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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05 00:2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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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64
추천수 :
29
글자수 :
441,001

작성
24.02.25 08:00
조회
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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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글자
12쪽

[1장: 작전] 카스텔 (2)

DUMMY

<구자혁>


구자혁은 난간에 팔을 걸치고는 담배를 피우며 혼돈에 빠진 광경을 내려다보고 있다. 곳곳에서 연기가 피어오르고 있었고 사이렌과 경적 소리가 끊임없이 이어진다. 어디서 나는지 모르는 비명은 메아리처럼 울려 퍼지고 아래쪽 단지 안에서는 괴한들이 기괴하게 우글거리고 있는 비현실적인 광경이 펼쳐져있다. 그리고 그 앞에 덩그러니 주차되어 있는 구자혁의 트럭들도 눈에 들어온다.


철거업체를 운영하고 있는 구자혁은 오늘 리모델링 철거 작업을 위해 아라그린 아파트에 왔다. 이번 작업은 집 내부의 대부분을 뜯어내야 하는 대규모 리모델링이었다. 보통 이런 규모가 큰 철거 작업은 최소 3일에 길면 5일까지도 소요될 수 있다. 그러나 수완이 좋은 구자혁은 단 이틀 만에 끝내버릴 생각이었다. 그를 위해 아침 일찍부터 대량의 장비들을 싣고 일 잘하는 부하들 위주로 최대한 많이 데려와 작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그때 사건은 발생했다.


“다음 헬기는 언제쯤 올까요.”

옆에서 같이 담배를 피우고 있던 윤리도가 물었다. 그는 구자혁과 가장 오래된 사이로 이 철거회사에서 2인자 격의 인물이었다. 구자혁은 담배를 한 모금 깊게 빨고는 말한다.

“오늘은 아니야.”

당분간 헬기는 오지 않는다. 머리가 조금이라도 돌아가는 사람은 이미 다 눈치를 챘을 것이다. 만약에 다른 헬기가 오고 있었다면 그냥 그대로 옥상에서 기다리고 있었으면 됐다. 그런데 군인들은 굳이 고생하며 주민들을 14층으로 내려보냈다. 그렇다는 것은 다음 헬기가 온다 해도 빠른 시일 내는 아니라는 뜻이다.


“다 따라와.”

구자혁은 피우던 담배를 난간에 비벼 끄고는 말했다. 그리고는 주민들이 삼삼오오 모여 앉아있는 복도를 유유히 가로질러가기 시작한다. 부하들도 그의 뒤를 따른다. 주민들은 건장하고 험악하게 생긴 남성들이 무리 지어 걸어가는 모습에 위압되어 시선을 피한다.


구자혁은 이내 목적지에 도착한다. 그가 향한 곳은 아까 군인들이 문을 뜯어놨던 1410호였다. 구자혁은 작업화를 벗고는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실에 멈춰서 집을 한 번 둘러보더니 부엌으로 가 냉장고를 연다. 이내 냉장고 서랍칸 중 하나에서 사과가 든 봉지를 찾아내 집어든다. 그를 따라 집에 들어오는 부하들을 향해 사과를 몇 개 던져준다. 그러곤 유유히 부엌을 뒤지기 시작한다. 이내 찬장에서 라면 봉지를 찾아낸 그는 말한다.

“다 끓여.”


구자혁은 남은 사과를 들고 거실로 향한다. 소파에 앉아 테이블 위에 발을 올린다. 부하들도 식탁 의자나 소파 옆자리, 거실 바닥 등 각자 자리를 찾아 앉는다. 구자혁은 리모컨을 들어 TV를 켠다. 뉴스 채널을 찾는다. 어렵지 않게 찾아냈다. 트는 곳마다 비상 뉴스를 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때 라면을 끓이기 위해 부엌으로 향했던 이은찬이 갑자기 입을 연다.

“근데 이래도 돼요?”

“뭐가.”

구자혁은 TV에서 시선을 떼지 않으며 무심히 답했다.

“여기서 이러고 있는 거요.”

