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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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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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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27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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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쪽

12화

DUMMY

소피아는 범인이 아니었다. 아론 씨를 죽인 건 소피아지만, 따지고 보면 소피아 역시 아론 씨에게 이용당한 피해자에 가까웠다.


“우리는 소피아의 의체가 하나 더 있고 ‘아론’이 안에서 창문을 열어 소피아를 들여보냈다고 믿었습니다. 이거는 아론 씨가 진짜라는 발상에서 나온 가정이었죠.”

“그런 생각까지 한 거야? 하지만 아니야. 너희도 알겠지만 나는 저택에 들어갈 필요가 없었어. 저택 내의 소피아는 가상의 존재였던 거야.”


우리가 지금까지 ‘저택 내에 소피아가 있다’라고 생각했던 근거는, 제임스 씨의 말에 근거하고 있었다. 저장소 의체 2개에 더해 유리아 부인이 죽은 의체 하나. 그리고 소피아는 자신은 저택 내 들어간 적 없다고 말한다.


모순이다.


“소피아 씨, 당신의 설명은 훌륭하지만 한 가지 결함이 있습니다. 2층의 부서진 관제실 말입니다. 그건 대체 언제 부쉈던 겁니까?”

“무슨 소리야? 나는 다 말했어.”

“아니요. 명백히 이상합니다. 저택에 비밀통로는 없습니다. 그리고 모든 창문은 안쪽에서 잠겨있고요. 그리고 우리는 계단을 감시하기 위해 1층 거실에 모여있었죠. 그렇다면 당신이 조종하는 아론의 의체는 지금까지 2층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맞습니까?”

“으, 응. 그렇지.”

“하지만 아론의 의체는 어느 순간에는 1층에 있었습니다. 왜냐하면 크라우스 씨의 시체와 제임스의 시체를 옮겨야 하니까요. ‘아론’은 소피아가 제임스를 죽이는 걸 알리고 싶지 않아서 그랬다, 라고 말했지만 말입니다.”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기는 것과 제임스 씨의 시체를 옮기는 것은 의체가 하나여서야 불가능하다. 우리는 크라우스 씨의 시체 앞에 울고 있는 루돌프를 발견하고, 바로 센트리건 앞의 제임스 씨 시체를 발견했다.


“그리고 더 있습니다. 제임스 씨는 센트리건 앞에 가까이 다가가서야 총탄에 맞아 죽었습니다. 그렇지만 이것도 말이 안 됩니다. 왜냐하면, 시간상 제임스 씨는 크라우스 씨를 홧김에 살해하고 나서 바로 마당에 나갔기 때문입니다.”


왜 제임스 씨는 크라우스 씨를 살해하고 바로 마당에 가기로 결심한 걸까? 분명히 뚜렷한 목적이 있었을 것이다. 애초에 크라우스 씨를 살해한 동기도 의문투성이다.


그렇다면 ‘크라우스 씨를 죽인다=센트리건에 뭔가 문제가 생긴다’ 라는 공식이 성립된다. 그리고 제임스는 그 사실을 어떻게든 알고 있었다.


아니... 아니다. 이렇게 생각하면 뭔가 이상하다. 크라우스가 센트리건과 관련이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이런, 대체 뭐가 뭔지. 내가 고민하는 동안 로자 씨가 말했다.


“탐정님, 이제 다 해결된 거 아닌가요? 이야기를 들어보면 소피아도 우리를 가둔 범인이 아닌 거 같고요.”


그렇게 말하는 로자 씨의 눈에는 희망이 엿보였다. 저택을 살아서 나갈 수 있다는 희망. 나는 그 희망을 깨뜨리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선택의 여지가 없을 때도 있는 법이었다.


“아니요. 소피아의 말에는 모순이 있습니다. 소피아의 말대로라면 제임스 씨의 시체가 그 자리에서 사라지는 건 불가능해요. 아론 씨의 의체가 동시에 두 군데 동시에 존재하지 않는 이상은. 그리고 그 점을 소피아가 부정하고 있는 겁니다.”

“으으, 대체 뭐가 진실이고 거짓인지 모르겠어요!”

“그걸 우리가 알아내야 하는 겁니다.”


