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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추리

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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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8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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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19 22: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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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쪽

6화

DUMMY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온 사람은 역시 유리아 부인이었다. 내가 세 들어 사는 하숙집 주인인, 때로는 다정다감하며 때로는 영악한 안드로이드. 제임스 씨는 입을 헤벌리며 나와 유리아 부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유리아 부인? 왜 당신이 여기 있는 겁니까?”

“그건 내가 할 말이에요. 왜 당신은 아직 이 저주받을 저택에 있는 거죠?”

“저는 주인님을 섬기기 위해 존재할 뿐입니다.”

“어머, 로봇보다 더 기계다운 인간이네요. 자랑으로 여길 일은 아닌데요.”


유리아 부인의 독설에도 제임스 씨는 침묵을 지켰다. 범인이 탐정을 맞이하러 왔다는 태도치고는 자신감이 깃든 태도였다. 나는 강하게 나가기로 마음먹었다.


“유리아 부인, 이렇게 모습을 보인 걸 보면 자기가 범인이라는 사실을 자백하시는 겁니까?”

“우선 하나만 물어볼게요. 제가 이곳에 침입했다는 사실은 어떻게 안 거죠? 숨어서 다 듣기는 했지만 단순히 추측에 의존해서 했다기에는 좀 부족한 점이 많아서요.”


질문에는 질문으로 답하는 식인가. 하지만 유리아 부인과는 달리 나는 대답해도 불리해지는 점은 없다. 우리를 제외하고 6번째 인물이 있는 이상 삼남매와 제임스 씨의 용의는 없어진 셈이니까.


“당신을 믿기 때문입니다.”

“제가 듣고 싶은 건 그런 유치한 우정놀이가 아닌데요.”

“아니, 정말입니다. 저는 유리아 부인을 잘 압니다. 때로는 짗궂지만 기본적으로 장난을 좋아하는 성격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만약 살인을 저지른다면, 부수적인 피해를 내지 않을 거라고 추측한 겁니다.”

“그러면 내가 정체를 드러낼 거라는 부분은요?”

“저는 모두에게 당신이 범인이라는 사실을 말했습니다. 만약 당신이 여기 있는 우리 모두를 죽이지 않는다면, 경찰에게 쫓기게 되겠죠. 만약 당신이 우리 모두를 죽인다면 이 저택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람은 당신이 됩니다. 당신으로서는 어떤 선택을 하더라도 자기 자신을 궁지를 몰아넣는 일이죠. 그러니 애초에 밀실 살인따위를 하지 말았어야 했습니다.”


당연하다. 밀실살인은 소설이나 영화같은 매체에서는 미스터리하게 보이겠지만, 현실에서는 가장 꼬리가 잡히기 쉬운 살인이다. 특히 이 저택처럼 복도에 감시카메라가 널린 건물에서는 잡히기란 시간문제다.


“자수해서 광명찾는 것도 좋지요. 하지만 유리아 부인. 말해보시죠. 왜 모습을 드러내셨습니까? 솔직히 제 입으로 말하기는 했지만 정말로 나올 거라고는 예상 못했습니다.”

“여기서 나가기 위해 당신들과 협력하고 싶기 때문, 일까요?”


유리아 부인의 말에 얼굴에 노기충천한 크라우스가 대노했다.


“헛소리! 우리가 왜 범인의 말을 들어야 한다는 말이냐? 모리건 씨. 이 유리아 부인이라는 여자가 아버지를 살해한 범인이라는 건 확실해졌습니다. 뭘 기다립니까? 어서 구속하세요!”

“진정하세요, 크라우스 씨. 유리아 부인은 고성능 안드로이드입니다. 우리들이 달려들어서 뭘 어떻게 해 볼수 있는 상태가 아닙니다. 애초에 저쪽에서 먼저 공격하지 않은 것만으로도 감사해야 하는 처지인데요.”


리볼버가 있지만, 중앙 컴퓨터 코어를 맞출 기회는 한 번뿐이다. 그리고 유리아 부인은 두 번째 기회를 주지는 않을 것이다. 유리아 부인은 코웃음을 쳤다.


