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웹소설 > 일반연재 > SF, 추리

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444
추천수 :
3
글자수 :
118,882

작성
20.09.23 21:30
조회
18
추천
1
글자
21쪽

9화

DUMMY

거실 안의 분위기는 어색했다. 모두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골똘히 생각에만 골몰하고 있었다. 방금 내가 추리한 내용을 받아들이고 잘게 썰어 소화하고 있었다. 유리아 부인의 얼굴이 특히 심각했다.


나는 그 이유를 알았다. 내 이론에 따르면, 아론은 사실 죽어있던 게 아니었다. 소피아와 같이 살아있었던 것이었다. 그 말은, 6일 전 소피아가 아론을 살해한 사건도, 사실은 진짜 살인이 아니었던 것이 된다.


유리아 부인은 같은 결론에, 나보다 먼저 다다른 듯 했다. 그녀는 조용히 속삭였다.


“그 살인은 의식이었어요... 아론의 의식을 의체로 옮기기 위한 진짜 의식! 그리고 그건 소피아의 도움으로 이루어지고 있었죠. 그런 절차를 시행하다니... 분명 소피아는 의체 분야에 해박했던 게 틀림없어요.”


이 저택에서 소피아가 의체 분야에 해박한지 파악하는 건, 본인을 직접 만나지 않는 한 불가능하다. 그러나 소피아가 의체와 의식전송에 능숙하다고 가정하면, 다음과 같은 가정이 가능하다.


6일 전 아론 씨의 침대에서, 소피아는 어떤 수를 써서 아론을 잠재우고 의식전송수술을 진행하고 있었다. 아마 두개골에 구멍을 뚫고 기계장치를 삽입하는 등의 작업이었겠지. 그정도면 피도 많이 나왔을 테니, 모르는 눈으로 보면 충분히 살인사건으로 착각할 수 있다.


하지만 본래대로라면 잘 풀렸을 그 일은 한 사람 때문에 파토나고 말았다. 소피아가 아론 씨를 침대에서 마취하고 수술을 진행하는 과정을 누군가가 보고 말았던 것이었다.


“첫날, 아론 씨를 가장했던 소피아는 침대에서 시행한 의식전이시술, 즉 ’살인사건‘의 첫 목격자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당시에 저택에는 아론과 소피아를 제외하면 제임스 씨와 당신, 유리아 부인밖에 없었겠죠. 어느 쪽입니까?”

“제임스에요. 저는 그때 아직 이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고 있었으니까요. 부르면 바로 달려가는 제임스와는 달리, 저는 주로 청소나 정리 같은 잡무를 맡고 있었죠. 그래서 비명과 소란을 듣고 달려갔을 때는, 제임스는 이미 한 손으로 소피아를 바닥에 눌러 제압하고 다른 손으로는 경찰에 신고하던 중이었어요.”

“그리고 침대의 아론 씨는 어땠습니까?”

“저도 당시에는 정신이 없어서...하지만 힐끗 보았을 때는 머리에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사이로 피가 스며 나오고 있었어요. 구멍이 지나치게 동그랗다는 사실을 눈치챘어야 했는데... 그건 죽이기 위해 뚫은 구멍이 아니었어요. 오히려 구하기 위해...!”


유리아 부인은 가슴을 주먹으로 탕탕 쳤다. 눈앞에 놓인 뻔한 사실을 알아차리지 못한 자신을 자책하듯이! 유리아 부인은 우리와는 달리 현장에 있었다. 어쩌면 진실에 더 가까이 다다르기 위한 단서를, 자기도 모르는 단서를 더 많이 기억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유리아 부인, 아론 씨에 대해 더 자세히 설명해주셨으면 합니다.”

“그... 꼭 말해야 하는 건가요? 당신이 의뢰를 받았다고는 하지만, 그건 아론을 가장한 소피아였어요. 당신은 아론에게 의뢰를 받은 거지, 소피아에게 받은 건 아니잖아요.”


나는 턱을 괸 손을 빼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리고 거실을 둘러보며 선언했다.


”부인, 저는 이미 의뢰를 받은 몸입니다. 그게 누구에게 받았는지는 중요하지 않습니다. 설령 아론이 아닌 소피아에게 받았다고 해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저는 소피아 씨가 제게 살인사건을 의뢰한 이유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단순히 자신의 결백을 증명하는 걸 넘어서 말입니다.“


소피아가 어째서 아론으로 위장했는지는 모른다. 왜 굳이 나를 이 저택으로 불렀는지도 모른다. 하지만 하나는 안다. 이 저택에는 내가 아는 것보다, 더 거대한 진실이 있다는 사실. 그리고 그 진실을 내가 반드시 파헤쳐야 한다는 사실을.


