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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님의 서재입니다.

아론 관 살인사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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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플로
작품등록일 :
2020.09.09 19:29
최근연재일 :
2020.09.27 21:30
연재수 :
13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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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118,882

작성
20.09.23 21: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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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3쪽

8화

DUMMY

주방에서 가져온 차가운 냉수를 유리아 부인에게 주자, 부인은 냉수를 수건에 적셔 소파에 눕힌 로자 씨의 이마에 댔다. 로자 씨는 평온하게 누워 잠에 빠져있었다.


”이대로 냅두는 게 좋겠네요. 모리건 씨, 아까는 말이 너무 심했어요. 로자 씨가 충격받을 만한 진실을 연속해서 말하다니.“

”로자 씨가 이렇게 격하게 반응하리라는 미처 이르지 못했습니다. 제 잘못입니다.“

”자기 남동생이 오빠를 죽였으니 미칠 만도 하죠. 잠시 평온히 쉬도록 두자요. 이제... 진범을 추궁할 시간이네요.“


유리아 부인은 고개를 숙이고 잠자코 있던 루돌프를 흔들어 자기를 보도록 했다. 그리고 손찌검을 하는 대신 쭈그려 앉아 시선을 맞추었다,


”자, 당신이 힘든 일을 겪었다는 건 알아요. 당신 누나도 마찬가지고요. 하지만 이제는 그 화장실 앞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말해줘야 해요.“

”네... 화장실이 가고 싶다고 한 건 진짜였어요. 긴장했는지 슬슬 배가 아팠거든요. 그래서 화장실 칸막이에 들어가 있었는데, 밖에서 다투는 소리가 들렸어요.“

”다툼...? 제임스랑 크라우스 씨가 싸웠다는 말인가요?“

”네, 저는 잘 모르겠지만 크라우스 형님이 뭔가 범죄에 대한 계획을 제시한 거 같아요. 자세히는 모르겠지만요.“

”범죄... 말입니까?“


루돌프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화장실에서 볼일을 보고 있던 동안, 크라우스는 제임스에게 먼저 범죄계획을 제시했고, 제임스는 반발했다는 모양이다. 언성이 높아져 갈 그때, 크라우스가 단 한 마디로 제임스를 잠재운 건 그때쯤이었다.


”형이 뭐라고 말했는지는 못 들었어요. 하지만 제임스가 딱 잠잠해졌으니 보통 일이 아니라는 건 알았죠. 저는 나가면 살해당할까 무서워서, 문만 빼꼼 열고 밖의 상황을 살펴보았어요. 그때 봤어요, 제임스가 크라우스 형님을 찌르는 걸요.“

”제임스와 크라우스 씨의 위치는 어땠습니까?“

”크라우스 형님이 화장실 문 앞에 서 있었고, 제임스는 바로 뒤에 서 있었어요. 제가 문을 열었을 때, 크라우스 형님은 제임스를 마주 보고 있어서 등이 보였죠.“

”하지만 화장실 문턱에 발견된 크라우스 씨의 시체는 얼굴을 바닥에 대고 엎어져 있었습니다. 이건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저도 모르겠어요! 아마 제임스가 수작 부렸겠죠. 저는 무서워서 다시 화장실 문을 닫고 잠궜어요. 제임스랑 크라우스 형님이 언제 쳐들어올까 두려워서요. 한참이 지나서 다시 문을 열었고... 크라우스 형님이 화장실 바닥에 얼굴을 대고 쓰러져 있었어요...“


유리아 부인은 벌떡 일어나 루돌프의 멱살을 잡았다.


”거짓말! 제임스는 결코 그럴 사람이 아니야! 제임스는 자기 주인을 위해서 날 이 저택에 초대하고, 내가 그 가증스러운 소피아를 죽이는 걸 도와준 사람도 바로 그이라고! 그런데 왜 그러겠어!“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봤어요! 제임스가 우리 형을 칼로 찌르는걸요!“


나는 루돌프의 멱살을 잡고 흔드는 유리아 부인을 제지했다. 루돌프 같은 소심한 사람을 다루려면 협박보다는 친근해져야 했다. 유리아 부인은 제임스에 대한 말이 나오자 곧바로 평정을 잃었지만.


