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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05 00:20
연재수 :
77 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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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자수 :
44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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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03.02 20: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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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쪽

[2장: 생존] 한가위 (1)

DUMMY

<강민엽>


강민엽은 완전 무장을 한 채로 거실 한복판에 서있다. 그는 잔뜩 긴장한 채 사방을 경계하고 있다. 그때였다. 앞쪽에서 무언가 움직임을 포착하고는 빠르게 총구를 들어 올린다. 그 순간 강민엽은 그대로 얼어붙는다. 그의 앞에 나타난 것은 이예지였다. 이예지. 그녀는 방금 샤워라도 하고 나왔는지 타월 한 장만 걸친 채 부끄러운 듯 얼굴만 내놓고 숨어있다.


강민엽은 숨이 가빠져 호흡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 들고 있던 총을 바닥에 떨어뜨리고는 그녀를 향해 다가가기 시작한다. 이예지는 쑥스러워하면서도 그런 강민엽에게서 멀어지지 않는다. 그렇게 강민엽은 이예지를 꼭 껴안는다. 따뜻하다. 오랜 시간 동안 잊고 있던 포근한 감촉이다. 아주 오랜만에.. 느끼는.. 강민엽은 참아보려고 하지만 그의 눈에서 도무지 눈물이 멎지 않는다.

“왜 울어?”

이예지가 걱정스레 물었다.

“미안해, 미안해.. 예지야..”

강민엽이 그녀를 꼭 껴안고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사랑해.”

이예지는 수줍게 웃으며 말했다. 그리고 강민엽의 가슴에 얼굴을 파묻는다. 강민엽은 그런 이예지를 꽉 안아주고는 울먹이며 말한다.

“예지야, 예지야, 우리 결혼하자.”

“어?”

이예지는 놀란 표정으로 강민엽을 바라본다.

“결혼하자 우리.”

강민엽은 재차 말했다. 이에 이예지는 울먹이기 시작한다. 이내 그녀의 눈에서도 눈물이 펑펑 쏟아져 나오기 시작한다.

“응, 응, 좋아, 응 좋아.”

강민엽은 눈물 젖은 얼굴로 행복하게 웃었다. 다시 한번 그녀를 꽉 껴안아준다. 그리고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고 눈물을 닦아준다. 그다음 행복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이예지에게 입맞춤을 한다. 그녀의 입술은 따뜻하고 달콤하고 향기로웠다. 행복하다. 이 행복이 지속될 수만 있다면 세상 그 어떤 것이라도 바칠 수 있을 것만 같다.




그 순간 강민엽은 눈을 뜬다. 그리고 그가 지금 1410호에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모든 것은 꿈이었다. 언제나 반복해서 꾸는 그 꿈. 강민엽은 이예지 꿈을 자주 꾼다. 그리고 언제나 가장 행복한 순간에 잠에서 깨어난다. 현실과 큰 괴리를 느껴 바로 꿈이라는 것을 인지해버리기 때문이다.


그렇게 다시 차가운 현실로 돌아왔다. 아름다웠던 꿈의 여운이 아직 마음 한 편 가득 남아있어 그 현실은 더욱더 차갑고 혹독하게 느껴진다. 강민엽은 홀더에서 권총을 꺼내든다. 턱에 총구를 가져다 대고 손가락을 방아쇠에 건다. 눈을 감는다. 그리고 천천히 손가락을 당기기 시작한다. 이제 여기서 조금만 더 당기면 모든 고통과 아픔을 끝낼 수 있다. 이예지를 지키지 못한 현실과 영원히 작별할 수 있다.


하지만 당기지 않는다. 충동을 간신히 참아낸다. 죽음으로 도망치는 것은 비겁한 짓이었기 때문이다. 아직 이 세상에 남아서 과거의 짐을 짊어진 채 계속 살아가야 한다. 그것이 그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속죄였다.

그렇게 강민엽은 다시 총을 내려놓는다.



























