 아버지에게 직접 따지지는 않았지만, 2년 전에 갑작스레 돌아가시기 전까지도 저희에게 틈만 나면 말씀하셨지요.”

“실례되는 질문이겠지만 켈리 씨가 어떻게 돌아가셨는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교통사고였습니다. 앞좌석에 탔는데도 안전벨트를 메지 않는 바람에....! 뇌는 다치지 않았습니다만 내출혈로 사망했었습니다.”


나는 크라우스 씨의 눈에서 슬픔과 고뇌를 보았다. 이제 크라우스 씨를 비롯한 다른 자식들이 아론 씨를 아론 씨가 아니라고 하는 것도 이해가 갔다. 이혼과 재혼은 아이가 아닌 성인들에게도 큰 상처를 남길 수 있는 사건이다.


가장 맏이인 크라우스도 20대 후반 이상으로는 안 보인다. 2년 전에는 기껏 대학생이었겠지. 가장 막내인 루돌프는 의무교육 신세를 지고 있었을 테고. 형제들끼리 보듬어주지 않았더라면 가정 자체가 파탄 났을지도 모를 일이었다.


크라우스, 루돌프, 로자는 아론 씨의 갑작스러운 변화를 아론 씨가 변했다는 사실로 받아들였다. 그 사실이 시간이 지날수록 응고되어 아론 씨가 아론 씨가 아니라는 사실로 변질되어 버린 것이다.


아직까지는 추측에 불과했지만 나름 합당한 추리라고 스스로 생각하고 있을 무렵, 나는 제임스 씨가 아론 씨의 방문 앞에서 끙끙대는 모습을 발견했다. 점심때가 훌쩍 지나있었다. 제임스 씨의 다른 손에는 김이 모락모락 나는 수프가 들려있었다.


“무슨 일입니까? 아론 씨가 문을 열어주지 않기라도 합니까?”

“예, 아까부터 주인님께서 아무런 응답도 하지 않고 계십니다. 전에는 이런 일이 없었는데..... 역시 자식 분들이 온 게 그렇게 상심할 만한 일이었던 걸까요? 주인님을 오랫동안 섬겨왔지만 이런 적은 손에 꼽았습니다.”

“그 정도로 이상한 일이라는 거군요.”


나는 수고하셨습니다, 라는 말로 대화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가려 했었다. 그러나 1층에서 아론 씨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서인지 마음에 뭔가 걸렸다.


“언제 아론 씨를 마지막으로 봤습니까?”

“오늘 아침에 아침식사를 가지러 갔던 때 문 건너 목소리로만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아침식사를 문에 있는 창을 열고 드렸습니다. 방금 전부터 그 창을 열려고 했습니다만 안에서 잠겨서 말입니다.”

“그래서 직접 보지는 못한 거군요. 그저 목소리만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모리건 탐정님께서는 주인님이 방 안에 없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제임스 씨는 내게 조용히 물었다.


“제임스 씨, 아무래도 문을 따고 들어가야 할 것 같습니다. 아직까지도 응답이 없는 걸 보면 어디가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으십니까?”

“.....확실히 그렇군요. 저희 주인님께서는 시간에 철저하신 분이십니다. 무슨 일이라도 일어나지 않는 이상은 말입니다.....”


아무래도 그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에 대해 생각이 미쳤는지, 제임스는 주머니에서 고풍스러운 디자인의 열쇠를 꺼내 문고리의 열쇠구멍에 넣고 돌렸다. ‘주인님, 용서해주십시오’를 중얼거리면서 제임스는 아론 씨 방문을 활짝 열었다.


문이 열리자마자 제임스는 쏜살같이 들어갔다. 방 안에는 아무도 없었다. 침대에는 이불보가 흐뜨러져 있었지만 사람의 온기는 일절 없었다.


“....이럴 수가. 주인님께서는 오늘 밤 나가신다는 말이 없으셨습니다. 저는 감시카메라 영상을 찾으러 가보겠습니다. 탐정님은 어서 경찰에 연락해주십시오!”


그 말과 함께 제임스는 스프링처럼 밖으로 뛰어나갔다. 나는 핸드폰으로 경찰에 연락하려 했지만 통화권 이탈이라는 메시지만 화면에 뜰 뿐이었다.


‘무슨 헛소리야! 여기는 부자동네 한가운데라고! 드디어 내 핸드폰이 맛이 갔나? 하긴 돈이 없어서 한 번도 교체한적 없으니까...’


