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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추리

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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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882

작성
20.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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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쪽

7화

DUMMY

루돌프의 비명소리를 듣자마자, 로자 씨가 쏜살같이 뛰어나갔다. 나와 유리아 부인은 5미터쯤 뒤쳐져서 로자 씨가 날 듯이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동안 뒤따랐다.


”루돌프! 루돌프! 괜찮니! 다치지는 않았어!“


계단을 내려온 나는 로자 씨가 바닥에 주저앉아 엉엉 울고 있는 루돌프의 어깨를 다독이는 걸 보았다. 루돌프는 조용히 손가락을 뻗어 저편을 가리켰다. 모두의 시선이 그쪽을 향했다.


화장실 안쪽을 향해 얼굴을 대고 피웅덩이 속에 쓰러져있는 것은...크라우스 씨의 시체였다!


”크라우스 오빠! 크라우스 오빠...!“


로자 씨는 체면도 잊고 크라우스 씨의 시체에 달라붙어 통곡했다. 나와 유리아 부인은 망연자실하게 서 있었다. 잠깐, 제임스 씨는 대체 어디로...?


”루돌프 씨? 제임스 씨는 어디에 있습니까? 분명히 같이 간 걸로 아는데요.“

”...데려갔어...“

”데려갔다고요? 누가 말입니까?“

”아버지가...죽은 아버지가 다시 살아 돌아와서 데려갔어...!“


혼란스러워하는 루돌프 씨를 유리아 부인에게 맡기고, 나는 사건현장을 둘러보았다. 크라우스 씨의 시체는 화장실 앞에 쓰러져 있었다. 시체가 끌린 흔적이 없으니, 루돌프 씨가 볼일을 마치고 같이 화장실 밖을 나가던 도중 습격당한 게 틀림없다.


나와 로자 씨, 유리아 부인은 알리바이가 있다. 그리고 루돌프 씨는 지금 혼란스러워하고 있으니, 가장 유력한 용의자는 제임스 씨밖에 없다! 역시 제임스 씨가 진범이었나! 제임스 씨가 항상 가지고 다니는 만능열쇠가 있으면 아론 씨의 방도 밀실이 아니다.


”로자 씨! 우리들은 제임스 씨를 찾으러 가겠습니다! 만약 제임스 씨와 마주친다면 큰소리로 비명을 지르세요! 곧바로 가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고 나와 유리아 부인은 저택을 수색했다. 그러나 아무리 찾아보아도 제임스 씨 머리카락 하나 못 찾아 다시 로자 씨에게 돌아가려고 하는 찰나, 마당에서 연속적인 총소리가 들렸다.


”모리건 씨!“

”압니다, 유리아 부인! 가죠!“


나와 유리아 부인은 현관으로 향했다. 현관에 보이는 광경은 경천동지할 광경이었다. 제임스 씨의 시체가 센트리건을 가로막고 쓰러져있었다. 시체가 센트리건 앞에 쓰러지면서 센서를 가렸기 때문인지, 센트리건은 가까이 다가가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용기가 생긴 나는 더욱 가까이 다가갔다. 제임스 씨의 시체는 처참했다. 총탄에 계속해서 맞았으니 그럴 만도 하지. 그런데 총탄에 맞은 것 치고 출혈이 적자, 나는 제임스 씨의 웃옷을 들쳐 보았다. 웃옷 안에는 1센티미터 두께의 철판이 있었다. 이 철판이 총탄을 막아줘서 출혈이 적었던 건가.


”제임스...! 이게 대체...“

”유리아 부인, 우선 로자 씨와 함께 1층 거실로 돌아가죠. 저는 지금 범인이 누군지, 그리고 동기가 뭔지 알 것 같습니다.“


--------------------------


로자 씨, 유리아 부인, 그리고 아직 뭔가 중얼거리는 루돌프 씨와 함께 우리는 1층 거실에 모였다. 두 사람의 빈 자리가 벌써부터 크게 느껴졌다. 로자 씨는 큰오빠의 죽음에, 유리아 부인은 자기와 면식이 있던 사람의 죽음에 충격받은 듯 말이 없었다.