로자 씨도 자리에서 일어섰다. 그녀의 눈에는 결의가 불타고 있었다.


”저는 지금까지 아버지를 경멸하며 살아오고 있었어요. 엄마가 죽었는데 다른 여자하고 놀아나는 쓰레기라고요. 하지만 저는 더 큰 진실을, 줄곧 못 보고 있었는지도 몰라요.“

”저, 저도요. 이 집에서 가정부로 일하면서 그렇게 책임감을 가졌던 적은 없어요. 그저 용돈이라도 벌어볼까 싶어서 일한 거였죠.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도움이 될 수 있을 만한 일을 할 수 있을지도요.“


이제 루돌프만이 남았다. 그는 조심조심 느릿느릿 말을 꺼냈다.


”....전 항상 이기적이었습니다. 크라우스 형님의 바짓자락 뒤편에 숨어 주변을 살피기만 했죠. 이 저택에 온 것도 전적으로 크라우스 형님의 결정이었지, 저는 그저 따라가기만 했습니다. 하지만 이번에야말로... 제 운명을 제 손으로 만들 기회일지도 모릅니다. 뭐든지 하겠습니다.“


로자는 루돌프에게 다가가더니 와락 포옹했다. 루돌프는 깜짝 놀라 멍하니 서 있었다. 그러다 로자를 으스러질 듯 껴안았다. 그 두사람은 한동안 그렇게 있다가 떨어졌다. 나는 큼큼 헛기침을 했다.


”자, 이제 사건의 전말에 더 가까이 다가가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여러분 모두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외부인인 저와는 달리, 여러분들은 사건의 중심에 가까이 있었으니까요.“


내 말에 거실에 있는 모두 내게 관심을 집중했다. 내 입에서 어떤 말이 떨어질까 기다리며.


“유리아 부인, 살아생전... 그러니까 첫 번째 살인이 일어나기 전의 소피아 씨는 성격이 어땠나요? 갑작스러운 질문이지만, 부디 답해주셨으면 합니다.”

“갑자기 그리 말해도... 흐음, 하나 이상하다고 생각했던 부분이 있었어요. 저는 처음에 소피아가 아론의 재산을 노리고 들어온 꽃뱀인줄 알았어요. 아론이 아내가 있었다는 건 말해주었죠? 아내가 교통사고로 죽고 나자 바로 소피아와 동거를 시작했거든요.”

“하긴, 로자 씨와 루돌프, 크라우스가 입양아가 아닌 이상 아내가 있었겠죠. 유리아 부인이 근무할 때도 그분이 계셨겠군요.”

“아니요. 그때는 오로지 제임스만 일하고 있었어요. 저는 소피아와 아론이 막 동거하기 시작했을 때 일하기 시작했거든요. 저를 고용한 것도 소피아의 입김이 작용했던 것 같아요. 듣기로 죽은 아내는 가정부를 허용하지 않았다나요.”

“그 아내의 이름이?”

“제임스는 ‘켈리’라고 했던 것 같아요. 꼭 육상부같은 이름이죠? 그만큼 성격이 괄괄했던 것 같아요.”


검증을 위해 로자 씨에게 물어보자 그 이름이 맞다고 했다. 이렇게 또 다른 인물이 추가되는군. 아론 씨의 죽은 아내, 켈리. 아론 씨의 본래 나이는 크라우스 씨를 보았을 때 적어도 50대는 되리라. 소피아는 들어보았을 때 상당히 젊게 느껴졌다. 로자 씨가 첨언했다.


“어머니는 아버지랑 사이가 항상 안 좋았어요. 그래서 걸핏하면 부부싸움이 붙었죠. 교통사고가 나기 전까지는 이혼 소송 직전까지 간 모양이에요. 성격이 무지 안 맞았거든요.”

“그 이혼이 혹시 아론 씨의 불륜과 관련이 있습니까?”

“그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어머니는 아버지가 그런 더러운 짓거리를 하는 걸 알아차리지 못했어요. 부부싸움 소리가 너무 커서 저택 전체에 쩌렁쩌렁 들릴 정도였어요. 당연히 그 내용도 다 들렸죠. 불륜 이야기는 하나도 없었어요. 콩가루 집안이었죠. 그렇죠?”