나는 아래층으로 달려 내려가 아론 씨 자식들의 얼굴에 떠오른 의문에도 각자의 핸드폰을 빌려달라고 요청했다. 그들은 얼떨떨해하며 순순히 핸드폰을 건네주었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번호를 눌렀다. 죄다 불통이었다.


이쯤 되자 그들도 슬슬 상황을 파악하기 시작했다. 크라우스가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모리건 씨, 대체 무슨 일입니까?”

“정황은 잘 모르지만 아론 씨가 실종되었습니다. 그리고 보시다시피 모든 통화선이 끊겼고요. 유니넷도 마찬가지라 생각합니다. 저는 경찰서에 가보겠습니다.”

“....저, 저희도 같이 가죠. 이건 탐정님만의 일이 아닙니다. 로자! 루돌프! 우리는 경찰서로 간다! 날 따라와!”


크라우스가 소파에서 일어서자 아직 무슨 일인지 완전히 파악하지 못한 로자는


나와 크라우스, 로자, 루돌프는 현관을 넘어 마당을 가로질렀다. 마당의 센트리건은 우리들의 움직임에 즉각 반응했다. 탕! 돌조각이 내 신발 위에 튀었다. 센트리건의 총구는 이쪽을 향해있었다. 로자는 털썩 주저앉아 중얼거렸다.


“이....이게 무슨 일이래요. 시스템 오류라도 난 걸까요?”

“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분명히 올 때는 안 이랬는데요. 여기, 이 회색 밴드를 차면 공격을 받지 않는다고 했는데.”


아론 씨가 말한 바로 센트리건은 자기가 근처에 있지 않는 한 공격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리고 제임스 씨는 내게 손목에 차는 회색 밴드를 주면서 이게 센트리건으로부터 보호해줄 거라고 했다.


“저희는 그런 밴드 없어도 됐었어요. 만약 올 때도 이랬으면 지금 여기 있을 리 없겠죠. 세상에, 이게 무슨 일이래.”


나는 조심스레 한 발자국 앞으로 내디뎠다. 센트리건의 총구가 즉시 홱 돌아 나를 향했다. 총구 안의 검은 죽음을 마주하는 기분은 유쾌하지는 않았다.


센트리건이 총구를 거두자 우리는 약속이라도 한 듯 두발자국 뒤로 물러났다. 그러자 센트리건의 총구는 지잉 소리를 내며 우리를 추적했다. 크라우스는 고개를 흔들더니 뒤돌아 현관으로 향했다.


“일단 안으로 들어갑시다. 그리고 제임스에게 술을 가져다주라고 해야겠습니다. 정말로 그 자가 이 센트리건을 조작하고 있지 않다면 말입니다. 탐정님, 이 저택에서 뭔가 이상한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


그들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아 침묵에 빠졌다. 나는 반대편 소파에 앉아 방금 아론 씨가 실종되었다는 사실을 그들에게 설명했다. 예상과 다르게 그들은 기뻐하는 기색이 아니었다.


“설령 이혼 후 즉시 애인을 택한 못 되어먹은 남자라 하더라도 저희의 생물학적 아버지였습니다. 슬퍼하는 건 자식으로써의 당연한 권리입니다.”

“하지만 어제는 당신들이 직접 아론 씨가 가짜라고 말했던 것 같은데 말입니다.”

“하하, 가짜든 아니든 무슨 상관입니까? 거기다 그 말을 한 건 로자입니다. 제가 아니란 말입니다. 저희 어머니도 항상 로자가 심약하다고 말하고는 했지요.”


맞다. 로자는 심약한데다 미신을 잘 믿는다고 어제 들었었다. 어제 크라우스 씨는 오히려 로자의 ‘아론 씨 교체론’을 부정하는 측이었다.


로자는 지금 루돌프의 간호를 받고 있었다. 그러고 보니 삼남매 중에서 막내인 루돌프만이 이야기를 하지 않았던 것 같다. 아직 20대도 안 되어 보이는 그는 누나의 간호에 힘을 쏟고 있었다. 나는 손뼉을 쳐 시선을 집중시켰다.


“루돌프 씨, 당신은 지금 사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예...? 저 말입니까?”


루돌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기에게 관심이 쏠릴지 예상하지 못한 듯싶었다. 그렇기에 나는 더욱 그의 의견이 듣고 싶었다.