”우선 이번 사건에 대해 정리해보겠습니다. 피해자는 크라우스 씨와 제임스 씨. 크라우스 씨는 날카로운 무언가에 가슴을 찔렸습니다. 즉사했거나 얼마 지나지 않아 사망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리고 제임스 씨는 센트리건의 총격을 받고 사망했습니다. 시체는 센트리건의 전면부와 센서를 덮고 있었습니다.“


내 말에도 로자 씨는 말이 없었다. 대신 유리아 부인이 기운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지금 이렇게 추리하는 게 과연 의미가 있는 걸까요? 어서 경찰이 오기를 기다리는 게...“

”지금 범인은 아직도 우리의 목숨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부디, 이해합니다만 조금 기운을 내십시오. 범인에게 질 수는 없습니다.“

”제임스가 범인은 아닌 건가요? 분명히 제임스는 관제실에 대해 거짓말을 했잖아요.“

”제임스가 범인이라면 센트리건 앞에 죽어있는 시체를 설명할 수 없습니다. 대체 왜, 굳이 센트리건 앞에서 죽어야 했던 걸까요? 살인하고 자살이라니, 말이 안 되는 건 아니지만, 방법이 기이합니다. 거기다 자살이라면 플레이트를 낄 필요도 없죠.“


제임스는 웃옷 안에 플레이트를 끼고 있었다. 그러니 센트리건 앞으로 총탄을 맞아가면서 걸어갈 수 있었겠지. 자살이라면 애초에 그런 걸 끼지 않을 것이다.


”그럼 크라우스 오빠는 대체 누가 죽인 거죠? 저, 당신, 유리아 부인은 모두 2층에 있었어요. 그리고 유력한 용의자였던 제임스는 죽었고, 루돌프는 아직까지 말을 안 하고 있어요. 대체 어떻게 된 거죠?“

”크라우스 씨와 제임스 씨의 사건을 보기 위해서는, 우선 과거의 사건부터 보아야 합니다. 자기의 첫 번째 살인사건을 조사하기 위해 저를 초대했습니다. 대체 왜 그랬을까요?“

”...글쎄요. 아마도 자기 애인이 살인을 저질렀다는 걸 믿고 싶지 않아서였겠죠. 누구라도 그런 상황에서는 똑같이 행동하지 않을까요?“

”아닙니다. 보다 다른 근본적인 이유가 있었습니다.“

“설명해주세요. 그리고 이게 내 오빠의 살인과 무슨 연관이 있는지 설명하는 게 좋을 거예요.”

“네, 우선 지하실에서 사라진 두 개의 의체에 대해 이야기해야겠군요. 유리아 부인의 증언에 따르면 자기가 가정부로 일할 때는 지하실에 아무것도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제임스 씨는 우리에게 먼저 지하실로 안내해 의체저장소와 의식전송기가 있다는 걸 보여주었죠. 그 뜻이 무엇이냐? 아론 씨, 혹은 그에 준하는 권한을 가진 자가 아론 씨가 첫 번째로 살해당한 6일 전부터 제가 처음으로 초대된 3일 전에 그걸 지하실로 옮겼다는 겁니다.”

“그렇겠죠. 그 기계를 옮길 수 있는 시간은 그때 말고는 없었을 테니까요. 그러니 역시 제임스가 의심스럽네요. 아버지를 제외하고 저택에서 뭔가 옮길 수 있는 사람은 제임스 말고 없잖아요?”

“하지만 일개 집사에 불과한 제임스 씨가 아론 씨 몰래 뭔가 옮길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아론 씨밖에 없다는 이야기가 되는데...아론 씨가 첫 번째로 살해당했을 당시, 의체저장소와 의식전송기는 이 저택에 없었습니다.”


서서히 이해의 빛이 로자 씨의 얼굴에 들기 시작한다. 사람이 되살아나려면 의체와 의식전송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아론 씨가 저택에서 죽었을 당시에는 그런 게 없었다.