그래도 유리아 부인을 이해할 수는 있었다. 그녀에게 있어 제임스 씨는 연인이자 불의에 맞서 싸운 영웅이었다. 그러니 더 상황이 악화되기 전에 말려야 했다. 나는 루돌프와 시선을 마주쳤다.


”루돌프 씨, 접니다. 모리건 탐정. 유리아 부인에 대해서는 죄송합니다. 하나만 물어보겠습니다. 크라우스 씨는 정확히 어디를 찔렸습니까?“

”배...배를 찔렸던 것 같아요.“

”찌른 사람을 봤습니까?“

”아니요... 손만 봤어요. 하지만 그걸 찌를 수 있는 사람은 분명 제임스말고는 없어요! 그렇잖아요! 다른 사람이 슬쩍 크라우스 형만 찌르고 도망갈 이유가 있겠어요?“


어떻게 보자면 루돌프가 맞다. 제임스 씨는 분명 크라우스 씨를 싫어할 충분한 이유가 있다. 아론 씨의 유산을 노리고 쳐들어온 것 하며, 하지만 루돌프의 말에 따르면 제임스 씨가 죽은 방식은 명백히 수상쩍다.


”루돌프 씨, 당신은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루돌프의 입술이 팽팽해졌다. 그는 혀로 입술을 핥으며 나와 유리아 부인을 번갈아 바라보았다. 눈동자를 이리저리 굴리더니 나를 똑바로 보았다.


”그걸 증명할 수 있나요? 당신들은 그 장소에 있지도 않았는데?“

”그 장소에 없었어도, 당신의 말과 상황증거를 조합해 보았을 때 충분히 그런 결론을 내릴 수 있죠. 루돌프 씨, 당신 형인 크라우스가 소피아와 공모하고 있다는 사실을 압니까?“

”무... 무슨 소리에요! 당연히 그럴 리 없잖아요! 애초에 그건 단순한 억측이 아닌가요!“

”억측은 아닙니다. 분명히 상황증거가 있습니다. 제가 유리아 부인의 부탁으로 주방에 냉수를 가지러 갔을 때, 크라우스 씨의 시체가 화장실 측이 아닌 복도 측으로 쓰러져 있더군요. 누군가가 손을 썼다는 뜻이죠.“

”그건 여기 중 누구라도...“

”아니요. 저는 주방으로 뛰어갔습니다. 그리고 이 저택의 1층 복도는 하나뿐입니다. 그러니 누군가가 우리가 있던 거실에서 나와 저를 앞질러 갈 수는 없어요! 하지만 범인은 제가 화장실 앞을 지나가기 전에 시체의 위치를 바꾸어놓았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그런 일을 할 수 없다. 그렇다면 용의자, 아니 시체를 옮긴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단 한 명이다.


”탐정님은 여전히 밖에 돌아다니고 있는, 2번째 아론의 의체를 가진 소피아가 크라우스의 시체를 옮겼다고 말하고 싶은 건가요?“


유리아 부인이 나 대신 말했다. 지하실의 의체저장소에는 본래 2개의 의체가 있었다. 아론 씨의 애인이었던 소피아가 가져간 의체들. 제임스 씨와 유리아 부인이 아론 씨의 방에서 하나를 살해했고, 남은 하나의 행방은 아직 묘연하다.


”네, 하지만 저는 ‘어떻게’ 보다는 ‘왜’에 더 신경 쓰입니다. 왜 자신을 드러낼 위험을 무릅쓰면서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겼을까요? 제가 조금만 더 빨리 갔어도 마주쳤을지도 모르는 일 아닙니까.“


나를 헷갈리게 하려는 목적이었다면 엄청난 자충수였다. 왜냐면 나는 이번 사건의 범인을 이미 꿰뚫어보았으니까. 루돌프는 아직 자기가 범인이 아니라고 부인하고 있지만, 정황증거상 범인이 될 수 있는 사람은 그밖에 없다.


