퀵바

데뒹또

[개정판] 아라그린

웹소설 > 일반연재 > 현대판타지, 로맨스

완결

데뒹또
작품등록일 :
2024.02.19 10:46
최근연재일 :
2024.06.10 23:40
연재수 :
81 회
조회수 :
3,421
추천수 :
106
글자수 :
456,600

작성
24.03.26 20:40
조회
30
추천
1
글자
11쪽

[2장: 생존] 여명 (3)

DUMMY

<송예슬>


“죄송한데 저희 머리 좀 감고 다니죠.”

유민준은 오늘도 인사 대신 장난을 친다.

“누구한테 잘 보이게요.”

송예슬은 웃으며 자리에 앉는다. 그리고 재료 손질 작업을 시작한다. 근데 마음에 조금 걸린다. 그렇게 그녀는 농담 반 진담 반으로 물어본다.

“티나요?”

이에 유민준은 미소 짓는다. 그리고 자연스럽게 손을 뻗어 송예슬의 머리를 귀 뒤로 넘겨준다.

“하나도 안 나요. 아침은 먹었어요?”

“네. 냉동 만두요. 아 맞다. 냉동고에 남은 음식들 있잖아요. 어쩌죠? 얼마 안 갈 거 같은데.”

아직 빈 집의 냉동고에는 많은 음식들이 남아있었다. 고기, 생선, 채소, 과일과 같은 원재료들은 보존 처리를 할 수 있었지만 이미 가공된 반찬들이나 냉동식품들은 그게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아직까지는 냉동고의 냉기가 다 빠지지 않아 당분간은 괜찮을 것 같아 보이지만 오래가지 못할게 불 보듯 뻔했다.

“안 그래도 생각해 봤는데 이번엔 레스토랑을 열어보려고요.”

“오 레스토랑.”

“네. 대량 조리해서 뷔페처럼 먹을 수 있게 하는 거예요.”

“좋은데요?”

“네. 바로 내일 아침부터 시작해 보죠. 오늘은 일단 작업을 마무리해야 되니까.”

“그럼 민엽 씨한테는 제가 말씀드릴게요.”

강민엽은 오후 4시에 근무를 시작한다. 그때쯤이면 캐닝 작업이 다 끝나고 옥상에서 건조를 돕고 있을 것이기에 옥상 순찰을 도는 강민엽과 얘기할 타이밍이 생길 것이었다. 아직 스마트폰 배터리가 다 닳은 것은 아니었기에 문자를 보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직접 대면해서 말하는 게 좋을 것 같았다.


그렇게 캐닝 작업에 몰두한다. 재료가 산더미처럼 쌓여있었지만 이제는 어느 정도 숙련이 되었기에 진행 속도가 빨랐다. 그리고 대화가 한 번도 끊이지 않고 화기애애하게 이어졌기에 시간도 빠르게 흘렀다.

“스미냑도 가보셨어요?”

“숭인역이요?”

유민준은 못 알아듣고 되묻는다. 이에 송예슬은 웃음이 터진다.

“아니요. 스미냑.”

“아 스미냑, 발리.”

“숭인역이라고 한 거예요? 그건 무슨 역이에요?”

송예슬은 다시 웃음이 터진다.

“1호선?”

유민준은 미소 지으며 능청스럽게 받아쳤다. 그리고는 말을 이어간다.

“발리는 안 가봤어요.”

“진짜요? 진짜 예쁜데 꼭 가야 돼요.”

송예슬은 예전에 친구들과 졸업여행으로 발리를 다녀왔었다. 노을 아래 끝없이 펼쳐져있는 스미냑 바닷가의 모습은 너무나도 황홀했다. 그녀가 태어나서 봤던 바다 중에 가장 아름다운 바다였고 머릿속에 각인된 그 모습은 평생 잊지 못할 것이라 확신한다.

“그래요? 그럼 저 좀 가이드해주세요.”

“좋아요. 사실 저도 잘 모르긴 하지만 원하시면 해드려야죠.”