”어머, 제가 범인이라는 자신감은 어디서 나온 거죠? 만약 제가 범인이라면 이것만 말해보세요. 저는 어떻게 아론을 살해했을까요?“

”그거야 간단합니다.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은 미리 이 저택에 숨어들었습니다. 적어도 아론 씨가 저를 초대한 후였겠죠. 여기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모두의 동선을 꿰고 있던 당신은 아론 씨의 방에 몰래 숨어들어 기다렸다가 살해했습니다.“

”하지만 어떻게 감시카메라에게도 걸리지 않고 살해가 가능할까요?“

”간단합니다. 감시카메라는 복도 안에만 있죠. 하지만 저택 밖에는 감시카메라가 없습니다. 그리고 회색 밴드가 있으면 센트리건의 공격도 피할 수 있죠. 어떻습니까?“


이 정도면 충분하겠지. 그러나 내 예상과는 다르게 유리아 부인의 얼굴은 여전히 자신만만했다. 그녀는 손가락을 올리며 대답했다.


“여기서 당신 논리의 허점이 드러나네요. 만약 제가 창문 밖으로 나가 벽에 기어 올라갔다고 해보죠. 하지만 아론 씨의 방은 완전한 밀실. 창문을 부수지 않는 이상 제가 방에 들어갈 수 있을 리 없어요.”

“그건... 그렇습니다만.”


맞다. 깜빡하고 있었지만, 아론 씨의 방은 창문이 안에서 잠기는 구조였다. 그러니 밖에서 열 수 없다. 하지만 안에서 열어준다면 이야기가 다르다. 지금까지의 내 전제는 아론 씨가 유리아 부인이 이 저택에 왔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는 전제하에 있었다. 그런데 그 전제가 처음부터 틀렸다면?


“그리고 또, 제가 어떻게 회색 밴드를 가질 수 있죠? 센트리건은 불쌍한 아론이 6일 전 첫 번째로 살해당하고 설치되었어요. 전 그전에 해고되었고요. 그러니 센트리건이 설치될 때 이미 저택에 없었던 제가 회색 밴드를 손에 놓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아론 씨가 당신에게 전해 줄 수는 있습니다.”

“어라? 이제는 음모론으로 넘어가는 건가요? 아론이 제가 당신들 모르게 저택 안으로 들어오도록 회색 밴드를 주었다. 그 말을 하고 싶은 건가요? 그러면 언제, 어떻게 주었다는 건가요? 아론은 계속해서 이 저택에만 있었어요. 그런데 어떻게, 저택 바깥의 저에게 회색 밴드를 줄 수 있다는 건가요?”


유리아 부인의 계속되는 반론에 숨이 턱 막혔다. 확실히, 아론 씨는 나와 같이 저택으로 동행하고 나서 계속 저택 안에만 있었다. 집사인 제임스 씨라면 가능할지도 모르겠지만, 제임스 씨는 지금까지의 수사에 큰 도움이 되었다. 만약 제임스 씨가 공범이라면 애초에 수사에 협력할 이유가 없는 것이다.


“그렇지만 당신만이 알리바이가 없습니다. 그 사실만은 변하지 않아요. 그러니 우선 우리와 같이 있어야 하겠습니다.”

“맞소! 논리로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는 사실은 증명해보았자 그저 말일 뿐이오. 거짓말이 아니라는 보장 따위는 없소. 그리고 굳이 우리에게서 존재를 숨기다니. 아무리 생각해도 수상하지 않소?”


크라우스의 맞장구에 유리아는 그저 어깨를 으쓱여댔다.


“절 믿지 않으셔도 상관은 없어요. 하지만 전 살인자가 아니에요. 그것만은 확실해요. 정 확인하고 싶으시다면 제임스 씨에게 부탁하셔서 관제실에서 기록을 돌려볼 수도 있잖아요.”

“....제임스 씨, 가능하겠습니까?”

“관제실에는 24배속 감기기능이 있지만 어저께와 어제를 다 확인하려면 최소 2시간은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괜찮으시겠습니까?”


4시간동안 엉덩이 붙이고 앉아있을 인내심은 얼마든지 있다. 문제는 인내심이 아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저택 안에 들어올 수 있다면, 다른 사람도 들어오지 못하리라는 보장이 없다.