<임지훈>


군인들의 일과 중 하나는 식품 배달이다. 집에 신선식품이 없거나 식량이 떨어진 주민들에게 빈 집의 냉장고에 남아 있는 신선식품을 가져다주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어느 날 이변이 발생했다. 여느 때와 같이 식품을 배달하고 있었는데 그중 한 집인 610호가 응답이 없었던 것이다. 처음엔 어디 외출했거나 이어폰을 끼고 있다든가 혹은 잠을 자고 있을 수도 있다고 생각해서 그냥 돌아갔었다. 하지만 그 후로 여러 차례 다시 방문해 봐도 응답은커녕 아무런 인기척도 확인되지 않았다.


결국 610호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기로 했다. 경첩을 들어내 현관문을 개방하고 내부로 진입한다.

“미나 씨? 들어가겠습니다.”

임지훈이 큰 소리로 말했다. 그러나 여전히 아무런 대답이 없다. 그렇게 흩어져서 집 내부를 살펴보기 시작한다. 이내 임지훈은 화장실 안에서 무언가를 발견한다.

“여깁니다.”

임지훈은 화장실 안쪽을 향해 고갯짓 했다. 그곳엔 참혹한 광경이 펼쳐져있었다. 610호 거주자 김미나가 새빨간 핏물로 가득찬 욕조 안에서 죽어있었던 것이다.


이때 임지훈은 강민엽에게 의미심장한 질문을 날린다.

“혹시 그놈 짓일까요?”

사실 그가 이런 질문을 하는 데에는 이유가 따로 있었다. 아라그린 아파트에서 시체를 발견한 것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던 것이다.




한창 빈 집을 뜯어 물자를 모으고 있을 때였다. 그렇게 804호에 들어섰을 때 군인들은 차갑게 식은 세 구의 시체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남편으로 보이는 사람은 벨트로 목을 매달아 죽어있었고 아내와 아이는 식칼에 찔린 채 피웅덩이 위에 쓰러져있었다. 마치 남편이 자신의 가족들을 다 죽이고는 자살한 것처럼 보인다.

“왜 자기 가족한테 이런 짓을..?”

임지훈은 충격에 혼잣말을 내뱉었다.

“아니.”

그때 강민엽이 말했다. 강민엽은 SCRT에 들어오기 전에는 군사경찰이었다. 그리고 그중에서도 가장 악명 높다는 방첩부대에 소속이었다. 군사경찰 방첩부대는 각국의 전문 스파이들이나 고도로 훈련받은 특수부대 군인들을 상대로 수사를 하는 것이 일상인 부대다. 그런 곳에서 오랫동안 활동했던 강민엽의 눈에는 이 사건 현장이 다른 모습으로 보였던 것이다.

“한 명이 더 있었어.”


























<강민엽>


강민엽은 804호 사건 현장을 찬찬히 살펴봤다.


겉으로 보기엔 남편이 아내와 아이를 죽이고 자살한 것처럼 되어있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았다. 남편이 죽였다기엔 그에게 묻은 핏자국이 자연스럽지 않았다. 게다가 현장에는 다른 한 명이 더 있었던 흔적이 미세하나마 남아있었다. 그렇다면 그 자가 범인일 가능성이 높다.


강제 침입 흔적이 없는 것으로 보아 범인은 피해자와 일면식이 있는 사이고 정확하게 급소만 찔러 죽인 것으로 보아 원한 살인은 아니며 혼자서 성인 두 명을 가뿐히 죽여낸 것으로 보아 체격이 좋은 남성이다.


살해 추정 시간을 가늠해 보면 대략적으로 감염 사태가 발발했던 날에 벌어진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때는 감염자들 때문에 그 누구도 섣불리 아파트 밖으로 나갈 수 없었다. 아파트를 떠난 건 오직 헬리콥터에 탑승한 노약자들 뿐이었다. 그렇다는 것은 범인은 아직 이 아파트에 남아있을 확률이 높다는 뜻이었다.


