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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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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조회수 :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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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글자수 :
118,882

작성
20.09.25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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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2쪽

10화

DUMMY

우리는 소피아를 찾기 위해 쏜살같이 다시 2층으로 뛰어 올라왔다. 2층의 복도는 아까와 마찬가지로 텅 비어있었다. 우리 4명은 서로 등을 맞대고 언제 튀어나올지 모르는 소피아를 경계했다.


“과연 소피아는 여기 2층에 있는 걸까요? 아론이 거짓말을 했을 수도 있잖아요.”

“아론은 2층에서 1층으로 도망갔습니다. 그리고 우리들을 유인하기 위해서였다고 자백했고요. 자백 자체가 거짓말일 가능성도 있지만, 적어도 소피아는 우리들을 자기와 최대한 멀리 떨어뜨리길 바랬을 겁니다.”

“혹시 2층에서 1층으로 뛰어내린 게 아닐까요? 튼튼한 의체라면 가능할 것 같기도 한데...”


우리는 유리아 부인의 제안을 받아들여, 방과 복도를 돌아가며 차례차례 수색했다. 우리가 방을 수색하는 동안 유리아 부인은 복도에 경비를 서서, 혹시 어디 숨은 소피아가 우리들이 방 안으로 들어간 틈을 타 나올지 경계했다.


“여기, 이 창문들은 다 안쪽에서만 잠기게 되어있네요.”

“그러고 보니 아론 씨의 방 창문도 안쪽으로 잠기게 되어있었죠. 그래서 저는 깜빡하고 밀실인줄 알았지 뭡니까.”

“하지만 유리아 부인은 마스터키를 갖고 있는 제임스 씨의 도움으로 문으로 당당히 들어갈 수 있었죠. 이번에도 그런 경우일까요?”


소피아가 마스터키를 가지고있을 가능성도 있긴 있다. 지금까지 우리들의 눈을 피해 자유롭게 돌아다닌 것을 보면 말이다. 거기다 이 저택에는 안 쓰는 방이 잔뜩 있었다. 애초에 ‘저택’이라고 불릴 정도의 건물이니 말이다.


“아론 씨는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자기가 옮겼다고 자백했지만, 제임스의 시체에 대해서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제임스의 시체는 사라졌죠.”

“확실히, 제임스의 시체를 치운 사람이 소피아일 수도 있겠네요. 그리고 제임스의 시체가 사라진 이상, 소피아가 마스터키를 가졌을 가능성도 있어요. 아니, 틀림없어요! 아버지든 소피아든 제임스의 시체를 어디 풀숲에 숨겨놓은 게 틀림없어요!”


로자 씨는 그렇게 단언하며 먼저 앞서나갔다. 루돌프는 어어 하며 머리에 피가 몰린 자기 누나를 따라갔다. 나는 질세라 쫓아가며 각각의 방과 창문을 점검했다.


이제까지 사건에 쫓기기만 했던 울분을 풀기 위한 탓일까, 우리는 방과 복도를 철저히 점검했다. 그러나 소피아는 코빼기도 비치지 않았다. 낙담한 로자 씨는 한숨을 털어놓았다.


“....또 놓쳐버린 걸까요... 설마 진짜로 이 저택에 비밀통로라도 있는 거 아니겠죠?”

“제임스 씨는 이 저택에 비밀통로는 없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제임스 씨는 소피아를 증오했으니 그 비밀통로에 대해 알려주었을 리도 없겠고요. 아론 씨라면 제임스 씨 몰래 이 집에 비밀통로를 설치했을 수도 있습니다만...”

“다시 아래층으로 내려가서 찾는다고 해도 이미 도망치고 없겠죠...”


역시 유리아 부인에게 아론 씨를 맡겼어야 했나. 하지만 유리아 부인 없이 의체 상태인 소피아를 맞이했다가는 생사를 장담할 수 없었다. 내게는 리볼버가 있었지만, 관절을 노리지 않는 한 한 방에 의체를 저지할 수 없었다.


복도에 문이 많은 이런 복도의 특성상 문 뒤에서 기습할 가능성이 있으니, 의체와 근접전이 가능한 유리아 부인을 데려온 것이었는데, 차라리 도박하는 셈 치고 맡겨뒀어야 했나... 루돌프가 의문을 털어놓았다.


“뭔가 우리가 놓친 게 있지 않을까요? 탐정님의 추리에 따르면 소피아는 분명히 2층에 있어야 해요. 그리고 1층에서 2층으로 올라가는 방식은 계단 하나밖에 없죠. 우리가 아론을 심문하는 동안 소피아가 우리 등 뒤로 몰래 빠져나오는 건 불가능해요.”