“아니, 그럴 의도는 아니었습니다만... 어쨌든 정보 감사합니다. 많은 도움이 되었습니다.”


이제 나는 루돌프씨에게 주의를 돌렸다. 그는 어색하게 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지금까지 모두를 속여온 속죄의 의미라도 되는 걸까.


“루돌프 씨, 생전의 아론 씨는 전통적인 인간상이라고 들었습니다. 그게 어느 정도까지입니까?”

“전통적...이라기보다는 고리타분했다고 해야겠죠. 아버지는 장남인 크라우스 형님을 가장 아끼고 막내인 저를 홀대했으니까요. 로자 누나는 거기서 딱 중간이었죠. 이도 저도 아닌 존재. 갈곳 없는 오리라고 할까요.”

“고리타분했다면 현대기술에 대해서는 어떤 생각을 갖고 있었는지 혹시 의견이라도...?”

“네, 그래서 처음에 여기 자동식 센트리건이 있었다는 말을 듣고 무지 놀랐다니까요. 원래 아버지라면 그런 무기는 불안하다며 들여오지도 않을 텐데 말이에요.”

“그런 사람이라면 갑자기 의식전송기술에 대해 관심을 보이지는 않겠군요. 그렇다면 소피아는 역시 아론 씨에게 강제로 의식전송수술을 행했다는 걸까요.”


만약 이 저택 안에 있을 3번째 의체에 의식전송된 아론 씨가 있다면, 그 공포는 말로 형용하기 어려울 것이다. 중세시대에 비유하자면 악마의 몸에 갇힌 인간이나 다름없다고 해야 할까. 그렇다면 그런 짓을 행한 소피아는, 아론 씨를 채집관의 나비처럼 자기 곁에 두고 싶어하는 걸까.


그때 루돌프가 의견을 냈다.


“이렇게 앉아서 궁리해보았자 별 결과는 안 나올 거 같아요. 차라리 우리가 먼저 선수를 치죠. 소피아든, 아버지든 찾아보자고요. 로자 누나, 어떻게 생각해?”

“그, 그래. 하지만 아버지가 소피아와 협력할 가능성도 있잖아. 기억 안나? 아버지는 그년에게 미쳐있었다고. 거기다 아버지가 만약 의체에 들어가 있다면, 공황상태에 빠졌을 거야. 그렇다면 더욱 소피아 그년에게 의지하고 싶겠지.”


유리아 부인도 한 마디했다.


“그러면 소피아보다는 아론을 노리는 게 좋겠네요. 아론이라면 소피아에게 어쩔 수 없이 협력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으니까요.”

“하지만 소피아와 아버지를 어떻게 구분하죠? 의체는 똑같이 생겼을 텐데. 모리건 씨, 혹시 의견 있으신가요?”

“...지금으로서는 아론 씨를 믿어볼 수밖에 없습니다. 소피아에게 습격당할 경우를 대비해서 뭉쳐 다녀야 하겠습니다만, 혹시 숨을 수 있는 장소가 있을까요?”


제임스 씨가 있다면 좋겠지만... 유리아 부인에게 의지할 수밖에. 그때 갑자기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2층에 관제실이 있지 않습니까? 거기서 크라우스 씨와 제임스의 사망장면을 다시 확인하는 겁니다. 아직 시간이 얼마 안 지났으니, 최대배속으로 돌리면...”

“좋아요! 당장 가죠!”


2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올라가 관제실로 향하면서, 우리는 내심 습격을 기대하고 있었다. 그러나 범인은 우리가 뭉쳐있자 나오지 않기를 택했는지 코빼기도 안 보였다. 관제실에 들어가고 문을 잠구자 드디어 안심이 되었다.


“전에 제임스가 계기판을 조작했던 걸 봤어요. 어디보자, 이걸 이렇게 하면... 안되는데?”


유리아 부인은 계기판을 조작했지만 먹통이었다. 몇 번 시도해보아도 안 되자 그녀는 양손을 올리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거 완전 먹통이에요. 전원은 들어오는데 조작은 아무리 해도 안 먹혀요. 설마 범인이 이 기계를 망가뜨린 걸까요?”

“그렇다면 범인은 지금 2층에 있는 셈이군요. 우리들은 계속해서 1층 거실에 있었습니다. 만약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온다면 거실을 지나쳐야 하죠. 잠깐, 그렇다면...”


