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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완결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10 23: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3,980
추천수 :
123
글자수 :
456,600

작성
24.03.18 23:10
조회
41
추천
1
글자
10쪽

[2장: 생존] 108동 (6)

DUMMY

<송예슬>


송예슬은 오늘도 임지훈의 곁을 지키고 있다. 임지훈은 침대에 누워 외국 생존 프로그램이 틀어져 있는 TV를 몰입해서 시청하고 있다. 송예슬은 그런 그의 옆에 앉아 책을 읽고 있다. 유명 프랑스 작가가 쓴 로맨스 소설로 김민지가 재밌다고 적극 추천하며 빌려준 책이다. 능력 있는 남자 주인공과 연약한 여자 주인공이 나오는 뻔한 클리셰 내용이었다. 아직 도입부였지만 벌써 결말이 예측된다. 하지만 김민지의 말이 맞다. 재밌다.


그때 누군가 집으로 들어오는 소리가 들린다. 이에 송예슬은 자리에서 일어나 마중을 나간다. 집에 들어온 것은 김민지였다.

“어우 힘들어라.”

“오셨어요?”

김민지는 오늘도 강민엽의 지도 하에 빈 집을 수색하고 물자를 모으는 작업을 한다고 했다. 그녀는 피로에 지쳐 보인다.

“힘들죠.”

“말도 말아요. 허리 나가는 줄 알았어요. 와 진짜 끝이 안 보여요, 끝이.”

김민지는 소파에 쓰러지듯 눕고는 말했다.

“저도 도와드려야 되는데.”

“에이 저희가 다 해야죠. 아 맞다, 깜빡하고 있었네. 빨리 14층으로 가보세요.”

“네? 14층이요?”

“네. 14층에서 민엽 씨가 찾으시는 거 같더라고요.”

“저를요?”

송예슬은 어리둥절했다. 강민엽이 그녀를 부를만한 이유로 딱히 떠오르는 게 없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자신을 찾는다니 일단 임지훈을 김민지에게 맡기고 밖으로 나가본다. 그리고 중앙 계단을 통해 14층으로 올라간다.


두리번거리며 강민엽을 찾아보지만 보이지 않는다. 그때 어디선가 피아노 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온다. 이내 문이 뜯겨있는 빈 집 중 하나에서 나는 소리라는 것을 알아낸다. 송예슬은 자신도 모르게 그 집으로 향한다. 가까워질수록 피아노 소리는 더 크게 들려온다. 누군지 몰라도 꽤나 인상적인 솜씨의 연주였다. 그리고 울려 퍼지는 선율에는 어딘지 모르게 서글픈 애절함이 서려있었다.


송예슬은 집 안으로 들어간다. 거실에 커다란 피아노가 한 대 있었고 그 앞에 누군가 앉아 연주를 하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이내 송예슬은 놀란다. 연주하고 있던 사람은 다름 아닌 강민엽이었기 때문이다. 언제나 투박하고 거친 듯 보였던 그에게 이렇게 섬세한 면이 있을 줄은 미처 몰랐다.


송예슬은 계속 감상하고 싶은 마음에 숨죽이고 있었지만 강민엽은 어느새 인기척을 느꼈는지 연주를 멈추고는 뒤를 돌아본다. 이에 송예슬은 순간 당황한다. 그때 강민엽의 얼굴에는 무언가 알 수 없는 슬픔이 어려있었다.


송예슬은 어색함을 깨기 위해 그에게 다가가며 묻는다.

“피아노도 칠 줄 아세요?”

“네, 그냥 조금.”

“와 진짜 좋던데. 무슨 노래였어요?”

“.. 드뷔시 달빛이요. 좋은 곡이죠.”

강민엽은 나지막이 말했다. 처음 들어보는 이름의 곡이었다. 그때 강민엽이 묻는다.

“근데 여긴 무슨 일로?”

“네? 민엽 씨가 부른 거 아니었어요?”

“제가요?”

강민엽은 전혀 모르는 눈치다. 그때 송예슬은 뒤늦게 알아차린다. 김민지가 일부러 거짓말을 했다는 것을 말이다. 송예슬은 헛웃음을 짓는다. 그리고는 이내 상황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그렇게 강민엽의 옆자리로 다가가며 말한다.

“저도 칠 줄 아는 거 있는데.”

강민엽은 송예슬이 앉을 수 있게 옆으로 조금 비켜준다.


송예슬은 실제로 피아노를 배운 적이 있다. 물론 아주 어릴 적이고 기간도 짧아서 기억에 남는 게 거의 없었지만 말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유일하게 연주할 수 있는 곡이 하나 있었다. 바로 젓가락 행진곡이다. 양손 검지 손가락으로 각자 건반을 하나씩 박자에 맞춰 누르면 되는 아주 쉬운 곡이다.