나는 지금까지 저택이 외부에서 간섭하지 못하는 일종의 밀실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유리아 부인의 존재만으로도 이 저택은 밀실이 아니라는 게 되어 버린다!


“유리아 부인, 하나만 말씀해주시죠. 당신은 어제나 어저께 이 저택에 들어왔습니까?”

“당연하죠. 오늘 들어왔으면 센트리건 때문에 벌집이 되었을 거예요.”


당연한 말을 하는 내게, 유리아 부인은 당연하다는 듯 반문했다. 모순점을 찾아내기 위한 시도였지만 별 소득은 보지 못했다. 뭐, 애초에 바로 대어를 낚아내면 이상하지. 진짜 대어는 2층 관제실에 있을 것이다.


상호간의 견제 하에 2층의 관제실로 이동한 우리는 곧바로 지난 이틀간 영상재생을 시작했다. 24배속이라 그런지 조금만 집중을 흐트러뜨리면 금방이라도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을 놓쳐버릴 것 같았다.


그런 내 모습을 눈치챘는지 로자가 말을 걸었다.


“탐정님은 밖에 나가서 쉬어도 괜찮아요. 몸소 추리를 펼치느라 오랫동안 고생하셨잖아요.”

“로자! 밖에 아직 범인이 나돌아다닐 지도 모르는데, 이 유리아라는 로봇이 범인이 맞는지 아닌지 판단하기 전까지 독자행동은 금물입니다, 탐정님.”


크라우스의 역정은 정확했다. 아직 유리아 부인이 범인이라는 게 확실하지 않은 이상 나가서 위험을 초래할 필요는 없다. 나는 전에 범인이 아론 씨만 살해할 거라고 추리했었지만, 유리아 부인에 대한 추리가 틀린 이상 범인의 동기에 대한 추리는 어불성설이다.


그렇지만 인간의 몸은 그 주인의 욕구를 배반하는 법. 생리현상마저 억누를 수는 없었다. 결국 루돌프가 더는 못 참겠다며 화장실에 가겠다고 나서자, 크라우스와 제임스가 따라나섰다. 로자는 자기가 제임스를 대신해서 감시카메라 화면을 보겠다고 자원했다.


그동안, 나는 유리아 부인에게 사건의 대략적인 경과를 설명해주었다. 만약 그녀가 범인이라면 필요 없겠지만.


잠깐 한숨 돌리게 된 나는 유리아 부인의 동기에 대해 생각해 보기로 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범인이라면 아론 씨를 살해할 만한 동기가 있을까? 제임스 씨만이 그 단서를 알고 있으리라. 돌아온다면 물어봐야겠다.


“유리아 부인, 그러면 하나만 말씀해주시죠. 저택에 들어온 이유가 뭡니까? 살인이 아니라도 사람의 눈을 피해서 들어올 정도면 나름의 중한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아론이 걱정되어서 왔다고 해두죠.”

“계속 아론 씨가 아니라 아론이라고 부르시는데, 가정부로 일하시는 동안 상당히 친해졌던 모양입니다.”

“아론과 내 관계는 상관할 바 아니에요. 저는 아론을 살해할 이유가 없다고요. 그리고 제아무리 내 하숙인이라 한들 이렇게 꼬치꼬치 캐묻기만 하면 저도 가만히 안 있을 거예요.”

“유리아 부인, 여기서 제일 의심받고 있는 사람은 당신입니다. 그런 용의자가 대답을 회피하면 어쩌겠다는 겁니까?”

“그럼 의심하라고 해요. 하지만 지금 경찰은 여기서 살인사건이 일어난다는 사실도 모를 텐데, 저를 의심해서 뭘 어쩌시려고요? 살인이라도 하시게요?”


외부로 이어지는 저택의 통신은 모두 끊긴 상태다. 그러나 이 사태가 언제까지나 지속 될 리는 없다. 삼남매의 지인들은 시간이 지나면 이 실종을 알아차리고 경찰에 신고하겠지. 그러니 유리아 부인의 허세는 미안하지만 정말로 틀려먹었다.