소피아와 아론 씨가 가진 동기는 설명되었다. 하지만 아직 크라우스 씨와 제임스에 대해서는 모르는 게 많다.


“유리아 부인, 제임스 씨가 혹시 돌아온 아론이 진짜가 아닌 걸 어떻게 알게 되었는지 말해주셨습니까?”

“아니요. 제임스가 그런 말 한 적은 없어요. 하지만 제임스는 아론을 10년 동안 모셨어요. 그러니 조그만 변화도 알 수 있던 거겠죠. 거기다 상황 자체가 수상하기도 했고요.”


흐음, 당연한 말이라 할 말이 없다. 역시 허탕이었나. 그때, 루돌프가 갑자기 말을 툭 던졌다.


“....이게 도움이 될지는 모르겠지만, 제가 크라우스 형님의 쓰러진 시체를 보고 패닉 상태에 빠져있을 때, 뭔가를 들었던 것 같습니다. 제 착각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말해주세요. 지금으로서는 어떤 단서도 중요합니다.”

“바닥에 뭔가 끌리는 소리라고 해야 하나? 뭔가 자루 같은 게 끌리는 소리였어요. 당시는 환청인줄 알았는데.... 혹시 이게 제임스의 시체를 끄는 소리가 아닐까요?”

“그렇다면 제임스는 크라우스 씨를 살해하고 나서 곧바로 살해당했다... 저와 유리아 부인이랑 로자 씨는 2층에 있었으니, 소피아 씨? 할 말 있습니까?”

“이 저택에는 의체가 3개 있었다. 하나는 못쓰게 되었고, 하나는 여기 있으니, 내가 나머지 하나를 제임스를 죽이는 데 썼다는 거지?”


크라우스의 살인과 제임스의 살인은 거의 동시에 일어났다. 그러기 위해서는 살인범이 2명이거나 동시에 2곳에 위치해야 한다. 그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범인은 소피아뿐이다. 루돌프가 중얼거렸다.


“내가 크라우스 형님의 시체를 봤을 때, 제임스는 아직 그 자리에 있었어. 그러더니 갑자기 얼굴이 파래져서 복도로 뛰어나갔어. 지금까지 날 보아서라고 생각하고 있었는데, 설마 다른 사람을 보아서 그랬던 건가?”


여기서 가장 신뢰받을 수 있는 증언자는 현재로서는 루돌프 씨뿐이다. 루돌프 씨의 증언에 따르면 범인은 곁에서 훔쳐보던 아론의 의체를 보았다?


“루돌프 씨, 혹시 제임스 씨가 바라본 쪽이 어느 쪽이었는지 기억하십니까?”

“으으, 잠깐만.... 나한테 왼쪽이었던 거 같아.”

“그거 이상하군요. 분명히 화장실은 거실을 기준으로 왼쪽에 있었던 거 같은데. 그리고 제임스는 나한테서 오른쪽으로 달려나갔어. 그러니 자기가 뭘 보았든 간에, 멀어지고 싶었던 거 아닐까?”


그리고 당시 우리가 있던 2층 관제실... 아니지, 여기서 관제실의 위치는 중요하지 않다. 거실의 위치가 중요하다. 우리는 비명을 듣고 곧바로 달려갔었다. 계단을 바로 내려오면 1층 거실이 보이므로 거기를 기준으로 삼자.


화장실은 1층 거실을 기준으로 왼쪽 복도에 있다. 그리고 화장실은 그 복도의 끝을 바라보고 서 있는 사람의 기준으로 오른쪽에 있다. 루돌프는 제임스가 자기를 기준으로 왼쪽을 보았다고 했으니, 제임스는 현관이 연결된 거실 쪽을 보았다.


즉, 만약에 제임스가 센트리건에 쏘이기 위해서는 1층 현관으로 나가기 위해서는 계단 앞을 지나가야 한다는 말이다. 하지만 이것도 말이 안 된다. 우리는 루돌프의 비명을 듣자마자 즉각 계단을 내려갔다. 심지어 유리아 부인은 빨리 가기 위해 계단참을 뛰어내리기까지 했다.