”끄응, 모르겠습니다. 만약 소피아가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겼다면 왜 그랬는지. 분명히 무슨 이유가 있어야 할 텐데요.“


생각하면 할수록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기는 행위에는 단점밖에 보이지 않는다. 수사에 혼란을 줄 목적이었다고 해도 나와 로자 씨, 그리고 유리아 부인까지 모두 시체의 본래 위치를 증언할 수 있다. 거기다 그런 눈속임 따위 경찰이 오면 바로 들통날 게 뻔하다.


이런이런. 외통수에 몰려버린 건가. 그런 나를 옆에서 지켜보던 유리아 부인이 조용히 말했다.


“어쩌면 초점을 바꿔보는 게 어떨까요? 왜 제임스가 자살을 택했는지부터 차근차근 생각해 보는 게 어때요?”

“유리아 부인, 하지만 제임스 씨는 우리들을 위해 센트리건을 막으려 일부러 자살했다고 결론내리시지 않았습니까?”

“네, 저도 제임스의 결의만큼은 의심하지 않아요. 자기 주인인 척하는 소피아의 살해 계획까지 꾸미고 저와 함께 실행까지 옮겼을 정도니까요. 그런 거사를 성공시켰는데 일부러 센트리건 앞까지 가서 자살한다? 생각하면 생각할수록 그이답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요.”


확실히 그건 이상하다. 센트리건을 막아 우리를 이 저택에서 탈출시키기 위한 제임스의 숭고한 희생이라고 생각할 수 있다. 외부와의 소통을 확보하기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 얼핏 생각하면 거의 성인 급의 자기희생이라고 볼 수도 있을 정도다.


하지만 자살이라는 행위는 어떠한 선택지도 남지 않을 때 사용하는 극단적인 처방이다. 하지만 제임스 씨는 아론 씨를 가장한 소피아의 살인이라는 목표를 달성했다. 그런데 지금 와서 죽는다?


수상한 악취가 폴폴 풍기는 것에도 정도가 있다. 이 정도면 완전히 음식물쓰레기 수거장 수준이다!


“제임스 씨를 자살로 단정하기는 아직 이릅니다. 불확실한 부분이 너무 많아요.”

“저로서는 크라우스와의 만남만이 떠오르네요. 역시 뭔가 있는 게 틀림없어요. 크라우스가 제임스에게 뭔가 말한 걸까요? 그래서 절망한 제임스가 자살했다...?”

“하지만 대체 뭐가 제임스 씨를 자살로 이끌 수 있겠습니까? 제임스 씨는 아론 씨인 척하는 소피아를 제거한다는 소기의 목적을 달성했습니다. 자살을 할 이유 자체가 없습니다.”


계속해서 우리들의 논의를 듣고 있던 루돌프가 갑자기 말하자, 나와 유리아 부인은 자리에서 뛰어오를 뻔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지금 밖으로 나갈 수 있다는 뜻이잖아요! 그러면 지금 당장 나가서 경찰에 신고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확실히 그렇군요. 여기서 고민하고 있어보았자 소용없습니다. 유리아 부인, 로자 씨를 깨워주십쇼. 제가 앞장서겠습니다.“


우리는 터질듯한 가슴을 억누르며 조심조심 뒤를 돌아보며 걸어갔다. 어디선가 아론 씨의 의체를 가진 소피아가 나타날까 두려웠기 때문이었다.


나는 주머니의 리볼버를 만지작거리며 앞장섰다. 내 뒤에는 유리아 부인의 부축을 받는 로자 씨, 그리고 맨 뒤에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는 루돌프가 뒤따랐다. 그러나 현관에 도달해 문을 열자, 뜻밖의 광경이 우리들을 맞이했다.


”그... 제임스의 시체는 어디로 간 건가요? 분명히 센트리건 앞에 있었는데...“


유리아 부인이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 솔직히 나도 믿을 수 없었다. 30분 전까지만 해도 있었던 제임스 씨의 시체가 감쪽같이 사라져있었다. 방해되던 제임스 씨의 시체가 없어지자 센트리건은 곧바로 우리를 겨누며 경고음을 삐빅거렸다.