“약속한 거예요. 그럼 모든 게 다 끝나면 한 번 같이 가죠. 발리.”

“어 그럴까요? 진짜 다 같이 한 번 갈까요? 진우 씨 부부랑 시온이랑, 민엽 씨랑..”

“아니요. 저는 우리 둘 얘기한 건데.”

유민준은 송예슬의 말을 끊고는 말했다.

“네?”

송예슬은 놀라 되묻는다.

“우리 둘이서만 가요.”

“.. 아 네.”

유민준의 갑작스러운 선언에 송예슬은 가슴이 두근거린다.

‘단 둘이 발리..?’

당황스럽고 머릿속이 하얘진다. 그러나 유민준의 말은 도무지 농담인지 진담인지 구분을 할 수 없었다. 그는 항상 웃는 얼굴을 한 채 말할 때마다 농담을 섞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진담이냐고 진지하게 캐물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이에 송예슬은 능청스럽게 화제를 돌린다.

“민준 씨는 전용기 타셔야 되는 거 아니에요?”

“네.”

“진짜요?”

송예슬은 두 눈이 휘둥그레진다.

“아니요. 아직은 없어요.”

“아 진짜인 줄.”

송예슬은 미소 지으며 놀란 가슴을 쓸어내린다.


오후 2시가 조금 넘어서 모든 캐닝 작업이 마무리되었다. 집안은 각종 재료들이 담긴 오색찬란한 유리병들이 정갈하게 한가득 배열되어 있어 한 눈에 장엄한 광경을 연출했다.

“끝.”

유민준이 손을 털며 말했다. 송예슬은 박수를 친다.

“고생하셨습니다.”

“이제 옥상으로 가볼까요.”

“좋아요.”

그렇게 송예슬과 유민준은 건조팀을 도우러 옥상으로 올라간다.























<허진우>


“아니야. 그건 그렇게 못 간다니까.”

허진우의 가르침에 이은찬은 머리를 긁적인다.


허진우는 이은찬에게 체스를 가르치고 있었다. 건조 작업은 처음에 재료 손질을 하고 돗자리를 깔고 식재료들을 펼쳐놓은 다음에는 지켜보는 것 말고는 다른 할 일이 없었다. 그렇다고 자리를 비울 수도 없고 배터리가 얼마 남지 않은 스마트폰을 들여다볼 수도 없고 얘기를 나누자니 대화를 할 사람도 마땅치 않았다. 그래서 허진우는 빈 집에서 체스판을 가져온 것이다.


그때 유민준과 송예슬이 다가온다.

“와 이게 다 뭐예요?”

송예슬은 감탄사를 내뱉었다. 사실 허진우는 체스판뿐만 아니라 햇빛을 피하기 위해 빈 집에서 텐트도 찾아 설치해 놨기 때문이다. 네 방향이 모두 뚫려있고 내부에 서있어도 천장에 머리가 닿지 않을 정도로 크기가 큰 대형 텐트였다. 게다가 정면 입구에는 외부 공간을 위한 지붕 설치까지 가능했기에 상당히 넓은 범위까지 그늘을 만들어주었다.

“어때요. 괜찮죠?”

“와 좋다.”

송예슬은 신발을 벗고 텐트 안으로 들어온다.

“체스하고 계셨어요?”

“네 한 판 해보실래요?”

“저는 할 줄 몰라요.”

“가르쳐 드릴게요.”

허진우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설명을 시작한다.

“자 이건 폰인데 앞으로만 한 칸씩 갈 수 있어요. 근데 처음엔 두 칸도 갈 수 있고 공격할 땐 대각선 앞으로 밖에 안 돼요. 이건 룩이고 가로세로 갈 수 있고 비숍은 대각선, 나이트는 L모양, 퀸은 가로세로대각선, 그리고 킹은 한 칸씩 밖에 못 움직여요. 그리고 이 킹이 잡히거나 움직일 수 있는 기물이 없어지면 지는 거예요. 쉽죠?”

“아니요.”

송예슬은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젓는다.

“아 이거 조금만 알면 진짜 재밌는데 같이 할 사람이 없는 게 아쉽네.”