그렇게 연주를 시작해 본다. 그러나 초입부터 틀려버린다. 쉽게 될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안된다. 그때 강민엽이 송예슬 쪽 건반으로 손을 뻗는다. 그리곤 한 손만으로 올바른 젓가락 행진곡을 시연해 준다.

“아.”

그 모습을 보고 송예슬은 비로소 젓가락 행진곡 연주법을 제대로 기억해 낸다. 그렇게 다시 처음부터 연주한다. 그 순간이다. 강민엽이 박자에 맞춰 들어와 반주를 연주하기 시작했다. 이에 송예슬은 감탄하며 밝게 미소 짓는다. 선율이 어우러지며 굉장히 흥겨워진다. 이내 송예슬의 파트가 끝났음에도 강민엽은 연주를 이어가며 깔끔하게 마무리 짓는다. 젓가락 행진곡이 이렇게 고급스러운 곡인지 미처 몰랐다.


연주가 끝나자 송예슬은 작게 환호하며 박수를 친다.

“좋은데요?”

“하나 더 알려드릴까요?”

“네.”

송예슬은 밝게 미소 지으며 고개를 끄덕인다. 강민엽은 한 손으로 송예슬 쪽 건반을 누르며 멜로디 연주를 시연해 준다. 어디선가 들어본 노래다.

“어? 이거 유명한 거죠.”

“네. ‘Heart and Soul’이요. 이렇게 반복해서 치시면 돼요.”

송예슬은 강민엽이 알려준 대로 연주해본다. 생각보다 쉬웠다. 그때 강민엽이 또다시 박자에 맞춰서 반주 연주를 시작한다. 송예슬은 연주를 하며 리듬에 맞춰 흥겹게 고개를 흔든다. 분위기가 감미로우면서도 유쾌해진다. 흐뭇한 웃음이 새어 나온다. 이내 강민엽도 밝게 미소를 지어 보인다.


그렇게 둘은 연주를 이어간다.

































<김민지>


모든 훈련이 끝나고 마침내 약속된 72시간이 지났다. 처음엔 다들 힘들어하는 기색을 보였지만 이내 모두 현실을 받아들이고 적응했다. 그렇게 최초 여덟 명의 지원자들 중에 이탈자 한 명 없이 모두 무사히 훈련을 마쳤다. 모든 빈 집을 수색하진 못했지만 이제 남은 빈 집들은 이들이 알아서 마무리하기로 했다.


“무운을 빕니다.”

감사를 표하는 지원자들에게 강민엽이 나지막이 말했다. 그리곤 마지막으로 한 명 한 명과 악수를 나눴다. 결의가 느껴지는 뜨거운 악수였다.


그렇게 모든 게 끝나고 109동에서 넘어온 이들은 다시 밧줄을 타고 돌아갈 준비를 하고 있다. 우선 환자인 임지훈이 가장 먼저 밧줄다리를 건너기로 했다. 임지훈의 상태는 다행히도 좋았다. 항생제는 효과가 있었고 다리도 꽤 호전되었다. 물론 완전히 회복하는 데는 시간이 꽤 걸리겠지만 말이다.

“혹시라도 이상 있으면 꼭 연락하세요.”

“네.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임지훈은 김민지와 악수를 한다. 그리고 밧줄 다리에 올라타 양손과 한쪽 다리만을 이용해서 건너가기 시작한다. 굉장히 아슬아슬한 모습에 불안해 보였지만 그는 뛰어난 신체능력으로 이내 109동에 무사히 도달한다.


그다음은 송예슬 차례다.

“잘 있어요. 언니.”

“.. 우리 다음에 보는 건 겨울이겠네.”

김민지는 갑작스레 감정이 복받쳐 오른다. 눈물이 차오르기 시작한다.

“울지 마요.”

이에 송예슬도 울먹인다. 둘은 포옹을 하며 서로를 다독여준다. 짧은 기간이었지만 정이 많이 들었다.

“진짜 몸 조심하세요.”

“응. 너도 몸 조심하고. 연락할게. 조심히 잘 가 예슬아. 안녕.”

김민지는 억지로 밝게 웃으며 마지막 인사를 건넨다. 송예슬도 그런 김민지를 보고는 손을 흔들어 최대한 밝게 인사한다. 그리고 이내 안전장치를 걸고는 밧줄 다리에 매달려 떠나간다. 김민지는 그 모습에서 시선을 떼지 않고 바라본다. 잘 가라고 다시 한번 외치고 싶었지만 혹시나 위험한 상황이 발생할까 봐 꾹 참고 묵묵히 지켜본다. 그러다 마침내 송예슬이 반대편에 도착한다. 손을 크게 흔들며 인사를 한다. 송예슬도 손을 흔드는 모습이 보인다.