“네, 삼남매의 다른 분들은 이야기를 하셨지만, 당신만이 아직 입을 열지 않으셨습니다. 혹시 좋은 의견이라도 있으면 감사하겠습니다.”


루돌프는 맏이인 크라우스의 눈치를 보는 듯싶더니 조용하게, 그러나 확고하게 말했다.


“제임스가 죽였다고 생각합니다.”

“아론 씨를 말입니까.”


확실히 그렇게 생각할 수도 있다. 이 집에는 지금 다섯 명이 있다. 나, 삼남매, 제임스 씨. 그리고 세 명이서 서로를 감시할 수 있는 삼남매와는 다르게 제임스 씨에게는 알리바이가 없다. 나도 알리바이가 없지만 센트리건으로 겨냥 당했을 때 그들과 같이 있었다.


그러니 그 당시 같이 없던 사람이 범인이다. 루돌프는 지금 그렇게 주장하는 것이다.


“그리고 센트리건을 조작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희들이 경찰에 알리지 못하도록 말입니다.”


루돌프의 말에 크라우스가 반박하고 나섰다.


“하지만 그렇다면 오히려 자기에 대한 의심을 증폭하는 꼴이 되지 않을까? 오히려 자기 목을 조르는 꼴이라고 나는 생각하는데.”

“하지만 제임스만 알리바이가 없어. 우리들은 알리바이가 있고. 혹시 감시카메라를 살펴보겠다고 해놓고 관제실에서 센트리건을 조작했을지도 모르잖아.”


확실히 일리 있는 발언이었다. 하지만 그 발언에는 문제가 수두룩하게 보였다.


“죄송합니다만, 루돌프 씨. 당신의 가정은 완전히 틀렸습니다.”

“어째서죠? 저는 나름 합리적인 추리를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우선 제임스 씨의 동기부터 설명하겠습니다. 놀랄 일 없는 일이겠지만, 제임스 씨는 아론 씨의 유산을 탐내고 오신 여러분들을 굉장히 혐오하셨습니다. 제게 무슨 일이 있어도 주인님을 지키겠다고 말씀하시고는 하셨죠. 그렇다면 여러분이 한시라도 빨리 나가기를 바라지 않을까요?”


잠자코 듣던 크라우스가 고개를 끄덕였다.


“확실히 제임스가 우리를 나가지 못하게 막았다는 건 말이 안 되는군. 오히려 우리들을 빨리 나가고 싶어 해야 이치가 맞겠지. 너도 배울게 많구나, 루돌프.”

“흐으.... 하지만 제임스는 아버지의 마지막 목격자에요. 그래도 수상하다는 생각은 안 들어요? 유산을 노린 우리들로부터 빠져나가기 위해 아버지를 몰래 밖으로 내보냈을지도 모르잖아요.”

“그 추리도 역시 동기가 부족합니다. 물론 유산을 노리는 자식들을 피해 잠적한다는 건 일견 타당해보일지도 모르지만, 그래도 센트리건을 조작해서 저택 밖에 못 나가게 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탐정님은, 만약 제임스가 아니라면 누가 그랬다고 생각하시나요?”


정곡을 찌르는 질문이다. 하지만 아직까지는 결론을 내릴 만한 정보가 없었다. 이 저택에서는 6일전에 살인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지금 와서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 아론 씨가 의뢰한 6일전 살인사건과 관련이 있는 일일까.


“그렇다면 문제는 아론 씨가 어떻게 밀실에서 증발할 수 있었는가, 그리고 어제까지만 해도 멀쩡하던 센트리건이 왜 우리를 죽이려고 하는가, 이렇게 요약할 수 있겠네요.”

“외부와의 연락이 안 되는 것도 잊지 마세요. 저는 지금도 제임스가 수상하다고 생각해요. 범행을 저지르지는 않았을지는 몰라도, 공범일 수도 있잖아요.”


루돌프의 단언이었다. 더 이상 제임스에 대한 논의는 시간낭비다. 직접 본인을 찾아가는 편이 더 빨랐다. 우리는 감시카메라 관제실의 위치를 안다는 크라우스의 안내에 따랐다.


나는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면서 세 남매가 발뒤꿈치를 들고 소리죽여 움직이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차렸다. 제임스에게 자기들이 오는 소리가 들리면 안 된다는 듯이.