“즉, 제임스 씨는 크라우스 씨를 찌른 순간 도망쳤다고 봐야 합니다. 하지만 센트리건에 쏘이기 위해서는 현관으로 가야 하는데 우리를 지나지 않고서 현관으로 갈 수 없어요. 유리아 부인, 계단참을 뛰어내렸을 때 뭔가 이상한 걸 보지는 않았죠?”

“네, 크라우스의 시체와 루돌프를 제외하고 다른 사람은 못 봤어요.”

“그럼 확실하군요. 제임스 씨는 살해당한 겁니다. 아까 루돌프 씨가 사건 당시 제임스 씨의 시선이 자기를 기준으로 왼쪽을 보았다고 했습니다. 그러면 제임스 씨의 기준으로는 오른쪽을 본 것이죠. 거실 쪽을 말입니다.”


그리고 제임스는 루돌프 씨를 기준으로 오른쪽, 즉 복도의 끝부분으로 뛰었다. 왼쪽 복도의 끝에는 문이 없다. 그리고 저택에는 비밀통로도 없다. 그렇다면 결론은 단 하나다.


“제임스 씨는 크라우스 씨를 살해하고 나서 오른쪽에서 다가오는 아론 씨의 의체를 보았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씨는 반대편으로 뛰었지만, 다른 의체에 잡혀 살해당한 겁니다.”


듣던 로자 씨가 반박했다.


”잠깐, 양 쪽에서 다가오는 2개의 의체를 못 보았다고요? 아무리 생각해도 이상한데요.“

”잊으셨습니까? 아론 씨의 의체는 원한다면 무척 조용히 움직일 수 있습니다. 예를 들어 우리는 당신이 조작한 원격조종 의체가 모습을 드러낼 때까지는 그 존재를 추측에 부치고 있었습니다. 유리아 부인, 당신은 이 저택에서 움직이는 의체를 보았습니까?“

”아니, 못 봤어. 내 가청능력은 인간보다 훨씬 뛰어난데도.“

”그렇다면 소피아의 의체에는 고성능 센서가 있단 말이 되는군요. 우리의 발소리로 위치추적이 가능할 테고, 당신은 이 저택의 구조는 훤히 꿰고 있을 테니까요. 안 그렇습니까?“


소피아는 건조한 목소리로 반박했다.


”수사적인 질문이네. 내가 뭐라고 대답해도 답변은 변함없겠지? 너희가 귀가 안 좋은 건 아니고?“

”그럼 말해보시죠. 이 저택에서, 2개의 의체를 부릴 수 있는 당신을 제외하고 도대체 누가 범행이 가능하다는 말입니까!?“


소피아는 말이 없었다.


“어찌 되었든 당신의 의체는 분명 현장을 보고 있었습니다. CCTV로 보았을 가능성도 있지만요. 하지만 그 의체가 복도의 어느 쪽에 있었느냐? 그리고 제임스 씨는 아론 씨의 의체를 보면 어떤 선택을 했었을까요? 유리아 부인?”

“제임스는 당시 아론의 의체가 소피아인걸 알고 있었을 테니... 반대방향으로 도망쳤겠죠.”

“네, 하지만 그 반대편에도 역시 의체가 있었습니다. 소피아는 철두철미했습니다. 하지만 여기서 작은 의문점이 생깁니다. 아무리 루돌프 씨가 패닉 상태에 빠졌다 해도, 거실 쪽에 제임스 씨를 잡으려 달려오는 의체를 못 보았을까요? 분명히 화장실 앞을 지나가야 했을 텐데 말입니다.”


내 말에 로자 씨는 눈에 불을 켜고 질문했다.


“설마 루돌프가 공범이라는 말은 아니시겠죠?”

“그런 뜻은 아닙니다. 루돌프 씨는 적어도 제임스 씨의 살인에 관해서는 결백합니다. 그리고 적어도 우리의 동향을 감시하려면 저택에 의체 하나는 남아있어야 하니까요. 그러면 제임스 씨가 거실 쪽에 보던 의체는 화장실 앞을 지나지 않았다는 뜻이군요.”

“당시 제임스는 무척 당황했을 테고... 달리면서 뒤를 돌아볼 여유는 없었겠죠...”


소피아는 로자 씨의 말에 조소했다.


“그러면 왜 너희들은 그 의체를 못 보았던 건데? 설명할 수 있어, 탐정?”