”....이거 또다시 원점으로 도달한 것 같군요. 더 많은 미스터리와 함께 말입니다.“


---------------


”이걸로 2번째입니다. 한 번도 아니고 두 번동안 저 센트리건에 막히다니. 소피아가 준비는 철저히 해놓았군요.“


의기소침해진 우리는 어쩔 수 없이 다시 거실로 돌아갔다. 이 저택은 새장이었다. 그리고 소피아는 그 우리 밖에서 우리 안의 새들을 감시하는 사육사였다. 희망과 절망을 교대로 일으키며 우리를 농락하는.... 그런 생각마저 들었다.


”제임스는 우리들에게 자신을 희생해서 기회를 만들어줬어요.... 그런데 그 소피아 년이 제임스의 숭고한 죽음을 더럽히다니! 용서 못해요! 한 번 죽여도 안 된다면 두 번, 세 번이라도 하겠어요!“

”진정하세요. 수사는 경찰이 해야 할 일입니다. 불필요한 죄를 뒤집어쓰지마세요.“


내 말에 유리아 부인은 차츰차츰 진정을 찾아갔다. 오히려 로자 씨는 차츰차츰 기운을 되찾고 있었다. 절망적인 상황이 오히려 강한 힘을 불러 일으킨 걸까.


”탐정님, 계속해서 시체가 사라지는 일에 대해 의문점이 하나 있어요. 처음 아버지의 시체가 사라진 일은 유리아 부인이 수사를 헷갈리게 하기 위한 일이었죠. 하지만 크라우스 오빠의 시체가 사라진 것과, 제임스 씨의 시체를 사라지게 한 건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구체적으로 어떤 점이 말입니까?“

”생각해보세요. 탐정님은 크라우스 씨의 시체가 안으로 뒤집혀있었다고 했어요. 화장실 안으로 뒤집힌 시체가 루돌프를 범인으로 가리킨다면, 화장실 밖으로 뒤집힌 시체는 무얼 가리키는 걸까요?“

”....루돌프 씨가 범인이 아니라는 거겠죠. 크라우스 씨의 상처는 배에 있었고, 화장실 밖으로 얼굴을 대고 쓰러졌다면, 화장실 안에 있었던 루돌프가 범행을 저지를 수는 없으니까요.“


갑자기 뇌리에 홱 하고 광명이 스쳐 지나갔다. 크라우스 씨의 시체를 옮긴 사람은 루돌프가 범인으로 보이게 하고 싶지 않았다. 자기 자신이 범인으로 보이게 하더라도, 루돌프는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


”루돌프 씨, 혹시 아론 씨의 애인 소피아에 대해 할 말 있습니까?“


내 갑작스러운 질문에 루돌프는 소파 안으로 움츠려들었다.


”무, 무슨 말을 하시는 겁니까?“

”말 그대로입니다. 크라우스 씨와 제임스 씨, 아론 씨와 소피아의 관계를 누구보다 잘 알 두 사람이 죽었습니다. 그리고 크라우스 씨의 시체는 당신이 범인이 되어서는 안 된다는 듯이, 보란 듯이 옮겨져 있었습니다. 여기에 대해서 할 말은 없습니까? 아니면 경찰에 이대로 말할까요?“


내 협박에 루돌프는 고개를 푹 숙이더니 깊디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든 그는 수심 때문인지 전보다 10년은 늙어 보였다.


”...알겠습니다. 할 수 있는 한 말하도록 하죠...“

”할 수 있는 한, 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아마도’나 ‘만약’도 없습니다. 사실만을 말하셔야 합니다.“

”...크라우스 형님과 저는 사실 6일 전 살인사건 후 살아 돌아온 아버지가 뭔가 수상하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습니다. 크라우스 형님은 장남이었으니 아버지와 가장 가까웠으니까요. 뭔가 이상하다는 점을 빨리 눈치챘거든요.“

”그렇다면 당신은 소피아가 아론 씨인척 행세했다는 사실을 몰랐단 말인가요?“

”저는 막내입니다. 살아생전 의체를 거부했다는 부분에서 아시겠지만, 아버지는 굉장히 전통적이고 보수적인 분이셨습니다. 그래서 장남인 크라우스 형님을 가장 아끼셨지요. 저는 아버지와 가까이 지낸 적이 없습니다.“


나는 로자 씨에게 이 말이 사실이냐고 물었다. 로자 씨는 힘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아론 씨가 전통주의적이라. 그러고 보니 살아생전 제임스 씨도 그런 어투의 말을 했었지.