2층의 관제실 문 앞에 도달하자 크라우스는 문을 벌컥 열고 들어갔다. 사람 없는 의자와 빽빽한 감시카메라 영상들만이 우리들을 맞이했다. 크라우스는 바닥에 침을 퉤 뱉으며 의자를 발로 찼다.


“이것 보시오. 감시카메라로 영상을 보고 있다가 우리들이 이쪽으로 오고 있는 걸 아니 바로 내뺀 거지. 이걸로 제임스가 범인이라는 건 증명되었군. 켕기는 게 없으면 왜 도망가겠소?”


나는 크라우스의 말을 무시하고 대신 관제실 안을 샅샅이 훑어보았다. 의자가 따뜻한 걸 보니 방금 전까지만 해도 누군가가 여기 앉았었다. 루돌프는 감시카메라 화면들을 뚫어지게 보며 제임스를 찾고 있는 중이었다.


“형, 감시카메라에도 제임스가 안보여요. 대체 어디로 튄 걸까요?”


이제 완전히 제임스가 범인이라고 확정지은 루돌프는 감시카메라 화면들을 뚫어지게 바라보고 있었다. 크라우스는 그런 루돌프를 보면서 쯧 하고 혀를 찼다.


“흥, 이 저택의 하나뿐인 관리인인 주제에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는 다 꿰뚫고 있는 모양이지. 여기 있어보았자 아무 소용없다. 탐정나리, 아무래도 우리들은 범인의 마수에 빠진 것 같소. 우리들은 어디 안전한 곳에 가리다.”

“저....저도 이제 일어나서 뭐가 뭔지 잘 모르겠지만 오빠가 하는 말이니 틀린 건 없겠죠. 탐정님은 어쩌실 건가요?”


로자 역시 동의하며 나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 자기들과 함께 있으면 안전할 거라는 말이지. 나는 잠깐 생각한 후에 대답했다.


“저는 여기 남아서 무슨 단서라도 있는지 조사해보겠습니다. 제 고용주이신 아론 씨는 이제 없지만 탐정인 제 소임을 다해야 하거든요.”

“그러시든지. 하지만 밤중에 제임스가 숨어들어서 당신도 사라지게 만든 뒤 후회하지 마시오. 이런 때일수록 뭉치는 게 사는 일이오.”


삼남매는 방을 떠났다. 나는 감시카메라 모니터를 통해 그들이 1층의 거실로 돌아가는 걸 지켜보았다. 가만히 스크린을 보니 감시카메라가 저택 곳곳에 설치된 모양이다. 1층, 2층, 마당까지 한 눈에 볼 수 있었다.


크라우스는 제임스가 감시카메라의 사각지대가 어딘지 알고 있다고 말했지만 천재 수준의 기억력을 가지고 있지 않는 한 사각지대를 일일이 피해서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다. 그렇다면 답은 정해져있다. 나는 방 안 어딘가 숨어있을 제임스 씨에게 들리도록 크게 외쳤다.


“제임스 씨, 이제 그만 숨어 게시고 나와도 괜찮습니다. 삼남매는 나갔습니다. 여긴 안전해요.”


말이 끝나자마자 방에 들어오면서 눈길 한 번 주지 않았던 캐비넷 문이 활짝 열리더니 땀을 뻘뻘 흘리는 제임스가 밖으로 기어 나왔다. 그는 흐트러진 옷매무새를 매만지며 고개를 살짝 숙였다.


“감사합니다, 탐정님. 저 삼남매에게 걸렸으면 곱게 끝났을 거 같지는 않더군요. 실례지만 왜 제가 여기 있다는 걸 숨겼는지 여쭈어보아도 되겠습니까?”

“저는 제임스 씨가 아론 씨를 실종시키고 센트리건을 작동시킨 범인이 아니라고 믿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는 할 능력이 있지만 동기가 없어요. 그리고 당신이 캐비넷 안에 숨었다면 그만한 이유가 있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이유.....말입니까...... 모리건 씨, 그렇다면 범인은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제가 아니라면 말입니다.”


제임스의 말에는 자기의 결백을 증명해주어서 감사하다는 것과 자기도 범인이 누구인지 알고 싶다는 의중이 있었다. 하지만 나도 그 범인을 모른다! 탐정이 된 이상 엉뚱한 범인을 집을 수는 없으니 화제를 돌린다.