“확실히 계단은 우리 등 뒤로 5미터 거리에 있었죠. 그 정도 거리라면 충분히 발소리가 들릴 겁니다.”


내 말에 유리아 부인은 고개를 끄덕였다. 안드로이드인 유리아 부인은 우리 인간보다 더 청력이 좋았다. 거기다 아론 씨의 의체는 거대하다. 그런 덩치로는 도저히 조용한 발걸음을 낼 수 없을 것이다.


나는 시간을 내서 유리아 부인에게 우리 외에 다른 누군가의 발소리를 들을 수 있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다 고개를 저었다. 자신의 가청능력이 인간보다 우수하기는 하지만 그렇게 우수하지는 않다는 것이었다.


“우리는 2층을 샅샅이 뒤졌지만, 소피아는 보이지 않았어요. 그리고 1층에 있을 가능성도 없죠. 1층을 가로지르는 하나뿐인 복도에는 우리가 있었으니까요. 정말로 비밀통로가 있다면요....”


유리아 부인의 말이었다. 로자 씨와 루돌프도 고개를 끄덕였다. 제길, 정말로 이 저택에 비밀통로가 있단 말인가? 비밀통로가 있다면 소피아가 어디든 뿅 하고 사라지고 나타나는 게 가능하다.


“한 번 발상을 뒤집어보겠습니다. 소피아는 왜 아론 씨를 2층에서 1층으로 내려오게 했을까. 그건 곧 ‘아론이 2층에 있다=소피아도 2층에 있다’ 라는 사실을 추론해내기 위해서였습니다. 저는 어느새 소피아와 아론을 공범으로 몰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둘이 공범이 아니라면...?”

“확, 확실히 아버지는 소피아와 협력할 이유가 없었을지도 몰라요. 자기를 의체에 넣은 장본인 인데다가 자식들인 우리를 이 저택에 가뒀잖아요.”

“잠깐, 잠깐. 로자 누나. 아버지는 아까 분명 ‘소피아의 임무를 완수했다’라고 말했다고? 그러면 그건 뭐라는 거야?”


확실히 아론 씨는 잘 가다가 막판에 소피아와 협력하고 있었다는 투의 말을 던지긴 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아론 씨가 소피아에게 무작정 협력하고 있다고 단정하기는 애매했다. 마침 로자 씨가 내가 하고 싶었던 말을 정리해주었다.


“의체라고. 의체. 거기에 도청기능 하나 다는 건 식은 죽 먹기겠지. 분명 소피아는 아버지가 하는 말을 다 듣고 있었을 거야. 그러니 시키는 대로 할 수밖에 없었겠지. 유리아 부인, 혹시 이게 가능한가요?”

“가... 가능하다면 가능하겠죠. 요즘 도청기는 먼지 크기로도 되니까요. 하지만 여러분 몸에 묻었을 가능성은 없어요. 제가 방해전파를 내뿜고 있어서 이미 묻었다고 해도 떨어져 나갔을 거예요.”


방해전파는 처음 듣는 이야기지만, 이러면 얼추 이야기가 맞는다. 만약 도청기가 있었는데 유리아 부인 때문에 작동중지가 되었다면, 왜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기는 타이밍이 안 좋았는지도 설명할 수 있다.


도청기가 작동이 중지되었으니 소피아는, 내가 냉수를 가지러 부엌으로 간다는 사실을 몰랐을 테고, 제임스의 시체를 언제 바꿔야 하는지도 몰랐을 것이다. 그래서 더 시체를 빨리 바꿨던 걸까?


하지만 크라우스 씨의 의체를 옮긴 사람은 아론 씨다. 소피아는 분명 어딘가 숨어있었겠지. 그렇다면 거기서 나오는 결론은 단 하나다.


“아론 씨는 사실 소피아에게 적극적으로든 소극적으로든 반항하고 있었던 겁니다. 만약 시체의 위치가 들통나더라도, 도청기가 작동 중지되어서 판단미스를 범했다고 하면 그만이니까요.”

“확실히 아버지가 소피아를 이상할 정도로 사랑하기는 했지만, 그거 때문에 살인을 방조하지는 않겠죠. 저는 아버지를 믿어요.”


로자 씨가 내 말에 동의했다. 확실히, 아론 씨에게는 이 저택에 우리 모두를 가둘 만한 동기가 없다. 소피아라면 있겠지만, 그녀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이상 추측조차 할 수 없다.