마지막으로 강민엽 차례다. 강민엽은 더플백 두 개를 베란다 창문 앞에 옮겨놓고 출발할 준비를 한다. 그때 김민지가 달려와 그를 와락 안는다. 강민엽은 이번엔 당황하지 않고 덤덤히 받아들인다. 김민지는 이내 포옹을 풀고는 말한다.

“잘 가요.”

“다 건너가면 약속했던 대로 부탁드립니다.”

“네 그럼요.”

강민엽은 고개를 끄덕여 인사를 하고는 더플백들을 짊어지고 망설임 없이 밧줄 다리에 오른다. 김민지는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않고 그가 넘어가는 모습을 지켜본다. 이내 강민엽도 무사히 반대편에 도착한다.


마침내 모두가 건너갔다. 이제 108동에는 108동 주민들만 남았다. 가슴이 메여온다. 이별은 언제나 슬프다.

‘그래도 겨울이 되면 볼 수 있으니까..’


김민지는 부엌으로 향한다. 그곳에는 미리 준비해 둔 톱이 있었기 때문이다. 강민엽은 모두가 109동으로 건너가고 나면 밧줄을 끊어달라고 부탁했다. 어쩌면 너무 차가운 부탁으로 보일 수도 있지만 김민지는 이해했다.


김민지는 식탁 위에 올려져 있는 톱을 집어든다. 그러나 그때 톱 옆에 있는 무언가를 발견한다. 그것은 다름 아닌 군용 무전기였다. 강민엽이 잊고 안 가져갔나 싶어 황급히 무전기를 집어든다. 그 순간 그녀는 무전기에 붙어있는 포스트잇을 발견한다.


[비상시에만 사용할 것]


김민지는 깨닫는다. 강민엽이 무전기를 잊은 게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는 일부러 두고 갔다. 김민지는 순간 다시 감정이 복받쳐 올라 눈물이 나오면서도 애써 밝게 미소를 짓는다. 무전기를 가슴에 품고는 109동 방향을 한참 동안 바라본다. 그리고는 이내 무언가 결심한 듯 톱을 들고 매듭이 묶여있는 곳으로 향한다.


톱질을 마치고 마침내 밧줄이 잘린다. 앞으로 약속한 대로 겨울이 오기 전까지 더 이상의 교류는 없을 것이다. 하지만 김민지는 알고 있다. 만약에 또다시 목숨이 위험한 순간이 찾아온다 하더라도 걱정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말이다. 강민엽은 분명 다시 도와주러 올 것이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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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 [3장: 결전] 암흑 속 (2) 24.04.14 32 1 11쪽
47 [3장: 결전] 암흑 속 (1) 24.04.12 35 1 11쪽
46 [2장: 생존] 여명 (7) 24.04.10 34 1 12쪽
45 [2장: 생존] 여명 (6) 24.04.08 38 1 12쪽
44 [2장: 생존] 여명 (5) 24.04.05 36 1 18쪽
43 [2장: 생존] 여명 (4) 24.04.01 37 1 14쪽
42 [2장: 생존] 여명 (3) 24.03.26 39 1 11쪽
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41 1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40 1 13쪽
39 [2장: 생존] 비상 발전기 24.03.19 39 1 12쪽
» [2장: 생존] 108동 (6) 24.03.18 42 1 10쪽
37 [2장: 생존] 108동 (5) 24.03.17 40 1 13쪽
36 [2장: 생존] 108동 (4) 24.03.15 45 1 13쪽
35 [2장: 생존] 108동 (3) 24.03.12 48 1 14쪽
34 [2장: 생존] 108동 (2) 24.03.11 49 1 11쪽
33 [2장: 생존] 108동 (1) 24.03.10 58 1 12쪽
32 [2장: 생존] SOS (5) 24.03.09 51 1 16쪽
31 [2장: 생존] SOS (4) 24.03.07 51 1 13쪽
30 [2장: 생존] SOS (3) 24.03.06 56 1 14쪽
29 [2장: 생존] SOS (2) +1 24.03.06 60 0 10쪽
28 [2장: 생존] SOS (1) 24.03.05 55 0 14쪽
27 [2장: 생존] 한가위 (4) 24.03.04 59 1 14쪽
26 [2장: 생존] 한가위 (3) 24.03.03 54 1 14쪽
25 [2장: 생존] 한가위 (2) 24.03.03 54 0 13쪽
24 [2장: 생존] 한가위 (1) 24.03.02 59 1 12쪽
23 [2장: 생존] 105호 (5) 24.03.02 62 1 15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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