내가 말을 끝낼 새도 없이, 로자 씨가 문을 활짝 열어젖혔다. 탁탁. 분명히 들렸다. 사람의 발자국소리다! 소리를 들어 보건데 지금 1층으로 향하는 계단을 내려가고 있다! 우리가 여기에 있는 사이 1층으로 가려던 속셈이 틀림없다.


“가죠! 놓치면 안 돼요!”


우리는 쏜살같이 방 밖으로 뛰쳐나왔다. 상대방은 벌써 계단을 다 내려왔는지 아래층 복도를 내딛는 둔탁한 발소리가 들렸다.


그때, 유리아 부인은 우리들중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을 했다. 계단의 난간을 넘어 그대로 뛰어내린 것이었다. 높은 곳에서 떨어지는 고양이 같은 자세로 착지한 유리아 부인은 아래층 복도로 내달렸다. 그리고 우당탕 쿵탕하는 소리가 들렸다.


나와 로자 씨, 루돌프가 계단을 완전히 내려올 때쯤 상황은 끝난 뒤였다. 유리아 부인과 범인은 바닥을 나뒹굴고 있었다. 제압당한 쪽은 범인이었다. 역시 의체였다.


“부인, 괜찮습니까?”

“네, 한 번 해봤는데 두 번이라고 못할까요. 움직임이 어째 전보다 더 어설프더군요.”


유리아 부인에게 깔린 의체는 끙 소리를 낼뿐 말이 없었다. 나는 조심스레 다가갔다.


“아론 씨입니까? 아니면 소피아입니까? 순순시 말하는 게 좋을 겁니다. 늦든 빠르든 경찰이 도착할 테니까요. 거기다 저는 그쪽에 연줄이 있어서 말입니다.”


그럼에도 아무 말이 없자 나는 더 압박을 넣었다.


“이 글리치 시티에서는 법이 힘 있는 자들 편이어서 말입니다. 아, 여기서 힘은 돈을 말하는 게 아니라 연줄을 말하는 겁니다. 물론 당신도 경찰에 연줄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경찰도 제게 몇 번 신세 진 적 있거든요. 이래 보아도 업계에서는 꽤 유명한 탐정이니까요.”


내 말과 함께 유리아 부인은 의체의 팔을 조르는 코브라 트위스트의 압력을 한층 배가시켰다. 내 ‘설득’과 유리아 부인의 ‘압력’이 먹혔는지 아래에 깔린 의체는 끄응 하고 신음을 토해냈다. 로자가 다가섰다.


”아버지! 아버지인가요!“

”로자 씨! 물러나십시오! 아직 이 자가 진짜 아론 씨인지 확실하지도 않은 상태입니다! 어디 묶을 만한 뭔가 없습니까?“


커튼을 잘라 줄처럼 묶는 방안이 떠올랐지만, 가위도 없는 지금은 불가능하다. 뭔가 간단하게 판별할 방법이 있을까? 하나 있었다. 나는 무릎을 꿇고 제압당한 의체와 눈을 마주쳤다.


”만약 당신이 진정 아론 씨라면 이 질문에 답해주세요. 1주일 전의 일이니 기억하고 있으시겠죠. 저는 몇 살입니까?“


나는 아론인 척하는 소피아에게 내 나이를 말한 적이 없다. 그리고 이 상황에서, 만약 아론이 아닌 사람이 아론인 척 가정하려면 지금쯤 머리가 고민으로 터질 것이다.


만약 아론이 아직 살아있을 적에 이 모리건이라는 작자와 1주일 전에 만난 적이 있을까? 이게 나를 꾀기 위한 함정이라면 어떡하지? 만약 만났다면, 그에 어울려줘야 하는 걸까? 아니면 단순히 기억나지 않는다고 해야 할까? 10초도 안 되는 시간이 흐르고, 아론의 형상을 한 의체가 답변했다.


”그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군. 우리는 분명히 1주일 전에 만난 적이 없지 않나. 내가 자네 나이를 알 턱이 없지.“


나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 사람은 진짜 아론이다. 가짜라면 당황해서 어쩔 줄 몰랐을 것이다. 나는 유리아 부인에게 손짓했다.


”유리아 부인, 놓아주셔도 괜찮습니다. 하지만 경계는 늦추지 마시고요. 아론 씨, 이제부터 질문에 답해주셔야겠습니다. 당신의 아들, 크라우스 씨가 돌아가신 건 알고 계십니까?“

“내 아들, 크라우스의 시체를 옮긴 것은 나였네. 당연히 모를 리 없지. 그 아이가 피 웅덩이속에서 죽은 모습을 보면서 내가 어떤 심정을 느꼈는지 알기나 하는가! 그런데도 그런 질문을 하다니...”