“말도 안 돼....그렇다면... 아버지는 이미 죽어있었다는 말이네요! 그렇다면 지금 아버지의 몸을 차지한 자는 대체 누군데요!”

“아마도 아론 씨의 애인이었던, 소피아 씨일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합니다.”


감옥에서 자살했다고 알려진 아론 씨의 애인, 소피아. 이제까지 이번 사건, 적어도 두 번째 사건에는 무관계하다 여기고 있었는데, 아무래도 그 정반대였던 모양이다. 소피아가 사실 아론 씨의 의체로 들어가 가장한 거였다면, 첫째 날에 로자 씨가 아론 씨가 아론 씨가 아니었다고 하소연한 것도 설명된다. 실제로 아론 씨가 아니었으니까!


“제임스 씨는 아론 씨가 소피아인 걸 눈치채셨습니다. 하지만 직접적으로 다가가는 대신 간접적인 방법을 택했습니다. 제게 아론 씨가 뭔가 변했다는 걸 언질한 것은 물론, 직접 손을 쓰시기까지 하셨으니까요.”

“손을 쓰셨다고요? 하지만 2분 안에 누군가를 살해할 수는 없어요.”

“살해는 훨씬 전에 이루어졌던 겁니다. 제임스 씨는 거짓말을 했어요. 관제실에서 그 짧은 시간 안에 밤 동안을 훑어보는 게 불가능한데도, 우리에게 그 짧은 시간 내에 다 보았다고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건 뭘 뜻할까요?”

“제임스가 언제든 아론을 살해할 수 있다...?”

“바로 그겁니다.”


감시카메라를 어떻게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제임스 씨뿐이다. 그런 제임스 씨가 감시카메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 해도 우리로서는 뭘 어떻게 할 수 없다. 그리고 그런 제임스 씨라면, 언제든 방 안으로 들어가서 기회를 잡는 게 가능할지도 모른다.


”...로자 씨, 로자 씨께서는 항상 아론 씨가 이상하다 하셨죠. 언제부터 알고 계셨습니까?“


내 입에서 단어들이 꿈결같이 흘러나왔다. 로자 씨는 화면에서 눈을 떼 나를 슬프게 돌아보았다.


”....전부터 짐작은 하고 있었어요. 아버지가 도저히 아버지처럼 보이지 않았거든요. 모리건 탐정님, 아버지는 저희를 좋아했어요. 물론 저희에게 화를 내기도 했죠. 하지만 저희가 방문했는데도 문을 틀어잠구고 말조차 나누지 않은 적은 없었어요.“

”굉장히 상심하셨겠군요. 어제 제게 아버지가 아버지가 아니었다고 말한 것도 그런 의도였습니까?“

”네, 크라우스 오빠는 그저 유산만 받아가면 좋다고 생각하는 속물이에요. 아마 아버지의 변화를 알아도 딱히 신경 안 썼을걸요. 루돌프는 그저 크라우스 오빠 뒤만 졸졸 쫓아다니고요. 그래서 전 제가 이상한 건가 싶었죠. 하지만... 견딜 수가 없었어요. 그 변화를 저밖에 눈치채지 못한다는 게 너무 무서웠어요.“


자기가 계속 알고 지내던, 부모가 갑자기 돌변하는 모습. 그 모습은 세상 그 어느 것보다도 당황스럽고 무서웠으리라. 그런데도 로자 씨는 꿋꿋이 이겨내며 여기까지 와주었다.


그 모습을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대견스럽기까지 하다. 강인한 여성이다, 로자 씨는.