이은찬은 같이 일한 지 아직 반년도 채 되지 않은 신참이다. 게다가 올해 막 성인이 된 19살로 이 중에서 가장 어린 막내다. 그럼에도 이은찬은 사장인 구자혁에게 말을 거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는다. 항상 본인의 생각을 거침없이 표출한다. 다른 이들은 이를 탐탁지 않게 여기는 듯 보인다. 그러나 구자혁은 그런 이은찬의 당돌한 모습이 싫지만은 않다.


구자혁은 봉지에서 사과를 하나 집어 들며 묻는다.

“왜.”

“범죄 아니에요?”

사과를 베어 물려다 순간 멈칫한다. 부하들도 각자 하던 대화를 멈추고 구자혁의 눈치를 보기 시작한다. 분위기가 싸해진다. 구자혁은 탁자 위에 사과를 내려놓고는 천천히 자리에서 일어난다.

“아니 그게 아니고..”

분위기가 뭔가 험악한 쪽으로 흘러가는 듯 보이자 당차던 이은찬도 조금 위축되었는지 긴장한 표정을 짓는다. 구자혁은 그런 이은찬을 빤히 바라본다.


‘범죄라.’

범죄란 무엇인가? 범죄는 법을 어기는 것을 말한다. 그럼 법은 무엇인가? 법이란 건 생각보다 모호한 개념이다. 어느 나라에서는 합법인 게 어느 나라에선 불법이기도 하다. 시대의 흐름에 따라 상황에 따라 쉽게 바뀌기도 한다. 같은 법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기도 한다. 법은 그저 한 사회 안에 소속된 인간들이 서로 지키기로 합의하여 만들어낸 불완전한 규칙일 뿐이다. 만약 그 사회가 사라진다면 그때는 새로운 사회의 새로운 법이 적용되는 것이다. 지금 해야 할 질문은 법을 어겼냐 아니냐가 아니다.


구자혁은 주머니에서 지갑을 집어든다. 그리고 그 안에서 지폐를 꺼낸다. 5만 원권 3장이다. 대충 접어서 테이블 위에 올려져 있는 수납장에 끼워넣는다.

“숙박비. 됐냐?”

“예, 뭐..”

이은찬은 시선을 피하며 말끝을 흐리고는 다시 라면을 끓이는데 집중한다.


구자혁은 다시 소파에 앉는다. 그리곤 아까 내려놓은 사과를 들어 한 입 크게 베어문다. 과즙이 사방으로 터져나간다. 그렇게 사과를 씹으면서 TV에 집중한다. TV에서는 정체불명의 폭도들의 습격에 대해 보도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폭도들은 이제 서울 전역에서 출몰 중이라고 한다.


“이제 어떡합니까. 형님?”

윤리도가 물었다. 윤리도는 아까 구자혁과 함께 1층에서 직접 저것들과 마주치고 간신히 살아남았었다. 그래서 그는 다른 부하들보다 더 체감하고 있을 것이다. 이 사태가 꽤나 심각하다는 것을 말이다.


구자혁은 그의 질문에 바로 대답하지 않는다. 그도 머릿속이 복잡했기 때문이다. 저것들의 정체는 무엇인지, 앞으로 상황이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군인들은 왜 여기에 있으며 헬리콥터는 왜 타지 않았는지 등등 도무지 알 수 없는 것들 투성이었다.


그러나 그럼에도 구자혁은 한치도 흔들리지 않는다. 그에겐 굳게 믿고 있는 그만의 특기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다름 아닌 뛰어난 생존력이다. 구자혁의 삶은 절대 평탄하지 않았다. 50년이 넘는 긴 세월을 살아오며 수많은 위기와 풍파를 겪어왔다. 그러나 그럼에도 그는 언제나 항상 악착같이 살아남아왔다. 그리고 이번에도 그럴 생각이다.


“살아남아야지.”

구자혁은 다시 한번 사과를 크게 베어문다.