그러나 한 가지 확실한 사실이 있다. 소피아는 아무도 죽이지 않았다. 센트리건 앞의 제임스 씨가 수상하기는 하지만, 그것도 지금으로서는 그저 추측에 불과하다. 그때, 루돌프가 말을 꺼냈다.


“저기...나... 말할 게 있는데...”


우물쭈물하는 루돌프의 목소리는 개미가 기어가는 것보다 작았다. 우리는 본능적으로 루돌프가 뭔가 중대한 발표를 하려는 것을 알았다. 로자가 말했다.


“뭔데? 말해봐.”

“나, 제임스 씨가 왜 크라우스 형님을 죽였는지 알 거 같아.”


이제 유리아 부인도 정신을 기울이고 있었다. 그녀는 창백한 얼굴로 루돌프의 입술 밖으로 나오는 말 한마디도 놓치지 않겠다는 듯 주의를 집중했다. 그는 주위의 시선이 부담스러운지 얼굴을 붉혔다.


“그 있잖아. 아까 화장실에 갔던 일 말인데. 복도를 걸어가면서 크라우스 형님이 이런 계획을 말해줬었어. 내가 아까 크라우스 형님이 소피아의 정체를 알고 있었다고 했잖아.”

“응, 말했었지. 그런데?”

“근데 그걸 제임스 씨가 엿들었나 봐.... 내 앞에서 걸어가던 형님은 눈치 못 챘지만, 저는 뒤에서 따라오던 제임스 씨의 얼굴이 일그러지는 걸 보았어. 그래서 화장실에 가자마자 배가 아프다고 말하고 화장실칸에 들어 갔었어... 그리고 제임스 씨가 크라우스 형님을 죽인 거야.”

“잠깐, 말의 앞뒤가 안 맞는 거 같은데. 그게 살인까지 이어질 이유가 될까?”

“생각해 봐, 제임스랑 유리아 부인은 아버지를 죽인 소피아를 단죄하겠다는 목적으로 의체를 살해했잖아. 하지만 그 자식인 크라우스는 이미 알고 있었으면서 유산을 타 먹겠다는 심보였다니, 꼭지가 확 돌만 해. 거기다 크라우스 형님은 꽤 거만한 성격이고.”


루돌프의 말에는 일리가 있었다. 크라우스는 분명 겸손과는 거리가 먼 성격이었지. 살인이 충동적이었다면 제임스 씨는 자기 보신을 위해 최선의 결정을 내려야 했을 것이다. 화장실에서 두려움에 떨며 숨죽이고 있던 루돌프 씨에게 누명을 씌우는 작업을.


“그러면 시체의 위치가 첫 번째에 화장실 안으로 쓰러져 있던 것도 설명되는군요. 제임스 씨는 당신이 크라우스를 죽였다는 착각을 일으키게 해, 당신 역시 제거하려 했던 겁니다.”

“하지만 아버지가 시체를 다시 옮기는 바람에...”

“네, 아론 씨는 그저 시체를 원래 쓰러졌던 자리, 즉 제임스가 화장실 밖에서 찔렀던 자리로 옮겼던 것뿐입니다. 물론 경찰이 검시하면 금방 들통나겠지만 이 저택은 바깥세계와는 격리된 또 하나의 세계. 당신을 파멸시키기에는 충분하겠죠.”

“아버지가 저를 구해줬다는 건가요... 하하, 탐정님보다는 훨씬 도움 되는 거 같은데요. 아, 농담인 거 아시죠?”


나는 루돌프의 말에 항변하려다 입을 꾹 다물었다. 여기 소피아가 있을지도 모르는 2층에 가자고 제안한 것은 내가 아니었던가. 차라리 1층에 머무르면서 곰곰이 일을 생각하는 쪽이 낫지 않았을까.


“자 여러분. 그럼 1층으로...”

“잠깐만요. 탐정님. 저는 아직 속 안 풀렸어요.”

“로자 씨...?”

“루돌프가 하는 말에 신경 쓰지 마세요. 탐정님은 지금까지 우리를 잘 이끌어주셨잖아요. 이제 밤 10시가 넘어가니까 아직 생각할 시간은 많아요. 어쩌면 지금까지 단서중 놓친 게 있을지도 모르잖아요.”


싱긋 웃으며 로자 씨는 내 어깨를 두드렸다. 내가 얼마나 피곤에 찌들었는지 알게 해주는 미소였다. 그리고 그 미소를 보자, 내 마음 속에서 새로운 힘이 차올랐다.