“우리는 루돌프의 비명을 쫓고 있었습니다. 다른 곳에 시선을 줄 여유는 없었죠. 그리고 방들이 촘촘히 모여있는 이 저택의 특성상 숨을 곳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이 저택은 원래 4명이 살던 곳이다. 안 쓰는 방은 얼마든지 있다. 소피아는 적당히 어떤 방이든 문을 열고 들어가 숨을 수 있는 것이다. 아마 지금까지도 그렇게 우리를 피해온 거겠지. 그러나 소피아는 아직 놓을 기색이 없었다.


”그렇다면 루돌프가 들은 바닥을 끄는 소리는 뭔데? 제임스는 피범벅으로 죽어있었어. 그걸 끌면 바닥에 피가 남지 않겠어?“

”아니요. 제임스 씨가 피범벅이 된 이유는 센트리건의 총알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한 가지 추론이 가능합니다. 당신이 설치한 최신형 센트리건이 이미 죽은 자를 쏘지는 않겠죠?“


산 자와 죽은 자를 분별하는 방법은 간단하다. 호흡의 이산화탄소 방출변화를 구분하는 방법도 있고, 심박의 유무를 확인하는 법도 있다. 간단히 말해서, 22세기의 최신기술로 사람의 생사를 확인하는 법은 간단하다는 거다.


”우리는 지금까지 제임스 씨가 아론이나 소피아의 의체를 따라 센트리건에 다가갔다가 죽은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이 제임스 씨를 산채로 강제로 끌고 가서 쏘아 죽게 했다면 이야기가 달라지죠.“

”그런...“

”더 있습니다. 이제까지의 행동을 보아 당신이 센트리건 시스템을 완전히 장악하지 못했다는 사실은 알겠습니다. 분야가 다르니 당연한 일이겠죠.“


엄연히 말하자면 센트리건은 의체같은 고급 컴퓨터 제품보다는 냉장고에 가깝다. 냉장고를 수리하기 위해 자격증 십수개가 필요하지는 않지만, 반대로 자격증 십수개를 가진 사람이 냉장고를 수리할 수 있다는 말은 아니다.


”그러므로 당신은 아까 아론으로 가장한 의체로 보여준 것과 똑같은 트릭을 행해야 합니다. 의체를 방패로 뒤의 사람을 가리는 것 말입니다. 의식을 잃은 제임스를 안거나 업어서 센트리건 앞까지 간 뒤에, 즉시 옆으로 빠지는 것 말입니다.“


의체라는 방패벽이 사라진 이상 센트리건은 거리낌 없이 의식을 잃은 제임스에게 총탄을 발사했을 것이다. 아마 우리가 루돌프에게 정신이 팔린 사이 일어났겠지. 센트리건의 총성은 생각보다 작았으니 눈치 못챌만도 하다.


”센트리건은 당신이 옆으로 빠지는 그 즉시 발포했을 겁니다. 아마 피가 많이 튀었겠죠. 하지만 우리가 만났던 가짜 아론의 옷에는 피얼룩이 없었습니다.“

”옷, 옷을 갈아입었을 수도 있잖아!“

”호오, 그럼 당신이 제임스 씨를 살해하는 걸 인정하는 겁니까?“


진퇴양난이다. 만약 옷을 갈아입었다고 주장한다면, 오히려 자기가 범인이라고 광고하는 꼴이다. 그리고 옷을 갈아입지 않았다고 한다면, 대체 어떻게 피가 묻지 않았는지 해명해야 한다.


“소피아, 3번째 의체를 보여주시죠! 그리고 그 옷에 피 얼룩이 없다는 것을 증명하란 말입니다!”

“으, 으아아아아아아!”


소피아는 창고가 떠나가도록 울부짖었다. 스피커 너머로도 분노와 슬픔이 똑똑히 전해졌다.


”소피아, 어떻게 능구렁이처럼 빠져나가려고 했던 것 같지만 딱 걸렸습니다. 당신은 무고한 피해자가 아닙니다. 오히려 사적인 원한으로 제임스를 살해한 살인귀죠.“

”아, 하하하. 딱 걸렸네. 설마 여기까지 나를 몰아붙일 줄은 몰랐는걸.“

”완벽한 사건이 아니라면 언젠가 밝혀지게 되어있습니다. 당신은 그걸 몰랐을 뿐이에요.“


그게 바로 나를 지금까지 지탱해온 신념이었다. 인간이 해낸 이상, 풀지 못할 사건은 없다. 풀지 못하는 사건은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가 개입했을 때나 생기는 것이다.