“그래서 이 사실을 알아챈 형님은 저에게, 이미 진짜 아버지는 죽었으니, 자식인 우리에게 유산이 가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래서 저와 형님은 무작정 저택으로 쳐들어가 거기에 눌러앉을 계획을 짰습니다. 아버지인 척하는 가짜와 가까이 있으면 그 정체를 밝혀낼 수 있다고 믿었으니까요.”

“하지만 소피아 씨는 계속 방에서 안 나왔죠.”

“네, 그래서 저희는 걱정이 앞섰습니다. 이대로 가면 말짱 도루묵이라 싶더라고요. 그런데 갑자기 아버지인 척하는 가짜가 방에서 죽은 채 발견된 거예요. 그 말은 우리가 유산을 상속받을 거란 뜻이었죠. 센트리건 때문에 밖에 못 나가기는 했지만, 살아 돌아가기만 한다면 유산을 받을 수 있을 거 아니에요...”


가만히 듣고 있던 로자 씨의 이마 핏줄이 불끈거렸다. 그녀는 주먹을 핏기가 없어질 정도로 꽉 쥐었다. 그러나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크라우스 형님은 그 정체 모를 범인에게 오히려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저는 달랐어요. 생각해보세요. 죽은 이상 그게 진짜 살아 돌아온 아버지인지, 아니면 아버지인 척하는 가짜인지 확인할 수 없잖아요. 다행히 모리건 탐정님 덕에 아버지인 척했던 가짜의 정체가 밝혀지기는 했지만요.”


내 부단한 추리가 우연치않게 루돌프의 유산상속을 도왔다는 말인가. 확 기분이 나빠졌다. 그러나 루돌프는 눈치채지 못한 듯 설명을 막힘없이 이어갔다.


“제가 화장실을 간다고 한 것도, 형과 앞으로의 일을 결정하기 위해서였어요. 그래서 제임스가 따라 나오자 계획이 틀어졌다고 느꼈죠. 하지만 저는 맹세코 크라우스 형님을 안 죽였어요. 제가 왜 죽이겠어요?”

“어쩌면 유산을 혼자 독차지할 목적으로 죽였을지도 모르죠. 그러고도 남을 것 같은데요? 경찰에게도 그렇게 말할 작정인가요?”


내 날선 질문에도 루돌프는 꿋꿋이 나를 응시했다. 자기는 전혀 꿀릴 게 없다 이거지. 실질적으로 루돌프는 유리아 부인보다도 죄를 지은 게 없지만, 나는 루돌프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왜 그럴까. 지은 죄는 유리아 부인이 더 많은데도.


어쩌면 루돌프의 필요 이상으로 뻔뻔한 태도가 내 신경을 자극했는지도. 계속되는 살인과 의심 속에서 너무 긴장하고 말았다. 나는 심호흡을 하고 긴장을 풀었다.


“죄송합니다. 루돌프 씨. 한 가지 질문만 더 하겠습니다. 제임스 씨가 따라왔을 때, 당신은 화장실 안에 들어가 있었다고 했죠. 그건 연기였나요, 아니면 정말 마려웠던 건가요?”

“....네, 처음 해보는 음모에 너무 긴장했던 나머지, 큰 게 마렵더군요. 그래서 칸막이 안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잠깐만요. 그렇다면 당신은 제임스 씨가 크라우스 씨를 찌르는 걸 언제 보았다는 말입니까?”

“제가 칸막이에서 나온 직후입니다. 이 정도면 제 결백을 증명할 수 있을까요? 제가 할 말은 이게 다에요. 저는 크라우스 형님을 죽일 어떤 이유도 없었어요. 설령 죽인다면 제가 먼저 의심받을 텐데, 왜 그러겠어요?”