아론 씨는 그렇게 말하고 눈을 감았다. 자신의 자식이 죽은 채 쓰러져있는 그 끔찍한 광경을 떠올리듯이. 그 순간, 아론 씨는 범인이나 공범이 아니었다. 그저 혈육의 죽음을 슬퍼하는, 세 아이의 아버지일 뿐이다. 그 광경을 지켜보던 루돌프가 조용히 말했다.


“아버지, 루돌프입니다. 잘 계셨습니까?”

“...루돌프냐...? 너랑 로자만은 살아있어주어 기쁘구나. 네 큰형에게 일어난 일은... 안 되었다.”

“그렇다면 누가 큰형님을 찔렀는지 보았습니까? 범인을... 보았습니까?”


루돌프의 질문에 아론은 푹 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모든 것을 후회하는 사람의 깊디깊은 한숨이었다.


“그래... 나는 바로 거기 있었다. 제임스와 크라우스는 복도에서 망을 보고 있었단다. 그때, 나를 본 크라우스가 제임스에게 이렇게 말하더구나. ‘저것 봐라. 저게 바로 네가 죽인 것의 정체다.’ 그 말을 들은 제임스는... 내 아들... 크라우스의 배를 찔렀다.”

“하지만 왜...?”

“모른다. 아마 소피아는 알지도. 똑똑한 여자야. 나는 지하실에서 소피아가 내 곁에 깨어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기억이 업로드되지 않은 소피아는, 당연히 살해당했을 때의 기억은 없었다. 하지만 그녀는 제임스와 유리아가 자신을 의심할 1순위라고 생각하고 있었지.”


2번째 의체에서 부활한 소피아는, 그녀의 죽음의 구체적인 과정은 몰랐을 것이다. 의식전송을 하기 위해서는 지하실의 기계와 물리적 접촉이 필요하니까. 하지만 소피아는 아론 씨와 가까이 지냈다. 충분히 자신을 살해할 만한 용의자를 줄일 수 있다.


”아론 씨, 당신은 제임스와 크라우스를 보고있었다고 했었죠. 그렇다면 당신은 1층에 있었다는 말이군요. 아닙니까?“

”맞네. 나는 1층에서 내 아들을 보고있었네. 그리고 죽는 모습도 똑똑히 보았지.“

”하지만 그건 이상합니다. 그렇다면 당신은 어째서 2층에 있었습니까? 우리가 2층으로 올라가 감시카메라를 확인하러 갔을 때, 당신은 우리 뒤를 조용히 밟아서 2층으로 올라갔다... 하지만 왜?“

”...보고 싶었네...“

”네?“

”산 자의 세상을 조금 더 맛보고 싶었네. 그리고 아직 살아 숨 쉬는 내 자식들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네. 내 자식과 조금이라도 더 가까운 곳에 있고 싶었어... 그래서 나는 가만히 있으라는 소피아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2층에 갔던 거네... 후후, 지금쯤 소피아는 미쳐 날뛰고 있겠지.“


로자 씨와 루돌프의 눈시울이 붉게 물들었다. 아론 씨는 생전에 전통적이고 무뚝뚝한 사람이었다고 들었다. 그러나 그런 그의 깊은 마음속에도 자식들을 걱정하는 마음이 깊게 있었다. 그런 그의 마음은, 죽은 후 이승과 저승을 떠도는 망령같은 상태가 되어서도 이어졌다.


”아버지... 어째서 소피아같은 년의 명령을 따르는 거예요...? 그 년이 아버지를 이런 엉망진창인 상태로 다시 살려내서요? 정신 차리세요!“

”오... 로자, 난 항상 너를 크라우스 다음으로 사랑했었지. 살아생전에 너에게 더 관심을 쏟지 못한 나를 용서하거라. 이제는 내게 남은 시간도 얼마 남지 않았으니...“


그 말을 들은 루돌프가 아론 씨의 멱살을 잡았다. 2미터가 되는 의체의 키에도 불구하고 루돌프의 손에 잡힌채 흩날리는 아론 씨는 떨어지기 직전의 이파리 같았다.