“유리아 부인, 아까까지는 무례하게 굴어 죄송했습니다. 그렇다면 기브 앤 테이크는 괜찮겠습니까?”


나의 갑작스러운 태도전환에 유리아 부인은 활의 줄을 튕기듯 반응했다. 그 정도로 미움받고 있었나. 씁쓸한 감정이 차오른다.


“무슨 뜻이죠? 또 저를 범인으로 추궁할 생각인가요?”

“아닙니다. 전 그저 확실히 하고 싶을 뿐입니다. 만약 제가 납득해도 다른 분들도 납득한다는 보장은 없으니까요. 만약 당신이 범인이 아니라면, 당신이 스스로 그걸 증명해보라 이겁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범인이 아니라면 바로 승낙해야 할 제안이다. 범인이 아니라면 꿀릴 게 없을 테니까. 그리고 만약 범인이라 해도 이 상황에서 핑계를 대며 회피하는 것은 되려 의심을 증폭시킬 뿐이다.


“제가 대체 지금까지 어디 있었는지 궁금하다는 소리죠? 좋아요. 저도 범인이라는 누명을 벗고 싶으니까요. 저는 당신과 아론이 들어가고 나서 둘째 날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제가 센트리건을 피해 어떻게 들어왔냐는 질문에 대해서는, 저는 그 회색 밴드가 없다는 말만 해둘게요.”

“하지만 어저께와 어제만 해도 센트리건은 회색 밴드가 없던 사람에게는 잘 반응했습니다. 아론 씨가 제게 친절하게 설명해주기까지 했으니까요.”

“후후, 그런가요. 정말, 아론도 사람이 참 변했네요. 자기와 상관없는 사람에게는 무척이나 쌀쌀한 사람이었는데.”


유리아 부인의 얼굴은 그리운 추억을 떠올리는 것처럼 감상에 젖어있었다. 역시 유리아 부인과 아론 씨는 예사 사이는 아니었다. 설마 아론 씨가 소피아 씨를 내버려 두고 바람이라도 피운 건 아니겠지? 살인동기로는 딱 적절하겠군.


“소피아 씨, 아론 씨와의 관계는 어땠습니까? 말씀하시는 걸 보았을 때 상당히 가까운 거 같은데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렇고 그런 사이는 아니에요. 친하게 지내기는 했지만 고작 그뿐. 할 말이라도 있나요?”

“어저께 저는 회색 밴드가 없었지만, 아론 씨의 곁에 있었기에 같이 들어올 수 있었습니다. 그렇다면 유리아 부인, 당신도 누군가와 동행해서 저택에 들어왔거나, 안에서 센트리건을 비활성화해 들어올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은 없습니까?”

“저는 제 힘으로 이 저택에 들어왔어요. 위험한 일에 다른 사람의 힘을 빌리다니, 저는 그런 일 못해요.”

“하지만 그건 불가능합니다! 아무리 당신이 고성능 안드로이드라고 해도 방탄은 아닙니다. 권총이라면 몰라도 마당의 센트리건처럼 대구경 기관총에 맞았다가는 금방 걸레짝이 됩니다! 그런데 어떻게...”

“모리건 씨, 생각을 달리해보세요. 두 번째 날에 온 사람들이 누군지 떠올려봐요. 그러면 답을 알 수 있을 거예요.”


두 번째 날에 온 사람들이 누가 있었지? 크라우스, 로자, 루돌프다. 이 세사람 말고는 없다. 설마...하지만... 그렇다는 건.... 나는 조용히 화면에 집중하고 있던 로자 씨에게 물었다.


“로자 씨. 당신 삼남매 말고 같이 동행한 다른 사람이 있었습니까?”

“글쎄요...우리를 여기까지 데려다준 여자 운전수가 있기는 했었어요. 우리들과 같이 저택에 들어가고 배웅하고 헤어졌어요.”

“그렇다면 마당에도 발을 들여놓았다는 이야기군요. 당신들과 같이 있었을 테니 센트리건도 그녀를 공격하지 않았을 테고요. 3일 전 저와 아론씨 처럼요.”