아마 모두에게 내막을 공개해 대대적으로 수사를 벌인다면 용의자를 쉽게 추려낼 수도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강민엽은 그러지 않았다. 여기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일단 첫 번째로, 주민들이 사이에 불안감이 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 그래도 감염 사태로 분위기가 흉흉한데 여기에 살인자의 존재까지 알려진다면 혼란이 가중될 수 있었다. 두 번째로, 과학수사대의 감식을 진행할 수 없는 지금은 확실한 물적 증거를 잡아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애써 용의자를 추려낸다 해도, 그건 오직 심증에 기반한 것 밖에 되지 않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수사망을 좁혀나간다면 궁지에 몰린 범인이 무슨 짓을 저지를지 모르기 때문이다. 폐쇄된 공간에서 세 달간 생존해야 하는 특수한 상황에 놓여진 지금은 사소한 요소도 큰 위협으로 번질 수 있었다.


그렇게 강민엽은 사건을 은폐하고 조용히 넘어갔다. 범인의 의도대로 말이다. 그리고 숨어서 주민들을 찬찬히 관찰했다. 프로파일에 맞는 사람들을 추려내었다. 겨울이 오고 마침내 생존하게 되면 그때 비로소 범인을 잡아내기 위함이었다.




“아니, 자살이야.”

강민엽은 임지훈의 질문에 답했다. 욕조에 있는 김미나는 면도날로 손목이 그어져 있었다. 창문과 현관문은 내부에서 닫혀 있었고 누군가 외부에서 침입한 흔적이 전혀 없었다. 식탁 위에는 약상자가 가득했는데 그중에는 SSRI와 웰부트린 등의 항우울제가 대부분이었다. 아무래도 원래 우울증을 겪고 있던 피해자가 감염 사태 발발 이후 절망적인 상황 속에 희망을 잃고 결국 죽음을 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번엔 그 자의 짓이 아니다.


























<송예슬>


송예슬은 그녀의 집과 얼마 멀지 않은 610호에서 자살자가 나왔다는 것을 알게 된 이후로 큰 충격에 빠졌다. 사실 610호에서 살던 김미나와는 잘 아는 사이도 아니었고 이전엔 이름도 몰랐으나 그래도 출퇴근 길에 자주 마주치며 인사했던 기억이 있다. 그렇기에 충격은 더 크게 다가왔다.


“왜 그랬을까요.. 항상 밝아 보이셨는데..”

“아무래도 상황이 상황이다 보니 많이 힘들었을 거예요.”

유민준이 씁쓸하게 답했다. 송예슬은 그런 유민준을 바라보다 문득 깨닫는다. 그녀에게는 유민준, 이시온 그리고 동물들이 있기에 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며 힘든 시기를 잘 넘겨내고 있지만 다른 주민들은 그러지 못하고 있을 수도 있다는 것을 말이다.


감염 사태가 벌어진 이후 가족, 친구들과 연락두절된 사람들이 많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대부분은 집에 홀로 남아서 이 사태를 견디고 있다. 가까운 사람을 잃었는데도 위로해 줄 사람도 없고 밖에도 못 나가고 할 수 있는 거라곤 오직 집안에 틀여 박혀있는 것 밖에 없다. 창문 너머로는 흉폭한 감염자들로 가득한 암담한 모습 밖에 볼 수 없으며 먹고 싶은 것도 못 먹고 하고 싶은 것도 못한다. 당연히 우울해질 수밖에 없다. 삶의 의욕을 잃기가 너무 쉬운 구조다.


그때 유민준이 입을 연다.

“분양을 한 번 해보죠.”

“분양이요?”

“네. 옆에 반려동물이 있으면 조금이나마 위로가 될 거예요.”

그렇다. 생각도 못했다. 어찌 보면 송예슬 집은 지금 유기견 보호소나 다름없었다. 쓸데없이 좁은 공간에 동물들을 잔뜩 모아놓고 스트레스 주며 키우는 것보다는 지금 힘들어하는 사람들한테 분양해주는 것이 모두에게 훨씬 이로울 것이었다.


“좋아요!”

그 순간 그녀는 한 가지 아이디어가 더 떠오른다. 모든 주민들이 모여서 얘기를 나누며 친해질 수 있는 교류의 장을 만드는 것이다. 만약 그런 친목의 기회가 생긴다면 다들 친해지고 연락하며 서로 위로해주는 사이가 될 수 있을 것이다. 분양도 더 효율적으로 진행할 수 있는건 덤이다. 그러다 생각이 발전한다. 문득 죽은 김미나가 떠오른다.