”아버지! 아버지가 진정 우리들을 사랑하신다면 이것 하나만은 답변해줘요! 왜 크라우스 형의 시체를 옮겼나요! 아니면 그것도 소피아가 한 건가요!?“

”생각해보거라. 대체 왜 그랬겠느냐...?“

”저를... 범인으로 만들지 않게 하기위해서인가요...?“

”그것 말고 더 있겠느냐...? 아둔한 것. 제임스는 우리 가문을 위해 많은 것을 해주었으나 시체의 위치를 바꿔 너를 범인으로 몰아갔다. 그러면 나도 그럴 자유가 있지 않겠느냐? 이건 속죄다... 하나는 너희들에 대한 속죄... 또 하나는 소피아에 대한 속죄...“


나는 루돌프 씨를 부드럽게 밀어냈다. 루돌프 씨는 저항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소피아와 당신은 오래 사귀었다고 들었습니다. 아내분이 돌아가신 뒤에도요. 왜 사귀었습니까?”

“어려운 질문을 물어보는구만. 그저 내가 인간쓰레기라 그렇다 치면 안 되는 건가? 봐라. 나는 자식이 눈앞에서 죽어가도 아무것도 못 하는 쓰레기 같은 아비다. 그러면 쓰레기 같은 남편이 되지 않으리라는 법도 있나? 말해보게. 나는 좋은 미스터리범이었나?”


살과 피로 이루어진 눈이 아니었지만, 아론 씨의 눈은 고통과 절망을 품고 있었다. 나는 고개를 저었다.


”당신의 일 처리는 무척 어설펐습니다. 이런 일에 경험이 없는 탓이겠지요. 애초에 시체의 위치를 그렇게 무작정 바꾸면 안되었습니다.“

”하하, 시체처리에 경험이 많으면 그거 쓰겠나. 듣거라, 내 자식들아... 이 아비는 너희들을 사랑했단다... 다른 걸로는 원망해도 좋지만, 이 점만은 알아주었으면 하는구나... 앞으로 원망할 게 잔뜩 생길 테니.“

”그게 무슨 말이죠?“


아론 씨는 씨익 웃어 보였다. 한 점의 후회도 없는 시원한 웃음이었다.


“미안하지만 내 마지막 임무는 완수했네. 지금 순간에도 소피아는 모든 것을 끝내기 위해 지하로 향하고 있을 거야. 내 임무는 자네들을 가능한 한 오래 붙들어놓는 거였어.”

“뭐....?”


입과는 반대로 머리는 바삐 돌아가고 있었다. 이제야 머릿속에 퍼즐 조각이 짜맞춰졌다. 아론 씨가 굳이 모습을 드러낸 이유. 아론 씨는 소피아 몰래 2층에 갔다고 하지만. 소피아가 과연 모르고 있었을까? 아니면 그냥 가게 내버려 둔 걸까?


“아론 씨, 그렇다면 아까 자식들을 보고 싶어서 2층으로 갔다는 것도 거짓말이었습니까?”

“아니, 그건 아니네. 나는 정말로 내 자식들을 사랑하네... 그것만은 진실이야.”


생각하자. 생각하자. 아론 씨의 말대로라면 지금 소피아는 어디에 있지? 우리들의 시야가 닿지 않는 장소. 1층과 2층 저택의 복도는 일직선이다. 아론 씨는 2층에서 1층으로 달려갔다. 마치 우리가 쫓아가기를 바라는 것처럼...!


“여러분! 2층으로! 아직 늦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이번에야말로 소피아를 잡읍시다!”


결국, 우리는 또 소피아에게 놀아난 셈이다. 그것도 아주 완벽하게.


우리들은 아론 씨를 내버려 두고 2층으로 달려갔다. 내 뒤로, 아론 씨의 목소리가 복도에 메아리쳤다.


“소피아가 말했어... 아직 마치지 못한 일이 있다고... 그리고 자네가 어울려주었으면 좋겠다고 말이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1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아론 관 살인사건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13 13화 20.09.27 16 0 11쪽
12 12화 20.09.27 12 0 24쪽
11 11화 20.09.25 15 0 22쪽
10 10화 20.09.25 22 0 22쪽
» 9화 +1 20.09.23 19 1 21쪽
8 8화 +1 20.09.23 18 1 23쪽
7 7화 20.09.19 63 0 20쪽
6 6화 20.09.19 39 0 21쪽
5 5화 20.09.14 61 0 18쪽
4 4화 20.09.14 25 0 20쪽
3 3화 20.09.10 26 0 21쪽
2 2화 20.09.10 27 0 20쪽
1 1화 +1 20.09.09 102 1 16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