”네, 이제 아론 씨의 정체가 해명되었으니 다음 주제로 가보죠. 의체저장소와 의식전송기를 지하실에 들여놓은 게 소피아라면, 제임스 씨도 그 사실을 알고 계셨을 겁니다. 어쨌든 저택의 집사니까요.“

”그렇게 되겠죠. 그러면 역시 제임스가 눈치채고 아버지인척 가장하던 그 가증스러운 요물을 살해한 걸까요?“

”아니요. 하지만 제임스 씨는 진범에게 많은 도움을 주었습니다. 진범이 방 안으로 들어가도록 돕기 위해 만능열쇠를 내주었고, 시체를 옮기기까지 했지요. 이 일들은 전부 밤중에 이루어져서 아무도 알아채지 못했습니다.“

”아버지의 방은 무음처리가 되어있었어요...소리가 새어나가는 게 싫다고 하셔서...“

”그건 몰랐습니다. 하지만 왜 저택의 아무도 알아차리지 못했는지 설명이 되는군요. 무의식적으로 살인이 일어나면 소음이 일어날 거라 생각했던 게 패착이었을지도 보릅니다.“


방음처리가 되어있었다면 방 안에서 아무리 난동을 피워봤자, 밖에서 자고 있던 우리들에게 들릴 리 없다. 로자 씨는 바닥을 내려다보더니, 고개를 들어 결의에 찬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는 진범이 누군지 들을 준비가 되었어요. 살해당한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고, 아버지인척 가장했던 자라면 그자에 대한 동정은 없어요. 진범은 누구죠?“

”유리아 부인? 괜찮겠습니까?“


내 말에 유리아 부인은 슬픈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하면 안 되면서도, 꼭 해야 하는 일들을 해낸 사람에게서만 보이는 눈으로. 로자 씨의 동공이 커지더니, 곧이어 납득의 뜻으로 듯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 설명할 수 있나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로자 씨의 말에 유리아 부인은 잠시 주저하다 입을 열었다.


----------------------------


제 이야기를 듣게 될 분들에게... 우선 죄송하다는 말을 드리고 싶네요.


제임스... 불쌍한 사람. 그이와 저는 서로 사랑하고 있었어요. 인간과 안드로이드의 사랑이라니. 수백 년 전부터 이야기되던 통속적인 내용이죠. 하지만 우리들의 사랑이 진짜였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어요.


아론이 살해당하고 제가 얼마나 충격받았는지 몰라요. 그래서 가정부 일도 그만뒀죠. 그런데 하루 뒤, 제임스가 아론이 다시 돌아왔다고 말하는 거예요. 자기가 사실 의식을 업로드했고, 그 덕분에 살았다고 말이에요.


제임스는 결코 의심을 버리지 못했어요. 생전에 아론은 그런 영생의 가능성에 대해 회의적이었거든요. 그리고 제임스는 아론의 애인이었던 소피아가 그런 영생으로 아론을 꼬드겼다는 사실도 알고 있었죠.


새로 돌아온 아론이 인부들을 시켜 외부에서 누군가 들어오지 못하도록 센트리건을 설치하고, 인부들을 시켜 지하실에 의식전이기와 의체저장소를 들여놓자 그이의 신념은 더욱 확고해졌어요. 아론 씨는, 자기가 알던 아론 씨가 아닌 다른 사람이라고요.


그래서 그이는 절 불렀어요. 집사였던 그이는 인부들의 자기 주인의 방에 센트리건 작동패널을 설치했다는 사실을 알았죠. 그래서 그 센트리건 패널을 해제할 수 있다면 나를 저택 안에 들여보내, 이 아론 아닌 아론을 제압할 수 있다고 생각했어요.


문제는 이 아론 아닌 아론이 제임스가 뭔가 꾸미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챘다는 거예요. 그래서 제임스가 몰래 비밀열쇠로 문을 따고 침입할 때, 아론 아닌 아론도 준비가 되어있었죠. 제가 아니었으면 제임스는 꼼짝없이 죽었을 거예요.


아론의 의체는 강했지만, 저는 더 민첩했어요. 제가 그 아론인척 하는 소피아를 살해하고, 그 시체를 제임스만 아는 방 안의 공간에 숨겼어요. 여러분들은 못 찾을 그런 공간이었죠. 그리고 제임스는 수사에 혼선을 주기 위해 여러분들이 센트리건에 시달리는 동안 그 비밀공간에 있던 시체를 옮겼어요.