그리고 삼남매가 보지 않는 틈을 타 어딘가 숨을 수 있었을 것이다. 마당에는 미관용으로 꾸며둔 화단과 풀숲들이 있다. 사람이라면 힘들겠지만 안드로이드라면 며칠간 그 안에 숨는 건 가능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누군가 관제실에 없는 틈을 타 언제든 들어올 수 있다!


“이제 두 가지 의문 중에서 ‘어떻게 저택 안에 들어왔나’가 해결되었습니다. 삼남매의 운전수로 변장하고 들어왔겠지요. 문제는 ‘왜’ 입니다만...”

“잠깐만요. 모리건 탐정님. 저랑 크라우스 오빠랑 루돌프의 드라이버가 이 사람, 아니 안드로이드라고 말하는 거에요? 하지만 완전히 다른사람인데?”

“얼굴은 얼마든지 변장 가능합니다. 간단한 화장만으로도 다른 사람처럼 보이게 할 수 있지요. 거기다 유리아 부인은 안드로이드입니다. 얼굴 파츠를 교체할 수 있는데 변장은 식은 죽 먹기죠.”


로자가 기가 막혔는지 유리아 부인을 바라보더니, 다시 감시카메라 영상에 몰두했다. 이제 어떻게 저택에 침입했는지 해결되었지만, 어떻게 아론 씨를 밀실에서 살해했는지는 아직 미궁 속에 남았다.


“아까도 말했잖아요. 저는 범인이 아니라고요. 저는 이 저택에 운전사로 변장해서 잠입하기는 했지만 범인은 아니에요. 전 오히려 범인을 막으러 왔다고요.”

“그럼 진범이 누구인지는 안다는 말이겠군요.”

“아니요. 진범이 누구인지 알았다면 경찰에 신고했겠죠. 전 살인이 곧 일어날 거라고만 알고 있었지, 그게 누구인지, 어떻게 살인이 일어날 지는 몰랐어요. 하지만 저번에는 확인사살을 못했으니 이번에는 철저할 거라고만 알았죠. 첫 번째 살인 이후, 아론은 의식이 업로드된 의체로 다시 나타났잖아요.”


확실히 살인범이 아론 씨를 살해할 작정이라면, 남은 의체를 폐기한 다음에 아론 씨를 죽이는 것이 이치에 맞다. 그러면 들어갈 몸이 없는 의식은 유령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렇다면 이번에는 이쪽이 물을게요. 아론의 시체가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났다고 했는데, 그게 맞나요?”

“시체가 없었다가 있었으니 그렇게 볼 수도 있겠죠. 우리는 그게 2~3분 안에 일어났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시체를 치운 범인이라고 해도 여전히 의문점이 남는다. 시체를 치운 목적은 무엇인가. 그리고 애초에 어떻게 밀실인 방에 들어갈 수 있었는가. 가정부로써 만능열쇠를 가지고 있었다고 하면 되긴 하지만, 몸수색하지 않는 한 그 만능열쇠의 존재를 증명할 순 없다.


“이제는 제가 묻겠습니다. 유리아 부인, 부인은 주류창고에 지하실로 향하는 비밀문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계셨습니까? 사실만 말해주셨으면 합니다.”

“네, 알고 있었어요. 지하실이 전에도 있었는가 없었는가는 살인사건하고 아무런 관계도 없어요.”

”아니요. 관계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시 물어보겠습니다. 그 지하실에는 무엇이 있었습니까?“


지하실이 있다고 자기 입으로 고백한 게 유리아 부인 일생일대의 실수였다. 나는 방금 ‘지하실이 있었지만 들어가지는 않았다’라고 말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방의 내용물에 대해 거짓말을 한다면, 그 텅 빈 의체저장소가 사건과 관계있다고 자기 입으로 시인하는 꼴이다. 만약 거짓말을 안 한다면 그 의식전송기와 의체저장소의 존재에 대해 거센 질문의 공세를 받게 될 것이다.


그러나 유리아 부인의 대답은 내 예상과는 정면으로 빗나갔다.