”사람을 산채로 센트리건 앞에 끌고 가서 쏘아 죽게 한다. 이건 상당한 원한 없이는 불가능한 일입니다. 소피아, 제임스 씨에 대해 말하지 않은 게 있습니까?“


나는 제임스 씨에 대해 필요할 만한 건 알았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다른 비밀이....


”비밀 같은 건 더이상 없어. 내가 제임스를 죽인 건 크라우스에 대한 복수였어.“


소피아의 말은 착 가라앉아있었다. 그녀는 계속 말했다.


”제임스가 크라우스를 죽인 건 순전히 우연이었어. 배경은 잘 모르겠지만, 크라우스와 루돌프가 뭔가 꾸미고 있었던 같아. 그래서 제임스는 옷 속에 식칼을 숨기고 있었어. 이 저택의 집사니까 들키더라도 얼마든지 얼버무릴 수 있었겠지.“

”사족은 되었고 상황에 대해 말해주시죠.“

”나는 거실 쪽에 숨은 의체를 통해 현장을 엿보고 있었어. 여기까지는 내가 아론을 가장하면서 말한 것과 똑같지만, 나는 크라우스가 제임스에게 살해될 때까지 발견되지 않았어. 말씨름에 열중해서 아무도 내 쪽을 보고 있지 않았으니까.“


소피아는 그때를 떠올리는 듯이 눈을 감았다.


”루돌프가 화장실에 도망치듯 들어가고 나서, 제임스는 크라우스를 아론의 유산을 타 먹기 위해 이 저택에 왔냐고 따지고 있었어. 크라우스는 발뺌했지만, 궁지에 몰린 건 명백했지. 제임스는 이 저택에 빠져나가기만 한다면, 법정에서 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지.“

”그때 크라우스가 어떤 중요한 키워드를 말했군요.“

”아니, 크라우스가 먼저 숨긴 단검으로 제임스를 공격했어.“

”뭐라고요?“

”아무래도 크라우스는 제임스를 살해하고, 그걸 루돌프와 말을 맞춰서 미지의 범인으로 몰아가려고 했던 거 같아. 하지만 뜻대로 되지 않았지. 크라우스의 어설픈 공격을 피하고 제임스는 자기 역시 식칼을 꺼내서 끝장을 냈지. 흉기를 비롯한 증거품은 내가 다 치웠고.“


루돌프는 말이 없었다. 하지만 나라도 그가 죄책감에 겨워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었다.


”그 흉기를 치운 이유는 있었겠죠?“

”나는..... 너희가 서로 의심하는 걸 원하지 않았어. 만약 내가 흉기를 치우지 않았더라면, 너희는 곧바로 크라우스와 제임스가 서로 죽이려고 했다는 걸 알아냈겠지.“

”이거랑 제임스를 살해한 거랑 상관이 없습니다만.“

”그 집사는 아론의 자식을 죽였어. 만약 내가 제임스를 죽이지 않았더라면, 제임스는 목격자를 제거하기 위해 루돌프까지 살해했거나, 아니면 술래잡기가 펼쳐졌겠지. 희생자를 또 늘릴 가능성이 충만한 술래잡기가 말이야.“


소피아는 잠시 말을 멈췄다 계속했다.


”....그리고 나는 제임스를 용서할 수 없었어. 나를 마음껏 비난해도 좋아. 하지만 크라우스는 아론의 아이였어... 아무리 그자가 사악하다 해도 나는 내버려 둘 수 없었어... 그래, 이건 모두 아론을 위해서였던 거야....“

”아론을 죽인 사람은 바로 당신입니다. 그걸 똑바로 바라보시지 않는 겁니까! 뭐가 속죄입니까! 뭐가 아론을 위해서입니까!“

”닥쳐! 닥쳐! 나는 속죄하기 위해 이상적인 아론을 만들었어. 외모도 뛰어나고 성격도 고결해. 그런 내가 대체 어디가 부족하다는 거야!“


광기. 지금 소피아는 그렇게 묘사해도 될 정도였다. 자기 손으로 아론을 살해하고, 죄책감에 못 이겨 스스로 아론을 만들고 그 안에 들어가 연기했다. 맨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만약 유리아 부인이 첫 번째 의체를 살해하지 않았더라면, 자기가 아론을 죽였던 일을 폭로할 계획이었다고 소피아는 말했다. 속죄라는 핑계가 있었기에 소피아는 그렇게까지 자기를 몰아붙일 수 있었던 것이었다.