그 뒤로는 여러분들이 아는 대로에요. 제임스의 도움으로 저는 계속 숨어다닐 곳을 옮겼고, 여러분 앞에 모습을 드러낸 거죠. 제가 사랑했던 제임스는 이제 천국에 있지만, 그이는 평생 최선을 다해 살았어요.


-------------------


유리아 부인의 이야기가 끝나자, 로자 씨는 부인을 와락 껴안았다. 로자 씨의 두 눈에서 눈물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고마워요. 유리아 부인, 우리 아버지의 원수를 갚아 줘서요. 고마워요.“

”무슨 소리를요...나는... 의욕만 앞서고...결국 세상에서 누구보다 사랑했던 그이를 지키지 못했어... 그래도 그런 말 해줘서 고마워요.“


유리아 부인은 로자의 등을 탁탁 두드렸다. 마치 어머니가 아이의 등을 두드리듯이 정답게 두드렸다. 잃어버린 자들끼리 슬픔을 나누고, 로자 씨와 유리아 부인은 아쉬운 듯 떨어졌다.


”그렇다면 아버지는 그 막돼먹은 소피아라는 년에게 살해당했던 거네요. 그리고 소피아는 아버지의 의체 안에 들어가, 아버지인 척 한 거고요. 대체 왜 그랬던 걸까요?“

”아마도 사랑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랑하는 자의 거죽을 뒤집어쓰고, 사랑하는 자의 행동을 연기한다. 맨정신이었다면 못할 일이었겠지요.“

”제임스는 지하실에 두 개의 의체가 있다고 했어요. 하지만 기능이 정지된 의체는 하나뿐이에요. 그 말은.“

“네, 이 저택에는 아직 소피아의 망령이 떠돌아다니고 있습니다. 사랑의 망집을 아직도 벗지 못한 죽은 자의 아집입니다.”


로자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섰다. 이 거리에서도 그녀의 몸에서 솟구쳐오는 정열과 분노를 느낄 수 있었다. 복수의 불길이었다.


“어서 가죠! 내 기필코 그년의 사지를 갈가리 찢어버리고 말겠어요!”

“그러시면 안 됩니다.”

“왜죠! 갑자기 왜 그러시는데요!”

“아론, 아니 소피아는 지난 며칠간 방 안에 나오지 않았다가, 유리아 부인에 의해 살해되었습니다. 그러니 지금 저택을 배회하는 또 다른 소피아에게는 크라우스 씨를 살해한 기억이 없습니다. 부디 저지르지 않은 죄로 그 사람을 매도하지 말아주세요.”


로자 씨는 침묵했다. 나는 그녀가 무엇을 말하든 다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다. 친족을 잃은 슬픔에 내 말 따위는 헛소리로 들리겠지. 그러나 폭언을 예상했던 것과는 다르게, 로자 씨는 한결 차분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렇다면 누가 우리 오빠를 죽였죠? 말씀해보세요.”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진정하고 들어주십시오. 바로 옆에 앉아 계신 루돌프 씨입니다.”


잠깐의 정적의 흐르고 유리아 부인의 바람같이 움직여, 고개를 숙이고 가만히 앉아있던 루돌프를 뒤에서 구속했다. 고개를 축 늘어뜨린 루돌프는 일절 저항이 없었다.


“이게 대체 무슨 뜻이죠? 설멍하세요!”

“루돌프 씨는 간단한 트릭으로 우리 모두를 속이고 있었습니다. 유리아 부인의 말을 들어 보건데 제임스 씨는 결코 범인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면 아론 씨를 가장하는 소피아를 살해하는 것이 그의 목적이었으니까요. 그러니 남은 사람은 루돌프 씨 말고는 없습니다.”


내 말에 루돌프 씨를 붙잡고 있는 유리아 부인이 의아한 듯 바라보았다.