”모리건 씨, 한 가지 거대한 착각을 하는 모양인데요. 만약 지하실 안의 뭔가가 이 사건에 관계되었다면 부디 말해주지 않을래요? 저만 모르는 거 같아서 솔직히 억울하거든요. 그 지하실은 아론의 취미였어요. 무슨 벙커 비슷한 거로 만들려고 하다가 포기했거든요. 애초에 그 비밀문이 왜 있었다고 생각해요?“

”...밖에 보이면 안 되는 뭔가를 숨기기 위해서라고 생각합니다만.“


번거롭게 비밀문 따위를 만드는 이유는 당연히 뭔가 숨길 것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렇게 말하면서도 나는 뭔가 이상하다고 느꼈다. 의체저장소와 의식전송기는 딱히 숨길 만한 물건이 아니다. 오히려 나는 이제 영원히 살 수 있다며 자랑하기 위해 내보인다면 모를까.


”설마요. 아론이 무슨 범죄 거물도 아니고. 거기에는 아무것도 없어요. 애초에 실패한 벙커 프로젝트인데 거기에 뭔가 숨기고 말 것도 있나요. 전 저택에 오랫동안 근무했어요. 아무도 그 벙커 안에 뭔가 들인 적 없어요.“

”그렇습니까.“

”죄송하지만 하나 더 물어보겠습니다. 지하실에 의식전송기와 의체저장소가 있다는 사실은 들어보셨습니까?“


내 말에 유리아 부인의 안색이 변했다. 하지만 자기가 했던 뭔가가 발각되었을 때 범인들이 으레 짓는 표정은 아니었다. 다른 뭔가였다.


”...유리아 부인. 아론 씨의 저택에는, 아론 씨가 첫 번째로 살해당할 때 의식전송기와 의체가 있었습니까? 말씀해주시죠.“

”...없었어요. 하지만 그렇다면 아론은 어떻게 돌아왔지? 저택에 의식전송기랑 의체가 없었더라면...“


의식전송은 자동이 아니다. 계속 수동으로 자신의 의식을 업로드 해야 한다. 그리고 아론 씨는 저택에 의식전송장치와 의체를 준비하지 않았다. 그러면... 숨겨진 지하실에 그 모든 걸 가져다 놓은 사람은...!


‘전혀 다른 사람이었던 거야...!’


즉, 내게 의뢰하고, 저택에 초대하고, 자기 방에서 무참하게 살해당한 아론 씨는 진짜 아론 씨가 아니라 아론 씨의 의체에 들어간, 전혀 다른 사람이라는 말이다!


”로자 씨! 아론 씨가 방에 틀어박히기 전까지 뭘 하고 있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까? 한시가 급합니다!“

”지금 최대배속으로 확인하는 중이에요! 24배속이니까 조금만 있으면...“


그때 유리아 부인이 의문을 던졌다.


”잠깐만요. 만약 24배속이 최대배속이라면 어떻게 제임스는 당신들이 그 센트리건 앞에 있었던 2~3분 동안 밤부터 새벽까지 복도를 다 확인할 수 있었던 거죠?“

”네?“

”말 그대로예요. 여러분들의 말에 따르면 제임스는 여러분들이 오늘 아침 센트리건의 총구 앞에 있을 때, 아론이 방 밖에서 안 나왔다고 확인했다 했잖아요. 만약 고작 24배속이라면 어떻게 그 짧은 시간 동안 아론이 밤중에 밖으로 나왔는지 안 나왔는지 확인할 수 있죠?“


....이런, 맞다! 아침에는 정신이 없어서 그냥 그러려니 하고 넘어갔지만 24배속만으로 몇 시간이 넘는 밤시간을 2~3분 안에 확인하는 건 불가능하다! 그때 로자가 걱정스레 말했다.


”혹시 제임스가 24배속이라고 말한 건 우리들을 관제실 밖으로 못 나가게 할 속셈이 아닐까요? 아까부터 루돌프랑 크라우스 오빠가 안 들어오는데...“

”찾으러 가봅시다! 로자 씨, 유리아 부인!“


우리는 관제실 밖으로 달려나갔다. 딱히 어디로 가겠다는 생각도 없었다. 그저 우리를 속인 제임스가, 또 무슨 짓을 벌일까 걱정돼서였다.


아래층에서 루돌프의 째지는 비명이 들려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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