“그럼 저희 장례식을 여는 건 어때요?”

“장례식이요?”

“네. 다 같이 모여서 추모를 하는 거예요. 죽은 사람들..”

문득 떠오른다. 잃은 사람들이 너무나 많다. 그녀도 연락이 안 되는 친구들이 있었고 또 눈앞에서 죽음을 목도하기도 했다. 게다가 밖에 떠돌아다니는 감염자들도 마찬가지다. 그들도 모두 한때는 누군가의 가족이고 친구였다. 분명 모두가 상실을 겪었을 것이다. 그렇기에 그 모두가 한데 모여 죽은 자들을 기리고 서로의 슬픔을 달래주는 그런 모임. 합동 장례식을 여는 것이다.

“.. 합동 장례식을 여는 거예요. 죽은 사람들을 모두 기리는..”

그러나 유민준이 애매한 표정을 짓는다.

“.. 별로예요?”

“아뇨. 정말 좋은 생각이긴 한데 워딩이 좀 강하네요.”

유민준의 말을 듣고는 송예슬은 자신이 생각을 잘못했다는 것을 깨닫는다. 유민준 말이 맞다. 애초에 암울한 분위기에서 탈출하기 위해 모이는 건데 그러기엔 장례식은 너무 무겁다. 그리고 사람들은 자신의 가족들과 친구들이 아직 살아있다는 희망을 갖고 있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들 앞에서 죽음에 대한 의식을 치른다면 오히려 역효과가 날 게 분명했다. 때가 좋지 않다.

“.. 그러네요.”

“그러지말고, 이제 곧 추석이니까 한가위 축제로 하죠.”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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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 [3장: 결전] 암흑 속 (1) 24.04.12 19 0 11쪽
46 [2장: 생존] 여명 (7) 24.04.10 20 0 12쪽
45 [2장: 생존] 여명 (6) 24.04.08 24 0 12쪽
44 [2장: 생존] 여명 (5) 24.04.05 22 0 18쪽
43 [2장: 생존] 여명 (4) 24.04.01 22 0 14쪽
42 [2장: 생존] 여명 (3) 24.03.26 23 0 11쪽
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25 0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23 0 13쪽
39 [2장: 생존] 비상 발전기 24.03.19 23 0 12쪽
38 [2장: 생존] 108동 (6) 24.03.18 26 0 10쪽
37 [2장: 생존] 108동 (5) 24.03.17 26 0 13쪽
36 [2장: 생존] 108동 (4) 24.03.15 30 0 13쪽
35 [2장: 생존] 108동 (3) 24.03.12 34 0 14쪽
34 [2장: 생존] 108동 (2) 24.03.11 35 0 11쪽
33 [2장: 생존] 108동 (1) 24.03.10 39 0 12쪽
32 [2장: 생존] SOS (5) 24.03.09 32 0 16쪽
31 [2장: 생존] SOS (4) 24.03.07 34 0 13쪽
30 [2장: 생존] SOS (3) 24.03.06 38 0 14쪽
29 [2장: 생존] SOS (2) +1 24.03.06 39 0 10쪽
28 [2장: 생존] SOS (1) 24.03.05 37 0 14쪽
27 [2장: 생존] 한가위 (4) 24.03.04 35 0 14쪽
26 [2장: 생존] 한가위 (3) 24.03.03 36 0 14쪽
25 [2장: 생존] 한가위 (2) 24.03.03 36 0 13쪽
» [2장: 생존] 한가위 (1) 24.03.02 40 0 12쪽
23 [2장: 생존] 105호 (5) 24.03.02 43 0 15쪽
22 [2장: 생존] 105호 (4) 24.03.01 36 0 9쪽
21 [2장: 생존] 105호 (3) 24.03.01 36 0 11쪽
20 [2장: 생존] 105호 (2) 24.02.29 48 0 14쪽
19 [2장: 생존] 105호 (1) 24.02.29 37 1 12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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