“제가 상대해 드릴까요.”

텐트 안으로 들어온 유민준이 여유로운 미소를 지으며 허진우 반대편 자리에 앉는다.

“어 체스 두실줄 아세요? 역시!”

허진우는 격하게 기뻐한다. 체스 상대가 생겼다는 사실에 마음이 설레기 시작한다.

“먼저 하시죠.”

허진우는 정중히 한 손을 내밀며 양보의 뜻을 전한다. 체스에서는 선을 잡는 백이 후공인 흑보다 조금 더 유리하다. 대학교 시절 체스 연합 동아리 소속이었던 허진우는 체스에 있어서는 어느 정도 자신이 있었기에 불리한 후공을 자처한 것이다.


그렇게 백을 잡은 유민준은 폰을 움직여 첫 수를 둔다. 그러나 허진우는 유민준의 첫 수를 보고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유민준은 폰을 f4위치에 놓았기 때문이다. 잘 나오는 정석 플레이가 아닐뿐더러 승률도 별로 좋지 않은 수다.

‘버즈 오프닝? 초보인가?’

허진우는 폰을 d5으로 옮겨 시실리안 디펜스를 한다. 이렇게 하면 상대가 이길 경우의 수를 꽤 많이 줄일 수 있다. 그러나 유민준은 이에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거침없이 손을 뻗는다. 이번엔 나이트를 앞으로 전개시켰다. 처음 보는 수다. 허진우는 여기에서 확신한다. 유민준은 초보가 확실하다고 말이다. 그렇게 안심하고 승부에 나선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체크 메이트.”

유민준이 비숍을 옮기며 말했다. 허진우는 두 눈을 의심한다. 아직 여덟 수밖에 두지 않았는데 벌써 체크메이트다. 분명 상대는 초보일 게 확실했는데 말이다.

“.. 한 판 더 하죠.”

“체크 메이트.”

“한 판 더..”

“체크 메이트.”

그렇게 허진우는 단 시간에 내리 3연패를 해버린다. 그것도 아주 무기력하게.


허진우는 지금 이 현실이 믿기지 않는다. 그는 게임에서 만큼은 자신이 있었다. 언제나 그가 게임에는 재능을 타고났다고 믿어 의심치 않아 왔다. 아주 어린 시절부터 컴퓨터를 다루며 게임을 즐겨해 왔고 싱글 게임부터 시작해서 멀티 게임까지 마이너한 게임부터 유행하는 게임까지 모두 다 섭렵해 왔으며 특히 실력을 가르는 경쟁 게임들은 모두 높은 티어를 찍어본 허진우였다.


그리고 그건 체스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대학교 연합 동아리 시절에 허진우는 각종 대회에도 많이 참여해 봤고 내전 리그에서 항상 상위권을 유지했었다. 그동안 그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패배해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어떻게 된 일인지 영문을 알 수 없었다.

“.. 아니 대회 나가셔도 되겠는데요?”

허진우는 애써 여유로운 척 말했다.

“그랜드 마스터예요.”

“네? 하하하.”

허진우는 크게 웃는다. 당연히 농담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유민준의 표정은 한 치도 변하지 않는다. 마치 방금 한 얘기가 진담이었다는 것처럼 말이다. 이에 허진우는 순간 웃음기가 가신다. 그리고 진지한 표정으로 묻는다.

“진심이에요?”

유민준은 밝게 눈웃음친다.

“아니 거짓말 마세요. 한국인 중에는 그랜드 마스터가 없을 텐데?”

“한국 국적이 아니라서요.”

“아..”

그렇다. 유민준은 외국인이었다. 들어본 적이 있긴 하다. 인텔리지브 CEO 유민준의 국적은 한국이 아닌 미국이라고. 그래도 무언가 이상했다. 만약 유민준이 체스 그랜드 마스터 타이틀을 취득했다면 허진우가 모를 리가 없었기 때문이다. 어떻게든 그 소식을 한 번쯤은 접했을 것이다.