<유민준>


유민준은 방화문 맞은편 벽에 기대어 앉아있는 여자를 바라본다. 그녀는 군인들이 밖으로 나간 이후로부터 계속해서 방화문을 지키고 있었다. 유민준은 그런 그녀를 향해 다가간다.

“안녕하세요.”

“아, 네. 안녕하세요.”

유민준은 인사를 하고는 불쑥 그녀의 옆에 앉는다. 갑작스럽게 좁혀진 거리에 살짝 당황한 듯한 그녀를 향해 가볍게 질문을 툭 던진다.

“여기 사세요?”

“네? 저요? 네 그럼요. 여기 살죠. 여기 사시는 거 아니세요?”

“네. 사실 여긴 회사 동료 집이에요. 그 친구가 제 목숨을 구해줬거든요.”

유민준은 의식을 차려보니 김지석의 집이었다. 교통사고로 기절한 유민준을 김지석이 자신의 집까지 옮겨놓은 것이었다.

“아 그럼 그 동료 분은..?”

“그 친구는.. 가족을 찾으러 나가선 돌아오지 못했어요.”

유민준은 슬픈 표정을 짓는다.

“아.. 걱정이 많으시겠어요.”

“네. 그 친구는 항상 그런 식이었어요. 무모하고 앞 뒤 안 가리고 달려들고. 어쩌면 가족을 구하기 위해 목숨을 걸었던 건 그 친구 다운 선택이었죠.”

“아.. 네.”


분위기가 침울해지자 유민준은 화제를 돌린다.

“그나저나 대단하시네요.”

“네? 뭐가요?”

“헬기 자리 양보하셨잖아요.”

“네? 그걸 어떻게..?”

“군인들. 유니폼에 이름표는 물론이고 아무런 휘장이나 마크도 없었어요. 소속을 밝히면 안 되는 특수부대원들이 입는 유니폼이죠. 그런 특수부대가 지금 같은 상황에 이런 곳까지 아무 목적도 없이 왔을 리가 없어요. 분명 무언가 중요한 임무를 수행하러 온 거겠죠. 이를테면 주요 인사 구출이라든지.”

그녀는 놀란 표정을 짓는다.

“그런데 그 중요한 임무를 수행 중인 특수부대가 하던 일을 뒤로하고 갑자기 주민들을 구조하기로 했다? 그건 분명 중간에 무언가 일이 있었다는 거죠. 그 가능성 중 하나는 헬기를 타기로 했던 사람 중 하나가 주민들도 구하자고 회유를 한 거고.”

“아니 어떻게 알았어요?”

“진짜였어요? 사실 조금 끼워 맞춰본 건데.”

“뭐 탐정 같은 거세요?”

“그런 건 아니고 그냥 취미 같은 거라고 치죠. 아무튼 정말 대단하시네요.”

“아뇨. 저는 한 게 없어요. 다 군인 분들이 한 거죠.”

“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아요.”

유민준은 진지한 표정으로 답했다.


그때 옆에서 어떤 주민들이 이야기를 나누는 소리에 대화가 끊긴다. 그들은 격양된 목소리로 의견을 주고받고 있었다.

“그러면 지금 사람들을 죽이고 있다고?”

“설마요.”

“아니 그러면 미친놈들이지.”

“그러니까요.”

방화문 밖으로 향한 군인들에 대한 얘기였다. 사실 주민들 사이에서는 군인들에 대한 안 좋은 소문이 퍼지고 있었다. 군인들은 빈 집을 함부로 열고 들어간 것도 모자라 식칼로 만든 살벌한 수제 무기를 들고 복도를 활보했었기 때문이다. 다들 피곤에 지쳐있고 분위기가 흉흉한 것도 한몫했다.


안 그래도 궁금했던 유민준은 슬쩍 떠본다.

“진짜 죽이러 내려간 건가요?”

“아니 그게.. 조금 복잡해요. 사실.. 저 밖에 사람들은 이미 죽은 거나 다름없거든요.”

“그게 무슨 뜻이죠?”