“탐정님, 아까 ‘아버지가 2층에 있다=소피아가 2층에 있다’가 사실 거짓일 수도 있다고 하셨잖아요. 그러면 반대로 생각해보는 게 어떨까요? 예를 들어 ‘아버지가 1층으로 내려갔다=소피아도 1층으로 내려갔다’ 라던가, 말이에요!”

“로자 씨, 아까도 말했듯이 2층에서 1층으로는 계단 하나밖에...”


갑자기, 쾅 하는 실현이 뇌리를 치고 지나갔다.


“뭔가요? 탐정님? 설마 계단을 거치지 않고서도 2층에서 1층으로 통할 수 있는 방법을 알게 된 건가요?”

“...아니요.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하지만 그런 방법이 없기에, 가능했던 방법이 있습니다.”

“....그게 뭔가요?”

“루돌프 씨의 증언에서 뭔가 떠올랐습니다. 단순히 시체의 위치를 바꾸는 작업 정도로도 충분히 범인을 단정하게 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센트리건 앞의 제임스 씨의 시체는 그런 의도도 없이 감쪽같이 사라졌죠. 의도조차 알 수 없게 말입니다.”

“어쩌면 자기는 센트리건을 걱정하지 않아도 된다, 일 수도 있잖아요. 덤으로 우리에게 무력감을 심어주는 것도?”

“하지만 타이밍이 이상합니다. 이미 전원 모두 센트리건에 제임스의 시체가 걸려있던 걸 목격했습니다. 시체를 치워서 얻을 수 있는 일이 있을까요? 능력을 과시하고 싶은 것치고는 이상합니다.”

“그건 그렇네요. 우리는 모두 제임스의 시체가 센트리건에 있는 걸 봤는데. 그렇게 해서 얻을 게 뭐가 있을까요?”


확실히 ‘우리’ 4명은 제임스 씨의 시체를 보았다. 하지만 그게 저택에 있는 전원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시체를 옮긴 장본인과 우리를 제외하고, 제임스 씨의 시체를 보지 못한 자가 한 명 있었다.


“제임스 씨의 시체를 옮긴 게 소피아라고 가정한다면, 당시 아론 씨와 소피아 모두 1층에 있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그런데 아론 씨는 제임스 씨의 죽음에 대해 한 마디도 꺼내지 않았죠.


”아까까지는 제임스 씨가 단순히 의지력으로 총격을 맞으면서도 센트리건 앞까지 가서 자살했을 가능성도 고려하고 있었습니다만. 이제 생각해보니 단순히 의지력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권총이라면 모를까 기관총 앞에 정면으로 달려드는 일이나 마찬가지니까요.“

”그러네요. 권총 탄 몇 발 맞고 정신력으로 버텼다는 말은 들어본 적 있지만, 기관총 앞에서 살아남은 사람 이야기는 못 들어봤어요.“


유리아 부인의 탓도 조금 있었다. 제임스 씨와 가까웠던 유리아 부인이, 제임스 씨의 희생을 신격화의 경지로 끌어올린 탓에 판단이 늦어졌다.


”탐정님 말은, 제임스가 센트리건 앞까지 갔을 때 누군가랑 같이 있었다는 말인가요? 그리고 그 누군가는 아마 소피아일 것이다. 그런 뜻인가요?“

”예, 동기도 됩니다. 제임스 씨과 유리아 부인은 소피아의 정체를 알고 있었습니다. 기회가 있었을 때 제거한다면 좋겠죠. 거기다, 이 저택에는 이미 여러 인물이 저지른 사건이 하루 새 일어났습니다. 나무를 숨기려면 숲이 최적이듯, 살인사건을 숨기려면 살인현장이 최적이겠죠.“


유리아 부인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제3자의 관점에서 본다면, 유리아 부인이 그때 소피아의 의체를 살해한다는 건 성급하다고 볼 수 있는 결정이었다. 차라리 묶어놓고 심문을 했다면 좋았겠지만, 이미 지나간 일이다.