“그렇다면 감시카메라 영상에는 아론 씨의 영상이 비치지 않았다는 말이군요.”

“.....예, 어제까지의 비디오를 빨리 감기로 보고 있었습니다만 주인님께서 마지막으로 방에 들어가신 적은 어제 밤 11시경 화장실에 갔다 온 것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는 제가 아침식사를 전할 때까지 한 번도 나간 적이 없습니다.”

“감시카메라는 아론 씨의 방 안에는 없습니까?”

“저택 안의 모든 감시카메라는 복도에만 설치되어 있습니다. 방 안까지 설치하는 건 프라이버시 침해일 테니까요.”


하지만 그건 말이 안 된다. 범인이 아론 씨의 방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복도를 지나쳐야 한다. 그러나 감시카메라속 복도에는 밤중에 아무도 없었다. 창문을 통해서 넘어 간다 쳐도 그러기 위해서는 센트리건을 지나쳐야 한다. 그리고 센트리건을 무효화시키려면..... 이 곳 감시카메라 통제실에 와야만 할까? 머리가 터질 것 같다.


“제임스 씨, 하나 물어볼 게 있습니다.”

“말씀하시죠.”

“혹시 이 감시카메라 통제실에서 마당의 센트리건도 통제할 수 있습니까? 아래층 삼남매는 그렇게 생각하던데요.”


제임스 씨는 잠깐 끙끙거리며 고민하다 대답했다.


“주인님께서는 자세히 말해주시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센트리건을 마당에 설치하느라 요 이틀간 인부들이 저택에 들락날락거렸습니다. 하지만..... 주인님 자신이 살해당하고 나서, 다시 돌아온 주인님은 주변에 강한 불신감을 가지고 계셨습니다. 그러니 언제든 손에 닿을 수 있는 장소에 두셨을 겁니다.”


아론 씨와 가까운 장소라면 당연히 자기 방일 것이다. 최근 들어 통 밖으로 나온 적이 없다고 했으니까. 하지만 그 말은.... 그 말은.... 우리가 센트리건에 겨눠지고 있을 때 아론 씨의 방에 누군가가 있었다는 말인가?


아니다. 그럴 리 없다. 복도의 감시카메라에는 아무것도 찍히지 않았다. 거기다 아론 씨를 납치했을 때 어떤 조작을 해뒀을지도 모른다. 애초에 센트리건의 비밀은 아론 씨밖에 모르지 않나.


“우선 아론 씨의 방으로 가봅시다. 제임스 씨의 말이 맞다면 아론 씨의 방에 우리가 모르고 넘겨짚었던 센트리건 스위치 같은 게 있겠죠.”


관제실은 2층에 있었던 덕분에 1층의 삼남매의 눈에 띄지 않고 제임스와 같이 갈 수 있었다. 만약 눈에 띄었더라면 제임스와 함께한 공범이니 뭐니 하며 한바탕 난리가 났겠지.


나는 아론 씨 방문 문손잡이를 잡고 열려고 했다. 덜컥덜컥. 잠겨있었다.


하지만...... 불가능하다. 분명히 제임스가 만능열쇠로 열었을 텐데. 그래서 아론 씨가 실종된 걸 확인하지 않았던가. 제임스에게 혹시 문을 다시 잠갔냐고 묻자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렇다는 건...”


저택에는 나, 제임스 씨, 삼남매를 합쳐 다섯 명이 존재한다. 하지만 제임스의 말이 사실이라면

이 저택에는 아론 씨를 사라지게 한 여섯 번째 사람이 존재한다.


그리고 그 사람은 아직 방 안에 있다!


나는 제임스 씨에게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내고 허리춤에서 권총을 꺼냈다. 낡았지만 든든한 6연발 리볼버다. 제임스 씨가 열쇠로 문을 열자 나는 방문을 발로 차고 안에 뛰어들었다.


확 하고 달짝지근한 냄새가 코끝에 풍겨왔다. 누군가 끈적끈적한 메이플 시럽을 바닥에 엎지른 것 같은 냄새....! 총구 끝에는 아무도 없었다.


뒤따라 들어온 제임스는 방 안의 광경에 욱 하고 구역질을 하고 바닥에 엎드렸다. 나는 망연히 바닥에 쓰러진..... 아론 씨의 시체를 응시했다. 머리가 깨져 죽어있었다....!


6일 만에, 아론 씨는 또 한 번 살해당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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