“이상하다. 그래도 분명 이슈가 됐을 텐데..?”

“아주 옛날에 획득했거든요. 어렸을 때.”

“아..”

말이 된다. 그렇다면 허진우가 이렇게 압도적으로 패한 것도 설명이 된다. 체스 동아리 상위권 정도의 실력으로는 세상에 1500명 정도밖에 없는 그랜드 마스터와의 격차는 아이와 어른의 차이 그 이상이다.


허진우는 입이 다물어지지 않는다. 그러나 압도적인 실력 차이에 낙담했기 때문에 그런 것이 아니다. 가슴이 뛰었기 때문이다. 허진우는 그랜드 마스터를 실물로 본 것이 이번이 처음이다. 근데 그게 자신이 평소에 존경하는 마음이 있었던 유민준이다. 호감도가 극상한다. 그런 그와 겨울까지 이 아파트에 갇히게 된 것은 어찌 보면 허진우에게 축복이었다.

“한 수 더 부탁드립니다.”

허진우는 과장된 동작으로 정중히 고개 숙여 인사했다.


작가의말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이 작품은 어때요?

< >

Comment ' 0


댓글쓰기
0 / 3000
회원가입

[개정판] 아라그린 연재란
제목날짜 조회 추천 글자수
52 [3장: 결전] 암흑 속 (6) 24.04.21 21 1 15쪽
51 [3장: 결전] 암흑 속 (5) 24.04.18 22 1 13쪽
50 [3장: 결전] 암흑 속 (4) 24.04.17 25 1 13쪽
49 [3장: 결전] 암흑 속 (3) 24.04.16 23 1 15쪽
48 [3장: 결전] 암흑 속 (2) 24.04.14 24 1 11쪽
47 [3장: 결전] 암흑 속 (1) 24.04.12 26 1 11쪽
46 [2장: 생존] 여명 (7) 24.04.10 26 1 12쪽
45 [2장: 생존] 여명 (6) 24.04.08 30 1 12쪽
44 [2장: 생존] 여명 (5) 24.04.05 29 1 18쪽
43 [2장: 생존] 여명 (4) 24.04.01 29 1 14쪽
» [2장: 생존] 여명 (3) 24.03.26 31 1 11쪽
41 [2장: 생존] 여명 (2) 24.03.24 33 1 12쪽
40 [2장: 생존] 여명 (1) 24.03.22 31 1 13쪽
39 [2장: 생존] 비상 발전기 24.03.19 30 1 12쪽
38 [2장: 생존] 108동 (6) 24.03.18 33 1 10쪽
37 [2장: 생존] 108동 (5) 24.03.17 32 1 13쪽
36 [2장: 생존] 108동 (4) 24.03.15 37 1 13쪽
35 [2장: 생존] 108동 (3) 24.03.12 40 1 14쪽
34 [2장: 생존] 108동 (2) 24.03.11 42 1 11쪽
33 [2장: 생존] 108동 (1) 24.03.10 46 1 12쪽
32 [2장: 생존] SOS (5) 24.03.09 40 1 16쪽
31 [2장: 생존] SOS (4) 24.03.07 41 1 13쪽
30 [2장: 생존] SOS (3) 24.03.06 46 1 14쪽
29 [2장: 생존] SOS (2) +1 24.03.06 50 0 10쪽
28 [2장: 생존] SOS (1) 24.03.05 45 0 14쪽
27 [2장: 생존] 한가위 (4) 24.03.04 43 1 14쪽
26 [2장: 생존] 한가위 (3) 24.03.03 45 1 14쪽
25 [2장: 생존] 한가위 (2) 24.03.03 44 0 13쪽
24 [2장: 생존] 한가위 (1) 24.03.02 48 1 12쪽
23 [2장: 생존] 105호 (5) 24.03.02 52 1 15쪽

구독자 통계

신고 사유를 선택하세요.
장난 또는 허위 신고시 불이익을 받을 수 있으며,
작품 신고의 경우 저작권자에게 익명으로 신고 내용이
전달될 수 있습니다.

신고
비밀번호 입력