“당신은 미쳤습니다. 이미 아론과 당신을 거의 동일시하고 있어요.”

“하하, 그런 말 해주니 고마운데. 이걸로 나랑 아론은 더 가까이 있을 수 있는 거니까.”

“지금이라도 자수하면 형을 줄여줄지 모릅니다. 글리치 시티 법정은 자수자에게는 놀랍게도 관대하니까요.”


화면 속의 소피아는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나는 직감적으로 마지막 때가 왔음을 알았다.


“마지막으로 이것만 말해주시죠. 왜 관제실의 CCTV를 부순 겁니까?”

“이제 더는 필요 없으니까. 내 끝이 다가오고 있어. 애초에 무슨 일이 있을까 설치한 거지만, 실제로 이용할 일은 없기도 했고. 의체는 다루면서 그 간단한 기계조각조차 못 다루다니..... 역시 아론의 말이 맞았어. 나는 의체기술자 실격이야.”


절망에 빠진 소피아가 극단적인 선택에 빠지지 않도록, 어떻게든 설득해야 했다. 사람은 심리적으로 궁지에 몰릴수록 과격한 선택을 하는 경우가 많다. 자살이 그 예다. 그리고 나는 소피아가 절대로 자살하도록 둘 수 없었다.


“침착하시죠.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지금이라도 경찰에 자수한다면 형이 참작될지도 모릅니다. 그 점에서는 유리아 부인도 마찬가지고요.”


잊고 있었지만, 유리아 부인도 어떻게 보면 살인자였다. 의체기술 자체가 최근 도입된 거라서 선례가 없으니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모르겠지만, 소피아라는 인격체를 살해한 이상 가볍게 넘어가지는 않을 것이다. 유리아 부인은 화면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당신과 저 둘 다 죄인입니다, 소피아. 함께 자수하죠. 떳떳하게 죄 값을 치루는 겁니다.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옆에 있겠습니다.”


유리아 부인의 말에 소피아는 미소지었다.


”아니, 나는 아론의 이름을 욕보이는 일은 하지 않을 거야. 그리고 미안해, 유리아. 제임스는 좋은 집사였어. 일이 이렇게 되어 정말 안타까워.“


소피아의 애걸하는 듯한 말에는 진득한 후회가 담겨있었다. 유리아 부인은 고개를 끄덕이고 대답했다.


“예, 좋은 집사였고 좋은 남자였습니다. 아론도 마찬가지일 거라 저는 생각합니다. 적어도 제 마음속에서는 항상 그럴 겁니다.”

“정말 상냥하네. 아마 나보다 당신이 더 아론에 적합했는지도 모르겠어. 난 그저 죽고 나서도 이승에 매달리는 망령. 이쯤에서 사라져주는 게 도리겠지.”


화면 속 소피아는 큰 결심을 하듯 눈을 딱 감았다. 어째 소피아의 영상이 지지직거리는 게 기분 탓인가? 거기다 낮은 우웅 소리도 들려왔다. 컴퓨터가 과열되어 폭발하기 직전 같은 소리. 유리아 부인은 놀라서 물었지만, 나는 이미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짐작하고 있었다.


“무슨 짓을 하는 겁니까?”

“미안해. 하지만 나는 더 감당할 수 없어. 죄인의 핑계라고 생각해도 좋아. 오히려 그렇게 생각해주었으면 하니까. 나는 나 자신, 특히 원본을 용서할 수 없어. 원본은 아론을 위해서라면 내가 무슨 짓이라도 할 거라는 걸 안 거야.”

“아론을 따라갈 생각입니까? 당신이 자살하면 저세상에 있는 아론이 고마워할 거 같습니까? 그만두시죠!”