”소피아는 제임스가 죽었다는 사실은 알렸을 겁니다. 그건 숨길 수가 없어요. 하지만 제임스가 ‘어떻게’ 죽었는지는 알리지 않았을 겁니다. 예를 들어서 크라우스 씨를 살해한 제임스 씨가 죄책감에 못 이겨 자살했다. 그렇게 말했을 수도 있고요.“

”하지만 왜 굳이 그런 일을 벌일까요?“

”왜냐하면 아론 씨가 아는 한, 소피아 씨는 살인마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 저택에서 진정으로 일어난 살인사건은 단 한 건, 크라우스 씨의 살인입니다. 루돌프 씨의 증언으로 확실해졌죠. 하지만 제임스 씨는? 아무도 모릅니다. 범인 자신을 제외하고는.“


잠시간의 정적이 흘렀다. 2층의 시계침이 똑딱똑딱하는 소리만 복도에 울려퍼졌다. 유리아 부인이 침묵을 깨고 입을 열었다.


”그러면 당시 소피아는 1층이나 마당에 있었다는 말이네요. 제임스의 시체를 옮기려면 센트리건이 있는 곳까지는 가야 했을 테니까요.“

”예, 그리고 우리는 계속 1층 거실에 모여있었습니다. 그러니 소피아가 계단을 통해서 2층으로 올라갔을 리는 없습니다. 그리고 어디 배수관 파이프를 잡고 기어 올라간다고 가정해도, 2층 창문은 모두 안에서 잠기게 되어있습니다. 답이 없는 셈이죠.“


우리가 방금 확인한 2층 창문은 모두 안으로 잠기게 되어있었다. 그리고 열린 창문은 단 하나도 없었다. 이 저택 전체가 뚫리지 않는 밀실인 셈이다. 하지만 그 밀실은 진정한 밀실이 아닌, 겉으로만 그렇게 보이는 밀실.


“하지만 다르게 생각해볼 수도 있습니다. 왜 소피아는 아론 씨를 필요로 했던 걸까요?”

“음... 자기가 할 수 없는 어떤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였겠죠? 하지만 그 일이 뭔지는 대체... 아!”

“알아차리신 모양이군요, 유리아 부인. 로자 씨, 루돌프 씨도 알겠습니까?”


유리아 부인이 알겠다는 듯 손뼉을 쳤다. 로자와 루돌프 씨는 아직 모르는 기색이었다. 그런 둘을 위해, 유리아 부인이 친절하게 설명을 해주었다.


“소피아는 저택 안이 아닌 밖에 있었던 거예요. 아론이 창문을 열어주면, 소피아가 그 창문을 통해 밖에서 안으로 들어오는 거예요. 그런 식으로 소피아는 저택 내외를 자유자재로 드나들 수 있었던 거죠.”

“그, 그렇다면 확실히 아버지의 존재가 필수불가결이네요. 거기다 센트리건 때문에 우리는 저택 밖으로 한 발자국도 못 나가니...”

“이제 여기서 아까 아론 씨와 소피아의 목적이 다르다는 전제로 가보면 뭔가 유의미한 결과가 나오겠죠. 그렇죠, 탐정님?”


유리아 부인의 은근한 질문에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론 씨는 2층에서 1층으로 내려갔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아무리 2층을 찾아보아도 소피아는 보이지 않았죠. 그렇다면 소피아는 지금 1층이나 마당에 있다는 겁니다.”

“제길! 결국 우리는 그저 놀아난 셈이잖아요! 이제 어떡하죠?”

“우선 1층으로 가봅시다. 웬지 모르게 아론 씨가 아직 거기서 기다리고 있을 거라는 생각이 드는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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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예상은 적중했다. 아론 씨는 1층의 거실에 앉아 우리가 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루돌프와 로자는 눈이 접시마냥 둥그레졌다. 아론 씨는 손을 흔들며 말했다.


“언제 다시 내려올까 기다리고 있었다네. 아무래도 자네도 깨달은 모양이구먼. 소피아가 어떻게 움직이고, 내가 어떤 역할을 했는지 말이야.”

“네, 상당히 저희의 추리에 대해 많이 알고 계셨던 모양입니다. 그 자리에 없었던 사람치고는요. 왜 1층에 있을 때 말하지 않았습니까?”

“아마 내가 말해도 자네는 믿지 않았겠지. 그래서 자네들 스스로 생각하고 깨달을 시간을 주기 위해서였네. 솔직히 트릭은 꽤나 단순했어. 자네들이 다른 사건들에 휘말리느라 눈치채지 못했다면 이미 알고도 남았을 거네. 이제 제임스를 살해한 자가 누군지 자네들 감을 잡은 모양이군. 소피아, 맞지?”


로자 씨와 루돌프가 뭐라 말을 꺼내려 했지만, 유리아 부인이 그들을 제지했다. 그리고 작은 목소리로 속삭였다.


“제발, 마음만은 알지만 자제해주세요. 나중이라도 되니까요.”