“하지만 그건 단순한 소거법이잖아요? 고작 그걸로 괜찮아요? 혹시 숨어있던 소피아가 확 튀쳐나와서 크라우스 씨를 살해했을 지도 모르잖아요.”

“그렇다면 어째서 루돌프 씨가 살아있죠? 생존자를 남기면 다른 사람에게 증언할 텐데요.”

“그건 우리가 비명을 듣고 뛰쳐나와서...”

“우리가 비명을 듣고 방에서 뛰쳐나와 계단을 내려가서 벌벌 떨고 있는 루돌프 씨를 목격했을 때, 적어도 30초의 텀이 있었습니다. 크라우스 씨는 어떻게 살해당했죠?”

“어떻게 살해당했나니...? 칼 같은 걸로 배를 찔린 것 같았던데...”

“네, 그 말은 크라우스 씨가 범인이 가까이에서 접근하는 걸 허용했다는 뜻입니다. 만약 범인이 칼을 들고 다가온다면 당신은 어떻게 할까요?”

“도망치겠지.”

“네, 하지만 크라우스 씨의 시체는 화장실 바로 앞에 발견되었습니다. 루돌프 씨가 간 화장실 바로 앞에서 말입니다. 루돌프 씨를 지키려 했다고 보기도 에매합니다. 크라우스 씨는 화장실 방향에 얼굴을 대고 쓰러졌습니다. 그 말은 칼에 찔릴 때까지 화장실 안쪽을 보고 있었다는 말이죠.”


그리고 크라우스 씨의 상처는 복부에 있었다. 그 말은 크라우스 씨가 찔릴 때, 범인은 화장실 안쪽에 있었다는 말이 된다. 이 저택의 화장실 문은, 어느 화장실이 그렇듯 하나뿐이다. 화장실에 비밀문 따위가 있을 리는 없으니...


“그러므로 범인은 화장실 ‘안’에 있어야 하는 단 한 사람, 루돌프 씨 뿐입니다! 하지만 저도 묻고 싶습니다. 루돌프 씨, 대체 왜 그랬습니까?”


로자는 자리에서 일어나 루돌프의 앞으로 가 뺨을 추켜올렸다. 뺨에 붉은 손자국이 남았지만 루돌프는 반응하지 않았다. 이에 분노한 로자는 루돌프의 멱살을 잡고 놀라운 힘으로 들어올렸다.


”말해 봐. 대체 왜 죽였어...?“

”내가 안 그랬어! 내가 안 그랬다고...!“

”그게 무슨 뜻이야!“

”말 못해... 말 못한다고....“


옷자락을 잡고 있던 로자의 손이 힘없이 풀렸다. 루돌프는 소파 위로 굴러떨어지듯 쓰러져 숨죽여 흐느꼈다. 로자는 텅 빈 시선으로 나를 응시하다 줄이 끊어진 인형처럼 힘없이 바닥에 쓰러졌다.


”유리아 부인! 어서 로자 씨를! 이번 사건은 로자 씨에게 특히 충격적이었을 겁니다. 그러니 소파에 눕혀 잠시만 쉬게 해주죠.“

”주방의 냉장고에 냉수가 있을 테니까, 그걸 가져와 주세요. 저는 여기서 로자 씨를 간호하고 있을게요.“


나는 유리아 부인의 말에 따라 주방으로 질주했다. 일직선상의 복도를 달리던 나는 바닥에 쓰러진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지나치게 되었다. 그런데... 시체의 쓰러진 방향이 달랐다.


분명히 비명을 듣고 달려와 벌벌 떨고 있던 루돌프 씨를 달려왔을 때는 시체의 얼굴이 화장실 안쪽을 향하고 있었다. 그런데 지금은... 시체의 얼굴이 화장실 바깥을 향하고 있다. 거기다 얼굴도 위를 향하고 있어서, 생명을 잃은 유리알 같은 눈이 나를 꿰뚫어 보고 있다.


누군가가 현장에 왔다 갔다. 그리고 우리중 그 누구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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