“그러니까.. 지금 이 상황이 기생충? 같은 게 유출돼서 벌어진 건데, 한 번 감염되면 그 몸을 빼앗긴대요. 그러니까 사실상 죽은 사람의 몸을.. 기생충이 조종하고 있는 거죠.”

“그런 걸 어떻게 알고 있어요?”

“.. 아 사실은 그 군인 분들이 구조하러 온 사람이 이 사태에 대해 잘 알고 있는 박사님이었거든요. 그분이 다 알려주셨어요.”

“잠깐만요. 그쪽도 구조대상 아니었어요?”

“아니에요. 전 그냥 우연히 마주친 거예요.”

무언가 앞뒤가 안 맞았다. 그녀가 구조대상이 아니었는데도 군인들은 그녀에게 회유되어 주민들을 구조했고 심지어 그녀와 함께 아파트에 남았다. 그러나 지금 유민준의 흥미를 끄는 건 따로 있었다. 군인들이 구조하러 온 대상이 상상 이상의 인물이었다는 것이다. 당연히 고위 관료나 정치인 따위의 사람일 것이라 생각했다. 그러나 그 인물은 이 사태와 직접적으로 연관되어 있는 자였다.


“혹시 그 박사에 대한 얘기 저도 들을 수 있을까요?”

“아 네.”

그렇게 유민준은 송예슬로부터 전말을 듣는다. 어떻게 군인들과 만나게 되었는지부터 시작해서 기생물에 대한 상세한 정보들 그리고 주민들을 구하기 위해 만든 계획까지. 유민준은 감탄한다. 이 모든 게 강민엽이라는 자가 없었으면 진행될 수 없었다. 그 남자는 아파트 주민들을 구하기 위한 계획을 단시간 안에 수립한 뒤 실행해 냈고 그것은 가히 완벽에 가까웠다. 유민준은 흥분을 감추지 못한다. 세상엔 강민엽 같은 사람이 절대 흔치 않다. 그리고 그런 사람들은 세상을 좋은 방향으로 변화시키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사람들이다.


유민준은 이야기를 마친 송예슬을 바라보며 말한다.

“저도 최대한 돕겠습니다.”

그의 눈은 밝게 빛나고 있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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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 [2장: 생존] 여명 (6) 24.04.08 24 0 12쪽
44 [2장: 생존] 여명 (5) 24.04.05 22 0 18쪽
43 [2장: 생존] 여명 (4) 24.04.01 22 0 14쪽
42 [2장: 생존] 여명 (3) 24.03.26 23 0 11쪽
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25 0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23 0 13쪽
39 [2장: 생존] 비상 발전기 24.03.19 23 0 12쪽
38 [2장: 생존] 108동 (6) 24.03.18 26 0 10쪽
37 [2장: 생존] 108동 (5) 24.03.17 26 0 13쪽
36 [2장: 생존] 108동 (4) 24.03.15 30 0 13쪽
35 [2장: 생존] 108동 (3) 24.03.12 34 0 14쪽
34 [2장: 생존] 108동 (2) 24.03.11 35 0 11쪽
33 [2장: 생존] 108동 (1) 24.03.10 38 0 12쪽
32 [2장: 생존] SOS (5) 24.03.09 32 0 16쪽
31 [2장: 생존] SOS (4) 24.03.07 34 0 13쪽
30 [2장: 생존] SOS (3) 24.03.06 38 0 14쪽
29 [2장: 생존] SOS (2) +1 24.03.06 39 0 10쪽
28 [2장: 생존] SOS (1) 24.03.05 37 0 14쪽
27 [2장: 생존] 한가위 (4) 24.03.04 35 0 14쪽
26 [2장: 생존] 한가위 (3) 24.03.03 35 0 14쪽
25 [2장: 생존] 한가위 (2) 24.03.03 36 0 13쪽
24 [2장: 생존] 한가위 (1) 24.03.02 39 0 12쪽
23 [2장: 생존] 105호 (5) 24.03.02 42 0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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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2장: 생존] 105호 (3) 24.03.01 36 0 11쪽
20 [2장: 생존] 105호 (2) 24.02.29 48 0 14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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