“이미 늦었어. 내가 설계한 시스템은 이미 무너지고 있어.”


전선이 불에 타는듯한 냄새가 매캐하게 풍겼다. 꺼졌다 켜졌다 하는 화면 속에서 소피아는 똑바로 나를 바라보았다.


“저 마당의 센트리건은 최종 권한자의 명령으로만 작동해. 나는 이 의체에 아론의 인식코드를 주입해 저 센트리건에 등록시켰어. 저 센트리건의 입장으로는 아론이 여전히 살아있는 셈이지. 하지만 그 ‘아론’이 지금 여기서 죽으면 어떻게 될 거 같아?”

“....이런다고 해서 당신이 원하는 속죄는 이뤄지지 않습니다. 속죄는 재판소 앞에 가서 하는 겁니다.”

“착각하지 마. 당신들이 아닌 나를 위한 거야. 내 손에는 이미 아론의 피가 잔뜩 묻어있어. 그래, 이건 나만의 이기심으로 일어난 ‘6일 전 개인실에서 일어난 아론 살인 사건’을 마치는 종결문. 내가 3일 전 당신에게 준 과제지. 기억하고 있어?”


지금으로서는 아득히 느껴지는 3일 전의 이야기. 이 저택에 오게 되었던 계기. 아론을 가장한 소피아가, 자신이 일으킨 살인 사건을 밝혀달라는 무언의 신호였을까.


“당신, 아니 2번째 소피아는 저를 통해 자신의 죄를 밝히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왜 경찰에 가지 않았을까? 그건 당신이 겁쟁이이기 때문입니다. 소피아. 그러니 당장 그만두시죠.”

“겁쟁이는 겁쟁이대로의 방법이 있는 거야. 잠깐의 시간 동안 나는 아론이었어.... 여기서 똑똑히 봐둬. 최후이자 마지막 ‘아론’의 종말을. 똑똑히 네 눈에 각인시키는 거야. 그리고 세상 사람들에게 말하는 거야. 여기 소피아가 아닌 최후이자 마지막 아론이 누웠다고.“


그리고 그녀는 소리높여 선언했다. 이제 여기서 최후이자 마지막 ‘아론’이 죽는다. 이걸로 이 저택의 사건은 종결된다. 그렇게 그녀는 말하고 있었다.


유리아 부인이 작게 속삭였다. 하지만 소피아에게는 들렸던 모양이다.


“.....이렇게 도망치는 건 비겁해요.”

“뭐라고 했죠, 유리아?”

“이렇게 도망치는 건 비겁하다고 했어요! 언제 정신 차릴 건가요! 당신이 아론을 위해 죽는다고 해도, 지옥에 있는 아론이 기뻐할 거 같아요? 그러니 자살해서 센트리건을 무력화시키니 하는 헛짓거리는 그만해요! 당장 돌아와요!”

“유리아 부인...”


나는 유리아 부인을 제지하려 했지만, 그녀는 나를 뿌리치고 이제는 완전히 블랙아웃된 화면을 노려보았다.


”비겁자.... 결국 당신은 책임에서 도망치기만 하네요.... 결국 그 정도 인간밖에 안 되는 거야.“

“알아요. 나는 비겁하니까 이 정도밖에 못해. 의체 뒤에 숨어서 관람하기만 하는 겁쟁이야. 겁쟁이라서 미안해. 그리고 제임스에게 일어난 일도 미안해, 유리아. 겁쟁이의 사과지만 들어줘. 그리고 기억해줘.”


마치 멈추기 직전 심장의 단말마처럼 화면이 확 하고 다시 들어왔다. 화면 속의 소피아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내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환히 웃었다.


“고마워, 모리건 탐정. 이런 나를 마지막까지 추궁하고 진실을 보도록 설득해줘서 고마워. 나는 이제 편하게 갈 수 있어. 내가 죽는 순간 너희들은 안전히 이 저택 밖으로 나갈 수 있을 거야.”


밖에서 시계 종소리가 정각을 알리고 있었다. 그리고 소피아가 사망한 시각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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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론 관 살인사건 연재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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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20.09.27 16 0 11쪽
» 12화 20.09.27 12 0 24쪽
11 11화 20.09.25 14 0 2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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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7화 20.09.19 63 0 20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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