일리가 있다. 루돌프에게 끌어낼 수 있는 말은 이게 다인 듯했다. 제길, 이 사실들로 의미 있는 결론을 도출할 수 있을까?


그리고 제임스. 막 자신의 목적을 성취하고 끝까지 진실을 이야기하지 않던 제임스는, 센트리건 앞에 생을 마감했다. 단시간에 사람의 마음을 움직일 만한 시간은, 크라우스와 같이 있었던 시간 말고는 없다.


크라우스가 제임스에게 어떤 진실을 폭로했던 건가? 그래서 제임스는 자기희생의 형식으로 센트리건 앞에 자살했다? 그리고 크라우스는 아론이 소피아인 척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있었다. 그것보다 더 깊은 진실이 존재할 수 있을까?


“소피아는 6일 전에 아버지를 왜 죽였던 걸까요? 자기만 의심받을 뿐인데. 유리아 부인, 당신은 아버지를 가까이에서 섬겼잖아요. 소피아도 봤을 거고요.”

“먼저 생각나는 거라면 유산상속이 있겠죠. 하지만 글리치 시티의 유산상속법은 배우자보다는 자식을 우선하고 있어요. 소피아에게 떨어지는 콩고물은 적었을 텐데요. 설령 그렇다고 해도 아론의 의체에 들어가 연기하다니. 전 로봇이지만 소름이 돋네요.”


유리아 부인은 팔뚝을 쓰다듬으며 말했다. 하긴, 자기와 가까이 지내던 사람을 연기한다는 건 보통 정신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어마어마한 의지와 자기관리를 필요할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강력한 동기가 필요하다. 동기... 동기라...전에 나누었던 대화들이 뇌리를 스쳐 간다.


‘아마도 애인이셨던 소피아 님의 입김이 분 모양입니다. 소피아 님과 교제하고 나서부터 집 안에...보다 현대적인 물건들을 들이기 시작했거든요.’


맞다. 아직 제임스 씨가 살아있었을 때, 그런 말을 했던 적이 있었다. 처음에 나는 소피아가 아론 씨를 구워삶아서 돈을 쓰게 한 건 줄 알았다. 하지만 내가 잘못 생각했던 걸지도 몰랐다. 처음부터 소피아의 동기를 잘못 생각하고 있었다면...


나는 소파에 걸터앉아 생각에 잠겼다. 이 정보가 범인의 동기가 도움이 될까? 이럴 때면 복잡하게 생각하지 말라고 누군가 말하고는 했었지,


“그렇다면 이제 다시 제임스 씨의 시체가 사라진 사건과, 크라우스의 시체 위치 변경 사건에 대해 돌아가보죠. 이 사건은 모두 동일한 범인이 일으킨 사건입니다. 이 집 어딘가에 있을, 아론 씨의 의체를 차지한 소피아가 범인일 거고요.”


내 말에 유리아 부인과 로자 씨는 고개를 끄덕였다. 루돌프는 아직도 바닥만을 바라보고 있었다.


“하지만 저는 의문이 있습니다. 아론 씨의 의체를 차지한 건 정말 소피아 뿐일까요?”

“그게 무슨 소리죠?”

“제임스 씨는 본래 의체저장소에 의체 2개가 있다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제임스 씨는 유리아 부인과 함께 소피아를 살해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래 남은 의체는 하나만 남아있어야 옳죠. 하지만 의체저장소에는 텅텅 비어있었습니다.”

“하지만 의체저장소에는 의체가 2개 있어야 하지 않나요? 나랑 제임스가 죽인 첫 번째 의체와, 크라우스를 살해하고 지금 저택 어딘가를 돌아다니는 소피아가 차지한 의체. 2개잖아요.”

“네, 하지만 저는 제임스 씨가 당시 의체가 사라졌다는 사실에 놀랐다는 사실이, 마음에 걸립니다. 만약 의체가 2개만 있었다면, 의체저장소가 텅 비어있던 건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하지만 제임스 씨는 의체저장소가 텅 비었다는 사실이 놀라워했습니다.”


로자 씨는 내 말의 의미하는 바를 서서히 깨닫고 얼굴이 창백해져 갔다. 유리아 부인도 마찬가지였다.