유리아 부인이 아론 씨의 자식들을 달래는 사이, 나는 반대편 소파에 앉아 아론 씨를 마주 았다.


“아론 씨, 하나만 확실히 해두시죠. 소피아 씨 편입니까? 아니면 저희 편입니까?”

“전에는 소피아의 편이었네. 하지만 내 아들이 죽고 거기다 제임스가 죽은 걸 자네들에게 숨긴 이상, 그녀에게 협력할 의리는 없네.”


사실이라면 너무나도 좋은 소식이다. 이제 소피아는 도리어 궁지에 몰린 셈이다. 하지만 묻고 싶은 게 잔뜩 있었다.


“소피아 씨와 협력한 이유가 뭡니까? 당신 입장에서 소피아 씨는, 그저 당신을 의체에 밀어넣은 장본인일텐데요. 어딘가 약점을 잡힌 겁니까? 자식들까지 버려야 할 정도로?”


아론 씨는 내 질문에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걸 말하기 위해서는 몇 년 전까지 거슬러 올라가야 하네. 내 아내, 켈리가 교통사고로 사망했을 때, 나는 거의 반쯤 미쳐 있었네. 진단의는 아내의 갈비뼈가 심장을 찌르고 단단히 박혀버린 탓에, 뇌에 산소가 빠져나가는 아주 느린 죽음을 맛보아야 했다고 말했어.”


아론 씨는 바닥을 바라보며 대화를 중단했다. 고통스러웠던 과거의 기억을 하나 둘 기억의 수면에서 떠올리듯이.


“자식들에게는 말하지 않았지만, 나는 그때 내 아내의 신체를 보존시켜놓았네. 잠든 식물인간상태라고 보면 되겠지. 그리고 나는 다시 내 아내를, 햇빛 드는 인간세계로 되돌릴 사람을 찾아 헤맸네. 그때 소피아가 내게 접근해 온 거야.”


그때를 떠올리면 고통스럽다는 듯이, 아론 씨는 인상을 찡그렸다.


“소피아는 의체전문가였네. 원래는 대기업에 있었지만, 연구윤리 문제 때문에 나왔다고 들었어. 자기를 알아주는 사람을 헤매다가 나를 발견한 거네. 부자인데다 식물인간 상태인 아내를 다시 살려달라고 한다. 이것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 있겠나.

소피아는 나를 도와주는 조건으로 한 가지 조건을 걸었어. 자기와 데이트를 해달라는 거였네. 어떤 환상을 충족시키기 위해서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나는 흔쾌히 응했어. 아내를 되살리기 위해서라면 그 정도쯤이야.”


아론 씨가 잠깐 이야기에 텀을 두기 무섭게 로자 씨가 따지고 물었다.


“하, 하지만 저희들에게 말해줬어야 했어요! 어머니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도움은...”

“소피아의 조건이었어. 너희들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그래서 나는 소피아가 말한 대로 행복하게 따랐단다. 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소피아는 점점 더 초조해졌어. 그녀도 알았던 거야. 아내를 되살리면, 내 시선은 영영 자기에게 향하지 않을 거라고.”

“그런....”


로자 씨의 중얼거림에 아론 씨는 고개를 힘없이 끄덕였다.


“그래, 소피아는 나를 진심으로 사랑하게 되었던 거야. 하지만 나는 내 아내만을 허락한 몸, 소피아에게 마음을 내어줄 생각은 없었네. 그래서 소피아는 이왕 그렇게 된 거, 나를 자기가 준비한 작은 새장에 가둬버리고 결심했어. 이 의체라는 새장에 말이네. 그리고 앞으로 어떻게 할지 계획을 짜는 동안, 나는 지하실 의체저장소에 죽지도 살지도 못한 채 가두어져 있었네. 그리고 소피아의 손으로 다시 깨어난 내게, 소피아는 이렇게 말했네. 이제 아내를 되살리는 실험이 막바지에 다다랐으니, 앞으로 한 번만...한 번만 협력하면 아내를 되살리게 도와준다고... 그렇게... 말했네.... 나는 얼마나 멍청이었나....”


아론 씨는 하염없이 바닥을 바라보다가 힘없이 웃음을 지었다.


”여기 유리아의 전파방해 때문에, 소피아는 내 목소리를 듣지 못한 거야. 지금이야말로 나를 속이고 거짓 약속으로 나를 속박한 소피아에게 반역할 수 있는 적기야, 나와 협력하면 이 저택을 나갈 수 있게 해주겠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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