“그 말은... 본래 의체는 3개가 있었다는 건가요!”

”네, 본래 의체는 2개가 아니라 3개 있어야 했습니다. 방에서 죽은 것, 저 밖에서 크라우스를 살해한 것. 그리고 다른 하나. 의체의 시스템 상 한 사람은 동시에 하나의 의체만 움직일 수 있습니다. 그 말은, 저 밖에는 2개의 의체가 나돌아다니고 있다는 말이 됩니다.“


하나의 의체만도 끔찍한데, 2개의 의체가 저택을 돌아다닌다니. 로자 씨의 낯빛이 흐려졌다. 그러나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거세게 물었다.


“잠깐만요. 그렇단 말은... 그럼 남은 의체에는 누가 들어가 있는 거죠?”


당연한 질문이다. 나는 로자 씨의 두 눈을 들여다보며, 혼란의 기색을 찾으려 했다. 그러나 대신 내가 찾은 것은, 진실을 알겠다는 단단한 결의였다. 나는 마침내 떨어지지 않는 입을 힘들게 열었다.


“아론 씨입니다. 죽은 아론 씨가 다시 살아 돌아온 것입니다.”

“무슨.... 말인가요?”

“단순한 소거법입니다. 한 사람은 한 의체에만 들어갈 수 없죠. 소피아는 이미 한 의체에 있습니다. 이 저택은 외부에서 차단되어있으니, 외부인이 이 집구석의 숨겨진 지하실의 의체에 접속할 수도 없습니다. 유리아 부인, 부인은 로봇이시죠. 가능하십니까?”


내 질문에 유리아 부인은 고개를 저으며 단언했다.


“당연히 아니죠! 당신들은 인간, 저는 로봇이에요. 로봇이라면 굳이 의식전송기 따위의 복잡한 기기 따위는 필요 없어요. 애초에 로봇은 인간 의체하고는 호환이 안 돼요. 뇌 신경이 없거든요.”


유리아 부인이 당연한 듯이 말했다. 인간을 위한 의체가 본래부터 로봇인 자신과 호환이 될 리 없다.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로자 씨는 유리아 부인을 붙들고 다급하게 물었다.


“확, 확실한가요? 유리아 부인?”

“아, 네, 로자 씨, 인간의 뇌는 섬세해서 의식을 전송하기 위해서는 고도의 기술과 정확성이 필요해요. 설령 인간이 아니라 침팬지의 뇌를 의식전송하려해도, 완전히 다른 기기가 필요할 거예요.”


인간과 침팬지는 유전자의 90퍼센트 이상 공유한다 하지만, 그건 바나나도 마찬가지다. 그러므로 바나나를 의식전송 할 수 없는 것과 마찬가지로, 인간이 아닌 다른 무엇도 의식전송에 넣을 수 없다. 그 점에서 애초에 생물이 아닌 유리아 부인은 논외.


“제임스 씨는 의체가 없어졌을 때 아직 살아계셨으므로 그분도 제외. 크라우스 씨도 그때 아직 살아있었으므로 제외. 자, 그러면 우리가 의체저장소가 텅 빈 것을 알아차렸을 때, 이미 사망했던 사람이 누가 있었죠?”


로자 씨의 입술이 붙었다 떨어졌다.


“...아론이네요. 3번째 의체에 들어간 사람은.”

“정답입니다.”


잔혹한 진실이 내 성대를 타고 울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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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3 13화 20.09.27 17 0 11쪽
12 12화 20.09.27 12 0 24쪽
11 11화 20.09.25 15 0 22쪽
10 10화 20.09.25 22 0 22쪽
9 9화 +1 20.09.23 19 1 21쪽
» 8화 +1 20.09.23 19 1 23쪽
7 7화 20.09.19 64 0 20쪽
6 6화 20.09.19 40 0 21쪽
5 5화 20.09.14 61 0 18쪽
4 4화 20.09.14 26 0 20쪽
3 3화 20.09.10 28 0 21쪽
2 2화 20.09.10 28 0 20쪽
1 1화 +1 20.09.09 102 1 16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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